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칼럼]화병(火病)
병원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가슴에 화가 들어서', '내병은 홧병이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울화가 치민다' '홧병난다' 등의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화병(火病)이란 울화병(鬱火病)과 같은 말로서, 울화(鬱火)는 울울하고 답답하여 일어나는 심화(心火)를 말하며, 여기서 심화는 질투나 노여움 따위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복받쳐 일어나는 울화로 화병은 몸과 마음이 답답하고 몸에 열이 나는 병이라고 정의된다. 즉 화병은 심장 즉 마음에서 비롯되며, 분노와 같은 감정과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감정을 풀지 못하는 시기를 지나 불과 같은 성질의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화병이 하나의 질병명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이후 화병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왔으며, 1994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한국인의 문화관련증후군으로 화병(hwa-byung)을 기재하고 정의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화병의 진단기준이 발표됨으로써 화병이 민간에서 쓰는 용어가 아닌 하나의 의학용어로서 자리잡게되었다. 화병 환자들은 가슴이 답답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하며 혹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있고, 한숨이 자주 나오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고, 입이 마르고 손발이 저리는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이런 환자들은 흔히 가족내에서 남편이나 시부모와 갈등이 많으며, 젊어서 자식이나 남편을 잃은 경험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거나 큰 손실을 입은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개개는 이런 충격적 사건이나 생활의 어려움이 오랜 시간 계속되어오면서 화병의 증상이 나타나게되는데, 한의학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기가 잘 순행되지 못하고 뭉쳐서 머물러 그것이 오래되어 화가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화 즉 불의 성질이 뜨겁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증상이 머리와 목과 가슴에 나타나게 되고 두통, 입마름, 두근거림, 치밀어 오르는 느낌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화병의 진단에는 나타나는 증상의 양상을 중시하여 2003년 진단기준에 따라 진단하게 되며 한의학적 이론에 따라 변증을 하게된다. 또한 최근에는 스트레스나 자율신경기능을 측정하는 기계가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기혈순환을 측정하는 진단기계나 체표면의 온도를 측정하는 진단기계도 활용하고 있다.치료에서는 화병에서 열을 떨어뜨리는 청열약과 기의 순환을 도와주는 이기약 화의 억제를 위해 수를 도와주는 자음약 정신을 안정시키는 안신약 등의 약물을 활용하며, 기를 소통시키는데 효과적인 합곡, 전중, 백회 등의 혈자리에 침치료를 활용하게 된다. 약물과 침치료 외에도 가족들간의 관심과 사랑이 화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인체의 기의 울체를 풀어줄 수 있는 적당한 운동과 생활에서의 바른 자세도 도움이 될 것이다./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락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