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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휴가, 유배 그리고 역사의 발자취

지난 주말에 정말 의미 있는 휴가를 다녀왔다.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떠나는 오붓한 여행이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세월을 음미하면서 마음속에 남는 감회는 그렇게도 클 수가 없었다.시원하게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이왕 서해안 고속도로라는 이름처럼 도로를 건설하려고 했으면 가끔 우측에 해안가 마을과 바닷가가 보여야 할 텐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이런 면에서 보면 서해안 고속도로는 잘못된 이름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서해안 가까운 고속도로라고 해야 맞다. 아마도 낭만 보다는 기능적인 면과 실용성이 더욱더 우선이었을 것이고 공사비용을 아끼느라고 그냥 내륙 쪽으로 공사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영원히 존재할 도로라고 생각하면 그런 면이 아쉬움으로 남았다.작지만 큰 '우리나라'그러나 도로주변은 짙은 녹음이 온 산하에 어우러져 있고, 흰 구름들은 그 중턱을 휘감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를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큰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목포를 지나서 도착한 곳은 땅끝 마을로 유명한 해남이었다. 여기서 먼저 대흥사(대둔사)를 둘러보았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고 산세의 수려함에 과연 이름난 절의 면모를 갖추고 있구나 했다.첫날은 그쯤 그렇게 지나갔다.다음날 우리는 과거 역사의 현장 속에서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 종가인 녹우당과 강진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터에서 시작되었다.낮은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녹우당은 비전문가인 필자가 보아도 집터로서 과연 위치한번 잘 잡았구나!하는 탄성이 나왔다. 전시실에 있는 윤선도와 윤두서(1668~1715)의 역사적 자료들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고산 윤선도는 그의 일생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는 불우한 생을 살았지만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많은 문학작품을 남김으로써 문학적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유배는 역사의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으로서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린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이다. 그는 1693년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세상이 어지럽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에 바탕을 둠으로써 사실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한 묘사가 특징이다.하지만 그가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동국여지도와 일본지도, 그리고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저서를 보면서 쉽게 이해가 된다. 그는 화가이면서도 대표적인 실학적 학문에 취향을 가진 학자이었던 것이다.이어서 방문한 강진의 정약용 유배터는 더욱더 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어떻게 그는 컴퓨터?복사기도 없던 시절에 유배생활이라는 제한된 조건하에서 참고문헌 등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을 텐데 500여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고산은 벼슬기간보다도 은둔과 유배의 세월이 더 많았다. 다산은 유배생활과 형제들이 천주교와 관련되어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통함과 한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가 없었을 것이다.그들에게는 이처럼 힘든 인생이 이율배반적으로는 역사의 위대한 업적이 되어서 우리 앞에 놓여있다.만일 그들이 유배생활을 하지 않고 한양의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보냈어도 그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그렇게 보면 참으로 묘한 것이 인생이다. 고난과 함께 한 개척정신, 시련과 함께 한 극복 노력, 좌절과 함께한 승화정신이 오늘날 그들을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휴가는 공부 한번 잘했다./두재균(전북대학교 제14대 총장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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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8.09 23:02

[전북칼럼] 새로운 산업군을 형성할 때

우리나라는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대부분인 97%이상을 불행히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에너지를 수입하는데 376억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는 연간 국가 수입 규모의 3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비중이다.석유 한방울 나오지 않는 우리로서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린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현재 원자력 발전소가 국내에는 16기 설치돼 있어 총 공급 전력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는건 주목할 일이다. 이에 따른 수입 대체 비용으로도 41억불 이상이 나 돼 외화 지출을 줄이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향후 원자력 활용 삶의 질 좌우우리나라는 일찌기 원자력 발전기술을 해외에서 도입하였으나, 그동안 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원자력 발전기술의 자립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 일환의 하나로 한국표준형원전(KSNP)을 완성하여, 오늘에는 플랜트를 북한에 공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는 1억 1,500만불의 증기 발생기를 수출하는 원자력 강국으로 부상했다.그러나 원자력기술은 이러한 원자력 발전이외에도 암환자의 절반이상을 원자력으로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있고, 종자개량과 식품보존, 비파괴검사나 정밀측정, 성수대교 안전진단, 환경오염처리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의 복지사회에서는 방사선이나 방사성 동위원소를 얼만큼 어떻게 이용해 나가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러한 RT(Radiation Technology) 기술개발에는 투자여건이 충분치 못하여 아직은 미흡한 수준에 있다.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RT기술의 개발과 산업화에 집중하여 미국은 GDP의 1.5% (약 200 조원)를, 일본은 1% (약 80 조원)를 RT 산업으로 창출해 내고 있다.현재 우리나라는 방사선 치료기기, 계측기기, 방사선발생장치, 분석기기, 방사성동위원소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RT산업의 해외 의존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를 극복하고자 정부는 지난 해 7월 원자력 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보다 RT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관련 산업을 국가 주요산업으로 육성 하여 2010년까지 이 분야에서의 매출이 원자력산업 전체의 9.1%에서 30% 수준에 이르는 기본 계획을 확정한 상태다.현재 정읍에 설치를 준비하고 있는 첨단방사선센터가 2005년 완공되면, 전문직연구원 200명을 포함해 적어도 500명 이상의 고용효과가 이루어지게 될 전망이다. 또 관련산업이 연이어 들어서 전체적으로는 1만명 이상을 고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더욱 고급 인력들이 전북으로 전북으로 몰려오게 된다. 이같은 시설과 산업들이 정착되는 2010년경에는 전북을 중심으로 우리의 RT 산업은 약 2조원 이상의 산업경제효과도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마침 전북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여 생물산업과 메카트로닉스, 반도체산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으로 있는 바, 이들 산업의 육성과 함께 RT기술을 연계시켜 나가게 되면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질 것 같다.전북 여건 충족 새전기 맞아이렇게 되면 전북지역은 RT의 선두주자로서 동북아 RT의 Hub로 성장하여 세계속의 전북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지난 수십년 농도 전북으로 긍지를 가졌던 전북은 산업화의 대세에 본의든 본의가 아니었든 밀렸던게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인구는 감소하고 경제는 위축돼 도세가 지금은 전국 자치단체 중 최약체로 허덕이고 있다.뒤늦게나마 RT 산업이 전북에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을 수있을 것이다. 전북 중흥의 기폭제라 할까.도민 모두가 이 RT 산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이제 전북지역에도 새로운 산업군을 형성해 나갈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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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7.19 23:02

[전북칼럼] 세계화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지난 월드컵이 단순히 다리로 하는 축구잔치만이 아니라 국가간, 또는 계층간의 가치관, 행동, 관습 등의 이질요소가 하나로 통합되는 문화오케스트라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라운드 안팎을 통해 자국의 생활양식과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도 확신하게 되었다.그동안 유럽 국가들의 변두리에서 소도구로 들러리만 서오던 변방의 나라들이 선전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상당부분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축하게 된것도 하나의 수확이자 할 수 있다. 이를 기화로 우리 주변에선 세계화란 말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따지고 보면 이미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만큼 우리 생활과 의식전반에 침투된지 오래이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해외로 뻗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더욱 가속이 붙게되었다.선택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그러나 세계화란 연일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고 활발한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오대양 육대주에 유학생과 이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교수는 글로벌화의 핵심이 열린 마음(open mind)과 네트워크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열린 마음이 없는 글로벌화는 남의 잔치의 들러리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이나 구호로는 글로벌화를 외치면서도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국수주의 또는 배타주의의 늪에 갇혀있는 경우를 왕왕 목도하게 된다. 이제 열린 마음으로 세계로 나가고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우리 모두는 지난 월드컵때 온통 하나로 엉켜서 태극기를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젠 엉킨 그 하나가 다시 나뉘는 슬기가 필요하다. 움쿠렸던 그 하나가 열, 스물, 백으로 나뉘어 이웃의 가슴에, 세계의 가슴에 파묻혀야 한다.지연, 학연, 혈연, 정파, 민족 등 하나로만 웅크리고 있으면 우리가 어렵게 이룩한 세계의 축제는 한낱한여름 밤의 꿈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만년 역사와 전통문화를 우리가 아무리 외쳐대어도 다른 나라의 양질의 문화와 극고 받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독야청청으로 끝난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어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꽃」천연.그동안 널리 읽혀온 이 시는, 식물도감에 있는 특정화훼(꽃)를 위해 쓰여진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또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기호 이상의 특별한 관계맺음이 일어나는 것으로, 그 관계맺음은 바로 내 안에서 하나의 의미, 하나의 사랑으로 승화되게 되어있다.누가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내가 먼저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화해와 사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며, 나아가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다른 나라와 관계 맺음 중요작금 세계화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분야는 두말할 나위 없는 정치가 될 것이다. TV에서 뉴스시간만 되면 재빨리 채널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만치 정치에 식상한 것이다. 한 국가사회의 변화에는 2인3각 경기처럼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지 어느 특정분야만으로는 안된다.끝으로 세계화라 해서 그에 막무가내로 편승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내것을 송두리째 바치고 동화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지역브럭화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국가함몰이나 해체가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극고 받아들이는 다원주의, 민족주의안세서 기초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는 사실이다./허소라(시인군산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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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7.12 23:02

