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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우리 역사 속 도작 문화(稻作文化)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원장 김기현)이 24일 오후 3시 전북대 진수당 가인홀에서 '아시아적 시야에서 본 벼와 쌀' 주제로 해외 석학 초빙강연을 연다.다나카 코지 지역연구통합정보센터장(교토 대학 교수)이 이날 강연자로 나서 아시아 도작문화를 발전시킨 도작기술 발전 과정과 벼농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를 생태·환경·문화적인 측면에서 검토한다.벼농사와 쌀 문제를 식량이나 곡물무역 범주로 한정하지 않고, 생명과 생활 측면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킬 예정.이어 25일엔 전북대 사범대학 교수회의실에서 '임원경제지 연구의 문명사적 의의'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 「임원경제지」 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농업 전반을 비롯해 토지제도, 식물과 원예, 기상과 천문 등 총 16개 분야를 백과사전식으로 펴낸 책. 「임원경제지」 의 가치를 사상사, 농업사, 서지학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는 자리다.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임원경제지 농업사적 배경과 가치(염정섭 전북대 HK교수)' '풍석 서유구의 사상사적 위치(이천승 전북대 HK연구교수)' '사대부의 생활 이상과 임원경제지(조창록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아시아 유서 편찬과 임원경제지의 특성(이동철 용인대 교수)' 등이 발제에 나선다.지난해 11월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한국지원사업에 선정된 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은 초벌 번역이 완료된 원고 「본리지」 13권부터 10년에 걸쳐 완간할 계획이다.
'그 이서 사는 효자는 캄캄헌 밤 어둡고 무선 디를 어머이 혼자 물에 빠짐서 댕기는 것을 알고는 엄동 설한 얼어붙은 물 속에 지 몸뚱이를 바우같이 꼬부려서 웅크려 당구고 다리를 맨들어 어머이가 건너가시게 해 디렸지. (…) 그래서 인(人)다리가 된 거시여.' (「혼불」 중에서)「혼불」 다시 읽기.19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 9월 월례문학세미나에서 「혼불」에 등장하는 도내의 효자 다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홀에미다리' '한(恨)다리' '인(人)다리'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내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 이야기 같았다.이 다리들의 공통점은 천심깊은 효자가 과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데 있다.강사로 나선 정군수 시인은 "혼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내 문화와 역사가 고증돼 있다"며 "특히 효자 다리 소재 자체는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갖는 사랑을 더 깊게 표현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홀에미다리'는 김제 청도리 귀신사 입구로 흐르는 개울가에 있다. 사람이 딛고 건널만한 길고 널찍한 돌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순창 옹천골에 있었던 '한(恨)다리'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다리의 설화를 기억하고 있다.김제 이서면에 '은교리'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은교리'가 변해서 '은다리'가 되고 '인다리'가 됐다고 말한다."혼불은 한 여성이 가정을 일으키는 개인사적인 이야기 외에도 민족의 정신이 이어지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여성의 힘이 담겨 있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이날 월례문학행사는 특별히 야외에서 진행됐다. 고 최명희씨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정씨가 그를 보내며 썼던 시 '혼불로 길이 되소서' '삼우제' '수의' 등을 시민들이 작접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김제 출신인 정씨는 전북시인협회회장, 혼불정신선양회 이사, 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고, 전북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전담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등과 연구논문집 「김시습연구」 등을 펴냈다.
