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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바쁜 전주예총 '변화'에 인색했다

전주예총은 변화를 거부했다.25일 사단법인 한국예총 전주지부 ‘제15차 정기총회’에서 최무연씨(56)가 연임에 성공, 제6대 전주지부장에 선출됐다.도덕성 시비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요구했던 각계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앞으로 전주예총의 원활한 활동이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10개 회원단체들이 전주예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시기다.△ 최무연, 다시 4년25일 오전 10시 30분 전주시청 옆 호남성에서 열린 ‘제15차 정기총회’는 시작부터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무연 회장이 도덕성 시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상대 후보에 불리한 선거였다는 등 혼탁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최무연 후보와 정희수 후보는 각각 총회장을 돌며 마지막 표심에 호소하는 분위기였다.다소 고성이 오갔던 총회가 끝나고 정희수 후보와 최무연 후보의 정견 발표가 이어졌다. 정 후보는 “전주예총을 바로잡고 회원단체들의 적극적 활동을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최 후보는 “지난 4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앞으로 4년을 이끌겠다”며 “여기서 물러나면 추락한 전주예총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제6대 전주예총 지부장 선거가 실시됐다. 투표는 시작부터 개표까지 26분만에 마무리됐다. 개표결과 총 50표 중 최 후보가 26표, 정 후보가 24표를 획득했으며 무효표는 없었다. △ 변화는 어려워최무연 당선자와 정희수 후보의 표 차이는 단 2표. 전임 회장의 기득권을 감안하면 사실상 표 차이가 없는 셈이다. 정 후보 측은 어려운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다. 최 당선자 측은 맨투맨방식 선거전략으로 큰 표차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불과 2표차로 신승을 거둬 놀라는 눈치였다.이번 선거를 보는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전주예총이 변화에 너무나 둔감한 것 같아 매우 걱정이다”고 평가했다. 또 “최 지부장이 어떻게 실추된 전주예총의 명예를 추스릴지 우려된다”고 말하는 전북 예술인들도 많았다. 특히 전주예총 소속 회원들은 “앞으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전주예총이 잘 운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산적한 과제들두 후보가 막상막하인 선거결과에 비추어 새 회장에게는 양분된 전주예총을 하나로 묶는 과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또한 도덕성 시비로 실추된 전주예총의 위상을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가 관심 사항이다.여기에 전주예총의 예산 문제도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전주시가 올해부터는 전주예총에 예산지원을 하지 않을 계획이고 전북도도 마찬가지 입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전주예총 예산지원 문제로 질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전주예총 조직 및 운영규정’에 대한 개정 필요성도 지적됐다. 전주예총 선관위는 이 ‘전주예총 조직 및 운영규정’이 한국예총의 승인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며 한국예총 정관을 그대로 사용했다. 전주예총의 운영규정이 뿌리부터 잘못됐다고 자인하는 셈이 된다. 앞으로 전주예총이 제대로 된 운영규정에 따라 제대로 운영을 해나간다면 전주지역 예술인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물론, 전주지역의 문화예술 토양 가꾸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 문화일반
  • 이덕춘
  • 2008.01.28 23:02

전주예총 6대 지부장에 최무연씨 재선임

“회원단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 전주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지난 25일 열린 전주예총 제15차 정기총회에서 제6대 전주예총 지부장에 연임된 최무연씨(56·본명 최영식)는 “이번 선거는 회원들이 저에게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주예총을 다시 이끌어 달라는 결과다”며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또 “전주문화원과 협력해 전주문화예술인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건물 건립을 추진 중이다”며 “예술인 정착촌 건립도 전주시와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 전주예총의 채무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투명한 재정운영을 약속했다. 전주대 음악과와 전북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최 지부장은 호남오페라단 기획실장·전북음악학원연합회장·전북예총 사무처장·한국생활음악협회 전북지회장, 전주음악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4년 전주예총 제5대 지부장에 당선돼 전주예총을 이끌어왔다.한편, 52명의 대의원 중 50명이 참석한 이 날 정기총회에서는 이순심씨(전주국악협회)와 김영록씨(전주영화인협회)가 임기 2년의 감사로 선임됐으며, 부회장 선임은 차기 이사회로 미뤄졌다.

