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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 당선소감>

당선소감 강현자"어머니, 자꾸만 문 밖으로 마음이 쏟아져요. 주워 담기가 힘이 들어요."어머니는 내 역마살에 우풍이 들었다며 계절의 문마다 문풍지를 달아 주었다. 나는 싱거운 물고구마만 어석어석 베어먹다가 문풍지 사이로 바람이 들면, 가끔 바람에게 물어서 나를 키워준 고향의 옛 주소에 밤 마실을 가곤 했다. 그럴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내 인기척에 '말만한 가시나가 밤늦게 어딜 나가냐'고 주무시는 줄만 알았던 그 옛날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고향에 가면 불호령 하던 아버지도 계셨고, 반갑게 나를 맞는 외로운 아버지도 계셨고, 나를 키우던 매서운 부지깽이도 있었다. 밤새 하얀 종이에 그 시절을 그렸다 지웠다 하다가 주저앉기도 했다가, 새벽닭이 울면 그때서야 어딘가 손잡이를 걸고 일어서서 찍히지 않는 발자국을 내며 돌아오곤 했다. 얼마쯤 갔을까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돌아와 있곤 하던 발자국들, 그 발자국들이 오늘의 이 기쁜 소식이 될 줄 몰랐다.역마살을 달래 듯 그 시절 고향으로 다니는 밤 마실은 내가 찾는 그 무엇보다도 내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얻어온 이야기 보따리가 오늘의 내 수필이 되었다. 계절이 몇 십 번 바뀌고 어머니가 달아준 문풍지는 이미 나를 떠난 지 오래된 채로 힘없이 너덜거리지만, 문풍지가 닳도록 들락거린 보람을 이제야 이렇게만이라도 아버지께 못한 효도대신 어머니께 안겨 드려 마음이 놓인다.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문학의 힘이 되어 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양 화요문학을 이끌어 주신 김대규 선생님을 비롯한 문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약력△62년 장수 출생△1994년 경기도 백일장 시부문 우수△화요문학 동인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3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 사초>

아버지 산소엔 가뭄으로 인해 군데군데 빈 잔디 위로 한숨만 풀풀 날렸다. 아버지가 공들여 지킨 흔적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잔디도 겨우 마른 풀빛을 머금고 있었다. 90년 만에 닥친 가뭄을 아버지도 아셨을까. 아버지는 바람도 달구어 재워놓고 잔디까지 다 태울 기세로 매일 내리쬐는 불볕을 핑계삼아 자식들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외롭다는 듯 잡초들을 봉분 키만큼 키워놓고 계셨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의 불효의 길이만큼 자란 잡초들이 아버지의 쓸쓸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투정이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 표현은 매서운 불호령이 전부였다. 귀가하는 아버지를 맞이할 때 가족들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불호령이 났고, 또 그때마다 아버지 발 씻을 물을 대령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났고, 그래서 아버지가 있는 집안은 언제나 살얼음판이었다. 유교와 봉건사상에 얽어매 놓고 해가 진 후에 집 밖에 나가면 불호령이 났고, 민 소매 같은 짧은 옷을 입어도 불호령이 났다. 아버지의 지나치리만큼 심한 간섭에 나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무서웠고 싫었다. 딸이 잘나면 아들이 치인다면서 딸은 공부를 잘해도 안되었던, 그래서 아버지 보란듯이 일부러 공부를 등한시해서 꼴찌 성적표를 보여 드리기도 하고, 아버지를 떠나 객지를 떠돌기도 하면서 아버지와 맞섰고 반항도 해서 아버지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나이만 훌쩍 자라버린 내게 커다란 보퉁이를 쥐어 주고 결혼이라는 굴레 속으로 당신 심부름 보내 듯 훌쩍 떠나 보냈다. 내심 아버지는 내가 하루도 못살고 보따리 쌀 거라며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염려하셨지만, 결혼기를 넘긴 내가 아버지에게는 밉고 짐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잘 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던 옛말처럼 내가 원하던 공부를 다 못한 것도 아버지 탓이었고, 일이 잘 안 풀린다거나 남들처럼 번지르하게 잘살지 못하는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다. 나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자연히 아버지를 찾아뵙는 일을 소홀히 했다.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목숨처럼 아끼던 일을 잃고 종이호랑이가 되어갔다. 쩌렁쩌렁하고 무섭던 그 기개는 다 어디가고, 어쩌다 힘없고 쓸쓸한 모습을 뵐 때마다 자식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아버지가 또 미워지는 것이었다. 친구 분들과 어울리면서 적적함을 달래 보라는 자식들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의 고집스런 자존심에 아버지가 미웠고, 깊은 어둠의 낭떠러지를 거슬러 올라와 내뱉는 둔탁한 휘파람 소리 같은 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화가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자식 보고싶을 때마다 보고싶다는 말은 못하고 쓸쓸히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고, 어머니는 내게 귀뜸을 해 주었지만, 나는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외로움을 아버지 키만큼 키우고 계신 줄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홀로 세상과 담을 쌓으며 몇 년을 넋 놓고 사시다가 그 외로움이 아버지의 키를 넘던 어느 날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그 날 아침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누런 종이 한 장을 남기고 무너지는 하늘 속으로 떠나가셨다. 나 아직 아버지 심부름 절반도 마치지 못했는데, 아버지 보란듯이 하루도 무사히 넘기고 일년 십 년을 무사히 넘기고 있는데, 몇 번은 풀었다가 되짚어 싸고 했던 해진 보퉁이 가슴에 지니고 이 다음에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풀어진 보퉁이 곱게 여며서 당신이 그 짐 다 짊어지고 떠나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는 내게, 효도 할 기회마저 앗아가 내 가슴에 한을 심어놓은 아버지는 자식을 이긴 유일한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내 가슴에 묻힌 아버지께 이제는 영영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나는 그렇게라도 스스로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효도한번 못한 무거운 짐을 어떻게든 덜어 보려고 궁색한 변명만 끌어다 대던 나는 이제야 철이 든 척 무덤에 찾아와 무릎꿇고 앉아서 죄스러움을 뽑아내듯 잡초를 뽑고 때늦은 후회를 심어 보지만, 이런 아우성이 지금은 너무 깊게 묻혀져버린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는지. 어머니는 자식들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까지 모질게 떠난 아버지를 두고두고 용서 못 하겠다 하시지만, 아버지의 긴 외로움을 알기에 손수 무덤의 풀 무더기 억세게 잡아 당겨 질긴 뿌리 끝에 묻어 나오는 한을 무덤 밖으로 힘껏 던지곤 하셨다.나는 풀 한 포기 한 포기 뽑을 때마다 한번도 당신의 마음을 비친 적이 없던 아버지의 마음을 읽듯 그 자리에 '아ㆍ버ㆍ지ㆍ힘ㆍ드·셨·지·요'라고 떼를 한 장 한 장 덮어 심었다. 철이 든 척 어린 굴참나무도 떼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무성했던 외로움을 걷어내고 새 옷으로 떼를 입힌 무덤에 물도 주었다. 아버지께 뜨끔하게 데인 불효 막심한 내 가슴처럼 가뭄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숨죽여 있던 바람도 어디선가 몰려와서 시원스레 한 몫 거들어 주었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버지의 대답인 듯 무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홀로 견디다가 정히 외로워지면 또 잡초들을 극성스레 기를 것이다. 그것만이라도 아버지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그렇게 아버지는 세상 속에서 빠져나간 뒤에야 나에게로 왔다. 지금도 때때로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는 무덤이 내 삶 속으로 마실을 와 주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깜빡깜빡 철이 드는 것이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3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 심사평>

총 31편을 대상으로 시작된 본심은 최종 7편으로 압축되었다. 응모자들이 각기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 갔을 작품들이 하나, 둘 심의 대상에서 탈락될 때마다 심사위원들 또한 당사자만큼이나 아프고 아쉬웠다는 점 먼저 밝히고 싶다.'슬픔'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 이번 전북일보 신춘문예의 특징인 듯 하다. 우리 삶의 내·외부에 이토록 많은 환부와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그를 바라보는 '맑고 슬픈 눈'들이 있어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게 아마도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슬픔'의 양상을 나열하는 것, '슬픔'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우리는 '그 많은 슬픔'을 견디는 것일까, 심사숙고해주길 응모자들에게 당부한다.세상은 모든 풍경은 바라보는 자의 상처를 투과해 새삼 재구성된다. 자가발전(自家發電)한 상처,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타협이나 위악에 이르는 결말은 전개가 촘촘하고 극적이더라도 허망하다.「帝江 사냥꾼」, 「迷蝶」, 「주살 비대위」는 발상이 기발해서 흥미롭게 읽혀졌다. 「낙타」, 「잃어버린 길」, 「감기」는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아끈 작품이었다. 셋 다 당선작에 올려도 손색이 없었다. 이분들에게는 내일을 기약하기를 권하기로 했다. 구성을 단단히 하는 데 치중한 탓인지, '자신의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심사위원간 이견 없이 「블라인드를 걷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블라인드'를 매개로 자신을 어둠 속에 감춰야 했던, 그리고 감추고 싶은, 정황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특히, 안정적인 문장은 충분한 가점 요인이다. 재능 있는 신인을 만나게 된 기쁨을 전하며, 일로매진하길 바란다.심사위원 : 서정인 (소설가, 전북대 영문과 교수), 김병용 (소설가, 백제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3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 당선소감>

