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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전문가로 가는 길, 마당 문화기획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문화’가 차고 넘치는 시대. 각 시·군에서 기획한 각종 문화행사들이 꼬리를 물고, 문화시설의 상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문화계 종사자와 문화행정 담당자는 물론, 문화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강좌가 열린다.㈔마당(이사장 정웅기)이 세 번째 마련한 제3기 마당 문화기획 아카데미(6월16일∼7월23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 세미나실). 내일을 준비하는 문화기획 전문가를 양성하는 이 강좌의 1기와 2기 수료생들 중에는 상당수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전주전통문화센터, 전주공예품전시관을 비롯, 각 문화공간과 축제 조직위에 진출해있는 상태. 그만큼 지역에서는 문화기획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강좌의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프로그램에서 ‘선택’된 내용을 바탕으로 ‘집중’해 6주 16강좌(54시간)로 예년보다 기간을 줄인 대신 실질적인 강좌를 배치했다. 문화기획의 기초를 쌓는 이론과정(4강좌)과 문화기획입문(7강좌), 실무과정을 진행할 심화과정(7강좌), 공연장 현장학습으로 진행되는 문화기획아카데미의 매력은 역시 실무위주의 전문적인 강사진. 올해도 ‘화려한 강사진’이 포진해있다.조창희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장, 안이영노 한겨레 문화기획학교장, 조수동 축제예술감독, 윤성진 공연예술기획 이일공 대표, 박은실 추계예술대학 예술경영대학원 전임교수, 김영수 서울문화재단 문화사업국장, 조은아 추계예술대 예술경영대학원 전임교수를 비롯, 문화기획의 실제를 만날 수 있는 강사진이 그들. 특히 크레디아 정재옥 대표(호암아트홀을 위탁경영)의 ‘문화공간 경영,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와 국내 공연제작 실무사례를 소개할 에이넷 코리아 김주섭 대표의 ‘뮤지컬, 기획에서 제작까지’, ‘생존과 균형’과 ‘관객 모으기’를 주제로 문화기획에서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법과 관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을 소개할 폴리미디어 이선철 대표와 홍영주씨(단국대 예술경영 강사)의 시간도 관심을 모은다.조법종 우석대 교수와 이정덕 전북대 교수, 문윤걸 문화평론가, 김은정 전북일보 문화교육부장 등 전북지역 문화예술 전문가들도 참여해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무능력을 강화한다.전문적이고 실제적인 문화영역에 관심 있는 일반인과 대학(원)생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선착순 40명 모집. 수강료는 일반 40만원(학생 30만원). 문의 063)273-4823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24 23:02

[양복규칼럼]相思花

상사꽃(相思花)은 연인간에 서로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양보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교시해주는 꽃으로 선비들은 상사화의 글자를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조석으로 보면서 혹 나의 언행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가 없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상사꽃은 흰색에 붉은 무늬가 있으며, 넝쿨과 잎과 꽃이 서로 엉키거나 겹치고 가리지 않는 상태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인동넝쿨의 금은화와 같다. 금은화도 상대방에 피해가 없도록 자생한 것은 물론 옆에 있는 해바라기나 봉숭아나뭇가지 혹은 잎이 부러졌을 경우 인동넝쿨로 감아서 일으키고 넝쿨에서 나오는 진액을 발라서 살리는 상사의 미덕이 있다.상사열매는 상사자 또는 홍두(紅豆)라 하는데 자줏빛의 열매로 완두콩정도의 크기다. 상사자의 기름은 피부미용재료로 쓰이며, 약재로도 먹는다. 꿈자리가 불쾌하고 정신이 불안하여 상대방을 괜히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효력이 대단하다고 중국 만물지인 '사해(辭海)'에 기록되었다.러시아 등 한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사나무도 있다. 상사나무는 우리나라의 정자나무와 같은 것으로 큰 것은 수령목으로서 반경 500m가 넘는 가지라지만 기록일 뿐 실제는 그렇게 클 수가 있을까싶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상사나무 밑에서는 온갖 나무와 잡초들이 함께 살고 있으며, 낙엽도 잡초나 나무위에 떨어지지 않고 생물이 없는 곳에 떨어져서 밑거름이 되고 있다. 목장지패(木長之敗)라는 어구가 상사나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해당화를 '식물도감'에서는 상사초라 하는데 상사꽃은 암ㆍ수가 함께 붙어살기에 잎과 꽃이 무성하고 열매도 견고하여 낙과도 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피해가 없도록 뻗어 가는 가지를 움츠려준다. 뿌리와 가지에서 즙을 내면 맛이 달고 시기에 입이 마르다거나 당뇨병에 먹으면 특효하며, 사람이나 나무의 상처에 바르면 즉효라는 것도 살신성인의 배려인 것으로 생각된다.상대방에서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고 상대의 의사표현을 역지사지하라는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라는 상사인(相思引)과 상사곡(相思曲)도 상대를 배려하라는 것이다.너도 죽고 나도 죽자의 상극(相克)형과 너도 살고 나도 살자의 상생(相生)형의 양형은 항시 반비례의 역학도구이다. 사슴이나 얼룩말들은 사자와 호랑이의 먹이에 불과한 존재다. 그러나 이들 맹수들은 한차례 배불리 먹으면 4~5일간은 먹지 않기에 이 기간동안은 먹이의 존재들이 맹수 옆에서 기생하고 있다. 맹수 옆에는 또다른 맹수들이 접근하지 못하기에 당분간은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극과 생은 동반성이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원선거 후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상생정치를 하자고 여야 간 앞다투어 말들을 하고 있어서 듣기만 해도 흐뭇한 말들이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5.22 23:02

