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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전주효자문화의집 맡고 있는 강현정 관장 "작은 문화공동체 키워야 예술 살찐다"

작은 문화공동체들이 공유한 정보가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도달해 사람 중심의 정책이 펼쳐져야 합니다. 마을, 동네 단위에서 시작해 지역사회까지 확대한다면 문화 향유라는 말이 보편화될 것입니다.5년째 전주효자문화의집 관장을 맡고 있는 강현정 관장(40)은 생활 권역의 문화시설간 연계가 필요하다며 작은도서관, 복지관, 문화의집 등이 같은 지역에 있지만 서로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많고 시민이 종합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강 관장은 동아리에서 시작해 동호회로 발전하며 작은 문화공동체가 많아지고 네트워크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런 신념은 문화강좌 대신 동아리 중심의 운영 원칙에 반영했다. 현재 일주일 단위로 효자문화의집을 이용하는 동호회는 28개다.그는 10년이 넘은 대금 연주 동아리의 경우 좀더 자치적인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동호회로 커졌다며 1차로 배운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 자생적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아울러 그는 동호회 대표자 모임체를 지난 2005년도부터 추진해 다른 동호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혀 함께 축제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5개 문화의집이 모인 전주문화의집협회는 지난 2013년부터 전주시민문화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올 가을에도 이용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효자문화의집 소속 자스민예술단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5~10월 삼천에서 동호회가 모여 매달 2차례 무대에 서며 올해 4년차가 된다.강 관장은 이런 과정에서 기획, 인적 자원, 지원 체계 등을 안내보완하며,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그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 주자를 기치로 수 년간 세뇌에 가까운 설득을 한다며 작은 문화공동체가 커가는 모습이 가장 보람되다고 들려주었다.강 관장은 지난 2005년부터 문화의집에서 근무했다. 대학에서는 생활체육을 전공해 에어로빅,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 청소년지도사로 들어섰다. 이후 문화의집 프로그램 기획자에서 관장까지 맡게 됐다. 10년간 문화시설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한 그가 절실하게 느낀 점은 고용 안정성이었다.그는 문화시설의 사람이 자꾸 바뀌면 이용자의 만족도나 향유의 질이 낮아진다며 생활체육이나 청소년 분야의 인력은 정부가 육성하는 제도가 있지만 문화 분야는 미약해 아쉽다고 말했다.아울러 그는 아마추어 문화예술인의 증가와 조직화로 인한 전문 문화예술인과의 영역 갈등에 대해서는 수평적 구조의 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짚었다.강 관장은 전문예술인과 생활문화동호회는 분명히 다른 만큼 문화와 예술 영역을 구분해야 하며, 예산 배분은 좀더 고민해야 한다면서 생활문화에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참여하고 매개자는 가교 역할을 하며 향유층을 두텁게 해, 결국 이들이 예술을 살찌워야 한다고 제시했다.그의 꿈은 동네 문화전도사 양성이다.그는 동네 모든 문화시설의 정보를 입소문 내는 주민 그룹이 자체적으로 형성되도록 지난 2006년도부터 문화자원봉사단을 시작했다며 이들에게 꾸준한 교육을 실시해 문화공동체의 핵심으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4.07 23:02