[전북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는 가야 한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과 아름다운 신화를 남기고 떠나야 한다.그가 처음 우리나라에 와서 프랑스 그리고 체코와의 경기에서 모두 5-0으로 패했을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오대영(5:0) 감독이라고 부르며 비아냥 거렸다.그가 무엇을 아느냐. 돈 낭비다 하면서 거세게 비난했었다.그러나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4강 신화를 창조하면서 그가 영웅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 "희동구"라는 한국이름을 주고 명예 서울 시민증, 명예박사를 수여하면서 극찬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비난과 칭찬이 너무 극명하다.못할 때 참고 기다려 주며 비난을 아낄 줄 알아야 하고, 잘할 때 칭찬해주어야 하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우리는 한일 월드컵과 히딩크감독이라는 사람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으며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공감대 형성의 좋은 기회필자는 한국과 폴란드가 처음으로 시합을 갖던 날 30여명의 전북대학교 총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곁들이면서 TV중계를 보았다.일부러 그 날을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식사약속을 한 것이 그렇게 되었다.필자가 학생대표들을 만난 것은 향후 학교 당국과 학생회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학교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보자는 의미이었다.그러나 우리는 학교이야기는 조금 밖에 못하고 한 몸이 되어서 우리 국가 대표팀을 응원했다.경기시간내내 두손을 쭉 펴면서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을 계속 외쳐 댔다. 누가 학생인지 누가 앞으로 대학경영을 맡을 책임자인지 구별 자체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좋았고 즐거웠다. 우리나라가 2:0으로 승리하고 경기가 끝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형언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구" "여러분 나 믿지"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 "열심히 해 주십시오"고작 몇 마디 안 되는 대화이었지만 서로 눈빛만 보아도 느낄만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서로를 믿고 대학발전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는데 있어서 그 어느 방법보다도 좋았다고 생각했다.그가 남긴 교훈을 간직하자그날부터 시작된 월드컵에 대한 온 국민의 응원열기는 대단했다.수십만에서 시작된 거리응원 인파는 독일과의 경기가 열리던 준결승전에는 7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응원을 펼쳤다.온통 거리에는 붉은 색 상의를 입은 사람들로 붐볐고 여기에는 남녀노소도 없었다. 필자도 그 날 전북일보사 전광판이 바라다 보이는 도로에서 학생들 틈속에 끼여서 열심히 응원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 할 정도로 그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다. 질서 정연한 붉은 악마들의 응원모습과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섹션은 우리들의 가슴을 애국심으로 뭉클 끓어오르게 했다.이제 월드컵은 끝났다. 지도자 한 사람이 주는 의미도 깨달았고 서로 다른 집단이 함께 응원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도 배웠다.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 히딩크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축구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선수선발에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을 배제하고 감독의 소신 있는 결단이 어떤 결과를 맺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테스트하자, 그리고 과거 모습을 되풀이하지 말자.히딩크! 그가 남기고 간 교훈을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저력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리고 우리를 지켜봐 달라.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자./두재균(전북대학교 제 14대 총장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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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7.05 23:02

[전북칼럼] 월드컵과 6.25

죠지 오웰은 한 민족의 정체성에 있어서 연속성(continuity)이란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다. 어른이 된 사람은 어렸을 때와 매우 다르지만 그 둘은 역시 같은 사람이란 이야기이었다.이즈음에 특히 오웰의 이 말이 자주 생각나는 것은 월드 컵 행사를 계기로 느끼는 축구의 열기 때문이다. 필자가 35년 전 처음 영국을 왔을 때에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 "아 축구를 잘 하는 나라!"라는 말을 하던 기억이 난다.필자가 이 곳에 오기 전 해에 북한의 축구팀이 처녀 출전을 하여서 놀랄만한 성적을 올린 일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이 즈음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를 받느라고 바쁘게 지낸다. 우선은 월드 컵 행사의 조직이 훌륭하게되었고 개막식의 축전도 매우 의미 있으면서도 사람의 이목을 끌만큼 화려하게 치루었으며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팀이 놀랄 만큼 경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참전용사들 의미있는 행사세계가 주목하는 주요 경기를 주최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되는 한국은 반세기전의 한국과 같은 나라이면서도 다른 나라인가? 필자가 받는 축하와 인사 중에는 약간 다른 것도 있다.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성이 있는 축하들이다. 공교롭게도 월드 경기가 열리고 있는 시기가 6월이고 이 달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 회(British Korean Veterans Association)가 반세기 전을 회상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벌리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한국전쟁에 UN군 측에서 참여했던 모든 나라가 다 그러하겠지만 영국의 경우에는 협회 차원에서도 활동이 활발하지만 회원들 사이에도 유대감이 깊어서 유독 여러 가지로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참전 용사들은 이제 모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지만 자신들의 젊은 시절에 이름도 잘 모르던 나라에서 큰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의 깊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로는 회원 수가 4,000여명이나 되고 지방 별로 결성된 지부가 전국에 60 여 개나 있다.이들은 각 지부별로 연 1회 이상 지부 기를 교회에 바치는 기 헌수식(Standard Dedication)을 행하고 시가 행진 등의 행사를 열뿐만 아니라 회원 가족 간의 친목 리셉션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 물론 중앙에서는 따로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있는 쎄인트 폴 교회에 모여 기념식을 갖는다.이 때에 의식을 주관하는 목사님도 유명한 글로스터 연대의 솔마리 전투에 종군 목사로 참전했다가 오랫동안 북한에서 포로생활을 겪은 분이다. 이 협회는 한국 교민회나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에도 적극 참여하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예전의 부대 기를 앞세우고 구령에 맞추어서 행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도 감회에 젖게 한다.이들 중에는 더욱이 과거에 싸웠던 상대방에게도 미움과 원한보다도 평화를 기원하는 분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는 영국이 국민 개병제(national service)를 시행하던 시기이어서 직업 군인들 이외에도 영국 사회의 도처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만난다. 더욱이 흥미 있는 것은 이제 참전 용사들의 2 세들의 진출도 간혹 눈에 뜨이는 점이다.최근에 한국에 해군 함장으로 참전했던 분의 아드님이 정부에 요직에 임명된 일도 있다.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들이 한국이 개최하는 월드 컵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발전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성취가 바로 자신들의 과거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한국 비약적 발전 보람느껴며칠 전에 이제는 저명 인사가 된 참전 군인 한 분을 만났더니 유별나게 월드 컵에 관한 덕담과 축하를 하기에 그것이 반세기 전에 우리를 위하여 싸워 준 분들의 덕택이라고 인사 치레를 하였다. 그 분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었다:"대사 님! 반세기 전에 우리가 한국을 위하여 적은 기여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 것에 대하여 충분하고 남을 만큼 보답을 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이룬 성취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만약 전쟁 이후에 한국이 불행한 길을 걸었다면 우리도 얼마나 비참한 느낌이었겠습니까. 월드 컵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수 많은 해외 전쟁을 치루었지만 한국 전쟁만큼 보람이 있는 참전도 드문 예이다.'"필자는 한 마디를 더 보태었다."그러나 우리들 중에 우리가 그 사이에 이룬 발전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분은 다시 한 마디 답을 하였다."아마도 자신에 대한 그런 비판적인 태도가 한국 발전의 비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에 대하여 약간은 관대한 점수를 주어도 됩니다."/라종일(주영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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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28 23:02