내일 열리는 전주용왕제 복원행사

전주사람들에게 덕진연못은 성스런 공간. 연못은 연꽃이 핀 못이라는 말로 그 자체가 불교성지다. 매년 단오절 아직까지 이어진 덕진연못에서 물맞이를 하는 전통적 관습과 ‘눈병이 나면 덕진연못의 물을 씻으면 낳는다’거나 ‘부스럼난 애들은 연못에 가서 한번만 씻어주면 일년은 그냥 간다’는 속설들이 이를 증명한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돼 조선시대를 거쳐 25년 전까지 매년 사월초파일 무렵이면 이곳에서 빠짐없이 열렸던 전주용왕제도 하늘의 용왕에게 풍요롭고 화평한 전주를 비는 풍농기원의 의례이자 기우제. 전주용왕제가 복원된다. 지난 10일 전주컨벤션홀에서 전주 용왕제 복원 선언식을 가졌던 전주용왕제복원추진위원회(집행위원장 송화섭)가 23일 전주덕진공원에서 용왕제를 복원, 행사를 마련했다. 오전 11시부터 3시간동안 건립패·태극권·비천무·타악기 공연 등 식전행사가 이어지고,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덕진연못 연화마당에서 본 행사가 시작된다. 3부로 나뉘어 열리는 이 행사는 제1부 덕진룡왕(德津龍王)굿(오후 2시)과 제2부 덕진연못 성지순례인 ‘소원성취 용왕순당’(所願成就 龍王巡堂·오후 4시 30분)과 , 제3부 ‘미륵삼존괘불지중출현’(彌勒三尊掛佛池中出現·오후 5시 30분)과 ‘용왕작법’(龍王作法·오후 7시), ‘전주시발전기원제’(全州市發展祈願祭·오후 8시)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전주시민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행사들이다. “전주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전주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전주 용왕제를 복원한다”는 송화섭 집행위원장은 “천년의 전통을 되살리는 전주 용왕제 복원은 전주시민의 몫”이라고 말했다. “공양미 보시하시고 복 받으세요.”전주용왕제복원추진위원회(집행위원장 송화섭)가 ‘심청이가 상인들에게 공양미 3백석에 팔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설화의 의미를 되살려 전주 덕진연못 용왕에게 바칠 공양미를 모집한다. 30년 만에 되살린 전주 용왕제의 전야, ‘공양미 300석 베풂·나눔’ 권선 행사. 희망자는 22일까지 오후 5시까지 쌀(10㎏·2만4천원, 20㎏·4만7천원)이나 생활필수품을 접수하면 된다. 보시(普施)된 공양미는 전주에 사는 생계가 곤란한 시각장애인들에게 기부된다. 문의 063)255-2829/홈페이지(www.jjdgf.com)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22 23:02

