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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용비어천가 유감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언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추켜세우기와 노골적지지, 반대로 상대 후보에 대한 깎아내리기와 흠집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흔히 권력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개에 비유하곤 한다. 여기에는 모두 4마리 개의 유형이 있다. 먼저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 권력 감시를 넘어 사사건건 권력을 물어뜯어 권력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공격견(attack dog), 이들 개와는 반대로 권력의 총애를 받기 위해 꼬리치는 애완견(lap dog), 권력에 꼬리치지는 않으나 그저 순종하고 잘 따르는 안내견(guide dog) 등이 있다. 공격견은 자칫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며, 안내견과 애완견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권력을 건전하게 비판, 감시하는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 대체로 지난 1960년대까지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파수견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1970년대 유신정권을 거쳐 5공 정권시대에는 애완견 역할로 전락하였으며, 6공화국과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에는 안내견 역할이 강했던 게 우리 언론이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보수신문들은 파수견을 넘어 공격견으로 돌변해 정부를 끊임없이 물어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격견부터 애완견까지 네 가지 유형의 모든 개들이 혼재하여 존재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우리 신문과 방송들은 새로운 대통령인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힘차게 합창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불굴의 용기와 끈기로 이겨낸 일로 시작하여,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투옥됐을 정도로 투철한 민주의식과 애국심을 갖고 있으며,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장황하게 보도하였다. 또한 BBK사건,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그리고 자녀위장취업 등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과거 10년 동안 침체되었던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려놓을 적임자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였다. 심지어 보수신문의 한 언론인은 칼럼을 통해 "요즘 이 나라에는 어떤 희망과 설렘이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는 무언가 안심할 수 있고, 잘 될 것 같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나누고...마치 함박눈이 내린 아침 같다...나라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대감이 온 땅에 퍼져있다."고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의 등극을 온몸으로 축하한 이 언론인은 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과연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09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자 보수언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창피주기와 물어뜯기가 계속되었는데, 2009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절정을 이르게 된다.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 정당 대변인의 논평이 아닌 자칭 이 나라 최고의 정론지의 대표 언론인의 글치고는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공격적이다. 결국 노전 대통령은 한 달 후에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 만다. 일찍이 나폴레옹 황제는 "천개의 총검 보다 단 4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에도 꼭 맞는 말이다. 언론과 권력이 유착되어서도 안 되지만 사사건건 서로 물어뜯어서도 안 된다. 권력과 언론은 항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언론의 파수견 역할이다. 이제라도 우리 언론은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 객관성으로 돌아가 정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는 올바른 저널리즘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한 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언론은 새로운 당선자에게 과연 어떤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동원하여 또 다른 용비어천가를 목 놓아 불러재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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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6 23:02

선(line)과 원(circle)

대우주를 뜻하는 '매크로코즘'과 미세 우주를 의미하는 '마이크로코즘'.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에서 나온 이 두 단어는 우주는 가장 큰 단위에서부터 아주 작은 단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양식이 반복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공통된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다. 큰 흐름을 통해 작은 세상을 알게 되고 작은 데서 의미를 찾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익히고,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 따라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한다. 사회적으로는 더 높은 지위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나 이는 사회적 성공에 불과할 뿐 개인적 성공을 가늠하는 표준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은 아예 그 모양부터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선(line)'으로 본다면 개인적 성공은 '원(circle)'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개인적 성공은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 성공은 물질적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삶의 흐름 안에서 무엇을 깨치고 행동으로 옮긴 후 시간이 경과되면 인간본성이나 다른 요소로 인해 그 깨침에 갈등이나 의문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그 깨침은 몸에 배게 된다. 깨침의 직전을 시발점으로, 그리고 시간을 따라 '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원'을 한 번 완주했다고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한 깨침이 몸에 배거나 아니거나 일단 시행착오를 거친 후 다시 얻는 깨침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아름답지만 어려운 시를 낭독할 때 한 번 읽은 것과 여러 번 읽은 후의 이해도가 다르고 또 젊을 때와 나이가 들어 읽은 후 영감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시발점에 도달했다고는 보이나 실제로 각도를 달리 해 보면 도달점은 시발점보다 더 깊은 곳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필자가 말하는 '원'은 이차원 현실에서만 존재하는 원이 아니라 무한차원에서 존재 가능한 계속되는 '원'인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 성공은 깨침을 원동력으로 '원'을 깊이 탐구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을 가늠하는 비물질적 기준은 지속적인 깨침을 통해 얻는 자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엄청난 '역설'이 생긴다. 인간은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동물과 차별화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본능을 중요시하는 사회디자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적 성공의 동기를 각각 생존과 깨침에서 얻는 자유라고 한다면 그중 생존은 본능에 속하고 깨침은 이성에 속한다. 물론, 사람의 본능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개개인들에게 조금 더 여유를 줄 수 있는 디자인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우수한 과학자와 음악가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과학자가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지금 자기가 연구 중인 이론을 논한다면 음악가는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어할 것이다. 반대로 음악가가 전문 용어를 구사하며 음악의 섬세한 뉘앙스를 설명하려 한다면 과학자 역시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의 내용은 이성적일지 모르나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주 원시적이며 본능적으로 변하게 된다. 맛있는 수프를 함께 즐기려면 공통되는 그릇을 찾아야 한다.'도(道)'는 '통(通)'한다 는 표현처럼 '매크로코즘'과 '마이크로코즘' 역시 하나를 터득하면 만사에 능통하게 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원'이다. '원'의 모양이 다차원적으로 일그러져 있을수록 이 원리를 터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를 터득한 사람들은 항시 변하는 우주와 함께 자기 특유의 '원'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게 가능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사회적 성공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로서는 '선' 만 보일 뿐, '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원'은 지금 어떤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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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9 23:02

필주(筆誅)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지난달 17일은 유신독재가 선포된 40주년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10월 26일은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날이자 유신독재가 끝난 지 3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40년과 3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그 긴 세월에 우리의 삶이 보람된 생애였다는 아무런 징표도 없으니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후퇴만 하고 있는데….4·19를 고등학교 때 겪었고, 대학 때는 6·3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날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 '신망 잃은 박 정권 하야를 권고한다'는 시위로 학생의 몸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오래지 않아 풀려났으나, 한·일협정 비준에 반대하고 월남파병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가 두 번째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몸이 풀려나오자 입대 영장을 받고 강원도 전방에서 3년 세월을 보냈다. 제대 후 다시 대학생이 되어 3선개헌 반대의 시국에 기웃거리다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교수가 되려고 몸을 굽히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있을 때, 영구독재가 완전무결하게 자리 잡는 유신이 선포되고 말았다.정말로 암담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국회가 해산되고 헌법까지 확실하게 중단되어 한 사람의 말이 법인 현실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지켜보던 그때, 참으로 분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된다는 것인가.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따위 통곡이 어떤 힘을 발휘했으랴.계엄군이 온갖 권력을 장악한 그때, 맨주먹인 국민들이 무슨 용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나의 모교 전남대학교에서는 마침내 그해 12월 초 유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함성'이라는 지하신문이 학교와 시내의 곳곳에 뿌려지는 쾌거가 일어났다. 죽음을 각오한 내 후배 대학생들이 일으킨 거사이자 의거였다. 주동자들은 또다시 '고발'이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려다 끝내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뚜렷한 역사적 사실이 있지만 지방인 광주에서 일어난 일인데다 일체의 보도가 관제된 탓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아, 최초의 반유신운동은 1973년 4월의 부활절에 일어난 개신교 목사들의 거사로만 알려진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역사이다. 고등학교 교사이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잡혀가 경찰국 공작분실의 지하에서 숱한 고문과 강압에 의해 '함성'과 '고발'을 제작하여 국가반란을 예비 음모한 수괴로 둔갑되고 말았다. 내가 잘 알고 지내던 동지이자 후배들이 했던 일인데, 나를 지령한 수괴라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기소하고는 감옥 독방에 처박아 버렸다. 교수가 되려던 꿈과 희망은 무너지고, 고문에 망가진 몸만 남아 앞이 캄캄한 세월이 그 시절이었다.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출소하였으나 검찰의 상고가 기각돼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민청학련사건이 일어났고, 긴급조치가 마구 발동되면서 나의 삶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세월을 이어가야 했다. 생사람을 잡아다가 고문으로 간첩도 만들고 역적으로도 만들어 인생을 파탄시키고, 통치자 한 사람만 천하의 자유를 누리며, 그의 추종자들만 한세상 만났다고 삶을 구가하던 시절이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40년이 흘렀고, 그 종말을 고한 지가 3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과거사가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힌 세상이 지구의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구국의 결단이었다느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느니 하는 본심을 토로해 놓고, 국민적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말을 바꾸고 있지만 그런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세상에 무서운 것은 총도 아니고 칼도 아니다. 역사는 반드시 진실만이 승자가 된다. 시간이야 아무리 지연되더라도 결코 역사적 정의와 진실만은 묻히지 않는다. 역사에 맡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역사란 어떤 것인가. 역사에 기록되는 진실과 정의가 바로 춘추필법이다. 진실과 정의의 힘은 모든 권력과 역사를 뒤엎을 수도 있지만 거짓과 불의에는 무서운 필주(筆誅)를 내리기도 한다. 유신이 불가피했고 옳았으며,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사람들, 춘추필법은 거짓과 불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세월이 지났다고 관대해지지 않는다. 필주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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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2 23:02