  • 문화일반
  • 이덕춘
  • 2008.01.28 23:02

수필과 비평 주최 '신곡문학상·시상식' 열려

한국 문단에 실력있는 수필가들을 배출해 온 「수필과 비평」(회장 라대곤, 발행인 서정환, 작가회의 회장 박영수). 「수필과 비평」이 주최하는 ‘2008 신곡문학상 및 신인상 시상식’이 26일 전주관광호텔에서 열렸다. 13회를 맞은 올해 신곡문학상은 오양호씨(인천대 명예교수)가 대상을, 서경림(제주대 교수) 김이경씨(파주시 용미초 교감)가 본상을 수상했다. 신곡문학상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전주에서는 두번째 열린 이번 행사에는 전국의 수필 문학인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년균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은 “문인이야 말로 어둠에서 빛을 캐내는 사람이며, 작품이라는 빛을 캐내는 문인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며 “특히 수필가들은 다른 분야보다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품고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정주 이병기 채만식 김해강 등 훌륭한 문인들이 전북 출신이며, 현재 전북에 사는 문인만 해도 1000여명으로 알고 있다”며 전북 문단의 힘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원로수필가 박재식씨도 축사를 통해 “신곡문학상이 전통의 맥을 이어 한국 수필의 세계화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수상자들의 문학강연이 함께 열렸다. 이산의 고통을 겪는 이들의 문학을 연구해 온 오양호 인천대 명예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서 이종교배 장르 종 탄생까지’란 강연을 통해 “이산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문학은 고향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타향의 고통, 향수, 먼 고향을 생각하면서 새 고향을 만들며 사는 내력이 디아스포라가 문제가 된 문학에서 모티브로 허다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시수필’ ‘수필소설’ 등 장르를 결합시킨 문학활동에 관심이 많은 오교수는 “상상을 가하여 깊이를 더하고 허구를 활용해 폭을 넓힘으로써 어떤 장르도 채울 수 없었던 창작의 기쁨을 누린다”며 “머지않아 이종교배 장르의 종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갈래의 문학이 탄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는 27일 전주를 출발해 새만금전시관과 영화 JSA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밭, 군산 채만식문학관으로 이어지는 문학기행으로 마무리됐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1.28 23:02

'동지모금운동' 北 어린이에 네번째 사랑의 선물 전달

동지모금운동 네번째 1000만원 전달식이 24일 한옥마을 공간 ‘봄’에서 열렸다. 이종민 전북대 교수(52)가 2002년 제안한 북한 어린이 돕기 동지모금운동은 식비의 1%를 모으는 ‘기백(기아퇴치를 위해 하루 백원 모으기) 운동’. 당시 대학 교직원식당 한끼 식대를 3000원으로 계산, 하루 식비 1만원의 1%인 100원을 한달 단위(3000원)로 모으기 시작했다. 이를 제안한 날이 동지(冬至)이기도 했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同志)이란 의미를 살려 동지모금운동이라고 정했다.이교수가 평소 지인들에게 보내던 ‘음악편지’를 통해 모금운동의 뜻을 알리자 후원인을 자처하거나 돼지저금통을 보내오는 이들도 생겨났다. 2006년에는 후원을 부탁하며 이교수가 학교 홈페이지 올린 ‘저에게 점심 한 끼 사주시겠습니까?’란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확산된 동지모금운동은 북쪽 어린이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이사장 권근술)에 2004년 12월, 2006년 5월, 2007년 5월 각각 1000만원씩 전달됐다. 여러 단체들과 개인들의 마음이 모인 네번째 1000만원도 역시 남북어린이어깨동무에 전달됐다. 이교수는 “남쪽과 북쪽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려면 신체적·정신적 조건이 비슷해야 한다”며 “남쪽 어린이에게 필요한 게 평화교육이라면, 북쪽어린이들은 영양공급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안고있는 비인간성과 삭막함을 기부문화가 완화시켜줄 것”이라며 동지모금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날 전달식은 ‘박남준 시인과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로 진행됐다. 그동안 동지모금운동에 참여한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자리. 동지모금운동에 돼지저금통을 보내온 박시인이 자작시를 낭송했으며, 왕기석 명창과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대금수석 이항윤, 테너 조창배 소프라노 고은영이 음악으로 마음을 더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1.28 23:02