정토문화마당 22일 정읍 정토사서

고즈넉한 산사에서 우리 가락에 취해볼 수 있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지역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이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정토문화마당(회장 이철민)이 22일 오후 7시30분 정우면 정토사(주지 원공스님)에서 ‘대금과 판소리의 어울림’을 주제로 한 공연을 연다. 깊어가는 봄의 정취에 젖어 생동감 있는 우리의 깊은 소리를 지역민과 함께 즐김으로써 그 소중함을 깨닫고 생활의 여유를 찾아 보자는 취지이다. 특히 여러 가지 여건으로 ‘문화’를 접하기 쉽지 않은 지역민들에게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기 위한 뜻깊은 의미도 담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전북도립국악원 판소리부 교수를 역임,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원과 기전여자대학 동락원 판소리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천명희명창이 ‘심청전 초합부터 심봉사 젖동냥하는 대목까지’(고수 권혁대)를 들려 줄 예정이다. 또 제5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기악부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조용석씨가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과 '이생강류 대금산조‘를 들려준다. 이와함께 정토사 경내에서는 행사 당일부터 26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수준높은 분재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 기간 금파농장(대표 김훈성)에서 준비한 50여점의 분재작품이 전시되는 것. 이회장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여러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즐김으로써 우리 지역문화 보급과 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됨은 물론 ‘생활속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홍동기
  • 2004.05.22 23:02

마당수요로펌, "풍남제는 전북 상징 축제, 산업화보다 정체성 우선"

'전주 풍남제는 전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축제로서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전주풍남제의 위상을 점검하고 과제를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풍남제는 전주 뿐 아니라 전북의 축제를 상징하는 지역의 대표 축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19일 오후 7시 전주정보영상진흥원 세미나실에서 '전주풍남제의 꿈과 미래'을 주제로 열린 마당 수요포럼은 개최시기와 장소, 종이축제 등 전주4대문화축제와의 통폐합, 난장의 성격규정과 상설화 유무, 산업축제로서의 가능성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가장 큰 쟁점은 풍남제의 정체성. 참석자들은 전통축제와 산업형축제의 방향을 두고 첨예한 이견을 보였으나 풍남제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동축제로서의 성격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전북민예총 김선태 사무처장은 "풍남제는 지금껏 주도해 온 사람들에 의해 미래 지향성을 스스로 포기, 전주의 꿈은 좌절돼 왔다”고 비판을 제기했으며 김동영 시민행동21 전 사무국장은 "미시적 프로그램으로 유지된다면 풍남제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풍남제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전북문화컨텐츠연구소 진명숙 연구원은 "풍남제의 변하지 않는 포커스는 사람”이라며 시민들의 인식을 주목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김제자활후견기관 김영배 관장도 "시민들의 반응을 먼저 예상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북대 이종민교수는 "축제를 경제적인 성과로만 재단하는 일은 위험하다”며 축제 평가의 기준에 문제를 제기, 문화적 해석을 강조했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21 23:02

[흐름]닫힌 마음 열어 아픔 치유하는 음악치료사 문소영씨

“음악은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는 매체입니다. 자장가에서부터 추모곡까지 인간의 삶에서 음악을 떼어낼 수는 없지요.” 공인 음악치료사 문소영씨(31).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전북대 평생교육원을 비롯해 목원대 음대, 명지대·원광대 대학원 등에서 줄곧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전북에 ‘음악치료’를 소개한 것은 4년전, 전주한마음음악치료센터를 설립하면서부터다. 그가 잰걸음으로 ‘음악치료’를 알려나가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음악’과 ‘치료’의 결합은 여전히 낯설다. 그래도 지난 2002년 소리축제 기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치료 전문가 드니스 크로크 교수(세계음악치료협회장)와 ‘즉흥연주 음악치료’를 진행하면서 알음알음 한 사람들이 늘었다. “음악치료는 오락이나 감상·교육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음악이나 음악적 활동을 말합니다. 심리적인 원인을 찾아 음악으로 환자의 정신적·신체적 이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의료 행위’입니다.” 배가 아프면 안치환의 노래를 듣고, 머리가 아프면 심수봉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의 언어인 음악을 이용해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것. 군산이 고향인 문씨는 전북대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호주 멜버른대 음악치료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처음 접했다. 새로운 학문에 대한 의욕이 발단. 생소했던 영역을 접하면서 주위의 반대도 있었지만, 음악치료사의 역할과 발전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현재 국내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에서 음악치료를 전공한 십여명의 공인 음악치료사와 이들이 국내 대학과 대학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활동하며 배출해 낸 ‘음악치료 교육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와 함께 한 교육사만 해도 4백여명.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되겠지만, 노인질환과 정신지체,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즉흥연주 등은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거든요.” 그가 소개하는 음악치료는 기억력 상실 등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에게 유년시절을 떠올 수 있도록 하는 음악을 듣거나 부르게 하는 행위와 손가락 재활훈련에 피아노를 이용해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느끼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소독약 냄새나 쓰고 아픈 약과 주사보다 유쾌한 놀이를 통해 병을 치료하는 것. 병원 가기 싫어하는 이들에겐 귀가 솔깃해지는 ‘생활의 발견’이다. 그는 오는 7월 말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다시 호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특별한 책임이 주어졌다. 세계음악치료협회에서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심사위원. 내년에 열리는 행사지만 심사는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도 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낭만적이기보다 봉사와 소명의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랑과 희생이 함께 하는, 어렵고 소중한 일입니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21 23:02

