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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부츠 - "매서운 강추위·폭설에도 따뜻하게 멋낼 수 있어요"

며칠 매서운 강추위에 온 몸을 떨면서 중무장에 나섰다. 내복도 입고, 옷도 껴입고, 모자와 장갑까지 갖췄지만 여전히 한기가 느껴졌으니 이유는 바로 발. 양말을 신어도 차가운 바닥에 닿으면서 한기가 들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은 구두마저 신을 수 없으니 꼼짝없이 추위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점점 추워지는 겨울을 그냥 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리털에 이어 더 따뜻한 거위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가 하면 이제는 신발도 패딩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름도 '패딩 부츠'다.부츠(Boots)는 신발의 윗 부분이 복사뼈 위까지 올라오는 신발을 뜻한다. 다리 부분을 덮는 목이 긴 신발이나 장딴지 이상 높이의 구두의 총칭. 일반적으로 '부츠'라는 외래어로 부르지만 '목 구두'라는 우리나라 말이 존재한다. 부츠는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까지 즐겨 사용됐다. 과거 '크레타(Creta)'라는 섬에서는 샌들과 굽이 있는 신발 그리고 부츠형 등을 신었는데 실내에서는 맨발로, 남자들은 발을 끈으로 종아리까지 매는 반부츠나 샌들을 집밖에서 신었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 끈으로 감싸서 벗겨지지 않는 무거운 부츠형을 신어 반부츠는 이 크레타 섬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추위 때문에 부츠를 신기 시작한 것은 고트인이나 앵글로색슨인들이다. 외출 시 발등이나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신었는데 먼 길을 갈 때는 지금의 반부츠나 긴부츠형인 갈리께(gallicae)를 신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군화로도 이용됐다고 한다.신발의 역사와 함께 추위, 혹은 발의 보호를 위해 이용됐던 부츠는 현재는 멋과 보온의 목적이 대부분이다. 여름에 신는 부츠는 일명 '장화'로 불리는 '레인 부츠(Rain Boots)' 정도. 다만 추위가 심해질수록 겨울 부츠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겨울 신발의 대명사는 원래 어그(UGG) 부츠 였다. 실제 이름은 '양털 부츠' 정도지만 '어그'라는 브랜드의 제품이 가장 유명한 탓에 이런 스타일의 신발은 모두 이렇게 불린다. 호주지역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다 속에서 나와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신발인 만큼 체온 유지에는 만점. 겉은 가죽이고 안은 양털로 채워져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없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어그부츠의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3년 전부터 겨울철 눈이 많이 오면서 관리가 어려워진 것. 털이 젖으면 발까지 젖게 되고 오히려 보온을 해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악취가 생기기도 해서 비싼 가격 대비 고민스러운 쇼핑 아이템으로 전락했다.요즘 들어 그 대안책으로 인기를 얻는 것이 패딩부츠다. 패딩 부츠는 눈이나 비에도 거뜬해 야외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적절. 출퇴근을 도보로 한다면 올 겨울 없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온성을 갖춤과 동시에 방수성까지 있어 겨울 야외 활동에도 전혀 무리가 없으며 더러운 얼룩도 마른 걸레나 수건으로 닦아주기만 하면 된다.'패딩부츠'도 패딩점퍼와 마찬가지로 충전재를 따져봐야 한다. 오리털인지 거위털인지 혹은 합성섬유인 솜이 들어가 있는지 재료를 보고 또 얼마나 채워졌는지도 살펴야 한다. 패딩부츠의 내장을 확인했다면 디자인과 바닥도 챙길 것. 미끄러운 눈길이나 얼음길을 걸을 때 안정적인 착화감과 접지력이 있는지도 알아본다.

  • 주말
  • 이지연
  • 2012.12.28 23:02

시계 - 사랑의 시간 약속하는 연인의 선물

얼마 전부터 인터넷 상에서는 '솔로대첩'이 핫 키워드다. '솔로대첩'은 한 누리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솔로 형누나동생 분들 크리스마스 때 대규모 미팅 한번 할까"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시작된 이벤트. 이후 벤처사업가까지 동참 뜻을 밝히면서 전국 13개 지역에서 열릴 예정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솔로들이 이런 발악(?) 중이라면 커플은 선물 준비에 여념이 없다. 벌써부터 검색 순위를 오르내리는 것이 '크리스마스 선물'. 남녀가 원하는 선물이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제품도 있다.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시계'가 주인공이다.시계가 사용된 지는 벌써 6,000년이나 된다. 해시계는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시계로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체크했다. 유럽과 중국에서도 사용됐는데 18세기까지 애용됐다고 한다. 물시계는, 태양이 없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등장했다. 해시계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밑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그릇에 물을 채우고 물이 일정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 원리다. 해와 물 외에도 모래를 이용한 시계도 사용됐다. 물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사용됐다. 물론 찜질방에서 아직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이 '모래시계로 실내에서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물용 시계는 손목시계. 손목시계를 가능케 한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 것은 14세기부터로 벽걸이 시계로 시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G.갈릴레이가 1583년 흔들이운동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고 이후 네덜란드의 수학자 C.하위헌스가 이를 시계에 처음 응용하면서 기계식 시계가 자리 잡았다.이미 오래전 탁상 혹은 벽걸이 시계가 생겼음에도 손목시계가 생긴 것은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1900년대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무브먼트가 개발됐기 때문. 19세기 보아전쟁이 끝나면서 회중시계에 가죽 끈을 매단 손목시계가 출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명품 시계'라 불리는 까르띠에나 롤렉스 오메가들도 1900년대 초기에 생긴 것. 손목시계의 역사와 브랜드의 역사가 같으니 비싼 가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정교한 장인의 기술이 필요한 태엽 시계가 아닌 쿼츠식 시계는 1970년대 등장한다. 배터리를 시계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별도의 관리가 필요 없어 편리하다. 또, 이때부터 저가의 손목시계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요즘은 패션시계라 해서 많은 의류 브랜드에서도 시계를 출시하고 있다. 대부분이 쿼츠식이기 때문에 시계의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시계 끈이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 과거에는 남성은 큰 프레임, 여성은 작은 프레임을 선호했지만 이마저도 모호해져 디자인 선택은 더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손목이 가늘다면 시계 끈을 얼마큼 줄일 수 있는지 미리 체크해야 할 것. 특히 선물을 할 생각이라면 꼭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

  • 주말
  • 이지연
  • 2012.12.14 23:02

비누 - 맨들맨들~ 보송보송…내 피부가 웃는다

'패션과 비누가 관계가 있을까?' 생각했다면 아직 초보 단계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생김새를 중요시 하는 요즘, 얼굴의 완성은 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부 관리에 있어 가장 기본이 비누를 어떻게 사용 하냐다. 아무생각 없이 사용할 정도로 욕실에 항상 있는 제품이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가올 것. 가격도 성분도 천차만별인 비누에 대해 알아보자.'지방산으로는 카프로산에서 베헨산까지를 사용하고, 알칼리는 일반적으로 나트륨과 칼륨이지만 암모니아에탄올아민이나 구아니딘과 같은 유기염기(有機鹽基)도 있는데, 알칼리금속염 및 이들의 유기염기만이 물과 임의의 비율로 녹으므로 세정용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 외의 금속염은 대부분 물에 잘 녹지 않아 금속 비누라 하여 구별한다.' (네이버 지식 백과 중에서)뜻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모음이 비누다. 합성세제의 일종이니 화학 용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 피부에 괜찮은 것인지 의심이 시작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잿물을 비누 대용품으로 사용했다. 나무를 태운 재에 물을 부어 침전시킨 후 걸러낸 물인데 잿물은 알칼리성을 띄어 세정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잿물에 응고제와 가루를 섞어 만든 석감이라는 것이 비누로 쓰였는데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쓰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외에도 팥으로 만든 조두도 비누의 일종인데 세정 및 미백 효과가 있어서 한말의 왕비도 애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우리나라에 서양식 비누가 처음 들어온 것은 네덜란드인 하멜(Hamel, H.)에 의해서로 본격적으로 이용된 것은 조선말 개국 이후부터다. 이때 사용되던 '서양식 비누'는 과거 잿물이나 석감과는 달리 때가 잘 빠지고 사용이 간편해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향기까지 있어 여성들에게 사랑받았는데 청일전쟁 직후에는 비누 1개의 값이 1원(당시 쌀 한말은 80전)이었지만 여전히 인기였다. 물론 비싼 가격 때문에 부유층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비누 냄새를 '멋쟁이 냄새'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비누를 대신해 석유화학계의 합성세제가 등장한다. 합성세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개발한 것으로 독일이 전쟁에 지면서 식량난 때문에 유지로 만드는 비누를 만들 수 없게 되자 그 대용품을 내세운 것. 성능이 빈약해 인기가 없었지만 다음 전쟁 중 다시 개발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66년부터 합성세제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 비누를 가장 먼저 생산한 곳은 동산유지로 알려져 있다.편리함과 좋은 향기로 인기를 끌던 합성 비누는 21세기에 들어 돌연 사람들의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천연재료가 아닌데 괜찮은 걸까? 이대로 사용해도 되는 걸까?"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비누들은 대부분 계면활성제, 응고제, 방부제, 색소, 인공글리세린 등 각종 화학성분들을 첨가해 만든다. 아토피 피부나 화학제품에 민감한 피부는 트러블이 일어나는 것. 사실 '천연수제비누'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에도 화학성분이 들어간 것이 대부분. 기존 비누베이스를 녹여서 오일과 허브, 인공글리세린을 첨가해 만드는 형태기 때문이다. 예민한 피부 때문에 천연재료 비누를 찾는다면 기본 비누 베이스에 화학성분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아쉽게도 천연비누는 대량 생산 체계가 갖춰진 곳이 많지 않아 가격은 비싼 편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12.07 23:02