"한지의 생활화·산업화·세계화가 한지산업의 큰 축입니다. 글로벌 시대를 외치다 보니, 한지의 세계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죠. 오늘 토론회도 한지 문화 교류 사업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18일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한지문화외교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천년전주한지포럼'의 강진하 대표(58·전북대 교수). 이날 토론회는 '유엔사무총장 게스트룸 한지공간 연출' '일본 가나자와 교류전' '미국샌디에고 한지패션쇼' '상해한국문화원 초청 한국향, 전주 한지문화제' 등의 해외 사례를 발제하고 효과적인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본래 그는 종이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종이와 살고지고 하다가 13년 전 전주를 대표하는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종이에 비해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한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단아하면서도 색감에 따라 화려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한지는 한국적인 미(美)도 빼어나다.지난 2004년 그는 한지 관련 전문가, 공예가, 지인들과 함께 사단법인 '천년전주한지포럼'을 만들었다. 전주한지의 생활화하고, 상품화하는데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이들의 한지 사랑 활동은 크게 세 가지. 한지 발전을 위한 정책 개발 토론회, 해외 홍보, 한지 전문잡지의 발간이다. 우선 매년 1∼2회 여는 토론회를 통해 한지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전주시에 정책을 건의해왔다.또한 매년 중국 미국 일본 등과 교류하면서 현지 교민들, 외교대사관과 함께 전주 한지 알리기에 힘써오고 있다."지난해 10월 상해문화원에 교류사업차 갔을 때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패션쇼 공예품 전시회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이후 현지에서 요청해 12월 한지공예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다음달에도 공예체험을 위해 다시 찾을 계획입니다."특히 중국은 서화지 시장, 미국이나 유럽은 문화상품 위주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다음달엔 한지전문잡지 「한지와 나」 창간호가 나온다. 앞으로 계간호로 한지에 관한 정보, 한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실을 예정.한지 제품 마케팅에도 힘을 쏟고 싶은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한지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전주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단체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위해 다른 지역 문화단체들과의 간담회를 갖는다.19일과 20일 전주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간담회는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진행해 온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타 지역 문화예술 단체와 협의해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전주의 문화예술단체가 다른 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기획됐다.이날 간담회에는 수원화성운영재단 김영기 대표이사와 박완열 공연팀장, 인터컬쳐 남정숙 대표, 경희대 아트퓨전대학원 김동언 교수, 경기도립국악단 전무영 기획실장,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조경환 이영석 나혜민 팀장, 서울문화재단 김홍남 창의경영팀장 등을 비롯해 전주문화재단 공연예술분과 추진위원 등 3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천년전주한지포럼이 18일 오후 6시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2008 열린토론회'를 연다.'한지문화외교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도내 한지 관련 단체들이 지난 5년 동안 진행해 온 국제교류전을 되짚어 본다.일본 가나자와 교류전을 해 온 한지문화진흥원, 세계종이작가 영국총회 전시회에 참가한 전주한지조형작가협회, 유엔 사무총장 관저 게스트룸을 한지로 연출한 예원예술대 한지연구소, LA한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전주대 RIS사업단, 미국 샌디에고에서 한지팬션쇼를 연 전주패션협회, 상해한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천년전주한지포럼 등이 참여, 사례를 발표하고 교류시 발생한 장단점을 토론한다.천년전주한지포럼은 이날 발표된 사례들을 묶어 자료집으로 발간, 국제 교류시 발생하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위한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나는 이름 앞에 관사도 없고 형용사도 없습니다. 다만, 문인(文人) 말고 꼭 문학인(文學人)이라고 써주세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거든요."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진 책장 선반. 수필가 김경희씨(62)는 그 아래 앉은뱅이 탁자를 두고 수필을 쓰거나 시를 짓는다.시는 혼자 끄적끄적하는 것.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그는 "수필을 쓰면 수필로 죽어야지 시인 행색을 할 생각은 없다"며 단호히 말했다. 등단 전부터 직접 '가리방'에 철필로 글씨를 써 등사판에 대고 롤러로 밀어 몇 권의 책을 펴냈다. 1979년부터는 최승범 고하문예관 관장이 펴내는 「전북문학」에 글을 발표해 왔다. 그는 "웃고 찍은 사진은 등단했을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대학에서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게 죄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이 매운 눈물을 흘리던 시절에도, 군인들이 정치하던 시절에도, 펜은 잡고 있었지만 역사를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쓰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순창농림고등학교와 광주교육대학 부설 초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잠깐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곧 다시 전주로 내려와 서해방송 전주분실과 전주대에서 근무했다. 2004년에는 전주대 생명과학부 행정실장으로 정년퇴임하고, 2007년까지 신아출판사 상무로 재직하며 「수필과비평」 편집인과 「소년문학」 주간을 역임했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서 인생이 한 번 꺾이고나니 사는 게 힘들었다"면서도 "서울서 허덕거리지 않고, 다시 전라도 문화 속에서 서늘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참 고맙다"고 했다."