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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도시는 추억이다 - 이용우

지구촌시대, 정보화시대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는 지리적 경계개념의 소멸이다. 지리학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의 무한대 확장으로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하여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실제로 물리적 국경을 유유히 넘어 관광문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문화야말로 향후 가공할 문화경제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그렇다고 국가 간 국경이 실제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무시로 넘나들던 습관과 이질 문화에 대한 동경은 과거 그토록 견고하였던 심리적 국경선을 훌륭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경개념의 전환이야말로 과거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차별을 소멸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오늘날 우리가 새로 쓰기 시작한 문화경제라는 용어는 도시문화, 도시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와 자원 과다사용으로 인하여 문제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는 오히려 거꾸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행정가들은 도시의 규모를 줄이기보다는 도시의 문제점을 줄여가는 방법으로 도시문화를 가꾸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건축미학의 활발한 도입이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된다는 사실이다.한국 대도시의 건축미는 어떠한가? 도시는 단순히 사람만 많이 사는 곳이 아니다. 도시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 결정적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파리를 기억하는 것은 강이나 땅이나 도로가 아니라 도시의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물이 배제된 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건축물은 도시의 질을 구성하는 결정적 증거이자 도시에 대한 추억 만들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대다수의 역사적 도시들은 도시형성 초기부터 계획을 만들고 도시가 필요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겪으면서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팽창해온 도시들은 건축미학은 고사하고 그 유사한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성장해왔다. 서울은 엄청나게 크지만 크다는 것 이외에 볼 것이 없고,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 도시들도 서울처럼 덩치만 키워왔지 미학적 고려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적 명소 하나 없이 도시가 진화하고 존재해온 것이다.오늘날 도시미학이나 도시의 질을 논하는 첫째 요건은 건축미와 문화적 명소, 즉 도시를 구성하는 아이콘이다. 건축적 명소는 다수의 문화시설물이 포함된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와 대영박물관, 뉴욕의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아이콘이다.그리고 최근에 이러한 문화관광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건축미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지역은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발전을 극대화시키는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지역을 들 수 있다. 중국정부는 기왕 올림픽을 치르면서 다양한 건축적 명소를 만들었다.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설계한 올림픽주경기장과 스위스의 건축가 헤르조그 드메롱의 수영장, 렘 쿨하스가 설계한 중국 중앙방송인 CCTV건물, 그 밖에 일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와 시게루 반, 아라타 이소자키, 미국의 아이엠 페이와 리베스킨드 등이 남겨놓은 건축물들은 향후 베이징과 상하이의 미래를 명소화 하는 기념비적인 것들이다.아랍 에미레이트의 맏형 격인 아부다비의 경우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고 있는 아부다비 구겐하임을 비롯하여 루브르박물관까지 유치하여 가히 건축물 천국을 방불케 한다. 작년까지 건축물 붐으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두바이도 이에 지지 않는다.이제 우리는 도시의 팽창을 경험하면서 도시미학을 가꾸는 건축물의 절대적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시설인 아파트의 치장도 물론 포함된다. 한국 대도시의 건축물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회색 시멘트의 연속이며, 잠을 위한 베드타운(bed town) 역할만 하는 아파트문화의 개선이야말로 시급한 개선과제이다. 건축미학은 서울을 벗어나 지방 대도시로 가면, 그리고 지방대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각 지역별로 시행중인 각종 대형 문화프로젝트들에 대한 재검토를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업에 대한 구체적 재검토도 시행되어야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태어난 자들은 불행하게도 추억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도시가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책임은 도시를 만드는 자들과 도시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다. 도시와 추억 사이의 경계가 아름다운 도시, 그것이 바로 미학적 도시인 것이다./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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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23 23:02

[금요칼럼] 간접흡연 없애야 건강 선진국 - 서홍관

안데스 산맥에 자생하는 풀이 있었다. 토착 원주민들이 그 풀에 무슨 이유에선지 불을 붙여 빨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습관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의 담배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지나 일본까지 전해졌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대한 기록은 1643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지금 사람들은 담바고를 많이 심는다'라고 최초로 등장한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정조는 '차가운 몸은 덥혀주고, 더운 몸은 식혀주니 이 아니 좋은가' 하는 담배 예찬론을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안한 것은 아니다. 성호 이익은 담배 해악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담배의 해로움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0-1960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졌다.문제는 이렇게 우리나라에 전해진지 4백년밖에 안된 담배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오천만 남한 국민 중 무려 천만에 가까운 흡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담배 때문에 매일 150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을 수개월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이 250명인데 담배 때문에 이틀 동안 사망하는 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또한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이고, 3위는 심장혈관 질환인데 담배는 위의 세가지 모두에 주된 위험요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든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의사든 치과의사든 우리나라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담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망원인 4위는 자살인데 우연찮게도 흡연자들은 자살율도 높다.처음에 금연운동을 할 때는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주장했는데 점차 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금연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는 흡연자는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해친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져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간접흡연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간접흡연은 천식을 악화시키고, 심장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질병이 아니더라도 코와 눈의 따가움, 가슴답답함을 일으켜 불쾌감을 주고 있다.지난 5월 27일 국회에서는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었다. 개정의 골자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의해 다수인이 모이거나 오고가는 관할 구역 안의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한 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과거에는 금연구역은 오로지 보건복지부장관만이 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위반한 경우에도 경범죄처벌법에 의하여 대중교통수단, 의료시설, 승강기에서 흡연할 경우 범칙금 3만원, 역 대합실, 버스터미널, 기타 금연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범칙금 2만원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오로지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이번 법 개정으로 소리 소문없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각 지방자치 단체들은 이 법에 의해 음식점과 술집을 비롯한 다중이 모이는 모든 실내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선포해야 하며, 실외공간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나 해수욕장 등의 휴게 공간을 금연 구역으로 선포할 수 있다. 또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도 베란다, 복도, 엘리베이터 등은 금연으로 선포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옆집 흡연자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 여름에도 문을 열어 놓을 수 없었던 이웃주민이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실외에서 흡연하는 것은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국민들도 실내든 실외든 간접흡연을 당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4천만의 비흡연자들은 천만의 흡연자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헌법에도 보장되고 있다.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할 때 앞사람이 흡연할 때 뒤따라가면서 담배연기를 맡는 불쾌감을 호소한다. 이제는 혼잡한 거리와 체육경기장 관람석처럼 사람이 조밀한 공간에서는 모든 실외공간도 금연이 선포될 전망이다.흡연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초조해하기도 하고, 우리를 너무 밀어부친다고 불쾌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자유는 있지만 남들을 불쾌하게 하면서 고성방가를 부를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듯이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흡연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불쾌하게 만들 권리까지는 없는 셈이다./서홍관(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서홍관 회장은 서울대 의학박사로 2003년 보건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국립암센터 암예방 검진센터 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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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6 23:02

