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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형상으로 해방의 경험 직조하다, 교동미술관 ‘CHROMA 주역의 해방들’

전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예술가들이 ‘CHROMA 주역의 해방들’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22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 1‧2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주역의 해방들’은 언뜻 해방의 주체를 주목하는 듯 보이지만, 뒤바뀐 어순이 가리키는 주체는 주역이 아닌 ‘해방들’이다. 전시는 예술가가 해방을 경험하고, 살아내는 과정과 그 일환으로서 빚어내고 직조되는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이들의 개인적 서사는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각각의 색채와 형상으로 해방의 경험을 길어 나른다. 전시 참여 작가는 강정이, 김완순, 김이재, 송수미, 유경희 등 5명이다. 이들은 도자와 섬유공예 분야에서 현대적 형식을 탐구하면서도 전통적 재료인 한지를 접목한 신작을 통해 공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개별의 작품세계를 비롯해 각 구성원의 개인적 경험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를 매개하는 도구로서의 예술을 조명한다. 강정이 작가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현대 도자공예의 조형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소위 전통적인 실용성이나 장식성보다는 작가의 이상, 감정, 개념, 인식 등을 표현하는 작가주의적 양상이 도드라진다. 특히 작가는 조소로서 도자를 다룬다. 흙을 재료로 하지만 유약을 활용한 표면처리는 청동의 질감을 자아내며 야외에 전시될 수 있는 물성을 지닌다. ‘자아실현’의 꿈이 움트던 소녀는 뒤늦게 호원대학교에 편입해 섬유공예에 입문했다. 이후 태피스트리, 민화, 한지, 염색 등 섬유공예의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김완순의 예술세계를 구축해갔다. 한지사를 이용한 씨실과 날실의 반복적인 교차로 사람과의 인연‧관계‧ 상생과 같은 연결망을 조형화한다. 김이재 작가는 ‘플라스틱’과 CHROMA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꾸준하게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지역 공예협회의 회원으로 연례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오방색을 이용한 색채 표현과 스티치, 직조, 염색, 아상블라주 등의 기법으로 반추상의 섬유공예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후 작업에서는 한지 또는 잡지를 손으로 찢고, 찢긴 단면을 드러내 선의 유기적 질서를 화면 안에서 실험하는 경향으로 발전했다.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상호작용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송수미 작가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한 회복의 일환으로서 ‘비움’을 정의한다. 작가에게 비움의 반대말은 채움이 아닌 과거이고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화면의 상당 부분을 비워두는 미적 실천을 지향하면서도 과거의 시간과 개인적 경험을 대체하는 오브제를 화면 곳곳에 배치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메신저처럼 자리한 오브제들은 상이한 시간을 매개하고 동기화하는 셈이다. 과거의 일부였던 사물들은 현재로 소환되면서 의미가 확장된다. 유경희 작가는 삶과 죽음처럼 인간사에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에 집중한다. 그는 평면에 나뭇가지 오브제와 동선을 이용한 바스켓 트리 기법으로 조형적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염색한 한지를 떠 결합한 작품으로 개인의 기억과 경험으로 상징되는 기호체계를 실험하고자 했다. 교동미술관 박진영 학예연구원은 “해방을 둘러싼 교차적 관점들은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며 “전시를 통해 예술가 5인의 ‘해방들’이 개인적 경험담에 머물지 않고 보편의 메시지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12 15:41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전주의 아침을 누리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이다. 지난 2001년 ‘소리사랑 온누리에’라는 주제로 축제의 문을 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그동안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월드뮤직과 재즈, 클래식과 즉흥 음악 등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소리를 전하며 축제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하는 문화 교류의 장으로 성장하였다. 그동안 매년 주제를 정해 전통의 깊은 멋과 고유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선보여 예술 지평을 확장해 왔다. 2024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로컬 프리즘: 시선의 확장’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임실필봉농악을 기반으로 한 개막공연 <잡색X>를 비롯해 다각적이며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축제의 주제 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었다. 전주는 전주향교, 경기전, 전동성당 등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국가문화유산과 70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한 전주한옥마을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공연장뿐 아니라 아름다운 공간에서 원형의 음악부터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다.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전주 전라감영과 익산 나바위성당 두 공간에서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선사했다. 마티네 공연 <전주의 아침>은 전라감영 대청마루 선화당에서 펼쳐졌다.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의 행정, 사법을 관할하던 관찰사의 집무실로 2020년 전주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복원된 문화유산이다. 이 아름다운 전라감영에서 15일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 16일 <랜디 레인 루쉬와 메이 한의 월드뮤직>, 17일 <시대가 전하는 춤 이야기>로 이어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해설과 함께 공연되었다.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는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 전현호, 그리고 정가 보컬리스트 김나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기획, 제작한 공연이다. 국내에서도 고음악 거장들의 공연이나 고음악과 국악 연주가들이 함께한 협업 무대는 여러 기획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크 리코더와 정가 가객이 담아내는 원전에 가까운 고음악과 풍류 음악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이번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친숙한 리코더가 아닌 생경한 중세 더블 리코더(medieval double recorder)를 연주하며 시작되었다. “이 악기는 1200~1300년대,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악기이고, 박물관에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실존하지 않는 악기로 고문헌 그림을 보고 만들어서 연주했다.”는 전현호의 해설이 이어졌는데, 악기를 복원하고 소리를 탐구하며 13세기 중세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공연에 대한 흥미를 이끌었다. 이어서 구예선, 최경선과 함께 연주한 <빛나는 별> 등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악기와 구성을 바꿔가며 아름다운 하모니로 선사했다. 바로크 리코더의 따듯하고 맑은 소리와 섬세한 앙상블이 고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으며, 정가보컬리스트 김나리는 1600년대 만들어진 'Upon La Mi Re’선율에 12가사(歌詞) <춘면곡春眠曲>을, 친숙한 캐논 반주에 시창 <관산융마關山戎馬>를 노래했다. 이어서 백석의 시를 가사로 한 <늙은 갈대의 독백>과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돋보이는 김나리의 단상을 담은 <꽃이 있다>는 정가의 서정성과 노랫말의 철학적 깊이를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16세기부터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지성인들이 모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고 교류하던 공간이 바로 유럽의 살롱, 조선의 풍류방이었다.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에서 살롱음악을 대표하는 고악기 리코더와 풍류방 음악을 대표하는 정가를 선화당 대청마루에서 들으며 동·서양 풍류의 멋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복원한 악기가 생명력을 갖고 계속 연주되기란 쉽지 않다.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 전현호와 정가 가객 김나리는 악기와 노래에 생명력을 찾기 위해 서로 다른 음악과 문화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고음악과 정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전해진 이번 무대가 매우 인상 깊었다. 아름다운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전주국악방송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옥방송국이다. 한옥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시절,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자주 산책했다. 길을 걷다 보면 경기전, 향교, 전동성당을 비롯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옛집(공간)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자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라는 임형남 건축가의 말처럼 뜻밖의 순간이 오래도록 그 도시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찾은 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흔적이 깃든 공간에서 접한 음악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전주로 기억될 것이다. 장수홍 피디는 국악방송 라디오 피디로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며, 변화하는 음악과 공연예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도와 실천에 관심을 갖고 방송과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석준의 문화시대>를 통해 한국문화의 다양한 시선과 확장을 전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11 17:35