입술보호제 - 겨울철 메마른 입술 촉촉하게

올해 겨울은 특히나 춥단다. 날씨가 추운 것도 문제지만 건조함은 여성들에게 정말 큰 적이다. 스타킹을 신을 때도 건조함에 일어나는 각질은 큰 적이고 메마른 피부 때문에 화장이 들뜨는 것은 연중행사. 특히나 자꾸 트는 입술은 골칫덩어리다. 립스틱을 바를 수도, 안바를 수도 없고, 화장을 하면 더 악화되기 때문. 그래서 요즘은 색깔이 들어간 입술 보호제가 나오기도 한다.입술은 피부가 얇고 유수분을 조절하는 땀샘이나 피지선이 없어 수분 유지가 어렵다. 입술의 건조함은 입가의 건조함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자주 입술을 쓰는(?)덕에 아침, 저녁 관리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도록 나온 입술 보호제들은 입술 관리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눈가용, 얼굴 전체용 등 부위마다 관리 화장품이 다른 것처럼 입술에 바르는 보호제도 따로 만들어지게 됐다. 신문 자료를 찾아보면 1984년 상하제약에서 겨울철 주력상품으로 입술보호제 '그대로'를 개발한 것이 시발. 그러나 외국에서는 약 100년 전에 발명된 것으로 보는데 바로 '챕스틱'(ChapStick)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입술 보호제를 부를 때 쓰는 '챕스틱'이라는 이름은 원래 브랜드 이름. 파이저사(社)에서 판매하는 제품 이름으로 현재는 미국, 한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이 나오기 전에는 입술 보호제를 손으로 찍어 바르는 형태였지만 손을 대지 않고 스틱을 돌려 바르는 형식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입술 보호제와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이 립 글로즈(Lip gloss)다.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사실 립 글로즈는 입술에 원래 광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엄연히 따지면 보호제는 의학품에 가깝고, 립 글로즈는 화장품에 가깝다. 입술이 잘 트는 것이 걱정이라면 립 글로즈가 아닌 바셀린 성분이 들어간 연고나 보호제를 발라야 하는 것. 색깔의 유무 보다는 성분을 먼저 챙겨보고 여기에 덤으로 자외선 차단이 가능한 제품은 입술 보호력이 더 좋다.입술 보호제의 종류는 수백 개에 이르지만 바르는 타입에 따라, 성분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스틱 형태 이전에 있었던 손가락으로 찍어 바르는 것은 립밤이라고 부르는 제품으로 대부분 스틱보다 바셀린 성분이 더 많이 들었다. 또, 최근 들어서는 밤과 스틱의 장점을 모아 튜브 타입이 출시 됐는데 바셀린이 많이 들어 있는 제품을 튜브로 짜서 발라 손에 뭍이지 않아도 된다. 성분으로 제품을 고를 때는 유분, 수분의 비율과 자외선 차단이 가능한지, 천연 재료인지, 각질 진정 효과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면 좋다.겨울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입술이 튼다고 느끼거나 입술이 벗겨지는 정도가 심하다면 구순염을 의심해 봐야 한다. 구순염은 입술에 침을 바르거나 깨무는 습관 등에서 생겨나는 병. 또, 오랫동안 심하게 햇빛에 노출돼 특히 아랫입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날 때도 생기는데 이 경우에는 악성 종양이 유발될 수도 있다. 특히나 날이 추워지면 입술이 트는 증상이 심해지는데 가벼운 증세에는 입술보호제, 바셀린, 보습제 등을 발라 입술의 건조함을 개선시켜주면 호전된다.

  • 주말
  • 이지연
  • 2012.11.23 23:02

향수 - 神과의 교감 위한 매개체에서 달콤한 소통 돕는 기호품으로

우리나라 한 대기업이 향수 전문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딱히 인기 없는 것 같은 향수지만 가벼운 선물용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아이템이긴 하다. 화장품 회사에서도 향수를 만들고 의류 브랜드, 생필품 브랜드 모두 향수를 판매하는 걸 보면 기본적인 제품이자 '돈이 되는' 물건임은 틀림없다.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앉아 향수 뿌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분명 향수는 외국의 문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향수 문화도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전 시작됐다는 사실. 신라 김유신 장군은 향불을 피워 하늘에 맹세한 뒤에 무술연마를 했고 눌지왕은 공주의 질병을 향으로 치료한 했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게 향수의 시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라인들은 향료를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녔는데 지금 보다 더 예의 바른(?)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또 고려시대는 해외교역이 활발했는데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향이 수입된 기록과 진나라와 송나라에 향유를 수출한 기록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고려의 향 제조기술이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자료다. 하지만 중국에 예물로 보낼 만큼 제조기술이 우수했으나 알코올에 용해시키는 기술만은 서양보다 뒤떨어졌다고 한다. 어째든 이 당시 있었던 애향(愛香)관습은 거의 그대로 이어져 향낭을 차거나 부부침실에 사향을 두는 것이 조선시대까지 일반적으로 이뤄졌다.사실, 향수의 기원은 우리가 삼국시대 종교적 의식에 사용했던 것처럼 약 5000년 전부터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해 왔다. 영어 단어로 'perfume'인 것도 어원인 라틴어 'per fumum'에서 온 것으로 '연기를 통한다'는 의미. 이름만으로도 향수가 신과 인간의 교감을 위해 사용한 된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사용됐음에도 현대의 액체 형태의 향수가 생기게 된 것은 1370년대에 들어서다. 헝가리의 왕비인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든 최초의 알코올 향수로 이름은 '헝가리워터'로 불렸는데 이 향수로 엘리자베스 왕비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폴란드 왕으로부터 구혼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서양에서 향수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죽 때문.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부터 많이 쓰인 피혁제품에서는 특유의 악취가 났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귀족들이 요란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며칠 동안 머리를 감을 수 없자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의미를 두고 향수를 사용한 우리와 다른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쓴 서양의 역사 때문인지 현대의 향수 모습은 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화장품 냄새를 포함해 진한 향이 나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은 그렇지 않은 것. 과거 조선시대 사향을 겹겹이 싸서 몸속에 지닌 선조들과 가죽 냄새를 가리기 위해 뿌렸던 향수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TIP - 아무리 현대 향수 산업이 발전 했다고 해도 관리는 제대로 해야 한다. 잘 보관하지 않으면 향기가 날아가고 색이 변색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향수는 온도에도 영향을 받는데 보통 15℃ 정도가 적당하고 사용 후에는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잘 막아둬야 한다.