생활속으로 들어온 예술심리치료

“가면을 만들었네. 언제 가면을 쓰고 싶어?”“애들 앞에서 춤을 추고 싶어요.” “왜?” “다른 사람이 봐도 나인 줄 모르거든요.”가면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보이고 싶은 나와 감추고 싶은 나. 열한살 나이에도 감추고 싶은 나가 있다.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늘 일로 바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운 아이는 ‘반응성 애착장애’가 생겼다. 세상을 향한 문을 꼭꼭 닫아두었던 아이.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은 부드럽고 촉촉한 찰흙과 색 고운 무지개빛 물감이 열어주었다. 예전보다 말도 많아졌고 표현력도 좋아졌다. 무미건조한 회색빛 도시의 상징 전철역. 왠지 모를 싸늘한 기운이 냉랭하게 감돌던 이 곳에 얼마전부터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철도청이 수도권 전철역에서 자살 방지용 음악 76곡을 틀기 시작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철로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줄여보려는 조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헤어진 여자친구를 떠올리며 듣고있는 슬픈 대중가요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지저분하게 해놓은 낙서도 괜한 것이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통한 마음 다스리기. 일상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취미가 음악(영화)감상이고, 채소나 꽃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는 ‘그린음악 농법’은 이미 10년 전에 등장했다. 그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글씨와 그림으로 마음을 수양해 왔고, 철학자 플라톤은 ‘음악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했으니 예로부터 동서양 모두 예술이 지닌 힘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양한 창작활동(미술·음악·서예 등)으로 심리적 안정과 자기 성장을 하는 예술심리치료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 전북에서 예술심리치료와 관련된 간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2∼3년 전부터다. 지난해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는 서예를 이용한 심리치료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찰흙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발견하게 되죠. 미술치료를 하는 동안 숨겨져 있던 상처와 그 원인까지도 드러내게 됩니다.”공격적인 아이는 작품 속에 삐죽삐죽 돌출돼 있는 선이 많고, 엄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아이는 ‘예쁜 엄마’와 ‘마귀할멈 같은 엄마’를 함께 그린다. 전주미술심리상담연구소 정남숙 소장은 “아동의 경우 대부분은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에서 문제가 빚어진다”며 “미술치료 과정에서 발견되는 상담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대부분 부모치료와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아직은 도입단계지만, 도내 종합병원들도 예술을 통한 심리치료를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종합병원 환자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익숙치 않아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원광대학교전주한방병원·원광병원은 요가·단전호흡·노래방·영화감상 등으로 진행되던 웰빙 프로그램에 지난달부터 예술치료를 집어넣었다. 진료시간 외에 무료한 병원생활을 하는 입원환자들을 위해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의미처럼, 예술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지면 치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치료 보조 효과에 대한 기대로 의료진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앞으로는 걸음이 불편한 뇌졸중 환자를 위해 규칙적인 음악의 박자에 맞춰 걷는 것도 시도해 볼 생각이에요. 음악에 맞춰 반복하다보면 재활치료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치료사 강효현씨(원광대 대학원 예술치료학과 석사 과정)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환자들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거나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도 환자들에게 불러보도록 한다. 환자들의 자유로운 참여로 진행돼 프로그램 진행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지만, 테마가 있는 예술치료의 재미에 환자 보호자까지 참여하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북대학병원과 마음사랑병원 등도 사회복지사나 간호사들이 직접 예술치료 과정을 공부해 환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미술과 음악 등을 어려워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치료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대부분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물감을 불거나 종이를 찢어붙이고, 장단에 맞춰 악기 소리를 내는 등 간단한 행동들을 반복하는 수준이다.대부분의 예술심리치료는 1대1로 진행된다. 예술심리치료는 무엇보다 상담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관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단치료의 경우 침을 흘리지 않고 물감을 부는 법, 악기를 연주하는 올바른 자세 등 옆사람을 보고 환자들 스스로 깨우쳐 나가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서예수업이나 아침 명상 시간처럼 예술심리치료는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있다. 최근에는 웰빙 바람을 타고 정상적인 성인들도 새로운 유형의 정신건강법으로 예술심리치료를 주목하고 있다.미술·음악·서예·춤·놀이·독서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치료’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들떠있는 세상 속에서 속마음을 그리고 행복을 연주하는 예술심리치료는 ‘마음을 다스리는 따뜻하고 즐거운 위로’다. 눈과 귀로 손으로 만나는 예술을 통해 나는 행복을 만난다. /최기우ㆍ도휘정 기자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5.21 23:02