[전북칼럼] 떠나는 전북에서 돌아오는 전북으로

'若無湖南是無朝鮮' 즉, '호남이 없다면 조선도 없다'는 뜻이다.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은 이와 같이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예전부터 전북이 호남의 행정, 경제, 문화 등의 중심이었음을 엿 볼 수 있다.그런데 해방이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전북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올 1분기의 도내 인구유출이 3만3천명으로 전국에서 제1위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한때 3백만명으로 불리던 전북인구가 급기야 2백만마저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전북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여, 지역경제의 침체, 중앙정치영향력의 왜소화, 사회ㆍ문화적 공동체의 축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산업화의 낙후는 실업율 증가와 인구 감소를 촉발하고 있으며, 전북의 경제력마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권인 2%대로 전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올1분기 인구유출 전국1위또한 인구 감소문제는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열악해 대부분의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전북의 도세(道勢) 약화와 지역경제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교부금 삭감은 물론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의 직제가 축소되는 등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전북의 인구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다름아닌 특정지역에 편중된 투자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60년대 후반 영남과 수도권에 사회간접자본투자와 산업단지 조성 등이 집중되어, 우리나라 경제의 기본축을 형성한 반면, 전북의 주력 산업인 제1차 산업은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져 경쟁력 약화되었다.더구나 90년대 이후 농업시장의 개방은 생산성 약화와 이농현상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이때문에 이농인구와 취업문제,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문제, 척박한 기업경영환경 등이 전북을 떠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해 주고 있다.최근 전북의 인구 감소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인구가 증가하려면 중앙정부차원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강력한 의지와 정책의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각종 정책이 입안되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미봉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며, '지역균형발전특별법' 또한 국회에서 입법화되지 못하고 계류중에 있다. 이로 인해 수도권 지방 공장이전 문제와 국가기관의 지방이전 등도 논의만 무성할 뿐이다.도민 누구나 인구 감소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마냥 속수무책으로 있는 다면 전북인구의 유출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기간산업의 지방분산 선결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먼저 국가기간산업의 지방분산을 과감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수도권 기업의 도내 이전에 따른 인센티브제도의 도입 등 적극적인 지원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인구의 유입을 도출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예컨대,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과 이농현상 예방, 지방대학 육성, 전북으로 주소 옮기기 운동 등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특히 사회지도층인사들이 옛 선조들의 낙향(落鄕)정신을 계승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제 떠나는 전북에서 돌아오는 전북으로 만들어 지역경제발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온 도민과 정치권, 지방자치단체, 상공인, 사회지도층들이 다 함께 발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송기태(전주상공회의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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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26 23:02

[전북칼럼] 地方格을 높이자!

지난달 동티모르가 독립되면서 지구상의 가족이 190개로 늘어났다. 지구가족을 식구(食口)로 비유하면 싱가폴스위스와 같이 잘 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국독일과 같이 중요한 나라가 있고 또 이디오피아콩고 처럼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이런 나라에는 그 나라에 맞는 국격(國格)이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몸을 체력(體力)과 체격(體格)으로 나누듯 나라도 국력(國力)과 국격(國格)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新聞) 신문의 아라이 준이치(新井淳一) 편집국장은 국가의 격을 나타내는 국격(國格)에는 3가지의 격이 있다고 지적하였다.힘과 매력 있어야 발전첫째는 세계에서「호감(好感)」을 받는 나라이고, 둘째는「힘」을 통해「자립(自立)」하는 나라로 강하고 매력적인 나라(strong and charming country)이며, 셋째는 힘보다는 매력을 강조하여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반짝 반짝 빛나는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느 격에 해당할까.국민의 정부는 지난 4년간('982001) 엄청난 구조개혁과 기술개발에 집중하여 IMF 당시 39억불인 외환보유고가 세계5위인 1076억불로 늘어났고, 지난 35년간('62'97) 867억불의 무역수지 적자가 841억불의 흑자로 바뀌어 외국언론이나 투자기관에서도 우리를 모범국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과학기술 경쟁력 평가에서도 10위로 평가받고, 기초과학 수준 또한 세계 14위로 성장하여 이젠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꽤 커졌다. 이런 연유로 지금쯤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하나쯤 나올 만하다고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우리가 노벨상에 담겨있는 신뢰와 존경의 품격을 얻기위해 노벨상에 도전하는 것처럼, 국격(國格)이 높아지도록 국가위상을 키워 나가야 한다.국격(國格)의 개념을 지방에 적용할 때 이를 지방격(地方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지방격은 준이치 편집국장이 지적한 3가지 격에서 첫번째 것은 전북지역에 아주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본래 호남지역은 농수산물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마음씨 착하고 인심도 좋으며 친절하지 않았던가.그러나 두 번째 조건은 전북경제가 자립수준에 이루지 못하고 인구수도 감소하는 추세에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편이며, 세 번째 것 역시 미진한 편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전북이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힘과 매력을 함께 키워 나가야 할 것 같다.과학 인재양성에 투자를이런 점에서 전북지역은 우리와 비슷한 여건을 갖추었으나 이공계 과학기술인력이 70%인 필랜드와 외국인 투자유치나 과학기술자 초빙활동이 가장 활발한 아일랜드를 벤치마킹하여 전북의 지방격(地方格)을 높이는 데 주력해 나가야 하겠다.전북지역에는 훌륭한 대학과 참신한 인재가 많이 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인재가 많이 나와 경제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사회를 이끌어 가도록 지원해 나가야 하며, 아시아의 두뇌허브로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국제화에 필수적인 영어교육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 같다.최근 부산지역에서는 부산과학고를 과학영재학교로 지정하여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과학영재고는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될 계획인 만큼,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그리고 창의적인 벤처정신을 북돋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알찬 기업을 일궈내 지역의 고용문제까지도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한 차원 높은 변화를 추구해나가면 전북지방의 地方格은 가장 활기차고 인정이 넘치는 대표격(代表格)으로 성장할 것 같다./유희열(과학기술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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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21 23:02