국경 초월한 우정…한중문화협회 전북지부 '2024 한중서예교류전' 개최

한국과 중국의 서예가들이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 교류의 장이 전주에서 열린다. ㈔한중문화협회 전북지부와 강소성인민대회우호회, 염성시신문판공실이 주최하고 한중서예쇼류전 집행위원회와 염성시미술관이 주관한 ‘2024 한주서예교류전’이 지난 6일부터 시작된 것. 한중문화협회 전북지부는 지난 2014년 ‘한중유명서예가작품교류전’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지리적으로 인접한 양국의 장점을 활용해 현재까지 동일한 문화 근원을 공유하는 한중서예교류전을 개최해왔다. 오는 12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예술회관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올해 전시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도민에게 다양한 서예 작품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실제 한국 작품 52점과 중국 작품 50점 등 서로 다른 작업 과정과 표현 방식으로 완성된 총 102점의 서예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글씨는 사람을 닮는다(書女其人)’는 말처럼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한·중 작가들의 서예 작품에서는 먹의 농담과 거친 붓 자국을 통해 평화로운 마음가짐, 보기 드문 침착함 등 오늘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서예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가치 있는 자질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국내 작가들이 선보인 52점의 작품에서는 글씨에 서려 있는 자신감과 웅장한 필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개와 함께 정중한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또 중국 작가들의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50점의 서예 작품은 화려하고 활달한 매력을 전하는 동시, 최치원·진덕여왕·이제현 등의 우리글을 휘호한 작품을 선보이며 양국의 우의증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진 ㈔한중문화협회 전북지부 회장은 “올해 한중서예교류전 개최를 통해 해를 거듭할수록 쌓여가는 참여 작가들의 신뢰와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우정을 바탕으로 유대를 공고히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많은 교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교류전의 중국전시는 오는 11월 8일부터 열흘간 중국 염성시미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10 17:50

전주, 세계 평화의 춤으로 하나 되다…'2024 전주세계평화춤페스티벌'

2024 전주세계평화춤페스티벌이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전주한옥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시대를 잇는 춤, 세대를 잇는 감동' 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올해 130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지혜를 얻고자 마련됐다. 이를 통해 각계 각층이 모여 다양한 춤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전주세계평화춤페스티벌 조직위원회(염광옥 조직위원장)는 앞서 7월과 8월 두 달간, 사전 축제를 진행하며 전국에 세계평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조직위는 축제 기간 중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나누고,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도록 해외 팀들과 지역 학교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축제는 20일 한옥마을 특설무대에서 전야제를 시작으로 21일 '세계평화 시대를 잇는 춤판', '세계평화 세대를 잇는 춤판' 등으로 이뤄진다. 또한 풍남문 광장에서는 무대의상 체험과 버블쇼, 마술 등이 준비된 프린지 공연도 준비했다. 특히 21일 열리는 경연 및 퍼레이드에는 1000여 명이 넘는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해 '평화의 물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불가리아, 몽골, 볼리비아 무용수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함께해 '춤'의 다양성과 공연예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퍼레이드 이후 개막식과 불꽃쇼도 열려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염광옥 위원장은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전주시의 문화관광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전북자치도의 국제적인 문화교류가 증진될 것"이라며 "춤을 통해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독특한 문화 행사로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과 화합의 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24 전주세계평화춤페스티벌은 전주시와 (사)보훈무용예술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가 주최하고, (사)전주세계평화춤축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북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이 후원한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10 17:49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축제는 관객의 것

