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의술] 우울증
우울증은 저조한 기분을 주축으로 하는 병이다. 우울은 슬픔과 달라 외부환경의 자극을 받지 않고 나타나는 반면 슬픔은 대상을 잃어 일정기간 외로움 서러움 연민의 정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나 우울은 정신과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유전적 요인, 신경생화학적 요인, 사회심리적 요인 등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동안 신경쇠약, 불면증, 노이로제, 신경성 심장병, 화병, 신경성 소화장애, 신경성 장염, 원인불명의 통증, 혹은 만성 피로증후군 등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그저 막연하게 "신경성"이라고 하여 그 정체가 불확실하던 증세들이 알고 보니 대부분 우울증의 일종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최근 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우울증은 여성이 남성 보다 세배 정도 많으며 평생동안 전체 인구 5명중 한 명이 걸릴 수 있을 정도로 감기처럼 흔한 정신장애 중 하나이다. 우울증에 대해 전북대병원 황익근 교수로부터 들어본다.▲ 우울증이란 무엇입니까?- 우울증이란 우울하고 불유쾌한 기분이 주 증상을 이루면서 일상생활에서 재미나 의욕, 그리고 즐거운 감정을 상실하고 피로감이 증가하는 일종의 기분장애로서 이런 증상이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없습니까?- 우울증이 오면 기분이 우울해질 뿐만 아니라 신체적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됩니다. 그래서 쉽게 피로를 느끼면서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며, 특별한 이유 없이 몸이 여기저기 아프거나 결리고, 식욕 감퇴와 소화장애, 그리고 불면증과 체중감소가 옵니다. 여성의 경우 월경불순이,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같은 성기능 장애가 동반되기도 합니다.심리적인 증상으로서는 자존심이 떨어지면서 자기비하, 죄의식, 후회, 장래에 대한 비관, 의욕상실이 동반되며 심한 경우 자해 또는 자살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 나이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우울증이 생깁니까?- 그렇습니다. 우울증은 발병연령에 따라서 소아·청소년 우울증, 성인기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노인성 우울증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소아나 청소년은 정서발달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이 나타나는 대신 행동장애가 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아의 경우는 학교공포증이나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증상이 있을 수 있고, 청소년의 경우는 무단결석, 자퇴, 본드흡입, 음주, 흡연, 가출, 비행, 등이 흔한데 이는 우울한 감정에서 탈피하려는 일종의 자기 도피적 행위로서 우울증의 한 증세인 경우가 많습니다. ▲ 우울증은 왜 생깁니까?- 사람이 상황에 적절한 수준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뇌에서 기분과 관련된 뇌 신경홀몬의 분비 혹은 조절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천적 또는 후천적 요인 때문에 이런 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면 우울증이 나타납니다. 선천적 요인으로서는 유전적인 것이 가장 많습니다. 유전적으로 뇌 신경홀몬 체계에 취약성을 타고 난 경우 일정한 시기가 되면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쉽사리 우울반응을 일으킵니다. 후천적 요인으로서는 상실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배우자의 상실, 연인의 상실, 형제의 상실, 직장의 상실, 재산의 상실, 젊음의 상실등 유형의 상실뿐만 아니라 중요한 인간관계의 상실, 자존심의 상실, 희망의 상실, 등 무형의 상실도 우울증의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나 형제 등 사랑하던 사람과의 사별이나 이별 또는 관계상실의 경험이 클수록 훗날 어떤 형태로든 이별이나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우울증이 쉽게 발병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의 검사방법은 무엇입니까?- 혈액에서 스트레스 관련 홀몬의 반응을 측정하거나 심리검사를 하는 방법이 있으나 보조적인 검사에 불과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과 전문의와의 면담입니다. 면담을 통하여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임상증상을 하나 하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진단법입니다. ▲ 우울증의 치료는 어떻게 합니까?- 자살충동이 있거나 식욕부진과 체중감소가 심할 경우에는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외래통원치료가 가능합니다. 치료는 약물치료 및 정신요법이 중심이 되며 그밖에 전기 충격요법이나 인지행동치료가 있습니다.