[금요칼럼] 대의원 혁명만이 한나라당이 살 길 - 김형준

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하기 전당대회 막이 올랐다. 13명의 후보들이 쇄신, 화합, 세대교체 등을 내세우며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이번에 선출되는 새 대표는 6.2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2012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선을 관리해야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새 대표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애석하게도 김빠진 사이다처럼 밋밋하고 전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을 실질적으로 상징하고 국민들과 정서적 일체감을 갖고 있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전당대회는 박근혜, 이재오, 정몽준 등 빅3 거물들이 불출마한 가운데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차기 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마이너 리그'로 전락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다시 야당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이후에도 허구한 날 친이-친박간에 싸움만 하면서 국민들의 혐오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선거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싫어하는 정당' 비율에서는 한나라당(32.7%)이 민주당(17.1%) 보다 2배정도 많았다. 더구나 0점(아주 조금 싫어함)에서 10점(아주 많이 싫어함)사이의 혐오 점수에서 한나라당은 7.23점으로 민주당(5.64점)에 비해 훨씬 높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 우리당이 참패했을 당시 혐오점수는 7.30점으로 최근의 한나라당 혐오점수와 비슷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다음 중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8.5%가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해서'라고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 '여당이 싫어서'가 20.0%였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기존의 한나라당 혐오감을 불식시키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계파를 해체하고 보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당내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와 쇄신을 기치로 내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이런 민심에 역행하면서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너도나도 이심(李心), 박심(朴心)을 들먹이며 저질을 향한 고공행진만 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내가 진짜 성골 친이다"고 떠들며 다니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박 전대표가 내 사무실을 먼저 왔다" "박전대표가 최근 전화를 했다"는 유치한 말을 버젓이 하고 있다. 심지어 "박전대표를 지키기 위해 출마했다"고 노골적인 '박근혜 마케팅'을 구사하기도 하고 '박심은 △△△'라는 낮 뜨거운 플래카드를 내건 후보도 있다. 결국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모습은 국민은 없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채 계파정치라는 자리에서 쳇바퀴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뒤틀리고 비뚤어진 전당대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의원들의 혁명뿐이다. 2001년 4월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비주류의 대표주자로서 '탈파벌'과 '개혁'을 내세운 고이즈미 준이치가 선출됐다. 자민당 총재선거는 지방당원이 참여하는 예비선거 141표, 중의원과 참의원이 참여하는 본선거 346표를 합산해 과반을 넘은 후보가 당선된다. 고이즈미 후보는 과반수를 웃도는 298표를 획득해 155표를 얻은 주류의 하시모토 류타로 후보를 누르고 결선투표 없이 총재로 당선됐다. 구태의연한 자민당 체질로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언동으로 일본 정가에서 '괴짜' 정치인'으로 불렸던 고이즈미가 당선된 것은 본선거에 앞서 지방당원을 상대로 실시한 예비선거에서 '대의원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방 대의원들이 계파 투표보다는 자민당을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방 당원들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무계파 차세대 정치인 고이즈미를 압도적인 지지로 자민당의 미래로 받아 들였다. 여기에 부흥해 고이즈미는 내각 인사에서 통상적인 파벌 안배 관행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간인과 여성각료에 대해 문호를 대폭 개방하는 등 '파벌 파괴'에 앞장섰다. 고이즈미의 이런 신선하고 창조적인 파괴 행위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자민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도전 정신과 창조적 파괴이다. 대의원들이 진정 한나라당을 사랑하고 정권재창출의 미래를 원한다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혐오스러운 정당으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사람, 이심-박심 거들먹이며 호가호위했던 사람, 정책과 비전없이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몰두했던 사람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확하고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김형준(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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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9 23:02

[금요칼럼] 갈등 조정 - 정진승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는 유일한 기관이지만 모든 국민들이 정부가 수립한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정부 정책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한 경우 추진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반대운동을 펼치고 선거에서는 투표를 통하여 의견을 제시한다.정부가 약 2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추진 중인 4대강개발계획의 예를 보자. 정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인당 연 강우량이 세계 평균의 약 13%(1/8)에 불과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강우량의 대부분이 장마기에 집중되어 빈번한 홍수를 유발하고 갈수기에는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메말라 강물은 수량 부족으로 오염되어 생태계의 파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강 개발을 통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 홍수방지와 수질개선을 달성하고 나아가 생태하천과 생태습지를 조성하여 국민들에게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 4대강개발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16개의 보를 설치, 준설하고 96개의 농업용 저수지를 증고하며 신규 댐을 2개 설치하는 과정에서 고용 창출을 통하여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소위 녹색성장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환경을 개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4대강개발계획은 우리가 1990년대 초부터 주장하여 왔던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개발(ESSD)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 학자, 시민단체,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대강개발계획이 사회적 갈등으로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비용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앞으로 4대강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룰 수가 있는가?4대강개발계획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크게 사업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반대와 계획의 결정과정에서 정당한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판단에서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물 수요량이 크게 증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량 확보를 위하여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수질개선을 위한 강바닥의 준설과 수중보의 건설은 오히려 수질오염의 유발과 생태계의 파괴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홍수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4대강의 본류에서 발생하지 않고 대부분이 상류와 지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차적인 문제점으로는 막대한 비용과 파급효과가 큰 4대강사업이 소수에 의하여 수립되면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다른 사업에 비하여 환경영향평가가 단기간에 걸쳐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정반대의 의견이 존재하는 이유는 관련 통계자료에 대한 상호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축적한 자료를 통하여 용수의 확보, 수질개선, 홍수의 방지 등을 위하여 4대강개발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통계에 의하면 4대강 개발계획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4대강 대책은 예산의 낭비이며 오히려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4대강 대책과 관련되어 정부가 보유한 기초통계와 반대론자들이 보유한 기초통계가 다르다면 양쪽은 앞으로도 계속 어느 통계가 옳은지에 대한 진실게임을 계속할 것이며 찬반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찬성과 반대 측은 용수의 현재 공급능력과 향후의 수요전망, 4대강의 수질오염 원인과 오염현황, 홍수의 원인과 피해상황 등에 관하여 보유하고 있는 통계와 작성방법을 공개하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초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4대강개발계획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하여 약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위원회는 중립적이고 갈등조정의 경험이 있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정부를 포함한 10개 단체 이내의 중요한 찬성과 반대 그룹 대표들이 참여하여 수자원 확보의 필요성, 홍수 방지, 수질개선 등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중요 주제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 만약 정부가 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존중하여 4대강개발계획의 내용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위원회의 성공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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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2 23:02

[금요칼럼] '응원의 집단성'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 전용배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이 태극기로 물들고 있을 때 독일국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대신 수천 명의 독일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들고 독일을 응원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국가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는 문화가 있다.반면에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일장기를 당당하게 내세운다.일본대표팀의 닉네임인 '울트라 니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대신 '무임승차'는 경계하는 편이다.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팬들의 구호는 '축구팬들만 경기장으로'였다.월드컵은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이지 국민을 위한 잔치는 아니라는 관점이다.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전.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대한민국은 잠들지 않았다.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이러한 상황이 이성적이냐,비이성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과연 우리나라 이외에서 가능하냐는 의문이 든다.도대체 우리 국민의 이러한 집단성의 원류는 어디에 있으며 실체는 무엇인가.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집단성은 한국의 문화이자 정체성이라고 본다.집단성은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필연적 위험성 때문에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선진적 문화로 귀결이 가능하기도 하다.월드컵의 이러한 집단적 응원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면 해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우리가 평소 축구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국가관이 남달라서 '조국 사랑'이 지극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군사독재를 통해 집단성과 획일성에 대한 부작용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해야 마땅한 형편이다.이러한 집단성과 획일성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한 역사를 생각하면,오히려 부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집단성이 우리문화의 깊숙한 곳에 축적되어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정대세가 북한국가를 들으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국민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아무리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도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필자는 최근 이러한 집단성이 갖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견학한 적이 있다.광주광역시에 있는 '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이 그 곳이다.이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복지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선진국의 양로원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인은 많은 이들과 함께 거주하고 즐기기를 원한다.'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은 하루에 이용객이 5천 명이며,수영장과 호텔급 목욕탕,점심은 천원을 받지만 체육관,당구장,공연장,물리치료실,헬스장,노래방,무료건강검진센터 그리고 기타 180여 개의 프로그램들은 무료 이용이다.한국에서 노인 5천 명이 매일 집단적으로 모이는 장소를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이러한 대형 노인건강 타운은 공공영역이 나서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건설이 불가능하다.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인들은 외로움 때문에라도 함께 있어야 한다. 대형 노인 건강타운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같이 집단적 문화를 선호하는 국가에서나 가능하다.매년 70억 원의 운영비는 광주광역시가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공의 역할이다.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금이 아깝지 않음을 느낀다"고 말했다.매일 이용하는 수천 명의 노인들은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새벽 3시 30분에 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마음의 기저에는 "나 외로우니,함께 가자.우리 이렇게 국가를 사랑하니,우리를 쳐다봐다오"라는 외침이 숨어 있다.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이 집단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궁극적인 역할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 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광장이나 거리를 열어주는 것만으로 국가나 자치단체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응원문화를 국가나 도시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현상보다는 왜 모이려고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삼삼오오의 서구사회와는 달리 동양의 농경문화는 집단성이 이미 문화에 내재화되어 있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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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25 23:02