공연을 볼 때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자꾸만 관객의 시선이 아니라 기획자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비평가이기도 하고, 업계에 오래 몸담았기 때문에 생긴 직업병 같은 게 아닐까. 무대 위의 예술가가 펼치는 연행에 몰입하면서도 기획자가 어떤 의도로 공연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왜 세상 많은 예술가 중에 이 예술가를 선택했고, 세상 많은 이야기 중에 이 이야기를 골랐는지 따져본다. 기획자의 의도 안에 흥행을 위한 고민이 얼마나 들어있고,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녹아있는지 헤아려 본다.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은 예술가의 순수한 창작욕구만으로 완성되지 못한다. 예술가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는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축제는 표방하는 주제와 컨셉트가 있지만 그 주제와 컨셉트만으로 축제를 채우기는 불가능하다. 흥행해야 하고 수익을 거둬야 한다는 사명 앞에서 자유로운 축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둘째날 저녁 7시부터 10시 반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소리썸머나잇 DAY2’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만원의 티켓 가격을 받는 공연에는 젊은 국악그룹 국악 이상이 출연하고, 강은일 해금플러스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마지막 출연진은 글렌체크와 타이거 디스코였다. 수천 명의 관객이 운집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공연을 펼친 의도는 소리썸머나잇 프로그램을 통해 다수의 관객들이 모이는 장을 열기 위해서이고, 다른 공연보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국악 이상, 추리밴드, 삼산 같이 주목할 만한 전통음악 단체를 소리썸머나잇에 배치해 소개하면서, 젊은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는 글렌체크와 타이거 디스코를 통해 축제의 온도를 펄펄 끓어오를 때까지 끌어올리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강은일 해금플러스의 공연을 통해서는 원숙하고 모던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펼쳐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지향을 분명히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이 같은 의도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공연장을 완전히 다 채우지 못했다. 한국 전통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연주자인 강은일에 밴드 신에서 이름난 글렌체크에 타이거 디스코까지 무대에 올랐지만 그들의 이름만으로는 열대야에 지친 관객들을 이곳까지 끌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대 위의 예술가들은 굵은 땀을 닦지도 않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뛰었다. 국악 이상은 보컬 신예주의 매력을 싱그럽게 발산하며 공연의 문을 열었다. <리듬 속에 그 춤을>을 비롯한 기존 곡과 창작곡을 이어 들려준 국악 이상은 전통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까지 들썩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남다른 개성을 창출하는 대신 누구에게나 통할만한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준 40분은 전통음악에 기반한 크로스오버 음악의 매력과 한계를 정직하게 노출했다. 강은일 해금플러스는 국악 이상이 달군 무대를 선선하게 식혀주었다. 서정적이면서 폭이 넓은 연주는 묵묵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던 관객들에게 길고 진한 박수를 계속 끌어냈다. 다만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더 흔들 수 있도록 눈빛과 표정으로 교감했다면 이따금 자리를 떠나는 관객의 수가 줄어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밴드 글렌체크와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의 공연은 사실 한국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여느 대중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보다 훨씬 관객 수가 적었다. 글렌체크의 멤버들이 좀처럼 멘트를 하지 않고 연주와 노래에만 집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까. 좀 더 명료한 사운드로 가득 찼으면 좋았을 공간은 밴드의 매력을 완전히 부각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공연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가던 공연의 종반부에서 젊은 관객들이 모조리 일어나고 무대 앞으로 몰려나왔다. 그때부터는 다른 대중음악 페스티벌과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노래를 죄다 따라 부르고 몸을 흔들었다. 타이거 디스코의 디제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축제는 관객의 것이었다. 기획자의 의도를 알든 모르든 그 순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관객들의 환희가 되고 땀방울이 되고 추억이 되었다. 제각각의 감동을 안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있으니 축제는 다시 이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내년에도 설레며 전주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Red Siren〉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연출/평가도 병행한다. 『그렇다고 멈출 수 없다』, 『음악열애』,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를 썼으며,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는 함께 썼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 리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 인터뷰』, 『레전드 100 아티스트』, 『음악과부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한국대중음악명반 100』도 거들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10 17:42

