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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유명한 기업에 취업한 대학교 선배가 얼마 전 학교를 찾아왔다.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대학시절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등 대내외 활동을 열심히 해 존경하던 선배였다. 자신이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 회사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하지만 그 선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요즘 행복하다는 걸 전혀 모르겠어, 회사도 그만 두고 싶어" 사정을 들어보니 상사의 압박과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는데 행복은커녕 스트레스 때문에 취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을 먹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그 선배는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무엇이 되야겠다'만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한 둘 뿐이겠는가. 아마 많은 취업준비생과 꿈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경제상황이 나빠지는 동시에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져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물질을 좇다가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 다트머스 대학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총장이 된 한국계 미국인 김용은 오바마의 선택을 받아 세계은행 총재가 되면서 아시아인 최초의 기록을 다시 한번 냈다. 김용 총재는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원동력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로부터 남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질병을 치료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하버드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가난한 나라를 직접 찾아가 각종 질병치료와 빈곤 퇴치에 힘 써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더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남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한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입시와 취업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후 만족감은 잠시일 뿐, 기대했던 행복을 찾기란 어렵다. 우리나라 부모들도 자식이 좋은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지만 그럴수록 행복과는 멀어질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 학생들도 진정한 행복을 위해 봉사정신을 함양하고 물질을 좇기보다 어떻게 살 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고통보다는 성장통이라고 느끼며 삶을 즐길 수 있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생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 꿈만을 향해 가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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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9 23:02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왔다. 별생각 없이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뜨악했다. 신학을 하는 나로서는 노골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세속가치관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검색어에 '부자되'까지만 썼는데 '부자되는 법', '부자되세요', '부자되는 습관' 등의 검색어들이 무섭게 따라 올라왔다. 부자는 어느 시대에든 있어왔고 빈자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언제부터 '부자되기'가 우리 삶 속에 깊이 파고 든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축적하는 것이 아닌 나눔과 만족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나는 지난 7월 23일부터 8월3일까지 국제NGO단체인 '행복한아시아'에서 주최한 '제 2기 전라북도 청소년 해외봉사단'에 스텝으로 참여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물론 청소년들의 글로벌마인드를 고취하기위해 역사, 문화, 종교탐방도 했지만, 봉사단인 만큼 소외계층에 관심을 두고 소외지역과 빈민촌을 많이 방문했다. 그런데 어느 빈민촌에 가든지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쓰레기와 오물이 깔린 진흙길에 화장실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애써 웃어주었으나, 그들은 티 없이 맑은 환영의 웃음과 만족을 보여주었다. 그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깊은 반성을 하게 했다.그들은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대개의 빈민국이 그러하듯 캄보디아의 행복지수도 높은 편이다. 쉽게 말하면 오늘 먹을 것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즉,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가져야 할 것만 보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갖지 못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땅이든, 돈이든, 사람이든지 간에 계속되는 불만족과 욕심은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반대로,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각종 NGO단체들과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나눔과 봉사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왜 자신의 물질을 나누고 후원하고 직접 그 땅에서 봉사하는 것일까. 현장에서 그들과 살을 부대껴 보니 이제야 알겠다. 많이 가지지 않았어도 지금의 내 것에 만족하니, 더 이상 욕심부릴 것이 없어지고 외려 나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다. 또 나보다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위해 가보니 그들은 이미 만족하며 웃고 있다.봉사기간과 이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에게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답 외에는 대개 나처럼 그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자본주의는 이윤추구가 가장 기본적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더 많은 물질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고 사회가 강요하는 논리에 의해 특별한 이유 없이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그르다거나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맹목적인 부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자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 싶은 편과 나눔의 삶을 사는 편 어느 쪽이든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안다면, 그 삶 가운데서 작은 만족을 뛰어넘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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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2 23:02

당신은 이 곳에 태어나서 행복하십니까?

한 달 전쯤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나라사랑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중국에 있는 우리 유적을 답사하는 것으로 나를 비롯한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광개토대왕비, 발해 성터 등에 직접 가서 보고 함께 공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유적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유적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한 청년의 말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중국에서 유적지를 답사하는 동안 우리들을 안내해준 가이드는 조선족 청년이었다. 그는 연변 조선자치주에서 태어나 줄 곧 조선자치주에 거주했다고 한다.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그가 매우 신기했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언론에서 자주 접하긴 했지만 조선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모는 우리와 같으나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국어를 사용하며 중국 역사를 배운 그들의 생활, 가치관이 매우 궁금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조선족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가이드가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똘똘한 아이가 "당신은 중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십니까?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중국과 한국 중 어느 나라를 택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내심 한국이 더 좋을 것 같다 혹은 나는 한국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청년은 "나는 중국에 태어나서 매우 행복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중국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조선족은 중국 전통 민족인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중국 정부에서 한족에 대해선 산아정책을 실시하지만 소수 민족들에게는 두 번째 자녀부터 보조금을 주고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또한 각 민족들의 자치주를 인정해 주고 그 자치주 내의 가게 간판은 각 민족의 언어를 우선적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연변에 가니 정말 그의 말과 같았다. 가게마다 모두 우리 한글로 된 간판이 있었고 중국어는 한국어 뒤에 적혀있었다. 연변에 가니 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인정과 이해. 중국이 다른 민족을 대하는 방식을 피부로 직접 느끼며 놀랍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단일민족을 유지해야한다는 어리석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 총각들이 결혼 시기를 놓쳐 국제결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들에게, 국제결혼을 해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굳건히 지켜온 단일민족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존재로 취급하였다. 이런 사고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이단아로 내몰 것이다. 그들은 불행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우리나라 고유 민족이 아니라고 배척하면 우리나라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불행 할 것이다. 더 이상 그 누구를 위해서도 단일민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중국이 다른 민족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인정하고 곧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훗날에 당신은 이곳에 태어나서 행복하냐 물을 때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나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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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5 23:02