글을 쓰다보면 밥도 되지 않는 걸 한다고 가족들 숨죽이게 하는 게 미안합니다. 진작 문학에 사표를 낼까도 싶었지만, 그게 안되더군요. 다른 것은 다 평범해도 글만큼은 남들과 다르고 싶어요.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정신은 가지고 가다가 쓰러져야 할 것 아닙니까."삶이 고단하고 인연이 단출한 사람일 수록 사회감정에 쉽게 지치게 된다. 결코 단조롭지 않았던 삶. 글은 자연히 인간 본질에 대한 것들을 향하게 됐다.담담하면서도 진중한 글쓰기는 아름다운 것보다 참된 것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 김씨는 "시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이고 소설이 한강이나 낙동강 쯤이라면, 수필은 전주천 같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맑아야 하고 사람과 더 가까워야 한다.'나는 지금 뱀이라면 허물을 벗어야 하고 매미라면 탈바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에라면 마지막 잠을 자고 섶에 올라 고치를 지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과거로부터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를 손에 쥐고 홀로 가는 사람으로서의 길에 비겁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생명의 무늬」(수필과비평사) '내 신념과 철학' 중에서)쾌작 한 편 딱 부러지게 쓰지 못해 염치없다는 김씨. 그러나 고민하며 살아온 삶과 고민없이 지내온 삶과의 차이는 분명하다.이미 수필집도 일곱권이나 냈고, 이제는 수필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 그는 수필 읽기와 쓰기 등 일종의 수필 개론서를 자신의 수필관을 담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감사와 양지노인대학 수필창작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문이 다 닳아없어진 단단한 손가락은 열두줄 명주실을 타고 놀았다.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은 가야금을 뜯기 알맞게 굽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가야금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악기의 일부가 돼버렸다."사람들은 가야금을 오래 타서 굽어진 줄 아는데, 쉽게 말하면 손가락이 '병신'이 된 거예요."스물여섯. 부산에서 생활할 때 집에 불이 났다. 불 붙은 전기선이 떨어지면서 오른쪽 손을 감아버렸다. 살과 힘줄이 붙어서 오그라든 손을 펴기 위해 세 번의 수술을 했고, 힘이 빠진 손가락을 바위 덩어리에 대고 연튕김하듯 단련했다.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열씨(58·전북도립국악원 교수)는 그 때가 진짜 고비였다고 말했다.대금 명인 강백천이 백부, 동편제 판소리 명창 강도근이 당숙,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의 계승자 강순영이 고모, 안숙선 명창이 한살 위 친척누나인 그에게 가야금과 소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곱살에 강순영 명인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열세살에 고 진만국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배웠다.가난한 살림에 소리와 가야금을 익히며 고생도 많았다. 변성기 때는 남들 100일 공부를 1년씩 걸려 하며 소리를 되찾았다. 반년은 남원 육모정 폭포수에서 소리를, 나머지 반년은 청왕봉 용정암 아래 움막에서 가야금만 탔다. 손에 눈이 달려야 한다며 불을 끄고 새벽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내가 이걸로 꼭 성공한다는 욕망 밖에 없었다"고 했다."이게 무속에서 나와 창으로, 창에서 현악기로 옮겨온 것입니다. 평생 이것만 하고 살다보니 어느 것 하나 싫고 좋고가 없습니다. 소리에 힘이 들어갈 때는 가야금을 죽이고 소리의 빈 공간은 또 가야금이 살려주니, 오묘한 멋이 있지요. 가야금 병창은 솔직히 내가 하면서도 마음이 끌려요."판소리 목으로는 수리성을 가졌다. 곱기만 한 소리와 달리 강하고 힘찬 맛이 있다. 장단의 박을 짚어주거나 소리가 없는 공간을 메꾸어 주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물기에는 가야금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그는 "원래는 판소리를 전공하려고 했지만, 가야금 또한 놓을 수가 없었다"며 "이왕이면 1인 2역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공부할 때 버릇이 몸에 익어 아직도 새벽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강씨.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전북도립국악원 가야금병창반을, 밤 9시까지는 전주시 금암동에 있는 개인 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흐트러짐 없는 삶을 위해 다른 약속도 잡지 않는다."자부심이나 자만 같은 건 없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잘했다고 하면 잘했는갑다 생각하면 그만이지요.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하고 죽는 게 예술입니다. 또 지금 잘하네 못하네 해도 죽고나야 제대로 평가받는 게 예술가의 삶이죠."내년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킨 고 정달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0주기가 되는 해. 추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서공철, 정달영으로 이어지는 고제(古制)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때묻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소리를 지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남자에 의해 불려지는 가야금병창을 듣기 힘든 시대. "내 모든 혼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다.
1천300년 전 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세불상(三世佛像)이 공개됐다.전북 익산의 원광대 양은용 대학원장이 10일 공개한 삼세불상의 공식 명칭은 '개원 3년 명 석조삼세불입상(石造三世佛立像)'으로 하나의 기대부에 대리석재로 된 과거불과 현세불, 미래불이 나란히 서있다.높이가 43㎝ 안팎인 이 불상 중 한 가운데 있는 현세불의 오른손에는 여의주가 쥐어져 있다.또 당시 효성이 지극했던 신라의 사회상을 반영하듯 명문에는 '아버지를 위하여삼가 삼세불 1구를 짓는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이 삼세불상은 1965년 경주 불국사 근처에서 소장자의 부친이 밭을 갈던 중 발견했으며, 양 교수는 관련 자료 검토와 전공 교수들의 자문을 받아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해 이를 공개했다.양 교수는 "불상의 명문에 대당 개원 3년(大唐開元三年)이란 정확한 제작연대가있는 것으로 미뤄 71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불상의 양식 연구에 큰 도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삼세불상은 과거와 현세, 미래의 부처를 말하며 과거불은 '연등불', 현세불은 '석가모니불' 56억 7천만 년 뒤에 온다는 미래불은 '미륵불'이라고 부른다.
