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③군산 어청도
◆ 섬들의 항해어청도 가는 길엔 고군산열도가 먼빛으로 오랫동안 그 자취를 보여준다. 그 모습이 요지부동의 '섬'이라기보다는 지금은 정박해 있지만 언제든지 항진에 나설 수 있는 '배'처럼 보인다. 어청도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작은 육지'에 내린 게 아니라 조금 더 큰 배에 오르는 느낌…지도를 펼쳐놓고 오대양에 흩뿌려진 많은 섬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억측(?)은 더 심해진다. 선박의 탐조등처럼, 지도 위의 섬들은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며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호명한다. 난바다와 섬들의 관계를 이같이 유추하는 것을 유치하다 비웃지 마시길… 우리는 인간의 몸을 우주에 비겨 소우주라고 하지 않던가. 한반도를 흐르는 산의 흐름을 두고 '백두대간'이라고 칭하는 것과 어청도의 모습을 보면서 접영 선수 어깨쭉지를 떠올리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징에 대한 유추 해석이야말로 가장 직관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 아니던가. 인간의 시간이 도래하기 이전, 이 섬은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의 바다를 홀로 항해하고 다녔는지… 100년 수명도 안 되는 인간이 어찌 알겠는가.◆ 닻과 밧줄에 대한 단상모든 배는 닻과 밧줄을 갖추고 있다… 밧줄과 닻이 없으면 접안도 정박도 할 수 없다.항구를 향해 내뻗은 밧줄들의 의지는 팽팽하다, 외눈박이 짝사랑이 자기 구원을 향해 안타깝게 손 내밀듯… 또, 닻은 제 삶의 수심을 만날 때까지 수직 하강을 계속한다, 해저에 닿을 때까지의 그치지 않는 탐색… 닻이 내려가는 동안 공기방울들 뽀글거리며 이 물에 몸을 섞으리라, 닻에 묻은 지상의 것들이 완전히 물에 스밀 때까지…얼마 전까지도 섬진강 하구엔 '줄배'라는 게 있었다. 사공이 노를 젓는 대신, 양 기슭을 줄로 연결해 잡아 당겨가며 강물을 횡단했다. 그 줄이 없다면, 그 배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일엽편주 신세가 되었을 터… 하물며, 이런 난바다에 나선 배에게 돛과 밧줄은 생명의 동아줄이 아닐 수 없다. 그만치 밧줄과 닻은 필수적이고 그 결속에의 의지는 절박하다, '항로'라는 줄을 타고 와서 닻을 내리는 '줄배'들… 삶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연속성이나 계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청도 등대를 찾아가는 동안…수평선 위에서 유일하게 수직으로 우뚝 융기한 섬들은 그 지형이 하나같이 가파르다. 하긴, 그렇게 섰다고 해서 '섬'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여행'이란 단어는 제법 낭만적이지만, 실제로는 늘 눅눅하게 마련이다. '고실고실'한 공간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불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행은 없다. 모두 자신의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며, 그때마다 쉴 새 없이 끈적끈적한 땀을 닦아내야 한다, 열망이나 희열이란 단어는 얼마나 후덥지근한가.섬에 내리자마자 우선 등대 쪽으로 길을 잡았다. 7월 땡볕 속에 오르막길을 넘어가는 일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망해사와 뱃길 내내, 내 시야를 가로막던 해무는 이 섬에 도착한 순간부터 종적이 없다. '어청도'란 이름을 괜히 얻었겠는가, 쨍쨍한 하늘빛이 파란 바다 물결 위에 반사된 짙푸른 청색이 온통 섬을 휘감고 있다. 햇빛도 땀도 피할 수 없다.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땀을 말리기 위해 나는 열심히 걷는다. 양지 바르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 이런 섬이라면 바람길은 산정을 지나거나 해안 절벽 어름을 지나기 십상이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을 맞이하기엔 수직 안테나처럼 몸을 세운 하얀 등대 자리가 제격이다.