[전북칼럼] 농민이 존경받는 사회를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6월이다. 산도 대지도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한 이 좋은 계절에 우리는 모처럼 각종 게이트와 같은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고 일컬어지는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 환호하며 시름을 달래고 있다.그러나 잠시 눈을 돌려 농촌 현장을 바라보면 지금 한창 농번기로서 농민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모내기, 밭갈이 등 농사일에 눈,코 뜰새없이 분주한 것을 볼 수 있다.물론 농촌도 예전에 비하여 농번기라 하더라도 부지깽이도 한몫을 한다고 하던 시절만큼 그렇게 지독히 분주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바쁜 일이 농사일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는 농사일이야말로 적시성과 육체노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도 우리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사회가 급속히 도시화되면서 어느새 차츰 농촌을 잊고 지내기가 쉽다. 아무리 농촌이 분주하더라도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레저를 즐기지만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농촌에 들려 농민들과 보내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오늘의 현상을 탓할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다만, 이 시간도 뙤약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일에 매달리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를 한번쯤 생각은 해보면서 이 6월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로 우리 사회에서 노력과 사회에 끼치는 공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농민들이 받는 대우는 너무도 보잘 것이 없다. 하기야 농민이 주류를 이루던 전근대 사회에서 조차 농민들이 우대받은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정책적으로 농민을 우대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적으로는 농민은 항상 수탈과 천시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농경사회가 물러가고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화 사회에 이른 오늘날에는 농민의 지위를 논하는 것 조차 구차스러운 일일지 모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농민은 좀 심한 표현을 빌린다면 아예 망각지대에 놓여있는 것 같은 의구심이 들만큼 우리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정책당국자들도 도시민들도 입만 열면 하나같이 농촌이 잘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진실로 농민을 존경하고 농민의 지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걸핏하면 농민들을 가리켜 촌놈이니, 좀 소박한 사람을 가리켜 촌티가 난다느니 하면서 농민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말을 하기 일쑤이니 농촌 총각은 결혼도 못하고 너도 나도 농촌을 떠나 도시인 행세를 하며 살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필자는 농촌 출신으로 지금도 농촌에 가까운 도시에 살면서 가끔씩 고향집에 홀로 사시는 모친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 때가 있다. 거드는 농사일이라야 논농사는 친척에게 맡기고 조그마한 밭뙈기를 가꾸는 일을 돕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때마다 농사일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일부 도시인들은 주말 농장 같은 것에 참여하면서 자녀들에게 농사일과 근로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자연을 벗삼아 건강관리에 도움을 얻기도 하는 모습도 더러는 볼 수 있고, 농촌의 전원풍경을 보며 다정다감한 정서를 느낀다고 하지만 사실 농민들은 그럴 여유도 없이 오늘도 뙤약볕 아래에서 살을 태우며 우리의 먹거리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농민들도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농업이야말로 생업적 차원으로만 볼 수 없는 것으로 농촌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농민은 우리의 기본적 식생활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직업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직업과 달리 농업은 좀더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정부 당국자들은 농촌을 위해 지속적으로 좋은 정책을 개발하여 시행해야 하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우리 일반 국민들도 농민을 존경하고 농민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따라서 내 직장에 햇볕으로 얼굴이 검게 그을린 농민이 볼일이 있어 찾아오면 그 누구보다도 더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주고, 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이 조금 올랐다고 너무 투정 부리지 말고, 심지어 식당이나 주점에서도 어쩌다 농민이 손님으로 들어오면 가장 친절하게 모셔서 정말로 농민이 존경받고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그리고 농촌 총각과 결혼하는 여성에게는 어떤 정책적인 특별한 인센티브라도 주어서 농촌 총각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명감을 가지고 농촌에 정착할 수 있게 하자. 그렇게 될 때 농촌도 살고 도시도 더 잘살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전희종(전라북도 교육연수원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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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15 23:02

[전북칼럼] 천국과 지옥의 거리

지금 지구촌은 온통 한일 월드컵으로 들끊고 있다. 과거 어느 대회보다도 절대 강자가 없는 속에서 선수들은 한 손에 천국행, 다른 한 손에는 지옥행 티켓을 쥐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하고 있다.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가 처녀출전한 세네갈에게 덜미를 잡히더니 끝내 골대만 다섯차레 마치고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밖에도 우승예상국들이 약체로 평가되는 나라들에게 번번히 발목을 잡히곤 하였다.그럼에도 이 와중에서 우리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비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던 미국이 예상을 뒤엎고 우승후보인 포르투갈을 꺾었는데도 부시대통령은 선수단앞으로 장하다는 메시지하나 보내지 않았다.그런가하면 프랑스가 덴마크에게 패하여 예선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는 순간, 세계가 경악을 보이는데도 인천구장에 나온 프랑스 응원단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는 사실이다.이 두사례는 결국 천국과 지옥사이를 너무 극단으로 떼놓지 않으려는 그들 나름대로 다져진 문화축적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히딩크감독이 우리 대표팀을 맡자마자 국제경기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시합에서 프랑스팀에 5:0으로 패하자 단번에 그의 사생활에 시비를 걸었고 능력의 한계를 내걸며 나락으로 밀어뜨린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폴란드를 꺾고 월드컵 사상 첫승을 안기자 일약 영웅으로 떠올라 히딩크식 리더쉽을 내세우며 천국행 고속열차를 태우고 있다.매사 그리고 매번 승리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렇듯, 날씨가 그렇듯 어찌 매번 축배를 들고 나날이 청명한 날씨만 볼 수 있겠는가? 과거 프로복서들이 그랬듯 지금도 해외에서 고분분투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다. 어쩌다 한번 우승이라도 하면 TV에서는 그의 부모와 친인척은 물론 학교시절의 담임선생과 친구 등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줄줄이 등장해 분장사가 된다.다행히 그 선수가 계속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금방 외면당하고 만다. 한 때 우리나라 스포츠신문들은 거의 박찬호기사로 도배를 하다시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계가 있는 법, 7:0을 못지키고 무참히 강판당했을때 그곳 언론들은 거의 민족차별에 가까운 혹평을 서슴치 않았다. 그순간 그는 고독의 절정에서, 자신을 하늘높은줄 모르게 떠받쳐주고 있는 고국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떠올리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이다.이제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했던 시절, 근대문학사에서 시보다 차라리 시인을 더 중시했던 전통윤리의 배면을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천국과 지옥의 낙차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우승했다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설혹 졌다해도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실망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각설하고, 오늘밤은 비야흐로 한국 축구가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를 놓고 포르투갈과 격돌한다. 온 국민의 염원대로 이뤄진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수가 없겠으나, 만에 하나 16강행에 실패한다 해도 너무 낙심하지 말자.그 패배의 아픔을 결코 지옥행으로 유도하지도 말고 비유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우리 나라가 월드컵 공동개최지로 선정되면서부터 우리는 16강행에 앞서 지구촌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전해주려는 일념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다행히 이 시간까지 그 염원은 별다른 장애없이 진행되고 있어 보인다.그리고 그동안만이라도 우리는 한 민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글거리는 대 용과로 속에서 어떻게 혀란하게 용틀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한나라의 전통문화와 세계스포츠가 어떻게 눈부시게 조화될 수 있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것이 16강보다 더 큰 소득일지도 모른다.결국 천국와 지옥의 거리는 우리가 조절하기에 달려 있다./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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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14 23:02

[전북칼럼] 지방대학 육성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평소 "전북대학교가 발전해야 전라북도가 발전하고 전라북도가 발전해야 전북대학교가 발전한다" "전북대학교의 발전이 전라북도의 발전이고 전라북도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대학 발전이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지역발전이 나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물론 이는 이 지역에 위치한 모든 대학에도 해당되는 말이다.그래서 필자는 화두를 "지방대학 육성" 에 두고자 한다. 다행스럽게도 전라북도가 며칠 전에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위축되고 있는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종합 육성 대책을 내놓았다. 참으로 시기 적절한 정책이며 향후 4년간 전북대학교 경영의 책임을 맡은 필자에게는 그렇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만 첨부한다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싶어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지역주민 참여가 필수적문제의 핵심은 우리지역 주민의 의식구조의 전환 없이는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우선 먼저 이 지역 주민들이 이 지역 대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공부 잘하는 자식을 서울로만 보내려는 부모가 존재한다면 우수신입생은 어디서 찾아올 것인가? 즉 지역주민들은 지방대학의 발전이 곧 이 지역 발전의 견인차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방대학이야말로 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의 일차적인 공급처이기 때문에 지방대학의 질적 저하는 곧 이 지역의 대외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지고 지역 낙후현상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모두들 "지방대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이 위기는 다름 아닌 서울과 지방이라는 지역 간의 불균형에서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이제 벌어질 대로 벌어진 지방과 서울간의 격차를 줄이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대학재정확충을 위한 노력 필요지방대학이 낙후되는 것의 원인으로는 지역주민의 외면이외에도 열악한 재정환경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낙후된 지방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 역시 총장선거과정에서 대학발전기금을 많이 모으겠다고 공약한바 있다. 따라서 이에 관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한시적으로라도 지방대학에 한하여 독지가가 지방대학에 발전기금으로 기부금을 낼 때는 기부자에게 100% 세금공제나 상속세 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할 바에는 납세자인 지역주민이 그 지역의 대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가에 낼 세금을 대학에 직접 기부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훈훈한 분위기가 어디 있겠는가.이는 곧 지역주민의 지방 대학 사랑으로 이어지고 우수자녀 지방대학 보내기로 이어져 머지않아 이 지역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이 이루어져 지역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이 이외에도 " 출신지역 대학별 취업할당제" "출신지역 대학별 고시합격생 할당제" 등과 같은 지역 인재할당제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정부 스스로 국가발전을 위한 고급두뇌의 양성을 전국적으로 고르게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이처럼 다분히 인위적인 법적 제도일지라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줄어들어서 전 국토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무리일지라도 특별법을 한시적으로라도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관계자 분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참고를 기대해 본다./두재균(전북대학교 제 14대 총장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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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07 23:02