가람시조문학회(회장 신길수)가 가람 이병기 선생 서거 40주년을 추모하는 '2008 가람시조문학제 및 전국시조현상 공모'를 개최한다.11월 8일과 9일 익산시 원광대 숭산기념관 제1회의실에서 열리는 문학제는 가람 시조시인 추모 학술제와 가람 생가 및 인근 문화유산 탐방 등으로 진행된다.그밖에도 '가람시조 신인상 공모'와 '전국 초·중·고교생 시조백일장', '제3회 익산시조축제 및 전국 3행시 현상 공모'가 함께 진행된다.'가람시조 신인상 공모'는 등단 10년 내외 기성 및 신인을 대상으로 하며, 10월 25일까지 신작 시조 10편을 접수하면 된다. 당선자 1명에게는 상금 300만원이 주어진다.'전국 초·중·고교생 시조백일장'은 10월 31일 익산시 배산공원에서 열리며, 주제는 당일 발표된다. '서동요'를 시제로 한 '익산시조축제 및 전국 3행시 현상 공모'는 10월 15일까지 1인당 5편 이상 접수하면 된다. 문의 011-673-3183
국내 유일의 후백제 유적지인 동고산성(전북도 기념물 제44호)을 국가지정 사적지로 승격시키는 등 문화유적 정비 복원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7일 전주시에 따르면 20여년에 걸친 동고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양한 유적이 발굴됨에 따라 이를 근거로 사적지로 승격 받고, 성곽 터를 복원하는 등 본격적인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추진해나가기로 했다.시는 동고산성과 관련해 지난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억4326만원을 들여 모두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한 가운데 견훤궁터와 동문지, 성곽 일부 등을 발굴했다.견훤 왕궁 터임을 알리는 초석을 비롯해 적심시설, 기단석, 내주 초단석, 건물지 배수로, 초석주좌 등 동고산성 부지임을 알리는 다양한 유적들을 발굴해낸 것으로 전해졌다.이를 근거로 시는 내년부터 오는 2014년까지 총 100억원을 투입해 동고산성 터와 인근 부지를 중심으로 한 후백제 문화유적 정비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나가기로 했다.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의 경우 회랑도 정비와 성곽보수(1500m), 왕궁건물 및 부속건물지 건물복원, 안내판증설, 진입로정비, 주차장확보 등이 잇따라 추진될 계획이다.특히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의 핵심사업이 될 동고산성의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해 올해 5억6100만원을 들여 마지막 발굴조사(6차)에 들어가는 등 다양한 고증확보에 나선다.시는 이번 발굴조사에서 동고산성 일대의 성문형식이나 구조, 초축과 증개축여부 등을 파악해나갈 계획이며, 동고산성의 국가사적지 지정은 내년 초께 신청할 방침이다.시 관계자는 "지난 1990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다양한 유적들이 발굴됐다"며 "이를 근거로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보다 활발하게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지난 900년에서 36년간 후백제 도읍지였던 전주시의 교동 승암산에 있는 동고산성은 후백제 관련 유물들이 다양하게 매장돼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대원군 이하응, 서예가 이삼만, 의병 최익현,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의 편지를 한 곳에서 도민들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완주군이 묵적(=붓으로 쓴 편지)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옛 선현들의 혼이 담긴 편지를 한 곳에 모아 관광자원화 하기위한 야심찬 계획이 성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완주군은 최근 (사)한국고미술협회에 의뢰, 백록문화박물관(회장 이대선·62·경북 영주)이 소유하고 있는 3735점에 대한 옛 선현의 편지를 감정한 결과, 27편은 가짜로 밝혀졌으나 대부분(3708점)이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완주군이 이번에 이대선씨가 소장하고 있는 편지를 감정한 것은 그의 편지 전체를 유치하기 위해서다.평생 선현들의 편지 수집을 해온 이씨는 지난해말 완주군에 기증 의사를 밝혀 인수, 인계작업이 진행돼 왔다.이 씨는 완주군에 자신의 작품 전체를 희사하는 대신 박물관을 건립해 자신이 명예관장을 맡도록 하는 등 몇가지 조건을 제시, 현재 협상이 진행중인 상태다.완주군은 한국묵적박물관을 건립, 선조들의 피와 땀, 철학과 지혜가 담겨있는 편지를 한곳에 전시해 전북은 물론, 전국 청소년들에게 정신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인수에 앞서 완주군은 최근 1700만원의 감정비를 들여 이 씨의 작품 전체에 대한 감정을 실시한 결과, 옛 선현들의 편지의 가치는 무려 20억9700만원에 달했다.퇴계 이황의 간찰(편지)의 경우 1점에 1000만원에 달해 최고가 였고, 조선말 정치인인 김홍집, 좌의정을 지낸 송시열, 대원군 이하응, 전북 출신 서예가 이삼만의 편지는 각각 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전주 무형문화유산전당이 실질적인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당으로 확대될지가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1일 전주시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의 사업 확대에 따른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하는 가운데 사업대상지인 전북 도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한 뒤 이를 반영해 나가기로 했다.기획재정부는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과 관련해 시가 애초 사업비 493억원에서 400억원이 증액된 893억원을 요구해오자 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이번 타당성조사는 이번 주부터 전국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이중 40% 정도를 전북도민으로 할당한다.결과적으로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의사가 제시될 경우 무형문화유산전당을 아시아와 태평양을 대표하는 전당으로 확대 건립할 수 있는 것.기획재정부는 이번 설문조사와 관련해 전당 건립에 따른 소득세 지불 의사 금액, 전주 유치 찬반, 방문 참여 의향, 무형문화 유산의 가치 인식 정도 등을 물을 계획이다.