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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만복사저포기'의 고향 남원 만복사 옛터를 찾아서

폐허를 찾아간다. 폐허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만복사지는 잘 다듬어진 폐허로 남아있다. 폐허 속의 '만복사저포기'는 다시 읽혀져야 한다.고려양식의 5층 석탑과 최근 언젠가 세워진 보호각 속에 석불 입상이 그 흔한 '불전함' 하나 없이 외롭게 서있다. 불상은 서방정토를 보고 있을까? 서쪽을 향해있다. 햇살을 받아 석탑은 체온처럼 따스하다. 석탑에 기대어 사랑이 떠나간 서녘 하늘을 쓸쓸히 바라보았을 허구 속의 한 사내, '양생'의 지고한 사랑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허구 속에서가 아닌 실제의 역사 속을 걸어나왔다가 이 외진 변방의 절까지 왔었을 매월당, 그의 고독한 생애를 겹쳐 떠올려본다. 이미 불교는 숭유정책에 짓눌려 이곳 남원부(南原府)의 만복사(萬福寺)도 사세가 기울어질 대로 기울었다. 스님들의 빨래 옷에 허옇게 덮였다는 한 때 '백들'이라 불렸던 저 앞 들녘도 다북쑥 쑥대밭으로 변한 지 오래다. 그 절의 외진 방 한 칸에 의지가지 없는 몸을 의탁한 나이든 양생의 외로움은 남달랐으리라.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그를 기른 외숙모마저 잃은 매월당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는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스스로 칭한다. 그가 태워 버린 책은 '인·의·예·지·신'을 뼛속까지 새겨넣었던 유교의 경전들은 아니었을까. 그 덕목들을 뿌리째 부정해버린 세조의 패륜을 보고 매월당은 하늘이 무너지듯 허망했을 것이다. 세 살 때 시를 지어 세상을 놀라게 하던 그는 이제 천하디 천한 중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저 북녘 안시향령에서 남녘 다도해까지 떠돌던 길, 이곳 남원부에 머물면서 그는 열녀 춘향 이야기랑 저 흥부의 애틋한 이야기를 들었을까.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폭악무도한 세조의 반인륜을 보고 세상을 등진 시습은 이 곳 남원의 사랑과 인정에 가슴이 더워 눈물지었을지도 모른다. 몇 차례 세조의 소명을 받고도 나가지 않은 채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금오신화'를 썼던 시습의 '만복사저포기'는 양생이라는 외로운 한 사나이가 여인을 그리워하는 시로 시작된다. 한 그루의 배꽃나무 외로움을 벗삼으니/휘영청 달 밝은 밤 시름도 하도할샤/푸른 꿈 홀로 누운 고요한 들창으로/들려오는 저 퉁소소리 어느 님이 불고 있나/외로운 저 비취는 짝을 잃고 날아가고/원앙도 저 혼자 맑은 물에 노니는데/어느 집 아가씨에게 이 마음 기약 두고두둥실 하염없이 바둑이나 두려면/등불만 가물가물 이내 신세 점치네!(우한용 외 공저 '한국대표 고전소설'에서 인용)양생은 법당의 부처님과 내기를 한다. 저포놀이다. 부처를 인격화한 것도 재미있지만 저포놀이에서 양생이 부처를 이긴 것도 흥미롭다. 부처의 인연으로 만난 처녀와 양생이 바로 그날로 법당 앞 행랑채에서 즐거움을 나눈 것도 파격이다. 인간을 도외시한 신격이나 인간세의 논리를 벗어나버린 추상적 명분들에 물릴 대로 물린 매월당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생이 만나 사랑을 나눈 그 처녀는 왜구의 분탕질에 순결을 지키려 목숨을 끊은 처녀의 유혼이었다.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수밀도를 베어 문 듯 달콤한 이 사랑이 며칠후면 저승으로 떠날 유혼이었다니... 불교에 뿌리를 둔 많은 설화들이 그렇듯 이 비극적 만남과 헤어짐을 시습은 인연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임시로 매장된 처녀의 무덤을 찾아 양생은 지극정성 장례를 치러준다.......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냈고, 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 데 없는 몸이 되었소. 영혼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 술을 따를 때엔 마음은 더욱 슬퍼지오. 요조한 그 모습은 눈에 삼삼하고 명랑한 그 음성은 들리는 듯하오. 슬프외다. 총명한 당신의 성품, 정밀한 당신의 기상, 몸은 비록 흩어졌을지라도 영혼만은 남아있을 것이니 응당 내려와서 뜰에 오르시고 어쩌면 나타나서 곁에 있겠지요.양생이 눈물로 지어 읊은 제문이다. 장례를 지낸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토지와 가옥을 팔아 연 사흘 제를 올렸다. 양생은 이후 다시 장가를 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룻밤으로도 사랑은 한평생의 길이와 무게와 깊이에 이를 수 있는 것이어서, 있다면 전인격적 사랑만이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남자가 목숨껏 여자에게 정절을 바친 향기로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그냥 넘기기에는 도발적인 그 무엇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굽히지 않은 정치적 양심 때문에 승속을 오가며 때론 저항으로, 때론 좌절로 좌충우돌 기이한 행적을 보였던 김시습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남존여비하던 시절, 남정네에 대한 여인네의 정절을 강조하던 그 시절에 '남자의 정절'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훗날 서방님께서 귀하게 되어 성공을 하시게 되면...육진에서 나온 좋은 베로 다시 염을 하시어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뒤에 북망산천 찾아갈 때, 앞의 남산과 뒤의 북산도 다 버리시고, 한양으로 올려다가 선산발치에 묻어주십시오.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守節寃死春香之墓)여덟자만 새겨주소서. 무덤 속에설망정 서방님만 바라고 사는 망부석이 되겠습니다.(최정주의 '평설 춘향전'에서 인용)이 사랑의 언어는 서늘하리만치 비장하다. 목숨을 거는 사랑에 무슨 수식을 가하여 해석하랴. 그저 아름답다. 그러나 춘향이 목숨껏 이도령에게 바쳤던 정절은 유교적 도덕관념에서 보면 어쩌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열녀불사이부(烈女不事二夫)”라는 덕목에 충실한 사랑인 것이다. 물론 춘향전이 지니는 문학적 가치와 그 주인공들의 고귀한 사랑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춘향의 사랑은 당시 유교이념이 제공한 공식에 충실한 답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만복사저포기의 사랑은 도발적이며 혁명적인 바가 있다. 시습은 당시의 남성 중심적이며 현세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사랑 논리, 그 불구성을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천리 방방곡곡 '열녀비'는 즐비한데, 축첩이 제도적으로 보편화 되어있는 세상에서 어느 양반 하나 넋을 기리는 '열부비'가 있었던가? 매월당은 그래서 정절에 남녀가 있는가 묻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그는 분별심 저 너머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폐사지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자니 소슬하고 뭉클한 무엇이 가슴속에 고인다. 해는 기울어, 양생이 그러했고 처녀의 원혼이 그러했듯이 나는 오층석탑을 세 바퀴 돈다. 저 멀리 지리산 자락이 넌출넌출 흘러가고 흰 새 몇 마리 돌아온다. 봄이라 꽃피는 밤 달빛마저 꽃다운데/내 시름 그지없어 달님아 물어보자/이 몸이 스여디어 비익조 된다면/푸른 하늘에 님과 함께 날개를 펴고 날리라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시 한 조각이다. 나는, 암수가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뿐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 한 쌍을 떠올린다.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천박함과 속됨에 낯이 후끈 달아온다./복효근·시인'만복사저포기'의 너나들이 사랑김시습의 생존시는 아직 '춘향전', '흥부전'이 소설로서 정착되기 이전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것들의 모태가 되는 설화단계의, 혹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춘향과 흥부의 이야기는 회자되고 있었을 개연성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김시습이 춘향 이야기에 그려진 '열녀의 정절'을 염두에 두고서 의식적으로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남자의 정절'을 '만복사저포기'에 그려넣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애정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해석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에게만 정절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남자도 여자에게 그럴 수 있을 때만 공평하고 평등하고 인격적인 사랑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 말이다.물론 작품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춘향전'을 따라갈 만한 고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춘향전'의 주제를 '여자의 정절' 하나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만복사저포기'를 나란히 곁에 놓고 생각했을 때 진정하고 온전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5.19 23:02