전주 관광.영화 정보 담은 지도 나왔다

전주의 관광 정보는 물론 전주 영화의 역사와 영화 촬영지 등을 소개하는 영화 정보 지도가 나왔다. 재단법인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영화 도시' 전주를 찾는 관광객을 위해 전주 영화 정보 지도인 '전주 씨네맵(Cine Map in Jeonju)'을 만들었다고 25일 밝혔다. '전주 씨네맵'에는 1950년대 전주에서 한미 합동 제작 영화 '아리랑'(1953)과 한국 최초의 16㎜ 컬러 영화 '선화공주'(1957) 등의 영화가 제작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고사동 '영화의 거리'가 형성됐다는 사실 등 전주 영화의 역사가 생생하게 실렸다. 또 초기 극장의 모습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담겨 있어 옛 영화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이밖에도 주요 영화 촬영지와 최근 완공된 전주 영화 종합 촬영소, 전북 독립영화협회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등 영상 문화 산업과 관련된 각종 자료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전주 동물원과 전동 성당 등 주요 영화 촬영지를 돌면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보는 체험 기회를 제공하려고 영화 촬영지를 중심으로 4가지 테마 여행 코스도 마련했다고 JIFF 측은 전했다. '전주 씨네맵'은 간편하게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포켓 사이즈로 제작됐으며 관광 안내소와 전주 시내 곳곳에 비치될 예정이다. 전국의 영상위원회에도 배포할 예정이며 JIFF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PDF 파일로 다운 받을 수 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01.25 23:02

"일본인 움직이려면 한국만의 개성 살려야"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당장 진출은 어렵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특수성을 보여줘야 일본인들을 움직일 수 있다.”역시 일본 공연기획자들의 눈은 매서웠다. 전주문화재단(이사장 장명수)이 일본 공연기획자들과 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공연 ‘보라! 멋과 흥의 공연예술, 가자! 아시아 넘어 세계로’가 24일 오후 1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렸다. 동경국제아트마켓(TPAM) 대표 타무라 미츠오는 “각 팀마다 가능성이 있고, 개개인마다 능력이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같은 아시아 계열이어서 인지 동남풍의 사물놀이에 특히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기획자이자 제작자인 오자키 기미코도 역동적인 동남풍의 타악과 전주시립극단의 ‘광대학교’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매니지먼트사 유게이사 대표인 이다 순은 전주지역 공연단체들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일본에 진출한 한국의 다른 공연팀들에 비해 수준이 낮다”며 “일본에서 곧바로 관객을 모으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평했다. “일본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15년 동안 들어왔다”는 그는 “한국의 전통을 살려 한국적 깊이감을 담아내는 데 좀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에치코추마리트리엔날레 기획자 오구라 유스케는 “준비과정이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즐거웠다”며 “일본과의 교류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주를 찾은 일본 공연기획자들은 타무라 미츠오와 이다 순, 마쯔다 요시미쯔, 오구라 유스케, 오자키 기미코, 타이라다테 케이스케 등 6명.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서울과 미국 시장을 통해 한국의 공연 수준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한 단체들은 심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수준에 있어 격차를 보였다. 객석에 자리한 일부 예술인들은 “지역에서도 검증받지 못한 단체들을 출연시키는 것은 실례인 것 같다”고 지적했으며, “이번 공연과 같이 여러 장르에서 여러 단체가 출연하는 공연을 만든다면 오히려 상품성이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1.25 23:02

한국화가 이홍규 '수묵풍경전' 전주 교동아트센터

27일까지 한옥마을 교동아트센터에서 ‘이홍규 수묵풍경전’을 열고 있는 한국화가 이홍규씨(29). 4년 만에 여는 두번째 개인전이지만, 그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는 첫 개인전 못지 않다. “아트페어에 참여했던 첫 개인전과 달리, 이번 전시는 단독개인전입니다. 당시만 해도 화면을 꼼꼼하게 채워넣는 것이 노력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덜어낼 것은 덜어내면서 여백을 많이 주는 식으로 풀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답답하다는 말을 듣곤 했던 화면은 한결 정돈되고 시원해 졌다. 대상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관찰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씨는 “지금이 나에게는 과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적인 풍경들에 관심이 많다. 오며가며 눈에 익은 풍경들을 담담히 손으로 옮기며, 그는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무엇보다 작가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편안한 풍경들이 좋다”고 했다. 전시 제목은 ‘수묵풍경전’이지만, 그의 그림은 서구의 풍경적 시각과 한국의 산수적 관념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정교한 필치로 수묵을 다스리고 농담을 통해 사물의 원근과 대소를 구분하는 수준은 이미 산수의 새로운 공간을 열고 있다. 김제 출생으로 전주대와 전주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1.25 23:02

