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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문화의 일부란걸 스크린 통해 알려주고 싶었죠"

"종교계는 그간 영화를 경계나 회피의 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영화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발견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죠. 딱딱하고 재미없는 게 종교라구요 ? 종교도 우리와 함께 숨쉬는 문화라는 걸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좋은 영화 상영회'를 이끌고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홍보국장인 서석희 신부(45·사진)다.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영화 평론가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매주 수요일 천주교 전주교구 강당에서 영화 상영회를 열고 있다.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 신앙과 관련된 영화여서가 아니었다.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진보해 나가는 세상을 통해 화해와 공존의 신앙을 바라보고 싶어서다. 본당 성당에서 영화가 상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델을 만들어볼 요량으로 시작했다가 여기까지 왔다."영화의 오락적인 면을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하면 그 영화의 가치를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타이타닉'이 종교 영화라고 생각해요. 엄격한 규율·예절이 요구되는 운명의 여인에게 누군가 자유를 선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교가 대중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내적 자유 아닌가요."영화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개인 관심사가 덧대여져 선택된다. '촛불시위''용산참사'로 공권력에 관한 일반 시민들의 분노를 지켜보면서 그는 이번 달엔 집단 심리 관련 영화를 골랐다. 한 개인이 집단에 소속돼 책임이 주어지면,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권위에 순응하는가 하는 문제를 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신부의 길도 집안 분위기로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이어졌듯 영화와의 인연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영화관을 운영해 영화관에서 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신문에 영화 포스터가 실리면 스크랩하고, 영화 노트에 줄거리를 따로 적어둘 정도로 유별났다. 다만 함께 즐길 사람이 없어, 늘 혼자 보러 다닌 덕분으로 영화 상영회를 통해 이제는 신자들과 나누라는 신의 뜻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철학은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는 있지만 정서가 없는 딱딱한 장르고, 신학은 술에 취해 갈지자를 걷더라도 형용사와 부사가 있는, 감성이 있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신학과 맞닿아 있어요. 저는 영화에 많은 부연 설명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넌지시 건넬 뿐이죠. 다만 신자들이 그 안에서 그리스도 참 신앙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이번 달 영화 상영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8일 오후 2시)''눈 먼 자들의 도시(25일 오후 2시)'이다.

  • 종교
  • 이화정
  • 2009.02.18 23:02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

87년의 생애를 신앙 속에서 살다가 16일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5월 8일(음력) 대구시 남산동 225-1번지에서 부친 김영석(요셉)과 모친 서중화(마르티나)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조부 김보현(요한)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집안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이 돈독한 소년으로 성장했다.박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천주교 복음을 받아들인 조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군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됐다가 감옥에서 아사(餓死)로 순교했다.옹기장이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란 탓인지 김 추기경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꾼이 되려는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과정인 군위공립보통학교 1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던 수환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친의 권유에 따라 세 살 많은 형 동환과 함께 성직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이에 따라 보통학교 5년 과정을 마친 김수환은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해 성직자로 나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의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일반 상업학교인 갑조(甲組)와 소신학교 과정인 을조(乙組)로 나누어 운영됐는데 김 추기경은 전 원주교구장 지학순(1921-1993) 주교, 전 전주교구장 김재덕(1920-1988) 주교 등과 함께 을조에 입학했다.김수환은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해인 194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 무렵 청년 김수환은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더 마음이 끌렸지만 1944년에 들어서면서 모든 상황은 변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아야 했다. 김수환은 이듬해 전쟁이 끝나면서 상지대학에 복학해 학업을 계속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해 초 서울의 성신대학(가톨릭대 신학부)으로 편입한 그는 4년 뒤인 1951년 9월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열두 살의 나이에 어머니한테 떠밀리다시피 소신학교에 들어갔던 김 추기경은 스물아홉 살에 사제품을 받고 경북 안동본당(지금의 목성동 주교좌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 추기경은 안동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53년 4월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비서, 대구교구 재경부장, 해성병원 원장, 그리고 1955년 6월 경북 김천 본당 주임 겸 성의중ㆍ고교 교장으로 전임됐다.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김 추기경은 뮌스터 대학에 적을 두고 7년간 그곳에 체류했다. 그 때 만난 요셉 회프너 교수에게 배운 '그리스도 사회학'은 김 추기경이 그리스도 사상에 기초한 인간관과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자신이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할 팔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고해성사와 미사는 물론 어려운 일만 있으면 김 추기경을 찾았다.'한국의 가족제도'에 대한 논문주제를 붙들고 씨름하던 그는 결국 박사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내며 교회 언론의 초석을 다졌는가 하면, 1966년에는 신설된 마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주교품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어쨌거나 '시골뜨기 주교'에서 일약 한국 천주교의 중심인물이 된 김 추기경은 이후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현대사의 한복판이 됐던 명동성당과 함께 한국사회의 영욕을 몸소 겪어야 했다.종교인이자 사회지도자로서 시대의 한복판에 섰던 김 추기경은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힌 지 6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은퇴 이후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북한선교를 위해 노력했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 종교
  • 연합
  • 2009.02.17 23:02