한벽예술단 등 3곳 소리축제 조직위 홍보예술단 선정

한벽예술단(단장 양진환)·타악연주단 동남풍(대표 조상훈)·째즈피아(대표 이용희)가 2004소리축제의 홍보예술단으로 선정됐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안숙선)가 국내·외에 소리축제를 알리기 위해 공모한 홍보예술단은 모두 7개 단체가 응모, 전북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개 단체가 뽑혔다. 지난 2002년 전주전통문화센터 예술단체로 출발한 한벽예술단은 전통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단체. 전주전통문화센터 상설공연 등을 통해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단원은 10명. 지난 2001년 전주세계소리축제 홍보단으로 전국투어공연을 가졌던 동남풍은 1994년에 창설된 전통타악 공연단체다. 비나리·삼도설장고가락·삼도풍물가락·호남우도풍물가락 등 전통공연과 옛것을 새롭게 시도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호평 받고 있다. 단원은 14명. 1995년에 결성된 째즈피아는 스텐다드째즈와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재해석하고 퓨전화해 연주하고 있으며, 특히 국악과 현대음악인 째즈를 접목해 우리음악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단원은 6명. 이들은 6월 초부터 국내·외 주요 축제현장 및 문화시설을 찾아 공연하며, 소리축제를 알려나갈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19 23:02