‘MC서바이벌’ 출전한 전북대 경동호씨

“‘시청자’라는 개념을 떨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MC로 성장하겠습니다.” KBS2TV ‘MC서바이벌’(전진학·이세희 연출)에서 전주 토박이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경동호씨(24·전북대 신문방송학과 3년). KBS에서 예능 전문 MC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한 ‘MC서바이벌’은 예심(80대 1)을 통해 10명의 후보를 선발해 1주 동안 합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 과정을 ENG-구성으로 제작해 5주 동안 방송, MC를 선발하는 프로젝트다. 이미 2명이 떨어진 상태. 우석고와 전북대를 다니면서 교내 여러 행사에서 사회를 도맡았던 그는 2001년 전주 MBC DJ & 리포터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준비된 MC’다. 전북대 대학방속국(UBS)에서도 아나운서를 맡고 있다. “고향인 전주에서 얻은 것을 다 버리고 왔다. 절대로 그냥 돌아가지 않겠다”며 서울에서도 꼭 스타가 돼 금의환향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방송 첫머리부터 강조한 의지파. 10명 중 2명뿐인 지방출신 출연자인데다, 방송 때마다 상경(上京)하는 유일한 출연자다. “아나운서를 통해 MC를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는 예비 MC의 MC노하우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예선)대회의 이모저모를 빠짐없이 챙기고, 출연자의 정보를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MC는 편안하고 즐거운 방송으로 안내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개그 등을 통해 망가지는 표현력은 약하지만, 진지한 진행으로 잔잔한 웃음을 안겨주는 진행자가 되고 싶습니다.”“이번 대회에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동호씨의 활약은 22일 밤 오후 10시부터 70분간 KBS 2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21 23:02

전주역사박물관 개관 2주년 행사 풍성

근ㆍ현대사 속에 살아있는 시대정신을 통해 전북과 전주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우윤)이 24일 개관 2주년을 맞는다. 다양한 전시와 사회교육 프로그램, 학술조사연구로 관람객과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춤추는 박물관’을 지향하는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이다. 개관 2주년을 맞는 전주역사박물관이 전주역사특별전과 학술대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1년의 방향을 모색한다. 22일부터 8월 22일까지 석달동안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주역사특별전 ‘출판·인쇄문화의 메카, 전주’는 완판본(完板本)으로 상징되는 전주 출판·인쇄문화의 결과물, 서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주의 기록문화 역사를 재인식시키고 중요성을 일깨우는 기획이다.이번 특별전에는 조선후기 출판·인쇄문화의 대중화를 보여주는 완판본과 전주 출판·인쇄문화의 보고(寶庫) 전주향교의 장판각(藏板閣)에 보관된 목판본을 전시한다. ‘죠웅전’ ‘심쳥전’ ‘열여춘향슈절가’ 등 한글소설류와 ‘통감절요’ ‘사략’ 등 역사관련서적, ‘맹자’ ‘중용’ ‘주자대전’ 등 유학관련서적, ‘옥황보훈’ ‘명성경’ 등 불교관련서적과 목판본 ‘자치통감강목’ ‘동의보감’ 등을 만날 수 있다. ‘애국계몽운동과 전주’를 주제로 열리는 학술대회는 22일 오후 2시부터 전주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진행된다. 애국계몽운동은 20세기 초 일본의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국권 회복을 위해 국민의 의식을 계발하려 했던 자주적인 구국운동.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애국계몽운동 과정 속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과 전주의 역사적 활동, 그리고 전주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위한 대안을 찾아본다. 이명화씨(독립기념관 연구원)가 ‘애국계몽운동의 성격과 전개’를 전주대 주명준 교수가 ‘전주의 애국계몽운동’을 발제하고, 윤선자(전남대) 김태웅(군산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5.21 23:02

