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강, 전북의 길] 걸음, 삶의 자각
강이 내 마음 한 가운데로 흘러, 나로부터 길이 이처럼 길게 뻗어나간다선사(先史)의 강(江), 역사의 길강의 물길이나 땅위의 길이 모두 '길'이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생성과 성장은 서로 다르다.강은 지구의 탄생 이후 지각 변동을 반영한 물길의 유구한 흐름을 보여주고 또 인류의 문명을 길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 비해 육상 '도로'는 문명 이후, 인류가 걸어온 지난하고 장구한 역사로 다져진 길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 전북만 해도 금강,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을 따라 사람의 마을이 꽃피었으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사람들은 늘 그리움과 미지에의 기대를 담아 길을 나섰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논둑길을 건너 팍팍한 고개를 넘기도 하고, 다리를 놓아 강을 건너며 우리는 우리 삶의 반경을 확장해왔다.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 그리고 강은 언제나 산줄기의 계곡 흐름에 의해 규정된다는 자연의 이치로 인하여 금강은 활처럼 휘어져 북류하다가 서해로 합류하고 섬진강은 남진을 계속하여 남해에 들어서고, 동진강과 만경강은 농도(農道) 전북의 젖줄이 되어 호남평야를 억만년 적시고 있다.강물, 구도의 길고 깊은 물줄기'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 혹은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어진 사람은 억만년 부동심을 지닌 산의 모습을 그리고, 지혜로운 이는 반짝이며 출렁이는 수면 그 아래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심의 깊이를 따라 삶과 죽음, 반영과 반성, 가라앉는 일과 다시 떠오르는 일을 생각한다는 것.전북의 4대 강 주변에 살아온 우리 또한 흐르는 강을 보며 살아왔다. 우리 마음에도 강물이 흘러들고, 물줄기의 긴 생애를 따라 우리의 생각도 멀리 흘러 명경지심에 이르는 일…. 물빛에 너울너울 일렁이는 윤슬을 보고자 새벽별 물안개와 이슬 젖은 초승달과 함께 강변에 앉아 있는 일….발원에서 유역까지, 유역에서 다시 발원으로 물의 생애는 늘 근원을 생각게 만든다. 이처럼 물을 바라보는 일은 구심적이니, 그 물을 그윽히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은 구도적이다.인류의 삶은 모두 길을 따라 뻗어나왔다길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분기하고 팽창한다. 역사 이래, 그 무한 팽창은 이제껏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인간의 욕망, 인간의 상상력이 닿는 곳마다 새롭게 당도해야할 목표 지점이 발생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우리가 꿈꾸는 지점까지 선을 대고 그으면 그게 곧 길이 된다. 하여, 길의 역사는 곧 인류 욕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지도 바깥으로 행군하라'는 한 여행가의 외침은 기실 동서고금 모든 인류의 부르짖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팽창욕을 현실화시키려는 욕망에 허덕이는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제껏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인류에게 세상의 길은 딱 두 가지만 존재한다. 눈앞에 현존하는 길과 곧 개척되어 새롭게 드러날 길….임진년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의 침략 명분은 '명을 치고자 하니 길을 빌려 달라'는 것…. 그 단순한 폭력성에 담긴 팽창 욕구는 명료하기 짝이 없다. 전쟁의 역사는 이처럼 대부분 길을 두고 싸운 전쟁들이다. 길의 치리(治理)를 두고 다투던 인류는 언젠가부터 길의 이치<道理>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점잖은 논쟁을 벌이게 되었지만, '지금 나로부터 내가 꿈꾸는 지점'까지 자신의 길을 밀어붙이는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길은, 길에 나서는 일은 이렇게 '나를 확장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세계 방방곡곡을 배낭여행하던 때는 더 큰 삶의 반경이 간절한 탓이요, 둘레길 올레길을 찾는다는 것은 내면의 사색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뒷산을 오르거나 천변을 산책하는 일 또한 '재충전'으로서 시간이 필요한 까닭….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걷는 그 길이 나를 말해준다보행의 주요 수단이 두 다리에서 타이어로 바뀌고 난 뒤, 오히려 사람들은 더 많이 걸으려고 애를 쓴다.티벳의 성지 순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 일본의 고야산 보도와 같은 '길'을 구축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지자체나 민간 활동 기구도 늘어나고 있다. 둘레길이나 올레길은 그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각기 지리산과 제주도라는 천혜의 '하드웨어'를 '걷는 일'에 적절히 접목하여 성공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삼남대로, 관동대로, 문경새재 옛길과 같은 역사적 길을 복원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으며, 호응도도 높은 편이다. '길'이 갖는 역사성이 도보여행자들에게 '역사 속으로의 여행'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섬진강의 발원인 데미샘에서 물줄기를 따라 광양, 하동까지 걷는 경우도 있다. 생명의 유구한 내력을 따라 걷는 길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우리는 내가 걷는 길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연 속에서의 재충전, 역사 테마 기행, 생명 기행을 하게 된다. 종교적 순례길을 걷는다면 명상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될 것이다.어떤 길이든, 걷는 일은 소중하다.왜 인간에게 두 다리가 있는지…. 흙과 바람, 햇빛과 구름 속으로 걷는 일은 우리 인류가 분명히 자연의 일부임을 다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할머니들이 마실 장터 나가는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삶의 내력을 내 두 다리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내 두 다리로 내 삶을 다지고 있으며, 내 의지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구나 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있다.내 삶의 주인은, 내 두 다리의 주인인 '나' 자신이며, 다른 이를 만났을 때 '우리'가 되고, 자연의 일부임도 더욱 강렬하게 깨닫게 된다.걷기를 통한 삶의 자각…. 당장 오늘부터라도 시작해보자. /김병용(소설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