꿈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따뜻한 보금자리인 둥지를 벗어나 저 푸른 창공을 향해 날개 짓을 하며 날아오르듯이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도약하고자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나의 꿈을 향해 비상하고자 작년 3월 호주로 떠났다. 처음 호주공항에 내려서 바라본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금발의 외국인들, 한국과는 다른 낯선 대지의 풍광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신기했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호주의 낯선 문화와 환경을 접하면서 나의 외국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남들과 달리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새벽에는 학교청소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이후 아침 9시부터 오후 저녁 늦게까지 어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에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하였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나 또한 그러하였기에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치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고, 노력만이 살길이다 싶어서 영어공부에 최선을 다하였다.약간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한번은 잠을 자는데 잠꼬대를 영어로 하던데 무슨 꿈을 꾸었냐고 친구가 물어본 적도 있었고 길을 가다가 분명히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데 영어로 들린다거나 아무도 없는데 영어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영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영어는 내게 있어서 낯선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무작정 외국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 얘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지만 대화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어학원 선생님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 사귈 수 있었으며 그 곳에서 한 베트남 친구의 추천으로 학교에 출품할 작품인 "you and me"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점차 시간이 흘러 호주생활에 나름 적응해 나가고 있을 무렵 나는 레바니즈인이 운영하는 호주에서 제법 큰 water view라는 레스토랑에서 스태프로 일할 기회도 생겼고 그 곳에서 성실히 일한 결과 총매니저인 제임스의 추천으로 한국인 담당매니저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거머쥘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를 비롯하여 멜번 그리고 타즈매니아 등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파티에 참여하면서 외국의 전통음식, 결혼식 등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접하면서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호주에서의 생활들은 내게 값진 경험과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현재 나는 나만의 소중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자 준비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 미래의 내가 존재한다면, 현재의 내가 끊임없는 도전과 준비가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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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8 23:02

직업엔 귀천(貴賤) 있다?

어머니 曰 "너는 땡볕에 나가 힘들게 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냉난방 잘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수 있는 그런 안정된 곳으로 취직하렴."딸 曰 "그럼 저는 버스기사가 될래요."어머니 曰 "아니, 왜?"딸 曰 "버스 안에도 시원하고 따뜻하게 냉난방 잘되고, 컴퓨터는 없지만 앉아서 안정되게 일할 수 있잖아요"어머니 曰 ""위의 대화는 필자가 나눴던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이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말이기에 웃어 넘겼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취업을 해야 되는 상황에 몰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직업엔 귀천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안정된 직장을 얻어 일하는 것으로 변질되어버린 요즘 20대 젊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EBS에서 방송되는 '극한직업'에서는 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속에서 작업하고,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서 케이블 교체 작업을 하는 등 힘들고 위험한 직업 또는 일들을 소개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젠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일을 하면서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단 생각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어느 직업이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또한, 그 보람을 느끼면서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천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더러운 것을 만진다고 하여,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들이 뒤떨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수입을 사회적 가치의 척도로 삼아 평가하는 현실에서 돈을 가지고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생각이 취업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대기업,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종에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취업난이 일어난다고 말은 하지만 조금만 옆(중소기업)을 살피면 정작 사람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것이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는 것이 아닐까?한편 호주, 캐나다 등 타 국가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기술직이라고 해서, 어느 힘든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그 직업을 천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못한 일들을 하고 있기에 그 직업과 사람들을 존중해 준다고 한다.약육강식의 자연 생태계처럼 모든 직업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직업을 얻어야 먹고사는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 자신이 나눈 직업의 귀천에 자신이 휘둘리는 것만큼 슬픈 것이 어디 있을까?필자가 전국에 있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감히 물어보고 싶다. '자신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원하는 연봉을 받으며 살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라고.대학생들이여! 청춘들이여! 너무 안이한 직업만을 추구하려 말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일 때 여러 가지 인턴생활을 하면서 직업을 탐색해보며, 귀천을 따지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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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1 23:02

느리게 걷는 즐거움

다른 이들과 함께 걷다 보면 "빨리 오지 않고 거기서 뭐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그리고 "조금만 천천히 걸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느리게 걸어야만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을 담아둘 여유를 갖게 되었다.며칠 전, 볼 일 때문에 서울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지하철을 이용하고 걷는 내내 일행과 나는 서울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쁘냐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전주로 돌아와 원룸으로 향하는 길, 어두교에서 보이는 학교의 고적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고서야 평온을 되찾았다.요즈음 우리는 꼭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해낸 일에 대한 인정 등 성과주의 내지는 결과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세태속에서 우리는 늘 바쁘고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해내는 일들이 아니다. 사회 혹은 속한 집단의 요구에 맞추어 내야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조급함을 삶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무엇이든 바쁘게, 빠르게 해내야한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잃게 되었다. 사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므로 내 세대가 걱정하는 취업, 자격증, 어학연수와 같은 스펙이 아닌 세상말로 '사색과 성찰'을 해야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도 학생인지라 성적이나 내 욕심에 채워져야만 하는 것들 때문에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빠르게 걷는다. 그럴 때면 나는 늘 탈진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소중함과 같은 의미들은 퇴색되어 버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느리게 걷는다. 그것을 여유라고 생각하는데 내 경우에는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보며 느리게 걷고 자유롭게 여행을 해야 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내 모습을 되찾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꼭 거창한 여유가 아니어도 된다. 느리게 걸으며 주위를 보면, 매일같이 보던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바짝 말라서 고여 버려 썩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던 하천이 비 온 뒤 얼마나 힘차게 흐르는가를 보기도하고 비 온 뒤 큼지막해진 대추알을 보며 침을 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에 직면해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고 또 나를 다시 성찰해 본다. 그렇게 내가 관심 갖지 못했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여유가 생기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재조명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늘 보아오던 것들을 느리게 걸으며 다시 바라보는 것이란 늘 다른 의미를 준다.나는 전북이, 전주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내 고장이 참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뒤쳐졌다고, 성과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느림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 또한 그 옛날 뒷짐을 지고 느리게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며 이 길을 걸었던 양반들의 정취를 느끼고자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그 느림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이제 나는 여러분과 다시 빨라지려하는 걸음을 늦추고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시선을 옮기며 그를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하며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배우려한다.※ 한 편집장은 2010년부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신학부 3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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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25 23:02