통섭의 예술가 김병종 작가를 조명하다⋯'생명광시곡, 김병종' 10일 서울서 개최

그림과 글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김병종 작가의 예술 활동과 그 궤적을 온전히 담아낸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공진원)은 10일부터 다음 달 24일까지 ‘생명광시곡, 김병종(The Rhapsody of Life-A Half Century Art Archive of Kim Byung-Jong)전을 '문화역서울284'에서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역서울284'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관문이었던 구서울역사의 원형을 복원해 지난 2011년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예술의 창작과 교류가 이뤄지는 플랫폼으로서 지난 13년 동안 복합적인 장르의 전시와 공연, 마켓, 강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수년간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향유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문화역서울284가 올해부터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를 예술 전반에 걸쳐 통섭적으로 조감하는 특별기획 ‘K-판타지아 프로젝트’ 전을 선보인다.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첫 번째 기획전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동양화와 서양화, 미술과 문학 등 장르 간 경계 없는 사유를 펼쳐 온 통섭의 예술가, 김병종 작가에 집중했다. 전시는 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 온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아트 아카이브 형식의 회고전으로 진행된다. 특히 45일에 걸쳐 회화, 문학, 지필묵,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통해 100년 역사의 공간인 옛 서울역사라는 역사적인 건축공간에서 마치 환상적인 광시곡이 연주되듯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구성 역시 광시곡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 총 여섯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다. 먼저 서막[심상의 숲]은 작가의 신작 〈풍죽(風竹)〉이 만든 푸른 숲을 통해 관람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어 1악장[동심의 기억]을 통해 3등 대합실 공간에 펼쳐진 〈송화분분(松花粉粉)〉 등 작가의 대표작을 만나볼 수 있다. 2악장[덧없는 꽃]에서는 대표 주제인 ‘화홍산수(花紅山水)’ 등과 작가 연보를 서측 복도에 구현한다. 3악장[감추어진 샘]은 한국적 온기가 담긴 ‘숲’ 테마의 연작을 통해 작가의 수묵과 수제 닥종이에 실현된 실험적 시도를 살펴볼 수 있고, 소장품을 재구성한 작가의 방을 통해 영감의 원천 또한 살펴볼 수 있다. 4악장[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서]은 전시의 절정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90년대 말부터 연재한 문학과 미술의 대장정 ‘화첩기행’ 및 ‘시화기행’ 작업에 담긴 매혹적인 삽화 80여 점과 글, 현장감 넘치는 아카이브 자료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끝으로 종막 [끝나지 않는 여정]으로는 작가의 활동과 삶을 시간의 축 위에 올려 차분히 조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는 9월 대규모 미술 행사를 연계하는 ‘2024 대한민국 미술축제’ 기간에 맞춰 운영된다. 전시 기간 중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총 6회에 걸쳐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가이드 투어를 전시 관람자에 한해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전시와 연계한 굿즈도 제작해 판매될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공진원과 문화역서울284 누리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9 18:17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월드뮤직, 다양한 소리와 서사(敍事)의 향연(饗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한 축은 늘 월드뮤직이 맡았다. 많은 사람이 국악의 묵직한 존재감을 더 크게 받아들였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 소중한 행사의 이름을 ‘전주, 세계소리, 축제’라 끊어 읽곤 했다. 만약 월드뮤직이, 혹은 월드뮤직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시각과 태도가 없었다면 이 축제의 역동성은 오래전에 반감됐을 것이다. 전체의 공연 구성에서 국악과 월드뮤직이 혼재했기에 23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더 든든한 뒷심을 키울 수 있었으리란 얘기다. 월드뮤직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기쁨은 ‘다양성의 향연’이다. 올해만 해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폴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비좁아 보이는 이 지구에는 아직도 우리가 존재조차 모르는 음악이 많다. 흔히 세계화를 운운하며 하나 된 세상을 얘기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그들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없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세상 곳곳에 감춰진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굴해 우리 앞에 펼쳐놓는 월드뮤직 전도사의 역할을 충실히, 꿋꿋이 수행해 왔다. 한쪽에서 농악 장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색의 악기가 낯선 선율을 들려주는 풍경은, 오늘날 음악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설파한다. 우리가 월드뮤직 음악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은, 그 음악만큼 다채로운 ‘서사성의 발견’이다. 단언컨대 단일민족, 단일문화로 이루어진 나라는 없다. 어느 월드뮤직이든 그 안에서는 여러 이질적 요소가 얽히고설키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는다. 반대로 서사에서 출발해 음악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특정 월드뮤직을 처음 마주할 때 그에 관한 역사적 배경이나 서사성을 확인해 두면 감상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종종 월드뮤직 공연을 ‘해설이 있는 콘서트’의 형식으로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월드뮤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80년대에는 민속 음악이 다른 음악과 만나는 현상 자체에 의미를 뒀다. 역설적으로 처음 이러한 시도를 감행한 이들도 제3세계에 관심을 가진 영미권 음악인들이었다. ‘이국적인 사운드’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혈통에 깃든 아름다움을 재확인하려는 음악인들의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진행됐다. 정치적으로 구소련의 해체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월드뮤직이 풍성하고 굳건한 흐름을 구축한 데에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민속 음악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한 뒤 이를 현대적으로 고찰하고, 여기에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음악인들의 진지한 접근이 결정적이었다. 만약 우리가 아일랜드의 민속 음악을 도입해 노래를 만든다면, 그건 외형상으로만 월드뮤직일 뿐,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월드뮤직의 철학을 따른 결과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상징 중 하나이자 매년 크고 작은 화두를 던진 개막작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한국형 월드뮤직이었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따를 것인지, 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것인지는 온전히 창작자들의 선택이다. 말하자면 월드뮤직은 후자에 무게중심이 실린 경우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만난 여러 월드뮤직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소리프론티어를 통해 소개된 한국의 젊은 음악인 삼산의 것이었다. 나는 그 공연에서 강박에 갇히지 않은 건강한 영혼을 봤다. 대다수 월드뮤직은 존재 자체로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모두 깊은 예술성을 지닌 것은 절대 아니다. 쉽게 마주할 수 없었다고 해서 갈채를 선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실 월드뮤직 중에는 ‘별것 아닌데도 마치 신비로운 존재인 양’ 회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성 음악 어법처럼 객관적 평가의 틀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기획자의 오판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관건은 ‘설득력 있는 주관의 정립’이다. 이를 위해 먼저 역사를 올곧게 인식하고, 월드뮤직이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른 음악들’에 관해서도 깊이 있고 통시적인 시각을 지녀야 한다. 예컨대 재즈가 없었다면, 월드뮤직은 안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록, 팝, 현대 클래식 등도 같은 맥락에서 월드뮤직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른바 ‘좋은 월드뮤직’을 솎아내기 위해 민속 음악 자체에 대한 고찰 못지않게 새로운 융합을 촉진한 음악들에 관해 연구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참여해서 여러 벗을 알게 됐다. 나는 그들과 음악에 관해, 월드뮤직의 철학과 태도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던진 공통의 질문이 있었다. “왜 이미 놓인 길을 가지 않고 굳이 다른 길을 찾는가?” 누군가는 가슴 속에 자리한 “예술혼”을 꺼내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그게 “더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돈 때문”이라 말한 이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답은 이것이었다. “어머니가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1997년부터 음악 관련 방송, 공연,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연출했다.『김현준의 재즈파일』(1997),『김현준의 재즈노트』(2004),『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2022)』를 출간했고, 제41회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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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9 17:37