  • 주말
  • 이지연
  • 2012.11.16 23:02

교복 - 벗어던지고 싶었던 그 옷, 수능 끝나니 다시 입고파

이번 주,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이슈가 있다 하더라도 단연 최고는 '수학능력시험'일 것이다. 이미 오래된 기억이라 그 때의 긴장감도 설렘도 남아있지는 않지만 시험 때면 온 나라가 들썩이니 모르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 수험생들에게야 12년의 학창시절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엄청난 순간이지만 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이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시원섭섭'.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헤어짐이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감정이다. 많은 것들이 그렇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교복'에 시원은 점점 섭섭이 되는 것 같다.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교복'은 억압의 또 다른 상징이다. 좀 더 관리하기 쉬운 체계이기에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개성은 묻히고 똑같은 옷과 머리 모양으로 통일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교복은 단체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긴 것. 다른 것(복장)에 관심 갖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물론 교복을 입음으로써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생기기도 하는데, 특히 요즘처럼 평준화가 아닌 시험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던 시절에는 특정 학교의 교복은 '국회의원 금배지' 처럼 신분의 표현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교복을 처음 입은 학교는 영국의 이튼 칼리지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19세기 후반 제정된 관련법령에 따라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로 분류된 9개 학교 가운데 중 하나인데 현재는 영국을 대표하는 명문학교가 됐다. 당시의 교복은 재킷이 파란색 혹은 빨강색이었지만 1820년 조지 3세의 장례식을 계기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재킷 속에는 조끼를 입고 넓은 흰색 칼라가 달린 셔츠를 입었는데 이 때문에 셔츠의 칼라 이름이 이튼칼라가 되기도 했다. 이튼 스쿨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는 교복 문화가 시작됐고 유럽풍의 교육을 추종하는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가 이를 따라 현재에 이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교복을 도입한 것은 개화기 때다. 미국인 선교사인 H.G.아펜젤러가 배재학당에서 1898년 당복(堂服)을 남학생에게 입힌 것이 시초로 보고 있다. 이 당시의 당복은 일본의 학생복과 매우 흡사한 모양이었다. 여학생 교복은 1886년(고종 23) 이화학당의 것으로 그 때의 일반 복장과 같은 한복의 치마, 저고리 였다. 양장 교복이 생긴 것은 1907년 숙명여학교에서 실시하면서 부터다. 현대처럼 학교장 재량에 따라 교복착용 여부가 결정된 것은 1986년. 여학생의 경우 해군의 군복서 유래한 일명 '세일러복'이라 불리던 일본식 교복 대신 정장풍의 옷들이 많아졌다. 물론 그 이전인 1983년에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내려진 교복자율화는 두발옷차림 등에 제한이 있어 완전 자유화는 아니었지만 찬반의 의견 속에 이뤄져 교복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불과 10년 전만에도 지금처럼 몸에 꼭 맞는 재킷이나 무릎 위 치마 길이가 불가능 했으니 교복의 변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 사실 '유니폼'의 개념으로서 교복이 사용된 가장 첫 사례는 나폴레옹으로 보고 있다. 유사시 학생들을 군인으로 활용하기 위해 군사 훈련을 시키면서 통일된 교복을 입혔던 것. 우리나라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0년대에는 전투 태세를 갖춘 제복, 즉 통일된 옷을 작용하게 하기 위해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몸뻬'라는 작업복바지에 블라우스를 입었다.단합의 수단으로, 관리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교복.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매일 옷 찾아 입는 것도 '에너지를 소비'하고 귀찮은 일이 됐고 때론 교복이 그립기도 하다. 복장의 자유를 찾게는 됐지만 이 또한 언젠간 생각나는 '무엇'이 될 거라고 교복의 선배로 감히 말해본다.

  • 주말
  • 이지연
  • 2012.11.09 23:02

모피 - 겨울의 문턱…우아하게 멋내기

지난달 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토종여우 한 쌍이 방사돼 자연으로 돌아갔다. 멸종위기종 1급 동물인 토종여우 한 쌍을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방사한 것. 지난 4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토종 여우 한 쌍을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두 달간 자연적응 훈련을 시킨 후 돌려보낸 것이다. 과거 여우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 분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60~70년대 쥐잡기 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여우가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고 함께 죽는 연쇄반응으로 멸종 위기에 놓였다. 물론 이 위협 속에는 가죽과 털을 노린 포획도 포함된다.여우 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이 포획과 밀렵의 위험 속에 있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으로까지 이용하는 우리들 때문. 올해 겨울처럼 한파가 예고되면 모피를 찾는 욕구는 더 커지게 된다.모피의 기원은 옷을 입기 시작한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 잡은 짐승의 가죽을 체온 보호를 위해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복'에 대한 개념이 발달해 인위적으로 모피를 옷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 전 1000년경으로 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시작이 중국이라는 것. 이후 200년 정도가 흐른 뒤 유럽에 모피가 도입됐고 이것이 인도에서 중동으로 유입되면서 전 유럽에 퍼지게 됐다. 18세기 까지도 모피를 이용한 의류에서는 중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의 패션 리더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18세기 이후에는 모피의 인기가 유럽과 미국으로 커졌고 대량 수출을 위해 미국이 기술을 발명하면서 모피 유행의 선도의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옮겨간다. 진짜 방한을 목적으로 한 것을 '실용모피'라 한다면 주로 장식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장식모피'다. 우리의 모피에 대한 욕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것이지만 다른 옷으로도 방한을 대체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장식성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다수다.이 의견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 모피에도 유행이 있다는 사실이다. 18세기의 모피 유행을 이끌었던 것은 북해의 해달(海獺:바다족제비)이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해달이 멸종되자 이를 대신해 물개의 가죽과 털이 유행했다. 하지만 물개도 곧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뒤를 이어 검은여우가 인기를 끌었고 이때부터 모피는 모피짐승을 사육해서 채취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모피의 질도 자연산보다 좋았고 검은여우로부터는 은(銀)여우가 만들어져 유행하기도 했다. 현재 모피의 대명사로 불리는 밍크의 출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미국과 캐나다 야생의 것이 사용되다가 사육에 성공한 뒤로는 개량돼 야생의 모피보다 훨씬 질 좋은 제품들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모피 유행은 요즘 들어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바로 인조 모피. 가격도 저렴하고 털의 길이를 다양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자인과 색에 있어 제한이 없어 인기다. 무엇보다 동물의 멸종이나 개체 감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갖고 있다. 물론 화학섬유이기에 정전기가 심하고 먼지가 타기 쉽지만 사실 천연 모피보다 관리하기 더 쉽다는 사실. 동물애호가도 아니고 환경단체의 열렬한 지도자도 아니지만 이것이 유행이라면 시도해 볼 필요성은 있지 않을까. 특히나 올해 모피 갑은 작년 대비 10% 올랐다고 하니 말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11.02 23:02