[금요칼럼] 우뇌와 감성의 시대 - 이영탁

20세기까지의 인류역사가 좌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우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기능적인 면을 중시하는 소위 좌뇌 중심의 사고와 관행에 젖어있었다. 교육도 인간의 좌뇌를 개발하는데 치우쳐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지식근로자를 배출하였다. 나라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엄청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며 큰 그림을 보는 우뇌적 사고가 없이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갈수록 물질적 풍요가 확산되는 세상에서는 좌뇌적 사고보다 우뇌적 사고가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고 한다.예를 들어보자. 좌뇌적으로 판단하면 양초는 불을 밝히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전기의 보급이 보편화된 지금은 양초가 필요 없어졌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요즘 양초는 단순히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양초의 운명은 전기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라 이러한 용도 때문에 우리 곁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인간은 좌뇌와 우뇌를 통해 이성과 감성을 각각 작동시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는 이성적인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풍요로움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요즘은 그 양상이 다르다. 풍요의 시대에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아무리 잘 따져서 설명하더라도 시각적 또는 정신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좌뇌 중심의 역사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좌뇌형 사고에 운전석을 맡기고 우뇌적 사고를 조수석에 앉혔다면 이제는 우뇌에게도 이따금씩 운전대를 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소평가되고 무시되었던 우뇌형 재능이 도약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원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이 한 말로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이지만 요즘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차가운 머리가 지성 즉 냉철한 분석과 판단을 의미하고, 따뜻한 가슴이 감성 즉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만 얘기하고 가슴으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예를 들어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애기 낳기를 권유했다고 하자. 장차 다가올 인구 감소와 고령사회의 문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자식 낳기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머리로는 수긍할지 몰라도 가슴으로 느끼면서 감동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수도분할의 문제를 이해하면서도 정부시책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감성적인 판단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를 정리해 보자.첫째, 집단지성을 모아 활용해야 한다.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결론을 내도록 하자. 아무리 좋은 일도 독선적으로 처리하다보면 그르치고 만다. 이제는 영웅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다 현명하고 똑똑해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지혜를 잘 모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도 당해 낼 수가 없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막강한 힘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개개인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세상을 무서운 속도로 바꾸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꾸는 방식까지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사회적 지위의 높낮이가 별의미가 없다. 굵은 머리보다 긴 꼬리가 중요하게 되었다. 지도자 몇 사람의 의견보다는 각 분야에 산재해 있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위키노믹스(Wikinomics)는 인터넷시대의 일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여러 사람의 협동이 곧 그것이라고 한다. 이런 판에 아직도 정부나 기업에서 큰일을 구상할 때 몇몇이 모여 배타적으로 계획을 세우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일을 하기 전에 세상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둘째, 논리적 설명보다는 감성적 설득이 필요하다. 누가 몰라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반대하는 세상이다. 원래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진다는 식으로 시샘이 많은 우리들이다. 필요하고 옳은 일인데 왜 찬성하지 않느냐고 따져 봤자 별 소용이 없다. 마음이 움직이도록 처음부터 껴안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여러 사람이 동참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의 일처리가 아니고서는 되는 일이 없는 별난 세상이 되었다.셋째, 매사를 솔직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제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PC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으며, 신용카드 사용명세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 밖으로 나다니면 하루에 수십 번씩 감시카메라에 찍힌다.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투명해졌다. 이런 판에 누구 모르게 일을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이제 정부나 기업은 과거보다 더 투명하고 더 솔직하게 일해야 한다. 혼자서 남몰래 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가 워낙 발달해 있어 정부나 기업이 무엇을 하는지는 물론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의 솔직하고 투명한 일처리야 말로 국민이나 소비자의 이해와 협조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확보해 나가는 길이다.21세기는 우뇌적 사고가 크게 작용하는 감성의 시대다. 그동안 지속되어온 좌뇌 중심의 논리적 사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뇌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움직이자면 논리적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유를 들이대면서 따지기 보다는 마음을 움직여 내편을 만들어야 일이 성사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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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18 23:02

[금요칼럼] 배를 띄운 민심은 배를 엎기도 한다 - 김명곤

6.2 지방선거로 인해 정치권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막강한 여당에 의해 지배되던 중앙과 지방정부가 여당과 야당이 상호 공존 또는 대립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권의 갈등은 만만치 않게 증폭될 전망이다. 야당은 당장 내각총사퇴 요구와 함께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해 더욱 강한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야권과 함께 여권 내에서도 불거지고 있는 인적쇄신론과 국정운영 기조 변화 요구에 대해 거부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들의 앞날은 험난해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정책이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먼저 4대강 사업에 대해 민주당은 '4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규정하고 6월 국회에서부터 철회나 수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번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반대 의사를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현 정부의 핵심정책인 만큼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한다는 것은 정책의 기조가 붕괴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청와대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의 친이계도 4대강 사업을 전면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반대 여론이 거세다는 것을 이번 선거에서 인식한 만큼 개선할 부분은 수정하거나 보완한다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세종시 문제의 경우, 민주당 등 야권은 수정안을 폐기하고 원안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수정안을 고수하는 종전의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청와대의 입장에 비해 한나라당에서는 수정안 추진 동력이 다소 떨어지는 분위기다.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온다.이처럼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치력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통과 타협과 절충을 일상화해야 할 구조로 변한 것이다. 이 구조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오직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길뿐이다.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천안함 사건, 교육 정책 등의 시행 과정에서 민심을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매서운 비판을 받아 왔다. 한편 야권에 대해서는 대안 없이 반대만 하고 분열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의 민심이 높았다. 그러나 야권도 그러한 민심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았다.이번 선거는 그러한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민심의 매서운 경고이며 심판이었다. 정치권은 이 같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기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예전처럼 민심을 자신들 위주로 해석해서 불리한 민심에는 눈과 귀를 닫고, 유리한 민심만 귀에 담는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진정한 민심을 얻을 수 없다.2010년 올해 초에 정치권에서 자주 오르내린 사자성어로 '여민동락(與民同樂)', '상하동락(上下同樂)',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와 같은 말들이 있었다.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그 말들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정치권을 휩쓸었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민심과 함께 하지 않고(與民不同樂)', '권력자가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지 않으면(上下不同樂)' '배를 띄워준 민심이 언젠가는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권은 민심의 흐름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을 것이다. 말로는 언제나 민심을 들먹였지만, 그 민심이 얼마나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잘못 파악된 흐름인지 알고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고, 시중에 떠도는 말들도 진의를 알기 어렵고 ,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민심의 흐름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그 강물 속 보이지 않는 곳에 흐르고 있는 '바닥 민심'이 자신들이 띄워 놓은 배를 엎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 민심은 사심을 갖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해 올바르게 일을 할 정치 일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강물의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 바닥 민심을 찾아내어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일꾼을 원한다. 민심과 함께 웃고, 민심과 함께 울고, 민심과 함께 아파하는 일꾼을 원한다. 민심을 따르지 않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언제든 그 배를 뒤집어엎을 무서운 흐름이 존재하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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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11 23:02