시민영화제 관객 분석, "독립영화, 표현의 다양화 필요"

“독립영화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영화다”. 제4회 전주시민영화제 조직위(위원장 조시돈)가 시민영화제 기간 관객 1백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북지역 관객들은 독립영화의 가치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영화’(57.6%)로 꼽았다. 이는 ‘이미지의 상상·실험 영화’(19.4%)나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13.2%)라는 인식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서도 ‘다루는 내용의 차이가 크다’는 응답이 53.5%로 ‘제작비의 많고 적음’(7.6%)을 떠나 영화에 무엇을 담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독립영화의 흐름을 묻는 질문에는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방식의 표현을 추구해야 한다’가 54.2%로 가장 많았으며, ‘일반 대중의 참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30.6%) 등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을 꾀하는 영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영화에 대한 느낌은 ‘신선하다’(58.3%)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27.1%)는 의견도 많았다. 독립영화 활성화 방안은 ‘홍보활동 개발’(42.4%), ‘독립영화상영관 확대’(24.3%), ‘안정적인 배급구조’(19.4%) 등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 전북지역에서 활성화 방안에서는 ‘독립·단편영화제의 활성화’(38.9%)와 ‘지역미디어센터 개관’(26.4%) 등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역 미디어센터가 기반을 잡고, 시·도의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지역 독립영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번 조사는 전북에 거주하는(84.7%) 20대(79.7%) 대학생(77.8%)이 가장 많이 참여했다. 전체 대상자 중 독립영화를 본 관객은 77.1%였으며, 이들은 영화제(44.4%)와 방송(41%)을 통해 많이 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전주시민영화제는 지난 17일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전주시네마에서 열린 올해 영화제의 총 관객은 2천3백81명이며, 이 중 유료관객은 7백47명(입장수입: 2백29만원)”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19 23:02

대학축제 '지역주민과 함께'

5월 캠퍼스 축제가 지역주민들에게 바짝 다가가고 있다. 참여정부 지역혁신체제의 중심축으로 선 대학이 대동제를 통해 주민과 동문들을 캠퍼스로 초청, 어깨를 맞대는 프로그램을 늘리는가 하면 아예 축제의 장을 지역속으로 옮겨놓은 대학도 있다. 19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2일까지 황토현 대동제를 개최하는 전북대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UBS 대동가요제'를 마련, 지역민들의 축제 참여를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특히 전북대총학생회는 대동제 기간인 21일 동창회와 공동으로 '전북대인의 날' 행사를 마련, 재학생들뿐 아니라 교직원·동문, 그리고 그 가족들이 함께하는 한마당 축제를 연다. 지난해 10월에 치러졌던 행사를 올해는 봄철 캠퍼스 축제와 연계, 잔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또 21일 후원인의 밤 행사와 두재균 총장 저서 출판기념회를 함께 개최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19일부터 원탑대동마당을 여는 원광대는 축제 마지막날인 22일, 잔치무대를 아예 학생들이 자주 찾는 학교앞 거리로 옮겨 대학로문화제를 연다. 대학로에서 경찰 협조로 차량을 통제한 가운데 열리게 될 이날 문화제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꾸미는 노래자랑과 각종 공연무대를 마련, 대동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게 된다. 이 대학은 또 축제기간 인근 초등학교 담장에 벽화를 그려주고, 효행학우 돕기및 북한 룡천역 폭발사고 성금모금 활동도 실시할 계획이다.원광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우들이 자주 찾는 공간에서 지역민과 함께 꾸미는 축제는 건전한 대학로문화만들기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며 "일부 상가에서는 문화제가 열리는 날 특별 할인행사를 실시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우석대도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대동제를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축제로 꾸밀 계획이다.

