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⑦경계에서 - 지리산 트레일 上
▲ 지리산이란 산은 없다흔히 지리산 둘레 800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걸 자기 걸음으로 재어 본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어느 골짜기를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 지리산의 방원은 또 달라질 것이니 농사일도 바쁜 판에 그런 쓸데없는 짓을 뭣 때문에 하랴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에는 서른 세 개의 골짜기가 있다는 말도 있고, 셈이 좀 엉성한 이는 지리산 아흔 아홉 골이라고 어물쩍 뭉개기도 한다.GPS와 위성 사진이 존재하는 지금에도 이렇게 지리산에 대한 여러 이설이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지리산 주변이 너르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지리산'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지리산은 3도(道) 5군(郡)에 걸쳐 있는 커다란 산이다. 그뿐인가, 지리산 종주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노고단-천왕봉 구간이나 '반야봉 일몰'이니 '바래봉 철쭉'처럼 떠도는 말이 일러주듯, 천학만봉(千壑萬峰)의 집합체가 우리가 지금 '지리산'이라고 부르는 산군(山群)이다.따라서, 지리산이라 지칭되는 산봉우리는 지리산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리산은 거대한 추상의 산이다. 하지만, 지리산의 나무 한 포기, 돌멩이 하나가 지리산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리산'이라고 지칭하는 공간적 범위 내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물들은 부분이면서 전체로 '지리산'이다. 이병주의 [지리산]이나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잘 보여줬듯, 지리산은 자연과 사람과 세월이 빚은 역사적 공간이며, 지금도 여전히 생활의 터전이고, 여기 언급한 모든 부분의 총합으로서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이름이다. 관념과 현실, 산과 강, 사람과 자연 등… '지리산'이라는 말 안에는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다.하여, 때로 나는 지리산만 생각하면 '지리산맥'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산맥'이란 일본식 한자를 가급적 쓰지 말자는 분들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점을 꼭 밝히고 싶다. 그리고 또 때때로 나는 '지리군(郡)'과 같은 별도의 행정 구역으로 지리산의 역사?문화 공간을 존중하는 것은 어떨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공상을 할 때도 있다는 것 또한 밝히고 싶다.)하여, 누가 '지리산을 다녀왔다'라고 말하면 마치 '아프리카 갔다 왔어'처럼 어벙벙하게 들린다. '이집트 카이로에 다녀왔어'가 좀 더 정확한 말이듯, 반야봉이나 벽소령 혹은 백무동에 다녀왔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지리산 트레일' 조성, 몇 가지 생각지리산 둘레 800리. 한 시절, 지리산 자락이 조금만 더 넓었다면, 아쉬워했던 이들의 피 맺힌 한숨이 지리산 자락을 뒤덮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것도 방대한 거리와 면적이다. 거기 더해, 이 수치에 드러나지 않는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사람들의 마을이 살아온 내력이 지리산 자락에는 올망졸망 맺혀 있다.현재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리산 트레일 구간 조성 사업은 바로 이와 같은 지리산의 역사와 현재를 바로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다시 말하거니와, 지리산은 처음부터 저 혼자서 지리산이었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과 자연이 부대끼며 '만들어진' 공간이다. 내력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지리산이 겪은 세월, 거기 사람들이 그려놓은 무늬들 속에서 지리산은 비로소 온전히 지리산이 된다.백두대간 종주, 지리산 종주에 나서는 이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그리고, 이러저런 연유로 지리산을 찾는 이들의 수도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듯 하다. 그만치 개발도 많이 된다. 지리산 입장에서 보면 이 모두가 한 때의 과객(過客)들일 터…때로 나는 내가 길손을 자처할 수 있는지 한없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산야와 계류 그리고 마을을 만났지만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호명치 못할 때, 그러면서도 내 길이 바쁘다고 서두를 때… 돌아와 '지리산 어느 이름 없는 골짜기를 헤매고 다녔다'라고 부끄럼 없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한 순간, 난 차라리 내 이름 석 자를 지우는 것으로 속죄하고 싶을 만큼, 내가 밉고 걸어온 길에 미안했었다.스스로 원한 바 없지만 난 이른바 '386 세대'라고 불리웠고, '베이비붐' 세대라 칭해졌다. 이외에도 '뺑뺑이 세대'나 '졸업정원제 세대', '교련 단축 끝세대' 같은 꼬리표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나를 규정하려 들 때, 그럼에도 내가 거기 강렬한 귀속감을 느낄 때… 나는 그런 내 자신이 생소하고 불편했었다. 하지만, 이런 연대기적 표지는 내가 속한 시간대를 분명히 해주는 효과가 있다. 내가 원하는 명찰이 아닌 것이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난 누군가에게 집단적으로나마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역사의 행간에 묻혀버린 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 이같은 세대론적 표지도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나라도 가급적 낱낱의 이름들을 잊지 말고 호명하자 다짐하곤 했었다… 그게 내가 지리산의 산야초목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까닭이다.내가 걸어온 길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만난 이름들을 내가 정확히 호명치 못한다면… 난 대체 그 길을 왜 걸었던 것일까?'지리산을 찾는 이는 많지만, 지리산을 보살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성이 현재 지리산 트레일을 추진하고 있는 [숲길(www.trail.or.kr)]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제 멍든 마음을 지리산에 부려놓고 떠나가는가. 물론, 산은 찾는 이 모두를 받아들였다. 상처와 분노와 결기, 눈물과 한숨도 모두 끌어안았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지리산을 위대한 어머니 산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하지만, 지리산을 진정 어머니 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혹은 불러야 되는) 존재는 산꾼이나 관광객이라기보다 여기 터전을 이루고 사는 초목과 짐승,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이 산과 더불어 살아온 내력이 지리산을 치맛자락처럼 감싸고 있다. 이들의 삶이 곧 지리산의 삶이다./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