- 당선자 김경희씨세상엔 일방적인 관계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짝사랑이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니, 그다지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일방적인 내 짝사랑이 머지않아 상대를 만날 거라 믿고 있었다. 소설이 내게로 다가와 줄 날이 있을 터였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낯선 들판에서 운전을 하다가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린 꿈이었다. 날은 저물고 인적도 끊겨 내 조바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 막막한 곳에서 열쇠를 찾아 얼마나 힘겹게, 오랫동안 헤매었는지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남편 비슷한 남자가 나타나 우리는 같이 열쇠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열쇠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정말 현실에서처럼, 내가 운전하는 차의 열쇠와 똑같은 거였다. 그 순간을 어떤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꿈에서 깨어나자 나는 내 사랑을 찾을 것 같은 예감을 가졌다. 굳이 프로이드를 들먹이지 않아도, 종종 꾸었던 꿈을 매 번 현실과 비슷하게 연결시키던 내 경험을 되새기며 혹시나 하는 실날같은 희망을 잠시 가져보았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 소설이 내게로 손 내밀어 주었음에 희열을 느꼈다. 내가 옳았다. 짝사랑을 신뢰하지 않던 내가. 이제 내 바람대로 그와 열정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다. 아주 뜨겁게. 꿈꾸던 사랑으로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북일보사에 감사 드린다. 소설은 상대가 사랑하는 만큼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며,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뽑아주신 분들께 보답하려 한다. 서툰 길에서 더듬거리느라 전진하지 못해도 애정으로 지켜봐주신 스승님들과 지인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또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약력△60년 부안 출생△광주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조선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 졸업△1993 ‘수필과 비평’수필 신인상△1996 ‘월간문학’수필 등단△수필집‘울 수 있는 행복’△광주문협 한국문협 한국펜클럽 회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3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 '블라인드를 걷다'

