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만난 작가] 김형미 시인이 만난 시인 유영금
봄이다. 천지는 봄에 살리고 가을에 죽인다고 했던가. 허나 나무의 속마음을 조곤이 들여다보면 보인다. 굳이 이 연초록의 계절이 아니어도 가을이나 겨울에도 나무는 사는(生) 데, 살아 남는 데 그 뜻이 있음을. 천지는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의 순환 속에서 죽이고 살린다지만, 우주 안의 모든 만물은 그 법칙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고 씨를 맺는 동식물들의 속마음이 다 그러하리라. 하여, 나무는 가을이 되어 나뭇잎은 죽이지만 알맹이인 씨앗과 열매는 살리는 데 그 목적이 있어 봄이 되면 다시 활기차게 살아난다. 아니,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살고자 함이 어찌 나무뿐이겠는가. 꽃뿐이겠는가. 꽃 피는 이 계절뿐이겠는가. 올 봄, ‘봄날 불지르다’란 첫 시집을 낸 유영금 시인 또한 그렇게 되살아났다. 처음 유영금 시인의 시집을 우편으로 받아 보았을 때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즈넉했고, 아팠다. 그리고는 내가 유영금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현생을 스치고 지나가는 무심한 바람처럼. 벌써 햇수로 8년이나 되었나 보다. 2000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상식장에서 만난 유영금 시인에게서는 맨소래담 냄새가 아주 강하게 풍겼다. 삼십 분에 한 번씩 가방에서 꺼낸 맨소래담을 목 주위에 발라대곤 하던 그녀. 그보다 조금 지난 후에야 알았지만, 끔찍한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라고. 장골을 잘라 목뼈에 덧붙이는 엄청난 수술을 해야 했으나 걷지 못하게 될지도, 말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도를 하여 떠난 남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후유증 때문이라고. 그리고 자신을 더는 불행하지 않게 해줄 거라는 믿음을 갖게 했던 한 남자로부터 벗어나게 된 해방의 냄새라고. 그 때 그녀는 웃었던가. “내 삶의 실수는 한 번의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빌어먹을 실수는 나를 나답게 환기시켰다. 사내를 믿지 않는다. 사내의 구역질나는 거짓말만 믿는다. 사랑은 더욱 믿지 않는다. 사랑의 변질만 믿는다. 인생에게 기대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믿는다. 물론 자살도 믿지 않는다. 자살의 실패만 믿는다.”시집을 내면서 이 말을 쓰면서도 그녀는 또 웃었으리라. 고통으로 점철된 한 생을 가슴 속에 생매장시키면서 얻은 그녀만의 깨달음으로.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견뎌야 한다는, 삶은 견딤 그 자체라고 말하는 그녀답게. 연신 맨소래담을 바르면서도 그녀는 참 달게 술을 마셨더랬다. 물론 그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도 쭉 그 술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술을 마실 때면 그녀는 늘 말한다.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술이야.” 술이 그녀의 내적, 외적 통증을 참아내기 위한 고육지책의 방편이 되어준 것이다. 몸속에 셀 수도 없이 쏟아 부어야 하는 색색의 알약에 비하면 어쩌면 그만한 통증 완화제를 찾아내기도 힘들 거라고 본다. 그런 그녀 자신이 독주보다 더 독한 독주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배꼽 밑 단전부터 뜨거워지는 독주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여자,라고. 하지만 작년 말 즈음해서부터는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그 좋아하는 술도 실컷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 모양새가 몹시도 안돼 보이지만, 어쩌랴. 그녀의 말처럼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 있는 것을. 설령 그 몫이 진창길이라 할지라도. 진창길이라도 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그녀의 생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지나가는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이 지고 가야 할 비루함인 것이다.가다가 지치면 그녀는 장사익의 ‘찔레꽃’을 부른다. “하얀 꽃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희디흰 찔레꽃보다 더 서럽게, 찔레꽃 향기보다 더 독하게 그녀의 내부 깊숙이 침잠되어 있는 독기운을 뽑아올린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 산골짜기에서 무던히도 보아왔을 꽃이어서일지 모른다.그녀는 늦둥이로서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가슴에 쌓인 눈물을 산 높고 물 깊은 산골에 뿌리는 법을 먼저 배웠다. 쉰 넘어 늦바람 나 집을 나가신 아버지. 집이라고 다시 찾았을 때에는 아버지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중풍 든 아버지 꼴이 보기 싫어 이번엔 어머니가 아예 결혼한 딸의 집으로 떠나셨다고. 