한국 모터 스포츠의 도래

나처럼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은 자동차 생산국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모터 스포츠와 거리를 두며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갖게 된지는 이미 오래다. 카레이싱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F1 세계자동차경주대회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르망이나 뉘어브르크 서킷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 자동차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포드 자동차가 처음 생산된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의 500마일을 달리는 '인디500'이나 개조한 자동차로 경주하는 '나스카' 또는 '드래그 레이싱'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이같은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생산이나 소비 과정에 있어서 '빨리빨리'태도가 더해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터 스포츠에서는 그다지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자동차 생산국들 중에서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리고 택시와 버스 기사들의 그 엄청난 운전솜씨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모터 스포츠에 충분한 재능이 있고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인다. 물론 한 스포츠의 인기를 올리고 싶다면 정체성이나 연대감이 느껴지는 팀이나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박세리가 없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온 나라 전체가 골프에 열광하기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사실 한국팀이나 한국인 선수가 없지만 F1 국제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불붙듯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진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방문객의 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고 엄청난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의 관심도 크지 않다. 2010년에 있었던 1번째 경주를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심지어 2011년에 한국에서 F1경주가 계속될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영암에 찾아오는 레이싱팀에게 나는 자신있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다음해 경기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슬 앞으로 다가올 매년 F1경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고조되기를 희망하며 어쩌면 대선이 지난 후에는 한국의 행정가를 비롯한 중앙 정부 그리고 기업들이 이 같은 빅이벤트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다시 깨달아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때엔 영암만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터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강원도 인제에서 새로운 서킷이 공사중에 있고 내년이면 아시아 르망 레이스를 비롯, 다른 경주 대회 또한 개최될 예정이다. 혹시 앞으로 모터사이클 세계 챔피언십이 한국에서도 개최될 수도 있을까? 아니면 현대와 기아에서 홍보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 개발에 있어 모터 스포츠의 세계 최강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진 않을까?한국의 자동차가 싼 자동차이기 때문에 구입하던 시기는 지났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는 매우 섹시하게 디자인되고 있으며 멋진 옵션과 좋은 엔진 또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스텝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글로벌 마케팅 도구로서 껴안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는 요즘 들어 한국인들이 수입차 구입을 더욱 선호하는 지금의 트렌드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훗날 한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신의 자동차 박물관에 레이싱 트로피들과 함께 세계 경주에서 우승한 레이서들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들을 소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유산을 만들어 가는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모터 스포츠 역사에도 손기정 선생과 같은 영웅이 필요하다. 현대 i20 랠리카나 현대 자동차의 수퍼 GT 레이싱 대회 참여는 새로운 도약들이다. 만약 한국의 자동차들이 모터 스포츠의 강국들과 겨루는 자리를 보게 된다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우수한 자동차 산업과 그에 대한 열정을 세계에 알리기에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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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6 23:02

선거여론조사 공화국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요"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 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들이 서로 달라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조사마다 결과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 표본추출, 질문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론사들이 값 싼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돈들인 만큼 나온다. 선거 때만 반짝하는 싸구려 조사기관들의 낮은 단가, 전문성 부족, 조사원칙 무시 등이 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싸구려 조사 회사들은 주로 ARS조사를 하고 있다. ARS조사는 선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표본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ARS조사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열성 지지자가 많은 후보자들의 지지도가 실제보다 많이 나오게 되어있다.본질적으로 여론조사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를 독자들이 흥미롭고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과학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술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더욱이 과학성보다는 기술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상업적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처럼 여론조사의 질을 평가, 감독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저질의 여론조사결과가 실시되거나 공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이제는 심각히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감독기구가 생긴다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또는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공개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며,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된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일이다. 그래서 38.6% 등의 소수점 이하의 수치로 치장한 여론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사결과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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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9 23:02

메세나

누구나 '메세나'가 될 수 있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이 단어는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측근이었던 메세나에서 나왔다. 메세나는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귀족 가문 후손이자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받았다. 어려서부터 황제와 친분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행정과 외교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그러나 메세나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재능이 아닌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그의 이름이다. 메세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만 그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천재적인 시인들을 지원하였는데 특히 호라티우스에게는 경치 좋은 사유지까지 챙겨 주었다고 한다. 그가 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은 명예나 이윤 같은 비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천재적인 문학가들과 지적으로 평등한 대화가 가능했던 예술적 소양으로 호화스러운 정원에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관심사 밖에 있던 주제인 정치를 논하면서 예술가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시인들은 그런 메세나를 존경했고 그의 지혜는 고스란히 시인들의 책에 담겼다.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호라티우스의 '송가'와 '서간집'과 같은 문학의 보석에서 후원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예는 아마도 메세나밖에 없을 것이다.메세나는 젊은 예술인들의 후원자,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당시 신체제 로마제국에 필요했던 홍보업무를 당시대의 하이테크 미디어였던 인쇄물을 통해서 우아하고 섹시하게 추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메세나는 자연스럽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형태에 많은 변화가 없이 지속되어 왔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룬 메디치 가문,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음악적 천재들을 지원했던 합스부르크 가문, 그리고 근대의 구겐하임 가문 역시 막강한 부와 세력, 가문 멤버들에게 강조된 광범위한 문학과 예술 교육을 배경으로 메세나 활동을 펼친 예다. 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초대형 기업들도 활발하게 메세나 활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주목적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 만큼 가족재단들의 활동에 비해 어느 정도 성질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후원동기를 비교하자면, 가족재단이 사회적 책임감과 순수한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후원을 한다면, 기업들의 후원에는 보통 자기들의 매출에 관련될 유리한 조건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가족재단도 좋은 이미지나 가문의 명예 향상 등 사회에서의 득을 바라는 기대가 없진 않지만 기업에 비하면 훨씬 순수한 편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가족재단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반면 기업의 후원 사업을 책임지는 부서나 인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술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이런 단점은 장기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화를 두 갈래로 나누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될 수 있겠다. 고급문화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하에 빛을 내고 대중문화는 비교적 단기적인 노력하에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얕으면 얕을수록 후원 사업에 있어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장기간의 자본주의 지배하에 정신세계가 나약해진 근대사회에 정신적 부를 가져다 줄 고급문화의 양성은 필수과제이며 이를 위해 후원자들의 교양과 지식 향상도 필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메세나는 상류층의 소유물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의 작은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콘서트의 티켓 구매도 일종의 메세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개개인이 아예 제작단계에서부터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예술후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의 교육과 함께 예술과 문학의 교양교육을 꼭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다 메세나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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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2 23:02