우리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한다면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책에서 우리의 인생을 시간에 비유했다. 인생을 팔십년이라 가정하고 이를 24시간에 비유하면 20대 우리의 시간은 7~8시라고 한다. 우리 나이는 이제 막 집을 나설 시간이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힘을 내어 집을 나설 준비를 하라고 한다. 우리는 집을 나설 준비를 잘하고 있는가? 20대, 자유롭기에 즐겁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 선생님 등 우리를 얽매이게 했던 존재들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진다. 사회에서는 우리를 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 심지어 학교생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출석을 하지 않아도 집으로 전화해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학부모 면담을 하지 않는다. 대학 생활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롭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차 자유로워지는 만큼 나의 삶을 내가 책임져야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결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행동을 바탕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님, 선생님, 어른이 나의 삶을 조언해 줄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나의 삶을 설계해야하는 시기가 온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설계하기에 많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 선생님 말씀만 듣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만 열심히 했던 우리는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꾸만 어서 사회로 나가라고 한다. 우리는 막막하고 불안하다. 사회로 나가야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고 머리만 아파온다. 고민 끝에 우리가 택하는 길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기. 고시공부, 스펙 쌓기, 인턴십 등을 하며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충족한다.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인가 나에게 질문을 해봐야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을 접어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이번 방학에도 전국에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방학을 즐기지 못하고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우리에게, 아직 작은 우리에게 사회는 큰 우리가 되길 원한다. 20대가 되어 갑자기 다가오는 진로에 대한 막막함, 불안함을 없애려면 중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만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이 끝났다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진로 탐색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꾸준히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지금 20대들의 불안함, 막막함은 줄어들 것이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미리 준비하고 생각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 강 편집장은 2010년부터 전주교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 전북 학생기자단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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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8 23:02

청춘의 끝에서 외치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취업은 안돼요." "어서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남들처럼 살고 싶어요." 같은 말들을 종종 듣고 살아가는 현대에서 꿈과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우리들의 이름은 대학생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나름의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꿈을 향해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기도 하고 때론 실패하여 좌절하기도 하며 쓰러진다 할지라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빛나는 청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들의 꿈은 어느 샌가 빛바랜 도화지처럼 사회현실이라는 거대한 문턱 앞에서 점차 퇴색되어 버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 우리 모두는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고 싶어 했을 수도 있고, 또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문명의 발달을 선도하는 선구자가 되고 싶어 했을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꿈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꿈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경제적 관념이 생겨나면서 '돈'이라는 굴레 또는 적자생존이라는 법칙 앞에서, 즉 '승자 만이 존재하는 비정한 사회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무너져 버리게 되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이러한 사회현실의 생리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어찌 보면 이 사회의 피해자 아닌 희생양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무엇이든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던 것 대신에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타성에 쉽게 젖어 버리게 됨으로써 그저 무작정 아무런 목표 의식조차 없이 회사에 들어가는 일꾼으로 아니면, 한번 들어가면 평생직장이 되어 버린다는 공무원이 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에 대한 선택을 다른 곳으로 서서히 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현시대에 있어서 꿈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과 삶에 대한 주제로 한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방송에 나온 출연자들 중에서 한 여성은 여태껏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항공사의 기장이 되어 푸른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그 당시 대사관에서 일도 잘하는 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장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짐으로써 도전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지금은 중국의 한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 참 흔한 말이죠. 지금 내 현실에 있어서 내 꿈은 저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든 것 같지만 꾸준히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이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마세요"라고 했었는데 어찌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던지 아직까지도 내 기억의 한편에서 소중한 디딤돌의 하나로써 기억되고 있다. 나는 말하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포기해야 할 것도 있으며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고될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내가 가야할 방향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빛나는 청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우리는 이대로 꿈을 상실하고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고 먼 훗날 '나'라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끔 꿈을 되찾고 그것을 향한 청춘의 여정을 떠나보는 것은 어떠할까?※ 최 편집장은 2011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거쳐 대학 동아리 손짓사랑 고문을 맡고 있으며 호원대 법경찰행정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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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11 23:02

A+ 대학생활은 무엇인가?