한국 가톨릭 대부 김수환 추기경 선종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께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서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 향년 87세.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 속 교회'를 실천했던 그는 노환에 따른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7개월간 투병 생활을 했으나, 마지막엔 스스로 호흡하면서 큰 고통없이 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약해져 위독설이 돌기도 했다.고인의 주치의였던 정인식 강남성모병원 교수는 생명 연장 장치 사용을 거부하고 선종을 대비했으며, 마지막순간까지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고 전했다.고 김 추기경은 의료진에게 선종 직전 안구 등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혀 선종 후 장기 기증을 위한 적출 수술을 했다고 알려졌다.고인은 추기경을 지내며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내비쳤으나, 추기경이라는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못했다고 고백할 만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었다.김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출생해 1951년 사제품을 받았고,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 추기경으로 서임된 고인은 1998년 격동의 30년을 천주교 수장으로 지내다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 선종에 따라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 장례 미사를 치르기 위해 명동성당에 마련될 빈소로 운구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 종교
  • 이화정
  • 2009.02.17 23:02

천주교전주교구 '용산 참사 희생자 시국 기도회'

"용산 참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사안이 아니란 뜻입니다. 정부 대응은 국민 정서와 한참 멀어져 있어요. 전주에도 재개발 지역이 있으며, 이런 참사가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시국 기도회를 통해 방관하는 우리를 반성하는 연대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지난 13일 전주 중앙성당에서 열렸던'천주교 용산 참사 희생자 시국 기도회'에 참여한 천주교전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송년홍 신부(41·사진). 그는 검찰이 배후세력으로 전철연을 지목해 몰아가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처사라며 희생된 5명 철거민과 경찰 1명 죽음은 아무도 책임 지지 않으려한다고 꼬집었다.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다는 것이 그의 주장. 송신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대표가 이런 참사를 보고도 사과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진실이 왜곡 돼 절박한 사람들이 오히려 범인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바로 보고, 서로가 책임지는 평화의 세상을 위해 연대하자"고 강조했다.천주교전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이 주최한 이번 '용산참사 희생자 시국 기도회'는 지난 2일 전국 대규모 미사에 이은 지역 순회 미사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추모꽃과 기도가 바쳐진 이날 기도회엔 문규현 김봉술 송년홍 신부를 비롯해 150여명의 신자들이 참여했다.

  • 종교
  • 이화정
  • 2009.02.16 23:02

전종훈 신부 "시국미사 배제 안 해"

지난해 광우병과 관련한 촛불시위를 이끌었던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전종훈 대표 신부는 23일 '용산 참사'와 관련해 정부의 처리 과정을 지켜보겠지만 설이 지난 후 시국미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배제하지않는다고 밝혔다. 전 신부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시국 미사 개최 가능성을 묻는 말이 나오자 "배제할 수 없다"고 답한 후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전 신부는 "지난 19-21일 열린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 총회 도중에 사고 발생 소식을 듣고 신부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이번 사태와 더불어 그간 정부를 지켜본 전반적 의견을 피력하고, (신부들이) 거기에 걸맞은 행동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논의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후 문제는 다음에 얘기해도 될 문제고 지금 현재는 상식을 벗어난 공권력의 남용이 문제"라며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하는데 아무런 사과도, 책임도, 반성도 없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전 신부는 "폭력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는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단순히 폭력 문제만 이야기한다면 물타기 밖에 안된다"고주장했다.