함세웅 신부의 은퇴

얼마 전 우리시대의 사제 함세웅 신부님이 만70세로 성당의 주임신부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촉박해서 들었던 탓으로 꼭 참석해야 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은퇴기념 만찬을 하자는 통보를 받고도 오래 전에 약속된 긴급한 일 때문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애석함을 느껴야 했다.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래서 미안하고 저래서 죄송한 신부님의 은퇴 행사, 어떻게 해야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그래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함신부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지난 해 여름 10년을 넘게 써오던 〈선포와 봉사〉라는 사목지의 서문으로 쓴 글을 묶어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책이다. 함신부는 1999년 연말 여러 사제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찰하고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단체의 기관지가 바로 〈선포와 봉사〉였고, 그 책의 서문을 도맡아 쓰신 분이 함신부였다.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그 뜻에 맞게 행하여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봉사하자는 함신부의 기본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책의 서문을 쓴 김병상 신부는 말하고 있다.그런 함신부가 주임신부직을 은퇴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해준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에서 태어난 함신부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에 유학을 가 신학석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이래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서울대교구의 홍보국장으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바로 1974년이었다. 유신독재가 백성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에 의해 범죄자로 조작해 투옥하고 극형에 처하는 등 악랄한 짓을 감행하였다. 이 무렵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는 등 극악한 참상에 사제의 신분으로 괴로워하던 함신부는 마침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저항단체를 결성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말았다.1976년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함신부는 그해 3·1구국선언에 앞장서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뒤에도 또 구속되어 함신부는 신자나 비신자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독재타도의 기수였으며, 민주화운동의 전국적인 대부로서 이름이 나라 안과 밖에 가득한 사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던 용감한 사제로 여러 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였고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창설하여 초대 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약간의 민주화가 이룩된 2004-2010년 사이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뒷걸음질치는 민주주의를 붙잡으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천주교 사제라는 기득권층의 신분이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세상과 사회의 정의를 위해 70평생을 바친 그분의 노고에 어떤 찬사를 바쳐도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본당의 주임신부야 은퇴했지만, 사제에게 무슨 은퇴가 있는가. 사제로 서품되는 날부터 하늘나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신부는 신부이고 사제는 사제가 아닌가. 그래서 함신부는 은퇴 뒤에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아 뜨거운 안의사의 의혼을 선양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혁당 사법살인 희생자 유족이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후원 사업에 쉼 없이 일하고 있으며,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받고, 민주정권으로서의 정권교체에도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다. 함신부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선두에 서서 약한 우리 모두를 인도해 줄 것이다. 함신부와 필자는 같은 나이다. 우리는 지난 2005년 6·15공동선언 5주기를 맞아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서 성대한 기념식을 올렸다. 그때 함신부와 필자는 고려호텔의 룸메이트가 되어 몇 밤을 함께 숙박하면서 민족의 통일에 대하여, 완전한 조국의 민주화에 대하여 깊고 넓게 담론을 펼친 바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도 우리는 함께 뜨겁게 일하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사제, 신부님! 우리 신부님! 더욱 힘차게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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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05 23:02

자연에 대한 특이한 취향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곳곳에 숨이 멎을 만한 놀라운 곳이 많다. 우아한 긴 해안가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겹겹이 쌓인 수많은 산들은 사계절 내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매년 사라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나의 눈으로도 1994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온 산천의 모습이 현격히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엄청나게 훼손됐고, 신비로울 정도로 평화롭기까지 했던 외진 곳에도 6차로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상업적으로 개발됐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새 길이 들어선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이 무시된 채 건설된 새 도로는 본래 한국의 평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과연 이 많은 새 도로들이 다 필요하기나 한 걸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차가 없었다. 오토바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그래도 보통의 한국인들보다는 많이 둘러 본 것 같다. 해남 땅끝마을부터 북한까지, 홍도와 울릉도에 이르는 섬들까지 가 봤으니. 그리고 한국에서 100편이 넘는 사진과 글을 담은 여행기사를 써 오며 자전거 투어를 오래 한 덕분에 작은 국도와 비포장도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내가 좋아했던 국도에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기둥이 세워진 것을 봤다. 자연스럽게 하천과 그 지역의 산세에 맞게 건설된 국도를 왜 마다하는 것일까. 왜 한국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듯 산들을 동강내 버리고, 계곡의 고요한 정취를 영원히 빼앗는 등 자연 훼손에 그 어마어마한 세금을 투자하는 것일까. 만약 5분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다. 가끔 나는 한국 사람들은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은 차로 쉽게 갈 수 있어야 하고 그곳에는 무조건 잠자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돈을 벌기 위한 욕심에 주변 환경과는 전혀 조화롭지 못한 모텔과 식당들을 줄줄이 세워 놓아야만 하는 걸까. 올해 초여름 독일에서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으로 홍도에 갔었다. 외지고 아름다운 돌섬이야말로 단연코 한국의 보물 중의 하나다. 나는 사람들이 홍도의 자연을 보기 위해, 그리고 개발의 물결에 거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재발견하려고 가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홍도에 가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을 발견했다. 그림같이 작고 아담한 항구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여객선 터미널이 세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파른 언덕배기에는 각자의 상업 공간들을 알리기 위해 눈이 시릴 정도로 어지러운 간판들이 걸쳐져 있었다. 과연 이런 일이 섬사람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일까. 정치가·행정가 또는 개발론자들은 이 귀한 섬이 왜 사랑을 받는지 생각조차 해 보지도 않고 파괴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연 이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취향 때문인 걸까. 보물 같은 곳들이 '개발'이라는 괴물 앞에 하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이런 내 모습이 낭만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있는 어느 괴팍한 외국인의 생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고속도로가 잘 연결돼 아무 곳이나 빨리 갈 수 있고, 자연 속 어디서나 모텔을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이 없더라도 아름다움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부터 전국에 걸쳐 새로운 캠핑지가 이곳저곳에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지, 아니면 단순한 유행처럼 금세 사라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면 편리함 정도는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소음으로부터, 그리고 바쁘다 못해 쉽게 지치게 만드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자연을 느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삼고 싶다. 미래 한국 자연 생활에 대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싶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30년 뒤엔 내 아들이 자신의 유년기에 보았던 한국의 자연을 과연 볼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천하는 신묘해서 행하려 하면 그 반대가 있다. 그리하여 만약 행하려 한다면 패하게 되고, 붙잡고자 억지로 행하면 잃을 것이다.' 노자 도덕경 29장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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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8 23:02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싸움 그만둬라

지난해 추석을 시발점으로 18대 대선 마라톤 레이스가 본격화된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레이스에서 떨어져 나갔고, 이제 선두권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선수만이 남아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대선 마라톤 레이스를 중계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두고서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중들의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를 칭찬하고 지지하는 반면에 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흠집 내기하는 불공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60여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선거사에서 지금까지 선거의 불공정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70년대 까지는 관권과 금권 개입이 불공정 시비의 핵심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로는 언론의 불공정성이 시비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엄정중립을 견지하고, 공정보도를 통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직접 선수로 뛰는 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선거철만 되면 우리 언론은 말로는 공정보도, 객관보도를 외치면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노골적으로 편들곤 하는데, 특히 신문이 심한 편이다. 조중동의 보수신문과 경향과 한겨레의 진보신문들은 똑같은 정치인과 정치 현안을 두고서 보도하는 시각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아예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한국 언론사적으로 길이 남을 최악의 편파보도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지난 2002년 12월 19일 제 16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있는 날 아침에 배달된 우리나라 최대 신문의 사설 내용이다. 투표일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철회하는 돌발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두고서 이 신문은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판단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 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라고 하였다. 아예 내놓고 국민들에게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회창 후보를 찍으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18대 대선을 이제 겨우 90일 정도 남겨놓은 지금도 일부 신문들의 특정 후보 편들기와 상대후보 흠집 내기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현행 선거법 제 96조는 엄연히 언론의 특정 후보 지지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일부 언론은 비겁하게 숨어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곤 하는데, 그러지 말고 아예 언론이 특정 후보를 자유롭게 지지하는 신문의 후보 공개지지(media endorsement)를 합법적으로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사실 언론의 지지후보 공개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다. 다만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공적기능이 강조되는 방송만큼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못하도록 하고, 오직 신문에게만 이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신문들은 적어도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먼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는 오직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일반 기사에서는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를 밝히고, 이러한 선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유권자들의 후보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후보 공개지지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신문들은 미국의 신문과는 달리 편집권 독립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지금처럼 사설과 칼럼은 물론이고 일반기사에서조차도 편파보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 목소리를 옹호하는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후보 공개의 허용은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지금처럼 신문이 두 패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언론이라기보다는 정당기관지에 가깝다. 역시 언론은 불편부당해야 한다. 선거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네편 내편 가리지 않고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후보의 자질과 정책, 선거자금의 출처와 사용처, 그리고 과거 경력이나 업적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고, 진실 밝히기는 바로 언론 활동의 핵심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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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1 23:02