방학을 맞는 젊음이여남의 꿈을 좇으며스펙 쌓기에 연연하지 말고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방학과 동시에 1학기 대학생활이 점수로 매겨지는 성적표!성적이 이미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1학기 성적에 미련을 가지고 자책을 하고 있는가? 또는 성적을 짜게 주신 교수님을 원망하고 있는가?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성적을 나쁘게 주신 교수님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탓하길 바란다. 또한 성적으로 대학생활을 평가하지 말길 바란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서는 "이 성적으로 어느 회사에 취직하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에 성적이 좋다고 무조건 취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력서에 활동내용을 가득 채우는 것이 중요하니, 성적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해 주었다.대학생활의 끝에 서 있는 4학년 학생으로서 1, 2, 3학년 재학생들에게 말하자면,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를 누리길 바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누릴 수 없는, 대학교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필자는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A+대학생활이란 4.5점의 성적이 적힌 성적표가 아니라 자신이 학업뿐만 아니라 꿈을 설계해 나가는 뜻깊은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계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호! 학업에 지친 대학생들이여, 성적은 성적이고, 하계방학이 다가왔으니 실컷 놀자!"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는 말이 있듯이 성적에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여름방학은 A+ 대학생활을 위해 심신을 달래며 재충전하는 시기로 보냈으면 한다. 또한 학기 동안에 해보지 못한 것을 방학을 계기로 경험해 보고, 배낭여행, 국토 대장정 등과 같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대학생의 방학기간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다들 아르바이트, 인턴, 자격증 취득 등 여러 스펙 쌓기로 정신없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인턴, 자격증 취득 등의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쉬면서 1학기 동안의 대학생활을 되돌아보고 2학기를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인생은 짜장면과도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짜장면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맛있어 보이는데 막상 시켜서 먹어보면 맛이 그저 그래요. 지금 내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해도 막상 그 삶을 살아보면 그 안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뇌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생기면 '남이 먹는 짜장면이다!'라고 생각하세요. (혜민 스님 지음,『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中 )책에 있는 구절과 같이 남의 잘된 꿈을 좇으며 스펙 쌓기에 연연하며 너무 잘된 사람을 좇는 사람이 되지 말고,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비난해도 자기만의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꿈을 좇아 이루길 바란다. 또한, 계획 중에 위에서 말한 것들이 속해 있다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꼭 실천하여 하계방학을 허투루 보내지 않길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건투를 빈다.※ 김 전 편집장은 2009년부터 군산대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군산대 생활과학부 4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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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04 23:02

현재 당신의 온도는 몇 도 인가요?

끓어가는 물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위기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꿈을 잃고 살고있지는 않은지자신을 돌아보자당신도 끓어가는 물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진 않은가? 나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은 비전(꿈)상실 증후군이라 불리기도 하는 사회적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는 물에 개구리를 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넣고 아주 약하게 가열하기 시작하는 실험과 팔팔 끓는 물에 개구리 투입시키는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개구리는 서서히 가열해져 오는 물 속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점 물이 뜨거워짐에 따라 한 번도 뛰어 올라보지 못한 채 결국 죽어갔지만, 두 번째에서는 뜨거운 온도 때문에 바로 튀어나와 생존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줬다.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도 모른 채 죽어가는 현상. 비단 개구리에게 비유되는 일만은 아니다. 나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고 꿈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가웠던 물이 팔팔 끓는 물로 변화되기까지의 과정은 우리들 삶에 들어온 자신의 문제점의 크기로 비유될 수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중에 하면 될 거야'하는 안일한 생각들로 인해 손톱만 했던 문제들이 태산만큼 커져버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삶은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자신의 물 온도를 체크해야 한다. 물이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아니면 이미 끓는 상황인지 말이다. 즉,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나의 물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두 번째, 내 앞에 펼쳐진 일에 대해 '합리화'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정도 쯤이야'하는 생각의 일들이 합쳐져 커다란 산을 이루고, 결국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야 만다. 작은 변화에 신경 쓰지 못한 우리의 탓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처럼, 지금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합리화시켜 등 뒤에 두지 말고, 바로바로 해결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세 번째, 적당한 고통과 시련이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앞의 목록들과 중복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삶은 개구리 증후군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편안함과 단순함만 추구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그저 그런 '도시노동자'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통찰력 있고 지각 있는 인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에게 좀 더 모질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전을 상실해버린 삶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도전과 열정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그 어느 곳에서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을 것이다.계속 나의 몸에 채찍질 해가면서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면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뜨겁게 끓고 있던 나의 물에 찬물을 끼얹는, 곧 나를 죽지 않고 다시금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지금, 무언가가 나의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현재 자신의 온도는 몇 도일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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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27 23:02

대학,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되길

대학에는 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같은 학교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던가. 술 마실 때만 친구가 아닌, 과제 할 때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과제가 끝나면 전화번호부에서 삭제하는 사이가 아닌, 그런 사람을 대학에서 찾았는가? 실제로 학과, 동아리, 스터디 그룹 등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모임은 많다. 하지만 이는 소수학생에게 해당되고 대학생활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대학생 5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5%가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칭 '아싸'라 불리는 아웃사이더는 본래 외부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요즘 대학가에서는 다른 학우들과 어울리기보다 주로 혼자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 대학생 3명 중 1명은 학과생활에서 겉돌며 혼자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응답에 따르면 대부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아웃사이더가 됐다. 개인주의 성향이 큰 사회환경과 맞물려, 대학생들 역시 서로 어울리고 학우들 간 우애가 강조된 90년대 이전과 비교해 개인주의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인지 대학생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66.7%로 절반 이상의 결과를 보였다. 아웃사이더가 개인의 생활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긍정적이고 밝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대학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을 목격하곤 한다. 치열한 경쟁,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 최근에는 얼마전 제대한 예비역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은 필자가 대학을 다니면서 들었던, 정말 우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건을 겪고도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같은 대학, 옆 학과의 학생이 무관심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는 또다른 무관심으로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 '난 혼자가 좋아, 혼자가 편해' 이런 말을 서슴지 않게 내뱉어도 인간은 본디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속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외로움 속에 우리를 무자비하게 던져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도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함께 입학한 모두가 같은 반인 셈이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곳도 자유로운 대학이다. 대학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대학생이고, 더 이상 엄마 손잡고 다니는 어린이가 아니다. 그렇기에 다가와 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아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하다. 먼저 다가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마라. 같은 수업을 듣는 옆자리 학생에게 말을 걸어보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모전, 스터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봐라. 대학 생활 4년 동안 자신을 고스란히 외로움에 구속하지 말길 바란다. 필자도 남은 한 학기를 더불어 살아 대학의 소속감을 느끼면서 다니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20대여, 청춘을 잃지 마라. 무엇인가 포기하기엔 우린 아직 뜨거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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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20 23:02