신소재 원단 의류 - 방수·방풍은 기본…물만 뿌려도 새 옷

나로호가 26일 오후 1시 30분 우주로 나간다. 나로호에 탑재된 '나로과학위성'은 순수 우리기술로 만든 소형위성. 지난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분야인 만큼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 그저 우주라는 공간을 꿈꾸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위성을 개발하기에 이른 요즘,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감동을 받는다. 더욱이 과학기술은 그 자체 뿐 아니라 어려 분야와 연계되면서 우리 생활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을 보호하고 멋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옷조차도 과학의 힘을 빌려 업그레이드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모두 신소재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신소재는 기존에 있던 소재의 결점을 보안하거나 새로운 장점을 만들어 낸, 말 그대로 '새로운 소재'라는 뜻인데 원단 뿐 아니라 금속 물질, 화학 물질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하지만 이 많은 종류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원단으로서의 신소재다. 비롯 나로호는 무인우주선 이지만 사람이 우주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 신소재 덕분. 몸에 적당한 압력과 온도를 주도록 구성된 소재와 디자인 덕에 극단적인 온도의 변화나 가속도 혹은 방사능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또 착륙하는 우주 공간에 따라 그 특징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달의 경우는 유리섬유 직물에 내열성의 테플론수지(불소수지) 가공 한 것과 양면 알루미늄의 진공증착(眞空蒸着)을 한 플라스틱 필름, 합성고무 가공한 나일론 기밀포(氣密布) 등을 이용해 온도 변화에 용의하게 만들었다.우주에서 사용되는 신소재 외에도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신소재 제품들도 있다.매번 양복을 드라이크리닝 맡기자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여기에 착안에 2009년 출시된 제품이 '샤워 수트(shower suit)'. 한 회사가 '메리노 프레시(Merino Fresh)'라는 소재를 개발했는데 이 천을 이용해 만든 양복은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 세탁이 가능하다. 초기 구매 비용은 다른 양복보다 비싸지만 유지비는 훨씬 덜 든다는 평이다.웰빙 붐으로 인기를 끌었던 소재들도 모두 신소재에 속한다. 천연 콩섬유의 경우는 소재가 부드럽고 가벼움과 동시에 통기성과 보온성이 좋아 아이들 내의나 옷으로 좋다. 대나무 섬유 또한 흡수성, 방취성, 향균성, 자외선 차단성 등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타올로도 제품이 출시된 바 있다. 무엇보다 신소재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옷은 아웃도어(Outdoor) 제품들이다. 등산복이 비싼 것도 바로 다 이 때문. 특히 이제는 구소재(?)가 돼 버릴 정도로 흔해진 고어텍스도 방수, 방풍, 투습 등을 높여 만든 고기능성 신소재로 우리나라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높은 의존도 때문에 가격도 덩달아 올라갔다. 다행이 요즘은 고가의 고어텍스 대신에 다른 신소재 개발에 업체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 각 브랜드 별로 개발에 나서 원가 절감을 통해 아웃도어 제품 가격을 내리고자 하는 것. 실제로 화산재, 대나무, 페트병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연구하고 제품이 속속히 나오고 있으니 저렴한 아웃도어도 곧 만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 주말
  • 이지연
  • 2012.10.26 23:02

반 지 -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세요"

한 연예인 예비부부가 화제가 됐다. 신부의 예명이 '별'인데서 착안해 프러포즈 링 안에 별 모양을 새긴 것. 신랑이 직접 디자인 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으로 더 관심을 끌었다.결혼식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반지다. 하지만 이미 오를 데로 오른 금값 때문에 평생에 한 번하는 결혼반지도 부담이 되는 시대다. 대체 누가 반지를 금으로, 또 보석을 이용해 만들기 시작했는지 원망스럽다.반지의 유래를 찾다보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미 그 때부터 반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패각제 반지가 출토된 바 있기 때문. 치장의 도구로 유추되고 있다.서양의 역사에서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반지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독특하게도 반지를 만들 때 현재처럼 금을 쓰는 것을 물론이고 자수정 등의 보석과 조개껍데기 부드러운 돌 등도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반지 착용에 영원성과 관련해 의미를 부여해 특히 눈에 띈다. 반지의 원형 고리 모양이 영원과 통일, 화신 그리고 만유의 상징이었던 것. 원을 몸에 지녀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반지를 착용했다.우리나라에서 반지가 유행한 것은 삼국시대다. 특히 신라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유추되는데 삼국시대의 출토 유물 중 반지가 대거 발견 됐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의복이 화려했던 것 처럼 액세서리류도 많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반지보다 가락지를 더 많이 애용하였다. 흔히 한 짝만 끼는 것은 반지, 쌍으로 끼는 것은 가락지라 부르는데 두 개를 겹쳐 끼는 반지를 '쌍가락지'라고는 하지만 '쌍반지'라고 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가락지는 한자어로 지환(指環)이라고도 불렀다.조선시대에는 반지 착용에 있어 신분의 구분이 있었다. 한 짝만 끼는 반지는 주로 처녀가 착용하고 혼인한 부인은 가락지를 끼었던 것.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단어의 의미가 모호해졌고 착용 구분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반지는 영원성과 관련 있음과 동시에 구속의 상징이라는 시각도 있다. 영원성과 함께 구속이라는 의미에서 '결혼 반지' 풍습이 생기고 이어진 것은 아닌지 추측된다. 반지의 부정적 시각은 또 있다. 반지가 몸에 흐르는 에너지 즉, 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비슷한 사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와 성직자들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그 앞에서 반드시 반지를 빼야했다.반지 자체에 담긴 의미 외에도 반지를 끼는 손가락에 담긴 유래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가운뎃손가락을 '반지손가락'이라고 불렀다. 현대에 와서 약혼반지는 보통 왼손 약손가락에 끼고 결혼 당일은 이것을 오른손 약손가락에 옮겨 끼었다가 결혼식이 끝난 뒤 왼손 약손가락에 결혼반지와 겹쳐서 끼는 것이 서양의 관례. 우리나라처럼 결혼식 날짜를 잡고 프러포즈하는 문화에서는 약혼반지(프로포즈 반지)와 결혼반지가 같아 이런 문화는 어디까지나 서양식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10.19 23:02

내복 - 반팔·8부 소매길이 출시…쌀쌀해진 요즘 안성맞춤

하루가 다르게 일교차가 커지고 있다. 아침 출근에는 코트가 필요하고 점심에는 반팔이 필요하니 옷 입을 때마다 난감하다. 결국에는 지난 추석에 선불 받았던 반팔 길이의 내복을 찾아 꺼내 입었다. 아직 두꺼운 옷을 외투로 입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으니까.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내복 준비해 나서야 할 때다. 실내 활동이 많은 만큼 반팔이나 8부 소매 길이의 내복들도 준비 돼 있으니 셔츠 안에 가볍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사실 내복에 대한 20~30대의 기억은 어린 시절 엄마의 극성맞은 내복 성화로 눈물 콧물 짜던 것이 다 일지 모른다. 답답했고 안 예뻤지만 날씨가 쌀쌀해진다 싶으면 언제나 등장했던 아이템. 물론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내복은 옷장에서도 사라졌다.내복이 다시 나타난 것은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다. 가볍고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잔소리 없이도 애용품이 된다. 일단 입어보면 사랑하게 되지만 아직도 '패션'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시절 '빨간 내복'으로 대변되는 내복의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내복(內服)은 겉옷 안에 입는 속옷의 총칭이지만 우리가 부르는 것은 보온성을 위해 안에 입는 옷이다. 1950년대 후반 신식 내복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이후 1962년 신앙촌이라는 회사에서 '빨간 내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아크릴 섬유로 만든 제품이었는데 이 물건이 빨간색이었던 것. 이후 시간이 흘러 1984년에는 갑자년(甲子年)을 맞아 딸이 부모에게 빨간 내복을 사드리면 60년 이후까지 부모가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슬프게도 이 당시의 빨간 내복은 염색 기술의 부족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나일론이라는 소재가 낯설었던 시절, 제대로 염색하는 기술 또한 적었던 것. 그나마 붉은색 염료가 나일론과 흡착성이 좋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빨간 내복'의 큰 유행에 대해 시간이 흘러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붉은색의 따뜻한 느낌 때문이라는 설과 액운을 막는 색이라는 설이 주장됐었다. 물론 이 이유들은 그저 설일 뿐, 진짜 과학과 신앙의 결합을 염두하고 염색했는지는 알 수 없다.이렇게 빨간 내복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전 그 기원을 찾아보면 게르만족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게르만족의 대 이동이 있던 4세기 시절로 유추하고 있는 것. 게르만 족 사이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입었다는 설로 그 형태는 위 아래로 나눠진 투피스 형으로 튜닉(tunic)이라 불렸다. 현재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세계 1차 대전 이후로 모든 것이 실용화 되고 여성들도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기능에 치중한 내복이 나타났다고 한다.우리나라에도 내복으로 추정되는 옷이 있다. 삼국사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내의' 혹은 '내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옷이 등장한다. 여성들의 경우 많게는 아홉 가지 이상의 속옷을 입었던 터라 하체를 위한 내복은 필요 없었을지 모르지만 남성들은 고려시대부터 속바지를 착용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내복의 역사도 벌써 1000년이다.요즘처럼 난방시설이 잘 돼 있는 시절에는 내복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 여름, 전력난으로 인해 실내 온도를 제한하는 정책을 썼던 것처럼 겨울철 난방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1000년 이상을 이어온 역사를 잇는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10.12 23:02