음악 안의 거짓 - 박 종 화

음악은 언어와 달리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노래나 교향곡에 담긴 선율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만약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매력적인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제목이 '비창'이 아니라 '행복한 하루' 였다면, 이 곡을 기만하는 것은 음악의 제목일 뿐이지 음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딸림화음이 으뜸3화음으로 진행하지 않고, 다른 화음으로 진행하는 경우인 '거짓 마침(Deceptive Cadence)'도 거짓말이 아니라 나중에 올 화음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이다. 음악은 기만의 도구가 아니다. 반면 언어는 누군가를 기만시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엉뚱한 정보라도 청중들로 하여금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찬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며댈 수 있다. 물론 음악에서도 신념과 확신이 찬 연주가 연주자의 기대와는 달리 청중들에게는 다른 의도로 엉뚱하게 전달될 수는 있다. 이것은 고의가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구두를 통한 거짓말은 글을 통해 거짓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안했어'라고 종이에 쓰는 것 보다 말로 거짓말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신체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등 표시가 난다. 거짓을 말할 때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얼굴 근육들의 경련, 빨라지는 맥박, 높아지는 체온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받거나,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 진실은 상대적이자 주관적이지만 음악을 통해 느끼는 주관적인 진실의 관계는 절대적이면서도 객관적이다. 연주자의 신체적인 반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음악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음악을 구성하는 '그릇(medium)'과 '콘텐츠(message)'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결합물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지배하는 세 개의 원칙은 리듬, 화음, 멜로디이다. 이 원칙들이 모두 존중되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존중되지 않으면 음악이 아름답기는 커녕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세개의 원칙을 바탕으로 음악이 완성된다면 감동적인 연주를 청중과 나눌 수 있다.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성실하게 준비를 안 했거나 해석의 의도가 불명확하면, 연주자의 모습 속에서 거짓말을 했을 때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처럼 비슷한 증상을 관찰하게 된다.우선, 화음을 어겼을 때 나타나는 '화음의 질병' 증상을 꼽을 수 있다. 화음이 변할 때 아무런 반응이 없고, 연주의 개별적인 표현이나 색깔, 밸런스가 모호해져 의미 없는 연주가 되어버린다. 화음은 저마다의 개성과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귀를 열어 잘 듣고 연주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리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리듬의 자동화' 증상이 일어난다. 큰 가치의 음들을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연주한 나머지 작은 가치의 음들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4개의 16분음표는 하나의 4분음표와 똑같지 않다. 작은 음들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큰 음들은 더 여유있게 움직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곡의 구조와 물리를 등한시 하는 연주자에게는 '끊임없는 국수' 현상이 관찰된다. 이것은 긴 선율을 세분화 시키지 않고 하나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열 개의 음이 넘는 선율을 리듬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세분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무언극의 절정'은 곡의 본질과 목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연주자가 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연주할 때 불필요한 동작들을 연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때 연주자는 머리, 팔, 몸을 불필요하게 움직이거나 얼굴 표정을 일부러 연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클래식 음악가의 바디랭귀지는 억지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요구와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이렇게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은 음악도 때로는 연주자의 불성실함에 의하여 청중에게는 고의 아닌 거짓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진정한 연주자라면 음악을 지배하는 원칙에 성실해야 한다. 청중 또한 연주자의 증상들을 잘 관찰해 연주에 대한 참된 의견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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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4 23:02

독서율 최하위의 한국인

인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격자나 사상가를 성인(聖人)이라고 호칭한다. 일반적으로 오늘의 세계에서는 4대 성인으로 석가공자예수마호메트을 거론한다. 공자를 제외한 세분들은 성인이자 신처럼 받드는 종교의 창시자가 되어 수많은 교도들이 그분들의 정신과 사상을 받들고, 그분들이 행한 행실을 본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공자는 유학(儒學)이라는 학문의 창시자가 되어 인류를 교육하는 교육자로서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의 인간들은 그런 4대 성인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성서(聖書)나 성경(聖經)을 필독서로 여기면서 그분들을 본받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을 고르자면 첫째 예수의 말씀인 『성서』요 둘째가 공자의 가르침이 담겨있는『논어』며, 그 뒤를 이어 석가의 경(經)인 『불경(佛經)』이요, 마호메트의 『코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대로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석가의 마음, 공자의 마음, 마호메트의 마음, 예수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그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어떻게 마음을 쓰면서 올바른 행동을 했었나를 알아가는 일의 하나가 바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인간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어떤 통계를 보면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한국인들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다. 영국 사람으로 세익스피어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자기 나라의 최고 문학가의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 문화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니, 5대 비극이니 하는 그런 책은 문자를 아는 영국인들은 대부분 읽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들이 300년이 넘도록 식민지로 여겼던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두고, 인도를 버렸으면 버렸지 세익스피어는 버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지폐에는 우리 국민들의 멘토 격인 네 분의 인물 초상화가 실려 있다. 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 오천원 권에는 율곡 이이, 만원 권에는 세종대왕, 오만원 권에는 사임당 신씨의 초상화가 인화되어 있건만,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 네 분에 관한 책이나 그분들의 저서를 몇 권이나 읽었겠는가. 퇴계나 율곡의 저서를 읽기는커녕, 그분들의 책을 구경이라도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세종대왕이나 사임당의 업적이나 행실이 담긴 책이 얼마나 있으며, 그런 책이라도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독서율 최하위라는 주장이 결코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 율곡 이이의 글이 있다."성현들이 마음을 기울인 자취와 착함과 악함의 본받아야 할 일, 경계해야 할 일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 : 격봉요결)"라고 말하여 선악을 구별하고 본받거나 경계해야 일이 무엇인가를 책에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책을 읽지 않고서 옛날의 일이나 옛사람들이 살아갔던 자취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옛날의 일이나 옛사람의 자취를 모르고 어떻게 오늘을 알며, 오늘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미래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금년 2012년은 다산 정약용의 탄신 250주년이다. 탄생 300주년인 루소, 150주년인 드뷔시, 서거 50주년인 헤세와 함께 유네스코는 그들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이라 하여 다산을 포함한 4명을 기념인물로 선정하였다. 그렇다면 다산은 유네스코가 기념해주는 2관왕이 되었다. 오래전에 정약용이 설계하여 축조한 수원의 화성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자신은 기념인물로, 화성은 기념할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2관왕이 아닌가.세계에서는 위대한 인물로 인정하여 추앙해주는데 제 나라 국민은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독서율이 최하위이기 때문이다. 500권이 넘는 그분의 책, 이제는 많이 번역도 되었는데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책을 읽지 않는 국민, 과연 미래가 있겠는가. 세계적인 인물의 2관왕, 다산의 책이라도 읽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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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7 23:02