국내 옻칠 분야 1인자 김을생 명인 "목기 본 고장에서 목공예 전승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지리산(智異山) 자락에 위치한 남원(南原). 이곳에서는 예부터 목기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특히 실상사라는 큰 절이 있는 산내면은 자천타천 이 나라 목기의 원조, 발생지로 거론된다. 현재 8점의 보물이 있는 실상사는 한 때 1000명이 훨씬 넘는 스님들이 머물던 대규모 사찰로 많은 양의 목기를 필요로 했다. 또 목기장옻칠장들이 다양한 나무와 옻을 구하기에 넉넉한 지리산은 더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지난 1일 산내면 백일리 금호 공예를 찾아 국내 옻칠분야 1인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김을생(80) 명인을 만났다.목기의 본 고장에서 목공예를 전승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분야에 정성을 다하여 사는 것도 즐거운 일이거늘 이후 자손들은 가업이 길이 빛나도록 갈고 닦고 할지어다.30년 전 유훈으로 써놓은 이 글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기도 했다.-옻칠 작업 중 가지시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천직이라는 소명 의식입니다. 자기 분야에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겁니다. 돈을 잘 벌고 그런 게 아니라 일 평생 한 번 나서 살다 죽는데, 자부심과 많은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만족하기가 쉽지 않지만 소소한 곳에서 만족을 찾으면 그게 좋은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대도 더 정성을 들여서, 돈을 잘 벌건 못 벌건 혼신의 힘을 다 해 이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옻칠과 목기 제작 일을 가문에서 3대째 이어오고 있는데요.이제 외아들 연수(45) 4대째입니다.(웃음) 사람이 자기 분야를 떠나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몰두하는 성향이 강한데, 일본이 우리한테 못된 짓을 하긴 했지만 그건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1972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만42년째가 됩니다. 1969년에 공병대위로 예편했는데 군에 입대 할 때만 해도 이 분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전통 가업을 중시하고, 가업을 대대로 이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전라목기기술중학교(1951~1968년)에서 배운 고향의 목기를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내가 전라목기기술중학교 제1회 졸업생입니다. 이후 전주공고에 들어갔지요.-옻은 어디서 구하시나요.한반도에서는 옻나무의 3대 주산지로 평북 태천과 강원 원주, 지리산 자락의 경남 함양 마천면을 꼽습니다. 태천은 이북이니 거래를 할 수가 없고, 원주마천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산내면에서 목기가 발달한 것은 마천과 인접해 나무와 옻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목기도 직접 만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힘들지는 않으셨나요.힘들었지요. 옻나무에서 칠을 내려면 세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무에 흠집을 내고, 칠을 긁어내고, 그릇에 담는 사람이 필요한데, 옻 내는 사람은 꼭 문둥병자처럼 피부가 좋지 않습니다. 작업도 힘들기 때문에 누가 일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이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전통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비단 목기만 그렇겠습니까만, 요즘 우리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같습니다. 희망이 있고 돈을 잘 벌면 기술을 앞 다퉈 배우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벌려 하다 보니 전통 공예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은 조상들이 물려주는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 그 문화를 유지를 해야 긍지를 가질 수 있고 국격도 나오는 겁니다. 그저 돈으로만 판단해 전통문화를 없애버리면 국격이 안 서고 근본이 없어져요. 관이나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줘서 전통의 명맥을 잇는 게 좋지 않냐는 생각입니다.-요즘 웰빙 바람이 불어 목기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가 없던 옛날에는 목기가 주가 돼서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목기 팔아서 학교를 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장사 속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작품으로 만들어서 파는 사람도 있고 한데, 홈쇼핑은 공업용이 많을 겁니다. 우리 같은 노인은 손으로 닦고 칠하고 그러지요. 또 목기가 중국과 거래하기 전에는 아주 잘 팔렸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교류하면서부터 값싼 목기가 들어와서 상당히 타격을 많이 입어 목기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섰습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몰라요. 중국산인지 남원산인지.-중국산과 국산 목기가 품질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품질은 사실 대동소이하고, 값은 중국산이 5배 정도 저렴합니다. 그 사람들 인건비가 적게 들고. 목기 소재를 구하기도 좋으니까 값이 저렴한 겁니다. 우리는 원재료도 비싼데다(옻 50g당 12만원)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 비싸고, 그러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죠. 중국에서 옻칠을 가장해 화학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공예품의 품질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옻칠이 1000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옻의 장점은 무엇인가요.옻은 첫째 방수 역할을 합니다. 물속에도 잘 견뎌 냅니다. 중국이 옛 송나라 때 신안 앞바다에서 무역선이 뻘 속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발견된 옻칠된 목기가 모두 멀쩡하니 좋더라 이 말입니다. 송나라가 700년 전 이야기아닙니까. 또 옻은 침투력이 강합니다. 한 번 나무에 칠하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강력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벗겨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한 번 딱 칠해놓으면 불에 내화성이 또 있습니다. 불에 잘 안 탄단 말입니다. 넷째 세월이 갈수록 목기에 윤기가 흐르고 색상이 좋아집니다. 또 의학적으로는 옻을 먹기도 하잖아요. 구충제 역할도 하고 위장이 좋아져 혈색도 좋아집니다. 끝으로 옻칠한 목기에 음식을 담아두면 잘 상하지를 않아요. 밥그릇으로 사용하면 속에 있는 미생물이 죽는다고 합니다.-후학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사람이 너무 돈 갖고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80평생을 살아 보니 많이 벌려 한다고 한 번에 돈이 벌리는 게 아니고, 자기 분야에 신경을 쓰고 몰두를 하고, 그렇게 자기 사업에 실패를 겪어 봐야 그 다음에 성공이옵디다. 나도 한 때 죽을 마음도 먹었습니다. 단,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국가에서 좀 지원을 확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남에서 무형문화재를 위한 환경 조성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주 그런 지역에서 아주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원 옻칠 목기는 통일신라 실상사서 첫 시작, 조선시대 궁궐 제기로 사용옻칠이란 옻나무의 수액을 칠한 것을 말한다. 옻칠을 한 목기는 방수와 방습, 심지어 화학적 반응에조차 탁월한 보존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옻칠 목기는 수명이 천 년에 이른다. 실제 옻은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금속이나 목공도장용(木工塗裝用) 도료로 가장 소중히 여겨졌다.남원의 옻칠목기는 산내면에 있는 통일신라의 사찰 실상사(흥덕왕 828년)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궁궐에서 사용한 제기는 모두 남원 목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기라도 표면에 옻칠을 하지 않으면 목기의 내구성이 약해 갈라지거나 변색되는 약점이 있다. 남원 목기가 지존의 지위를 누린 것은 뛰어난 옻칠 기술로 이를 뒷받침 한 옻칠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전북에는 김을생 명인을 비롯해 김광열노동식김영돌박강용안곤 등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목공예옻칠 장인들이 살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유네스코 각국 대사 등을 대상으로 사찰음식체험행사를 개최하며 행사에 사용한 발우(鉢盂바리)를 모두 선물했는데, 여기에 쓰인 발우 110세트는 모두 김을생 명인이 제작한 것이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4.03 23:02