턱시도 - 독특해 보이지만 품격있는 '강남스타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 순위 2위에 등극했다. 해외 진출에 뜻이 있지도 않았던 그의 대박 신화에 '강제 미국 진출'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요즘, 미국에서는 싸이의 노래뿐 아니라 패션도 유행의 조심이 되고 있다.싸이의 미국 활동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Dress classy, dance cheesy"(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저렴하게)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춤과 노래에 대한 모토를 이렇게 설명했는데, 미국 내에서 명언이 될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됐다. 이렇게 웃긴 춤과 다르게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의 복장은 춤을 더 돋보이게, 재미있게 만든다. 이렇다 보니 싸이의 의상은 또 다른 유행을 만들고 있다. 특히 귀신 등 특이한 복장을 하는 미국의 명절 '할로윈 데이'(10월 31일)가 다가오면서 더 빨리 확산되고 있다. 한 해외 유명 소셜 정보 공유사이트의 할로윈데이 관련 페이지에는 할로윈 의상 아이디어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 패션'을 추천하고 있으며, '강남 스타일' 뮤직 비디오에서 싸이가 입고 나온 의상을 자세하게 분석해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을 정도. 싸이의 옷, 무엇이 다른 걸까.싸이의 의상은 '턱시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서양 남성의 예복을 일컫는 말인데 '턱시도 코트'의 준말로 미국 뉴욕의 턱시도 파크에 있는 컨트리클럽 사교계의 신사들이 입었던 의상을 지명에 붙여 말하게 된 것. 1880년 경 당시 남자의 정식 예복은 '모닝 코트'였으나 이들은 약식으로 입었는데 그 복장에 '턱시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이는 사실상 양복의 '디너 재킷'(dinner jacket)에 해당하며 보통의 신사복과는 같은 스타일. 다만 약식이긴 해도 예복이기 때문에 칼라나 라펠부분에 새틴 같은 견직물로 선을 두르는 등 화려한 마무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추는 대부분 1~2개이고, 항상 앞을 터놓고 입는 게 예의다. 디자인이야 가지각색이지만, 턱시도에도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 있는데 싸이의 턱시도는 일반적인 모양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먼저 턱시도의 색. 보통 검정이나 진한 감색을 기본으로 하고, 여름에는 상의는 흰색 마직을 쓰기도 하지만, 이때도 바지는 검정을 착용하는 게 일반적. 하지만 싸이의 턱시도는 검은색은 물론 형광색이나 원색 계열을 많이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특히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여 유명해진 파란색 재킷은 일반적인 색상이 아님에도 미국에서는 이미 인기다.의상이 옷 뿐만 아니라 액세서리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싸이의 신발도 보통 턱시도 차림과는 다르다. 검정 에나멜의 단화나 무도화(펌프스)를 신는데 반해 슬립온 슈즈(slip-on묶는 끈 등이 달려 있지 않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를 신는 것. 특히, 일반적인 모양이 아닌 징이 박히거나 포인트가 있는 디자인을 애용한다.물론 정석대로 이용하는 액세서리도 있다. 바로 여기에 커머번드(cummerbund: 일종의 복대)와 보타이(bow tie). 커머밴드는 허리에 하는 넓은 원단으로 된 벨트 같은 것인데, 시상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격식 있는 자리에 착용하는 액세서리로 싸이 또한 'dress claasy'를 위해 이용한다. 이외에도 넥타이 대신 착용하는 보타이의 경우 싸이는 보타이를 이용하지만 올바르게 착용하지는 않는다. 묶지 않고 목에 걸어두는 식으로 매치하기 때문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10.05 23:02

강렬한 느낌+여성스런 매력 발산 - 밀리터리 룩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남성화장품 5개 중 1개는 우리나라에서 팔렸다고 한다. 미(美)에 대한 갈망이 커진 것도 있겠지만 화장품 소비를 부추기는 데는 아이러니하게 의무적인 군복무가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렇듯 군대와 패션, 혹은 군대와 멋은 관계가 없어 보이면서도 사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멋스러움'을 모르는 남성들에게 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가 하면 패션 잡지 다독(多讀)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하니 말이다. 한 때는 군복만 봐도 악몽이라던 그들이 '밀리터리 룩'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갈망은 여성들 보다 더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밀리터리 룩'은 말 그대로 '군대풍의 옷차림'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 중 가을에 보통 유행하는데 올해는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인기다. 과거에는 '밀리터리 룩을 입는 남자는 면제 아니면 방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남성들에게는 기피의 대상. 대신 여성들은 강한 이미지나 제복의 느낌을 차용해 패션에 이용했다. 군대가 의무인 우리나라와 다르게 서양에서는 다른 이유로 '밀리터리 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남자들을 대신하여 사회로 뛰어든 여자들이 드레스와 코르셋을 벗고 군복과 비슷한 의상을 만들어 입은 것이 밀리터리 룩의 시초다. 그 후 현대에 들어 반전(反戰) 운동이 시작되면서 반전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젊은 세대들이 입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반전 운동의 시대가 지난 후에는 194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행했던 직선적인 어깨와 짧은 타이트스커트가 여성들의 마음을 뺏었으며 대표적인 '밀리터리 룩'이 되기도 했으며 많은 디자이너들이 군복에서 영향을 받은 디자인들을 매해 선보이고 있다.'밀리터리 룩'은 한 가지로 정형화 돼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동시에 활동적, 기능적인 면이 부각되는데 옷에 부착된 많은 주머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에 견장, 훈장 등을 달아 군복의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하고 금속 소재의 단추, 군모, 군화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밀리터리 룩'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얼룩덜룩한 무늬의 '카무플라주' 패턴이다. 이는 '위장' ' 변장' 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동화하려는 위장복에서 유래했다. 카무플라주 패턴은 모자, 신발, 베스트, 티셔츠, 재킷 등 다양한 아이템에 접목돼 패턴 특유의 내추럴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특히 올해는 군복의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더해 여성적인 면이 강한 추세다.올해 '밀리터리 룩'의 또 하나의 변화는 군복의 변화에 따른 것도 있다. 2011년부터 위장 효과 증대 및 전투 활동성 강화를 위해 디지털무늬로 카무플라주가 변했는데 이것이 일반 옷에도 적용된 것. 여기에 육군 군복이 중심이었던 '밀리터리 룩'이 공군의 것으로 변해가는 추세기도 하다.

  • 주말
  • 이지연
  • 2012.09.21 23:02

화장 - 여자의 변신은 특권…얼굴을 더 돋보이게

90년대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저 배우가 그 사람이 맞아?' 하는 착각이 들곤 한다. 의학의 도움을 받기도 하겠지만 특히, 여배우들의 경우는 화장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당시 유행하던 화장 스타일은 눈썹은 아치형으로 확실히 그리고 입술과 눈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 눈을 강조하면 입술 색은 빼고, 반대로 입술 색이 진하면 아이쉐도우 색을 연하게 하는 지금의 트렌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옷 트렌드만큼 많이 변하는 것이 화장. 화장품의 수도 많아지고 색도 다양해지면서 나름의 화장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물광 메이크업'처럼 화장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화장은 크게 색조와 피부표현으로 나눠지는데 화장한 티를 내기 위해서는 색조화장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화장법이 변화하는 양상이나 색상의 종류는 눈 화장을 따를 분야(?)가 없다.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 등장하는 '갸루상'만 해도 그렇다. 일본 사람인 마냥 행동하는 그(남자 개그맨이 여성 차림을 하고 있다)는 진하고 독특한 눈 화장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갸루 메이크업'. 피부나 입술 화장도 다른 화장법과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눈 화장에 있다. 갸루는 영어 낱말 걸(girl)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데서 나온 말인데 여러 종류의 갸루가 있음에도 이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눈 화장 덕분이다. 화장이라기보다 분장에 가까운 이들의 눈 화장은 두껍게 눈 위아래로 그린 아이라인과 이 라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그 주위의 흰 아이쉐도우로 대변된다.일본의 '갸루 메이크업'은 서양의 '스모키 메이크업'과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얼마나 인위적으로 보이느냐가 갸루냐 스모키냐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면 요인. 어째든 지금에 와서 이 두 눈 화장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현대의 미인형에 맞춰 눈을 크게 보이려는 욕구일지 모르겠다.예뻐 보이려는 욕구가 어디 요즘뿐일까. 우리나라의 화장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조선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나라 단군신회에 의하면 우리민족의 첫 주거지는 단목(박달나무) 근처로 향료가 생활에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곰과 호랑이 설화에 등장하는 마늘과 쑥이 피부 미백 재료인 것은 우연히 아니라는 것. 색조 화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색과 결을 중요시했음은 확실하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연지를 바르고 분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신라인들은 백분에 납을 화학처리해서 부착력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해 화장 역사에서는 큰 개혁으로 본다. 삼국시대에 생성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은 조선시대에 급변하게 된다. 신체가 정결하여야 마음도 정결하다는 사상, 즉 내면의 미와 외면의 미가 동일하다는 사상이 생기면서 본래의 생김새를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꾸미도록 된 것. 화장한 모습이 화장 전보다 확연하게 달라 보이면 야용이라고 경멸하는 풍조가 생겼다. 어쩌면 요즘의 화장법이 이때와 가장 비슷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편, 화장 수입의 역사는 개화기 조선시대다. 외국에서 수입 혹은 밀수입된 화장품들은 우리네 재래상품에 비해 포장이 아름답고 사용법도 간편해 수입되자마자 대환영을 받은 것. 개항 이후 초기에는 주로 일본과 청나라로부터 유입되었다가 1920년대 들어 유럽(주로 프랑스) 방면으로도 확대됐는데, 지금의 프랑스 화장품 유행은 100여년 전 이미 예고 된 것 같다.

