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곳에선] 전주시 역천로 일대 공구전문상가
톱, 벤찌, 몽키 스패너, 전정가위, 줄자, 송곳, 드라이버….어느 가정에서나 한 가지 쯤은 필수품으로 갖추고 있을 공구들이다.이 것들은 추운 겨울 밤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났다거나 수도관이 동파했을 때, 변기가 막혔을 때, 누전으로 퓨즈가 나갔을 때, 가전제품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등 위급상황의 기본 대처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인다.전주시 고사동 일대와 대륙빌딩 사거리에서 천변쪽으로 난 역천로 주변에 가면 이러한 공구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상품종류도 다양해 이름은 물론 도대체 용도를 짐작할 수 조차 없는 수천가지의 공구들이 판매되고 있다.가히 인간이 ‘도구의 동물’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요즘 이 공구전문상가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형성배경다가동·태평동 일대 공구전문상가는 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그 보다 20여년 전인 50년대에만 해도 이 일대는 중앙동 핵심상권에서 상당히 떨어진 변두리 지역으로 분류돼고 있었다.현 시청자리에는 전주역이 교통의 혈맥으로 우뚝 서 있었으며 주변을 따라 천변으로 내려오는 역천로 길목에는 당시만 해도 최첨단 업종으로 분류되던 대형 자동차 정비공장 2∼3곳이 터를 닦았다.정비공장과 호혜관계에 있는 자동차 부속상들도 이 곳에서 성업 중이었다.그러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전주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우아동 외각으로 이전하면서 자동차 정비공장들도 공업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팔복동 일대로 속속 빠져나갔다.바늘 가는 데 실 가듯이 자동차 부속상들도 하나 둘 씩 뒤를 따랐다.바로 그 빈 자리에 공구상들이 들어서면서 다가동 일대는 공구전문상가로 자리잡기 시작해 그 세가 오거리까지 이르렀다.특히, 공구류 수요가 많은 건설경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80년대에는 20여곳이 성업하며 최고 활황기를 구가했다.◆현재 모습5∼6년 전 역천로 일대가 도로 확·포장으로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이 일대에는 공구 및 기계류 소매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공산품을 판매하는 소매점 형태의 업종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이유 중 하나.특히, 공구상은 재고부담이 없는데다 수익성을 떠나 창업 난이도나 경영상 필요 숙련도가 높지 않다는 장점 때문에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끌어 모았다.현재는 볼트·공구상을 비롯해 철물점, 전기관련 업체, 호스·모터 취급상, 건설기계 임대사업자, 선반업소 등 1백50여개 점포가 들어서 있어 유사업종으로는 도내에서 최고의 집적도를 과시하고 있다.취급하는 제품들도 다양해 드라이버·스패너등 기본적인 가정용 공구들부터 저소음 석재 절단공구 용접기계, 고마력 절단브레이드, 각종 절단기, 전기원형톱, 전기지그톱, 임팩트 드릴, 가솔린 엔진 임팩트 렌치등 최첨단 공구들도 이 곳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많은 업체들이 난립해 서로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다 다양한 상품을 비교해가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다.◆공구전문상가의 위기최근 이 곳 공구전문상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전주시의 도시계획구역 면적 중 공업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국도시평균 4.9%에 훨씬 못미치는 2.0%에 불과해 원래가 상권기반이 취약한데다 IMF 이후 건설경기 쇠락으로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게다가 1백여개가 넘는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치열한 고객확보전으로 인한 출혈경쟁으로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하지만 이 보다도 더 큰 위기감은 도심상권의 북상이동에 따라 점점 거세지고 있는 압력에 기인한다.고사동은 전주 중심상권인 중앙동과 맞닿아 있다.중앙동 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심상권은 의류 소매점이나 음식점, 오락·유흥업소등 신세대 취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특히, 높은 임차료 문제로 중심상권에 입점하지 못한 일부 유명 브랜드와 계층을 달리하는 특화품목, 약간 여유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음식점이나 기타 서비스업이 주변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면서 모방상권 팽창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이에 따라 신세대의 쇼핑과 유흥에 사활을 건 소비상권이 강한 힘으로 북상이동하면서 공구상가를 밀어붙이고 있는 판국이다.일각에서는 공구 및 공업관련 소매점들이 도시 중심에 들어서 있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도시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주차 및 교통난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또한, 쇼핑과 유흥·오락문화에 공업관련 소매점들이 이질적인 모습으로 얽혀 중심상권이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상권이동 움직임공구 및 기계 소매업은 고객 유발형 업종들이다.고객 유발형 업종이란 점포가 고객을 유발하는 형태로 통행객에 상관 없이 점포가 갖고 있는 특화된 전문성으로 인해 수요를 가진 고객이 반드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따라서 위치에 별 구애를 받지 않고 입점지를 고를 수 있다.최근 광주·대전·대구 등지에서는 기계공구상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전문 공구유통상가를 별도로 마련해 이전,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있다.이러한 움직임이 최근 전주지역에서도 감지되고 있다.한국공구연합회 전북지부(지부장 전원배·협신기계공구 대표)가 활발히 조직건설에 나서면서 궁극적으로 전문 유통단지 조성을 목표로 야심찬 포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