어머니가 끄떡하면 주먹질에 계집질이었던 아버지를 방치했던 건 어쩌면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윗 형제들은 이미 나이가 차 모두 객지에 나가 있는 형편이라 돌아가실 때까지 3년 동안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을 해야 했던 그녀. 음(陰) 기운 강한 간방(艮方) 쪽에 몸을 두고 마음조차 음택에 뉘어야 했을 그녀의 신산한 삶에서 무서운 한기가 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생활의 조건이 열악하거나 삶의 위협이 크면 클수록 본능적으로 더 많은 2세를 낳는다고 한다. 몸이 편하면 무기력하고 나태해져 결국 자연스레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그녀의 천적인 고통이 있음으로 해서 그녀가 다작(多作)을 하며 살아 있음도 그와 같으리라.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하늘이 내려주신 그 몸서리쳐지는 역병을,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지, 담담히 받아낼 뿐이다. 이미 오래 전 서울대학병원에 시체 기증 증까지 만들어 두었다는 그녀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훨훨 몸춤을 추면서 즐겁게 기다린단다. 수락산자락 밑 열아홉 평짜리 주공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서. 그 마음을 시집의 맨 마지막 편에 ‘나도 꽃으로,’라는 시로 대신했다. “숲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고혹스럽게 부드럽게/ 휘감아오는 누가 있어 돌아보니/ 하늘가 수런거리는 햇살이더군/ 귓부리를 물고 속삭였지// 하늘 귀퉁이 한 뼘 내줘, 죽도록 필게”술보다 더 확실하게 몸의 통증을 잊게 해줄 방편을 찾은 셈이다. 어찌 보면 일생은 하루와도 같다. 잠에 들 때 슬퍼하지 않듯 돌아가는 것도 슬픈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는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아프다. 그녀의 몸부림만큼이나 격렬하고 처절하다. 그녀의 견딤만큼이나 숨이 차다. 숨이 차는 만큼 강한 서권기(書卷氣)가 느껴진다. 어느 누구에게나 치욕이, 아픔이,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동반하는 현실을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하여 자괴감에 빠져 앞을, 미래를 직시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유영금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먼발치에서 관조할 줄 아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한치의 숨김도 없이 세상을 향해 시원스럽게, 그러나 절박하게 내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영금의 시집은 고압의 언어들로 꽉 차 있다. 그것들은 임계점에 닿아 폭발하기 직전이다... 유영금의 언어는 차라리 피울음이다. 그것들은 치욕에 맞서 분노하는 언어, 파멸하는 언어다. 무심코 이 시집을 펴든 독자들은 어맛, 뜨거라, 하는 순간 그 고압의 언어에 손을 데거나 베일 것이다...”장석주 시인이 말한 대로 “유영금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표현의 수위는 한국시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나는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으로 질린다.” 마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더욱 날이 서고 뾰족해진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가스렌지에 머리를 쳐박고 죽은 실비아 플라스의 허옇게 질린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유영금 시인은유영금 시인은 1957년 강원도 영월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94년에 시부문에서 <청구문학상>을 받고, 이어 1997년에 <진주신문> 가을문예, 2003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았다. 2007년 1월에 시집 <봄날, 불지르다>를 내면서 더욱 활발히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별 줍는 아이> 글쓰기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긴 두건을 늘어뜨리고 카키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 그녀. 현재 몸 상태로 보아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 될지, 운 좋으면 한 권 더 내게 될지” 모른다는 그녀 인생의 봄날을 미련 없이 불질러버렸으니, 늘 그렇듯이 그녀는 또 어딘가로 외출을 할 것이다. 글쓰기 교실도 잠시 밀쳐둔 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만났음에도 얼마 안 돼 전화가 걸려온다. “올 봄에는 너 있는 부안으로 날아가 볼까?” 시집이 나온 지 한달 반만에 재판에 들어간 흥분기는 그녀의 연륜으로 지그시 눌려 있는 음색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적절한 절제가 있는 삶이란, 이렇듯 그녀를 자유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다니러 올 때쯤이면 찔레꽃이 지천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