'백제의 땅' 전주에 '신라의 문화' 숨쉬다

백제의 땅에 신라의 문화가 펼쳐졌다. 문화공간 싹(대표 채성태)의 2008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신라로 가는 작은 발자국’이 19일부터 2월 2일까지 열린다. 교과서나 수학여행에서만 봐왔던 신라의 문화를 아이들 눈으로 재조명한 것. 작은 미니벽돌을 보고 떠올린 석가탑은 불국사와 통일신라 전반에 대한 궁금으로 번져나갔으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의상과 장식품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통일신라 왕족과 귀족들이 안압지에서 즐기던 주도문화의 도구들은 실내로 들어와 아이들의 놀이문화로 변형됐다. 우리나라 역사왜곡을 위해 일본인들이 우리 지도를 바꿨다고 하는데, ‘사회과부도’ 지도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지난해 가을부터 이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 온 이훈희씨는 “백제땅이었던 전주에서 신라 경주를 아우르는 것은 지역적인 관점을 떠나 끊임없는 전쟁 이후 대평화시대를 열었던 통일신라의 문화가 우리의 자긍심이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라며 “아이들이 구체적인 역사관을 통해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감상 뿐 아니라 체험이 중요하다. 전시 기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 단, 전시기획자와 함께하는 체험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의 비밀’과 ‘이야기 인물 속으로’ ‘가위 팔령구와 함께해요!’ 등은 유료(재료비 1000원)로, 금·토·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진행된다. 단체관람 문의 063) 251-1739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1.25 23:02

[전북문화의 발견] "설 곳 잃은 문화예술 안타까워"

"임실 문화예술이요? 정말 열악해요. 제가 오궁리에 들어올 당시에는 전라북도에 폐교를 통한 창작공간이 가장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다 떠나고, 문을 닫아 딱 두 곳만 있네요.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한데, 이 분들은 농로 하나 더 놓고, 수로하나 더 놓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지난 1997년 결혼과 동시에 오궁미술촌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길명 각가의 첫 마디다. 그는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섯 차례의 개인전과 70여 차례에 가까운 국제교류전, 기획전에 참여한 탄탄한 실력자다. 현재 미술촌에는 7명의 미술작가가 입주해 있는데, 살림을 하는 사람은 딱 두 가족밖에 없단다. 다른 작가들은 결혼해서 따로 살림집을 마련하거나 애초부터 작업공간으로만 활용하고 있다고.이씨의 쓴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전주에서 30분이면 오는데, 지원에 대한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현재는 문화나 예술이 정치논리, 상업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어느 한쪽이 먼저 돈다든지 덩치가 커 버리면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한 것이죠.” 지자체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부족이 지금의 임실지역 문화예술을 만들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씨의 원래 고향도 임실이 아닌 김제다. "조각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소음이나 먼지가 많아요. 그래서 작업공간을 찾던 중에 은사(恩師)의 추천으로 무작정 달려 간 것이 여태까지 살고 있네요.” 말이야 이렇지만 이씨는 임실사람이 다 되었다. 지난해 4월부터 신덕면농악단에 들어가 지역주민들과 우의를 다지는 사람이다. 게다가 엊그제는 1주일 동안 필봉농악전수관에 입소한 사실도 밝혔다. "미술촌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도 그렇고 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농악단에 들어갔죠. 마흔 살 가까이 돌만 만지다가 국악기를 배우려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로 배워보려고 다녀갔었죠.” 한편으로 임실 문화예술은 이미 통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오궁미술촌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상설체험과 교육을 제공하지 못 하고 있다.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교육은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는 교육시스템이 없다는 의미다. 지난 2003년부터 전국문닫은학교연합예술제를 진행한 결과 많은 호응이 있었지만 이 역시 폐교들끼리의 연합형태로 올해 개최장소가 계속 바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멀리서 미술촌을 찾아온 분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우리 미술촌이 개인적인 작업공간의 기능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사리 대안이 안 나오네요.”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작품 값에는 큰 욕심을 낼 생각이 없다는 조각가. 돈은 번만큼만 쓰자는 입장. 작가가 작품에 매진하지 않고 돈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팔지?'에 대한 발상만 하게 된다고 내색한다. 다만 오궁미술촌이 미술인 삶의 터전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성기석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국제영화제 기획실장)