[금요칼럼] 과학이 먹히지 않는 이유 - 이기호

시국이 시국인지라 요사인 점심식사 때마다 전쟁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내린다. 어떤 신문의 논설위원이란 사람은 우리의 공군 전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사흘 만 참아주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요지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확신(확신하는 자들은 당연히 고민이 없다)이 버젓이 신문지상에 오를내릴 만큼, 이즈음의 상황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6?25 트라우마를 하나둘 씩 꺼내, 다시 현재에 대입하고 있다. 대부분 보도연맹이니, 좌우익 사이 벌어진 피의 보복극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형, 이 형도 지난번 시국선언 때 서명하지 않았나? 그러면 백 프로 좌익으로 몰리겠네. 전쟁 나면 어디 살아남겠어? 에이, 어디 그런 일까지야, 웃으면서 말을 받았지만, 전쟁이라는 비이성적인 공간이 불러올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론 보다 이성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접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1950년대보다 정파 간의 갈등은 더 격해졌고, 그에 따른 적의는 더 날카로워졌고 첨예해졌다. 전선 자체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그 피해가 더 크면 컸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 설령 사흘 만에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몰고 올 여파는 무시무시한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이미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아 알고 있다.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러나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들. 그 안에서 최고권력자들을 뺀 나머지 국민들은 오로지 고통만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전쟁이 갖고 있는 진짜 본질이다. 사흘 만 참아달라는, '참아달라는' 어휘 속에 내장된 아무렇지도 않은 희생 강요 같은 것들.그래서 이즈음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하는 계기들이란, 대부분 우연적이고 국지적인 충돌들 때문이다(세계대전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가 발사한 총 한 발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런 우연과 충돌을 제어해주고 예방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자들의 몫일 텐데, 작금의 모습은 어쩐지 그 반대의 경우로만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어와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수뇌부들은 당당하고, 정부와 여당은 발 벗고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역전된 상황 때문에 국민은 의심하고 신빙성 없는 괴담들만 흉흉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처리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증거라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를 해도, 왜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참고로 얼마 전 기자협회에서 발표한 기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의 불신은 41%에 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사안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나는 작전에 실패한 군 수뇌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표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천안함 사태 직후 즉각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사건을 조사했다면 지금 같은 불신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 발표 시점을 지방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면, 그 신빙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이건 너무 속이 뻔해 보이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하질 못했고, 그래서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 더불어 이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왔던 '말 뒤집기'의 사례들이 겹쳐, 불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광범위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을 강조해도, '과학'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표 때문에 '세종시' 문제를 그렇게 뒤집었으니, 이번 역시 표 때문이지 않겠느냐, 이런 공식이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것이다.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선거 종료를 기점으로, 이 송곳 같은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지길, 그 마음 하나뿐이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불안을 조장하는 권력들이란, 대부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맞다.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은 국민만이 권력을 올곧게 감시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또한 권력자들만을 위한 전쟁을 막는, 유일한 국민의 길이기도 하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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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04 23:02

[금요칼럼] 누구를 찍을 것인가 - 전용배

체육 및 스포츠분야에 종사하면서 평소 필자는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력이 있음에도 좌절하는 경우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는 흔하디 흔하다. 세상이 꼭 실력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확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사파무림(邪派武林)'의 고수는 널려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 아무리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폄하해도, 실력이 있으면 벤치에 머물지 않는다. 관중석의 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경기력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사실이 그렇다. 스포츠분야는 보편적 규칙 때문에, 적어도 경기는 공정한 잣대가 적용된다고 믿고 있으며,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화두가 정치 또는 선거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6.2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누구를 찍어야 할지. 우리나라 선거에서, 공약을 찾아 비교분석하면서 누구의 공약이 가슴에 와 닿는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공약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북풍'과 '노풍'만 강조한다면,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민들 눈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권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나은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시?도 교육감과 교육의원도 선출해야 하는데, 후보난립과 정보 부족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유권자를 탓해야 할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혹자는 "선거란 결국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면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차악(次惡)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간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을까. 아무리 오십보백보라지만 그래도 보다 낳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유권자의 역할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선출직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동네 앞마당이라도 쓸어본 경험, 즉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해본 경험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남을 위해 삶의 일부분을 희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문성은 비례대표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 말고, 또 어떤 요소가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해답은 대한민국 헌법에 제대로 녹아 있다.집권여당이나 기존 시?도지사를 심판해야할 목적이라면, 그 당이 또는 기존 시?도지사 집권 시, 이전 집권세력이나 시?도지사 때와 비교하여 삶의 질이 나아졌는지, 개인 및 집단의 인권이 성장했는지, 경제발전 지표가 우수한지,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는지, 이념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는지, 복지가 나아졌는지, 교육 및 의료서비스가 진일보했는지,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되었는지, 과거보다 행복해졌는지 등, 대한민국 헌법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가치를 준거의 틀로 적용한다면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정권이든 또는 시?도지사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항시 공과 과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단지 이전에 비해 이러한 기준에서 10개 중 6~7개 정도의 영역에서 발전과 개선이 있었다면 다시 찍어줘도 무방하다. 그러나 5개 미만이라면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학교에서 같이 근무 중인 외국인 교수들이 가끔 의아해하곤 한다. 미국의 경우 기득권층과 비즈니스맨들은 대부분 공화당 쪽이고 흑인들 및 지식인층은 대부분 민주당 쪽인데 반해 한국은 자기 정체성과 상관없이 투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성숙도의 문제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죽기 직전에 "아직도 수천 명의 사회학자 중에서 공화당원을 한명도 확보하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회학자가 공화당원이 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유권자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후보의 정책보다 이미지에 의존하여 투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헌법에 내재된 가치를 떠올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올 수도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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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23:02