'지역 축제 연계·뮤지엄 나이트 투어'…전북도립미술관, 체류형 관광지로 도약할까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애선)이 체류형 관람 프로그램 ‘브리콜라주:그러모은 미술관(전북미술주간)’을 추진해 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을 준비한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많지만, 실제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박물관, 미술관이 오후 6시면 문을 닫아 볼거리가 한정적이라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도립미술관이 9월 전북미술주간 동안 도내 시‧군 7개 공립미술관을 방문해 전시 관람 및 연계 체험에 참여하고, 인근 관광지를 방문해 전북자치도 자연과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브리콜라주:그러모은 미술관(전북미술주간)’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인다. 1박2일과 당일 공공미술투어 프로그램, 스탬프 투어로 구성해 전북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소개하고, 예술과 관광이 결합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마련했다. 또한 폐장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로 연장해 관광객들이 미술관을 들러볼 수 있도록 ‘뮤지엄 나이트 투어’를 진행해 깊이 있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 6일 저녁 7시, 전북도립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도슨트로 나선 이애선 관장과 1박2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40여명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전북미술사 연구 시리즈 ‘문복철 특수한 변화’ 기획전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을 보다 떠오른 궁금증에 대해 관람객들이 질문을 하면 이애선 관장이 답변을 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그림을 보고 느낀 지점을 이야기하고, 문복철 작가에 대한 히스토리를 풀어냈다. 문복철 작가의 연작 ‘대류‧전이’작품 감상이 끝나자 제2전시실에서 해금 연주가 시작됐다. 고요했던 공간이 해금의 구슬프고 애달픈 소리로 뒤덮이며 작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왔다는 신세인씨(39)는 “아이들과 동행이라 과연 미술전시를 잘 듣고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면서 “의외로 아이들이 집중을 해서 그림을 보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미술관을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낮에 무주 축제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저녁 미술관 투어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북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일환으로, 도립미술관이 기획하고 시·군 공립미술관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이다. 한국관광공사와 전북관광마케팅종합지원센터가 협력으로 진행되며 지역의 다양한 예술적 매력을 선보이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기회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오는 28일에는 공공미술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관장은 “공립미술관들이 보유한 지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지역이 가진 예술적 요소를 관광과 결합해 도내‧외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며 “향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기획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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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
  • 2024.09.08 16:12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우리 소리의 오래된 첨단, 국창 신영희·조상현을 만나다

소리가 흔해진 시대다. 거리를 다녀보면 저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심지어 노이즈 캔슬링, 그러니까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차단해 버린다. 오롯이 듣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소리는 결코 캔슬(무효화)될 수 없다. 차고 넘쳐서가 아니다. 되레 희소해서 그렇다. 실은 소리가 소리 위에 집을 지어서인 까닭이다. 일차원적/일회성 청각 자극을 넘어서, 스스로 세월의 더께를 이고 시대의 풍파를 견뎌 끝내 3차원의 건축학적 랜드마크가 돼버린 소리라서 그러하다. 지난달 18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에서 시간과 소리로 건축된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만났다.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그 둘이 나란히 오똑 선 모습을 관람할 수 있어 드물고 귀한 무대였다. 국창의 반열까지 오른 명창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은 각각 87세, 82세다. 그들의 소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연 전부터 모악당 주변을 서성이는 1000여 명의 관객들은 표정에서, 일행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서 모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날짜 타이밍도 시쳇말로 죽여줬다. 1995년 KBS TV ‘빅쇼’에서 두 사람이 ‘소리로 한 세상’이란 제목 아래 전 국민 앞에 절창을 함께 쏟았던 것이 바로 8월 18일. 그러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29년째 되는 날, ‘빅쇼’라는 타이틀 아래 두 국창이 맞닥뜨린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각각 완창 판소리를 들려준 바 있다. 그래서 이날 무대는 어떤 구성일지가 첫째 관심사였다. 막이 열리고 마주한 이날 공연은 ‘빅 쇼’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그 형식은 음악극에 가까웠다. 박상후 지휘의 KBS국악관현악단이 받치는 가운데 전북의 젊은 소리꾼 10인이 무대 전면에 나섰다. 조상현, 신영희의 인생사를 아니리로 구성해 풀어냈는데, 휴대전화 쇼트폼 세대도 지루하지 않게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사로 엮었다. 빠른 전개가 돋보였다. 두 국창은 각각 스스로 작사, 작창을 해 우리 소리의 신(新-)고전이 돼버린 ‘흥타령’과 ‘사철가’를 부르며 느긋하게 등장했다.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하며 임을 그리고,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하며 인생무상을 한탄하는 그 소리가 원곡자의 입에서 터져나올 때 객석에서도 낮은 탄성이 함께 터졌다. 중반부에 마련된 흥보가 한 대목은 1970, 80년대 TV 출연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았던 준(準-)희극인으로서 두 사람의 풍모도 엿보게 해줬다. 마당쇠 신영희에게 글 가르쳐주려다 되레 당하는 놀부 조상현의 티키타카와 케미스트리에 객석이 남녀노소 흥겹게 들썩였다. 국악인이자 불세출의 국악 소재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정해가 사회를 맡은 중반부 토크는 짧지만 여운이 길었다. 일단 열연, 열창의 안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힘들어 죽겄소~”(조상현)와 “쓰러지기 직전요~”(신영희)로 화답하며 너스레를 떤 두 사람. 이어지는 음악 철학이 촌철살인이다. 사철가의 작창 배경을 묻자 “인거유흔(人去遺痕·사람이 한 번 가도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을 내놓은 조 명창. 신 명창은 국악 세계화에 대해 “우리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예요. 없어서도 안 되고, 없을 수도 없어요. 소리 축제는 영구히 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 하고 목 놓았다. 간간이 무대 뒤 스크린으로 투사된 두 사람의 TV 출연 모습과 소싯적 사진은 객석에 흐뭇하고 잔잔한 웃음의 파문을 일으켰다. 젊은 소리꾼들의 패기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KBS국악관현악단의 웅장한 연주 모두 돋보였다. 마지막 한 판은 가히 ‘폭발’이었다. 특히 조상현 명창의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빙의한 듯한 열연, 활화산 같은 절창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세계 어느 디바와 디보가 80대에 두 사람만 한 사자후를 뿜어내랴. 세월이 더께가 되고 도리어 갑옷이 되는 우리 소리의 신비함이 이날 전주 고을에 현현한 것이다. 8월 초, 멀리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 직전. 대한민국의 박태준 선수는 서두에 언급한 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태연자약 노래 한 곡을 듣고 있었다. 요즘 인기 높은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란 노래다. 아제르바이잔 선수를 꺾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박 선수는 경기 전 노래 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 (그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빅쇼’의 초반, 젊은 소리꾼들의 아니리 가운데 귓전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자네들, 혹시 그거 아는가. 한자에는 소리 ‘성’자가 있고, 노래 ‘가’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가 부르는 것을 노래라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지를. 노래는 사람에서 나오지만 소리는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이지. (중략) 소리를 잘하는 것은 결국 이 자연의 소리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곧 소리꾼의 사명이다.” 후배들의 입을 빌어 전달됐지만 사실 이는 다름 아닌 조상현 명창이 공연 준비 기간 내내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여러 번 강조했던 경구(警句)이자 당신 음악 세계의 철칙과 같은 것이다.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의 소리는 과연 랜드마크이되 회색 콩크리트의 구조물이 아니었다. 웅대한 자연의 배경과 하나가 된 듯했다. 한 페이지가 아니라 여덟 폭의 병풍이, 세월 따라 접고 접은 팔순의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돼있었다. 우리 소리의 정전(正傳)이 무엇인지, 정점(頂點)은 어디인지가 궁금할 때 향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오래된 첨단으로 꽃 피어 있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전 헤럴드경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KBS 1라디오 ‘오늘 밤 1라디오’, 국악방송 ‘창호에 드린 햇살’ 등에 매주 출연해 음악 이야기를 한다. 저서로 ‘예술기’ ‘망작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등이 있다.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 SBS프리미엄 ‘교양이를 부탁해’ 전문가 출연. @heeyun_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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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8 16:11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를 마주하다…전북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