“아줌마! 좀 빨리 나올 수 없어요? VIP 손님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잖아요? 그, 방송국 사모님 있잖아요, 그 분하고 삼거리 식육점 사모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주인 여자는,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열리는 문을 통해 탕 안의 여자들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우정 소리를 높인다. 늦은 내게 짜증을 내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그녀의 가장된 목소리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냉랭함이 위태롭게 섞여있다. 여자의 속셈이 환히 들여다보이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고 조금 황망한 몸짓을 하며 그녀 앞을 지나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습하고 끈적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는질는질 떠도는 나른한 수증기의 입자들에 감염되어 내 몸은 연체동물처럼 되고 말 것 같다. 하지만 동공은 재빨리 어두운 실내 환경에 적응한다. 늘 그렇듯이 사우나실에는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꿈결처럼 고요하게 들앉아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정말 그네들의 삶은 꿈같이 달콤하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밝고 건강한 가정, 적당히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그걸 즐기는 안목까지 갖추었다면 불행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데도 저들은 무엇을 위하여 염천의 무더위에 살갗이 발갛게 익는 고통을 참아내며 답답한 저 인갑(人匣) 안에 갇혀 있을까. 꿈같은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고통쯤은 얼마든지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하긴 아름다운 육체는 아름다운 삶을 위한 기본 요건이 되기도 할 테니까. 갑자기 그들 중에 어느 여자가 파안대소하며 웃는 몸짓이 보인다. 찰나의 시간을 두고 다른 여자들도 옆 사람의 알몸을 쳐대며 자지러질 듯 웃어댄다. 정물처럼 죽어있던 사우나실 안의 분위기가 꿈틀 살아난다. 두 여자가 동시에 나를 향해 오고 있다. 한 여자는 사우나실에서, 한 여자는 냉탕에서 나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자신이 먼저라는 뜻이다. 종종 순서 다툼에서 그들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때를 미는 순서 정하기가 마치 자신이 지닌 명예나 부에 따라 결정되기라도 하듯 그들은 사뭇 심각하다. 그래서 내 말의 사소한 뉘앙스 차이에도 그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때로는 다른 목욕탕으로 옮겨가 버리는 것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분풀이를 하지만, 수건이나 비누 화장품 등속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대부분 그 책임은 내게 전가된다. 좋은 팔자를 타고난 그들에게 그 정도의 권한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젊은 주인 여자는 결코 내게 아량 따위는 베풀지 않는다. 그 나이에 어쩌면 그리 암팡지게 장삿속을 훤히 꿰고 있을까 싶게 그녀는 이악스럽다. 단골이 떨어져 나가는 이유가, 가령 시설 좋은 불가마 온천이 생겼다거나, 다른 목욕탕에 비해 탕 안의 시설물이 취약한 데 있음에도 그녀의 눈총 세례는 내게 매몰차게 쏟아진다. 마침내 덩치 싸움에서 이겼는지 아니면 방송국 차장 부인이 점잖게 양보를 했는지 모르지만 식육점 여자가 오늘의 첫 손님이 되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을 움켜쥐고 비둔하게 다가와 내 앞에 엎드리자 부실하게 짜 맞춘 침대의 다리가 휘청인다. 보통 여자의 두 배쯤이나 되는 등판이나 엉덩이가 그녀의 식육점 진열장에 걸린 고깃덩이 같다. 얼마나 많은 소나 돼지의 육신이 그녀의 손에 의해 난자질 당했을까. 온몸에 전율이 인다. 나는 마음을 모질게 다잡고 때수건을 바투잡아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제법 비장하게 달겨든다. 볼록하게 살이 오른 목에 첫 손길이 가는 순간 비로소 몸뚱이와의 전쟁은 시작되고 내 삶도 하루의 깃발을 올린다. 여자의 등을 밀고 팔과 다리와 허벅지와 은밀한 곳 주변까지 밀어주고 나서 나는 그녀의 손등을 탁탁 친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반응이 없다. 잠깐 무춤거리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녀의 손등을 다시 두드리며 돌아 누우세요라고 말한다.그녀는 마지못해 돌아눕는다. 내가 보내는 손등의 신호에 대해 탐탁찮다는 반응이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든 것도 아니면서 내 신호를 무시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한 번쯤 내 신호를 거부함으로써 때밀이에게 자신의 위상을 높여보고 싶었던 것일까. 때밀이 주제에 손님 앞에서 늘 당당한 내게 그런 방법으로라도 자신의 의도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지만 목욕탕의 때밀이를 자신의 몸종같이 부리고 싶어하는 마나님이 있다. 그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간 십중팔구는 화를 낸다. 말로 할 것이지 건방지게 왜 사람의 손을 툭툭 치느냐고 호령을 한다. 오십대의 어떤 중년 여자는 내 수신호를 완전히 무시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작은 사회에 대한 어떤 규칙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지닌 가치나 행위에 맞춰 그곳의 방식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끔 고소해 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손등을 쳐도 반응이 없는 경우이다. 이들은 때를 밀어본 경험이 없어서 진실로 수신호의 의미를 모른다. 그들은 오히려 뜨악한 표정으로 내게 이유를 묻기도 한다. 그녀들이 내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편과 나 사이에도 소통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네들처럼 애써 신호의 의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그는 가정에서의 일상에 조증을 드러냈고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해 있곤 하였다. 그는 꿈을 자주 꾸었으며 소스라쳐 놀라는 그에게 다가가면 왠지 버성긴 태도를 보였다. 그런 시간이 한동안 지속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 등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이 모두 그가 내게 보낸 신호였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남편은 내게, 내가 그녀들에게 보내는 신호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했다. 그걸 해독해내지 못한 나 자신만 날벼락을 맞았다고 생각할 뿐. 인간에게 몸짓의 소통은 언어적 소통보다 더 근원적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그녀는 뒤집지 못하는 풍뎅이처럼 버둥개질치며 가까스로 배를 드러내 눕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조소를 금치 못한다. 탄력을 잃어가는, 고목 마냥 딱딱해지는 굵은 목을 밀고 닿기조차도 혐오스러운 큰 가슴을 밀어주며 몇 명의 아이가 집을 짓고 열 달 동안 살다 나간 배에 이르렀을 때, 지렁이가 기어다닌 자국처럼 터졌던 살갗이 한갓 비계덩이로만 보여 비위가 상한다. 이럴 땐 생명을 잉태해낸 어머니도 위대하지 않다. 탐욕스러운 한 인간으로 존재할 때의 여자는 결코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욕망에 꿈틀대는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손에 엉겨붙은 때를 털어내며 온수용 수도꼭지를 튼다. 조금 뜨겁다 싶은 물을 떠서 누워있는 그녀의 몸에 끼얹었다. 때와 함께 흘러내리는 물을 훑어내고 지압을 하려다가 나는 문득 도발적으로 고개를 쳐든 그녀의 유두를 보았다. 뜨거운 물이 자극을 주었을까. 나는 선뜻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한다. 때밀이로써 누구에게나 하듯 그녀의 전신을 스쳤을 뿐인데도 여자의 감각은 유별나게 반응해서 나는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짧은 혐오감이 스쳐간다. 그녀를 이렇듯 능멸하는 이유가 뭘까. 현재의 내 정수리에 깊이 틀어박혀 있는 피해의식 때문인가, 아니면 가진 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까. 행여 촉수 높은 그녀의 더듬이에 능글차지 못한 자신이 걸려들까 싶어 탕 밖으로 나가 냉수를 들이킨다. 떠다니는 수증기의 올올한 입자들이 작은 유리창을 통해 침투하는 아침 햇살 밑으로 몰려 있다. 사선으로 뻗친 빛 주변을 제외한 목욕탕 안의 사물들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흐릿한 시야를 바라보는 것은 명료하지 않아서 숨통을 틔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같아서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바깥 세상에서 일하며 엉켜온 어떤 종류의 때도 이곳에서는 그 형태와 의미를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의 몸에 붙어있는 같은 때일 뿐이다. 이 공간과 나는 더럽혀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때 신명을 바쳐 일을 하게 된다. 하루의 때를 말끔하게 벗어내고 저 유리문을 열고 나서는 사람들의 윤기 흐르는 살색과 표정을 보며 내 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기쁨이나 슬픔 따위도 이 흐릿한 공간에서는 모두 은닉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손과 발을 맛사지 하며, 굳은 어깨의 근육을 풀어주며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크고 작은 상처의 흔적을 발견한다. 벗은 몸은 모두 같아서 구별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나는 그들의 몸을 만지며 신체의 사용 부위나 감각이 발달한 것으로 직업을 가늠하고, 나를 부리는 행위에서 그들의 귀천을 분별해낼 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귀한 척 해보지만 내재되어 있는 그들의 천박성은 금세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숨겨져 있는 어느 정도의 허위가 있다고 단정한다. 사우나실의 저 여자들 중에도 그런 부류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 중에 가장 부러움을 많이 받고 있는 의원 댁만 해도 그랬다. 선거철이나 공개석상에 나타날 때에 그녀는 남편 옆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웃고 있지만 사실 그 부부의 불화 정도가 심각하다는 소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툼박한 식육점의 저 여자, 가끔씩 내게 때밀이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잔망스러운 인간이기에 그녀를 능멸한 적도 있지만, 이웃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푸짐한 살집만큼이나 넉넉하게 고기를 떼어준다고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듯 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체득하였다.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평정을 되찾는다. 어쩌면 어머니의 자궁에서 막 빠져 나왔을 때처럼 평등한 무욕의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물살을 받아들이면서 몸으로 입고 마음으로 입어야만 했던 실답잖은 옷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인간이란 몸피듬에 둘러진 가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인정받으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니까. 그 굴레를 과감히 벗어 던졌을 때 사람은 저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본성까지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탕 안에서의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내가 한 발짝만 다가가도 그들은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와서 가슴을 풀어헤쳐 준다. 격식을 갖추고 감출 것이 많던 곳에서는 내보이지 못할 것 같은 자신만의 켯속을 한 껍질 한 껍질 벗겨내는 것이다. 바깥 세상에서는 결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인간의 진실을, 나는 불명료하고 흐릿한 이 공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수족처럼 가까이서 살던 남편에게서는 찾지 못했던 것들을.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남자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유일하게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내 자부심만큼이나 강한 그의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그토록 하찮은 존재밖에 되지 못했는가. 밤이면 귓볼을 간지럽히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말들이 아직 귓바퀴를 맴돌고 있는데 그는 이미 떠나 버렸다. 그와 몸을 섞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열락에 들뜬 시간들이 한갓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부드러운 혀로 그의 몸뚱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핥으면서 그는 내 것이라는 충만감에 전율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그에 관해서 저 식육점 여자의 진실만큼도 알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냉철한 이성보다 더 강하게 작용해서 평정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냉탕 앞에 서서 나는 심호흡을 한다. 찬물을 떠서 세수를 하고 마음을 옹송그려 다시 한 인간의 삶을 더듬어가기 시작한다. 부지사의 아들 내외는 잘 살고 있다더라. 그 애가 너보다 잘난 게 뭐가 있다고. 그 생각만 하면 이 에미는 혀를 깨물고 싶다. 4학년 가을에 네가 발레 콩쿠르에서 입선했을 때 그 집에서 선이 들어왔잖니. 너 그때 뭐라 했는지 기억하니? 엄마, 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였어. 그런데 지금 너 사는 꼴이 뭐니? 너를 생각하면 내 억장이 무너진다.이사온 지 열흘만에 직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집들이를 해야 했다.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하며 집안을 살피다가 커튼이 너무 낡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떼어버리자 너무 허전해서 궁여지책으로 블라인드를 치게 되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부장님은 어떤 집에서 살까 궁금해하더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을 때 미리감치 눈치를 챘어야 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쳐들어온 직원들은 실망의 표정을 애써 감추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머, 사모님 감각은 아주 세련되셨군요. 커텐 대신 블라인드를 친 것으로 보아 검소하시기도 하구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블라인드 친 것을 후회하였다. 커텐이든 블라인드든 나는 왜 그것들을 집안에 드리워서 그늘을 만들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었을까. 내게는 블라인드일지라도 의지할 그늘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다지 넓지도, 밝지도 않은 거실에서 살면서도. 송부장님 거실에는 천경자의 그림이 걸려 있던데요. 대학 때 친구가 그려준 유화 앞에서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나는 과일을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갔다. 사과를 깎으면서도 그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천경자의 그림을 걸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어느 결에 나는 그런 생을 욕망하고 있었음인가. 그날 남루한 집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얼마나 방자하게 굴었는지 그들이 돌아간 후부터 나는 블라인드를 한 번도 걷지 않았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자괴감이 나를 한층 더 어두운 곳으로 은폐시키고 말았다. 내 삶을 아무리 성실하고 정직하게 갈무리 해왔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그들이 지닌 잣대로 내 삶을 재단하려 들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작고 초라한 내 집에서는 손님을 치르지 않았다. 누군가를 내 집에 들인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심지어는 블라인드 자락 사이로 실핏줄 같은 햇살이 새어들어 오는 것만 봐도 그 빛이 내 속옷까지 뚫고 들어와 나를 잠식해 버릴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능력이나 노력이 비슷하다 해도 삶의 질량은 천차만별인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남편만 해도 그랬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의 힘으로 출세를 해야 했기 때문에 사적인 일은 모두 내게 떠맡기고 회사의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나마 부장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서운 집념의 성과였다. 그러나 천경자의 그림을 갖고 있는 자제과의 송부장은 하루의 반나절을 골프장에서 보내면서도 남편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가 부하 직원들의 비난을 받긴 하지만 사장의 계산된 총애는 변함이 없다. 송부장 부인이 사모님을 찾아가 정치 경제계의 뉴스거리를 전하며, 그녀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가 사모님의 품위를 한결 더해 준다는 교태 섞인 찬사를 늘어놓을 때, 나는 남편의 구두에 광을 내기 위해 콜드크림을 바르면서도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토록 미욱스런 그에 대한 긍지가 내 운명을 추락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여기, 할머니 좀 씻겨 주세요. 냄새가 나지 않도록 바디샴푸를 잔뜩 사용 하시구요.”교양 있는 말씨와는 다르게 노인을 대하는 젊은 여자의 행동은 방자하다. 그녀는 마치 흉물스런 짐승을 넘겨주듯, 앞세우고 들어온 노인을 내게 맡기고는 도망치듯 사우나실로 들어간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손짓을 하며 웃는 얼굴이 흐릿한 수증기 사이로 괴기하게 느껴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할머니를 모셔오는데 노인에게서 냄새가 나서 못 살겠다는 여자다. 노인의 몸에서는 국적불명의 냄새가 난다. 이 향수 저 향수를 어찌나 뿌려댔는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냄새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새댁을 경멸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는 내 단골이기 때문에. 그녀는 올 때마다 고맙다는 이유로 내게 팁을 준다. 나는 그녀가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것을 안다. 어느 손님보다도 나는 할머니의 몸뚱이를 정성 들여 씻어주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는 거짓 웃음을 웃으며 받은 그 돈을 밤이면 동전까지 모두 들고 아파트 꼭대기 층에 올라가 유리창을 열고 던져버렸다. “할머니, 돌아누우세요.”깜빡 잠이 들었는지 노인은 움직이지 않는다. 남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도 잠이 들만큼 노인의 감각은 둔해져 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점점 두꺼워지는 굳은살의 무딘 감촉이 타인의 손길조차 감지하지 못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검버섯 투성이인 노인의 살갗을 닦아주며 나는 문득 슬픔이 치솟는다. 노인이 내 손을 뿌리친다. 몰려오는 잠을 물리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굴어." 짜증이 섞인 노인의 낮은 목소리에는 윤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노인의 삶이 그러하듯 그저 공명된 쉰 소리일 뿐이다. 노인도 내 나이였을 때에는 서슬진 목청으로 누군가를 호령하며 늠연하게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할머니가 한 생을 갈무리할 이 즈음 가족들로부터 저런 대접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꿈엔들 했겠는가. 헝클어진 백발, 구부듬한 허리, 웃을 때마다 슬픔을 자아내는 합죽한 입매, 이제 어떤 의사 표시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세월의 끝자락 앞에서 노인은 한갓 사육 당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뛸 수도 포효할 수도 없는, 겨우 목숨만 연명해 가는. 나도 언젠가는 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짧은 회한이 스쳐간다. "아이구, 시원해. 옳지옳지. 거기를 조금만 더 두드려주구려. 내가 오늘 호강을 하는구먼."목덜미에서부터 지압을 해 내려갔더니 노인이 모처럼 반응을 보인다. 애완견은 품고 다닐지라도 노인의 쪼그락진 살비듬은 닿기조차 싫어하는 손주며느리이니 언제 어깨 한 번 주물러 드렸을까.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의 합죽 웃음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젊은 댁은 쑥찜탕과 냉탕에 번갈아 다니면서 연신 땀을 흘리고 있다. 인어처럼 예쁜 몸뚱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고통은 기꺼운 것이리라. 그렇게 발악해서 살을 빼지 않아도 할머니 몸을 한 번 씻어주고 나면 그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될텐데. 마흔 넷, 저 노인과 젊은 여자의 중간 지점에 나는 서 있다. 내게도 젊은 댁처럼 무르익어 터질 듯한 피부를 지녔던 적이 있었듯이 언젠가는 주름으로 물결을 이루는 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중간지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상과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나이. 얽히어 있는 신경다발 같은 삶을 다소곳이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게 되는 나이라든가. 그런데 나는 세상을 향해 적대감을 쌓아올려 하나의 탑을 만들어 가고 있을 뿐이다. 그 탑은 너무 견고해서 폭풍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마흔 네 해의 세월이 삶 자체를 뒤흔들며 지나갔건만 아직도 나는 여전히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글다글 들끓는 가슴을 움켜쥐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 삶의 모습이라니. 어머니 말씀대로 따랐다면 나는 지금 춤을 추고 있을까. 