전주시 동서학동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 부지(면적 5만9588㎡)에서 추진될 아태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의 확대 여부는 올 11월 용역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시 관계자는 "아태문화유산전당의 경우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대표전당으로 들어서야한다"며 "이를 위해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10월 30일 전주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공개발표회'.가슴을 졸인 것은 객석 뿐. 장구를 치던 스승은 제자의 춤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쇠약해진 몸을 일으켰다. '바람 한 자락 붙들었다' 놓듯 '한량춤'을 풀어낸 금파(金波) 김조균 선생(1940∼1998)은 제자이자 아들인 김무철씨에게 '한량춤' 부채를 건네주었다. 경건한 대물림 의식. 전설과도 같은 그의 뒷모습에 관객들은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해 12월 24일 금파 선생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김무철씨는 지금도 그 때 그 부채로 춤을 춘다.전북 춤의 전설이 된 금파 김조균 선생. 그의 10주기를 기리는 추모공연 '전설(傳設)'이 3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다.정읍·이리·전주권번에서 예기와 한량들을 가르쳤던 정자선과 그의 아들 정형인으로부터 '남무'와 '삼현승무' '한량무' '호적구음살풀이춤' '전주검무'를 전수받은 금파. 그의 춤은 투박스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이 있었다.중학교 3학년때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흑장삼을 입고 춤을 췄던 소년. 그러나 그는 서울의 큰 무대를 마다하고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전북무용협회 회장, 전주시립민속예술단 무용부감,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부 교수 등을 맡으며 전주춤의 뿌리를 지켜왔다.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섰던 금파 선생은 전북 무용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기려야 할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를 기억했다. 정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은 "금파 선생은 전라도 정서를 춤으로 이입시켜 온 명인"이라며 "그의 춤 가운데 '한량무'는 남성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기량과 품격으로 우리 무용원에서도 춤 레파토리로 정착시키고 있는 명무"라고 존경을 표했다.헌정의 의미가 담긴 '전설'은 특히 김숙 전북무용협회 회장에게 각별하다. 중학교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까지, 김회장은 그 고단했던 삶을 진정한 춤꾼이 되기 위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혼신을 다해 춤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오신 금파 선생님의 길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며 이번 공연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전설'은 선생이 1961년 만든 금파무용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KNUA 무용단원들이 함께 한다. 1부는 '그들에게 바치는 장미-한량춤'과 2부는 '성스러운 광기-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 3부는 '우리 전설 다시 돌아오다-학이여, 그리움이여!'로 채워진다.1998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된 금파류 '한량춤'은 높은 예술성과 넘쳐흐르는 흥을 역동적인 춤사위로 풀어낸 남성이 추는 홀춤. 호남의 여유있는 산새와 평야가 춤 안에 담겼다. '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은 국내외 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한 17명의 무용스타들이 만든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실력있는 젊은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나라 춤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학이여 그리움이여!'는 학처럼 고고했던 금파 선생의 춤사위를 떠올리며 정승희 한예종 무용원장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다.전북, 전주춤을 있게한 금파 김조균 선생. 죽는 날까지 무대를 잊지 못했던 그의 몸짓이 다시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동의보감이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및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동의보감(東醫寶鑑)',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腹藏遺物)',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 '청자 양각 연판문 접시' 등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동의보감은 허준 등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들을 모아 집대성한 한의학 백과사전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5권) 및 규장각 한국학연구원(24권.1권 낙질)에 각각 소장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이미 보물 제1085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은 제1085-2호,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제1085-3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국내에 남아있는 동의보감 초간본(목활자본)은 전본이 드물어 희소성이 있으며 한국 의학사와 임진왜란 이후 도서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하며 동의보감의 보물지정 이유를 밝혔다. 또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571호)은 13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보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 보살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가치가 크다. 보살상 안에는 10종 194점에 이르는 복장유물이 나왔다. 