제28회 전라북도특별자치도 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이 10일부터 열흘간 한국전통문화전당 4층 기획전시실에서 ‘예맥(藝脈) :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 를 주제로 펼쳐진다. 전북전승공예연구회(회장 김동식·국가무형유산보유자 선자장)는 선조들의 전통공예 유산과 기능을 보전하고 온전히 전승하고자 1996년 10명의 전통공예 장인들이 뭉쳐 설립한 단체이다. 현재는 국가무형유산과 문화재, 보유자, 명인 등 공예작가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수, 한지, 부채, 나전칠기, 전통매듭, 궁중의상, 백자, 청자, 옹기, 가구, 창호, 옻칠 , 지우산, 탱화, 칠보, 악기, 목조각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선정한 3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 테마인 ‘예맥(藝脈)’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의 줄기인 전승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으며, 숙련된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장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전시와 달리 이번 작품전은 ‘전시’와 함께 ‘시연+체험’이라는 두 가지 큰 틀의 연계전시 형태로 진행된다. 전당에서 열리는 1차 전시는 작품 감상 위주로 이뤄진다면 오는 23일부터 10월 7일까지 임실한옥 예술공감에서 펼쳐지는 2차 전시에서는 시연과 체험행사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1주차인 28일 오후 2시 김동식(선자장) 장인의 시연을 시작으로 박순자(침선), 김대성(부채) 장인의 체험, 29일에는 김선자(매듭장), 김정화(칠보) 장인의 시연, 권원덕(소목) 작가의 체험을 각각 진행키로 했다. 또 2주차인 10월 5일 오후 2시에는 김종연(목조각장), 강의석(청자) 이수자의 시연, 윤성호(지우산), 전경례(자수) 이수자의 체험, 6일에는 한경치(합죽선), 안시성(옹기장) 장인의 시연, 장정희(침선) 이수자의 체험이 각각 추진될 예정이다. 연구회 권원덕 사무국장은 “우리의 전통공예 줄기 즉,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며 “전시 작품들이 한옥이란 실체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보여주고자 ‘시연과 체험’이란 구성을 통해 관객과의 접근성을 높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6 18:32

한계를 넘은 기적의 무대⋯장애인 앙상블 연주단 느루걸음 ‘동행’

장애의 한계를 넘어 기적을 공연하는 연주단체 ‘느루걸음’이 오는 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감동의 선율로 물들인다. 느루걸음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천천히 오래도록 걷는다’의 뜻의 용어이면서, 지난 2022년 첫걸음을 뗀 장애인 앙상블 연주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주시 장애 유형별 맞춤형 직무 개발을 위한 일자리 활성화 시범 사업으로 지난 2022년 모인 이들은 장애인 연주자와 발을 맞춰 활동하고 있는 연주단체다. 장애인 연주자들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돕고 전문 연주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체는 7일 오후 5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동행’을 공연한다. 전석 무료. 다양한 음악 서비스 활동을 통해 단원들 간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누며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공연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기획공연 ‘스타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앞서 소리전당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예술계에 순수예술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 아티스트들의 공연예술 활동 발돋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스타시리즈의 열두 번째 무대로 진행될 이번 공연은 모두가 아름다운 선율을 오래도록 연주하자는 의미를 담아 ‘동행’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이날 무대에 오르는 13명의 느루걸음 단원은 안경일 지휘자와 함께 약 1시간 동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들은 세르비아의 이발사, 헝가리무곡, 카르멘의 서곡과 같은 친숙한 클래식 음악으로 정통 클래식의 맥을 잇는다. 여기에 ‘시네마 천국’, ‘스타워즈’, ‘캐리비안 해적’ 등 유명 영화 OST와 더불어 K-POP 음악 등의 프로그램을 구성해 대중성까지 갖춰낼 계획이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장하고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 공연을 통해 전북 지역예술인들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소리전당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063-270-8000)로 문의하면 된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5 17:21