'춘향제 전설' 조갑녀 지다

남원 권번 최후의 예인이자 춘향제의 전설로 평가받던 조갑녀 명인이 지난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1923년 남원 권번의 악기 선생이었던 부친 조기환 씨의 다섯 딸 가운데 맏이로 태어난 조 명인은 조선후기 명무(名舞) 이장선 옹에게서 6살 때부터 춤을 배웠다.그는 타고난 끼와 몸놀림으로 남원 일대에 춤은 역시 조갑녀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1931년 제1회 춘향제 때 9세의 예기(藝妓)로 광한루에서 펼친 승무 공연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조 명인은 이후 10여년 간 춘향제에서 살풀이춤, 승무, 검무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으나 1941년 결혼과 함께 춤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30년 후인 1971년과 1976년 남원 국악계 인사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춘향제 무대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등 철저하게 춤의 본능을 숨기고 살았다. 그런 조 명인은 전통공연 기획자의 끈질긴 설득으로 2007년 10월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어머니의 춤을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조 명인은 제자인 딸들에게 우리 춤은 무거워야 깊은 맛이 나고 가치가 있다. 그 무거움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으니 천하없이 좋은 가락도 무겁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춤은 곧 마음이다. 몸으로 배워 마음으로 춰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빈소는 건국대 장례식장 104호실에 마련됐다. 고인은 3일 오후 남원 국악의성지로 모셔진다.