  • 종교
  • 연합
  • 2009.01.23 23:02

국내 종교 신도수 8천여만명

국내 각 종교단체들이 제출한 신도 수를 합산한결과 지난해 종교인구가 우리나라 총인구를 훨씬 웃도는 8천259만2천54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문화체육관광부가 19일 발간한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종교별 신도수는 불교 3천958만1천983명, 개신교 1천194만4천174명, 천주교 487만3천447명, 유교 1천18만5천1명, 천도교 10만명, 원불교 148만5천938명, 그밖의 종교 1천442만1천511명 등이다.문화부는 종교단체들이 제출한 신도 수와 비교하기 위해 통계청의 2005년 인구조사 결과를 함께 적시해 놓았는데, 당시 총인구는 4천704만1천434명, 전체 종교인구는 2천497만766명이다.통계청이 발표한 종교별 인구는 불교 1천72만6천463명, 개신교 861만6천438명, 천주교 514만6천147명, 유교 10만4천575명, 천도교 4만5천835명, 원불교 12만9천907명, 그밖의 종교 19만7천635명 등이다.이번에 발간된 '한국의 종교현황'에서 종교별 교단수는 불교 103개, 개신교는 124개, 천주교·천도교·원불교·대종교 각 1개, 그밖의 종교 38개 등 모두 270개로 나타났다. 파악되지 않은 교단도 240개 정도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됐다.교회나 사찰 등의 수는 불교 2만1천935개소, 개신교 5만8천404개소, 천주교 1천511개소, 유교 1천49개소, 천도교 108개소, 원불교 561개소, 대종교 22개소 등으로 집계됐다. 교직자수는 불교 4만9천408명, 개신교 9만4천615명, 천주교 1만4천597명,원불교 1천886명 등이다.문화부 관계자는 "종교현황 자료는 각 종교단체에서 제출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정확한 통계수치로 보기 어렵다"면서 "불교 신도는 이곳저곳 사찰에 두루 등록을 하는 종교적 특성이 반영돼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이고, 천주교는 세례를 받은 신도만을 집계하기 때문에 스스로 교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하는 통계청 조사보다 오히려 숫자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한국의 종교현황'은 종교별 교세와 사업현황 자료 등을 담고 있으며 1998년, 2002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발간됐다.

  • 종교
  • 연합
  • 2009.01.21 23:02

한국 개신교 신도 다게스탄行

한국 개신교 신도들이 러시아 내 위험지역인 다게스탄공화국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신변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 모스크바 한 외교 소식통은 16일 "44명의 목회자와 신도들의 러시아 입국 사실을 확인했으며 다게스탄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외무부에서 즉각 위험 지역에서 나오도록 경고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종교 단체를 담당하는 문화관광체육부 등 관련 부처에도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 한국대사관도 10여 명의 목사를 포함한 이들 목회자가 지난 11일 모스크바에 입국했으며 다음날 버스를 통해 다게스탄 등지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선교가 아닌 봉사활동이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1,2차 독립 전쟁을 치른 체첸공화국에 인접한 다게스탄은 최근 들어 카프카스 지역으로의 세력 확대를 시도하려는 이슬람 반군이 지방과 연방 관리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등 치안이 불안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이 지역에서는 반군의 공격을 받아 10여 명의 러시아 경찰이 숨지거나 다쳤다. 다게스탄은 과거 주변 강대국의 잦은 침략으로 약 30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교(수니파)를 믿고 있고 공식언어는 러시아어이지만 여러 토착어도 함께 쓰고 있다 이 지역은 우리 외무부가 현재 체첸, 북오세티야 공화국,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등과 함께 여행 제한 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 소식통은 "이들이 현지 교회 10여 곳을 방문하고 관광을 한 뒤 이번 주말 카프카스산맥 북동쪽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의 날치크로 이동할 예정이며 이달 20일부터 3개조로 나눠 귀국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활동을 조직한 선교단체 인터콥의 최바울 목사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방문에는 목사 등 목회자는 한 명도 없고 모두 신도들이며 다게스탄에는 22명이, 나머지는 투바공화국과 브랴티아 공화국으로 갔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92년부터 다게스탄으로 들어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며 "터키 쿠르드 자치지역이나 중국의 티베트.신장이 더 위험한데 왜 그 지역은 여행을 제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한국 대사관 한 관계자는 "그들과 연락 루트를 열어 놓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위험 지역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소식통은 "날치크에 있는 선교사를 통해 44명이 현재 다게스탄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에 나섰다가 탈레반에 납치됐던 봉사대원들이 소속됐던 분당 샘물교회 관계자는 "그 당시 우리의 봉사활동과 `인터콥'이란 선교단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일부에서 이를 잘못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샘물교회 봉사대원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 활동 중 탈레반에 납치돼 6주간 감금 생활을 보냈고 그 과정에 목사 1명과 봉사대원 1명이 살해됐다. 이들은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풀려났지만, 당시 사건은 외국선교,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와 구상권 등을 둘러싸고 전례 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이슬람권에 대한 공격적인 선교방식을 놓고 비판이 고조됐다.