모든 치료 중에서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며 약 80%가 약물치료에 의하여 회복됩니다. ▲ 약물복용은 얼마나 해야 합니까? 습관성은 없습니까?- 증상이 사라진 후에도 약 6-12개월 혹은 그 이상 약물을 복용해야 재발을 최대한 막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치료 후 2년 이내에 상당수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약물복용 및 상담이 필요합니다. 항우울제의 경우 장기 복용하여도 습관성은 없습니다. ⊙잊을 수 없는 환자벌써 3년 전 일이다. 40대 후반의 몹시 지쳐 보이는 가정 주부였는데 정신과를 찾아오는 일이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으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찾아 왔다고 하며 진찰실 의자에 앉았다. 피로감, 소화장애, 가슴 답답증, 이명, 인후 이물감(목구멍에 뭐가 걸려있는 느낌) 등 다양한 신체증상으로 너무 오래 고생을 하여 이제는 지쳤다고 하였다. 병력을 자세히 들어보니 상기 증상은 수년 전부터 있었고 이와 더불어 불면증이 있었는데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면 그 뒤에는 거의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을 자도 꿈만 꾼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몸이 피곤하고 요통과 근육통이 심하여 몹시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으며 이제는 지쳐서 죽음까지 생각하여 보는데 결혼을 앞둔 딸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어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하였다. 문제는 이 환자가 정신과에 오기까지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였다는데 있었다. 그 동안 이 환자는 요통, 빈뇨, 두드러기, 만성피로와 소화장애, 양쪽 어깨 사이의 통증, 귀 울림증과 인후 이물감 등으로 많은 병·의원과 심지어는 한의원까지 찾아다니며 다양한 검사와 외래치료, 또는 입원치료까지 하였으나 조금 효과가 있는 듯 하다가 재발하거나, 한가지 증상이 좋아지면 다른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곤 하여 뚜렷한 병명도 모르는 채 지금까지 지내고 있었다. 그 동안 4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며 이제는 환자뿐 아니라 이 환자 뒷바라지에 남편도 지쳐있었다. 어떤 의사는 아주머니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기도 하였으나 마치 자기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듯 하여 한 귀로 흘려 버렸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모 주간지에서 우울증에 대한 기사를 읽고서 자기가 혹시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자존심에 용납되지가 않아 차일 피일 미루다가 용기를 내어 이제야 찾아 왔다고 하였다. 이 환자와의 면담을 통하여 만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1개월 정도 항우울제를 투여하면서 정신요법을 병행하자 환자의 증상은 극적으로 소실되었다. 우울한 기분이 좋아지면서 여기저기 아프던 신체증상들도 말끔히 사라지자 이생을 다시 사는 희열을 느꼈다. 이 아주머니의 경우 신체증상만을 주로 호소하였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의사들이 신체적 증상만 보고 환자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우울증은 보지 못하였고 아주머니 자신 역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 때문에 조기치료의 기회를 놓쳐 그간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늦게나마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아주머니는 증상이 소실된 후에도 약 9개월간 투약을 하였으며 3년이 지난 현재 자신이 죽지 못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던 그 딸도 결혼시키고 남편과 더불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이런 저런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이따금 나에게 전화로 상담하곤 한다./ 전북대병원 황익근 교수⊙경력 1943년 임실 출생. 1969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 취득.현재 전북대 의대 정신과학 교수 겸 같은 대학병원 정신과 과장.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 교환교수. 전북대 의대 학장 및 산업보건대학원장 역임.한국 정신분석학회 회장과 한국 수면-생리학회 회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부회장 역임.저서 및 역서: 신경정신과학(공저), 도와 심리학, 정신분석 기법과 정신적 갈등, 정신분석용어 해설집,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나눔(교수 에세이,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