  • 문화일반
  • 김종표
  • 2004.05.18 23:02

[옛문서의 향기]소 도살 금지도 孝앞에선 예외

우리 나라 사람들 같이 잔치를 많이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기쁜 마음에,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픈 마음에 음식을 차려놓고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한다. 일찍부터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민족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잔칫상에 올려지는 음식은 지역마다 또 집안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어느 지방, 어느 가문에서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소고기일 것이다. 요즘은 소고기를 마련하려면 인근에 있는 정육점에 가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돈만 가지고 가면 언제나 정육점에는 소고기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처럼 소고기를 자유롭고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때부터였을까? 아마도 나이가 50세 이상이신 분들이라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현재 50세 이상이신 분들이 상상하고 계실 시기보다도 훨씬 소고기를 먹기 힘들었다. 소고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를 도살해야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소를 도살하는 일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농업을 국가의 기간 사업으로 생각하고 장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사에 방해되는 행위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심지어는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관에 탄원을 하고 싶어도 농번기나 추수기에는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소는 농사짓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도살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가 수명을 다한다거나, 상처를 입어 회복이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도살해야 할 경우에는 고을 수령의 허가를 받은 뒤에 가능하였다.(전북대박물관 고문서 07038) 하지만 소를 잡은 뒤에는 소 주인이 임의로 처리할 수 없었다. "거피입본(去皮立本)"이라 하여 죽은 소의 가죽은 관에 바쳐서 북을 만드는 재료로 쓰게 했으며 고기는 팔아서 송아지를 구입하도록 하였다. 이는 소가 없어서 농사를 망치게 되는 일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전라도 장수군 천전면 감나무골에 사는 한경조는 병든 모친이 소의 생간(生肝)을 먹고 싶어하자 수령에게 한 살배기 송아지를 잡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청원하였다.(전북대박물관 고문서 00926) 이에 수령은 "작은 소를 잡도록 특별히 허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마도 부모를 봉양하려는 한경조의 효심에 감명을 받은 듯 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중에는 충효사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특히 효사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을 만큼 중요시되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시묘(侍墓)하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붙이면 모든 일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소고기를 잡아야 할 경우에는 효사상에 의지하여 호소하기도 하였다. /안광호(전북대박물관 고문서 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과정)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5.18 23:02

[제36회전북미술대전]종합대상 공예 편성진씨 '어떤이의 꿈'

제36회 전라북도 미술대전에서 공예부문에 '어떤이의 꿈'을 출품한 편성진씨(37, 예원예술대 교수)가 종합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관련기사 10면·입상입선자 명단 20면)각 부문 대상의 기쁨은 한국화의 김성욱씨(33, 익산시 모현동) 서양화의 김영민씨(53, 전주시 중인동) 조소의 박정흠씨(31,경기도 고양시) 서예의 정관헌씨(42, 익산시 영등동) 문인화의 송기원씨(33, 서울 응암4동)에게로 돌아갔다.출품작이 규정에 미치지 못해 대상을 내지 못한 판화와 건축 디자인 부문은 양혜경(전주시 중노송동), 박혜현 외 3명(남원시 광치동) 박찬국씨(전주시 송천동1가)가 각각 우수상에 선정됐다. 이밖에도 각 부문 우수상은 한국화 서아림씨(전주시 효자동) 서양화 박원기씨(전주시 효자1가) 조소 박재연씨(전북대 대학원 재학) 공예 고승근씨(원광대 교수) 서예 김명자씨(군산시 월명동) 문인화 강진아씨(전주시 경원동)가 수상했다. 올해 공모전에는 한국화 1백12점, 서양화 1백40점, 조각 25점, 건축 22점, 판화 31점, 공예 1백16점, 서예 2백25점, 문인화 2백4점, 디자인 31점 등 9개 부문에 9백6점이 출품돼 지난해(8백96점)보다 응모작이 다소 늘었지만, 서예와 서양화 부문에서 출품작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올해 상금은 작년과 같지만 전라북도의 지원예산이 줄어들면서 전라북도미술대전의 역할과 운영의 한계를 드러냈다.시상식은 6월 1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리며, 입상 입선작 전시는 5월 18일부터 6월 6일까지 부문별 3부로 나누어 전시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05.17 23:02

전북대 '여성문화제'