  • 주말
  • 이지연
  • 2012.09.14 23:02

올 가을엔 복고 느낌 물씬 뽐내볼까 - 청재킷

몇 번의 비가 지나가고 나니 가을이다. 아직 긴팔 옷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추워진 날씨에 기습 공격을 받은 기분. 급작스러운 날씨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일교차 때문에 아우터를 먼저 준비해야 할 때다.가을 아우터로 인기 있는 아이템은 주로 트렌치코트. 하지만 올해는 청재킷이 더 눈에 띈다. 90년대 유행했던 아이템이 다시 돌아온 것. 박근혜 대선후보가 젊은이들과의 만남에 청재킷을 착용할 정도로 '젊음의 상징'이기도 하다.청재킷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저 '청'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청재킷에서 쓰는 청(靑)은 푸른색을 의미하는 한자어. 청바지의 단어도 마찬가지다. 한자 뜻 그대로 '푸른색 재킷'이라는 의미인데 색상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원단까지로 의미가 확대됐다. 청 제품들은 인도가 원산지인 염료식물 '인디고페라(Indigofera)'로 염색한다. 이것이 바로 일명 '인디고'색상. 다년생 콩과식물로 아카시아잎처럼 생긴 인디고페라는 청 제품 염색의 주 재료로 쓰이고 있으며 전량 수입되다가 2010년 우리나라에서 재배를 성공했다.원래 '청'이 '인디고' 색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청재킷의 원단은 어떤 것일까? 그 비밀은 너무나 유명한 청바지의 유래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청바지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리바이스(Levi's)라는 유명 브랜드를 설립한 인물이다. 원래 천막 천을 판매하던 상인이었던 그는 광산으로 천막천을 팔러 갔다가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찢어지는 것을 보고 질긴 천막천으로 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이 바지는 불티나게 팔렸고 그 돈으로 회사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이때 스트라우스가 사용한 원단은 진(jean). 지금은 청바지를 지칭하는 단어로 '진'을 사용하지만 사실 원단을 뜻하는 단어였다. 올이 가늘고 질긴 능직면으로 능직은 사선 방향의 이골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진은 이 직물을 수입하던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바(Genova, 프랑스어로 진 Genes)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비슷하게 데님(denim)이라는 단어도 사용하는데 이것도 원단을 뜻하는 단어. 데님을 인디고 색상으로 염색해 청재킷과 바지를 만들게 된다. 원래는 면이 아닌 양모로 짠 직물로 18세기 마르세유 항을 거쳐 지중해 동부지방의 여러 항구로 수출했다. 이후 1790년대 뉴잉글랜드 메릴랜드의 제조업자들이 양모가 아닌 순면으로 만들어져 지금의 청재킷에 이용되기 시작했다.이제 20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청은 모양도 색상도 많이 다양화 됐다. 특히 재킷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보인다. 몸매를 들어내던 실루엣이 유행하다가 점점 그 품이 넉넉해지기 때문인데 청재킷에 몸에 꼭 맞는 디자인 보다 일명 '보이프렌드 재킷'이라 불리는 여유로운 디자인이 핫 아이템. 1990년대를 그리는 드라마나 복고 감성의 그룹 데뷔가 늘어가면서 청재킷은 필수 요소가 될 예정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09.07 23:02

야구 점퍼 - 청춘 유혹하는 '캠퍼스 패션의 완성'

태풍의 영향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사라졌다. 선선해지는 날씨와 함께 대학가는 곧 시작하는 새 학기 준비에 바쁘다. 3월이라면 '새내기 패션'이나 '오리엔테이션 패션'이 키워드를 차지하겠지만 가을 학기의 대학가 아이템은 바로 '야구 점퍼'. '학교 점퍼'나 '과 점퍼'로 인기가 높은 야구 점퍼는 간절기부터 한겨울까지 대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다.야구점퍼의 공식 명칭은 경기장을 뜻하는 영단어를 써 스타디움 점퍼(stadium jumper)다. 원래 서양에서 운동선수가 운동장에서 입었던 것으로 이 외에도 '그라운드 점퍼' 또는 '베이스볼 잭' '투톤 점퍼'라고도 부른다. 야구 점퍼가 발명(?) 되기 전 운동선수들은 두터운 양모소재의 스웨터를 유니폼으로 입었는데 새로운 울 압축 기술이 활용되면서 야구 점퍼가 탄생하게 된다. 칼라가 없고 앞 중심은 단추나 지퍼를 채우는 게 일반적인 디자인으로 '투톤 점퍼'라는 이름처럼 보통 두 가지 색상을 대비시켜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한다.운동선수들의 옷이 캐주얼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덕. 이들은 평상시 입던 점퍼 가슴부위에 팀이나 소속 대학과 학과의 머리문자, 또 왼쪽 소매에는 졸업년도 숫자를 넣어 자신들의 소속감을 부각시켰던 것이다.서양의 '야구점퍼'로 대변되는 캠퍼스 문화는 1990년대 유행하기 시작됐다. 가장 처음 야구 점퍼를 이용한 것은 대학교의 체육대학 학생들. 유니폼이라는 특성과 체대의 이미지, 그리고 편리함이 더해져 선택됐다. 대학생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소속감을 심어준다는 장점 때문에 곧 체대생들 뿐 아니라 전교에 퍼지게 됐다. 물론 이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나 색상은 거의 비슷하고 학교 문구만 등에 넣는 정도.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학교 점퍼'는 '과 점퍼'로 이어져 과나 학번에 따라 각기 다른 디자인을 창조하게 된다. 색상과 디자인, 의복의 재질도 모두 다르고 동아리 별 점퍼도 만들어지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야구 점퍼가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하의와도 어울릴 뿐 아니라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는 편리함 때문이다. 또한, 사이즈 구애도 크게 받는 않는다.(학교 잠바로 인기있는 이유기도 하다.) 스포티한 제품이지만 여성스러운 스커트나 원피스에 매치하기 좋은 아이템. 여기에 커플 룩으로 이용하기도 좋다.이렇게 디자인이 다양해지면서 야구 점퍼 모양의 '과점퍼'는 대학생들의 일상복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트렌치코트나 가죽 재킷과 더불어 간절기 필수 아이템. 무엇보다 올해는 색상과 소재가 다양하게 출시돼 선택권이 많다. 야구 점퍼와 한 세트인 아이템은 후드 티셔츠다. 날씨가 추워져도 도톰한 후드 티셔츠와 야구 점퍼라면 거뜬할 것. 보통 야구 점퍼에 로고나 글씨가 많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후드 티셔츠는 점퍼와 색이 같거나 비슷한 계열의 색을 골라 통일감을 주는 것을 권한다.