[금요칼럼] 속도의 충돌과 사고(思考)의 충돌 - 이영탁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2006)에서 <속도의 충돌>을 언급하고 있다. 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분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속도의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속도에 크게 못 미치는 곳으로 정부조직, 학교, 정치조직, 법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나 법률 분야의 변화속도가 제일 더딘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미국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점에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여기서 본인은 우리네가 지니고 있는 사고(思考)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세대 간, 계층 간에 형성된 인식이나 판단의 괴리는 엄청나다.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된 <속도의 충돌> 못지않게 <사고의 충돌>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로서 앞으로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의 발전을 현저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우선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우파 대 좌파 또는 보수 대 진보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이런 식의 분파는 존재하였다. 그러나 우리처럼 매사에 의견이 갈리고 서로를 헐뜯기만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각자의 주장을 조금씩 고쳐먹을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조건 옳고 상대방은 늘 문제가 있다는 발상에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세대차이만 해도 그렇다. 워낙 급속하게 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 세대와 연령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판단의 기준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같은 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있는 가족 간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데서 나아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세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그로 인한 폐해가 엄청난 것이 현실이다.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는가 하면 이것이 지나쳐 서로간의 대화채널이 중단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경제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우리가 더 심한 편이다.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사고나 인식의 격차가 우리 경제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기로 하자.첫째, 우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다양한 의견은 필수적이다. 아니 획일적인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좋다. 문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다. 이제부터라도 평소 나와 같지 않는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자.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자. 설사 반대할 때 반대하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사사건건 시비에 휘말리는 수밖에 없다.둘째, 여건이 달라진 만큼 사고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그것도 정보화시대 50년 역사가 이제 곧 막을 내리고 후기정보화시대로 진입한다고 한다. 이런 판에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사고나 논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옛날 얘기만 되풀이하는 셈이다. 아무리 건강에 주의해도 결국은 늙어 죽는 것이 인간인 것처럼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현실적으로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한테는 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스스로 모순을 저지르는 셈이지만 그만큼 여건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셋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원칙이다. 여기서 원칙은 기본에 관한 것이다. '정직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주변의 약한 사람을 돕고 --- ' 등등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원칙은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기본적인 진리이다. 또한 원칙은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지는 인간행동의 지침이다. 이러한 원칙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사람은 보다 완성된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이렇게 볼 때 <속도의 충돌> 이상으로 <사고의 충돌>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해내는 방안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어렵지만 이것도 사회지도층부터 솔선할 일이다. 남보다 먼저 다양성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고, 원칙에 충실토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계층 간의 사고나 인식의 격차를 극복함으로써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갉아먹는 일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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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1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무엇인가? - 김명곤

천안함의 연돌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고, 해저의 모래와 자갈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침몰원인이 어뢰의 버블제트 폭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설명되어야 할 의문점들이 너무도 많다.먼저 생존 장병 중에 버블제트로 인한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고, 물에 젖은 사람도 없고, 죽은 물고기떼와 같은 폭발 흔적이 없는 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버블제트로 인한 폭발이라면 사고 때 관측된 인공지진파가 시차를 두고 두 번 나타나야 하는데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 또 폭발이 있었다면 화상이나 고막파열이나 장기파열 같은 상처가 있어야 되는데 희생자들의 시신 상태나 생존자들 중 그런 상처가 한 명도 없는 점, 함미 바닥에 배가 긁힐 때 나타나는 스크래치의 흔적이 나타난 점, 스크류의 날이 안쪽으로 크게 휘어있는 점, 인양할 때 함미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샌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사고 다음날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공개한 작전상황도에 보면 '최초 좌초 6.4'라고 표기돼 있는데, 해군 관계자는 그 글씨가 유족 가운데 한 명이 작전상황도를 뺏어가 임의로 써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가 왜 그런 중대한 자료에 멋대로 그런 글씨를 썼는지, 또 군은 왜 그런 글씨가 써진 지도를 공개했는지도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이 의문들은 군에서 몇 가지 기록만 공개하면 금방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TOD 영상 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9시 4분 무렵에서 9시 24분 무렵까지의 20분간만 영상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TOD 담당 병사의 근무태만이니 그를 불러서 확인해야 한다. 다음은 교신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사고 당일 9시 15분에서 22분까지는 군 통신망을 통해서 교신한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또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기록도 공개해서 천안함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인양된 선체를 공개해야 한다.이런 증거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조사단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듯하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근처에서 터진 어뢰가 TNT보다 위력이 강한 고폭약인 'RDX'인 것으로 보고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 공격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이고, 대다수 언론들도 그런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게다가 조사에 대한 모든 사항이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으니 국민들은 그저 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불필요한 혼선을 막기 위해 일부는 보안에 붙인다고 하더라도 조사단의 구성이나 조사 과정이나 최소한의 진행 상황은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온 국민에게 슬픔을 안겨준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 조사를 하면서 그토록 철저히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신을 자초하는 처사다. 보안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중요한 사항들이 비밀에 싸여 있으니 온갖 억측과 가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희생 장병들을 위한 영결식에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세력을 끝까지 찾아내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접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통을 준 세력'을 북한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세력은 군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해 할 수 없는 보고 지연과 구조 과정의 난맥상과 비밀에 싸인 조사과정까지 그 무엇 하나 고통을 주지 않는 부분이 없다. 명백하게 군의 위기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고, 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군은 자신들의 문제를 반성하기보다 북한에 책임전가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만일 북한이 버블제트 어뢰를 발사해서 침몰한 것이라면 그 또한 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잠수정이 한미훈련중인데도 백령도 깊숙이 침투해서, 수중음향탐지기인 소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빠르게 이동 중인 천안함을 버블제트 어뢰를 쏘아 명중시킨 후 몰래 북으로 귀환했다는 얘긴데 참으로 신출귀몰한 북의 침입에 대해 우리 해군은 왜 그토록 무기력했단 말인가? 막대한 국방비를 써서 최신예 무기들로 무장한 우리 해군이 그토록 무능하고 직무에 태만했다는 얘긴가? 만약 그렇다면 북한에 비해 그토록 전력이 뒤떨어진 군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살란 말인가? 이처럼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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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14 23:02

[금요칼럼] 토마스가 묻는다 - 이기호

그러니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만약 미국 애리조나에 토마스나 보그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한가롭게 거실에서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즈를 읽고 있던 토마스는 별 해괴망측한 기사 하나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국제 면에 나온 그 기사에는 아시아에 있는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2년에 환수하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몇 년 더 미국이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적혀 있다. 토마스는 잠시 생각해본다. 왜 남의 나라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미국이 갖고 있지? 가난한 나란가? 아니, 분명 한국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컴퓨터와, 옆 집 더글라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만든 나라가 맞는데, 거 참 이상하네? 이 나라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왜 자신들의 주권을 남에게 받아달라고 이렇게 생떼를 쓰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추신수는 그래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나?정말이지,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굳이 토마스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고, 고개를 절로 수그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뿐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이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부끄럼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다수의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천안함 사태가 북한측의 소행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처럼 보복 작전을 펼치는 것에 온 국민이 합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보복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렇게 손쉽게 오케이, 보복 작전의 승인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그걸 믿는다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원고지를 펼치고 동시 스무 편을 줄줄 쓸 수 있을 만큼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 천안함 사태 하나만 두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승인해줄 거라곤 믿진 않을 것이다(미국의 대 한국 투자자본, 교역규모, 대 중국 관계 등을 생각해보면, 대번에 계산은 나온다. 친구가 기분 나쁘다고 누굴 함께 때려달라고 했을 때, 같이 싸움에 나설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물론 조폭 빼곤). 설사,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 군대가 단독 작전을 감행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당연 한미군사협정 위반이라며 발을 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한데,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주장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사람들은 모두 반어와 모순을 즐기는 전위예술가들이란 말인가?군 수뇌부들은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들이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46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그들은 용사(勇士)가 아닌, 희생자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 또한 언제든 그런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군 수뇌부들은 그런 희생자들의 제단 앞에,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어떻게 그리 허술하게 사고를 당해야만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정부측에도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좌파정부라고 부르는 지난 정권에서는 해마다 9%에 가까운 국방예산이 증액되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과연 국방예산이 얼마씩 증액되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권인지, 4대강 정비인지, 그것에 대한 대답도 듣고 싶다. 왜 우리의 함선 침몰 경위를 국민보다 앞서,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고 싶은 것이다.그리고, 다시 애리조나에 사는 토마스도 묻는다. 신문 기사를 보고, 한국의 역사를 구글로 훑어본 토마스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과연 돈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오랜 식민 근성 때문인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거 참 이상한 나라인 건 마찬가지다. 토마스의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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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07 23:02