[문학기행]'만복사저포기'의 고향 남원 만복사 옛터를 찾아서

폐허를 찾아간다. 폐허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만복사지는 잘 다듬어진 폐허로 남아있다. 폐허 속의 '만복사저포기'는 다시 읽혀져야 한다.고려양식의 5층 석탑과 최근 언젠가 세워진 보호각 속에 석불 입상이 그 흔한 '불전함' 하나 없이 외롭게 서있다. 불상은 서방정토를 보고 있을까? 서쪽을 향해있다. 햇살을 받아 석탑은 체온처럼 따스하다. 석탑에 기대어 사랑이 떠나간 서녘 하늘을 쓸쓸히 바라보았을 허구 속의 한 사내, '양생'의 지고한 사랑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허구 속에서가 아닌 실제의 역사 속을 걸어나왔다가 이 외진 변방의 절까지 왔었을 매월당, 그의 고독한 생애를 겹쳐 떠올려본다. 이미 불교는 숭유정책에 짓눌려 이곳 남원부(南原府)의 만복사(萬福寺)도 사세가 기울어질 대로 기울었다. 스님들의 빨래 옷에 허옇게 덮였다는 한 때 '백들'이라 불렸던 저 앞 들녘도 다북쑥 쑥대밭으로 변한 지 오래다. 그 절의 외진 방 한 칸에 의지가지 없는 몸을 의탁한 나이든 양생의 외로움은 남달랐으리라.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그를 기른 외숙모마저 잃은 매월당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는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스스로 칭한다. 그가 태워 버린 책은 '인·의·예·지·신'을 뼛속까지 새겨넣었던 유교의 경전들은 아니었을까. 그 덕목들을 뿌리째 부정해버린 세조의 패륜을 보고 매월당은 하늘이 무너지듯 허망했을 것이다. 세 살 때 시를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하던 그는 이제 천하디 천한 중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저 북녘 안시향령에서 남녘 다도해까지 떠돌던 길, 이곳 남원부에 머물면서 그는 열녀 춘향 이야기랑 저 흥부의 애틋한 이야기를 들었을까.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폭악무도한 세조의 반인륜을 보고 세상을 등진 시습은 이 곳 남원의 사랑과 인정에 가슴이 더워 눈물지었을지도 모른다. 몇 차례 세조의 소명을 받고도 나가지 않은 채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금오신화'를 썼던 시습의 '만복사저포기'는 양생이라는 외로운 한 사나이가 여인을 그리워하는 시로 시작된다. 한 그루의 배꽃나무 외로움을 벗삼으니/휘영청 달 밝은 밤 시름도 하도할샤/푸른 꿈 홀로 누운 고요한 들창으로/들려오는 저 퉁소소리 어느 님이 불고 있나/외로운 저 비취는 짝을 잃고 날아가고/원앙도 저 혼자 맑은 물에 노니는데/어느 집 아가씨에게 이 마음 기약 두고두둥실 하염없이 바둑이나 두려면/등불만 가물가물 이내 신세 점치네!(우한용 외 공저 '한국대표 고전소설'에서 인용)양생은 법당의 부처님과 내기를 한다. 저포놀이다. 부처를 인격화한 것도 재미있지만 저포놀이에서 양생이 부처를 이긴 것도 흥미롭다. 부처의 인연으로 만난 처녀와 양생이 바로 그날로 법당 앞 행랑채에서 즐거움을 나눈 것도 파격이다. 인간을 도외시한 신격이나 인간세의 논리를 벗어나버린 추상적 명분들에 물릴 대로 물린 매월당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생이 만나 사랑을 나눈 그 처녀는 왜구의 분탕질에 순결을 지키려 목숨을 끊은 처녀의 유혼이었다.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수밀도를 베어 문 듯 달콤한 이 사랑이 며칠후면 저승으로 떠날 유혼이었다니... 불교에 뿌리를 둔 많은 설화들이 그렇듯 이 비극적 만남과 헤어짐을 시습은 인연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임시로 매장된 처녀의 무덤을 찾아 양생은 지극정성 장례를 치러준다.......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냈고, 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 데 없는 몸이 되었소. 영혼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 술을 따를 때엔 마음은 더욱 슬퍼지오. 요조한 그 모습은 눈에 삼삼하고 명랑한 그 음성은 들리는 듯하오. 슬프외다. 총명한 당신의 성품, 정밀한 당신의 기상, 몸은 비록 흩어졌을지라도 영혼만은 남아있을 것이니 응당 내려와서 뜰에 오르시고 어쩌면 나타나서 곁에 있겠지요.양생이 눈물로 지어 읊은 제문이다. 장례를 지낸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토지와 가옥을 팔아 연 사흘 제를 올렸다. 양생은 이후 다시 장가를 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룻밤으로도 사랑은 한평생의 길이와 무게와 깊이에 이를 수 있는 것이어서, 있다면 전인격적 사랑만이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남자가 목숨껏 여자에게 정절을 바친 향기로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그냥 넘기기에는 도발적인 그 무엇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굽히지 않은 정치적 양심 때문에 승속을 오가며 때론 저항으로, 때론 좌절로 좌충우돌 기이한 행적을 보였던 김시습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남존여비하던 시절, 남정네에 대한 여인네의 정절을 강조하던 그 시절에 '남자의 정절'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훗날 서방님께서 귀하게 되어 성공을 하시게 되면...