  • 주말
  • 이지연
  • 2012.08.31 23:02

하이힐 - 키 높이의 유혹 '킬힐' 신고 섹시한 걸음

정치인과 관련한 부적절한(?) 단어가 며칠 인터넷 세상을 어지럽게 하더니 어제는 '하이힐 폭행녀'가 검색어로 등장했다. 부산에서 두 명의 여성이 한 여성의 머리채를 붙잡고 구석으로 몰아 하이힐로 수차례 머리를 가격하는 모습이 목격된 것. 그래서 하이힐 구매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가을 트렌드 구두'보다 '하이힐 구타'가 '대세'가 돼 버리고 만 것이다.하이힐이 잘못된 '무기'가 되기도 하고 방범 용품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하이힐은 여성 건강의 가장 큰 적이다. 최근 발병인구가 늘었다는 족저근막염(발뒤꿈치뼈에서 시작해 발바닥 앞쪽으로 5개의 가지를 내어 발가락 기저 부위에 붙은 두껍고 강한 섬유띠인 존저근말에 염증이 생겨 발뒤꿈치 통증을 일으킨다)도 원래 운동선수들에게서 많이 발병됐지만 하이힐 착용으로 일반화된 병이다. 이렇게 미(美)를 위해 고통과 아픔을 감수하는 요즘의 하이힐과는 달리 그 시초는 청결을 위해서였다. 16세기 베네치아 여인들이 거리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던 것. 초핀(chopine)이라 불리던 이 신발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프랑스 왕인 루이 14세와 루이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에 의해서다. 우습게도 하이힐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여자가 아닌 남자, 그 것도 왕인 루이 14세 자신이었다. 자신의 다리에 애정이 각별했던 루이 14세는 다리를 위한 구두를 수천 켤레 마련해 놓고 신었던 것. 이 당시 여성 드레스는 노출 없이 긴 형태였고 남자들은 짧은 바지와 스타킹 형태의 옷을 착용했기 때문에 남자 구두가 더 화려했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이후 구두 사랑을 이어 나간 것은 퐁파두르 부인으로 이 당시 패션계의 대모이자 리더로 알려진 여성이다. 그녀는 권력을 뽐내기 위해 자신만의 굽 높은 구두를 만들어 신고 베르사이유 궁전 안을 다니며 귀족들을 압도했다. 그녀의 독특한 패션 감각만큼이나 신발도 화려했는데 퐁파두르 부인이 신던 이 굽 높은 구두는 '루이힐'이라고 불리면서 오늘날의 하이힐의 원조가 됐다. 루이힐의 높이가 아무리 높았어도 요즘의 킬힐(kill hill)만 할까 싶다. 그 시작은 10cm이상 이었지만 13cm, 15cm 등으로 점점 높아지는 추세. 20cm 높이도 바라보고 있다 보니 구두 앞쪽에 두꺼운 굽을 덧대 안정감을 주는 일명 가보시, 플랫폼(flatform) 구두가 많이 출시되고 있다. 물로 아무리 굽에 안정감을 준다해도 건강에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킬힐 마니아로 알려진 빅토리아 베컴 조차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킬힐을 벗었다는 후문. 여기에 최근 기사에 따르면 임산부들에게는 킬힐이 매우 위험한 요소를 밝혀졌다. 신체 변화가 심한 임산부들이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자세불안정과 균형감이 떨어져 허리와 무릎관절에 무리를 주게 되는 것. 또한 임신을 하면 체중이 증가와 함께 호르몬 분비로 인해 관절이 약해져 비교적 약한 충격에도 쉽게 손상을 입거나 통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발가락 모양을 변형시키고, 디스크를 유발하고, 또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신발이지만 하이힐이 사라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연예인들의 뼈 밖에 없는 다리가 평균이 되고 외국인들의 다리 길이를 알아버린 동양의 작은 여성에게는 말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08.24 23:02

웨딩드레스 - 새출발 순백의 신부…나만의 맵시 뽐내라

한 연예인 부부의 갑작스런 결혼 발표가 검색 순위 우위를 차지하더니 폭우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키워드가 됐다. 더욱이 윤달의 영향으로 결혼식이 하반기로 몰리면서 예년보다 결혼시즌이 일찍 시작된 것. 이에 따른 결혼식 준비도 벌써부터 한창이다. 올해 가을 결혼을 준비하는 모 선배 기자는 "웨딩드레스만 결정되면 결혼 준비 끝"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결혼식에서 여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줄여 부르는 말)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드레스 예약이 제일 힘들다는 것. 결혼 날짜가 주말로 몰리고 유행하는 디자인이나 보는 눈도 비슷하다보니 드레스 고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웨딩드레스는 1950년대 서양의 결혼풍습이 일반화되면서 정착된 복장이다. 그 이전에는 활옷이 우리네 '웨딩드레스'였다. 활옷은 원래 조선왕조 때 공주옹주의 대례복으로 입던 소매가 넓은 옷이었으나 결혼식 날만큼은 신분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었다. 바로 활옷에 자수된 문양 때문. 건강과 장수, 행운 등을 상징하는 연꽃과 행운과 권위를 나타내는 봉황, 소생(蘇生)을 의미하는 나비, 고귀하고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십장생 외에도 다정한 부부의 뜻을 가진 원앙이 활옷 자수의 기본이다. 그래서 활옷은 인생을 새 출발하는 신부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11년 이화학당 한 졸업생이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었던 것을 시작으로 그 이듬해에는 같은 학교 졸업생이 흰색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면서 서구식 결혼식과 복장이 등장한다. 개화사상을 일찍 받아드렸던 기독교 신사들에게서부터 시작된 이 서양식 문화는 1920년대 들어서 비즈 장식이나 손 자수를 놓은 원단을 이용해 좀 더 화려(?)해 지기도 했다. 웨딩드레스가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것은 1930년대 예식장이 등장하면서 드레스를 대여해 주기 시작했기 때문. 초기는 원피스 스타일이었지만 점차 양장의 유행에 맞춰 디자인이 변화했고 다양해졌다.결혼식 문화가 변화면서 그에 따른 의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러 의미를 담았던 우리 활옷과 달리 웨딩드레스의 의미는 순백순결이 전부. 그런데 흰색 웨딩드레스가 순결의 상징이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그 이전 서양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결혼식에 입곤 했다. 오히려 교회 갈 때 입던 회색이나 검은색 옷을 웨딩드레스로 입었을 정도. 흰색 웨딩드레스를 처음 입고 등장한 사람은 1840년 알베르트 와자와 결혼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당시 영국의 레이스 산업을 지원하고자 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하얀색 드레스와 면사포를 만들어 입었고 이 후 직조기술이 개발되면서 흰색 천의 가격이 낮아지자 이 유행이 가속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웨딩드레스는 여전히 변하고 있다. 색상도, 디자인도 또 소재까지도 다양하다. 이 많은 드레스 속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장점을 부각시키는 옷보다도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디자인. 실수하지 않으려면 많이 입어보는 수밖에 없지만 요즘은 입어보는 것만도 유료라 이마저 쉽지 않다. 이럴 때 추천하는 방법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모아 가져가는 것이다. 연예인이 입는 것, 잡지에서 본 것, 혹은 인터넷 서핑 중에 찾은 디자인을 스크랩 했다가 드레스 고를 때 가져가면 우왕좌왕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08.17 23:02