전북대 여학생들이 20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대동제에서 색다른 주제로 여성(女性)과 양성(兩性)을 강조한다.이 기간 '금기, 너 나와!'라는 제목을 달고 여성의 몸에 씌워졌던 금기, 월경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성문화제를 열고, 평등 밥상 차리기 대회도 연다.한선남 총학생회 여성국장은 이번 여성문화제는 여성의 몸에 관한 많은 금기를 부수고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여성들조차 모르고 있는 월경과 생리통에 대해 얘기하는 장을 마련했다고 말했다.20일 오후 2시 사회대 여학생 휴게실에서 월경과 대안 생리대 토론회를 열고 월경의 사회적 담론 비판과 함께 대안 생리대의 의의와 필요성을 의논할 예정이다.다음날 오후 2시부터는 학교내 이세종 광장에서 대안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고 심사를 통해 3등까지의 작품을 구 정문 알림의 거리에 걸어 전시한다는 것.대안 생리대는 현재의 일회용 생리대에서 다이옥신 같은 독성 물질이 나와 자궁암이나 자궁 내막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체 생리대로 천 등 친환경적 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또한 21일 제 2학생회관에서 시계탑까지의 구간에 성매매 여성들의 그림과 그녀들의 이야기가 판넬과 액자에 담겨 전시된다.남녀를 한팀으로 경연을 벌이는 평등밥상 차리기는 19일 예선전을 거쳐 20일 오후 1시 젠더자치위원회에서 받은 재료비 2만원을 가지고 장을 보아 오후 2시부터는 미대 연못 앞에서 직접 밥상을 차리게 된다.이 대화의 심사 기준은 맛이나 모양 보다는 남녀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협동심을 발휘해 솜씨를 내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 문화일반
  • 허명숙
  • 2004.05.17 23:02

익산 출신 독립운동가 임규선생 '재조명'

익산 출신 독립운동가 임규 선생(林圭·1867∼1948).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일본 문법의 대가이며, 육당 최남선의 학문적 배경이 된 한글학자이자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정후수 교수가, 선생이 1941년에 낸 ‘국역 북산산고’(北山散稿·깊은샘 펴냄)를 완역해 세상에 냈다. 원문의 저자(임규)가 쓴 서문(시문)에 의하면 ‘어떤 친구가 매양 나아게 강요해서’ 엮은 순한문 시문집이다. ‘안빈(安貧)’ ‘영욕(榮辱)’ ‘의암(진주)義巖(晉州)’ 등 선생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주옥같은 한시가 실려 있다. 역자인 정 교수는 ‘어떤 친구’를 민족운동가 최규동(1882년∼1950년 납북)이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연대순도 아니고, 형식도 벗어나 ‘오래 전 것과 요즘 지은 약간 편’을 적어놓았다. “임규는 형식보다 질적인 면을 강조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는 게 정교수의 설명이다. 익산 금마면 동고도로(東古都里)에서 태어나 14살 때 당시 익산군수인 정기우의 아전으로 일했고, 일본유학시절(게이오의숙 전수학교 경제과) 조선 유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선생은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 2월 일본어문법서인 ‘일문역법’을 발간했고, 3년 뒤 ‘일본어학문전편’(日本語學文典篇)과 ‘일본어학음어편’을 내놓았다. 해공 신익희와 고하 송진우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인 출신으로 특정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외국어 학습 등 실용주의 학문을 당시의 사람들이 지녀야 할 수양 덕목이라 여긴 선생은 3·1만세운동과 관련해 1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당시 선생은 최남선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 3통과 선언서를 받고 서울을 출발, 3월 3일 이 서류를 일본의회 등 각 요로(要路) 발송에 성공했지만, 돌아오던 중 체포·압송됐다. 1963년 독립유공자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 됐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4.05.15 23:02

"우리도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불기 2548년 부처님 오신날(26일)이 점등식을 시작으로 26일까지 도내 각 사찰의 봉축행사로 이어진다.‘우리도 부처님같이'를 주제로 마련된 올해 봉축행사는 전국 사찰에서 북한 용천역 폭발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법회와 연등 달기 행사가 열린다. 도내 금산사와 실상사 등에서도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축제 형식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조계종 17교구 금산사는 16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도내 초등학생들의 문화한마당잔치를 열고, 19일 오후 7시에는 정률스님을 초청, 전북지역 불교단체의 합창제를 갖는다. 또 22일(토)에는 부처님오신날 최대행사인 연등축제가 오후 6시부터 식전행사와 함께 전일초등학교에서 거리연등행렬이 이어진다. 26일에는 오전 11시 법요식을 갖고 오후에는 지역의 어르신을 모시고 신명나는 경로잔치를 마련한다. 실상사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마당을 마련한다.실상사가 지난해에 이어 19일 산내면 화합의 한마당행사로 마련하는 족구대회에는 실상사 학림과 실상사작은학교, 산내 방범대 등 10개팀이 출전하게 된다. 대회에서 마련된 성금은 지역교육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22일 실상사 보광전 앞에서는 점등식이 열린다.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노래 자랑대회가 함께 열리고 실상사 마야합창단, 최정춘 아코디언 연주(지역주민), 탭댄스 등 축제 분위기를 북돋는 축하 행사도 열린다.부처님 오신 날인 26일에는 오전 10시 법요식, 오후 3시 법회(법사-학장 재연 스님), 예불과 영화상영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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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각
  • 2004.05.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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