다시 온 '독도의 시간'

'독도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바다 한가운데 몇 개의 돌들로 이루어진 이 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는 시간이 바로 '독도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되면 콘플레이크 공장에서 세제를 만드는 회사 직원까지, 전 국민이 자동차 뒷유리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써 붙이고 달린다. 90년 중반 한국에 온 이후 여러차례 경험한 시간이다. 그때마다 일본의 억지 주장에 격렬한 분노를 느끼곤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국내 정치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독도의 시간'이 인터넷상의 팝업창처럼 뜨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금도 별다를 바가 없다. 대통령의 형님이 감옥에 가고 최측근 인사들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야당 역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갖가지 내부 갈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 현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럴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조커는 무엇일까. 슬며시 독도 카드를 내밀어 부정과 부패 또는 무능한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를 밖으로 향하게 한다. 독도 카드의 힘은 언제나 강력하다. 내미는 즉시 전 국민이 뛰어 들 수 있는 분노의 집합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본과 경쟁하는 제조업체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슬로건으로 애국심을 건드리며 사실상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부추긴다. 이는 너무나 예측이 가능하고 저급한 일일 수밖에 없다. 독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확실히 일본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식민지 시절의 부정적인 이슈도 불거진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 요구 등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아마도 한국 정치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일본의 완전한 사과일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철회하고 위안부에게 저지른 만행을 완전히 인정하고 사죄와 보상을 한다면 말이다. 아마 한국 정치인에겐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의 이런 의견이 지나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얘기에 동감을 갖는 한국인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일본이 사과를 한다 해도 많은 한국인들이 결코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일본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이야기를 꾸미려면 악당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독일인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알고 있다.다시 독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몇 년 전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독도가 한국 땅임이 100% 확실한지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연히 모두가 독도는 우리 땅임이 100% 확실하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으로 일본이 독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20명이 넘는 학생들 중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절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한국 사람들이 정치가들이나 언론의 주장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무분별하게 끌려다닐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논란이 있을 때에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는 절대로 정답을 낼 수가 없다. 이 이슈에 대해 누군가는 솔직해야 한다. 독도 주변은 어획량이 많다. 바다 밑에는 잠재적인 기름과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보물 창고이다. 만약 독도 주변에 그런 보물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아마도 독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그저 영해를 넓힐 수 있는 바위섬에 불과했을 것이다. 결국은 돈 문제다. 독도 문제에 대해 적어도 누군가는 애국심 등으로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이 무식한 외국인이 두들겨 맞을 각오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뉴욕 타임스에 광고를 하고 타임스퀘어에서 사인 보드로 독도 이슈를 올리는 것이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어떤 물건의 소유권을 놓고 큰소리로 싸움이 났다고 하자. 구경꾼은 누가 그 물건의 소유자라고 생각할까. 과연 목소리가 크다고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싸움을 들여다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최소한 독도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항상 반복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한국 정치인들, 그리고 어쩌면 전체 한국인의 정신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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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31 23:02

지역신문 살리기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이다. 다수 의견만 큰 소리를 내고, 소수 의견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중앙에 지나치게 집중되어있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에서 중앙과 지방의 여론 균형성, 다양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땅에서 지방은 모든 면에서 변방이고 지역민은 영원한 소수자일 뿐이다. 지역의 소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역신문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지역신문들은 뇌사상태에 빠져있거나 산소 호흡기에 기대어 겨우 목숨만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지역신문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앙지의 지나친 독점과 정부의 중앙지에 대한 편파적인 지원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 신문시장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놓으면 조중동이 모든 것을 독과점하게 되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될 수밖에 없다. 중앙지들은 1년만 구독하면 6개월 무료, 자전거, 선풍기, 상품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금까지 지급하는 등 시장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은 여론의 다양성 명분을 내세워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방송 사업까지 내주어 이들은 지역의 광고시장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두 번째 원인은 지역신문의 지나친 난립이다. 부산과 대구, 강원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의 일간신문들이 너무 많다. 솥단지의 밥은 한정되어 있는데 숟가락 들고 덤벼드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으니 모두가 배고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전주지역은 인구가 고작 65만 명 정도인데, 지역일간신문은 무려 13개이다.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가 넘쳐나는 도시이다. 발행부수가 1천부 미만이고 오직 관공서에만 배달되는 신문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런 난립현상은 광주-전남, 경기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이렇게 지역신문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지역신문시장의 기능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시장의 경우 적자를 보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의해 자동으로 퇴출된다. 그러나 지역신문시장은 새로운 신문이 시장에 진출하여 적자를 보더라도 결코 퇴출되지 않고 계속 시장에 남아 물을 흐려 놓는 통에 건전한 회사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안철수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중소기업 문제를 거론하면서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 즉 '좀비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경쟁적인 덤핑으로 가격구조가 와해되어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안철수의 생각, 128쪽), 이는 지역신문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제대로 된 지역신문을 만들어보려던 일부 신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지역신문들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신문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처음으로 경남도청이 지역신문에 보조금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도 경남도내 지역일간지, 주간지, 인터넷 신문 등 11개 신문사를 선정하여 총 1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자극받아 부산, 광주, 전남, 전북지역에서도 같은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은 사이비 신문까지 포함해서는 안 되고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춘 소수의 신문사에게만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지원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격조건은 일정 수준의 발행부수를 유지하는지,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는지, ABC(발행부수공사)에 가입했는지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원금은 신문사 임직원의 봉급이나 수당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지역신문 독자에 대한 구독료 지원, 취재 및 경영컨설팅 지원 등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을 일부 규제하듯이 지역신문을 살리기 위해 중앙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역주민의 삶 자체인 지역신문의 보호는 재래시장 보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역신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는 길은 지역민들이 될 성 싶은 몇 개 신문만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애정을 갖고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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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4 23:02

지식의 노예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나라는 급성장과 함께 그 속도와 성취감에 중독된 느낌이 든다. 물론 중독자체는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속도중독과 성공집착은 우리국가에 대단한 경쟁력을 가져다주며 어마어마한 원동력을 제공해준다. 허나 이에 의한 사회적 부작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부작용의 증상은 세계 자살률 2위와 낮은 행복지수로 뚜렷하게 진단되어있고 다양한 사회부문에서도 고통의 자국은 선명하다. 딜레마다. 자연자원이 희박한 우리나라로서는 인간자원을 최대로 활용해야하고 선진국의 문턱으로 들어섰다고는 하나 앞으로 해결해나갈 과제들이 무겁게 우리 어깨를 누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속적이고 발빠른 발전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행복을 지켜나갈수있을까? 사회와 개인의 진화가 동시에 진행돼야 올바른 해법이 나오지않을까 싶다. 만약 지금 나날이 거론되고 있는 사회복지가 사회적 진화의 열쇠라면, 개인적 진화의 핵심은 바로 교육에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느끼는 어려운 점이 있다. 질문을 해야할 때 또는 받았을 때 발언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배움의 장에서 자기 의견이나 질문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은 학생이 갖춰야 할 기본적 태도이며 이런 습관의 연장선에서 토론식 교육이 가능해진다. 동료 앞에서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연습은 초등교육 시절부터 진행돼야 하며 그 연장선상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토론식 수업이 진행돼야 한다. 토론식 교육의 장점은 주어진 정보를 접했을때 동료들과 다양한 각도의 해석 및 견해를 교환하며 그 정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수있다는 점과 토론의 절차를 통하여 자기와 다른 가치관를 가진 자에 대한 존중 및 공감하는 법을 배울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는 학교등급이 하위 25퍼세트권에서 못 벗어나자 교사들이 회의를 열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해보자고 결정한다.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해리 포터 소설을 바탕으로 교재를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해리 포터 소설의 캐릭터로 변신해 학교에 등교했고 선생들 또한 책안의 캐릭터로 수업을 운영해 나아갔다. 영어는 해리 포터 책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연극을 창작하고, 수학은 책 안의 마술들을 응용해서, 체육은 소설 속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스포츠 퀴디치를 응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아이들에게 다음학기의 테마 선택권을 주었다. 해리 포터 다음에는 타이타닉, 아프리카, 왕자와 공주 등등의 테마로 커리큘럼을 매학기 갱신했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단 3년만에 이 학교는 하위 25퍼센트권에서 상위 5 퍼센트권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입학 희망자들이 넘쳐나는 엘리트 학교로 탈바꿈 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침일찍 등교해서 학과목들을 공부하고 방과후 사교육 시스템에서 늦게까지 다시 공부를 하고 귀가한다. 그리고 학부형들은 시험통과를 최우선시 하는 사교육 시스템에 엄청난 경제적 자원을 투자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학생들은 시험을 잘 치를수있는 기술을 전수받으며 지식을 공식으로 축소하는법들로 노트를 채운다. 학부형들은 학생들 못지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경제적 부담을 실감하고 삶의 선택들을 후회한다. 과연 창의력을 외치는 이 시대에 걸맞는 인재들을 이런 시스템에서 배출해 낼 수 있을까? 감성이 풍부하고 시대와 공감 할 수 있는 리더들을 탄생시켜 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는 학생들을 지식의 노예로 감금하고있다. 이제는 학생들이 지식의 자유인이 될수있도록 풀어주어야 할 시기다. 그래야지만 지식의 마스터가 될수있는 가능성을 제공할수 있다. 한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의 성공과 행복의 열쇠는 바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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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7 23:02

