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백경고(百警告) 불여일득병(不如一得病)이라
어느 마을에 100세를 넘긴 노인이 있었다. 그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그 노인, 장작까지도 곧잘 팬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널리 퍼진 건 당연한 일이었을 터. 소식을 들은 지역의 신문기자가 그 집을 방문했다. 노인에게 축하드린다고 먼저 인사를 챙긴 그 기자, 장수 비결 같은 것이 따로 있으신지 삼가 여쭈었다. 뭐, 그게 그저, 딱히 비결이랄 건 없고.노인은 좀 겸연쩍은지 대답을 선뜻 못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하나씩 조목조목 묻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약주는 좀 하셨습니까? 약주는 무슨, 나는 젊었을 때부터 술은 입에도 댄 적이 없어. 아, 장가들 때 딱 한 잔 마셨네. 거 뭐라더냐, 합환주라던가, 그거 절반으로 끊어 마신 게 전부일세.그 노인, 딱 잘라서 그렇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젊은 사람 뺨치게 우렁우렁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러시면, 담배도 당연히 안 피우셨겠네요? 바로 봤어. 그 백해무익하다는 걸 내가 왜 피웠겠나? 네에,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쭈어도 될까요?뭐든, 물어보시게.혹시, 좀 외람되지만, 젊으셨을 때 할머니 말고 다른 여자는. 예끼, 이 사람아! 나는 평생을 우리 할망구 하나 보고 살았다네! 아, 어르신의 장수비결이 바로 그거였군요.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아까부터 방안에서 누군가 끙끙 앓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이었다. 그 방 쪽을 기웃거리던 기자가 덧붙여 물었다. 지금 저 방에서 저렇게 앓고 계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말도 말게. 젊어서부터 술 담배에 계집질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더니 말년에 저렇게 고생을 하는 거라네. 누구신지 여쭈어도 실례가 안 되겠습니까? 그 노인, 주위를 좀 살피는 척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누구긴, 이 사람아! 내 아버질세. 중년의 건장한 남자가 병원을 방문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제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그 남자,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의사, 조금 심드렁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혹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술은 얼마나 마셨습니까?천만에요. 저는, 평생 술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그러세요? 그러면 주위에 친구도 별로 많지 않겠네요?좀 그런 편, 아니, 제게는 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건 사실입니다.그래요. 그럼 담배도 피워본 적이 없겠네요?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동네 만화가게에서 장난삼아 딱 한 대 피워본 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데 그런 걸 왜 피우겠습니까?그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던 의사, 갑자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혹시 이거는?참 내, 그런 거 봤다가 양기 다 빠지면 몸만 축나게요?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사실 겁니까?당연하지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나 알려주십시오.그 의사,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느긋하게 기대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식으로 살 거면서 뭣 때문에 오래 살려고 하시는 겁니까?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다. 이 따위(?) 이야기를 처음 꾸며낸 이가 누구일지,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낄낄거릴 사람들은 또 어떤 이들일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그들에게 술병에 적힌 경고문을 들이대면, 내가 아는 어느 교회 장로님은 평생 술을 입에 대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간암에 걸려서 환갑도 되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가더라고, 되받는 말이 청산유수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도 (물론 께름칙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애써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아니, 백경고(百警告) 불여일득병(不如一得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