'딴 짓'을 허하라

드디어 졸업을 한다 생각하니 오래입고 있던 갑옷을 내려놓는 것 같다. 졸업이 뭐 길래 이토록 숨차게 달려왔을까. 대학 입학 전, 세 번의 졸업식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졸업앨범만 의무의 증거처럼 고이 꽂혀있을 뿐, 시간은 말이 없다.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 과거를 생각하면 힘이 든다.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라 노동이라는데 확신한다. 딴딴하게 굳어 도무지 입을 열 마음 없는 벽이 앞에 있다. 그 벽에 무쇠숟가락 하나 들고 동굴을 파보겠다는 심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고 파내도 끝은 없다. 끝끝내 그것들은 말이 없다. 먼저 졸업한 친구들은 공모전이나 인턴십, 기업체 서포터즈 활동 같은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다. 경험마저 흥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못마땅할뿐더러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 붓길 강요당하는 분위기에 거부감이 드는 까닭이다. 또, 같은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처럼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위로받으러 원정 가는 걸 보면 단체로 기념품이라도 얻어오려고 그러나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똥구멍에 힘을 불끈 주고 끙끙대며 걸어온 4년은 무심하기만 한데 말이다. 개성을 찾고 창의력을 키우라면서도 '딴 짓'을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 속아온 우리가 아니던가.얼마 전 한 대학신문에서 '쓸데없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가 있어 유심히 봤다. 평생 영화광으로 산 덕분에 글도 쓰고 진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는 한 시인, 성(性)에 관심이 많아 어렵게 포르노잡지를 구하며 읽었는데 그 때 쌓은 지식 덕분에 최초로 성적담론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한 국문과 교수, 유학시절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쌓은 경험으로 사람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정치인, 대학 축제 때 떡볶이를 팔아 100만원에 가까운 흑자를 낸 일을 기억으로 그때 마음을 평생 교훈으로 삼는다는 출판 사업가까지. 그들의 과거는 참으로 쓸데가 없다. 대학생은 묻는다. 과거를 묵묵히 과거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도도하게 내 갈 길만 가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저것 다 해보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있는가. 하지만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대학생(大學生)이 아닐까 싶다. 겪지 않고서는 모두 하찮은 말로 듣는 싸가지 없는 우리지만, 그마저도 모두 버릴 것 없는 삼천포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딴 짓을 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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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13 23:02

6월의 기억

'아니 벌써'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개강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 되었다. 매월 그랬던 것처럼 일정을 체크하려 다이어리를 폈다. 6일은 '빨간 날'이고, 9일부터 유로 2012가 개막한다. 내 생일에 빅 매치가 열리는군. 근데 기말고사는 그 다음날부터고. 그렇게 쭉쭉 일정을 정리하다가 책상에 놓인 종이 쪼가리를 봤다. 아, 예비군 훈련이 있었지. 날짜를 살펴보니 공교롭게도 6월 25일이다. 625에 예비군 훈련이라. 뭔가 느낌이 묘하다. 씁쓸하면서도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6월. 우리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이고 기억일까.생각해보면 6월에 대한 느낌, 감정들은 세대별로 각자 다른 것 같다. 나와 같은 또래들, 특히 남자들에게 6월은 월드컵의 짜릿함이 떠오르는 것 같다. 벌써 10년 전이지만, 2002년 6월은 온 국민들에게 기쁨이었고 환희였고 감동이었다. 국민들은 모두 빨간 옷을 입어서였는지,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분출되었던 응원의 열기와 함성 때문이었는지 그해 6월 대한민국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와 희망을 공유하고,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때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던 것 같다.우리 아버지세대들, 혹은 흔히 386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에게 6월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간절함이 폭발했던 시간들, 그로인해 승리했던 시간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1972년 10월 유신이후로 15년 동안 지속되던 군사독재에 맞섰던 그 함성들. 마침내 지금의 헌법으로 개정해낸 우리의 선배들에게 6월은 어떤 느낌일지. 똑같은 느낌과 생각일수는 없지만 그때 선배들의 모습들을 생각하며 상상해본다. 개인적으로 '다른 6월들'에 비해 그들의 6월은 비교적 조명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또한 우리의 할아버지들. 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지켰던 6월.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가 총을 겨눠야 했고 싸워야 했던 그때의 6월은 어땠을까. 그나마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때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했던 슬픈 6월. 그 슬픔을, 피와 땀들을 기억하고자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해놨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날은 그저 '빨간 날'이었을 뿐인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물론 현충일은 625 전쟁에서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들을 기억하기 위한 날이다.)6월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 우리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잊어지지 않는, 잊어서는 안 되는 6월인 듯하다. 2002년의 6월은 잊지 못할 감동이었고, 1987년의 6월의 함성은 국민의 열망을 담아 '성문화'가 되어 잊어지지 않으며, 1950년 6월의 피와 땀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평온한 6월도 2002년의 행복했던 6월도 1987년의 6월, 1950년의 6월이 있었기에 허락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나니 이번 예비군 훈련에는 다른 때보다 '비교적' 성실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투복을 입으면 몸이 '천근만근'이며 마치 '피곤한 사람 경연대회'에 선발된 선수처럼 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예비군 훈련 지도하시는 간부님들이 우리네 6월을 '재미있게' 상기시켜 주신다면 좀 더 협조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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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06 23:02