문 너머 사계절 풍경이 펼쳐지다…조화영 '문門(THINKING)'

사계절 풍경이 문(門) 너머로 펼쳐진다. 푸르고, 파랗고, 노랗다가 이내 붉어진다. 캔버스에 올라앉은 색이 물결치듯 일렁인다. 색은 제각각이지만,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혀들어 한 폭의 작품이 됐다. 서양화가 조화영 작가가 ‘문(門)’을 주제로 다음 달 31일까지 삼례문화예술촌 제3전시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문과 창문을 메타포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 도구인 문을 단순히 물리적 장벽으로 바라보지 않고 의식과 욕망이 결합되고, 일상과 시간 속에서 내재하고 있는 상징성으로 발현해 표현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문을 향하고, 문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단상들과 문에 대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해석해 비현실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전시 제목 ‘문門(THINKING)’은 작가의 인문학적 깊이를 웅변한다. 그는 공적이며 사적이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부와 외부와의 연결 도구 ‘문’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쳐가는 단계이자 과정으로 사유를 확장한다. 조 작가는 전시 작품들에 대해 “평소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 창문에 대한 해석과 표현을 캔버스에 담았다”며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반영하는 감각, 감수성, 축적된 시간들을 문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부산, 전주, 광주, 미국,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문화재단 도시갤러리 작가 공모, 전주시 이동형 꽃심 갤러리 공모 등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전북미술협회 회원이며 문화예술교육사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5 17:21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잡색X'

사건명: 20240814-잡색X <잡색X>는 2024년 8월 14일 밤에 명백한 ‘사건’으로 출현(出現)했고, 나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동의 기억이자 유의미한 대상이 되었다. 이 사실이 어떤 결과나 해석보다 가장 중요하다. 작금의 전통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문제 제기 도입부는 마치 전쟁 게임 속 판타지(fantasy)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전방은 새까만 컴퓨터 창(窓)이 되고, 무대 위 인물들은 감시자의 눈을 연상케 하는 철 구조물을 배경으로 두고 서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저(User)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대로 움직였다. 부족 간 전쟁이 있고, 적장이 죽고, 마을 부족의 우두머리[상쇠]가 배 혹은 철탑, 상여로도 해석될 수 있는 구조물 앞에서 적장의 넋을 달래는 의례를 행한다. 연출은 풍물굿의 전통적인 의식(儀式) 행위를 활용하되, 맥락은 제거하고 뼈대 요소만 서사 전개 곳곳에 나누어 이용했다. 제2막에서는 암흑 속에 익숙한 물체[세탁기]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흰빛의 생명들이 연이어 토해졌다.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 눈먼 이들처럼 바닥을 뒹굴고, 기고, 웅크리며, 좀처럼 딛고 서지 못하는 모습일 때, 내 체온이 내려갔다. 체온 하강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경계심과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한 신체 반응이다. 마침내 그 한낱 여린 것들이 하나둘 손을 잡기 시작하고, 일어서고, 큰 하나가 되어 생기발랄해졌다. 비로소 나도 고른 숨을 내쉬었고, 뭉클한 가슴 통증을 즐기는 데까지 나아갔다. 만약 이런 내 반응이 관객의 반응 시퀀스(response sequence)까지 계산한 결과라면 경외감을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 필자가 크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곳곳에서 전통의 본질은 모른 채 표피에만 집착하고 신성화하는 낡은 전통 의식(意識)과 태도를 향해 날리는 문제 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다행히 ‘반항이 아닌 살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바뀌어도(당산나무 대신 철탑 앞의 제의 장면), 인성과 사회성이 변해도(부족 화합이 아닌 대립과 죽음 장면), 인권에 대한 존중과 위로와 해원(解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연신 들렸다. 연출은 이전 마을공동체에서 비롯한 풍물굿의 문화 핵심이 그랬고, 여전히 유효함을 힘있게 말하고자 상상력의 최대치를 짜가며 고심했던 게 아닐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한 키치 스타일(Kitsch style) 다큐멘터리 <잡색X>는 박제(剝製)가 아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삼은 키치한 단편 사실극 영화였다. 필자는 적어도 이 문장 이상으로는 <잡색X>의 독보적인 특질을 집약해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미학에서 정리하는 키치는 ‘예술이 되지 못한 것’, ‘모조품’, ‘싸구려 문화상품’ 등으로, 주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내리는 말이다. 그러나 ‘작정하고 키치’를 내세운 연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과적 키치가 아닌, 키치를 이용해 작품의 예술적 의도를 완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잡색X>의 키치함을 ‘작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강렬한 날 것의 냄새, 그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Aura)를 가져온 것은 풍물굿의 플래그십(flagship)이라 할 수 있는 임실필봉농악 깃발과 치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함께 구성한 퍼레이드와 재능기놀음 막(幕)이다. 쇠잽이, 자전거동호회 무리, 장구잽이, 해녀 무리, 북잽이, 교복입은 십대 무리, 징잽이, 실버 세대, 열두발 상모잽이, 의사와 간호사들, 할미, 공놀이 하는 아이와 그 가족, 대포수 등등 온갖 인생을 사는 생활인들이 잡색X가 되어 무대를 휘저었다. ‘잡색X’는 무한수였다. 어디에나 있었고, 앞으로 무수히 있을 것이며, 그들이 있는 공간은 무한(無限)·무궁(無窮)이다! 이 클라이맥스로 전막(前幕)에서 돌연 천공이 열리고, 우주인 잡색X들이 행성을 떠돌고, 천체에 있어야 할 별자리가 바닥 아래로 내렸던 맥락을 이제야 비로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잡색X>는 현대적 얼굴을 한 판굿 역시 풍물굿은 생활 주체들의 예술적 놀이일 때 제맛이다. 풍물굿 잽이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생활인을 위해 공연하고, 공동체문화로서의 풍물굿 자리는 생활인들의 인생을 떠받치는 ‘뒷것’이 맞다. 이 면에서 2024년 8월 14일에 첫 출현한 <잡색X>는 분명 ‘현대적 얼굴을 한 풍물굿’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충분히 오늘 풍물굿의 잡색X가 될 권리와 자질이 있다! 양옥경 전북대 학술연구교수 국립국악고와 한양대 국악과에서 국악 기악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북대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전통문화대학교·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 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 심의위원, 한국공연문화학회·한국민요학회·한국풍물굿학회·한국음악사학회·한국국악학회의 임원 및 정회원 소속으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5 17:21