[전북칼럼] 월드컵·정치·여성

지난 85년 UN이 주최하는 제 3차 여성회의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있을 때 였다.나이로비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서 전통한복을 차려입은 한국 대표들이 '88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스카프와 뱃지를 책상 위에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 홍보를 위해서였다.회의 참가자들은 스카프나 뱃지 보다는 우리의 한복에 더 관심을 가지고 Korea가 어디 있냐 - South korea냐, North korea냐를 묻는 것이 예사였다. 물론 국가대표회의에 북한대표들(수석대표: 여연구씨)도 참석하고 있었다.월드컵 한국 도약의 계기그 뒤 전국민이 화합을 이룬 가운데 '88올림픽을 멋지게 치르고 북유럽 출장을 갔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어느 작은 음식점에 들렀을 때의 얘기다. 식탁의 냅킨에 "88서울 올림픽"이라고 새겨진 글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이야 말로 한국이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상승했던 계기가 아니었나 싶었다.이제, 공 하나의 움직임에 지구촌 60억 인구가 열광하는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막이 올랐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에 진입한다면 한반도는 용광로 속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한번 정금같이 빛나는 도약을 할 것이다. 평화와 화합의 월드컵을 위해, 문화월드컵으로 치르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한데 모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 또한 사상 처음으로 국가별 응원단이 조직되어 열심을 다하고 있다.또 우리의 "붉은 악마" 라는 이름의 응원단은 어떤가? 그런데 이 7만5천명 정도에 이르는 붉은 악마 가운데 많은 수가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613 지방자치체 선거와 병행 실시하게 되어 우리의 정치 의식이 세계에 공개되는 계기가 될 듯 싶다. 공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과 단합의 정신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줌과 동시에 풀뿌리 민주정치를 제대로 실현해나가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운동기간 중에는 최선을 다하되 자기 홍보와 정책의 비전을 제시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상대방의 잘못을 파헤치고 흠을 잡아 공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다. 해치는 선거, 해치는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된다. 스포츠로 온국민이 한 덩어리가 돼 있는데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파헤치는 정치,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 남성들 독무대인 정치로 되어가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상처를 치유해 주고 사랑과 덕으로, 은혜로 다스리는 정치. 이는 남성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는 세계는 무대요, 인간은 배우라고 했다. 이제 정치무대에도 여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일치되는 멋진 드라마를 613선거에서 연출해 냈으면 한다.그래야 이 나라가 살고 비전이 있다고 본다. 그간 남성들이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고 여성들의 목청을 잠재우기 위해 마지못해 여성에게 인심을 쓰듯 한자리씩 공천 주고 자리 주는 식으로 돼 왔다. 이런 국가 운영은 경쟁력을 기를 수가 없을 것이며, 지구상에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다.여성과 남성이 각 분야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때만이 소외되거나 억눌린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남성과 동등한 정치참여를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여성을 참여시키는 것이 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래학자 죤 나이스비크는 여성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woman leader시대를 예고했다. 격변기를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성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처방이라고 생각한다.강한 전북, 강한 한국을 만드는 그 중심에는 월드컵과 정치 그리고 여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온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김원장 약력○ 전북대학교 법대.이화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교육학 석사)○ 전북도청. 전주시청 부녀아동과장○ 보건복지부 계장. 과장. 가정복지 심의관 관리관으로 명예퇴임.○ 전북 대학교 초빙교수. 성산효도대학원 대학교 아동복지과 주임 교수○ UN주최 여성회의 3회(코펜하겐, 나이로비, 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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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6.03 23:02

[전북칼럼] 논두렁에서

옛날 같으면 한창 모내기가 진행 될 때인데, 많은 논에 벌써 벼들이 땅 맛을 알아 가는지 가물가물 자리를 잡았다. 참 예쁘다. 이제 산에는 밤꽃이 피어나리라.농사철이 돌아 올 때마다 빈 들판을 바라보며 '올해 저 논에는 모가 제대로 다 심어질까?'를 걱정하지만, 농사철이 되면 논마다 어김없이 모가 심어져 저렇게 자란다. 허리가 굽을 대로 다 굽은 머리 허연 농부들이 논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벼들이 돌아앉는 논두렁을 이렇게 걸으면 많은 말들이 떠오른다. 농사, 농업, 밥, 생명, 환경, 일과 놀이, 농악, 두레, 새참, 공동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말들이 떠오른다. 허리 굽혀 땅을 파고 햇살 묻은 씨를 땅에 뿌려 농사를 짓고 거두는 그 느림과 기다림의 정서가 사라진 곳에는, 방향 없는 속도주의, 순간을 모면하려는 찰나주의, 지독한 개인주의, 기회를 잡아 한탕주의, 너 죽고 나사는 이기주의, 말초적 쾌락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모두다 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부산물들이다. 자연과 인간성이 망가지고 죽어 갈수록 자본은 더욱 빛을 내며 인간과 자연을 물어뜯어 낫지 않을 상처를 낸다. 마침내 모두 망할 이 반문명적이고 동물적인 현상을 우린 진정한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동물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어떤 때일까? 논과 밭 구별 못하는 시골아이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함께 논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아이와 나는 논두렁에 앉아 논에 모를 내고 있는 이앙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저 것이 뭐예요. 아이가 가리 킨 것은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떨어지는 물꼬였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시골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논과 밭을 구별하지 못한다. 날마다 논과 밭을 보고 그 곁을 지나다니면서도 모를 모르는 것이다. 모를 모르고, 물꼬를 모르고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 건강하게 살고 있으면 됐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면 할말이 없다. 나는 시대 착오적이고 철이 없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농부와 아이들에게 걸고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늘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하고, 과거 회귀적이라고도 한다. 그 말에 대항 할 말도 내겐 없다. 정말이지 나는 세상을 뜯어고칠 아무런 힘이 없으므로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들은 너무 격동기와 과도기와 국난 속에서 산다. 사람 사는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인가? 하루도 평안과 안정된 모습이 없는 일상의 축제를 만들며 산다. 평화와 안정을 모르는 이 격정적인 생활이 가져온 것은 알 수 없는 불안 심리이다. 그 불안 심리가 불러오는 것이 축제다. 축제, 축제는 일상의 고통과 괴로운 순간을 모면하려는 항생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보약이어야 한다. 축제가 아름다운 건 그 축제의 마당이, 세상의 모든 갈등을 함께 묶어 녹여내는 대승, 대동적인 화해와 해방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논 들어가본 지 오래강력한 살충제와 농약이 뿌려진 논은 미꾸리도 올챙이도 우렁이도 거미도 제비도 논바닥에 그 어떤 잡풀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이 나는 무섭다. 이제 개구리가 논으로 뛰어드는 논두렁에 앉아 차근차근 풀을 베어 가는 농부도, 가방을 메고 산그늘을 따라 집에 가는 아이들도 없다. 맨발을 벗고 논에 들어 가본지가 까마득하다. 그러고도 시를 쓴다고 나는 까분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 갈 길을 스스로 지워버리며 우리들은 어디를 향해 이리 질주하는가.김용택(시인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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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31 23:02