육진에서 나온 좋은 베로 다시 염을 하시어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뒤에 북망산천 찾아갈 때, 앞의 남산과 뒤의 북산도 다 버리시고, 한양으로 올려다가 선산발치에 묻어주십시오.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守節寃死春香之墓)여덟자만 새겨주소서. 무덤 속에설망정 서방님만 바라고 사는 망부석이 되겠습니다.(최정주의 '평설 춘향전'에서 인용)이 사랑의 언어는 서늘하리만치 비장하다. 목숨을 거는 사랑에 무슨 수식을 가하여 해석하랴. 그저 아름답다. 그러나 춘향이 목숨껏 이도령에게 바쳤던 정절은 유교적 도덕관념에서 보면 어쩌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열녀불사이부(烈女不事二夫)”라는 덕목에 충실한 사랑인 것이다. 물론 춘향전이 지니는 문학적 가치와 그 주인공들의 고귀한 사랑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춘향의 사랑은 당시 유교이념이 제공한 공식에 충실한 답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만복사저포기의 사랑은 도발적이며 혁명적인 바가 있다. 시습은 당시의 남성 중심적이며 현세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사랑 논리, 그 불구성을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천리 방방곡곡 '열녀비'는 즐비한데, 축첩이 제도적으로 보편화 되어있는 세상에서 어느 양반 하나 넋을 기리는 '열부비'가 있었던가? 매월당은 그래서 정절에 남녀가 있는가 묻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그는 분별심 저 너머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폐사지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자니 소슬하고 뭉클한 무엇이 가슴속에 고인다. 해는 기울어, 양생이 그러했고 처녀의 원혼이 그러했듯이 나는 오층석탑을 세 바퀴 돈다. 저 멀리 지리산 자락이 넌출넌출 흘러가고 흰 새 몇 마리 돌아온다. 봄이라 꽃피는 밤 달빛마저 꽃다운데/내 시름 그지없어 달님아 물어보자/이 몸이 스여디어 비익조 된다면/푸른 하늘에 님과 함께 날개를 펴고 날리라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시 한 조각이다. 나는, 암수가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뿐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 한 쌍을 떠올린다.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천박함과 속됨에 낯이 후끈 달아온다./복효근·시인'만복사저포기'의 너나들이 사랑김시습의 생존시는 아직 '춘향전', '흥부전'이 소설로서 정착되기 이전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것들의 모태가 되는 설화단계의, 혹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춘향과 흥부의 이야기는 회자되고 있었을 개연성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김시습이 춘향 이야기에 그려진 '열녀의 정절'을 염두에 두고서 의식적으로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남자의 정절'을 '만복사저포기'에 그려넣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애정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에게만 정절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남자도 여자에게 그럴 수 있을 때만 공평하고 평등하고 인격적인 사랑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 말이다.물론 작품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춘향전'을 따라갈 만한 고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춘향전'의 주제를 '여자의 정절' 하나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만복사저포기'를 나란히 곁에 놓고 생각했을 때 진정하고 온전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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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4.05.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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