  • 문화일반
  • 홍성오
  • 2015.04.03 23:02

[⑤ 청명] 농사일정 결정하는 중요한 절기

청명은 양력 4월 5일 경으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들며, 24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다. 이 때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300°로서 청명날에 식목일이 들어 있어 나무 심기에 적합한 계절이다.청명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날씨가 맑고 밝은 날이라는 뜻이다. 이 무렵이면 기온이 10°C를 넘어 한층 물오른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청명, 참 아름답게 청명한 봄날이다. 날씨를 이야기할 때 “청명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서 청명의 의미를 알 수 있다.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예쁜 꽃들을 자랑하니, 양지 바른 땅에서는 제비꽃들도 뒤질세라 앙증맞게 피어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청명 15일 동안 5일씩 삼 후(三候)로 나누어 초후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종달새가 지저귀며, 무지개가 봄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중후에는 세시기 청명조(歲時記淸明條)에 따르면 이 때 느름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 주는 행사를 했다. 다음 ‘농사력’으로는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자손이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 줄 재목감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神) 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을 하지 않아도 무탈하다고 여 여러 가지 풍속을 행하였다.사계절이 자기의 본색을 절정으로 뽐내는 절기는 계절의 분기점인 기(基)절기 ‘춘분·하지·추분·동지’ 직후에 오는 절기다. 그러니까 봄은 춘분 다음 청명에서, 여름은 하지 다음 소서에서, 가을은 추분 다음 한로 에서, 겨울은 동지 다음 소한에서, 각각 절정(絶頂)에 이른다.청명은 찬 음식을 먹는 명절인 한식과 날자가 비슷하다. 한식과 같은 날이 되거나 혹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 청명이 든다. 그리하여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이 즈음에는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불이 나기 쉽다. 그래서 한식 때에는 불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로, 설날 ·한식 ·단오 ·추석, 4대 명절 중에 하나다. 설날 다음으로 오는 두 번째 명절인 것이다. 옛날 풍속에는 이 날이 되면 왕가에서 종묘(宗廟) 이외에 영녕전에 모신 선왕의 폐위된 임금과, 세자로 돌아간 분과, 후궁인 빈들의 제사를 지냈다. 세상을 불행하게 살다 떠나간 왕족을 1년에 한 번 지내는 제사인 것이다. 옛 주나라의 예식에는 1년에 다섯 번 불을 새로 만들기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본 따서 청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불을 새로 만드는 것을 ‘개화(改火)’라고 하는데, 옛 날 내병조에서는 매년 이날과 음력 6 월의 토왕일에 마른나무를 뚫고 비벼서, 불을 새로 만들어 각 궁전과 관청, 그리고 대신의 집에 나누어 주는 풍속을 행하였다.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해 봄 일을 시작하므로 이 날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또, 천수답(天水畓)이나 물이 넉넉치 못한 논에서는, 봄철 논물가두기를 하여 물이 부족한 모내기 때 유용하게 활용 했다. 이처럼 농사짓는 방법은 변했어도 예나 지금이나 청명절기는 본격적인 농사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농사지을 시기와 그에 따른 농사일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절기이므로 항상 농부들의 일손은 바쁘기만 하다.청명절기에 부르는 농가월령가에는 이런 노래가 있다.3월은 늦은 봄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온갖 꽃은 활짝피고 새소리 갖가지라, /대청 앞 쌍제비는 옛 집을 찾아오고, / 꽃밭에 벌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스럽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조상님께 감사함을 술 과일로나 펴오리라.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이 첫째로다. (중략)

  • 문화일반
  • 기고
  • 2015.04.03 23:02

전북 미술 팸플릿 전문 김철곤씨 "기회 없는 미대 졸업생 전시 후원 보람"

순수 예술을 전공한 신진 작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원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후원 전시를 시작했습니다.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차례 도내 미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초대전을 연 모던칼라기획 김철곤 대표(55)는 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거나 장삿속에 이용되는 후배를 보면 안타깝다며 미술인을 상대로 매출을 올리는 만큼 일부는 돌려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비를 들여 진행했다고 말했다.김 대표는 도내에서 미술 전시의 홍보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다. 업자이기 이전에 미술학도였다. 이런 출신이 그가 후배를 응원하는 바탕이 됐다. 후배 사랑에 교동아트미술관은 전시장을 무료로 대관했고 미술품 운송 업체인 그림창고도 뜻을 같이 했다.김 대표는 용케도 후원전시의 참여자가 지금도 계속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각 대학 교수의 추천이나 졸업작품전의 홍보물을 만들면서 눈여겨봤던 학생에게 전시 초대뿐 아니라 작업실을 탐방해 직접 인터뷰하며 그들 스스로가 작품을 남에게 설명하는 기회도 부여한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이어 물론 사업과 연계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을 접어야만 했던 경험은 그에게 각인된 회한이다. 그는 미술 특기생으로 전주 해성고에 입학했지만 선친의 별세로 다니던 학교를 나와 전주상고에 진학했다. 낮에 인쇄소에서 일했고 야간에 수업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4년간 다닌 셈이다. 그림은 틈틈이 그렸고, 일을 하며 활판 인쇄술을 배웠다.군 제대 뒤 고졸 취업의 한계를 느낀데다 다시 미술을 하고 싶은 열망에 86학번으로 전북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다. 동기보다 6년이 늦은 입학이었다. 하지만 당시 제도가 바뀌어 임용 고시를 통과해야 교사가 가능했다. 그는 미발령 교사 완전 추진 위원회(미발추)로 활동하다 결국 다시 인쇄소에 들어갔다. 그는 3년 뒤인 1996년 자신만의 사업체를 차린 뒤 발빠르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히고 도입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색을 보는 눈이 유용했고, 인맥도 작용했다.김 대표는 팸플랫이 별로면 전시장에 인쇄물을 전달하기 싫을 정도다면서도 작가들이 홍보물을 보고 만족을 표시할 때는 그들보다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후원 전시에 좀더 내실을 기할 계획이다.김 대표는 다른 미술상처럼 직접 지원으로 좀더 보탬이 되도록 상금제도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매년 4명씩 선별했는데 차후에는 숫자를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31 23:02