그가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내 춤을 보며 황홀해 할 때가 있었던 것처럼, 나는 크고 화려한 거실에서 관객이 없을지라도 가끔은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관객 없는 춤일지라도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춤을 출 수 없다. 움츠려 줄어든 이 작은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슈즈 대신에 낡은 덧신을 신고, 백화점이나 수퍼마켙보다는 시장으로 달려다니면서도 그 시절에는 한 줄기 햇살 같은 그의 위로가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1년만 더 지나면, 이번 승진 기회를 잡으면 가정으로 돌아와 당신이 원하는 춤을 추게 해줄께. 부장만 되면 당신이 나를 위해 자신을 버렸듯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거야. 1년이 열 번, 스무 번이 다 돼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뒷바라지로 허리 펼 날이 없었다. 결국 그들에게 내 삶의 태반을 소진하고 빈 들녘의 쭉정이가 되어 떨고 서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가 눈빛을 빛내며 했던 그 때의 약속들이 결국은 허섭쓰레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때는 꿈꿀 수 있어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뤄내야 할 꿈도 상실해 버리고 두께만 더해 가는 불신의 벽이 굳건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몸이 무거워지는 걸까. 길고 험난한 길을 강행군한 것 같은 피로감이 엄습한다. 질량을 헤아리기 어려운 무력감이 온몸을 덮쳐온다. 아이들을 깨우려다 조금 더 재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거실에 몸을 눕힌다. 온몸이 땅 속으로 꺼져들 듯 아득하다. 눈을 감자 별무리가 난무한다. 그 별을 좇아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에 빠져들 것만 같다. 잠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이 혼효된 상태에서 나는 의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바둥대다 깜빡 잠이 들었지 싶다. 뭔가 예리하게 눈을 찌르는 느낌에 소스라쳐 일어났다. 해가 떠올라 온몸을 휘감고 있다. 몸을 움직여 광망(光芒)을 피하고 싶지만 감전이라도 된 듯 꼼짝을 할 수가 없다. 그 눈부신 빛이 전신을 태워버릴 듯한 공포로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저걸 내려야 해. 두 팔을 깍지 끼우고 세운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나는 먹이를 포획하는 야생동물처럼 블라인드의 끈을 거칠게 잡아챈다. 햇빛이 사라지자 살 것 같다. 발작에서 풀려나듯, 오갈 들어 수축된 세포들이 이완되기 시작한다.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주변 사람들이 창가에 몰려들어 내려다보고 있는 환상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의심과 호기심을 가득 담은 두 눈의 초점을 내게 모으고 금방이라도 달겨들어 나를 해체해 버릴 것만 같았다.그들은 내게 뭘 원하는가. 이제 더 이상 나는 그들에게 줄 것이 없다. 남은 게 있다면 나 자신을 내놓는 일 뿐이다. 얽히고 설킨 그들의 음산한 숨소리에서 벗어나자 나는 진저리를 친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들은 악머구리 끓듯 더 극악스러워졌다. 그들은 너무 잔인하다.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가 껍데기만 남기더니 이제는 내 의식 속까지 파고들어 괴롭히고 있다. 남편조차 떠나버린 지금 나는 이제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들에게 저당 잡혔던 내 인생을 이제부터라도 되찾아야 한다. 시아버지의 칠순 잔치가 보름 뒤로 다가왔다는 전화가 벌써 몇 번째다. 이렇게 목을 조여오는 시간들이 길어지면 나는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아직 태양이 열기를 뿜어내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나는 검정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의 양산을 펼쳐들고 그 그늘에 의지하여 걷고 있다. 며칠 전에는 양산을 놓고 나왔다가 길거리에서 경기를 일으킬 뻔하였다. 나는 빛이 싫다. 아니 무섭다. 목욕탕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대낮의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건물 밖에 나서면 햇빛이 눈 속으로 파고들어 망막을 새까맣게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333번 버스가 오자 나는 사냥꾼의 포획망에서 벗어나는 짐승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차에 오른다. 비로소 빛의 공포로부터 헤어난다. 10분 정도 버스에 앉아 제멋대로 떠오르는 상념들을 정리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 번 그가 먼저 머리 속에 자리한다. 의식 속에서 그를 삭제해 버리려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생각은 더 물끈물끈 치솟아 나를 괴롭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착하여 허둥지둥 내리기 일쑤였다.버스가 주택가에 가까운 두 번째 정류장에서 멈춘다. 저만치 서 있는 신혼부부가 시야에 들어온다. 손을 잡고 있던 임신한 새댁이 남편의 넥타이를 가지런히 잡아주며 주변이 환해지도록 웃고 있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그의 옆에 있으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는 포만감을 느끼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도피행각은 비겁하다. 또다시 내부에서 잠자고 있던 그에 대한 분노가 고개를 쳐든다. 내가 그를 얼마나 믿었었는지는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내 삶을 송두리째 쏟아붓고 길거리로 내몰린 심정이 이럴까. 그를 지나치게 신뢰한 내 어리석음이 문제라고 또다시 자학한다. 예기치 못한 그의 가출로 잠시 휘청거렸으나 나는 이를 앙물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에 대한 배신감이 크면 클수록 나는 자신을 더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자존심이 망가질 때마다 그를 떠올렸고 그러면서 내 안의 나를 죽여갔다. 내 안에서 들끓던 침묵들이 항변하는 날엔 때때로 손님의 등에 붉은 곡선을 만들기도 하면서 나는 앙바틈한 여자가 되어야 했다. 때밀이,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어떤 것도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나를 추락시키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를 강구했다. 나는 아직 그의 아내였고 그는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그가 짓는 얼굴 표정을 보고 싶었다. 진실이 아닌 것이어도 괜찮다. 아니, 그가 나로 인하여 실추된 체면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가 궁금하였다. 결국 나는 내 생을 엉망으로 망가뜨린 남편에 대한 보복 심리에서, 그를 얼마만큼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지켜보자는 몰악스러운 심산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그날 아침 출근길의 그의 태도를 기억해 내려고 애써보아도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라진 그 주의 일요일 밤, 나는 침대에 눕다가 자명종 시계를 조절하며 시간을 보았다. 열 두시 이십분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지각하지 않으려면 그만 자는 게 어때요? 짧은 사이를 두고 그의 대답 대신 바둑 해설자의 목소리가 귓결에 들려왔다. 바둑 해설하는 여자의 목소리치고는 꽤 낭창낭창하다는 생각을 했던가. 밤에 듣는 여자의 그런 목소리는 빨리 자고 싶게 하지 않느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몇 번인가 궁싯거리다 나는 잠이 들었고 새벽녘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까지 다른 것은 없었다. 출근하는 그의 뒤를 따라 나서는데 엘리베이터가 왔다. 안으로 들어간 그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뭔가를 말했는데 문이 닫히는 바람에 그의 말은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말았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침대 위를 정리하며 그날 따라 유난히 많이 떨어져 있는 그의 머리카락과 하얀 각질을 보았다. 늘 보던 것이었는데도 그날의 그 자리는 파충류가 빠져나간 자리처럼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는 시동생으로부터 형님이 여자와 함께 대전 역 플랫폼에 서 있더라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 오후에는 그의 방에 들어가 잠궈 놓은 서랍을 열어보았다. 이런저런 회사의 서류들 밑에 낡은 편지 봉투들이 누렇게 얼룩이 진 채로 쌓여 있었다. 우리의 초라한 삶만큼이나 길고 지루한 시간을 지나온 편지들이 날개 잃은 새처럼 슬프게 느껴졌다. 그것을 들춰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는 서랍을 다시 잠그고 말았다. 그는 여지껏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마치 그가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허공을 향해 거칠게 뇌사렸다. 답답하게 조여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엘이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선가 숨이 막힐 듯한 농염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무엇을, 누구를 찾아 헤매는 향기인가. 인공향일 거라는 내 의도와 자연향이라는 후각과의 혼란이 반복되었다. 원망스럽게도 그 향은 사람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방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서서 보니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만리향 나무에 붉은 상처 같은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 향이 만리나 간다는 꽃. 얼마나 지독한 그리움이었으면 그토록 강한 향기를 멀리 뿜어 누군가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미 오래 전에 나도 그를 향해 향기를 내뿜는 수줍은 나무였던 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쓸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남편은 지금 그 농도 짙은 다른 향기에 뇌사 당해 눈멀고 귀 멀어 있지는 않는지. 이제는 부질없는 일일뿐이다. 나는 이제 남편을 향해 뿜어낼 향기 대신 독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오전에는 분주하다. 세 여자들의 등을 닦고 나자 주저앉고 싶어진다. 몸 구석구석에 차지게 들러붙어 있는 고단함을 떼어낼 재간이 없다.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등에 수건을 두르고 벽면에 기대앉아 등걸잠을 청해본다. 몸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인데 정신은 수탐하듯 또렷하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죽음의 공포도 없다. 어둠과 죽음은 동질성을 내포하고 있다. 신경이 바다 속을 헤매듯 아득히 잦아들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젊은 여자가 아이의 머리를 감기다가 칭얼대니까 뺨을 철썩 때린 모양이다. 아이는 엄마의 손에 매달려 있다가 조막 만한 주먹을 엄마의 얼굴에 날린다. 화가 난 여자는 아이를 세워놓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패댄다. 할머니 한 분이 여자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밖으로 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여자는 침을 탁 뱉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남편이 얼마 전에 레미콘 사고를 당하여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여자다. 삶의 곳곳에서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불운들이 인간을 얼마나 혹독하게 괴롭히고 있는가.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녀에게 말 할 상대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누군가를 붙잡고 물크러진 내 심경을 다 내보여 버리면, 그러면 이 아득함이 좀 사라질까. 차가운 손이 어깨를 흔든다. 허벅지에 연꽃의 문신이 새겨진 깜조록한 피부를 가진 여자다. 연꽃은 허벅지뿐만 아니라 팔에도 가슴에도 만발해 있다. 흥, 주제에 연꽃이라니. 진흙도 아닌, 악취 나는 하수구에 잠겨 허우적대면서도 언젠가는 맑고 화사한 생을 피워보고 싶은 모양이지. 그래, 인간은 제가 갖지 못하는 것을 꿈꾸는지도 모르지. 가까이 갈 수 없는 것 옆에는 더 가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 법이지. 남편도 그랬으니까. 승천하는 용이 되라고 내 생을 다 내주었더니 결국은 여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라니. 비비람에 너덜너덜해진 외양간의 구차한 삶도 잘 견디더니 이제 반듯하게 서서 한숨 쉬어도 될만하니 생각이 달라지던가.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억울해졌던가. 그를 바라보고 산 나는 무엇인가. 그 많은 것들을 참고 견뎌낸 나는. 결국 내가 추종하던 용의 실체는 허상이었단 말인가. 연꽃 봉오리가 반쯤 열려있는 배꼽 밑에 이르자 나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주어진다. 얼마나 세게 문질러댔는지 그 부위가 벌겋게 자국이 생긴다. 그런데도 여자는 황홀한 표정이다. 내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살갗이 붉은빛을 토해내건만 여자는 제 손을 가져다 그 부분을 애무하듯 어루만진다. 그럴수록 증오심을 실은 내 손은 연꽃 무늬 위에서 격하게 춤을 춘다. 이제 수난을 당하는 건 여자의 배가 아니라 그 위에 피어난 연꽃이었다. 내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여자의 가슴에 핀 연꽃 위에 떨어진다. 상처가 쓰리는지 여자는 한순간 양미간을 찌뿌렸지만 금세 무아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아, 어쩌면 연꽃이기를 꿈꾼 건 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남편이 개천의 용이길 소원했다면 나는 그를 승천시키고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이고자 한 건 아닐까. 나는 개천에서 태어난 그와 결혼하여 그 가정을 성공적으로 일으키려는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남편이 그 환상을 깨뜨리는 순간 내 연꽃은 사라지고 그래서 나는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연꽃이 되지 못하면 나는 옥잠화로라도 피어나 다시 살아야 하지 않을까.때수건을 헹구고 있는 동안 스물 대여섯쯤의 여자는 비닐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 몽롱한 표정으로 껌을 씹고 있다. 그 나이에도 저렇게 눅진눅진한 여자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떡딱 소리가 날 때마다 여자는 몸을 바르르 떤다. 배시시 웃기도 한다. 천장을 향해 화장이 지워져 얼룩진 눈을 땡그랗게 뜨고 누워있는 여자가 문득 무서워진다. 씹는다는 거, 짜게 절은 생의 무늬를 씹는 맛을 그녀는 알까. 그녀에게 씹히는 것들의 존재는 무엇일까. 슬픔, 증오, 분노, 남자, 세상, 아니면 그 어떤 환희…. 그녀의 젖가슴께에 내 손이 닿자 여자가 몸을 꼬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여자가 주문한대로 계란을 깨서 맛사지 준비를 한다. 노른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거품기를 휘휘 돌려 흰자의 입자를 붙임성 좋게 만든다. 코처럼 느른한 그것은 둥근 결을 이루며 완벽하게 부드러운 찰기를 만들어낸다. 희뿌연한 수증기 속에서 보면 정액으로 착각하게 하는, 비린내 나는 계란 흰자를 그녀의 얼굴에 바르고 목에, 가슴에 바르는데 오장육부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여자는 봄볕처럼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입에서 뜨거운 침이 고이고 회가 동하는 것과 동시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내 몸을 돌고 있는 피돌기의 모든 세포들이 팽창하여 위험수위를 향해 치닫는 어느 순간 나는 폭발 직전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살아야 해. 수도꼭지를 세게 틀자 팽팽한 압력 속에 갇혀있던 물이 콸콸 쏟아진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여자에게 다가간 나는 민감해진 후각에서 기어이 남편의 정액 냄새를 맡고 만다. 뜨거운 것들이 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찬물을 한 바가지 퍼든 두 손이 파득거린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갈등 없이 그 물을 그녀에게 휙 뿌리고 말았다. 쉼 없이 움직이던 입술이 정지되고 몽롱하던 눈동자가 홰등잔만해지더니 그녀는 시체처럼 조용히 일어나 내게로 왔다. “야 이년아!”우주의 기를 모아들이듯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그 여자는 아주 길게 야 이년아를 내지르더니 내 머리채를 잡아 저만치 내동댕이친다. “술집년 팔자나 때밀이 팔자나 다를 게 뭐 있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씨팔, 네년도 거시기에 금띠 두른 팔자는 아니잖아, 이년아?”세상의 모든 진실이 증발해 버렸다는 걸 느낄 때 이런 무기력증에 함몰되는 걸까.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동그라진 채로 주저앉아 씹던 껌을 내게 퉤하고 내뱉는 여자를 노려보고만 있다. "에이, 재수없어."침을 한 번 툇하고 더 뱉더니 여자는 밖으로 나간다. 순간 나른한 그 무엇이 전신을 관통했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나는 그녀의 악담을 수긍한다. 그래, 네 꼬락서니나 내 꼬락서니가 다를 게 뭐 있겠니. 누구나 화려한 무대 위에 서 있고 싶지, 누가 자신을 팔며 인생의 뒤안길에 남아 있고 싶겠니. 그녀 역시 악취 나는 음습한 연못보다는 맑고 화사한 연못에서 피어나고 싶었겠지. 여자가 빠져나간 출입문을 바라본다. 환시였을까. 어룽진 유리창엔 연꽃이 무리 지어 해끔하게 피어 있다. 그녀가 피워 놓은 꽃들이다. 불현듯 단 한 송이라도 내 꽃을 피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나는 소스라쳐 일어나 물 한 바가지를 몸에 끼얹고는 탕 밖으로 나온다. 주인 여자가 그 여자를 달래고 있다.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옷을 주워 입는다.“아줌마, 손님에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사과하지 못해요?”형광등 불빛 아래 종알대는 주인 여자의 얼굴이 꼭 두억신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을 나왔다.햇덩이가 유리창 너머로 기울고 있다. 빛의 농도가 옅어지자 나는 용기를 내어 블라인드를 확 걷어챘다. 악력을 담은 그 힘에 의해 블라인드의 한 쪽 끝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투두둑 다 내려앉아 버렸다. 순간 환한 빛이 두 눈을 찌른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어디로 피해야 할까. 빛을 피해 도망가야 한다는 자아와 도망치면 비겁하다는 또 다른 자아가 싸우고 있다. 이 너른 세상에 나를 숨겨줄 안전지대는 그 어디에도 없을뿐더러 더 이상 내게 그늘을 드리워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궁지에 몰려 있다는 자각이 온다. 불현듯 오기가 치받힌다. 볼 테면 봐라, 내게 감춰야 할 무엇이 또 남아 있는가. 누군가 나를 기웃거리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내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줘야지. 그늘에만 숨어 지내던 내 육신에게도 해의 빛을 만끽하게 해주고, 최소한의 표면적을 갖고 살던 영혼에게는 너른 세상의 자유를 주고 싶다. 늘 가족들에게 매여 내 삶이 아닌 그들의 삶에 끌려다니느라 날갯짓 한 번 해보지 못한 내 심신에게 나비와 같은 사뿐한 자유를 줘야지. 이 무거운 몸뚱이에서 빠져 나와 훨훨 한 번 날아 보리라.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베란다에 나와 선다. 저만치 앞 동 주차장에 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하루를 보내고 가족들의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주부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순백색의 중형차 옆에 검정색 투피스 차림의 여자가 서 있다. 여자는 핸드백을 열어 뭔가를 찾더니 차에 오른다. 남루하고 지쳐 보이는 다른 차들에 비해 여자의 차는 제왕처럼 늠름하고 품위 있게 아파트 정문을 향해 스르르 미끄러진다. 여자는 다른 여자들이 돌아오는 이 시간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시간에 돌아오는 자와 나가는 자의 삶의 진실에 대해 누가 무어라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내가 목욕탕에서 만난 여자가 저 여자라는 사실을 나는 인정해야 한다. 여자가 빠져나간 거리를 좇아가던 내 시선이 서산에 걸려있는 태양에게로 옮겨간다. 장엄한 황혼이 아직은 서쪽 하늘에 온전하게 남아 있어 눈이 부시다. 저물었어도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그 화려함으로 인한 환상일까. 몸 어딘가에서 스멀스멀한 기운이 솟아나더니 황혼 빛의 용 한 마리가 내 앞에 서 있다. 그는 여자를 구해내는 용사처럼 베란다 창살을 꺾더니 나를 한 번 돌아본다. 그의 묘한 눈빛에 빨려들어 나는 문득 그와 교접하고 싶은 욕망이 격렬하게 솟는다. 순간 나는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묘한 엑스타시에 빠져든다. 온갖 고통이나 슬픔 따위는 다 비워지고 몸이 부웅 떠오르듯 가뿐해진다.어느새 내 안에서는 두 개의 내가 싸우고 있다. 나는 나를 자꾸 밀어내고 있다.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한다. 목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힐 것만 같다. 마침내 싸움에서 진 내가 파열음을 내며 몸을 뚫고 나와 허공으로 떨어진다. 나는 뇌리에서 종기를 떼어내는 것처럼 떨어져 나간 나를 본다. 죽어버린 그 종기의 거대한 모습이 승천하려다 떨어지는 이무기로 보인다. 피안의 세계를 꿈꾸며 오랫동안 내 안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용은 허상일 뿐이었다. 아아, 그랬었구나. 내 목을 조이고 내 삶 전체를 조였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그려낸 허깨 비 용이었다. 그가 승천하면, 그를 따라 나 역시도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남편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을. 화려한 노을빛 용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늙은 이파리 몇 개를 매단 은행나무일 뿐이다.베란다 창살을 움켜쥔 손에 땀이 흥건하다. 살아있던 의식이 피돌기와 함께 온몸으로 퍼져간다. 환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이 그토록 지난한 길이었는가. 애당초 용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왜 믿으려 하지 않았던가. 어두운 미로를 헤매다 간신히 출구 앞에 선 나는 지금, 빛살의 세례를 맞받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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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1.03 23:02