이밖에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보물 1572호)은 고려말에 제작된 복식과 각종 직물류 및 팔엽통 등의 유물로 이뤄져 있어 학술적 가치가 상당하고, 청자 양각연판문 접시(보물 1573호)는 고려시대 청자 접시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03년 집중호우 때 발견된 마애불좌상은 기존의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과 함께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불 및 마애여래좌상'으로 명칭이 변경 돼 보물(221호)로 지정됐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서는 국가 혹은 시ㆍ도 지정문화재가 아닌 것 중에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것을 등록할수 있다"(47조 1항)고 규정하면서 이를 '등록문화재'로 명명한다.이 조항에서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등록문화재가 지정문화재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는 점이다. '지정'이 법적 강제와 구속력을 동반하고, 그에 따른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데 비해 '등록'은 말 그대로 해당 문화유산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그런 사실을 문서에 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이 때문에 등록문화재는 국보나 보물, 사적이나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와 같은 중요 국가 지정문화재와는 여러 모로 엄청난 '신분' 차이가 있다.특정 문화유산이 국가, 혹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 그 순간부터 못질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각종 규제를 적용한다. 그래서 지정문화재를 지탱하는 근간은 '허가'다.그렇지만 등록문화재는 각종 행위가 대체로 '신고'에 기반을 둔다. 예컨대 등록문화재와 관련해 그 관리자를 선임하거나 해임하는 일, 그 소유자가 바뀐 일, 혹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 유실, 도난 또는 훼손되는 일도 사건 발생일로부터 15일이내에 관할 시장ㆍ군수나 구청장에게 신고만 하면 된다.심지어 등록문화재 원형을 변경하는 행위도 '신고'만 하면 된다. 문화재보호법 50조에서는 "(이런) 행위를 하려는 자는 변경하려는 날의 30일 전까지 관할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다.서울시가 원형을 보존하라는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등록문화재인서울시청사를 '과감히' 철거하려 행동에 돌입한 법적인 근거가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다만, 건축물의 건폐율이나 용적률에 관한 특례 적용을 받거나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은 등록문화재에 한해 현상 변경행위를 하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이처럼 등록문화재는 혜택주의를 표방한다. 특히 건폐율과 용적률은 '국토의 계획 이용 및 이용에 관한 법률'(제77조 이후 79조)의 규정과 관계 없이 "150%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완화하여 적용할 수 있다"(51조)고 규정할 정도다.이런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되어 시행에 들어간 것은 2001년 7월. 그에 따라 그 해 12월에는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을 비롯해 근대문화유산 10건이 처음으로 '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2008년 8월 현재 397건에 이르는 등록문화재가 탄생했다.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니기에 대체로 근ㆍ현대기에 생성된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등록문화재의 등장은 한국 문화재 정책사에서는 한 획을 긋는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문화재 지정이 규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주기도 한다는 실증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이런 정신을 살려 등록문화재는 종래에는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하기 힘든 것들도 급속도로 문화재 범주로 포섭해 들어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천의 자장면집은 그 대표적 사례다.하지만 등록문화재가 본격 궤도에 오를 무렵, 불미스런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대 위기를 맞는다.2005년 9월에는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옛 대한증권거래소에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역시 문화재 등록이 예고된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이 각각 건물 소유주에 의해 철거돼 버렸다.나아가 이듬해 3월에는 이미 등록문화재가 된 경북 영천의 일제 강점기 비행기 격납고가 중장비에 파괴됐으며, 2007년 6월에는 경기 시흥시 장곡동 일대 소래염전에 들어선 일제 강점기 소금창고 40개 중 38개가 등록문화재 예고기간에 소유주에 의해 완전 철거된 일도 있었다.이는 등록문화재 또한 엄연히 '문화재'인 까닭에 그에 따른 사유재산권 행사 침해를 우려한 소유주들이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었다.이런 일이 잇따르자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대상을 관공서나 공공건물로 방향을바꾸기 시작했다. 설마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등록문화재라 해서 그것을 무단으로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는 최근 서울시청사 문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광역자치단체인 서울시가 도심에 있는 상징물의 하나인 청사를 중장비를 동원해 파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등록문화재 제도 전반을 손질하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등록문화재를 지정문화재로 전환하겠다는 말이나 진배없다.이런 점에서 서울시의 행위는 설혹 그것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과 함께하는 문화재로 가깝게 있던 등록문화재를 또 하나의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규제'중심의 문화재로 변질하게 만든 셈이다.