'SUE Ent.' 이주현씨 "전주에 뮤지컬 바람 일으킬 거예요"

문화 도시 전주에 뮤지컬 바람이 불도록 하고 싶습니다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총 5차례에 걸쳐 SUE Ent.의 뮤지컬 토크 갈라콘서트 뮤지컬 갤러리가 공연됐다. SUE Ent.의 예술 총감독이자 가수 활동 경력이 있는 이주현 씨가 연출을 맡은 이 공연에는 뮤지컬 배우 정영주이은율김성민박근영김명희 씨 등이 열연했다. 특히 정영주 씨는 고향이 전주 교동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이주현 연출은 매번 객석의 대부분을 관객들이 찾아주셔서 고마웠다며 이번 공연은 에피소드 #1인만큼, 앞으로도 더 깊이 있고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전주 무대에 선보이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공연에서는 뮤지컬 CATS와 드림걸즈,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 고스트, 프랑켄슈타인,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 시카고, 폴 몬티, Fame 등의 대작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진행됐다.또 극 중 나오는 Memory, When I first saw you, 지금 이 순간 등 주옥같은 명곡들에 대해서도 배우들이 노래와 춤, 설명을 곁들여 선사했다.이씨는 뮤지컬은 가까우면서도 먼 장르일 수 있다. 전주에 온지 만 1년이 넘었는데, 꾸준히 노력해 뮤지컬 바람이 불도록 하고 싶다며 아름다운 한옥과 온 마음 다해 가족처럼 대해주시는 분들의 매력에 전주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3.31 23:02

'문화가 있는 날' 공연장 썰렁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1년 전부터 다양한 문화시설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전국 주요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등 각종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도내 문화단체와 문화시설 등에서도 지난해부터 문화가 있는 날에 무료 공연 혹은 관람료 할인 등의 이벤트를 이어오고 있다.그러나 문화가 있는 날의 성과는 아직 기대 이하다. 실제 올 처음으로 시행된 지난 25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전북지역 62곳에서 각종 문화 행사가 펼쳐졌지만, 이를 알고 즐긴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전주 한옥마을의 경우 평상시보다 오히려 적은 인파로 인해 썰렁하기 까지 했다. 이른 봄이라 일교차가 커 밤공기가 쌀쌀한 탓도 있었겠지만, 이날 저녁 둘러본 전주 한옥마을은 문화가 있는 날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문화가 있는 날 공연을 보기 위해 한옥마을을 찾았다는 사람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실제 전주 전통문화관에서는 국악을 전공한 뜻 있는 젊은 국악인들로 구성된 국악예술단 고창의 어!얼~수(水)놀러오SHOW의 부대 행사가 오후 5시부터 진행됐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난 시각인 오후 8시까지 공연장을 찾은 관객 수는 50~60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전주 전통문화관 관계자는 비가 오지 않아 야외에서 공연했는데, 사실 아직 어두워지면 밖은 춥다면서 공연을 수요일에 해야하는 점도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또 다른 전주 한옥마을 내 문화가 있는 날 공연장소인 교동아트미술관의 경우 스튜디오에서 열린 공연에 대한 안내가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전시관을 찾은 관객 몇은 공연 성사여부를 모른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교동아트 관계자는 다음부터 스튜디오로의 안내를 보다 상세히 하도록 하겠다며 추운 날씨로 약 70명의 관객이 찾았다고 했다.올해 첫 문화가 있는 날 공연은 중앙지방정부와 각 기관들의 철저한 안내 및 사전 홍보가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또 평일 중 한 주의 말미인 목금요일이 아닌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3.27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