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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전북인] 전주 출신 김형년 인천중앙동물병원 원장

인천중앙동물병원 김형년 원장(76·전주)은 "진정한 성공은 나눔의 과정에서 얻는 만족과 신뢰에서 비롯된다“며 나눔 속에서 자신의 성공을 찾았다. 전주 해성고와 전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동신제약에 입사해서 수의사로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83년부터 인천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으로 성장시켰다. 김 원장이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할 당시인 1960년대는 산업화 시기로, 수의학은 공학이나 의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분야였다. 그러나 그는 농협 간부였던 친척 어른의 적극적인 권유로 축산업과 농업을 기초로 대한민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의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명감과 함께 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그때의 결정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여긴다고 회고했다. 김 원장의 성공은 동물병원 운영에 그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부터 대한민국 ROTC 인천지구 5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2017년에는 인천광역시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8년째 헌신하고 있다. 또 인천경영포럼, 인화회 등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 활동으로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리더로 자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성실함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꾸준한 노력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낸 것 같다“며 한결같은 전북인의 자세가 공감과 신뢰로 이어져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모교인 전북대에 매년 장학금을 기부해 지금까지 총 4억 1000만 원을 기부했으며, 전북대는 그의 공로를 기려 수의대 강의실을 ‘김형년홀’로 명명하기도 했다. 김 원장의 나눔과 봉사의 모습을 보고 자란 두 아들 역시 수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원장은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사회 확대 등으로 펫 산업은 단순한 동물 치료를 넘어 반려동물과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로 지속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며 팻 산업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 사람들
  • 송방섭
  • 2024.10.28 13:23

[2024 초록시민강좌, 제3강] 박남준 시인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면 행복"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그게 행복했어요.” 자연에서 얻은 경험을 시로 전파하는 ‘지리산 시인’ 박남준 시인의 말이다. 전북일보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최한 ‘2024 초록시민강좌-자연이 내게로 왔다’의 세 번째 강의가 지난 24일 오후 7시께 전주중부비전센터 2층 글로리아홀에서 열렸다. 이번 강의에서 박 시인은 시를 지으며 겪었던 자신의 경험과 함께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시낭송으로 잔잔한 감동을 줬다. 박 시인의 강의는 자신이 만든 시 한 소절을 읊으며 시작했다. “지리산이 이렇게나마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몸 안에 나무처럼 자랑하며 살 수 없는 희망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박 시인은 먼저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의 중요성을 말했다. 박 시인은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가 기후위기로 인해 괴사가 되고 있다”며 “여행하던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책을 쓰고 있고 위기를 겪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환경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리산에 설치하려 했던 각종 시설들에 대한 일화를 말했다. 박 시인은 “지리산에 산악열차, 모노레일, 케이블카, 그리고 미술관을 짓고 5성급 호텔을 지으려 했었다”며 “당시 마을 청년 3명이 찾아와 이것들에 대해 묻자 그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박 시인은 반달곰 인형 옷까지 입으며 해당 시설들을 자연을 위해 저지했다. 해당 사업들은 모두 백지화가 됐다. 이같은 과정에서 그는 자연의 소중함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최근 그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마다가스카르를 찾아 많은 것을 느꼈다. 박 시인은 “어린왕자에서 유명한 바오밥 나무를 보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를 찾아갔었다”며 “그 곳에서 본 행복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진정한 어린 왕자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그들이 생명들하고 함께 나눴을 때 내가 행복하지라는 말을 했다. 그 때 느낀 자연에 대한 마음으로 여러 강의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무리로 “생명을 기만하지 않고,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머물지 않는 길을 가게 하라”고 강조했다. 박 시인은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길을 걸어 여기까지 걸어왔을 것이고, 또 스스로 자기 자신만의 최선을 다할 길을 걸어갈 것이다”며 “앞으로 자신도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고 말하며 강연을 종료했다.