[신년특집] 새해 아침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 '심호흡하며.. '

'심호흡하며 하얀 설원을 걷자'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너나 없이 꿈을 얘기하고 희망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12월이 되어 해가 저물게 되면 어느새 새해의 꿈과 희망을 접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달력의 첫 장을 넘길 때는 무언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되었다가도 그 마지막 장을 닫을 때에는 힘이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자체가 희망과 낙망 사이, 꿈과 좌절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험한 세상 속을 걸어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이르러 다시 새해를 맞았다는 사실은 여간 감격하고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성서에는 ‘에벤에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여기가지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표현입니다. 생각해 보면 히브리민족 뿐 아니라 우리도 오늘 여기까지 이르러 2002년을 맞게 된 것이 우리 힘으로 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커다란 손길과 선의 (善意)에 의해 우리의 발걸음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새해가 되었다고 턱없이 희망에 들뜨거나 해가 저물었다고 힘 빠져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 앞에 펼쳐진 또 한해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달력의 첫 장을 넘길 때면 나는 늘 아무도 걷지 않는 하얀 설원을 연상하곤 합니다. 흰눈이 소담하게 덮힌 일년이라는 시간의 설원을 말입니다. 그 시간의 설원을 앞에 두고 보면 저절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야할 그 길 앞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말할 수 없는 회오와 슬픔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아무렇게나 걸어온 어지러운 발자국들이 차마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제발 올 한해를 지내면서 되돌아 본 한 해 만은 또 그렇게 어지러운 발자국이 아니기를 기도 해 봅니다. 우리 앞에 다시 시간의 설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잘 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할 것 없이 신은 우리에게 다시 시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저 하얀 설원을 우리 함께 걸어가도록 합시다. 올해만은 우리의 발자국들이 생명과 시간을 주신 이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해 봅시다. / 김병종 (화가, 서울대교수)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1 23:02

[신년특집] 미리보는 전주 문화월드컵 - '藝鄕 참모습' 세계에...