  • 문화일반
  • 성기석
  • 2008.01.25 23:02

[전북문화의 발견] ⑪임실 필봉농악 문화일꾼

노령산맥 동쪽 사면의 산간지역인 임실군은 예로부터 충신과 효열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주에서 불과 29㎞ 거리에 있기도 하지만 운암저수지라 불리기도 하는 옥정호(玉井湖)와 소충제, 사선제, 의견제 등의 이름 난 향토축제가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문화환경은 '글쎄'다. 지난해 임실문화에술교육센터에서 조사한 「임실지역 문화인프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의 수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기반시설 역시 매우 빈약한 수준이었다. 임실의 문화예술단체는 딱 4개란다. 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곧 문화예술인의 현황은 그 지역의 문화적인 환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양이 질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여기 임실에서 일하다가 당장 오늘 '죽어도 좋을' 문화일꾼들이 있다. 필봉농악전수관에서 농악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최호인 기획실장(39)과 김소희(26), 김세미씨(21), 그리고 오궁미술촌 이길명(39) 조각가를 만났다. 필봉농악보존회 사람들호남 좌도농악을 대표하는 임실 필봉농악. 강진면 필봉리에서 보존해 온 이 농악은 지난 1988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11-마호로 지정된 최고의 문화유산이며, 지금은 임실을 널리 알리는 문화브랜드로 자리를 꽉 잡았다. 애초 농사일을 할 때나 명절 때 흥을 돋우기 우해 행해지는 향토음악이 바로 농악(農樂)이다. 필봉(筆峯)은 마을 뒷산이 마치 붓끝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필봉농악보존회(회장 양진성)는 필봉농악전수관 운영을 중심으로 임실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필봉전통문화체험학교 운영 등 필봉굿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여기 왔었는데, 생활을 하다보니 '풍물인'의 삶에 푹 빠져 들었어요. 대학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필봉굿을 전수받으러 왔다가 고 양순용 선생님으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받았거든요.” 지난 95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필봉마을로 들어 왔다는 필봉농악전수관 최호인 기획실장. 전수관의 실질적 사령탑인 그는 경남 창녕출신으로 경희대를 졸업한 인재다. 이런 그가 필봉에 뼈를 묻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꽹과리, 장구 가락도 좋지만 풍물에는 인생이 담겨 있어 이들 가락에 맞춰 푸지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 풍물을 하는 사람들은 풍물에 응축되어 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전수교육, 학교문화예술교육, 초중고전통문화체험교육, 풍물굿축제. 보존회가 하는 일은 참 많다. 이런 일의 중심에는 항상 최실장이 있었다. 특히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은 '시즌'인데, 전국각지에서 필봉굿을 전수받기 우해 모여드는 학생들로 발 딛을 틈이 업다. "이번 겨울만 해도 벌써 두 달 동안 1천 명이나 다녀갔어요. 전수생들이 여기 와서 우리문화와 가락에 푹 빠져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배워가기를 바라죠.” 필봉에는 필봉을 더욱 빛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남원출신으로 대학에서 소리를 전공한 김소희씨. 소리꾼이지만 소리공부를 잠시 뒤로 하고서 임실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군산출신으로 대학입학 합격증을 반납하고 부모님과 '치열한 싸움' 끝에 어렵사리 필봉에 입성한 김세미씨. 이들이 바로 그 숨은 주역. 비록 경력과 나이는 어리지만 일에 대한 각오만큼은 베테랑급이다. "제가 소리꾼일 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추임새정도지만 풍물 속에서 살아보니까 사람들과 부대끼 매력이 있어요. 필봉농악도 잘 보존하면서 이것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에 매진하는 이 시간이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할래요.” 하지만 소리꾼으로서 소리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나 보다. 그래서 소희씨는 요즘 아이들과 성인들이 소리를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전략을 구상중이란다. 지난해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그는 전수관에서 진행되는 전수프로그램에 민요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팔방미인이다. "저는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했는데, 같은 시기에 필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열심히 싸운 끝에 필봉행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어요.” 21살 세미씨는 필봉식구들 중 막내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 그녀가 체험학교에서 천연염색 강사란다. 하지만 딱히 나이가 인생의 연륜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이 부담스럽지만 어렵게 선택한 일이니만큼 기획과 운영에 관한 일을 잘 배워서 우리지역 문화예술보급에 보탬이 돼야죠.”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군의 재정이 여유롭지 못 한 탓일까? 1년에 3천만 원을 지원받고 있는데, 이 지원금은 몇 년 전 군에서 지어 준 건물대한 운영비란다. 최근 들어 문화관광부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선정이 돼 약간의 여유가 생겨 천만다행이지만 보존회는 "이것을 바탕으로 전수생과 지역주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줄 계획”이다. 전통문화의 보급과 확대에 종사하는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부담스런 모양이다. 이구동성으로 "그냥 바람이 불어 보릿대가 흔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런 몸짓으로 동화되는 보릿대춤”처럼 살고 싶단다. 두 팔을 쫙 벌린 필봉산이 품고 있는 것은 농악도 아니요 마을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바라는 '푸진 굿, 푸진 삶'이 아닐까?/정훈 문화전문객원기자(학예연구사, 전주역사박물관 교육홍보팀장)