  • 사람들
  • 김경수
  • 2024.10.27 15:12

"엄마, 미안해"…'일용엄니' 김수미 마지막 길 눈물의 배웅

50년 넘게 드라마와 영화, 예능, 뮤지컬 무대를 넘나들며 수많은 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한 '일용 엄니' 고(故) 김수미가 27일 가족과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유족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수미의 발인식을 엄수했다. 발인식 전부터 평소 고인과 가까운 지인과 동료 연예인들이 모여들었다. 평소 고인을 '엄마', '어머니'라고 부르며 모자 사이처럼 지낸 방송인 정준하와 윤정수, 장동민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배우 김나운, 고인이 고정 출연한 예능 '수미네 반찬'을 연출한 문태주 PD, 고인과 드라마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숙도 참석했다. 유족은 먼저 생전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을 위해 예배를 올렸고, 이어 정준하와 윤정수, 장동민, 문 PD와 함께 장지로 이동할 차에 관을 운구했다.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탄식과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준하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냈고, 윤정수는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자 장동민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인의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평소 시어머니인 고인을 '엄마'라 부르며 따랐던 그는 운구차에 옮겨진 관을 끌어안고 "엄마, 미안해"라며 통곡했다. 유족의 손에 들린 영정사진 속에서 고인은 생전의 유쾌하고 밝았던 모습 그대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인이 출연했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년) 포스터에 쓰인 사진이다. 고인은 장례식장 앞에 모인 여러 지인과 동료의 배웅을 받은 뒤 장지인 경기 용인공원 아너스톤으로 향했다.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한 고인은 이국적이고 개성 있는 미모와 출중한 연기력으로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국내 최장수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는 방영 초기 30대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할머니 '일용 엄니'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 호평받았다. 최근까지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에 출연하고 올해 5월까지 뮤지컬 '친정엄마' 무대에 오르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고인은 지난 25일 오전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5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고혈당 쇼크였다.

  • 사람들
  • 연합
  • 2024.10.27 14:21

국화 키워 웅치전투 역사 살려낸 강시복 선생

웅치전투를 기리는 추도 행사가 올 처음 전북도 차원에서 진행됐다. 웅치전투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적지가 지난 2022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서다. 전북도와 완주군, 진안군이 공동으로 주관한 추도 행사를 지켜본 강시복 전 완주군 소양면 주민자치위원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가 관심을 두기 시작한 20년 전만 해도 지역사회의 관심은 거의 없었던 웅치전투가 자랑스러운 역사로 당당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저 패전의 역사로 기억할 뿐 웅치전적지를 옆에 둔 완주군 소양면민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던 시절, 강 위원장의 지난한 웅치전투 역사찾기가 시작됐다. 4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그가 정년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웅치전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향토사학자였던 동향의 고 이목윤 시인 영향이 컸다. "이목윤 시인이 참 외롭게 웅치전투 역사에 매달렸어요. 훌륭한 역사적 자산이 방치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당시 소양면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2006년도 일이었어요."(이 시인은 전해 내려온 웅치전투 이야기를 <소양천 아지랑이> <약무웅치 시무호남> <‘웅치의 눈물> 등의 책으로 내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있을 때 장학회(넝쿨장학회)를 만들었고, 자신이 키우던 국화를 전시해 십시일반으로 장학회 기금을 마련하던 때였다. (강 위원장이 만든 장학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시회 이름 아래 주민들이 10만원∼50만원씩, 연간 2000∼3000만원을 출연한 것이 사업의 종잣돈이었다.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서 장학회보다 웅치전투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 장학회 기금 절반을 웅치전투 관련 사업에 사용하게 됐어요. 웅치전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역사학자들을 초청해 주민들에게 웅치전투의 중요성을 알리고, 매년 주민 차원의 추모제도 개최했습니다." 전적지인 곰티재 정상에 오래전 세워진 전적비가 있었으나 소양주민들이 나서기 전까지 방치되고 있었다. "430년 패전의 역사로 기억하던 웅치전투를 승리의 전투로 바꾼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웅치전투에 처음 눈을 뜨게 한 이목윤 시인, 군 차원으로 사업으로 확대한 황병주 전 웅치전투사업회 이사장, 유해광 소양농협 조합장 등 십시일반 힘을 보탠 지역 주민들이 일궈낸 성과로 감히 자부합니다." 국화전시회로 기금을 마련했던 강 위원장은 건강문제로 2022년부터 전시회를 열지 못해 일선에 물러났지만, 웅치전투에 대한 `전도사`라고 할 만큼 애정은 여전히 깊다. 강 위원장은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웅치전투가 후손들에게 빛나는 역사로 남을 수 있게 성역화 사업이 내실 있게 진행되길 바란다. 성역화 사업이 보여주기식이 아닌,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활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완주군과 진안군이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빚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하기 바랐다. 임진왜란 4대 대첩의 역사로 평가받는 것도 그의 소망이다.

