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옻칠 분야 1인자 김을생 명인 "목기 본 고장에서 목공예 전승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지리산(智異山) 자락에 위치한 남원(南原). 이곳에서는 예부터 목기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특히 실상사라는 큰 절이 있는 산내면은 자천타천 이 나라 목기의 원조, 발생지로 거론된다. 현재 8점의 보물이 있는 실상사는 한 때 1000명이 훨씬 넘는 스님들이 머물던 대규모 사찰로 많은 양의 목기를 필요로 했다. 또 목기장옻칠장들이 다양한 나무와 옻을 구하기에 넉넉한 지리산은 더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지난 1일 산내면 백일리 금호 공예를 찾아 국내 옻칠분야 1인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김을생(80) 명인을 만났다.목기의 본 고장에서 목공예를 전승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분야에 정성을 다하여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거늘 이후 자손들은 가업이 길이 빛나도록 갈고 닦고 할지어다.30년 전 유훈으로 써놓은 이 글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기도 했다.-옻칠 작업 중 가지시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천직이라는 소명 의식입니다. 자기 분야에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겁니다. 돈을 잘 벌고 그런 게 아니라 일 평생 한 번 나서 살다 죽는데, 자부심과 많은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만족하기가 쉽지 않지만 소소한 곳에서 만족을 찾으면 그게 좋은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대도 더 정성을 들여서, 돈을 잘 벌건 못 벌건 혼신의 힘을 다 해 이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옻칠과 목기 제작 일을 가문에서 3대째 이어오고 있는데요.이제 외아들 연수(45) 4대째입니다.(웃음) 사람이 자기 분야를 떠나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몰두하는 성향이 강한데, 일본이 우리한테 못된 짓을 하긴 했지만 그건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1972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만42년째가 됩니다. 1969년에 공병대위로 예편했는데 군에 입대 할 때만 해도 이 분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전통 가업을 중시하고, 가업을 대대로 이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전라목기기술중학교(1951~1968년)에서 배운 고향의 목기를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내가 전라목기기술중학교 제1회 졸업생입니다. 이후 전주공고에 들어갔지요.-옻은 어디서 구하시나요.한반도에서는 옻나무의 3대 주산지로 평북 태천과 강원 원주, 지리산 자락의 경남 함양 마천면을 꼽습니다. 태천은 이북이니 거래를 할 수가 없고, 원주마천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산내면에서 목기가 발달한 것은 마천과 인접해 나무와 옻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목기도 직접 만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힘들지는 않으셨나요.힘들었지요. 옻나무에서 칠을 내려면 세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무에 흠집을 내고, 칠을 긁어내고, 그릇에 담는 사람이 필요한데, 옻 내는 사람은 꼭 문둥병자처럼 피부가 좋지 않습니다. 작업도 힘들기 때문에 누가 일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이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전통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비단 목기만 그렇겠습니까만, 요즘 우리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같습니다. 희망이 있고 돈을 잘 벌면 기술을 앞 다퉈 배우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벌려 하다 보니 전통 공예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은 조상들이 물려주는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 그 문화를 유지를 해야 긍지를 가질 수 있고 국격도 나오는 겁니다. 그저 돈으로만 판단해 전통문화를 없애버리면 국격이 안 서고 근본이 없어져요. 관이나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줘서 전통의 명맥을 잇는 게 좋지 않냐는 생각입니다.-요즘 웰빙 바람이 불어 목기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가 없던 옛날에는 목기가 주가 돼서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목기 팔아서 학교를 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장사 속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작품으로 만들어서 파는 사람도 있고 한데, 홈쇼핑은 공업용이 많을 겁니다. 우리 같은 노인은 손으로 닦고 칠하고 그러지요. 또 목기가 중국과 거래하기 전에는 아주 잘 팔렸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교류하면서부터 값싼 목기가 들어와서 상당히 타격을 많이 입어 목기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섰습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몰라요. 중국산인지 남원산인지.-중국산과 국산 목기가 품질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품질은 사실 대동소이하고, 값은 중국산이 5배 정도 저렴합니다. 그 사람들 인건비가 적게 들고. 목기 소재를 구하기도 좋으니까 값이 저렴한 겁니다. 우리는 원재료도 비싼데다(옻 50g당 12만원)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 비싸고, 그러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죠. 중국에서 옻칠을 가장해 화학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공예품의 품질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옻칠이 1000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옻의 장점은 무엇인가요.옻은 첫째 방수 역할을 합니다. 물속에도 잘 견뎌 냅니다. 중국이 옛 송나라 때 신안 앞바다에서 무역선이 뻘 속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발견된 옻칠된 목기가 모두 멀쩡하니 좋더라 이 말입니다. 송나라가 700년 전 이야기아닙니까. 또 옻은 침투력이 강합니다. 한 번 나무에 칠하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강력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벗겨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한 번 딱 칠해놓으면 불에 내화성이 또 있습니다. 불에 잘 안 탄단 말입니다. 넷째 세월이 갈수록 목기에 윤기가 흐르고 색상이 좋아집니다. 또 의학적으로는 옻을 먹기도 하잖아요. 구충제 역할도 하고 위장이 좋아져 혈색도 좋아집니다. 끝으로 옻칠한 목기에 음식을 담아두면 잘 상하지를 않아요. 밥그릇으로 사용하면 속에 있는 미생물이 죽는다고 합니다.-후학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사람이 너무 돈 갖고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80평생을 살아 보니 많이 벌려 한다고 한 번에 돈이 벌리는 게 아니고, 자기 분야에 신경을 쓰고 몰두를 하고, 그렇게 자기 사업에 실패를 겪어 봐야 그 다음에 성공이옵디다. 나도 한 때 죽을 마음도 먹었습니다. 단,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국가에서 좀 지원을 확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남에서 무형문화재를 위한 환경 조성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주 그런 지역에서 아주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원 옻칠 목기는 통일신라 실상사서 첫 시작, 조선시대 궁궐 제기로 사용옻칠이란 옻나무의 수액을 칠한 것을 말한다. 옻칠을 한 목기는 방수와 방습, 심지어 화학적 반응에조차 탁월한 보존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옻칠 목기는 수명이 천 년에 이른다. 실제 옻은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금속이나 목공도장용(木工塗裝用) 도료로 가장 소중히 여겨졌다.남원의 옻칠목기는 산내면에 있는 통일신라의 사찰 실상사(흥덕왕 828년)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궁궐에서 사용한 제기는 모두 남원 목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기라도 표면에 옻칠을 하지 않으면 목기의 내구성이 약해 갈라지거나 변색되는 약점이 있다. 남원 목기가 지존의 지위를 누린 것은 뛰어난 옻칠 기술로 이를 뒷받침 한 옻칠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전북에는 김을생 명인을 비롯해 김광열노동식김영돌박강용안곤 등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목공예옻칠 장인들이 살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유네스코 각국 대사 등을 대상으로 사찰음식체험행사를 개최하며 행사에 사용한 발우(鉢盂바리)를 모두 선물했는데, 여기에 쓰인 발우 110세트는 모두 김을생 명인이 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