‘축구도 보고 문화행사도 즐기고’2002월드컵을 보기 위해 전주를 찾는 축구팬들은 경기와 함께 예향의 전통문화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전주시가 2002한일월드컵을 ‘문화월드컵’으로 준비하고 있는 까닭이다. 세계인의 최대 축제인 월드컵을 보기 위해 전주를 찾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전주가 전통문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경기때마다 문화행사를 개최, 월드컵이 시민과 함께 한다는 연대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다.월드컵문화행사를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곳은 전주시 월드컵문화행사집행위원회(위원장 문치상). 추진위는 지난해 초 문화예술인 등 7명으로 구성, 월드컵 관련 문화행사 밑그림을 그려왔던 월드컵문화행사추진위 체제가 지난 11월 전환된 형태다. 문위원장을 중심으로 안상철 총감독(연극인)과 김정수 공연기획팀장(우석대 겸임교수), 문윤걸 행사지원팀장(전북대 강사) 등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3월말까지 구체적인 행사안을 수립, 추진하고 사무실도 시청에서 경기장으로 옮겨 기획된 작품을 실행한다.집행위가 구상하고 있는 문화월드컵의 뼈대는 크게 4가지. 경기장 행사와 월드컵프라자, 예술단체 축하행사, 그리고 사전 분위기 조성 등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월드컵이 열리는 전주를 문화의 장으로 만든다. 투입되는 예산만 30억원 정도.경기장에서 열리는 경축행사는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내용으로 공감각적 연출이 돋보이는 행사로 치러진다. 매경기 시작전 분위기 고조를 위해 경기장 트랙과 관람석에서 다양한 축하무대를 펼친다. 경기 하프타임과 경기 종료후에는 신명난 풍물 한마당도 마련한다.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억제하는 FIFA규정을 지키면서도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이용, 경기장 공간을 활용할 계획. 스페인 포르투칼 등 가톨릭국가 경기가 예정된 것을 감안해 가톨릭 전주교구 예술단의 ‘님이시여 하늘이시여’ 공연도 구상중이다.‘월드컵플라자’는 월드컵 축제분위기 확산을 위한 중심 거점이다. 월드컵경기장 만남의 광장 등 2곳에 설치될 월드컵 플라자는 공연장과 인포존, 놀이마당, IT체험관, 전시마켓 등이 들어서며 하루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월드컵 종합정보센터로 꾸며진다. 상설 전시와 공연이 이어지며 축구팬과 관광객들에게 월드컵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예술단체 축하행사는 시민·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해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무용과 전통예술, 음악 미술 연극 등 6개 분야에서 21건의 행사가 열린다. 집행위에 1차 기획서를 제출한 이들 단체는 1월 15일까지 상세기획서를 제출하고 행사준비에 돌입한다. 여기에 전주시립예술단체도 가세한다. 국악단은 혼불을 칸타타 형식으로 창작, 무대에 올리고 관현악단은 열린음악회를 준비중이다. 또 극단과 합창단은 전주의 문화예술을 알릴 수 있는 공연과 합창제를 기획하고 있다.전주 4대 문화축제는 월드컵 붐조성을 위해 적극 활용된다.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26일부터 5월2일까지 열려 월드컵 열기를 미리 달군다. 제44회 전주 풍남제와 전주특산한지페스티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등은 월드컵 기간인 6월 8일부터 17일 사이에 개최, 전주의 문화유산과 풍물을 쏟아내며 손님맞이에 나선다. 안상철 총감독은 “월드컵 기간동안 지역문화 역량이 드러나고 끊임없이 표출될 수 있는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며 “유서깊은 전통과 오늘이 조화를 이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시민들과 예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 시민이 주인되는 축제마당을 만들겠다”고 소개했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2.01.01 23:02

[신년특집] 미리보는 전주 문화월드컵 - '결승전 열리는 요코하마'

‘무서운 일본’ 일본을 다녀온 국내 월드컵관계자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이는 2002한일월드컵의 파트너인 일본이 장기적인 안목을 앞세운 세심한 전략과 꼼꼼한 세부계획을 앞세워 일찌감치 월드컵 개최준비를 마친 점을 눈여겨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만큼 일본은 ‘멀리 보는 눈’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살제로 ‘새로운 문화 시장이 생기면 민첩하게 파고든다’는 속설처럼 일본에선 한·일의 경기개최 20개 도시를 찾을 사람들을 위한 종합정보가이드가 상품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선보인 2002년 월드컵 공식 가이드북에는 ‘인천은 1882년 영국 군함 승무원으로부터 축구가 전해진 한국 축구 발상지’‘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은 남녀 화장실 숫자를 그때그때 남녀 비율에 맞춰 유동적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수록돼 있을 만큼 경기 도시 소개가 상세하다. 이같은 책들을 일본이 영문판으로 찍어 세계인들에게 판매한다면 문화시장 하나를 일본이 선점하는 셈이다.일본의 조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실속을 챙기는 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이와함께 일본의 개최도시들은 생활밀착형의 아기자기한 행사로 월드컵붐조성을 꾀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웬만한 문화페스티벌을 벌일 때마다 행사 1년전에 자원봉사자 명단까지 확정하는 나라답게 일본은 문화월드컵 이벤트들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10개의 월드컵 개최도시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요코하마다. 서울 상암월드컵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개막전과 함께 지구촌 축구팬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2002월드컵 결승전이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도쿄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미항(美港)인 요코하마는 사이타마시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말 결승전 개최지로 최종 낙점됐다. 지난 98년3월 완공된 요코하마경기장은 정확히 7만1천4백16석의 관중석으로 사이타마 스타디움(6만3천60명)보다 약 8천석이 많은 일본 최대 규모의 천연잔디구장이다.요코하마시도 월드컵을 앞두고 요코하마 시민들과 방문객 모두를 겨냥한 ‘도시 홍보’캠페인을 벌여 월드컵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 요코하마는 자신들이 도예의 도시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축제를 6월초에 가지면서 도자기 전시회, 국제 가장행렬 등을 통해 문화월드컵의 붐을 띄우기 시작한다. 98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일 공동 오페라 ‘춘향’을 만들자고 제안한 쪽도 한국이 아니라 일본 요코하마 시민들이었다.요코하마의 최대 시민축제인 매년 5월3일의 국제 가장행렬도 빼놓을 수 없다. 미스 요코하마를 비롯한 각 도시 미녀들의 퍼레이드, 중국 사자춤과 용춤 등이 펼쳐지며 세계를 수용하는 항구도시임을 널리 알린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6월에는 5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개항기념 바자가 열리는데, 이때 요코하마 공원과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분재시장과 일용잡화의 수출입품 판매시장이 형성된다.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이 적지않다.

  • 문화일반
  • 정진우
  • 2002.01.01 23:02

[신년특집] 미리보는 전주 문화월드컵 - '전주 동문거리축제'

문화월드컵을 지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전주의 거리문화를 특화한 ‘동문거리축제’는 대안문화축제를 추구한다. 홍지서림을 비롯해 서점, 헌책서점, 인쇄소 등이 즐비한 동문거리 일대는 아직도 전주만의 문화와 정서가 살아숨쉬는 지역. 바로 이 곳에서 상인과 지역민, 예술가들이 어우러져 생활밀착형 축제를 빚는다.행위예술가 심홍재씨를 비롯해 김병수, 성기석씨 등이 축제의 밑그림을 그려 5월말께 동문거리에서 열릴 예정. 심씨는 동문거리에서 직접 카페를 운영하는 인연으로 이번 축제를 주도한다.동문거리축제에서는 동문거리의 문화지도를 만들고, 다큐멘터리제작도 이뤄진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트럭공연과 동문을 형상화한 개막굿, 거리미술제와 벼룩시장개설 등도 눈여겨볼만 하다. 무엇보다 비석치기와 팔방놀이 등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전통놀이판을 열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거운 축제를 만든다. 트럭공연에서는 교복쇼같은 복고풍 무대가 펼쳐지고, 벼룩시장에서는 헌책상인들이 진열장에 꼭꼮 숨겨둔 값진 고서들을 만날 수 있다.심홍재씨는 “기존의 한시적이고 인위적인 행사 관행은 배제하는 대신 전주의 정서가 담겨져 있는 대안문화를 신철하기 위해 이번 축제를 기획했다”면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생활문화축제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정진우
  • 2002.01.01 23:02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다시 길을 찾아 나서야 하겠지요.강원도에 가서 머무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강원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아마도 험준한 산세와 조용한 정취 그리고 이북 방언과 비슷한 강원도 사람들의 말본새 등 강원도에 대한 제 나름의 심상이 그 막연함을 더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가면 이제껏 살아온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겠지요.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가 있겠지요. 글쓰기에 필요한 냄새 지독한 거름을 만드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머무를 작정은 아닙니다. 평생 걸어도 다 갈 수 없는 길이 수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꾹꾹 눌려있던 역마살을 맘껏 휘두를 계획입니다. 그리고는 국수 가락 뽑듯 글들을 술술 써내고 싶습니다. 무엇을 써야할지를 경험을 통해서 예리하게 알고싶다는 뜻입니다.일년동안 쌀밥 다음으로 많이 먹은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자장면입니다. 전주대학교에 마치 비밀집단처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일명 ‘자장면 모임’이 있습니다. 물론 시를 공부하는 모음입니다. 시 합평을 하기 전에 꼭 칼로리 높은 자장면을 먹는데, 하필 왜 자장면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매서운 회초리질 같은 합평회가 끝나면 자장면으로 채웠던 배에 어느새 찾아온 허기를 이제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질을 감당하기에는 그나마 칼로리 높은 자장면이 제격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한해동안 높은 칼로리를 제공해주신 전주대학교 이희중 교수님과, 교수님과 함께 혹독한 매질을 해준 ‘자장면 모임’ 식구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제가 길을 잃고 맘 편히 강원도로 떠날 수 있게 저의 시를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그 기회를 마련해준 전북일보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처음 글 길을 열어준 ‘흙방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맘 편히 강원도로 떠나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1 23:02