우리나라 소조상(塑造像)의 보고 완주 송광사. 송광사 소조상이 감마레이 촬영으로 그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냈다.지난 14일 송광사에서 지장전(地藏殿) 소조상에 대한 감마레이 촬영을 진행한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연구소 전경미 교수는 "기존의 소조상에 대한 이해는 서양의 방법대로 각목을 열십자로 세우고 새끼줄이나 끈을 묶고 그 위에 흙을 붙여나가는 방법으로 알고 있었지만, 송광사 소조상은 상의 대부분을 두꺼운 통나무로 세우고 1∼2cm 정도로 흙을 붙이고 그 위에 천을 대고 채색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또 각 상의 머리와 목, 목과 가슴, 팔복, 발목 부분과 두 손을 앞으로 해 합장하거나 지물을 가지고 있는 등 흙이 떨어지기 쉬운 곳은 철핀을 제작해 꽂아놓았다.이날 감마레이 촬영 대상이 된 소조상은 도명존자상과 시왕상 2구, 판관 1구, 동자상 1구, 인왕상 1구 등 지장전 좌우상과 시왕상 및 권속 30구. 1640년 일안, 승명 등의 승려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지장전 소조상은 복장기(腹藏記)가 있는 절대연대 작품으로, 17세기 소조상이 두꺼운 통나무재를 사용해 목심을 두고 흙을 붙여 천으로 바른 형식이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지난해 익산지역 숭림사 영원전 시왕상과 나한전 나한상, 심곡사의 시왕상을 촬영했던 문화재보존연구소 측은 송광사 상들은 두꺼운 통목재를 사용한 반면, 익산지역 상들은 기본적으로 각목을 열십자로 세우고 힘을 더 받아야 하는 곳에 각목을 2∼3개 덧댄 형식이었다고 분석했다.전 교수는 "송광사는 금강문의 금강역사상, 천왕문의 사천왕상, 대웅전의 삼세불상, 나한전의 나한상 등 모든 불상이 소조로 제작된 점에 있어 우리나라 소조상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지만, 2004년 천왕문 사천왕상과 2006년 금강문 금강역사상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엑스레이 또는 감마레이 촬영을 하지 않아 중요한 자료들을 잃어버리고 사용된 안료와 섬유의 분석 또한 폐기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교수는 "감마레이 촬영은 내부 구조가 어떻게 조성됐는지 파악할 수도 있지만, 균열 부위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향후 보존처리시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 손을 대야하는지도 알 수 있다"며 "지장전 소조상은 양호한 상태로 보이지만, 뒷쪽이나 접합 부분 등 보수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어 모든 소조상에 대한 경화처리는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지장전 소조상들에 대한 안료 및 섬유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보물 제904호는 그리스 고대 청동투구다. 1987년 보물로 지정된 이 투구는 21.5㎝ 높이로,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으며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완전히 보호하도록 돼있다.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이 투구가 어떻게 우리나라 보물이 됐을까?이 투구는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것이다. 1875년 제우스 신전에서 발견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수여하도록 돼있었지만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베를린박물관에 보관돼 오던 것을 1986년 그리스 부라딘신문사가 주선해 우리나라로 오게됐다.이처럼 우리나라 유물이 아닌데도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있다.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에 문의한 결과, 우리나라 보물 중 외국에서 건너온 것은 총 7점. 보물 제393호 전등사범종(傳燈寺梵鐘), 제560호 진솔선예백장동인(晋率善濊伯長銅印), 제620호 유리배(琉璃杯), 제624호 유리제대부배(琉璃製臺附杯), 제635호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 제904호 그리스고대청동투구, 제1095호 봉림사목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鳳林寺木阿彌陀佛座像腹藏典籍一括)이다.전등사 범종은 일제 말기 금속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돼 전등사로 옮겨진 것으로,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중국종의 모습이 보인다. 종의 몸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의 철종 4년(1097년, 고려 숙종 2년)에 주조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철제종이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사례로, 중국제 철종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진솔선예백장동인은 중국 한대 이후 이웃나라 왕에게 수여한 도장이다. 중국 진나라때 만든 것으로 경북 영일군에서 청색 유리옥 10개와 함께 출토됐다.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배와 미추왕릉에서 나온 유리제대부배는 유리를 재료로 한 유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서방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금제감장보검은 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형태와 문양이 다르다. 금제감장보검 같은 형태의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될 뿐 동양에서는 나타나지 않아, 동·서양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의미있는 자료다.1978년 봉림사 아미타불좌상을 개금할 때 나온 목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 중 1095-5호인 과주묘법연화경(科注妙法蓮華經)은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간행년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태조에 의해 간행된 대보은사판대장경(報恩寺版大藏經)의 영향을 받은 명나라 초기 간본으로 추정되고 있다.