[금요칼럼] 월드컵 단독중계냐 교차중계냐 - 전용배

월드컵이 한 달 정도 밖에 남지않았지만 SBS의 월드컵 독점중계에 따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SBS는 지난 2006년 8월 IOC와 FIFA로부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개의 올림픽과 2개의 월드컵 중계권료를 각각 7250만 달러, 1억4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고가에 사들였다. KBS와 MBC의 제소에서 보듯이 그 파장이 작지 않다. 먼저 법리적인 문제부터 살펴보면, 보편적 시청권이 제기될 수 있다.보편적 시청권이란 "방송법 제 76조 및 동법 시행령 60조의3에 따라 국민관심행사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 수단을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말한다. 즉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민 전체 가구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미 방송통신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밝혔듯이 큰 문제는 없다. 차라리 방송법 76조에 나와 있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와 중계방송권자 및 그 대리인에게 재판매할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SBS가 성실히 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물론, 우리나라도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과거처럼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할 이유는 없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차지하고 지구상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지상파 여러 채널이 동시에 중계하고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을 SBS가 단독 중계했음에도, 방송중계시간은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긴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국민적 관심사가 큰 스포츠이벤트이긴 하지만 '우민국가'도 아니고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KBS, MBC, SBS가 모두 월드컵을 동시 중계하는 것은 전파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월드컵과 관련해서 SBS만의 단독중계는 미증유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일본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NHK와 5개 민영방송이 가입한 '재팬 컨소시엄'이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중계권 협상에서 창구 역할을 한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공익성을 고려하여 NHK가 협상을 주도하고 중계방송도 중복되지 않도록 NHK가 조정한다. 수신료로 운영하는 NHK가 중계권료의 50~60%를 내고 주도권을 쥐며, 경기별로 방송사들이 추첨을 해 중복 방송을 피한다.유럽도 올림픽의 경우에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여 '유럽방송 연맹'이란 단일 창구를 만든다. 또한 IOC가 보편적 접근권을 내세워 올림픽 경기의 95% 이상을 무료로 방송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상파의 협조 없이 케이블방송이 높은 값을 주고 중계권을 사들일 수도 없다. 다만 월드컵 중계의 경우 이탈리아, 영국 등은 미국처럼 방송사들이 따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보편적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해 유료 채널이 독점 중계권을 따더라도, 주요 경기는 지상파로도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두고 각 방송사들이 철저히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 취하는 방식이 그나마 적합한 모델이다. 공영방송의 주도아래 방송 3사가 나누어서 중계하는 것이 모양이 가장 이상적이다.SBS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동계올림픽을 재전송하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해 논란이 있었는데,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민적 관심 행사에 대한 재전송 대가를 별도로 요구할 경우 이는 결국 소비자에 대한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 시청권' 개념과 배치될 수 있다. 또한 케이블 등 유료방송 사업자와 갈등으로 올림픽, 월드컵의 재전송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SBS는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고가를 들여 확보한 SBS는 이미 스포츠중계권에 관한한 기득권이다. 지상파 3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교차중계는 필요하다. 미래 스포츠시장을 예견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 3사가 Korean Pool을 형성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이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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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30 23:02

[금요칼럼] 미래인의 시각으로 본 도요타 사태 - 이영탁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요타 자동차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사업 확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품질관리가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 일어난 위기관리 실패에서도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늑장 대응, 사실 부인, 뒤늦은 사과 등 위기 발생 초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도요타의 내부경영 잘못이 오늘의 도요타 사태를 불러왔다고 보는 관점이다. 과연 이러한 진단이 옳을까? 이 엄청난 도요타 사태가 회사 내부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에 문제가 없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을까? 문제를 너무 좁게 보고 단순화시킨 단견적인 시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매사가 그렇듯 어떤 문제든 과거적인 시각보다는 미래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과거적인 시각으로 오늘의 문제를 본다면 그 해법도 과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 가지고서는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다. 미래적인 시각으로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를 보면 그 요체는 이러하다.첫째, 도요타는 자동차 회사이며 제조업이다. 따라서 자동차와 제조업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자동차를 단순히 수송수단이나 제조업 제품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40%가 IT제품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송수단이 아니다. 이제 자동차는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이요, 휴식공간이다. 그 결과 자동차 제조와 IT기술을 융합하여 자동차를 '탈것'에서 '움직이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개념이 탄생하고 있다. 차가 사무실이 되어 이메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금융거래를 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도 종래와 같이 자동차는 제조업이요, 제조업은 품질관리 위주로 경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품질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옛날식이다. 일본과 같이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제조업 경쟁력을 지속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어렵거든 차라리 제조업에서 손을 떼라고 하고 싶다.둘째, 최근의 일본 경제를 살펴보라. 1990년대 초반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20년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그 와중에 과거에 잘 나가던 소니가 그 위상이 많이 떨어졌고 일본항공은 법정관리로 들어가 주식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니와 일본항공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보면 지금 일본 경제사회가 총체적으로 숫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기획기사로 '일본의 악몽: 재정파탄 시나리오'를 실은 바 있다. 이 기사는 20xx년 7월 19일 밤 9시 나카조에 유타카(가명) 일본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은 일본 경제의 몰락 가능성이 90%이상 된다고 까지 경고했다.셋째, 도요타 문제나 일본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도요타와 경쟁하는 우리 자동차 회사는 과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는가. 우리 대기업이 매년 요구하는 거래 중소기업의 가격조건은 너무도 문제가 많다고 한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청기업을 극한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 최근 일본경제의 부진이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며칠 전 노무라 증권에서는 지금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기 전 1980년대 후반의 일본경제와 너무도 닮았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일이 앞으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또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어떤 확실한 준비라도 하고 있는가. 우리도 그동안 급속하게 떨어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2020년이 오기 전에 경제활동인구에 이어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단계로 접어드는데.결론적으로 도요타 문제는 도요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의 문제요, 일본 전체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동시에 도요타 문제는 곧 우리 자동차업계의 문제,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것이 곧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미래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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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23 23:02