'딱' 맞는 사이즈로 몸매종결자 돼볼까 - 보정속옷

최근 김정은 북한 제1국방위원장의 부인으로 알려진 이설주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은과 이설주가 북한군 522부대 예하 군부대를 방문해 여군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인데 이때 이설주가 들고 있던 가방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었던 것.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흰 원피스를 입고 있던 그녀의 뱃살이었다.이설주의 뱃살이 인터넷 검색 순위로 등장하면서 보정속옷까지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됐다. 북한에서야 복스러운 배와 통통함이 미(美)의 기준일 수 있지만, 다이어트를 숙명처럼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시돼야 할 것으로 간주된 지 오래. 유행에 따라 선호하는 의상의 스타일이 변화되면서 보정속옷 역시 각광받고 있다.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보정속옷의 탄생은 그러나 여성들에게 썩 달갑지만은 않다. 보정속옷의 기원은 기원 전 1500년 경이다. 고대인들이 인체의 곡선미를 추구해 가슴을 풍만하게 보이도록 허리를 졸라매는, 종처럼 부푼 모양의 스커트를 입었던 게 보정속옷의 첫 등장이자 코르셋의 원형이다. 서양은 아랫단이 퍼지는 풍성한 드레스를 입었던 덕분에 보정속옷도 상체를 강조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는 코르셋이 크게 유행을 했는데 이 당시 개미처럼 가느다란 허리가 미인을 상징했다고 하니 이 상관관계는 분명한 듯 싶다. 여성들은 개미허리를 갖기 위해 허리를 졸라맸고, 코르셋 때문에 갈비뼈가 폐나 심장을 크게 압박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르셋은 점점 모양이 변하면서 현재의 브래지어와 같아졌고 과거 철이나 고래의 뼈 등 딱딱한 소재로 만들던 것을 좀 더 부드럽게 변형해 허리 라인까지 압박하는 형태가 됐다. 이렇듯 체형을 보정하는 목적인 보정속옷은 '화운데이션(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속옷으로 세분화됐다. 여성들의 치명적인 적인 뱃살의 경우 거들로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거들은 코르셋의 하의 버전으로 코르셋처럼 심(芯)이 들어 있지 않아 신체를 움직이는데 자유롭고 압박감 덜하다는 것이 장점. 20세기에 들어 활동적인 미(美)가 중요시 되면서부터 등장한 형태로 초기에는 고무천을 사용했으나 신축성이 있는 스판덱스 등으로 바뀌었다. 원통형과 팬티형이 있으며 팬티형은 길이에 따라 또 구분될 수 있다. 뱃살을 가리기 위해 거들의 앞쪽 중앙 부분이 늘어나지 않는 천으로 돼야 한다. 사이즈는 허리와 엉덩이 치수를 기준으로 정하면 된다.보정속옷을 잘 선택하면 체형 교정까지 할 수 있어 이점이다. 그러나 사이즈 선택에 신경을 써야 한다. 몸이 조이는 것이 싫어 한 사이즈 크게 입게 되면 보정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가 없고 작은 사이즈를 선택하면 군살이 울퉁불퉁하게 남아 그대로 굳어지거나 신체 활동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선택하는 것이 보정속옷 이용의 포인트라 하겠다.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는 허리둘레와 엉덩이 둘레로 정한다.

  • 주말
  • 이지연
  • 2012.08.10 23:02

팔찌 - '블링~블링'한 팔찌로 마무리 패션…종결자 돼볼까

노출이 많아지는 여름철,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액세서리다. 많은 액세서리 종류 중에서 올해는 팔찌가 대세. 여러 개를 레이어링(겹쳐 하기)해서 하는 것이 특히 인기다. 팔찌 인기를 더 가속화 시킨 것은 일명 '임메아리 팔찌' '신품 팔찌'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커플 팔찌로 등장하면서 인터넷 상위 검색어를 꿰찬 것. 사실 이 팔찌는 '고소영 팔찌'로 불리던 원석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이미 지난해부터 유행하고 있다.팔찌는 많은 액세서리들 중에서 비교적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슬쩍 드러나는 것이 매력. 이 액세서리의 묘한 매력은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조개껍데기를 이용해 팔찌를 만들어 착용했던 것. 이 시대를 지나 기원전 300년 전에는 상아나 청동 등을 이용하는 금속 팔찌가 등장했다. 특히 상류층에서는 현재 사용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슬나선고리 모양 등 여러 가지 디자인을 이용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와 의복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 중요시되면서 팔찌는 그 자취를 감췄다가 15세기가 되면서 다시 일반화 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팔찌가 유행한 때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 시대의 의복은 노출이 많은 스타일이었다는 것. 현대에 들어 다른 계절보다도 여름철에 팔찌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노출 많은 옷은 팔찌를 드러내기 위한 시대를 초월하는 조건이 아닌가 싶다.우리나라에서 팔찌가 등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다. 이집트의 것처럼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것.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제옥제 등으로 다양해졌고 연옥(軟玉)과 마노(瑪瑙)를 이용한 것도 발견됐다. 이후 팔찌는 삼국시대에는 널리 착용됐으나 조선시대에는 거의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디자인과 소재는 다 다르지만 '팔찌'라는 액세서리가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건 2004년께다. 이때 등장한 것이 자선단체에서 만든 일명 '고무 팔찌'. 리브 스트롱(LIVE STRONGㆍ강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팔찌는 미국의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이 고환암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후 암환자 재단 모금을 위해 2004년 5월 선보인 것이다. 미국의 유명 배우, 스포츠 스타들이 착용하면서 5500만개가 넘게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는 모조품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비판도 제기됐었다.2010년 어른들을 경악케 했던 것은 일명 '얼짱팔찌'다. X자 모양의 고무링인데 해외에서는 '성폭력 팔찌'로 알려진 물건이었기 때문. 영국, 미국 등에서 '데이트 팔찌' 또는 '섹스 팔찌'로 불린 이 팔찌는 그 색깔에 따라 이성에게 허용되는 스킨십의 수위를 나타내는 뜻을 담고 있었다.지난해와 올해 가장 인기 있는 팔찌는 원석을 이용한 디자인이다. 배우 고소영이 공항에서 찍힌 사진 속에 바로 이 팔찌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제품이라 굉장히 고가이지만 저가의 제품들이 나오면서 1~2만원대로도 구입 가능해 졌다.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아이템이지만 드라마에서 커플팔찌로 등장하면서 남성들에게도 인기다. 색상만 달리한 디자인으로 커플끼리 착용하는 것. 가격이 천차만별 인만큼 소재에 대해 잘 알아보고 사야한다. 원석이 아닌 유리로 된 제품은 가격이 훨씬 저렴한데 대신 충격에 약해 물놀이를 할 때 등 망가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겠다.

  • 주말
  • 이지연
  • 2012.08.03 23:02

'밀짚모자'쓰고 여름 휴가 떠나요~

한껏 달아오른 태양으로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런 더위 속에서도 모두의 관심사는 여름휴가.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필수적으로 챙겨야할 물건들이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태양을 가리는데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물건, 바로 '모자'다.인류가 옷을 착용한 유래를 살펴보면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혹독한 자연 속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을 거라 하고 또, 주로 사회생활상 장식이나 의례표지(標識) 등의 목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째든 현재에 와서 '옷'이란 인체 보호와 함께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성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옷은 패션(유행풍조양식을 일컫는 말로 의복 또는 복식품의 유행)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됐다. 그런데 많은 패션 용품들 중에서 '옷'과 가장 비슷한 변화 양상을 보이는 것이 모자다. 모자는 추위나 더위, 혹은 먼지 등의 더러운 환경에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 사용하던 모자가 남녀의 구별과 계급의 차이가 생기면서 그 변화가 다양해지게 된 것. 성별에 따라 달랐던 것은 물론이고 신분에 따라 디자인, 소재 등에 차이가 있었다.우리나라에는 개화기 이후 서구의 영향으로 서구의 모자가 도입되었다. 그 이전 착용했던 것은 동양식, 소위 '중국문화'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 당시의 모자는 남녀 구별이 뚜렷했고 신분에 따라 차이가 컸지만 서구 모자는 그 간격을 점점 좁혀 개화기 관리들의 예복용 모자로 시작해 학교가 그 뒤를 따랐다. 자료 사진으로 자주 보이는 한복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의 모습들도 다 이 때의 것.하지만 여성은 남성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정장에 모자를 쓰는 규범이 차차 사라지게 됐고 모자는 정장보다는 캐주얼한 차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로 남게 됐다20세기 이후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모자는 크기는 작아지고 레저 및 스포츠와 관련된 형태로 디자인 됐다. 하지만 의상이 다양해지는 것과 같이 모자 또한 장소나 시간에 따라 쓰임새를 달리 하기 때문에 한 종류가 유행한다고 말하기는 무리. 또, 모자의 경우는 여러 상황에 함께 쓰기에는 그 특징이 뚜렷해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한 개 이상 소유하는 것이 알맞다 하겠다.하지만 이런 바캉스 철에 필요한 모자를 한 개만 꼽으라면 '밀짚모자'를 추천한다. 밀짚모자는 챙이 넓게 만들어져 햇빛을 가리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 통풍이 잘 되는 소재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요즘 모발을 위해서도 좋다. 밀짚모자에 별도의 장식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포인트로 모자 위에 스카프를 묶어주거나 코사지를 달아주면 된다. 여성들만을 위한 아이템으로 생각하지만 중절모 디자인을 밀짚으로 만든 제품도 나와 있으니 이용해 볼 것. 해변가 커플룩으로 강력추천이다.

  • 주말
  • 이지연
  • 2012.07.27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