대제학도 양보했던 선비정신

조선왕조 5백년은 선비정신으로 버텼던 나라였다. 여러 차례 국난을 당했었고, 임진병자의 양란에는 사실상 국가가 망하기 직전에 이른 참혹한 형편의 나라였다. 그러나 망하기 직전의 나라는 다시 살아나 무려 500년의 긴긴 세월을 견뎌냈었다. 그렇게 버텨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하나만 든다면 바로 조선민족의 선비정신이었다. 국난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건져내야겠다던 선비정신, 자신의 몸보다는 국가가 더 중요하다는 선비정신,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아도 한 가닥 양심과 도덕성만은 버리지 못한다던 선비정신, 모두와 함께 살고 기쁨과 슬픔도 남과 함께 나누자던 선비정신이 조선을 동방예의지국으로 만들었고 나라가 그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때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상류층의 지성인들은, 오늘처럼 돈만을 위해서, 권력만을 위해서 염치코치 없이 자기가 제일 잘났고 자기만이 제일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은 사람이 많았었다. 조선시대의 그때로 가보자. 『조선왕조실록』의 「선조수정실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선조 원년(1568) 8월 초하루의 기사에 퇴계 이황이 홍문관 겸 예문관 대제학에 제수되는 기록이 있다. "이황이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하게 하다. 이때 박순이 대제학이 되자 이황은 제학으로 있었는데, 박순이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높은 나이의 대석학이 다음 자리의 벼슬에 있고,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부족한 제가 감히 윗자리에 있음은 합당하지 않으니, 자리를 바꾸어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자 그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그러자 이황도 힘껏 사양하여 오래지 않아 다시 벼슬이 교체되어 박순이 대제학이 되었다."라는 조선 선비정신의 본체를 나타낸 기록이 있다. 대단한 일이다. 500년 조선사에 아름답고 멋진 역사의 한토막이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다. 사암 박순(朴淳: 1523-1589)은 일찍이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대제학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한 학자이자 시인이던 큰 정치가였다. 박순은 하담 서경덕이 제자였지만 퇴계 문하에도 출입하면서 도를 물었던 선비였다. 선조 원년은 퇴계 68세, 사암 46세의 시절, 박순의 양보가 없었다면 70세로 세상을 떠나는 퇴계의 이력에는 대제학이라는 그 찬란한 벼슬이 없었지 않겠는가. 정승의 지위보다야 아래이지만, 세상에서 알아주고 높이 여기는 벼슬이 대제학이었다. 그런 벼슬을 선배 학자에게 양보할 줄 알았던 선비 정치가 박순의 아름다운 행위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미화할 수 있겠는가. 오래지 않아 사양하고 양보할 줄 알던 선비 퇴계 때문에 박순은 바로 대제학에 오르지만, 이런 사양과 양보가 얼마나 아름다운 선비정신인가. 수십억을 공천헌금으로 상납하고라도 결단코 국회의원을 해야겠다는 사람, 친구고 선배고 스승이고를 무시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이 고관대작이 되어야 한다는 요즘 사람들과는 그때의 선비들은 분명히 달랐었다. 나만이 대통령 자격이 있지 다른 어떤 사람도 대통령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결코 양보 없이 끝까지 완주해야 되겠다는 요즘 사람들과는 그때의 선비들은 많이 달랐었다. 이런 말세에도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한 안철수 교수의 선비정신은 대단했다. 선배에게 기꺼이 양보한 그런 멋진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온 세상이 후보 경선으로 자기만이 최고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세상, 사양하고 양보해서 진짜 선비가 후보로 선정되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그런 미덕은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것인지. 사암 박순의 아름다운 양보가 이런 시절에 생각나는 이유는 무슨 이유일까. 대제학을 양보하니, 다시 또 대제학이 되돌아왔던 그때 일이 잊히지 않음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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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0 23:02

도그 데이즈(Dog Days: 삼복 더위 때)

서양에서'도그 데이즈(dog days , 직역: 개같은 날들)'는 여름 중 가장 덥고 습기가 많은 날을 뜻한다. 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잠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아침 그 자체가 고통과도 같다. 어떤 일도 하기 싫을 정도의 고통스런 열기와 높은 습도 때문에 온 몸의 힘과 에너지가 쏙 빠져나갈 정도다. 이런 날씨와 맞서기 위해선 산으로 여행을 떠나 시원한 개울가 다리 밑에 눕는 게 상책인 듯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개고기를 먹는 일로도 더위를 대신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엉터리 주장이라는 것이 명백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개 같은 날들'이란 의미는 한국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수세기를 걸쳐 오면서 아주 더운 여름 날 동양의학에 따라 몸의 열을 식히고 여름에서 기를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이다.근래 들어 부쩍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 함께 영어로 '도그(dog-개)'를 먹으러 가고 싶은지 물어왔다. 당연히 영어로 들어도 그것이 길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핫 도그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데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주저하며 얘기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몇 차례 이미 개고기를 먹은 바 있으며 그걸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늘 집에서 친구와 가족과도 같았던 개들과 살아온 내가 이렇게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내 한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그래서 말인데 나는 정말 개들을 사랑하며 다른 동물들 역시 사랑한다. 내 어린 시절엔 토끼며, 새들이며 다양한 다른 동물들과 한집에 살았었다. 나는 그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작은 토끼가 얼마나 예쁜지 알지만 그와 달리 맛있는 토끼 요리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 있다. 작은 돼지는 또 얼마나 귀여운가. 큰 눈망울의 어린 송아지는 또 어떻고? 그러나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을 먹으면서 단지 개고기를 먹는 것을 야만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는 내 유년시절을 언급했듯이 개와 인간 사이에서는 깊은 연대감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보는 동물이라고 해서 먹을 수 없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내가 개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이유는 좀 더 맛있는 고기를 만들려는 의도로 개들에게 고통을 주며 죽이진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개고기는 일반적인 다른 육가공품과 달리 정확한 취급 법규 등에 의해 통제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사육하고 도살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떤 규제도 없이 고기를 얻거나 육질을 좋게하기위해서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이 걱정이 든다. 2002년 한 월드컵이나 다른 외국 기관이나 단체들이 개고기 소비를 금지토록 하려는 요청이 있어왔음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그들의 그러한 요구에 몹시 화가 났었다. 내가 개고기를 먹고 또 먹어야 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한 무지에 의한 간섭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슬람 국가의 기관들이 그들의 종교 때문에 런던올림픽 기간 동안 국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라고 요구한다면 영국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런 요구는 아마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항의와 격노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에게 개고기를 금지시키는 일은 항의의 불꽃을 일으키진 못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고개를 숙이며 식당들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동물보호와 종 보존을 위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 되자 포장마차와 특수한(?) 식당의 테이블 위에 그 고기들이 놓여 있게 되었다. 고래, 개 말고 다른 동물은 국제적으로 보호해야할 종이 아닌가? 작은 뒷골목 어딘가에서 숨듯이 비밀리에 먹어선 안 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삼복 더위 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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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3 23:02