[금요칼럼] 20대의 정치참여, 희망의 싹을 본다 - 김명곤

6월 2일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20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치부되어 왔다. 정치보다는 텔레비전의 오락물이나 스포츠나 명품 핸드백에 열광하는 세대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 물론 아직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20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70년대나 80년대의 젊은이들을 휩쓸었던 변화와 개혁의 정치적 열풍이 다시 불기를 기대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을 맞아 터져 나오기 시작한 20대들의 발언과 움직임은 앞으로 커다란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낼 것으로 보인다.먼저 '유권자 운동'을 통해서 20대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대학생연합, 시민주권 대학생모임, 대학생 YMCA, 원불교대학생연합 등은 가칭 '2010 지방선거 대학생유권자연대'를 결성하고 전국의 대학 단체 등에 공동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20대를 위한 정책을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고,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들을 캠퍼스에 초청해 청년정책 토론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20대의 정책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 지 대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표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정책을 수용한 정당이나 후보들과는 협약식을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또 각 대학들이 위치한 지역으로 전입신고를 해서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대학에 대한 정책을 내놓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고, 이를 통해 '학자금 이자조례 제정'이나 '시도립 기숙사 건립' 등의 정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연세대학교가 위치한 서대문구 구청장 후보와 서울시장에게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로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할 예정이다. 최근 대학가 주변의 임대료가 급등해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터에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학생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올 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30%선에 머물러왔던 20대의 투표율을 '88만원 세대'라는 호칭에 맞게 88%까지 높이겠다는 당찬 계획을 내걸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투표참여를 선언하는 30만 댓글운동을 벌이고, '대학생 정치참여 권리선언 대회'도 열고, 전입신고를 통해 선거구 내 대학생 유권자의 수를 높이고, 전국 주요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할 계획이다.이런 유권자 운동뿐만이 아니라 직접 선거에 출마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방선거에 직접 출사표를 낸 20대의 선언이 줄을 잇고 있어 4월 11일 현재까지 선관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20대 후보자는 26명이다. 이처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20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 선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그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정치에 실망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정치를 바라봤다. 그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방황하고 자포자기하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지금도 잃어가고 있다.그런데 그들이 방황이나 자포자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스스로 고대를 퇴교한 김예슬양의 비통하면서도 울분과 절규에 가득 찬 대자보에 대학생들의 관심이 폭발되고 뒤따라서 자퇴 선언을 하는 학생들이 나타난 것을 보면 현재 20대들의 분위기가 어떠한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이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절규를 넘어서서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세대뿐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선거는 그들의 권익과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정책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사회변혁이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자체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바꾸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법을 찾고자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뭉친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개혁을 시작하고 자신들의 현실을 바꿔내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이 천둥이 되어 6월의 선거를 통해 꿈과 희망의 미래를 개척해가길 희망한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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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16 23:02

[금요칼럼] 유성매직 그리고 청테이프 - 이기호

얼마 전, 어느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대화의 대부분은 오직 하나,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압도적인 품질을 가졌다는 말부터, 와이파이(Wi-Fi)가 되는 카페와 그렇지 못한 카페, 앱 스토어에서 구입한 기상천외한 프로그램까지,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꺼내 놓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속보들을 중간중간, 충실하게 전해 주었다. 평소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이런, 이젠 정말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렸구나. 속으론 그렇게 찔끔, 했으면서도 겉으론 계속 어디선가 주워들은 '4G 스마트폰' 운운 하면서 아는 체를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면서도 한편, 그들의 놀랄 만한 정보 접근력과 속도에 감탄했고, 그것이 못내 부럽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활력이고, 그들만의 세대의식이자 특권이겠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게 인정하기도 했었다.그런 인정이 다시 뒤바뀐 건, 지난 달 서울 어느 사립대 재학생인 김예슬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밝힌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공개 자퇴서를 읽게 된 이후부터였다. 내가 유심히 본 건 그녀의 자퇴서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글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왜 많고 많은 형식 중에서도 굳이 '대자보'란 구세대의 대화창을 사용했을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나, 트위터, 싸이의 다이어리도 아닌,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자보를 이용했을까? 그것이 나는 궁금했고, 며칠 동안 계속 그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내멋대로,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공개 자퇴서'를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자보 보단 더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그녀의 글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사실 뻔하다. 그녀를 옹호하는 댓글들과,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들, 양비론의 댓글들과, 농담의 댓글들이 속속 그 아래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댓글과 댓글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일어났을 것이며, 홈페이지 관리자는 이 글을 삭제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본 김예슬 학생 또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들이 슬몃슬몃 들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비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문제만은 아니고, 트위터나 싸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대자보'를 이용했다. 그것은 돌아갈 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말이 아닌 어떤 행동의 의미가 더 컸다. 쉽게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행동.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이십대 청춘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과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들을 보란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 의견들만 보면 과연 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무관한, 자신의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한데, 문제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치열하게 담론은 오고 가지만, 언제나 담론은 담론 수준에서만 머물고 만다.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행동으로, 정당한 투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비아냥거림으로, 또 다른 담론으로만 맞설 뿐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참으로 고마운 현상이 아닐 수 없는데, 그저 귀만 닫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자신들의 뜻대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안들이, 왜 수많은 비판들 속에서도 꿋꿋이, 아무런 지장없이 지속되고 있는가는 아마도 그런 사정들 때문일 것이다.대자보를 작성한 김예슬 학생은 자신의 글 말미에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라고 썼다. 그녀는 그 문장을 유성매직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을 청테이프에 의지해 게시판에 붙였다. 정보와 속도는 지식을 쌓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성까지는 담보하진 못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지성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더 무서운 포기가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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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9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 전용배

천안함이 침몰된 지 일주일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희망적인 소식이 없는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원인규명도 중요하지만 역시 생사확인이 우선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번사태를 보며 아쉬운 것은 군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황브리핑이나 사건개요는 군 최고책임자 또는 관련 참모총장이 직접 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초기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듯이 보이다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슬그머니 군에 미루고, 군도 대변인만 통해 짧게 발표하고 통제하기에만 바쁘다. 이대통령만 하더라도 처음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사실이 지난 26일 밤 전해지자 청와대에 비상을 걸어 지하벙커에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이후에도 몇 번 더 개최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적절한 조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교시'만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천안함 침몰사건은 처음부터 군이 전권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고 관할해야할 업무이자 영역이다. 사건이후 하루 이틀정도는 정리가 되지 않아 '상부지시'를 기다린다거나, 대응에 신중을 기할 수 있지만, 정보공개 및 상황진척에 대한 브리핑이 너무 더디다. 생존자들에 대한 언론취재 및 기자회견 금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안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공개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군과 관련된 문제는 군이 제일 전문가 집단 아닌가.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인 안보관계 장관회의 면면을 보라. 누가 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일단 대통령부터 총리, 국정원장, 대통령실장, 정책실장까지 군 면제이다. 군 면제 자체가 문제된다는 것이 아니라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은 있어도 직접해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필자도 군 면제인 관계로 평소 군과 관련된 문제나 언급은 자제하는 편이다. 이유는 한 가지, 아무리 기준에 미달되었다고 하더라도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개인적으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국민의 공복(公僕) 즉 공공영역 및 정치영역에 서비스하는 것은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얼마 전 "내가 제일보기 역겨운 모습은 자신은 병역을 안 한 공직자들이 검은 옷 입고 국립묘지에 가서 엄숙한 표정 지으면서 분향하는 꼴"이라며, "그것이 내가 현 정권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무지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병역면제인 경우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던가"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현 정부의 고위층은 군대 조직의 원칙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대한민국 군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후로는 적어도 '정치군인'의 오명은 벗어났다. 그동안 국민의 신뢰도 많이 회복하였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서도 정치적인 고려는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군대가 정치적인 역학관계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던, 기뢰 때문이던, 내부폭발이던 그 후폭풍은 결국 군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야 이해관계를 따져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뒤로 빠질 것이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책임과 권한에는 동시성(同時性)과 상관성(相關性)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선진국에서 고위직에 오를수록 출근시간이 빠르고 퇴근이 늦은 이유도 권한에 따른 책임 때문이다. 천암함 침몰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은 군에 있기 때문에 사건처리에 대한 집행권한도 함께 부여되어야 한다. 청와대 '지령'을 받아 소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무엇이 두려워 언론을 피하고, 생존자들의 기자회견을 통제하고 회피하기 급급한지 알 수 없다.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서야 한다. 언론 앞에 쩔쩔매는 대변인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매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이번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군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집단도 없다. 또한 이번사태는 군의 독립적 임무 수행능력과 역량을 검증 받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다. 어깨에 달린 별이 '상부눈치'보고 얻은 별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다. 국민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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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2 23:02