  • 사람들
  • 김원용
  • 2024.10.23 15:07

'로봇의 신' 데니스 홍 "인간과의 축구 경기서 승리할 것"

"2050년까지 우리가 만든 휴머노이드(인간형)로봇이 인간과의 축구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북 전주시 전북대에서 개막한 제22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서 만난 '로봇의 신'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53)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23일 인공지능(AI)을 적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팀이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르테미스'는 지난 7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 인공지능(AI) 로봇대회인 '로보컵 2024' 축구경기에서 지난해 우승한 독일팀을 6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홍 교수팀이 자체 개발한 아르테미스'는 키 142cm에 몸무게 38kg으로 두 발로 걷고 뛸 수 있는 로봇이다. 그는 "아르테미스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뛸 수 있는 로봇"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날 대학생 창업 경진대회에서 '더 가까워진 미래:휴머노이드 로봇 기술과 스타트업'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청년들의 도전 의식을 고취하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련됐다. 홍 교수는 "인간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할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재난구조 로봇과 교육을 위한 로봇 등 연구소에서 개발한 다양한 로봇들을 소개했다. 그는 "실패했을 때 포기하면 끝이지만 그 실패에서 배운다면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면서 "창의적인 생각과 끊임없는 에너지, 낙관주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일자리의 미래 2020'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행정·사무 분야를 중심으로 약 8천500만 개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교수는 이에 대해 "로봇은 인간이 하기 싫어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인간은 더욱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오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더욱 획기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 교수는 23~2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미래혁신기술박람회(FIX 2024)에 참석해 휴머노이드 로봇 12개를 선보인다. 한국계 미국인인 홍 교수는 7세 때 부모님을 따라 영화관에서 스타워즈를 보면서 로봇공학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고려대 기계공학과 3학년 때 미국 위스콘신대로 편입해 학부를 마치고, 퍼듀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개발해 미국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가 선정한 '젊은 천재 과학자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 사람들
  • 연합
  • 2024.10.23 10:34

임실 출신 김태호씨 세계 최초 남성 재적 25년 JC 표창 수상

김태호(46) 임실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이 세계 남성 최초로 한국청년회의소(이하 JC) 재적 25년을 기록해 개근 표창을 수상했다. JC 입소 자격은 20살부터 45살까지다. 45살이 지나면 JC를 전역하고 JC특우회에 입수할 수 있다. 김태호 부회장은 스무살이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JC에 입소했으며, 올해로 만 45살이되면서 JC 임기를 꽉 채웠다. 이러한 사례는 세계 남성 JC 회원 가운데 최초다. 그는 지난 20일 열린 한국JC 제72차 전국회원대회에서 25년간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을 수상했다. 오는 11월 16일 전역식과 함께 JC특우회 입소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JC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과 청년 리더십 육성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임실 소상공인 부회장으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처음 입소할때 JC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몰랐지만 생활을 하다보니 지역사회에서 나름 젊은 청년으로 활동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해 나간다는 사실에 뿌듯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 그는 임실JC 회장을 역임했으며, 당시 행정에서 발빠르게 나서지 못했던 방역 문제에 중점을 두고 지역사회 방역에 집중했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 10회씩 임실지역 개인 상가들을 돌며 방역과 소독을 실시해주는 동시에 주민들에게는 손소독기와 마스크를 제공했다. 또 노인정 등을 돌며, 방역용품과 생필품 등을 지원했다. 김 부회장은 “JC와 함께한 지난 25년은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면서 “청년 리더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준 JC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표창은 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임실JC와 함께 한 모든 회원들의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JC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향후 포부를 밝혔다.