[전북칼럼] 농촌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길

지난 3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무너져가는 농어촌교육의 회생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정부의 계획은 오는 5월말까지 '농어촌교육발전종합대책안'을 마련하고 이를 지원할 농어촌교육특별법(가칭)을 제정, 실질적인 농어촌교육발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이는 전북농촌학교살리기운동본부가 지난 99년도부터 여러 차례 교육당국, 국회에 제안했던 내용으로, 정부가 뒤늦게나마 전북본부의 요구를 받아들인 점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도내 농촌학교는 통폐합, 복식수업 등으로 대다수의 학부모, 지역주민, 교사 모두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여 농촌교육 붕괴의 위기에 와 있으며, 이는 농촌지역사회의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우리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농어촌교육발전종합대책안이 선거국면을 의식하거나, 단기적인 농촌교육여건 개선 대책이 아니기를 갈망하면서 최근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와 농어촌특별위원회에 적극 참여하여 그동안 전북본부가 마련한 농촌학교발전방안과 '농어촌교육특별법안'을 제시하고 이를 채택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그동안 전북본부가 제시한 농촌교육정상화방안의 핵심은 초등학교의 복식수업 해소와 중등학교의 상치수업 해소에 있다. 전북본부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초등학교 복식수업해소와 특기, 적성교육을 위해 농촌소규모학교에 교대졸업 남학생들의 공익근무화를 위한 병역법 개정을 요청해놓고 있다.반면 교육부의 농어촌교육발전위원회는 농어촌교육발전방안으로 21세기 농어촌교육의 비젼, 농어촌 소규모학교에 적합한 학교운영모형개발, 농어촌우수교원 확보 및 배치, 농어촌학교 교육과정 운영방안 및 학생에 대한 지원, 지역사회와의 연계방안 등 농어촌교육과 지역사회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 개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따라서 교육부의 안이 이러한 핵심사항을 비켜가서 자칫 농촌학교에 대한 시설투자, 교원유인책, 복식수업 모델개발, 순회교사제 확대 등에만 머무른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가운데 최근 전북교육청은 2005년까지 69개교의 농촌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하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부가 획기적인 농촌교육발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에 도교육청의 농촌학교 통폐합 방침은 마땅히 유보되어야 한다.오히려 지금 도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농도인 전북농촌교육 현실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이제는 전국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농촌교육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온 도내 시민사회단체, 농촌학부모들의 노력이 진정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21세기 농촌교육 회생과 농촌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복식수업, 상치수업 해소, 특기적성교육 활성화, 중등 급식, 학교운영비 전액 지원, 획기적인 교육여건 개선, 지역사회학교로의 지향성을 담은 '농어촌교육발전종합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지금까지 보여준 도교육청의 태만과 잘못이 바로 잡아져 농어촌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다./ 박일범 (전북농촌학교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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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21 23:02

[전북칼럼] 노무현과 세대교체론

올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세대교체론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세대교체론이 지난 97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론'과 같은 비중의 話頭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970년대의 40대 기수론과 같은 위력은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하는 사람도 많다.세대교체론은 우선 깃털처럼 가벼워서 좋다. 혁명이나 개혁과 같은 용어에 비하면 얼마나 경쾌한가. 또한 세대교체론은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봄날같은 젊음이 느껴지지 않는가.그렇지만 그안에는 녹녹치 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는 활발한 신진대사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무기물인 물에도 신진대사가 중요한가 보다. 신진대사가 어려워 지면 활력을 잃고, 불가능해지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지금 세대교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 전입과 퇴출이라는 신진대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세대교체론은 사회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그러나 세대교체론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기위해서는 前提가 필요하다. 신세대가 구악을 청산할 실력과 비전을 가진 대안세력의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고 카피 수준의 현란함만으로는 곁코 성공할 수 없다.우리는 지난 97년의 대통령선거에서 53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위해서 야당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미화되고 용인되어 왔던 1인지배체제와 지역주의, 공천헌금등 온갖 탈법적행태를 청산하지는 못했다. 각종 게이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더 이상 손으로 꼽기도 어려운 참담한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세대교체론자들은 구태정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 구체적인 정책논쟁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정당, 상향식공천을 골간으로 하는 시스템의 완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뢰를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주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확고부동한 실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그런데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최근 행보는 새로움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인지배체제의 덕목인 의리라는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부패정권과의 결연한 절연에 머뭇거리고 있다.또한 이미 청산되었어야 할 김영삼전대통령비호세력에 아부하여 부산.경남의 지지를 구걸하는 행태에서는 지역주의의 재판을 보는 듯하다.더 나아가 부산시장을 추대하고,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를 물색하는 태도는 현재 진행중인 국민경선제나 대의원대회를 무시하고 과거의 낙점시대로 되돌아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킨다.새로움이 없는 세대교체론, 이것도 새로운 정치실험일까?/ 진봉헌 (전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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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20 23:02

[전북칼럼] 두 농부의 교활한 지혜

미국 캔서스주의 어느 한적한 농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농부가 황소, 돼지, 칠면조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황소는 이제 너무 늙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니 잡아서 스테이크로나 구워 먹을 생각으로 어느 날 밤 이 농부는 도끼를 들고 서서히 외양간으로 갔다.그런데 이게 웬 재변인가. 그 늙은 황소가 "이 늙은 소를 죽이셔도 고기 맛은 별로 일 것이니 저를 살려주시면 비밀 한 가지를 알려드리지요."라고 애걸한 것이었다. 그 황소는 왈 "차라리 저 칠면조를 잡으셔서 그 발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언제 어디를 가셔도 행운이 따릅니다."이 농부는 귀가 솔깃해져서 도끼를 들고 닭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랬더니 눈치를 챈 칠면조 왈:「제 목숨을 살려주시면 한 가지 신기한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 돼지를 잡으셔서 그 가죽으로 지갑을 만드시면 언제나 돈이 가득 합니다.이 잔꾀에 넘어간 농부는 이제 다시 도끼를 들고 돼지우리로 가니 역시 마찬가지로 돼지 왈 "아, 저렇게 큰 황소를 두시고 이 못난 돼지를 잡으신다니, 그러시지 말고 제 말씀을 들으세요. 저 황소가 워낙 늙어서 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죽으로 트렁크를 만드셔서 여행을 떠나시면 평생 가고 싶은 곳에 어디나 무사히 가실 수 있지요."한 바퀴 돌아온 이 농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며칠 뒤에 칠면조 발, 돼지 가죽 지갑, 그리고 소가죽 트렁크를 들고 훨훨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서로를 비방하고 흠집을 내면 모두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일게다. 요즘 우리 정치 판을 연상케 한다. 정치 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폐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인간사회에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정도의 차이다.검찰, 경찰, 민원당국에 들어오는 투서와 무고 등이 이웃 일본에 비하여 100배가 넘는다는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견뎌도 배아픈 것은 못 견딘다.'는 창피스러운 말이 있다.남북통일도 여지껏 안되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면 자학적이라고 할까? 해방 후 국토가 분단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통일은 고사하고 우리는 혈육의 생사 여부도 모르고 있다가 이산가족의 극소수만이 이삼일동안 상봉하여 눈물바다를 이루다가 다시 헤어져야하는 단장의 슬픔을 겪는다.이제는 모두 오래 전에 통일된 월남이나 독일과 같은 다른 어느 분단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비극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사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가히 짐작이 간다.이 글의 제목을 '두 농부의 교활한 지혜'라 했으니 또 한 농부의 교활한 지혜를 보자. 어느 사람이 한산한 시골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얕은 개천에 빠졌다. 궁지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한 농부가 큰 황소를 몰고 지나가다가 이 딱한 사정을 보고 기꺼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것은 밧줄을 자동차에 매어 황소가 끌어올리는 지혜였다.그런데 밧줄을 맨 다음 그는 '쌤쓴(소 이름)아, 이영차, 이영차' 하고 구령을 하는데 웬일인지 황소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트로이야, 이영차, 이영차」하고 고함쳐도 황소는 역시 막무가냈다. 세 번째는 '마이크야, 이영차, 이영차'하고 구령을 하니 그 황소는 그때서야 자동차를 거뜬히 끌어올렸다.왜 두 번이나 다른 소 이름을 불렀느냐고 묻는 질문에 이 농부 왈 "마이크는 두 눈을 못 보는 장님이라서 처음부터 자기이름을 부르면 왜 힘든 일은 자기에게만 시키느냐는 불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나 눈 뜬 다른 소들이 못하는 일도 자기는 해낸다는 자존심을 이용하려고 있지도 않은 다른 소 이름을 불렀노라."고./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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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10 23:02