  • 문화일반
  • 정훈
  • 2008.01.25 23:02

[당신이 행복한 사회 만듭니다] "나눔정신 부모님께 물려받았죠"

서울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던 가장이 어느 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전주에 내려왔다.어렵게 장만했던 서울 집은 지인에게 소유권을 넘겼고 전주에 내려올 당시 부인과 자신 단 둘 뿐, 가진 것이라고는 없었다.마흔 줄에 들어서 처음으로 붕어빵 기계를 만져봤고 밤낮으로 붕어빵 굽는 연습을 하다가 3일 만에 거리에 나왔다.전주시 서서학동 주민자치센터 옆에 붕어빵 노점을 차린 것이 지난 2006년 10월. 이때부터 이 남성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며 서서학동 주민자치센터에 매달 5만원 남짓을 보내왔다.끝끝내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이 남성은 “성은 정씨이고 나이는 올해 불혹”이라고만 소개했다. 남을 도울 때는 절대 자신을 밝히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에 이름만은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23일 오후 정씨는 몰려드는 손님에게 붕어빵을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붕어빵 8개에 1000원, 보통 붕어빵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손님 대부분이 어르신과 아이들인데 가능한 많이 나눠주고 싶어 저렴하게 팔아요.”일러스트와 3D, 캐드 등을 다루며 서울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할 당시에도 월급은 5~10%는 항상 기부를 해 왔다는 정씨의 원칙은 붕어빵 가게를 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정씨가 한 달에 파는 붕어빵과 어묵 등은 대략 한 달에 1000개, 150만원 상당으로 순익은 100만원에 못 미친다. 웹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월급의 1/4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덜 입고 덜 쓰면 두 부부와 18개월 된 아들, 세 식구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정씨의 얇은 와이셔츠 곳곳에 실로 기운 자국이 보였다.웹디자이너를 그만 둔 것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답답한 환경이 싫어서였고 전주에 온 것은 인척이 살고 있기 때문. 전주시 서서학동 인근에 월세로 원룸을 구해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기까지 고되기도 하고 후회할 법도 하지만 정씨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한다.붕어빵 가게를 닫아야 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정씨는 정읍의 한 양계농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작은 나눔은 계속된다.적은 벌이에도 정씨가 끊임없는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부모님에게 받은 가르침 때문. 정부기관에 다녔던 아버지 역시 매달 남모르게 나눔을 실천해 왔고 숨을 거두면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한다.정씨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게 단 한 가지 있어요. 재산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남을 돕는 정신을 보고 배운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했다.서서학동 자치센터에 매달 5만원 남짓 보내는 것 외에도 한 복지시설에도 적지만 후원을 하고 있다는 정씨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나눔의 정신을 아들에게 이어 주는 것이 소원”이라며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어려워도 나눔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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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상훈
  • 2008.01.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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