  • 사람들
  • 이강모
  • 2024.10.22 17:11

[전북, 전 세계 '한상' 품다] 한인비즈니스대회 최고령 봉사자 조영곤 씨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고향 전북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개막을 하루 앞 둔 제22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 최고령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조영곤(75)씨의 말이다. 조 씨는 한 사람의 도민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이번 봉사에 참여했다. 전북에서 최초 개최되는 올해 대회는 전북대학교를 주 무대로 하는 만큼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도내 대학생으로 이뤄졌다. 수많은 젊은 봉사자들 사이에서 나이에 굴하지 않고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는 그의 전문 분야는 '사진'이다. 익산 출생으로 전주교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9년 고창 선동초등학교를 시작으로 40년 넘게 교편을 잡았다. 사진 촬영은 우연한 계기로 첫 부임지였던 선동초등학교에서 시작했다. 당시 과학부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부원들의 과학 성과와 추억을 사진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일념에서였다. 단순한 취미에서 시작된 사진 촬영은 본격적인 작품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어느새 그의 실력은 전북사진작가협회와 더불어 다양한 도내 전시회에 작품이 전시될 만큼 유명세를 얻었다. 교편을 내려놓은 이후 그는 자신의 풍부한 사진 경험과 재능을 고향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주로 '전주비빔밥축제, '세계아태마스터스대회' 등 지역 축제에 꾸준히 참여해 전북의 성공적인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기록해 왔다. 평상시에는 덕진노인회관 자원봉사활동에 매주 참여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과학 교육 봉사동아리도 병행하는 등 지역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조 씨는 "우리 지역을 위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계속 고민해왔다"며 "전북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다. 나중에 걸을 수 없을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령임에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남다른 지역 사랑을 보여온 그는 특히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이번 대회가 우리 전북이 다시 한 번 세계로 비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도지사님부터 모든 공직자분들과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도민분들까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올해 대회의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영원토록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 사람들
  • 이준서
  • 2024.10.21 15:10

전주고·북중 총동창회-경북중·고 총동창회 교류행사 성황

전주고·북중 총동창회(회장 김동수)는 지난 18일과 19일, 양일간에 걸쳐 경북중·고 총동창회(회장 권태신)와의 친선교류 행사를 개최했다. 양교 교류 행사는 영호남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목적으로 2000년 바둑 교류를 시작으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올해 22회째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전주고 동문으로는 임명환 전북 행정동우회장, 윤석정 전북애향본부 총재,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김홍규 스포츠 후원회장, 미국 거주 중인 김재한 재학생 글로벌 체험 연수 사업단장, 최규성, 김광수 전 국회의원, 송하진 전 전북지사, 서거석 전북특자도 교육감, 박성일 전 완주군수, 곽영길 아주경제신문 회장, 정재열 관세사회장, 김정기 전주시 교육장과 라구한 전주고 교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첫 날인 18일에는 30명의 경북중·고 동문의 전주고 방문을 시작으로 친교 시간과 환영 행사로 서로의 우의를 다졌으며, 양교 동창회와 모교의 발전 방향 등을 공유했다. 행사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양교 골프팀 24명과 바둑팀 24명은 각각 익산 cc와 익산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겨뤘으며, 양교 임원들은 때맞춰 개막한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장을 찾아 축제 분위기를 흠뻑 느꼈다. 또 양교 임원과 바둑팀 40여 명은 미륵사지를 방문해 익산국립박물관의 사리장엄구와 미륵사지 석탑 등을 관람하고 백제시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내년 대구에서의 친선교류 행사를 기약하며 동창회와 모교 발전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고 모든 행사를 마쳤다.

  • 사람들
  • 전현아
  • 2024.10.20 17:55

[2024 초록시민강좌, 제2강] 정희진 박사 “신념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게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보편적인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다만 여성이 모든 계층에 속해있기 때문에 자주 등장할 뿐이다.” 전북일보와 전북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최한 ‘2024 초록시민강좌-자연이 내게로 왔다’의 두 번째 강의가 지난 17일 오후 7시 전주중부비전센터 2층 글로리아홀에서 열렸다. 한국 사회의 통념과 상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논쟁적인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 박사는 이날 강의에서 페미니즘이 여성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여성주의’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은 신자유주의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 박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나 조직이 사회와 개인에 개입하지 않는 ‘방치 사회’를 의미한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며 우리는 각자 알아서 살 수밖에 없게 됐다”며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기존에는 ‘가족’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개인’이라고 하면 남성, 그중에서도 흑인을 제외한 남성을 의미했다”며 “평등의 개념이 도입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성, 흑인에게는 개인의 권리를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와 기존의 가부장제가 결합하며 여성 또한 개인의 지위에 포함되며, 사회에 진출해 남성과 취업경쟁을 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그런데도 남성과 여성의 평균 임금이 100 대 70으로 차이가 나고, 일상 용어의 기준이 남성에 맞춰져 있는 등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시간 가량 이어진 강의 동안 사회가 말하는 평등과 차별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읽은 그 어떤 책에서도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혹자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차별받아 왔으니, 남성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오자’라고 하는데, 누군가의 파이를 뺏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파이를 함께 만들자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등 외연이 확장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며 “페미니즘은 답이 없으므로 하나의 굳은 신념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고 늘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람들
  • 문채연
  • 2024.10.20 11:22