최근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외국 유물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사례가 떠돌고 있지만,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관계자는 "일괄로 묶인 경우 보물 하나에 100여점이 되는 유물도 있어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출토돼 우리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근래 연구에서 외국산의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국보 42호로 지정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이 대표적인 예. 불감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이다.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과 관련돼 있어 한 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지눌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기법 등이 8세기 당나라때 작품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외국 것을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약탈을 통해 들여온 것이 아니라 문화교류나 외국 유학 과정에서 들어와 한국화되거나 우리 역사가 담기게 된 문화재들은 지정해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근대문화유산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가 문화재로 등록됐다.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875번지에 위치한 옹기가마는 도예가 안시성씨 소유. 지난 7월 문화재 지정예고과정을 거쳐 최근 문화재 등록이 확정됐다.등록 대상은 옹기가마 1식과 옹기작업장 1층 1동. 가마는 길이 22.5m, 너비 1m, 높이 1.6m 규모며, 작업장 건축면적은 124㎡로 물레 4기 등 작업도구 일체를 포함하고 있다.부거리 옹기가마는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에 의해 설립, 부거리 부창마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마 및 작업장이다. 등요 형식의 대포가마 경우 아궁이 부분 일부가 파손됐지만, 그 원형이 잘 살아있고 초가 형태의 전통 옹기작업장도 외관과 내부 4대의 옹기물레를 비롯한 작업도구가 잘 남아있어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는 "문화재로 등록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며, 향후 보수·정비에 있어서도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태조 이성계 어진 관련 유물의 전주 환안 작업이 본격화됐다.전주시는 11일 태조 어진을 제외한 산, 선, 향낭 등 관련 유물 28점을 용인대 산학협력단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로부터 반출받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탁했다고 밝혔다.태조 어진은 현재 서울 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10월 환안행사와 함께 전주로 돌아올 예정이다.지난 6월 어진 봉안장소가 전주 경기전으로 최종결정된 이후 11일 처음으로 전주로 반입된 유물은 총 10건 28점. 경기전 산(傘) 4점, 선(扇) 3점, 대 3점, 향낭 3점, 휘장 3점, 산·선 받침대 2점과 조경묘 산 2점, 선 2점, 향낭 2점, 산·선 받침대 4점 등이다.이번에 반환된 관련 유물 보존처리는 용인대 산학협력단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가 맡았으며 전주시는 이를 국립전주박물관 기탁,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할 예정이다. 보관기간은 2011년 8월까지로, 경기전 내 유물전시관이 개관하면 전시관으로 옮길 계획이다.
전주역사박물관이 2008년도 유물 구입을 위해 8일까지 접수를 받고 있다.구입 대상 유물은 한지 관련 유물과 지역(전주) 관련 유물.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우선 수집하며, 출처 등이 분명하지 않거나 소장자와의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유물, 도굴 등 불법으로 취득한 유물은 매도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구입 대상 유물은 역사박물관 예비평가위원회와 유물평가위원회에서 심의 평가 후 선정된다.참가자격은 개인소장자, 문화재 매매업자 및 법인 등 관련 유물 소장자. 문의 063) 228-6485~6.
우려가 현실로?…전북도의회,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산 대폭 삭감 '논란'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소개합니다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문학 이끄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경종호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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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정신을 담아내다... 미술관 솔, '해강 김규진․보정 김정회 사제 전'
80년대 천재 음악가, 故김명곤을 추억하다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등단의 영광 경험한 작가들, 서로를 응원하기 위한 모임 '전북일보 문우회'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전하는 '조화와 공존'⋯관현맹인전통예술단, 아리랑 세상에 울리다
제12회 전주문학상 본상·제9회 문맥상 수상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