21세기 페미니즘의 현주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이 사회에 팽배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떠할까. 과거에 비해 현대여성들의 지위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여성 억압의 원인을 밝히고 궁극적으로 여성 해방을 목표로 운동하고자 했던 페미니즘의 시초인 자유주의 이론이 출현하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노력해왔지만 그 빛을 보기에는 아직 역부족한 듯하다. 물론 사회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저 안방마님으로만 살았던 조선시대와 비교한다면 그 변화는 크겠지만 말이다.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점차 페미니즘의 이론이 발전하고 현 사회에 맞춰 그 해결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가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현재까지도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 남녀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위 말해 '먹을 것이 많은 밥그릇'에는 아직도 남성 비율이 현저히 높은 것이 현 상황. 여성 억압에 관한 수많은 원인 중 가장 신뢰받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뼈 속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도'이다. 안사람, 바깥사람이라는 말로 여성을 집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남성을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구분 짓고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눠 생활해온 지금까지의 역사가 우리사회 여성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다. 필자 또한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보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학습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상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습을 배워왔다. 때문에 생물학적 성의 역할로 인해,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배제되고, 그 기간 동안 남성지배적 사회가 이뤄져, 결과적으로 지금의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를 정착시켰다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 억압의 해결책을 생물학적 성역할을 없애야 한다는, 즉 여성이 출산을 하는 과정을 기술의 발전을 통해 남성에게 전가시키는 등의 과정만이 그 '방법이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받아들여지기 힘든 해결책이 아닐까.사실,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 진다해도 남녀가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는 어렵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우리가 갖고 온 수백 년의 역사가 단기간에 치유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인 21C에는 경제적인 면에서 여성이 완전한 자유를 이룰 때, 비로소 여성억압도 서서히 완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것 또한 지금의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브랜드 MCM으로 유명한 성주그룹 CEO인 김성주 회장은 "여성이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서 부잣집 마나님이 되는 것, 예전엔 나쁘진 않았지만 현대 여성이 추구할 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취집(취직+시집)'이라는 말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녀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증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장해야 할 점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터무니없는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져 버린 축구장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책골을 넣을 것인지, 오르막길을 올라가 1골을 터트릴 것인지. 이제, 우리가 생각하고 주장해야 할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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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30 23:02

대화가 단절된 가족

게임에 빠진 아들 때문에 우울병으로 점점 말라 가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한집에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가족, 의사소통의 부재로 심한 말이 오고가는 아버지와 딸. 가족은 서로를 위로해주지 못하고 하루하루 서로에게 미움과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바로 대화였다.SBS 스페셜 '무언가족(無言家族)'이 지난 13일부터 2회에 걸쳐 방영됐다. '무언가족'에서는 대화를 포기해버린 가족들을 통해 오늘날 가족이 처한 불편한 현실을 조명했다. 갈등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실제로 나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행복의 울타리라는 가정은 대화가 단절된 채 더 이상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기묘한 동거로 비춰졌다. 우리 현실의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한 다큐멘터리였다. 가부장적 사고로 가정을 군림하던 아버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과거, 힘을 통해 가정을 꾸려가야만 하던 시대와 달리 현대 사회는 힘이 아닌 두뇌로 그 노동 가치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런 몰락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혼란을 겪을 수밖에는 없었고 그런 혼란은 결국 극단적일 경우 가족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또한 경제 불안정으로 안정적인 직장이 점차 사라지며 불안해진 가장은 부담감을 느끼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가정 전체로 확대됐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무언가족'의 탄생은 예정된 순서일지도 모른다. 개인주의와 핵가족화의 확대는 '무언가족'의 밑거름이 됐다. 더욱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점점 그 범주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언가족'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해법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가족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무너지는 말과 행동도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만둬야한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한다. 결국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부모님들과 어떤 시각을 공유하고 있는지 혹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가치관만을 투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또한 서로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식사시간이라도 함께 해보자.비로소 제대로 서로를 바라보면 고백과 용서, 그리고 이를 통해 치유가 될 것이다. 가족의 관계 회복은 다가가기 힘들 뿐 절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요즘, 가정에서마저 소통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존재를 다시 고민해보길 바란다. 가족의 행복이 바로 자신의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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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23 23:02