신춘문예 시 <심사평>

응모한 시들의 수준은 고르고 높은 편이었다. 그 동안 여러 대학에서 문예창작 전공이 생겨나고, 창작 강좌를 개설한 사회 교육 기관이 많아져서 문예 창작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활성화된 것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았으나 전반적으로 기교와 수사에 그친 작품, 외양을 깔끔하고 그럴싸하게 꾸미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음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시에 담길 만한 생각을 갈고 다듬어, 기교와 수사의 학습에 더해 정신의 깊이까지 아우른 작품은 아주 드물었다. 시 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되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좋은 시는 아름다운 표현과 곰삭은 생각이 어우러진 곳에서 피어오르는 아주 귀한 꽃인 것이다.마지막 선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해, 선자들은 이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오래 고심하였다. 다들 장점과 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는데 거듭 읽으며 단점이 적은 쪽을 고르기로 했다. 최윤옥의 ‘씨앗’은 어머니의 사랑과 고난을 되새기며 삶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주제를 다룬 깔끔하고 간결한 좋은 작품이었으나 중반의 어수선함이 흠이 되었다. 김인하의 ‘중심의 상처’는 제재를 다루는 정신의 힘과 탄탄한 언어적 기량이 돋보였고, 거의 매 연마다 다르게 제시된 비유의 매개들은 저마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나, 역시 이들이 하나의 의미로 통합되지는 못하여 아쉬웠다. 유상우의 ‘낙화암’은 꽃피는 봄날과 청춘의 번민을 엮어 빚은 아름다운 서정시인데, 화자의 경험과 정서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적어 소품에 머물고 말았다. 송승근의 ‘낡은 구두’는 절제된 언어로 대상의 은유적 내막을 추궁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패기에 찬 작품이었으나, 동봉한 다른 작품들에서 안정되지 못한 표현들이 더러 있어 미덥지 못했다.고심 끝에 우리는 ‘낡은 구두’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신춘문예가 사람보다는 작품에 주는 상이라는 사실에 유념할 때 ‘낡은 구두’는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높았으며 젊은 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선작을 쓴 이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더 좋은 시를 더 자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선에 오르지 못한 다른 분들도 정진하여 좋은 시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정양(우석대 국문과 교수), 이희중(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2.01.01 23:02

[신년특집] 문화평론가 김교선 - 천이두 교수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변했으니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한다. 그러나 제자리에 있을 것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옳다. 물질이 풍족해진만큼 도덕적 타락이 극에 이른 지금. 우리는 새삼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고, 그래서 그 모든 선과 악까지도 스승이라 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 배움의 연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제 아무리 온갖 모든 것이 스승이라해도 진정한 스승은 따로 있다.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스승은 제자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읽게 된다. 스승은 늘 그랬듯이 따뜻했다. 금새라도 눈발이 쏟아져내릴 것 같이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은 날, 스승을 찾아간 제자는 덥썩 큰절을 올렸다. 제자를 반갑게 맞는 노스승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제자는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뵌 길이어서 송구스러움이 크다"고 했지만 스승은 " 그동안 별고없으셨는가"고만 물었다. 아흔 한살의 노스승과 일흔네살 제자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세상일 몰라도 천선생 하는 일은 내 알지' 원로문학평론가 김교선교수와 천이두교수. 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다. 아흔한살의 스승과 일흔네살의 제자가 만나는 일은 오랜만이었지만 전혀 새삼스럽지 않았다. 만나는 일이 잦지 않아도 늘 마음속에 '빛'이 되고 그 '줄기'가 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내 세상 돌아가는 일은 잘 모르지만 요즘 천교수가 아주 바쁜줄 알고 있었어요. 소리축제로 워낙 바쁘시더만.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좋아." 그랬다. 육체적 노동이 힘들어 잠깐씩 바깥 출입하는 일 조차 금한지 오래되었지만 노스승은 예외없이 제자의 근황을 챙겨두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 참 잘했어요. 천교수가 아마 판소리를 그렇게 추켜들고 나서지 않았다면 판소리를 음악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많이 어려웠을거예요. 나도 그때 찬성했어." 천교수가 판소리를 학문적 영역으로 연구하겠다고 나섰을 때 격려하고 힘을 주었던 스승은 제자의 활동이 자랑스러운 듯이 보였다. '욕심났던 제자 대학원에서 만나 반가왔어요' 천교수는 전북대 졸업반때 김교수를 처음 만났다.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은 것은 대학원 시절이라 했다. "내가 천교수를 처음 보았을 때, 참으로 명석하고 아주 예쁜 미소년 같았어요. 랭보같은 인상이었지. 인상만으로도 문과학생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문학에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었어요. 욕심났던 제자를 대학원에서 만나니 반가왔지." 옆에 있던 제자의 얼굴에 홍조가 띠었다. "아마 천교수 같은 사람들은 그 시절 많이 방황했을 거예요. 이념의 갈등속에서 예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얼마나 많은 회의가 있었을 것인지 짐작이 가요. 우리 민족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이지만 살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문학은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막막했던 시절이었어." 노스승은 그때 별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아팠지만 제자는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서더라고 들려줬다. "선생님은 말씀이 유창하시지는 않았지만 늘 정확하고 꼼꼼하게 학문적 지식을 강독하셨지요. 늘 꼿꼿하고 정도를 가시는 선생님을 곁에서 뵙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가르침을 받았어요. 선생님이 공부하셨던 시절은 창백한 지식인의 자기 성찰이나 내면세계에 대한 천착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선생님께서도 예외가 아니셨어요. 선생님이 내려주신 문학비평의 이론적 바탕과 시각은 학문적 방향과 연구방법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지요." '문학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해요' 스승은 요즈음 들어서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읽기 어렵다. 눈이 어두어지고 정신이 피곤해진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작고한 미당의 문학세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주저없이 털어놓았다. " 미당의 친일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그의 문학성까지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문학은 문학으로 이야기해야지요. 참여문학과 순수문학도 그래요. 문학은 흑백논리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예요. 작품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물론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상을 앞세우고, 사회참여문학만이 훌륭한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스승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연(?)해졌다. "옳은 말씀입니다. 얼마전 한 신문사에서 미당의 친일문제에 대해 한마디하라고 연락이 왔더군요. 제가 화를 냈습니다. 미당은 누가 뭐라해도 우리문학사의 거목이고 큰 시인이 이다. 친일의 행적에 대한 것을 묻어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만 앞세워 미당의 문학까지 훼손시키고 상처내려는 의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어떤 것이 우선이어야하는지는 가릴 줄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비평을 함에 있어 열정과 냉정함을 견지하라' 스승의 문학관이나 세계관은 제자에게도 고스란히 안겨 있었다. 이들의 문학평론의 관점이 문득 궁금했다. 김교수의 비평적 관점은 '작품 그 자체에 철저하게 밀착하는 것'으로 워낙 정평이 나있다. 이런 특징을 천교수는 "선생님은 작품 자체에 밀착하여 작품의 실상을 따뜻하게 심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그 속에 몰입하거나 그것을 '나'속에 흡수해버리거나 하는 일없이 항상 대상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중용적 자세를 견지하셨다."고 명쾌하게 소개했다. 비평을 함에 있어 열정과 냉정함을 아울러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비평가가 간직해야할 기본적인 덕목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터이다. 그런점에서 김교수는 후학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는 스승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어요. 문학에 있어서도 사회성은 나에게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사회라는 문제에 무게를 두게 되더군요. 그렇다고해서 내 비평적 관점이 달라진 것은 아니예요. 예술성을 획득하지 못한 예술은 이미 자격이 없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노스승의 주장은 더욱 또렷해지고, 힘이 더해졌다. 천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자리에서는 늘 '문학'이 화두였다고 들려줬다. "좀체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어요. 일제치하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랄수도 있지만, 평생을 명예나 속세의 허명에 마음 두지 않고 살아오시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오시려 부단히 노력해오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귀중한 가르침이지요." 노스승과 제자가 모처럼 사진을 찍었다. 윳음이 활짝핀 얼굴위에 세월의 흐름이 아름답게 놓여있다. 세상의 인연은 언제가 끊어질 일이지만 이 인연의 아름다움은 또다른 흔적으로 남겨질 것이 아닌가. /취재 뒷이야기/ 김교수가 수십년째 살아온 집은 전주 금암초등학교 북쪽 담을 따라가다 마지막쯤에 이르러 야트막하게 올라서는 좁은 골목길에 있는 놓여있는 낡고 오래된 집이다. 선생의 손길을 받지 못한 좁은 정원의 나무들이 앙상했다. 선생은 근래들어 전화 받는일을 꺼린다. 잘 들리지 않는 탓이라고 했다. 세월을 감출수 없으니 당연한 일임에도 선생은 인터뷰 내내 미안해했다. 선생은 누구에게나 존칭을 썼다. 천교수는 “선생님 덕분에 나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칭을 쓴다”며 웃었다. 스승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아름다운 미덕으로 대물림되는 셈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내림은 또있다. 매실주 예찬이다. 김교수는 전북대 재직시절 가람 이병기선생 덕분에 매실주를 익혔다. 해마다 매실주를 담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주로 즐겨온 것은 그때부터이다. 찾아오는 제자들에게도 이 매실주는 고스란히 전수됐다. 천이두교수 집의 매실주 전통은 문화계에서 알릴만큼 알려져있는데 이 또한 김교수로부터 물림한 것이라했다. 이날 자리에서도 매실주 예찬은 한동안 이어졌다. 김교수나 천교수 건강비결이 날마다 한잔씩 곁들이는 ‘매실주 한잔’에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노스승은 제자의 성화에도 끝내 집밖에까지 나섰다. 몇년사이에 많이도 변해버린 골목길에 스승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2.01.01 23:02

새해 새소망 횃불 밝히는.. '제야축제 보러 오세요'