[전북칼럼] 새, 그리고 나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딱새 한 쌍이 찾아와 집을 짓고 있다. 초등학교 안에서 새가 집을 짓고 새끼를 안전하게 키워서 나가는 새는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까치말고는 힘들다.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것들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수많은 눈을 피해가며 새가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새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우리 학교 어디에 지금 새가 집을 짓고 있으니 새집을 건들지 말자.새도 생명을 어쩌고저쩌고 운운... 하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새가 새 집을 들랑거리는 것을 나 혼자만 보고 있다고 좋아 하지만, 아이들 중에 누군가 새집을 어떻게 했다는 고자질이 금방 들어오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저 딱새는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아마 새 집을 거의 다 짓고 알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딱새 집은 우리 학교 이층 변소 바로 앞 처마 밑 홈통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처마와 홈통 사이 아주 작은 틈을 드나드는 것을 나는 변소에서 늘 보는데, 아이들은 키가 작아 그 새집이 보이지 않은 모양인지 보고도 그 곳이 너무 높아 어찌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가 새집으로 마른 풀을 물어 나르고, 새끼에게 줄 벌레를 물어 나르는 것을 함께 보며 신기해하고 싶다.그러나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저대로 조금만 두면 이제 작은 새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로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가 샛노랗게 익을 무렵이면 딱새 새끼들이 집을 나와 살구나무 가지 사이를 포롱포롱 날아다닐 것이다.대여섯 마리의 작은 새들이 여린 날개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럴 때까지, 저 딱새가 알을 까서 새끼들이 날아다닐 때까지 안전하기를 나는 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내가 창가에 나란히 서서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작은 딱새들을보기를....나는 올해도 2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우리 반 2학년은 모두 일곱 명이다. 이 글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한마디만 하자면 우리 반 일곱 명중에 4명은 이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가 가르쳤다.아무튼 나는 이 아이들에게 자기 나무 한 그루를 정하라고 했다. 자기 집에 있는 나무든, 자기 동네에 있는 나무든, 앞산에 있는 나무든, 아이들은 금방 자기 나무를 정했다. 경수는 자기 마을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다.충용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멋들어진 소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고, 채현이는 자기 집 뒤 안에 있는 감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 주인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호영이는 자기 아버지가 심은 살구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고, 은철이는 자기 집 옆집에 있는 자두나무를, 마지막으로 산영이는 자기 집에 있는 은행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우리들은 이제 자기 나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늘 눈여겨보기로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의 나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아침과 저녁 내 나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꽃이 피고, 잎이 피고, 열매가 열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고, 비가 오고! ,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새가 찾아오고, 달이 찾아오리라. 아, 한 그루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아이들은 이제 때때로 자기 나무를 바라 볼 것이다. 집에 갈 때 경수는 그 느티나무 아래 앉아 느티나무 아래를 흐르는 작은 시냇물과 시냇물 건너 작은 들을 보리라. 수많은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기도 하리라.이 세상에 자연 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생각을 표현해 보는 평화로움을 갖게 하고 싶다. 나무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 새끼를 여럿이 함께 보는 일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김용택 (시인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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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03 23:02

[전북칼럼] 전북경제가 사는 길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산업생산의 5% 이상을 차지하던 전북경제가 최근에는 2%미만의 경제로 추락하였다. 공업화, 산업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는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만 것이다.이처럼 전북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크게 감소하고 인구가 타지역으로 유출되면서 구조적 정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으로는 정부의 편중화된 공업화정책과 재정 및 금융을 비롯한 각종 정책과 산업기반시설투자의 일부지역 편중에서 비롯되는 차별적인 정책 때문이었다.그리고 전북지역의 산업구조는 전국과 비교해서 농림어업의 비중이 높고 광공업이나 기타 산업비중이 낮은 편으로 이와같은 전북지역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함께 도내 금융부분의 취약함이 전북경제가 낙후원인으로 작용되었다고 본다.전라북도에는 무엇보다 기업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말 전라북도내 법인수는 전국대비 3.77%인 9천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특히 도내 제조업체수는 3,260여개 업체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대기업은 겨우 28개업체에 불과하다.한편 전북지역 금융기반을 보더라도 전북지역의 수신 및 여신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인구나 지역내총생산 등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이처럼 전북의 금융비중이 저조한 것은 취약한 산업구조로 인한 낮은 소득 수준과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부족에 기인한다.전북지역 소재 기업체 등이 이용할 수 있는 총제적인 자금의 양이 줄어드는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자금의 역외이동을 방지하고 자금의 역내 환류를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우량기업 유치활동을 경주해야 한다. 외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지방에 소재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제반비용을 상회하면서 타지역보다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수준의 혜택이 필요하다.지역여건에 걸맞는 친환경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주로 수도권 소재 대기업이나 외국인 투자기업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현재 외자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가 운영되고는 보다 과감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기업하기 좋은 전북' '투자하기 좋은 전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시도의 사례를 집중 분석하고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기업과 외자유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투자유치 추진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지역 실물경제에 대한 금융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주로 지역사회의 상공인들이 주주로 구성되어 있는 지방은행과 지역사회간의 상호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이제 과거의 방식, 과거의 사고로는 전북경제 회생의 길을 찾는 것이 어렵다. 급변하는 경제환경과 시대적 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도 이제 글로벌시대 전문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전북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제시가 필요하다. 환황해권 시대를 맞아 전북 서해안지역을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로 육성하고 새로운 산업벨트로 발전시킴으로써 전북발전의 기폭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또한 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과 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여 지역경제를 튼튼히 해야 하며 지역적 여건과 특수성을 감안해 농수축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비스산업과 관광, 문화산업을 육성해 산업기반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전북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권위적이고 전시행정과 예산낭비를 초래하는 잘못된 행정의 모습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마인드가 필요하다.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전라북도'를 세일즈하고 기업과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세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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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5.01 23:02