◆ 등대, 태양의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정오, 햇발이 진군하는 소리가 가장 요란한 시각이다.어떤 이는 섬에서 유형이나 도피의 그림자를 읽지만, 난 태양 아래 환히 빛나는 등대를 먼저 떠올린다. 우뚝 하늘을 향해 치세운 하얀 팔뚝, 태양을 부르는 손짓이다. 빛이 강하면 그늘이 그리운 법이지만, 때때로 눅눅한 마음의 습기를 거둬 말리고 싶은 때도 있는 법이다. 한 점 그림자도 허락지 않는 땡볕에 육신과 정신을 널어두고 싶을 때마다 찾는 등대…어디에 서 있든지, 언제 보든지 등대의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몽환적이다. 돛대처럼 보일 때도 있고, 선장의 망원경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내 경우에는 나침반의 자침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부상목(扶桑木), 옛사람들은 해가 먼 바다 너머 어느 곳 높은 나무 위에서 떠오르고 쉰다고 생각했다, 우뚝 솟은 나무 위에 큰 새가 알을 품고 있듯이, 태양은 저녁이 되면 제 둥지를 찾아든다는 이야기, 얼마나 그럴듯한가. 아마 그 부상목은 섬의 또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출렁이는 바다 위의 섬에 서서 보면, 그 존재감이 가장 강렬한 것이 태양이다. 섬사람들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결된 일기 변화를 주도하는 것 또한 태양이다. 섬이며 사람이며 등대까지, 여기 수직으로 몸을 세운 것들은 모두 해시계가 되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제 그림자의 깊이와 농도를 물끄러미 살핀다.난 태양 숭배야말로 종교의 원시적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홀로 큰 눈, 날마다 어김없는 신들의 산책과 황도십이궁… 그렇게 보면, 섬은 태양의 사원이며, 등대는 오벨리스크라고 불리워야 하는 게 아닐런지…? 내리꽂히는 빛의 입자들이 또 등대의 외벽을 두드린다. '태양이 정오에 섰으니, 빛의 세례를 받으라' 소리치는 듯 하다.◆ 섬의 언어도착하자마자 돌아갈 배표를 예매하러 갔다가 '배 출발 한 시간 전부터 판매'한다는 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심쩍어 하자, '우리끼리도 한 시간 전부터 팔고, 배가 왔는데 표가 없어 못 가는 경우는 없으니 걱정마라' 덧붙인다. 예매? 정시 출발에 익숙한 나로서는 극심한 일기 변화를 반영한 그들의 언어에 쉬 익숙해질 수 없겠단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래도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서둘러 등대에서 돌아나와 보니 출항까지 무려 2시간이 남았다. 섬의 가파름보다 내 마음이 더 조급하고 가파랐던 것이다. 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슈퍼마켓을 겸한 간이주점에서, 사우나에 앉아 모래시계 떨어지기만 기다리듯, 맥주잔을 비웠다.그렇게 십여 분, 해군 둘이 들어온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듯한 복색과 표정이다. 좁은 공간이라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절로 들려온다. "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거야…" 단도직입, 앉자마자 이야기 수위가 높다. "시간이란 게 말이야… 정확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아…" 말투로 보아선 고참이 신참에게 남은 군 생활에 대해 충고하는 듯 했다… "남자나 여자가 다른 게 아니야, 기다리는 게 힘든 사람과 그걸 잘 견디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갑자기 더 엿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거기까지!막 출항을 알리는 기적이 울린다. 아까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젠 모자란다. 포구에 모였던 배들은 결국 다시 항해에 나서야 한다, 미련이 있다면 여기 부려두고 가는 게 아니라, 짊어지고 떠나야 하는 것… 내가 떠나고 배가 출항하면, 섬의 생애를 처음부터 지켜보아왔던 태양의 눈길을 따라, 이 섬 또한 천천히 헤엄치리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