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하나에 의지해 한 세계를 세워보려 합니다"
‘저는 이번 9월호부터 『신동아』에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준비해 온 「魂불」 제2부를 연재하게 되었읍니다. 부족한 저의 붓이 갈 길은 멀고, 져야 할 짐은 두려워, 밤이면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습니다. 다만 저는, 제 고향 땅의 모국어에 의지하여 문장 하나를 세우고, 그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없이 고단한 길이겠지만,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저는, 저의 삶과 저 자신이 서로 깊은 화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1988년 당시 김남곤 전북일보 편집국장에게 보낸 편지중 일부)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에 선생의 유품이 답지하고 있다. 지난 4월25일 개관이후 소식이 알려지면서 선생과 인연을 맺은 각계각층의 지인들이 관련 물품을 잇따라 기증하고 있다. 기증물품 중에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다’던 절친한 친구 방송작가 이금림씨가 내놓은 장문의 편지와 김남곤 현 전북일보 전무가 편집국장당시 받았던 편지와 엽서, 고려대 서지문교수와 주고받았던 선생의 원고와 강연문 교열본 등과 선생의 글이 실린 전북대학 교지, 잡지, 그리고 사진 등이다. 특히 이금림씨가 기증한 편지는 길이가 무려 2m30㎝나 되는데, 내용도 선생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어하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늦트이어, 스물 아홉 먹도록 思春하며, 막연히 삶을 동경하였다. 누구보다도 現 깊숙한 곳에 일찍 던져졌던 내가, 누구보다 늦게까지 現을 꿈꾸고 있었구나. (허긴, 삶이란, 가장 큰 꿈이기도 하지만.) 나는 一平生, 영혼의 숙제, 精神의 秘密을 푸는데 나의 힘을 다할 것이다.' 선생은 또 이 편지에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늘 생각하던 것이었지만, 나는, 自身이, 마리아形의 女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었다.’며 마리아형인간을 선택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엽서 12장도 함께 기증했다.1985년과 1988년에 당시 김남곤 국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우겠다’는 선생의 각오를 비치고 있다. 전북일보에 글을 보내면서 글의 분위기와 분량까지 세세하게 체크하는 선생의 치밀한 성격도 엿보인다. 서지문교수가 기증한 교열본 역시 치열하고 지독하게 글쓰기에 매달리는 선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불 교정에만 1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교열본들이 방증한다. 기전여고 선생 입교시 학교에 제출했던 자필이력서, 기전여고 동창생들과 함께 한 사진, 선생의 글이 소개된 1980년 전북대학 교지, 소설 ‘제망매가’가 연재됐던「전통문화」잡지, 그리고 1993년 중국연길 소설가 김학철의 자택에서 신경림 이시영시인과 함께 촬영한 사진 등도 기증됐다.장성수관장은 “개관이후 기증된 물품을 중심으로 전시관을 업그레이드 했다”며 “최명희선생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더욱 내밀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