2001년 마지막 밤을 어디서 보낼까. 붉게 물드는 낙조가 장관인 서해를 찾아 해넘이를 할까. 아니면 분위기 있는 식당을 찾아 조용하게 한해를 마무리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집에서…. 31일밤 무엇을 할 지 어디갈 지 고민하고 있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은 두터운 옷을 껴입고 풍남문으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어두운 추억과 아픈 기억을 제야의 종소리에 날려버리고 희망과 기대속에 2002년 새해 첫날을 맞이할 수 있는 ‘2001 제야’행사가 기다린다. 올해 행사의 화두는 ‘2002전주월드컵’. 월드컵이 열리는 해를 강조하고 문화월드컵 이미지에 걸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월드컵 성공 개최를 다짐하는 자리다. 이날 밤 10시부터 풍남문에서는 소망풍선만들기, 월드컵 로고기념품 증정, 세찬나눔, 풍물패 공연 등이 마련돼 제야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제야행사의 개막을 알리는 1부 ‘보내고 맞으며’는 새해를 깨끗하게 맞이하기 위한 퍼포먼스와 창작무용이 열린다. 시민들이 공연을 지켜보며 차분하게 해를 보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무대다. 강령탈춤 ‘불림’이 민가와 궁중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나례(儺禮)를 사자탈춤으로 풀어내며 ‘춤사랑 해오름’단원 5명은 희망의 깃발과 염원의 횃불을 이용한 창작무용을 선사한다. 고수 조용안씨는 큰북을 두드리며 ‘영고’를 연출, 시민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 첫시간을 기다리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2부 ‘천지에 울리는 희망’은 새로운 해를 맞는 희망을 노래하는 시간. 시민들이 우렁차게 외치는 “10,9,8,7,……2,1”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첫번째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새해를 맞는 불꽃놀이가 이어지고 두번째 종소리가 끝나면 임오년의 상징인 기마단이 성화와 월드컵기를 들고 등장한다. 세번째 종소리에 맞춰 새해의 소망을 담은 2002개의 풍선을 밤하늘에 띄워보낸다. 네번째 종소리가 끝나면 ‘섬진강 지킴이’ 김용택 시인이 낭송하는 축시가 풍남문과 참가자 가슴속에 울려퍼진다. 이어지는 전주시립합창단의 하모니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마지막 3부 ‘하나되어 힘차게’에서는 백마응원단의 치어쇼와 함께 그룹 ‘천지소리’와 ‘소나무’가 신명난 한마당 잔치를 벌이며 전주월드컵 성공개최를 기원한다.

  • 문화일반
  • 임용묵
  • 2001.12.31 23:02

문화예술인이 말하는 '나의 2001년'

2001년 전북 문화예술계는 그 어느해보다도 굵직한 행사와 사업들이 뒤를 이었다. 그만큼 드러난 이슈도 많았고, 성과와 아쉬움도 많았다. 올해만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의 활기있는 활동이 이어진적도 드물다. 올한해를 보내는 문화예술인들의 감회가 각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해동안 문화예술 현장에서 분주하게 뛰었던 문화예술인들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이들은 “열심히 뛰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 많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이들이 꼽는 보람과 아쉬움을 2001년 마지막날 지면에 옮겼다. '우리 소리의 가능성 확인' - 천이두(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소리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치러낸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우리 소리의 세계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이번 축제 역시 많은 시행착오로 노력한만큼의 성과를 이어내는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소리의 가능성을 보람으로 꼽는다면 축제의 새로운 형식과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올해 축제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내년의 소리축제는 보다 많은 문제점들이 보완되고 개선된 소리잔치가 될 것이다. '가람 문학세계 조명 큰 의미' -최승범(시인·전북대 명예교수)스승 가람 이병기선생이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고, 스승을 기리는 행사가 전주에서 집중적으로 열린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특히 시조와 그림, 음악의 만남, 학술세미나 등으로 이어진 다양한 추모행사는 스승을 다시 한번 우러러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가람선생이 1940년 고시조를 엄선해 발간한 ‘역대시조선’의 해설집 출간 계획이 해를 넘기게 되어 매우 아쉽다.'지역주민들의 참여가 과제' -이동엽(전주산조예술제 조직위원장·전통문화사랑모임 대표)무엇보다 민간주도로 펼쳐지는 산조예술제가 전주 교동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점이 뿌듯하다. 그러나 교동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산조예술제가 풀어가야할 숙제다. 이와 함께 올해는 전통문화사랑모임이 전주시로부터 주조박물관 및 한옥체험관 운영을 수탁받았다. 열의는 넘치지만 갖추어야할 여건이 만만치 않다. 전문인력들이 많이 합류한 만큼 주조박물관 및 한옥체험관이 청소년교육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역문화인력 양성 큰 과제' -유기상(전주시 문화영상산업국장)문화행정의 기틀을 다진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고 싶다. 장기적 문화예술 비전아래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전통문화시설 개관이 가시화됐으며 민간위탁도 잡음없이 추진되어 다행이다. 풍남제와 영화제 대사습놀이 등 4대축제가 전주의 본축제로 큰 기쁨이다. 보람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는데, 각종 사업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화인력양성문제가 그것이다. 단기간내에 해결되지 않는 과제인만큼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것 같다.'회원제 인프라구축 실현해야' -서현석(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감독)지난 9월 문을 연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전북문화의 디딤돌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의미다. 그러나 교통문제나 회원제같은 인프라구축이 늦어지면서 소리전당이 도민들의 생활권 속에 자리잡기까지에는 너무도 많은 과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할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년에는 소리전당의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야하는 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아우를 수 있는 작업으로 민간위탁의 모범을 보이겠다.'한국화 전통기법 재현 의미' -이철규(한국화가·예원대 조형미술학부 교수)배채법 등 한국화의 전통기법을 살려낸 초상화 작업이 전시회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아쉬움이기도 하다. 신설 초기의 학교에 몸담고 있는 덕분에 많이 분주했다. 그런중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작업이 결실을 맺게 되어 보람을 얻었지만 늘 시간에 쫒기어, 기대했던만큼의 형식적 결실을 이루어내지 못한 아쉬움 도한 상대적으로 크다. 내년에 가질 서울전에서는 더 성숙된 그림을 보이고 싶다.'지역미술 특성담아내기 주력' -구혜경(서신갤러리 전시기획자)올 한해 전시 일람표를 바라보며 감정의 희비가 엇갈렸다. 전북지역의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한 3인 릴레이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미가 깊었다. 젊은 작가들에게 실험적 장을 마련하거나 한국화의 전통방식을 재현한 전시 등은 지역미술계에 어느정도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좀더 여러 기획들을 통해 지역미술의 다양함과 특성을 반영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국악원노조 출범 큰 의미' -이항윤(전북도립국악원노동조합 위원장)너무도 힘들었던 한해였다. 도립국악원 민간위탁이 불거지면서 안아야 했던 상처가 너무 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민간위탁국악원노조가 출범해 도립국악원 예술단과 행정조직의 위상이 상하관계가 아닌, 함께 방향을 모색하는 동등한 입장으로 국악원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본다. 신뢰와 대화를 통해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고, 도민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포괄적인 공연무대를 열어가고 싶다. '지역문화 역량 확인 '보람' -오선진(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 홍보담당)올상반기엔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탭으로, 하반기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어린이소리축제의 실무를 맡았다. 지역의 대규모축제에 동참하며 지역문화를 읽어내고, 인프라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 보람이었다. 다만 이들 행사를 치르면서 정작 지역인력이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런점에서 지역의 문화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내년 전주국제영화제는 지역인력들의 경험이 어느정도 축적된 만큼 제의미를 잘살려내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무대데뷔 30주년의 의미' -김화숙 (원광대교수)올해는 개인적으로 무대 활동을 시작한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서울시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아 예술의전당에서 현대무용단 사포와 함께 30주년 기념공연작품 '달이 물속을 걸을 때'를 올렸는데 무엇보다도 제자들과 함께한 의미가 각별했다.그러나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정작 이지역에서 작품을 올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창작작품들이 한두번의 무대공연으로 막을 내려야하는 현실은 공연예술 전공자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장벽이다.그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내년에는 지역성을 담아내는 창작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정진우
  • 2001.12.31 23:02

[김병기의 한문속 지혜찾기] 송구영신(送舊迎新)

寒燈耿耿漏遲遲, 送舊迎新了不欺.한등경경루지지, 송고영신료불기.찬 겨울 밤 등불은 깜빡이고 물시계의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은 맞는 일은 속임(어김)이 없구나.당(唐)나라 말기로부터 송(宋)나라 초기에 걸쳐 산 대학자이자 시인인 서현(徐鉉)의 詩句이다. 12월 31일.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아니다. 보내는 날이 아니라, 세월이 제 스스로 가는 날이다. 누군들 한 해를 보내고 싶어서 보내랴. 무심한 게 세월이라서 인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서두름도 게으름도 없이 항상 같은 속도로 가는 것이 세월이요, 그 세월을 싣고서 억만 년을 한결같이 한 길만 오가는 융통성 없는 바보가 바로 태양이다. 물시계의 물소리를 듣듯 시계를 들여다보면 시계 바늘이 몹시도 더디게 가는 것 같더니만 어느 새 한 해가 다 가서 작년 오늘도 그랬듯이 오늘 섣달 그믐날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은 어김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새해라고 해본들 별게 아니다. 태양은 어제 지던 대로 지고 또 어제 떠오르던 그 모습 그대로 떠오른다. 사람이 아무리 묵은해와 새해를 나누어 이야기해도 창공에 떠있는 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다! '송구영신'은 태양의 이야기도 아니고 세월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 마음의 이야기이다. 옛 것을 털어 버리고 보다 새로워지고 싶은 우리들 마음의 이야기인 것이다. 마음에 남아 있는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제야의 종소리에 실어 날려보내고 내일은 정말 깨끗하고 홀가분한 나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자.寒:찰 한 燈:등잔 등 耿:불빛 경 漏:물 샐 루 遲:더딜 지 送:보낼 송 舊:옛 구 迎:맞을 영 新:새로울 신 了:깨달을 료 欺:속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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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2.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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