  • 종교
  • 연합
  • 2009.01.19 23:02

[일과 사람] 천주교 전주교구 사제 서품받은 김영복 요셉씨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를 서품 성구로 삼아 예수님 말씀에 순명하며, 매일 매일의 삶 안에서 기적을 일구겠습니다."15일 '천주교 전주교구(주교 이병호) 사제·부제 서품식'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영복 요셉씨(38·사진). 늦깍이로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던 형의 영향으로 구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신앙이 가난을 되물림해준 것 같아 원망하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여정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며 웃었다.그는 일주일 피정을 통해 기도와 격려로 모든 것을 내주는 주교의 삶을 보면서 바닷갈매기를 떠올리게 됐다며 물고기를 먹은 뒤 다 토해내 새끼들을 성장시키는 바닷갈매기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제의 길과 같았다고 말했다.물론 그의 여정도 순탄하진 않았다. 성장하면서 집안이 조용했던 적이 없어 고민도 많았고, 지난해 부제 서품을 앞두고 인간적인 유혹이 몰려와 방황하기도 했다.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에게 살아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고.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하느님 말씀이 얼마나 보화같은 것인지 깨닫게 됐다며 보화를 혼자만 갖고 있으면 욕심쟁이가 되니까 살면서 자신있게 나누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직업이 목수인 예수가 어부인 베드로에게 엉뚱한 방법으로 고기를 잡으라는 명령은 납득할 수 없었지만, 한마디 불평 없이 순명했던 베드로를 보면, 그 어느 가르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수의 권위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이런 무조건적인 순명이 엄청난 기적을 몰고 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기도는 신부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라는 그는 끊임없는 기도로 답하겠다며 예수를 향한 그 여정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 종교
  • 이화정
  • 2009.01.16 23:02

땅보다 더 낮게 낮은 자세로…

15일 오후2시 전주 화산체육관.'천주교 전주교구(주교 이병호) 사제·부제서품식'은 체육관을 빼곡히 메운 신자들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조촌동 성당, 동산동 성당, 서신동 성당 등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체육관을 빙 둘러쌌다. 이날 서품을 받은 새 신부는 9명. 수품 후보자들이'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초처럼 세상의 빛이 되겠다'는 의미로 불 켜진 초를 들고 입장했다.수품 후보자들은 무릎을 꿇고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봉헌한 그리스도와 함께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뜻을 받들어 올렸다.이어 '부복(俯伏)'이 열리면서 흰 옷을 입은 후보자들이 제단에 엎드렸다. 땅보다 더 낮게 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몸을 바닥에 묻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이 자아냈다.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아들의 결혼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고통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사제 서품식이 끝나자 부모들은 웃었다. 자신보다 더 아끼는 아들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눈물 젖은 웃음이었지만, 자식의 구도자의 길을 기꺼이 축복했다.이날 예수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이들은 김영복 요셉(영등동 성당), 김창연 아우구스티노(신태인 성당) 송현석 요한보스코(조촌동 성당), 이가진 안드레아(문정 성당), 이준형 알비노(서신동 성당), 이상욱 안드레아(숲정이 성당), 소명섭 바오로(동산동 성당), 유정현 대건 안드레아(우림 성당), 하태진 스테파노(황등 성당)씨.신학생 김회인 바오로(숲정이 성당) 이정현 루카(노송동 성당) 두성균 바오로(신동 성당) 윤태종 토마스(나운동 성당) 김태환 베드로(조촌동 성당) 송광섭 클레멘스(평화동 성당) 최요왕 사도 요한(둔율동 성당)씨는 부제 서품을 받았다.