[전북, 더 인물] "비빔 커피도 준비"⋯'흑백 요리사' 뒷이야기는

"자, 가사는 비빔입니다. 비빔, 비빔, 비비빔, 비벼 주세요! 세계를 비빈다는 마음으로! 더 열정적으로 비벼 주세요!"(<흑백 요리사> 중) 평범한 비빔밥 아저씨는 <흑백 요리사> 출연 이후부터 인생이 뒤바뀌었다. 주말 웨이팅 두 시간은 기본, "지금 가면 유비빔 씨 볼 수 있어요?" 문의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비빔 씨의 인생을 바꾼 <흑백 요리사>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비빔밥 말고도 후식도 준비하셨었다고요?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서 비빔 커피를 준비했었습니다. 나름 후식을 준비했던 거죠.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도 따로 후식으로 커피를 먹기 때문에 비빔밥에 맞춰 비빔 커피를 선보였죠. 영상에서는 편집 됐는데 이후에 다시 악수를 청하길래 '아, 불합격을 번복하려나 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로 또 탈락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화끈하게 탈락했죠. 두 번 떨어진 거니까 제가 최다 탈락자일 겁니다." 심사위원 백종원이 비빔송에 맞춰 밥을 비비고 악수를 청했는데요. 합격인 줄 알았나요? "어떻게 알았어요. 백종원 선생님이 악수를 딱 청하는 순간 속으로 '아싸!' 외쳤습니다. 보통 악수는 합격이나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어서 청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하시고 "탈락입니다! 너무 짜요!" 했을 때 주저앉았습니다. 당연히 합격인 줄 알았으니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음식과 음악을 적절히 비볐는데 떨어졌죠." 만약 백종원 심사위원이 아니라 안성재 쉐프에게 심사받았다면 합격했을까요? "한국 음식은 결국 비비는 것입니다. 삼겹살 집에만 가더라도 보통 다 먹고 '여기 밥 비벼 주세요!' 하잖아요. 모든 게 비빔으로 마무리된다는 의미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도 모르는 사람끼리 몸을 부딪치고 비볐어요. 결국 한국인에게는 비빔의 DNA가 있다는 말입니다. 안성재 쉐프도 비빔 DNA가 있으니까 안 비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백종원 심사위원과 마찬가지로 막 비볐을 테지만 합격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또 다른 출연자 에드워드 리가 비빔밥을 선보였는데요. 밥을 미리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었죠. 안성재 쉐프는 비벼 먹지 않으면 비빔밥이 아니라고 했었는데요. 비빔밥이 맞나요, 아닌가요? "에드워드 리는 사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있으면서 비빔의 DNA가 그리웠던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 뿌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본인을 비빔 인간으로 고백했잖아요. 그분이 만든 음식은 비빔밥이 맞습니다. 인생이 비벼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빔 철학을 가져온 것만으로도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문채연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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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4.10.20 09:44