[전북칼럼] 세계화의 의미

과거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에 나라걱정을 했던 이들의 가슴속에 맴돌던 단어가민주화였다면, 요즘 지식시대를 맞이해서 우리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단어 일 것이다.21세기는 지식시대로서 정치, 경제적, 사회적인 면에서 국가간에 모든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적인 현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학자들은 세계적으로 총제적인 생신액의 증가보다 2배나 빠르게 무역액이 증가되고 나라간의 해외직접 투자액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상자체를 세계회의 전진속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이렇게 보면 우리 나라도 GDP에 대한 수입+수출액 비율로 나타내는 대외 의존도 면에서 70%가 넘을 뿐 아니라, 주식시장을 보더라도 외국인의 소유가 상장주식의 30%가 넘어선지 오래된 상황이고 보면 최소한도 세계화 진도로 따져 선진국에 속하지 않을까?그러나 세계화의 척도를 몇 개의 한정된 지표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대외의존도가 20%미만이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소유주식 비중이 10%가 안 된다 하여, 미국을 세계화 면에서 후진국으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경제의 양과 질 그리고 내수시장의 크기, 그리고 자원의 보존정도, 인구 등 나라마다 다른 여건들이 작용하여 외형적인 경제 지표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정리 해둘 것은 우리 나라와 같이 경제규모나 인구 그리고 자원 면에서 유리하지 못한 나라일수록 세계화의 추세에 능동적으로 편승해서 세계화를 통한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생존 전략이 필요 한 것이다.많은 사람과 돈, 기술, 정보가 거침없이 우리에게 밀려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 나라를 오고 싶어지는 곳, 즐기고 싶고 나아가 살고 싶어지는 곳으로 만들어야 잘 살수 있게 된다.우리 주변에 밀려있는 불합리하고도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규제들은 물론이고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외국인, 외국 기업에 대한 감정적인딧세도 시급히 정리할 일이다.이렇게 해서 화교들이 발붙이지 못하고 모조리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오명도 하루속히 씻어야 된다.외국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아무런 불편 없이 우리거리를 활보 할 수 있을 때,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때 우리들도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국위를 높이고 돈도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세계화의 척도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현상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며칠 전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황사현상이 생각난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황사마저 국경이 없이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환경재난이 국경 없이 여러 나라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앞으로 환경 문제에 있어서의 국제적 협력과 공동대응 노력이 세계화의 목표아래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될 것이라는 교훈도 아울러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강현욱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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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30 23:02

[전북칼럼] 영어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불행히도 4천만이 태어날 때부터 외국어라는 십자가를 메고 있다. 이왕 머슴살이 팔자라면 큰 집 머슴살이를 하라는 속담이 있다. 아세아아프리카의 많은 후진국들이 제2차 대전 후 독립을 쟁취했는데, 그네들은 유럽 열강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노릇을 했다.그래서 영어와 불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36년간(정확히는 35년) 일본의 식민치하에서 배워둔 일본어는 아직 영어나 불어 정도의 국제성이 없다. 한편 우리에게는 일본어의 중요성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오늘날 영어는 국제어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 UN이 공용서로 쓰고 있는 아랍어, 중국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 중에서 단연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전세계 인터넷 교신의 80%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점을 뒷받침해 준다.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1945년의 해방 후 3년간의 미국 군정 후로도 우리는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그리고 제2차 대전 후 국제사회에 있어서 미국과 영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영어는 우리에게 국제교류에 있어서 단연코 우월한 제1외국어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의 영어수준은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위치에 아직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왜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고도 그로부터 얻는 대가는 실용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가 족히 알고있는 사실이다.간단히 말해서 언어습득은 습관으로 해야하는데 우리는 지식으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구차한 설명은 더 늘어놓지 않겠다.우리가 영어를 피부에 느끼게 접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미국 군정 때에 비롯되었다. 모든 공문서는 군정청에서 영어로 전달되었다. 따라서 위로 보고하거나 의견을 내는 것도 모두 영어로 했다.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미국은 9월 초에 일본과 그 모든 영토를 점령하여 군정을 폈다. 1945년 9월 7일에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맥아더 미 육군 원수의 그 무시무시한 소위 「포고령 제1호」가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 내용인즉 이제 조선에도 미국 군정이 실시되니 모든 조선인들은 딴 생각말고 그의 명령에 따르라는 것이었다.이 포고령은 물론 영어원문과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문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맨 끝에 맥아더 사령관의 계급은 영어에는 미합중국 육군원수로 되어있고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에는 육군대장으로 되어있다. 이 착오의 원인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영어의 원수는 「General of the Army of the United States」이고 육군대장은 「General, the United States Army」인데 이것을 약간 혼동한 것이었다. 맥아더는 1944년에 이미 5성 장군으로 즉, 원수로 승진했던 것이다.이 포고령에는 이와 같은 것 외에 몇 가지 오역이 있다. 아마 일본어 번역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들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일본의 영어수준도 가히 짐작이 간다.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5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왜 영어라는 십자가 밑에서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이빨 썩은 아이 문어 다리 씹듯 종일 물고만 다니는지 왜 한 번쯤 싹둑 짤라먹지 못하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영어가 무엇이길래 말이다./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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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4.19 23:02

[전북칼럼] 봄이 오는 강건너 마을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앞 강 건너에는 전형적인 마을이 산자락에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이 학교에서 22년째 근무를 하고 있고, 이 초등학교를 6년 동안 다녔으므로 강건너에 있는 물우리라는 마을을 28년 동안을 바라보고 있는 샘이다. 어디 26년뿐이겠는가. 다른 학교로 근무처를 옮겨도 이 물우리 마을을 늘 바라보고 다녔으니, 이 마을을 나는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다.이 마을은 섬진강 가에 있는 마을 중에서 가장 마을다운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마을의 큰 나무나 큰 바위들이 다 전설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듯이 이 소나무들도 전설을 가지고 있다.전설도 전설이지만 이 소나무 숲은 마을의 북쪽에 있음으로 겨울 추운 북풍한설을 막기 위해 가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 소나무에 사병들의 계급장 표시 모양의 큰 상처들이 있는데, 일제 시대의 송진을 받아 간 흉터이다.마을 오른 쪽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다. 옛날에는 이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당산나무 또는 정자나무라고 통칭한다. 이 나무숲의 나무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나무가 느티나무이고, 팽나무, 서나무가 많다. 이 마을에는 멧방석만한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데, 그 나무는 참나무였다.참나무로도 사람들은 정자나무를 삼았던 것이다. 가난하고 남루한 초가 마을 앞에 서서 커다랗고 우람한 이런 나무들이 단풍물이 들었다가 잎이 질 때까지 잎을 피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풍요롭고도 포근하게 해 준다.조촐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마 그렇게 풍성했을 것이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에는 옛날 당산제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묻었던 큰 무덤 모양의 가묘도 있고, 큰 느티나무 밑에는 제사를 지낼 대 쓰던 바위 상이 있다.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불이 자주 났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유독 불이 많이 난 마을이 이 마을이었다. 유독 불이 잘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아무튼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에다가 작은 저수지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동네 앞에가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이와 해가 있겠지만, 불의 두려움에 대한 궁여지책이 잘 드러난 표시이다.이 마을 앞 강 건너에는 회문산이 있다. 마을 코앞에 커다란 산이 떡 버티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앞이 너무 툭 터져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마을 앞이 툭 터진 그 어느 곳에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어 사람들의 휑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이 마을 앞은 너무 큰 산 때문에 또 위압감을 느낀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 앞에 커가란 나무들을 심어 산을 가렸다. 이 마을 앞 나무숲은 특이하다. 큰 나무들을 심어 놓은 곳, 그러니까 몇 그루의 느티나무, 참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동산이 있는 것이다. 이 동산은 마을의 안산 역할을 해 주고 있는데, 절묘하게도 마을을 안심 시켜주는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이 마을은 이렇게 마을 형식을 고루 갖춘 마을이다. 임실 회문리에서 순창 구미리까지는 농민들이 마을 공동체를 가꾼 이런 흔적들이 널려 있다. 시급히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들이다.정월이면 동네 사람들이 풍물굿을 하는데, 우리들은 운동장 가에 나란히 서서 마을 고샅길을 돌아다니는 풍물패들의 울긋불긋 굿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흥에 겨운 동네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강을 건너오면 우리들도 고함을 치곤 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동네 처녀들의 모습이 보였고, 학교 뒷밭에 있는 감을 따먹으면 우리 고모님이 욕을 하던 고함 소리가 학교까지 들려 왔었다.좋은 시절이었다. 그 아름다운 강 마을에 지금 봄이 오고 있다. 텅텅 빈 강 마을의 봄이 하루가 다르게 꽃으로 번진다. 봄이 저렇게 오던 날 마을 앞에 있는 논두렁으로 처녀들이 나물을 뜯으러 와서 불던 버들피리 소리가 그립다.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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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03.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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