그와 그녀가 사는 세상

책이나 신문보다스마트 기기가효율적으로 보이지만실제로도 그럴까?그는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출퇴근 시간의 8할을 지하에서 보내는 그는 가끔 자신이 두더지 같다고 생각한다. 낮과 밤의 시간개념을 상실한 지하철 풍경은 흑백영화처럼 지루하기만 하다. 이곳에선 서로에게 묻거나 답할 일이 거의 없으며 재미없는 농담이나 시답지 않은 얘기 따위는 더더욱 할 사람이 없다. 한 공간에 이토록 밀착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궁금한 일이 없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졸린 눈을 부릅떴다. 한눈에 봐도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마치 지하철 안이 거대한 스마트기기 천국이 된 것처럼 사람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가장 흔한 모습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이들이 삭막한 도시의 모습을 지하에서 똑같이 재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도시의 잔재라 해야 좋을까? 하지만 지하든 지상이든 한번 발을 들이면 모두 새삼스러워진다는 것을 안다. 가장 낯선 것이 가장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녀가 느끼는 체감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스마트기기를 쓰는 것이라고 이 지하세계는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혁신이라 찬미하고, 디지털 시대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놓았다고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마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영화 한편이 법정과 국회를 흔들었다고 광고하는 사람들처럼. 이제 '그'와 '그녀'는 지하철이든 어디든 책이나 신문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을 더 많이 마주할 것이다.그러나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모두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업무가 연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기기의 특징인 '동시 다중작업 수행(멀티태스킹)'이라고 일컫는데 언뜻 보면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중 과업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다. 예를 들어 가족여행을 가도 제안서 검토 의견을 구하는 동료의 메일에 답장을 해야 하거나, 출장에 가서도 상사에게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독촉 받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당신은 전화를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고, 운전을 하면서 DMB를 시청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가? 그곳이 침실이든 화장실이든 강의실이든 회사든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상사가 업무 시간 이후에 전화를 했다고 받지 않을 강심장은 과연 있는가? 스마트한 시대에 눈 뜬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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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6 23:02

전주·완주 통합, 진정성이 중요

살랑살랑 봄바람이 기분까지 '딸랑딸랑' 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봄이 우리의 곁에 찾아왔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결혼하고 싶게끔 만드는 날씨이다. 물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도 많은 '시즌'이다. 결혼식장에 가서 결혼하는 신랑신부를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두 사람이 같이 살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지난 4월 30일 김완주 전라북도 지사, 송하진 전주시장, 임정엽 완주군수가 전주완주 통합건의에 전격 합의했다. 이들이 발표한 '완주전주 통합 공동 건의 합의문'에는 10가지의 '완주전주 상생발전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통합시 청사 완주군 배치, 종합스포츠타운 공동 건설, 농업발전기금 확보, 농업농촌 안정적 투자재원 확보,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지역 규제완화 건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신축 이전, 대규모 위락단지 완주군 내 조성, 완주지역 주택아파트단지 조성, 공공기관 및 시설 완주 이전, 택시사업구역 통합 등이다. 사항들을 주욱 살펴봤을 때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느껴진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왔던 전주완주 통합의 첫 단추가 꿰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도내 언론에서는 통합의 효과를 기대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필자는 느꼈다. 사실 필자는 완주군민으로서 통합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끼기에 완주군은 충분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느껴진다. 로컬푸드 사업이나, 마을 만들기 등의 사업 등은 지역의 특색에 맞게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지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능력도 있고 여유도 즐기는 '나름 골드미스'같은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전주는 뭔가 중후한 멋이 있기는 하지만 특징도 없고 뭔가 궁상맞은 '노총각' 느낌?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사실 그럴 것도 없는 것이 필자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전주에서 보냈다. 완주군 봉동읍으로 이사 왔을때도 전주 소재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며 지금까지도 전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주와 완주는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완주군에서 전주시로 출근하고 등교하고 있으며, 못지않은 사람들이 3공단을 포함한 완주군의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완주군청이 전주시에 있는 것이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타는 버스는 전주시의 버스이니깐. 타 지역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전주 산다고 답할 때가 많다. 전주에서도 바람 쐬며 쉬고 싶을 때, 모악산에도 오르고 고산휴양림에서 심신을 달래기도 한다. 그만큼 전주와 완주는 한동네 같은 느낌으로 서로 이질감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합의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동거한다고 꼭 결혼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결혼은 상대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공유해야 한다. 서로의 통장도 '까서' 경제적 능력도 확인하고, 서로의 성격도 고려해야 하고, 집안환경도 중요하다. 결혼한 수많은 선배들이 말하길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이 번뜩 떠오른다. 통합도 현실이다. 서로가 win-win할 수 있다면 누가 쌍수 들고 만류하겠는가. 단지 서로가 정말로 상생하려면 '주판알 굴리지 말고' 진심이 담긴 '프로포즈'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어차피 집안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혼인신고부터 하고, 살림부터 합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왕 같이 산다면 양가집안 사람들의 축복받으며 친구들의 시샘어린 축하받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잘못하면 집으로 끌려가 두들겨 맞고 머리 깎이고 방에서 못 나올수도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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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9 23:02

'비정규직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소리 쳐 보아도~'. 가수 리쌍의 노래 가사처럼 현재 우리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정치인들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펼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소리 치고 발버둥 쳐봐도 젊은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끊긴지 오래다.무엇보다, 젊은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 진부한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먹고 사는 일에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말이다. 먹고 살만한 경제력이 있더라도 젊은이들이 놀고먹는 것 보단 사회에 나가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문제는 젊은이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고용보호'의 도입 때문이 아닐까.'고용보호'는 1970년대 선진국들이 '높고 지속적인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놓은 정책으로, 쉽게 말해 해고를 어렵게 하는 사회조항이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계속해서 실업률이 상승하자 선진국들은 이에 상반되는 개념인 '노동시장의 유연성'제고에 관심을 가졌다. 선진국들은 고용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경쟁력을 더 키워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일찍이 고용보호 정책을 제거한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란 개념은 현재 명확하지 않지만 유럽과 미국이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고용자가 마음대로 근로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의미로, 미국은 고용자가 근로자를 강하게 만들고 근로자의 노동이동을 쉽게 하여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지나친 정규직 고용보호와 더불어 경직된 노동시장의 형태를 갖고 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2007년 비정규직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비정규직법'이 이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570여만 명이었던 비정규직이 법을 시행한 이후 600여만 명으로 증가했으니 말이다. 2003년 OECD 국가들의 '고용보호'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26위를 기록함으로써, 1998년에 16위이었던 것에 반해 10계단 더 상승해 고용보호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이는 정규직 해고가 불가능 하고, 따라서 정해진 그릇 안에서 새로운 인재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고용보호 정책이 젊은 인재들에게는 죄어오는 옥쇄를 자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나친 정규직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법'을 폐기한 후 진정으로 효과적인 새로운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 나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교육받고 노력해 온 젊은이들의 능력이 도태되지 않도록,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더욱 개발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깨달음 있는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악순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정규직법, 과연 그것이 옳은 행태인지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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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2 23:02

