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⑧경계에서 - 지리산 트레일 下
▲ 산야 초목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전북 남원에서 경남 산청, 함양, 하동을 돌아 전남 구례에서 다시 남원으로 돌아오는, 장장 300여 킬로의 '지리산길'은 개발되는 길이 아니라, 복원되는 길이다. 그리고, 이 길 안에서는 지금 행정구역 상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 한다.지리산 트레일 1구간은 남원군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출발하여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 걷는 길이고, 2구간은 거기서부터 벽송사 지나 세동마을까지 걷는다, 1~2구간 합쳐 20여 킬로미터 남짓. [숲길]에서는 1구간을 '다랭이길'이라 부르고, 2구간을 '산사람길'이라 부른다. 이름 그대로 다랭이논을 보며 걷는 길이며, 변강쇠와 같은 초부(樵夫)와 빨치산의 별칭이었던 '산사람'들이 출몰하였던 길이란 뜻일 게다.결국, 지리산길은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고스란히 복원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마을 주민들과 협의를 마쳐 개통된 1~2구간만 걸어보더라도 이 길의 유구한 내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길은 사람들만의 길이 아니라 짐승들도 공유하는 길이라는 것, 여기서 누천년 농사짓고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 나뭇잎이나 풀잎을 한 번 들춰보라, 그 안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다른 곤충들의 세계가 펼쳐진다.물길과 산길은 그 궤적이 거의 같다.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의 낙차에 물길이 있고 산길이 놓여 있다.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거림골, 피아골 등을 떠올려보라. 생물 진화의 맨 앞단계에 있는 이끼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큰 바위를 뽀개고, 날선 작은 바위들은 물길과 함께 흘러내리는 동안 차츰 맨들맨들한 잔돌이 되어간다, 그렇게 물길과 세월 속에서 자신을 깎아낸 뒤 마침내 포구에 이르러 모래사장에 자신의 생애를 펼쳐놓은 돌의 생애가 산길 따라 길게 이어진다. 등산길은 모두 이 같은 수직적 시간대를 가파르게 타고 넘는 길이다.반면, 지리산길은 인간들이 조성한 수평적인 공간을 잇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휘적휘적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꼭 지리산의 발가락 사이를 건너가는 느낌이다. 식생(植生)과 우모린(羽毛鱗)이 오밀조밀 제 삶의 터전을 잡은 자리가 여기이다.지리산의 큰 키는 발치에서 봐야 제대로 크게 보인다. 큰 산일수록 더 그렇다, 들어가서 보려면 시야가 터지는 9부 능선 정도까지는 낑낑대고 올라가야 간신히 이마를 보여주지 않던가. 한반도에서 산악신앙은 희미해진지 오래지만, 이렇게 산의 발치에서 우러러 서 있노라면 절로 경외심이 인다. 물론, 낮은 자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산의 윤곽이다. 큰 것들은 윤곽만 보여준다.▲'다랭이길'과 '산사람길'을 걷는 동안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통해 생활의 터전을 조성하고 변화시킨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교통하고 교환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리산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와 같이 지리산을 생활 공동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은 땀을 흘린다. 정신과 육체과 함께 흘리는 땀이다. 이렇게 흘린 땀이 사람의 마을을 만든다. 따라서, 마을은 거기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나이를 먹는다. 젊은이들이 많이 살면 젊은 마을이고, 늙은이가 많으면 마을도 함께 늙는다, 땀이 마른 것이다.생업을 일구며 살아가는 공간에서 당연히 인간과 자연이 벌이는 문화 활동도 이뤄진다. 세시풍속이나 민속적 조형 등, 지리산에서 발견되는 유무형의 문화 자산 또한 우리가 소중하게 살펴야 하는 것들이다. 불행하게도,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고안한 문화 행위를 모두 잊게 되었다.백일홍이 피면 모를 내고, 백일홍이 질 때면 추수에 나서던 옛시절의 시간표를 우리가 잊은 순간, 백일홍은 사람들의 손끝만 닿아도 전신을 흔들어 거부하는 간지럼나무 노릇만 하기로 스스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당산나무를 봐도 그렇다, 이젠 친근함만 남았을 뿐, 신비롭고 엄숙하던 위의는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지 않다. 하니, 존중감이 생길 리 없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어디 당산나무 뿐이랴, 그 유명한 벽송사의 목장승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무서움과 존중감이 사라졌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삶의 엄중함을 스스로 저버렸는지도 모른다.[숲길]에서는 앞으로 옛길을 복원하면서 각 구간별 특징에 따라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거치는 총연장 300킬로의 구간을 각각 강변길, 마을길, 고갯길 등으로 특성을 살려 되살린다고 한다.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산과 강이 그린 지형이 제 각기 다른 바, 길이 다르니 이름도 다를 것이다.그리고, 우리가 모두 꼭 이 이름만 기억해야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내 경우, 1구간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랭이논보다 둥구재였고, 2구간은 벽송사 목장승이나 인민군 야전병원 자리보다 낡은 마을과 거기 사는 지리산의 사람들이었다. 결국 내 관심은 이 길을 '고갯길'과 '마을길'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지리산도 이 같이 다채로운 명명을 원할 것이다. 오는 이마다 하나씩 다른 이름을 붙여주시라, 그게 당신이 지리산과 훨씬 더 내밀한 관계를 갖는 첫걸음이다.이렇게 새로운 이름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지리산의 표정은 훨씬 더 풍부해진다. 내가 내 발로 지리산을 걸을 때, 지리산의 생태는 내 몸에 스며든다. 지리산이 내 몸에 지도를 새기는 것이다.한 번 걸어본 길은 마음이 잊더라도 몸이 기억한다. 다시 걸어보면 이는 보다 명확해진다. GPS에 궤적이 기록되듯, 내 두 발에 기억된 지도가 길을 만나면 절로 촤르륵~ 펼쳐져, 마음이 그어놓은 금을 따라 걸어나간다. 이렇게 맨발로 산길을 기억하는 것이 산을 대하는 최선의 예의이자, 길을 걷는 나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나는 오래 믿어왔다.2011년이면 지리산길이 300킬로 완벽한 고리띠를 이룬다고 한다. 하루 20킬로미터씩 걷는다면, 꼬박 보름 길이다. 아니, 고작 보름이다. 지리산 자락에 펼쳐진 그 많은 삶의 양상을 만나고 기록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지리산의 품 안에 맨몸으로 안겼다는 행복함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에 너무 섭섭하다면… 지금 달려가라, 걷고 또, 다음에 또, 걸어보자. 그때 그때마다 지리산은 정상에서, 계곡으로, 발치로 달려 내려오리니… 마침내 아스팔트 길 앞까지 당신을 마중나와 있을 것이다. 지리산도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추상명사였던 지리산이 이제 온전히 당신만의 고유대명사가 되는 순간이다. /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