모두가 공무원·교사 되어야 하나

필자는 어렸을 때 매달 25일을 그리도 기다렸다. 그날은 평소 잘 먹어보지 못하는 생과자를 먹게 되는 행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매달 25일은 평생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월급날이었다. 아버님 월급날만 되면 온 식구들이 밤늦게까지 눈 빠지게 아버님을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자식들은 아버님이 사오시는 생과자를, 어머님은 아버님의 월급봉투를 기다리셨다.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면 여간 손해가 아니었기에 어떤 때는 밤 12시 까지 두 눈을 비벼가면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리도 기다리던 아버님이 오셔서 생과자를 풀어놓으면 5명이나 되는 자식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러나 어머님은 누런 월급봉투에서 몇 푼 안 되는 돈을 세시고 나서 항시 한숨만 내쉬시고, 멋쩍으신 아버님은 우리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절대 공무원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우리 5남매 중 필자를 포함하여 3명이 아직도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할 수 없는 집안의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한 때는 기피직업이었던 공무원이 이제는 선망의 직업이 되었으니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필자가 지난 4월 전라북도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자녀들이 어떠한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지를 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아들과 딸의 선호 직업은 각각 달랐는데 아들의 경우는 공무원이, 딸은 교사가 가장 많았다. 먼저 아들의 경우 공무원이 22.7%로 가장 선호되고 있는 직업이며, 이어서 의사가 10.1%로 두 번째, 사업가가 9.9%로 세 번째로 많이 지적되었다. 이밖에 교수(9.4%), 외교관(7.6%), 법조인(5.3%), 과학기술자(4.6%), 회사원(4.1%), 교사(3.8%), 언론인(3.0%) 순으로 많이 지적되었다. 딸의 경우는 4명중 1명꼴인 26.6%가 교사를 가장 선호하였으며, 공무원이 15.0%로 두 번째로 많았다. 이밖에 약사(8.0%), 간호사(6.0%), 은행원(4.0%), 디자이너(4.0%), 교수(3.8%), 외교관(3.5%) 순으로 많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20년 전인 1992년, 그리고 1998년 조사와 비교해 보면 전북도민들은 20년 동안 일편단심 공무원과 교사만을 고집하였는데, 아들의 경우는 20년 동안 오직 공무원만을 선호하였다. 딸의 경우에도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진 점이 두드러졌는데, 20년 전에는 선호도가 6.9%로 5위, 1998년엔 10.2%로 3위였다가 올해 15.0%로 2위로 뛰어 올랐다. 아들의 직업에서 과거에 비해 운동선수가 10위권 밖으로 내려가고, 언론인이 새롭게 순위권으로 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딸의 선호 직업은 아들에 비해 과거와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연예인, 언론인, 회사원 등의 직업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새롭게 은행원, 디자이너, 외교관 등의 직업이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면 당사자들인 자녀들의 생각은 어떨까? 며칠 전에 발표된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13세~18세 청소년 1027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장래희망 직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의 생각이나 자녀들의 생각이 거의 똑같다. 청소년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장래희망 직업은 교사(15.3%)가 1위를 차지했으며, 연예인(14.8%)이 2위, 공무원(13.8%)이 3위로 꼽혔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공무원과 교사를 선호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들 직업이 각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직업이 안정적인데다, 봉급도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직업의 안정성과 보수만을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모든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에만 매달리고, 좀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직업을 외면하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특기와 적성에 맞는 비인기 직업과 창의적인 직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도전의식을 키워주는 다양한 진로 교육이 필요하고, 정부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해주는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하겠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스티브 잡스를 공무원과 교사로 잡아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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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27 23:02

영웅의 길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1802년에 하나의 악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인 1803년에 서양음악사의 전환기를 장식할 곡을 창조한다. 이 곡의 원고 첫장에는 겸손하게 필기된 작곡가의 이름 위에 '보나파르트 헌정' 이라고 굵은 글씨로 표기 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곡품이 초연될 3개월 전인 1804년 5월, 프랑스 혁명의 집정이었든 나폴레옹이 자기자신을 황제로 공포하고 나서자, 여기에 배신감을 느낀 베토벤은 원고 위의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종이가 찢어지도록 긁어 지웠다고 한다. 결국 이 곡은 1806년 '영웅 교향곡(Eroica Symphony), 위대한 인간의 기억을 기념하며' 라는 곡명으로 출판됐다. 에로이카(Eroica)는 이태리어로 '영웅적' 이라는 뜻을 지니는 단어다. 영웅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위험과 불우에 처한 또한 약자의 입장에서 전인류의 안녕을 위해 용기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정의로운 일을 하는 자' 라고 되어있다. 이 뜻은 원래 군사적인 용감한 행위와 관련돼 사용 됐으나 근대에는 도덕적 고결함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허나 사실 어느 인물이 사회에서 영웅적 지위로 우상화되기 위해서는 위의 면모 뿐 아니라 뛰어난 능력과 통찰력 있는 시대정신까지 갖춰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영웅이 완벽하길 기대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을 이룩해 영웅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혁명은 그가 나타나기 전 벌써 진행중이었다. 미라보, 라파예트, 로베스피에르 등 각자 다른 사상을 가진 혁명가들에 의한 연쇄적 사건들이 축적되고 있었으며, 1799년 혁명 막판에 나타난 나폴레옹 장군은 쿠데타를 성공시켜 혁명의 절정을 찍는다. 여기서 그는 이런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이제 혁명의 로맨스를 마쳤으며 지금부터 혁명의 역사를 시작해야만 한다."프랑스 전 국민의 공공이익을 존중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질서 있는 정부를 창립한 나폴레옹은 그 후 나폴레오닉 전쟁이 벌어질 동안 프랑스를 방어하며 군주국들의 연합군 공격에서 승리를 거듭하면서 프랑스를 거대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패배한 나라들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전파하는 일에 충실했다. 시대는 나폴레옹의 능력을 필요로 했고 그는 기꺼이 이 도전에 응했을 뿐만아니라 이를 능가하며 시대의 영웅이 된 것이다. 한편 베토벤은 비슷한 시기에 영웅 교향곡으로 음악세계에 혁신의 획을 긋는다. 영웅 교향곡은 그 전에 작곡된 어느 교향곡보다 길고 복잡했다. 1악장이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어느 교향곡 전체보다 길었으니 청중이 경악한 것은 이해가 간다. 초연 후 반응은 명확히 나눠졌다.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서 감상하기 어렵다는 시각과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시각. 두번째의 시각을 지지한 자들은 음악이 청중 중심의 엔트테인먼트 에서 작곡가의 예술적 가능성을 도전하는 매체로 진화했다고 주장했고 또한 청중의 책임도 이에 따라 순수한 즐김에서 공부를 통한 깨달음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베토벤은 이 행위를 통해 관습에 거대한 도전장을 내밀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명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예술적 숙명을 추구했던 것이다.여기에는 우리가 고려해아 할 심리적인 사실이 또 있다. 청각의 악화로 고통을 겪었던 그는 1802년 완치의 꿈을 버려야 된다는 현실에 처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 때 작성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는 이렇게 써있다. "사람들에게 '귀가 잘 안 들리니 좀 더 크게 말해주세요'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더 민감 해야 될 감각이 약하다고 선언 할 수 있겠는가."작곡가로서의 필수의 능력을 잃어가면서도 사명감을 잃지않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베토벤 또한 시대의 영웅이 아니겠는가?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폴레옹의 소식을 접한 베토벤은 말했다. "나는 이 슬픈 날을 위한 음악을 17년 전에 작곡해놓았다네."이것이 바로 영웅 교향곡 2악장, 장송행진곡이다.※박종화 피아니스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최연소 입상, 최우수연주가상, 부조니 루빈스타인 산탄데르 등 국제 유수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33세에 서울대교수로 임용돼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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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20 23:02