[전북, 더 인물] '비빔 대왕' 유비빔, 비빔에 진심인 이유는

넷플릭스 첫 한국 요리 서바이벌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방영 이후 연일 화제가 되는 인물이 있다. 전주에서 식당 '비빔소리'를 운영하는 유비빔(60) 씨다. 당시 비빔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실상 출연한 것은 2분밖에 되지 않지만 빨간 곤룡포에 관모까지 쓰고 나와 드럼을 치며 심사위원 백종원과 비빔송을 불렀다. "너무 짜요!"라는 한 마디 심사평을 듣고 바로 탈락하면서 화제의 인물이 됐다. 유 씨가 걸어온 길은 마냥 재미있지는 않다. 40여 년간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비빔과 소리에 몰두한 사연은 무엇일까. 평범한 비빔밥 아저씨에서 비빔대왕이 된 유 씨를 만났다. 세계를 비비려고 태어난 사람! 전주의 비빔대왕! 유비빔입니다! 비빔! 인사마저 '비빔'으로 통일한 유비빔 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식당 '비빔소리'를 찾았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비빔을 향한 그의 사랑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전부 비비자!'는 사훈(?)이 있고 조명이며 벽, 심지어 문고리와 화장지에까지 '비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게 한 편에는 비빔에 대해 연구하는 비빔소리 연구소가 마련돼 있을 정도다. 식당에서 만난 유 씨는 <흑백 요리사> 속 모습 그대로였다. 경례를 올리며 "세계를 비비려고 태어났다!"고 외치는 모습에서는 힘과 박력, 비빔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나만의 소리를 찾다가 '비빔'을 만나게 됐어요. 오직 비빔 인생을 걸었을 것 같은 유 씨의 마음속에도 꿈이 있었다. 소리를 좋아했던 유 씨는 음악가를 꿈꾸며 20대 중반까지 클럽 밤무대에서 악사 생활을 했다. 그의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물었다. 어릴 적 오른쪽 청력을 잃어 남들보다 10배, 100배, 1000배 연습하며 꿈을 꿨지만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연주하며 계속해서 박자가 밀리기 시작한 것을 눈치 챈 유 씨는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전북대 앞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미용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음악은 포기했지만 예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미용실을 운영해 보기도 했지만 유 씨의 가슴은 뛰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타악기의 대가로 불리는 고 김대환 음악가를 만나게 됐다. 박자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김대환 음악가의 연주에 매료돼 10여 년을 그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스승은 유 씨에게 "앞으로 소리의 시대가 올 거야. 너만의 소리를 찾아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 씨에게 비빔의 세계가 열렸다. "나만의 소리를 찾으려고 소리의 근원부터 돌아봤죠. 문득 '비빔'이 떠올랐어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2004년쯤 퓨전 음식이 유행하고 팝페라가 등장하는 등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비빔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소리와 음식이 어우러지는 지금의 식당 '비빔소리'를 열게 된 계기다. 음식 솜씨가 좋고 남에게 맛있는 음식 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유 씨의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소리를 좋아하는 유 씨는 손님을 위한 공연을 하기로 했다. 비빔 앞에서는 가슴이 뛰고 무장해제가 돼요.유 씨는 식당 문을 열고 다시 소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식당 한가운데 드럼을 놓게 된 것에도 나름의 계획(?)과 이유가 있었다. <흑백 요리사> 방영 이후 식당 앞에 보통 주말에 두 시간을 줄 서는 것이 기본이 됐다. 적게는 100명, 많게는 200명까지도 서는 것을 보며 유 씨는 고민이 많아졌다. 당시 날이 더워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차단막이 있는 야외 식사 장소 일부를 대기석으로 바꿨다. 사흘 동안 빠른 순환을 위해 음식 만드는 데 속도를 냈지만 유 씨는 손님들의 방문 목적을 깨닫게 됐다. 그는 "단순히 비빔밥이 드시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랑 인증 사진을 찍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 왔던 거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대기석 중앙에 드럼을 놓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비빔악장'을 연주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 선율에 비빔을 반복하는 가사를 붙인 자작곡이다. 실제로 손님들은 유 씨가 연주할 때마다 촬영하기 바빴다. 유 씨의 퍼포먼스가 끝나면 비빔밥이 나온다. 비빔이 소리도 되고 맛이 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유 씨에게 비빔은 기쁨이자 철학이 됐다. 묘비에 '나는 죽지 않았다'고 쓰려고요. 철학자는 육신이 죽어도 철학은 남잖아요. 제게는 비빔이 철학이에요. 유 씨는 비빔과 만물을 연결시켰다. 본인이 세계를 비비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게 유 씨의 말이다. 그에 걸맞은 일명 '비빔 경제학'까지 정립하며 탄탄한 철학을 갖춰가고 있다. 비빔 경제학은 나 혼자 잘 살자는 것의 반대다. 비빔밥을 비비듯 공동체가 화합하는 과정 속 정이 비벼지며 시너지를 만들어 다 같이 잘 산다는 의미다. 최근 유 씨는 식당 한쪽에 추천 맛집 리스트를 걸어 뒀다. 보통 본인의 식당이 잘 되면 장땡인 경우가 많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전주에 있는 비빔밥을 비롯한 한식 맛집 10여 곳을 안내하고 아래에 "전주 모든 음식점이 맛집! 진짜 맛집은? 여러분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집밥"이라고 적었다. 주변과 함께 잘 되고 싶은 마음이 큰 유 씨다. 유 씨는 "비빔의 '비'를 영어로 쓰면 bee, 벌이다. 전주에 관광객이 벌떼처럼 와서 비빔밥을 먹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맛의 고장 전북, 전주에서 맛있고 신명 나게 비비고 가 주신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비빔소리 문을 열 때 공연도 하고 음식도 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년 만에 소원이 이뤄졌다. 지금은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사실 평범한 비빔밥 아저씨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면서 공연도 할 수 있게 됐고 비빔대왕이 될 수 있었다"고 마무리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문채연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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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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