  • 종교
  • 이화정
  • 2009.01.16 23:02

조계종 표준 금강경 첫 출간

불교 조계종이 교리의 근거로 삼는 금강경의 표준본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고 20일 봉정식을 한다. 부처의 열반 후 500여 년이 지나 인도에서 편찬된 대승 경전인 금강경은 한문본은 400년대 구마라집과 현장에 의해 각각 소개된 뒤 한문으로 된 번역본만해도 5권에 이르고 한글 번역본도 100여 개가 나와 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는 전문가들로 편찬실무위원회를 구성, 지난 2년간 금강경의 한문 번역본들을 비교하고 금강경 편찬 당시의 산스크리트어와 대조하면서 원뜻을 바르게 새기는 한편 여러 개의 한글 주석서도 검토해 용어를 현대어로 맞추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 내놓은 금강경 표준본은 한글과 한문을 한 권에 넣어 묶은 것으로 약 100쪽에 이른다. 금강경은 불교의 여러 경전 가운데 하나로 원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금강석 같은 지혜로 깨달음(반야)의 세계에 이르는(바라밀) 길을 알려주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불학연구소 관계자는 "종단 차원에서 표준본을 내놓은 것은 앞으로 똑같은 경전을 읽고 배운다는 뜻"이라며 "표준본을 여러 사찰과 신도에게 보급해 뜻을 바로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불학연구소는 이번 표준본 편찬을 위해 그간 개최한 공청회와 각종 세미나의 자료를 모은 '금강경 편찬관련 학술 자료집'도 함께 발간할 계획이다. 한편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리는 표준 금강경 봉정식에는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교육원장 청화 스님 등이 참석하며, 종정 법전 스님이 출간을 기념하는 법어를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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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3 23:02

[문학] 초기 기독교는 어떤 모습이었나

·개신교인들이 교회의 모범으로 삼는 사도들의 초기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역사적이고 과학적 관점에서 다룬 학술 서적이 잇따라 나왔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55명이 참여해 함께 쓴 '역사 속의 기독교'(주명철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와 독일의 저명한 쌍둥이 신학자인 슈테게만 형제가 쓴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손성현ㆍ김판임 옮김 동연 펴냄)가 그것. '역사 속의 기독교'는 로마 제국 당시 예수와 관련한 현존 기록은 유대인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 간략히 서술된 사실 외에는 사료가 드물다고 전하며 당시의 시대 상황과 풍습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또 기독교인에 대한 로마 황제들의 가혹한 박해가 "흑사병과 고트족의 침입, 자연재해 등 상황의 책임이 기독교도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칙령을 내리면서 시작했다"고 책은 분석한다. 특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통일성과 정통성을 확실히 보장해 줄 공통분모를 발견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아울러 '역사 속의 기독교'는 중세 십자군을 통해 기독교가 개화한 과정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풍속과 철학, 문학에 반영된 기독교의 모습을 역사학자들의 시각으로 전한다. 480쪽. 2만2천원.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는 예수 이후 사도들이 세운 '교회 공동체' 또는 '교회'로 번역되는 '에클레시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에클레시아가 등장한 도시적 환경과 가정에 투영된 모습, 신앙 공동체의 사회적 구성, 상위 및 하위 계층에 미친 영향 등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또 당시 기독교도가 어떤 이유에서 사회적으로 갈등을 빚었는지 분석하면서 "로마 제국 내 모순으로 생긴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유대인 또는 유대인의 대체물인 기독교인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고 이것이 박해의 실상"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초기 공동체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당시 다른 조직이나 사회와 비교해 더 평등했다는 점을 부각하는 여성주의적 해석을 강조한다. 792쪽. 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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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09.01.05 23:02

불자들 "성철 스님 가장 존경"

불교 신도들은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성철 스님을,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스님으로 지관 스님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 전문지인 법보신문과 월간 '불교문화'는 중앙승가대 김응철 교수에게 의뢰해 조계종의 공인 신도 교육기관인 불교교양대학 20곳의 재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는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19.4%)이 뽑혔고 원효(12.6%), 법정(6%) 스님이 그 뒤를 이었다. 1999년 입적한 일타(5.3%) 스님이 4위에 올랐다.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스님으로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26.2%)이 1위에 오른 가운데 법정(8.2%) 스님이 2005년과 2006년에 이어 이번에도 2위를 지켰다. 지난해에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4.3% 지지율로 3위를 차지했다. 영향력이 큰 비구니 스님으로는 방송 출연이 잦은 정목 스님(5.5%)을 꼽았고 전국비구니회 회장 명성 스님은 4.9%로 2위에 올랐다. 재가불자 가운데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6.8%)이 1위를 차지했으며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2.6%),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박광서 교수(2.0%), 동산반야회 안동일 이사장(1.8%)이 그 뒤를 이었다.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정치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9.3%),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4.9%), 이계진 의원(2.7%)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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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02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