뇌물죄는 반드시 들킨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다', '부패한 나라는 절대로 망한다'라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그냥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헌법에 의해 권력은 십년에 이르지 못하고, 5년에 그치 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권불5년이다'라고 본다면 권력의 무상함은 옛날의 일과 다르다. 상왕의 권력이라던 '영일대군', 최고 권력자의 멘토라던 '방통대군', 차관급이면서도 왕의 지위에 가까운 권력을 지녔기에 '왕차관'이라던 권력자들이 연달아 구속되어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간의 이야기가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 권불5년인데, 천년 만년 가리라고 위세당당하게 권력을 쥐락펴락하던 그들의 신세가 너무나 허망하게만 보인다. 국가를 대표하여 자원외교를 펼치면서 세계를 누비던 권력, 4대 종편을 허가해주면서 언론매체를 장악했던 권력, 모든 인사는 왕차관을 거쳐야만 이루어진다던 그런 권력, 그들은 모두 '뇌물'이라는 사슬에 걸려 막강한 권력이 힘을 잃고 옥창의 별빛을 바라보고만 있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는 '뇌물'과 무관한 때가 많지 않았다. 청와대 안방에서 뇌물을 챙겼다고 임기가 끝나자 두 전직 대통령(전씨노씨)이 뇌물죄로 처벌받은 것을 비롯하여, 대통령의 아들들이 대통령 재임 중에 구속 수감되어 뇌물죄로 단죄되었는가 하면, 가까운 친인척이나 최측근의 대통령 주변의 실세들이 처벌되었던 것이 한두번이 아닌데, 왜 그런 범죄는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은 천륜(天倫)의 관계다. 대통령의 아들도 뇌물죄만 확인되면 천륜도 어쩌지 못하고 구속시킬 수밖에 없는데, 여타의 친인척이나 실세들이라고 빠져나갈 어떤 길이 있겠는가.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말도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공직자들의 청렴만이 나라를 바르고 깨끗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그렇게도 역설했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의 『목민심서』에서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어느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오마는 한 밤중에 주고받은 행위라도 아침만 되면 벌써 소문이 쫙 퍼지게 되어 있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라고 말하여 뇌물의 수수는 반듯이 들킬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거듭거듭 주장하였다. 권력은 유한하고 뇌물은 반드시 들키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 범죄행위는 근절되지 않는 것인가. 이쯤 해서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단계가 아닐는지.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라고 떠들지만, OECD 가입 34개 국가 중에서 삶의 질이 낮기로는 32번째라니 할 말을 잊을 지경이다. 뇌물의 공화국이요, 부패의 공화국에 다른 어떤 명예가 있을 수 있겠는가. 뇌물죄를 규정한 형법을 손질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수억원, 수십억원을 받고도 뻔뻔스런 범죄자들은 끝까지 우기는 것이 '대가성'이 없음을 증명하느라 발버둥을 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재판에서 대가성이 없다는 입증으로 무죄를 선고 받아 죄가 없음을 공인받는 경우가 잦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성 없이 그냥 수억, 수십억을 퍼줄 수 있다는 것인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마구 퍼주는 그런 일이 어떻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인가. 어떤 이유로도 권력자나 고위공직자는 돈을 받을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일단 돈을 받으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성을 논하고 따지는 일 자체가 세상을 희롱하고 만인을 웃기게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도 최고책임자는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 권력은 유한하고,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는데, 입만 다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가.※박 이사장은 교사출신으로 평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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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3 23:02

카스텔라 만들기

"코끝을 스쳐 숨이 나가고 코끝을 스쳐 숨이 들어옵니다. 호흡을 조절합니다."아침 햇살이 마룻바닥 깊숙이 들어오는 넓은 홀에는 조용한 인도 명상음악이 낮게 흐르고 그 사이로 선생님의 작은 목소리가 돋들린 뿐 정적이 가득하다. 창의 롤스크린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내 이마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코를 어루만지고 다시 목으로 내려와 잠시 머물다가 복부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이내 내 작은 몸 전체를 휘돌아 나를 감싼다. 몸이 이완되어 있는 나는 햇살의 유혹에 대책 없이 내 모두를 내어주고 만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모두를 맡긴 채 반가부좌로 앉아 있다.초겨울의 아침햇살은 내 유년의 아침처럼 나를 평화롭게 한다. 나는 내게 스며든 햇살 자락을 보고 싶어 가느스름하게 눈을 떠본다. 햇살은 우측 창문 새로 들어와 홀 중앙에 앉아 있는 내게 사선으로 비치고 있다. 나는 그 햇살 줄기를 타고 어디론가 미끄러지고 싶어진다. 미끄러져 닿는 곳엔 아픔도 슬픔도 없을 거야. 햇살 가득한 고요함과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가 가득할거야. 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가 보자.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가슴을 열어봅니다."요가 선생님의 멘트가 바뀌고 있다. 시선을 돌려 앞을 보니 낮은 단에 앉아 시범을 보이고 있는 선생님의 감은 눈과, 눈이 감겼으므로 더 야무져 보이는 입매가 눈에 들어온다. 엊그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처음이세요?"하며 웃던 선생님은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빛과 대조적으로 웃는 표정 뒤로 굳게 닫히는 입술이 문득 나를 쓸쓸하게 했다. 저 맑은 웃음 뒤에 감추고 있는 슬픔이 있단 말인가? 아니, 왜 나는 감추고 있는 슬픔을 읽어낸단 말인가? 어느 틈에 내게 스며들어온 습성이란 말인가? 기쁨이 가득 찬 사람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의 그늘을 알아채지 못한다.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슬픔이 절로 전이되어 오기도 한다. 타인의 기쁨은 그들의 소유일 뿐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의 정서와 동화될 수 없으므로 멀찍이 그들을 떼어놓고 싶어진다. 사실은 내가 슬금슬금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나를 들키고 싶지 않고 그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고 그들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도 모두가 싫다. 그래서 사실은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딸아이 방의 책상에 있던,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를 읽고 난 후 냉장고 안에 오롯이 남아있던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텔라의 환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그 맛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들과 사회에 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냉장고 안에 가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한 조각의 카스텔라만이 남아있다. 모든 것을 가두어 정화시켰을 때 한 조각의 달콤한 카스텔라가 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몸을 기웁니다. 왼쪽 늑골을 좌악 펴서 사이사이를 넓힙니다."나를 감싸고 있는 이 아침햇살을 가두고 싶어진다. 순도 놓은 아침의 맑은 햇살을 내 안에 오롯이 가두어 들인다. 따스하고 포근한 햇살은 그대로 내 심장으로 직진해 들어온다. 빛바랜 오만과 잘못된 자만, 후회와 반성, 그리고 결코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는 나의 잘못된 행동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잘못과,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타인에게 준 상처들까지 햇살과 함께 가두어 들인다.허리를 젖히며, 두 다리를 꼬아 비틀어 짜며, 옆구리를 늘리며, 무릎을 펴서 하늘 높이 치켜들며 나는 내 자신에게 명령한다. 그들에게 아침햇살을 보게 하자. 그들을 아침햇살과 함께 가두자. 동작은 어느새 사바아사나로 바뀌고 있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푸욱 내려놓는다. 선생님이 홀의 불을 끄고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소리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나는 한조각의 카스텔라로 남는다.※ 수필가 양경심씨는 '지구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진분홍 실내화'를 냈으며, 현재 군산여상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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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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