초가을 전북 미술 전시회로 물들다

초가을 전국이 거대한 미술 물결로 뒤덮였다. 부산과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세계적 규모의 미술품 장터 프리즈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전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에서도 관람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미술전시회가 잇달아 열리며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휴열 미술관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3인의 시선’ 전주, 제주, 서울, 용인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남성희, 이효문, 이홍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유휴열 미술관은 29일까지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3인의 시선’전시회를 연다. 남성희·이홍규 작가는 산과 들녘 등 자연의 모습을, 이효문 작가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을 화면에 담아냈다. 남 작가는 산, 들녘, 과수원 등 아름답고 평온한 풍경을 바탕에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색채가 스며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종전의 채색화가 갖는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종이 위에 번져나가는 풍경과 작은집들은 마치 동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가는 자연의 모습을 절제된 빛과 색채로 표현해 자유롭고 감각적인 작품세계를 구현했다. 일상의 풍경과 이야기를 흑백의 단색조로 풀어낸 작품은 뚜렷한 입체감으로 강한 인상을 풍긴다. 평생 주제인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을 나무로 표현한 이 작가는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작품을 빚어냈다. 복잡하고 화려함 대신 재료 본연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절제미가 돋보인다. △기린미술관, 천칠봉·천광호 부자 초대전 천칠봉·천광호 부자 초대전이 9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열린다. 40년 전 작고한 천칠봉 화가의 작품 40점과 그의 아들이자 민중미술가로 활동하는 천광호 작가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전주 출생인 천칠봉 화가는 민족기록화 다수를 제작했고 프랑스 스케치 여행을 하는 등 일생을 구상화가로 지냈다. 작품 대부분이 한국의 설경산수를 그린 풍경화로 자연에 대한 미화 없이 존재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천광호 작가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시대정신에 주목해 공공미술, 조형물 제작 등의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 열한 번째 기획시리즈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기획전을 5일부터 15일까지 사진공간 눈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풍경사진의 주요 소재였던 산(山) 천(川) 목(木)을 중심으로 찍은 풍경 사진을 전시하지 않는다. 기존 예술 작품의 형식을 완전히 탈피한 작품을 초대해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했다. 전시에 참여한 곽풍영과 허성철 작가는 매체를 결합해 미디어 매체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곽진영 이선종 작가는 소재의 확장성을 꾀해 심도 깊고 입체적인 작품을 보여준다. 두 작가는 풍경 사진의 소재를 자연 생태의 의미로 넓혀 자연의 의미와 사진 매체의 복합적 성질을 포착해 낸다. 차경희 김미경 작가는 짧은 시와 영상 장르의 혼성을 시도해 인간의 내면과 교감 관계를 유추한다. 기획전시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작가와의 대화는 7일 오후 4시 사진공간 눈에서 열린다. 또 전시 연계 문화예술 아카데미 '스크린 사회에서의 사진과 영화'는 10일 오전 10시에 같은 공간에서 진행된다. 임민수 사진가의 강의로 진행되며 선착순 20명을 대상으로 한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3 17:29

선선한 가을 저녁 즐기는 신명나는 우리가락… 전주대사습청 수요상설공연 시작

우리 전통예술의 역사와 명맥을 잇는 전주대사습청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신명 나는 전통예술공연 축제를 펼친다. 전주대사습청이 4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국에서 활동하는 전통예술인과 합심해 ‘2024 수요상설공연’ 하반기 공연을 화려하게 꾸민다. 앞서 전주대사습청은 지난 3월부터 수요상설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총 7주 동안 진행될 하반기 공연은 각기 다른 주제로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전주대사습청 야외무대와 만악당에서 펼쳐진다. 먼저 4일 수요상설 하반기 공연의 첫 포문을 열 공연은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단원 김정훈의 조상현바디 강산제 심청가 무대다. 이날 김 명창은 황후가 된 심청이 부친에게 편지를 쓰는 추월만정 대목부터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통해, 절절한 성음과 터질 듯한 설움의 감정을 그려낼 예정이다. 11일에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조인경 단원이 무대에 올라 유태겸·김정훈·소리꾼 등과 조정가연(祚打歌宴)을 선보인다. 이어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는 10월과 11월 프로그램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호남산조춤 이수자 정도겸의 추화지무(10월 2일), 제47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장원 수상자 이우영의 무궁무진(10월 23일),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민성희 연 무용단의 무담(10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호남살풀이 이수자 강혜숙의 정중동의 미(11월 1일),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전통예술인이 춤사위를 통해 우리 전통 ‘춤’에 집중한다. 더불어 공모를 통해 선정된 21개 예술단체가 매주 토요일 상설공연을 선보이고,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자들의 무대인 ‘장원자 백일장’은 10월 15일, ‘동초소리 ‘뎐’은 10월 18일 예정됐다. 유영수 전주대사습청 관장은 “대한민국 전통문화 중심도시 전주의 문화브랜드로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세계 속의 전주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주대사습청은 원형 그대로의 전통예술이 후세까지 그 명맥을 이어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3 17:27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