[금요칼럼] 인구감소와 경제학 - 이영탁

인구문제는 미래예측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구의 미래는 미래를 이해하는데 있어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인구에 관한 한 통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앞으로는 인구규모 자체가 그 나라의 경제활동에 갈수록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인구와 질 높은 인적자원을 가진 인도가 미래에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얼마 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월등하게 많은 인구에 근거하는 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가? 한국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즉 노동력은 그보다 앞서 2016년을 고비로 하여 감소한다고 한다.우리나라 인구의 미래는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로 요약할 수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출산율이 낮아 전체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곧 앞으로 젊은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가져 올 결과는? 다시 말해 인구가 줄어들면 그 나라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가 줄면 전체 구매력이 줄어들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력의 감소는 생산 활동의 둔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한마디로 인구가 줄면 노동공급도 줄고 시장에서의 구매력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인구감소는 경제의 양면 즉 수요와 공급, 모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경제활동 자체가 둔화될 소지가 크다.이런 말이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개미가 달아나고, 인구가 줄어들기 10년 전부터 기업이 달아난다.' 인구 감소가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웃 일본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일찍이 1990년대 초부터 노동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문제는 잃어버린 10년이 벌써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발전을 견인하였던 경제가 어려워지자 일본 사회 전체가 침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우리가 지금 바짝 긴장을 하고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와 일본은 다르다고 한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그러한 이유가 우리를 안심해도 좋다고까지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의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지금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곧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의 시작을 한국전쟁 이후 1955년으로 본다. 이때부터 베이비붐이 일어나 연간 인구가 100만 명 이상씩 증가되었다. 195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지금 만 55세이다. 이제 곧 은퇴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 본격적인 은퇴는 이들이 만 60세가 되는 2015년경에 나타날 것이다. 이때가 되면 경제 전반의 소비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원래 사람은 일생을 통틀어 볼 때 50세 전후에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수입도 많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큰 집에 살면서 소비지출도 커진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가계의 수입도 줄어들고 동시에 소비도 감소한다.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면서 독립하게 되고, 가구주도 일생의 절정기를 지난다. 그 이후 가구주의 연령이 60대로 넘어가 은퇴를 하고 나면 소비규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실제로 60대 가구의 소비규모는 40대 가구의 62%, 그리고 50대 가구의 6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에도 양면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때는 모두가 부러워했고 우리도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달성하고 나서는 고민이 많다. 심지어 한국이 세계에서 인구 소멸 1호국이 된다고까지 얘기되고 있다. 다이내믹하고 별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라고 해서 풀지 못할 것도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웃 일본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한국인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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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26 23:02

[금요칼럼] '88만원세대'의 안타까운 몸부림 - 김명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에 태어난 'G세대(글로벌세대)'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하고,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로 다져진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한 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캐나다 밴쿠버의 동계올림픽 스타들이 보여주듯 재기발랄하면서도 구김살 없는 건강함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이미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주류에 편입된 젊은이들도 있다.반면, G세대의 몇 년 선배뻘이 되는 19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들이 중학생 때 겪은 '외환위기'는 부모의 직업을 위기에 빠뜨렸고, 대학생 때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신들의 취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한때 'N세대(정보화 세대)'라고 불리며 게임과 인터넷과 핸드폰과 MP3의 주구매자였던 그들은 이제 20대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뜻하는 '88만원 세대'가 되고 말았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그들의 가정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기업은 신규채용을 줄였고, 경제 양극화는 취업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좌우하던 시절은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은 졸업장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스펙'이 있어야 한다. '학점 4.0 이상, 토익 900점 이상, 어학연수.....'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스팩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스펙을 갖추려면 돈이 든다. '토익시험 응시료, 영어 학원이나 어학연수 수업료, 취업 잘되는 학과 복수전공을 위해 대학을 더 다닐 경우 지불해야 할 추가등록금....' 그 많은 돈을 누가 내는가? 부모들의 등이 휜다. 좋은 스펙 갖추도록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모에게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비슷한 실력의 젊은이 사이에서 취업의 성패가 갈린다.게다가 정부가 등록금 지원은 갈수록 줄이고 학자금 대출을 확대해서 많은 대졸자가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온다. 빚을 갚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란 꼬리표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규직 취업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개인은 '업그레이드'되고 사회 전체는 '다운그레이드' 됐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일자리를 줄이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모든 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하다. 실업은 점점 심화되고 확대될 것이며, 고용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퇴직이 빨라진 탓에 '아직 젊은',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실직 부모'들을 부양할 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이런 부담과 힘겨운 경쟁체제에 자신을 잃은 젊은이 중 일부는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관심보다 취미와 패션 등 자기만족을 제공해주는 일에 몰두한다. 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집착하는 '오타꾸'가 일본에 생겨나더니 점점 우리나라에까지 번지고 있다. 또 친구나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고립적이고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욕을 상실한 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프리터' 족도 늘어나고 있다.MBC TV의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평소 아끼던 구두와 옷까지 전부 내다판다. 또 새벽부터 취직을 위해 뛰면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다. 그 드라마는 취직에 시달리는 88세대의 애환을 황정음을 통해 보여준다.얼마 전, '명문대'인 고려대 경영학과의 3학년 학생이었던(?) 김예슬양은 불안한 대학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하고 말았다. 그녀의 조리정연하면서도 비통함이 가득한 글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았다."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혹독한 경쟁에 시달리다 비좁은 사회 진출 관문에 끼인 우리의 청년들에게 탈출구는 없는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고 이처럼 자본주의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안타깝게 허덕여야 하는가? 세계를 향해 드높은 꿈을 펼치고 훨훨 날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신나게 그 꿈을 펼칠 기회를 되찾기는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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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9 23:02

[금요칼럼] 자전거 여행이냐, 급식이냐 - 이기호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건설 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는데,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이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였다.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양 진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렸다. 물론 나 같은 전세 세입자에겐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문제는 역시 일의 선후가 될 터인데,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에 따라서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주차 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내 나름대로의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세입자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떠날 공간이니까,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잠잠하기를 바라는, 여행자와도 흡사한 태도.지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중에는 '자전거도로' 건설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총 1천728㎞ 길이로 건설될 예정인 자전거도로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이를 각 지자체의 자전거도로와 연계시켜 권역별 테마노선으로 개발할 계획까지 갖고 있는 모양이다. 한데, 이 '자전거도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 목적을 '레저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강'과 '자전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생활'보다는 '여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 목적 중 하나가 '관광용'임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로가 완공된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의 시선 그대로 '레저용'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다른 사안들보다 더 긴급한,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일보다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전국 강가 옆에 까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어떤 가치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그것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게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답변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은 먹고 나면 소화가 되어버리는, 별 다른 티도 나지 않는 급식보다야, 한 번 짓고 나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 건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거기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역점 사업들이 대부분 2012년을 완성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든다. '포퓰리즘' 정권이란 바로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기간만 생각하는 것, 눈에 확 띄는 사업만 하는 것. 전세 세입자와도 같은 시선 왜 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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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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