우리는 아직 젊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뱉어버린 말과 쏘아버린 화살과, 지나간 인생 그리고 지나쳐버린 기회다'라는 아바리안 속담이 있다. 상반기 공개 채용이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 학기에 졸업한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졸업생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부모님의 압박으로 인한 초조함,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채용에서 줄줄이 낙방한 실화 등 하나같이 어두운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봄을 즐기지만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들은 겨울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보였다. 대학생 시절에 스펙에 한 줄 더 적을 활동을 하지 않고 시간을 하염없이 보낸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욕심을 가지고 많은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욕심과 욕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헛된 욕심과 아름다운 욕망은 다르다. 헛된 욕심은 자신을 속이고 기계적인 가면의 삶을 살게 된다. 헛된 욕심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이 욕망이라 착각한다.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고자,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ABC 뉴스 한국 지국장 조주희 기자는 욕망을 '남을 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욕의 의미가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이를 이루기 위해 세우는 구체적인 행동 강령과도 같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욕심이 많을 뿐이지, 그 욕심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러면서 '그랬어야 했는데'라며 과거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시간 때문에, 남 때문에 등의 핑계는 집어치우길 바란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큼 달콤한 마시멜로를 먹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나 자신을 지킬 것인지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아름다운 욕망을 꿈꿀 자격이 생긴다.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치를 발견할 줄 알아야만 아름다운 욕망을 이루게 해줄 매력이 발산된다. 매력적인 나 자신을 만들고 우리는 지나가 버린 기회를 후회하는 일이 아닌 다가오는 기회들을 알아차리는 능력과 센스를 길러야한다. 지나간 시간과 놓쳐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후회할 필요가 없다. 경험으로 숙련된 노련함보다 조금은 서툴지만 생기 있는 열정을 가진 인재가 신선하다. 비록 지금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한 세상이 펼쳐졌을 지라도 좌절하지 말자.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과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는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우리는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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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25 23:02

헌책방 이야기

작년 이맘 쯤 전주 헌책방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옆 민중서관 본점이 문 닫은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고 몇몇 헌책방도 '임대' 종이만 써 붙이고 닫은 곳이 많아 괜히 울적한 터였다. "다른 데 가서 알아봐요! 약 올리지 말고."하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장사도 안 되고 주변 책방은 하나둘씩 문 닫는데 학보사 기자라고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진상손님보다 더했으리라. 같이 간 동료와 나는 이러다 소금 맞고 쫓겨날까 싶어 조마조마해 하며 책방을 관찰했다. 헌책방은 고3 학생들이 팔고 간 문제집과 참고서가 가득했다. 그냥 헌책방이 아니라 헌 참고서 책방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 쯤 되자 주변 학교를 다니는 여고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그 중에 한 학생에게 말을 붙여봤다."팔러 오기만 하고 사지는 않아요." 한 학생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제 2학년 올라가는데 다 읽고 난 책들을 팔러왔단다. 값은 많이 주냐 했더니 어차피 필요 없는 책이라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참고서는 곧잘 팔려 괜찮은 눈치였다. 하지만 다음으로 온 어느 아저씨 손님은 한 눈에 보기에도 무슨 책인지 알아보기 힘든 너덜너덜한 책들을 계산대 위에 턱 올려놓았다. 값을 못 쳐주겠다고 하자 몇 십 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주인에게 상말을 퍼붓고는 돌아갔다. 아주머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헌책방 골목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다시 찾아간 헌책방골목은 카운트다운 하듯 네 곳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제는 행전안전부에서 전주한옥마을을 세계적 명소로 키우려는 발판으로 전주시와 협약을 맺어 떠들썩하고 객사는 열흘 뒤 열릴 전주국제영화제 준비로 분주하다. 하지만 바로 옆 골목은 쓸쓸하기만 하다. 2012년이 전북방문의 해라고 하지만 전북도는 후미진 골목이나 누군가의 추억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나는 자꾸 아쉽다. 반질반질한 한옥마을에 비해 북적이는 객사에 반해 다락방에 혼자 남은 기타 같은 헌책방이 안타깝다. 누군가 조금만 물꼬를 틀고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삼십 년 동안 헌책방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들이 이젠 혜택을 받아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그러기 위해선 똑똑한 전주가 헌책보다 새 책이 더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테이크아웃 카페가 스터디 공간이 되고 만남의 장소가 되듯 헌책방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전일슈퍼의 가맥이 그 이상을 넘어 전주만의 문화가 되고 있듯 헌책방도 하나의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 전주의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대도시의 헌책방이 어떻게 시민들과 손잡고 걸어가고 있는지 전주가 공부하고 본받았으면 한다. 그래야 먼지 쌓인 책들이 반짝반짝 새 주인을 찾고 골방이 된 책방이 제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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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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