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환 넘어 역사의 질곡 담은 무대
아들 때문에 작파했던 춤을 아들을 먼저 보내고 아직까지도 훠이훠이 추고 있다. 눈물은 흰 저고리에 담았고, 한숨은 이울거리는 손짓에 실었다. 호남 민살풀이 춤(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 춤)으로 일제 강점기 군산을 주름 잡았던 장금도 명인(83). 그의 춤은 개인의 삶과 애환을 넘어서 역사의 질곡을 담아내는 시대의 몸짓이다. 1992년부터 (사)마당(이사장 정웅기)이 올려온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정에서 동으로 움직이며 곰삭은 혼으로 관객의 숨을 멎게 하는 예술의 경지를 보여줬다. 20주년을 맞은 이번 무대는 오랫동안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 명인, 그들을 빛내준 이 시대의 진정한 예인(藝人) 김무길(68) 김일륜(51) 안숙선(62) 이생강(75) 장금도가 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준보유자인 김무길 거문고 명인은 거문고 산조의 두 대가인 한갑득과 신쾌동을 모두 사사한 유일한 인물. 그의 연주는 세밀하면서도 오밀한 한갑득류와 굵은 붓으로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가는 듯한 신쾌동류가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2001년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에 선임 돼 남원에 내려와 옥보고 학술대회를 열면서 남원 거문고 음악 뿌리 찾기에 힘쓰고 있다. 이날 무대에서는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보여줄 계획.전주 출신의 김일륜 중앙대 교수는 가야금으로 비틀즈의 렛 잇비(Let it be)를,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선보인 최초의 연주자일 것이다.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 연주자로 죽이는 음 하나 없이 한올 한올 완급을 잘 다듬으면서도 맺고 풀어냄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의 산조를 내놓는다고 평가 받는다. 구혜경(40)씨가 전주 남부시장(6동 2층)에 공공예술연구소 아고라서양의 음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기 위해 음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5현 가야금을 개발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오케스트라로 대학원생 중심인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과 학부생 중심인 두번째 가야금 오케스트라중앙대 앙상블 코리아나를 창단했다. 작게는 가야금, 크게는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한 명인이다.영원한 춘향인 안숙선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남원 출생으로 녹음기라는 별명답게 비상한 기억력과 좋은 성음을 타고난 데다 풀쐐기라는 또다른 별명처럼 악발이 근성으로 이미 열살 때부터 전국의 각종 학생명창대회를 휩쓸면서 애기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소희박귀희 명창에게 사사해 50년 소릿길 연륜에도 소리 공부, 아직 멀었어라고 겸손해하는 그는 언제나 아름답다. 때로는 애끓듯 치맛자락 부여잡고, 때로는 애간장 녹이듯이 온몸으로 내뿜는 혼이 담긴 소리의 무대. 단소, 피리, 태평소, 퉁소, 중금, 소금, 대금 등 관악기라면 다 불러본 이생강 명인은 국내외를 통틀어 엄지손가락으로 손꼽히는 대금 연주자. 아버지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기 시작해 대금의 한주환,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 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음반 종류만 해도 약 500여 가지. 부채춤, 승무, 농악 등 전통 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음반(50장)춤의 소리는 국악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금도 명인은 남원의 조갑녀 명인과 더불어 민살풀이 계보의 마지막 춤꾼.군산 예기(藝技)로 이기권김창용 민옥행 명창에게 판소리 다섯바탕을 사사할 만큼 당시 소리와 춤으로는 어느 누구도 그를 능가하지 못했다. 그의 춤을 발견한 이들은 순서를 외워서 추는 것이 아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춤, 춤판마다 새로운 것이 솟아나는 춤이라고 말했다. (사) 마당의 편집위원으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의 기획에 참여해온 박남준 시인이 사회를, 안상철 전주전통문화관 관장이 연출을 맡았다. 시나위로 조용안(장고) 김건형(대금) 황승주(아쟁) 노택용(거문고) 박진희(징)가 참여한다. △ (사)마당, 20주년 기념 공연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 명인, 그들 = 12월 2일 오후 7시 전주 전통문화관 한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