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기억 또는 소개하고 싶은 사람, 갈라라가!
◆ 베네수엘라 출신 메이저리그 투수아만도 갈라라가를 아시는지. 야구 선수다. 박찬호 선수가 뛰는 미국 MLB(메이저리그) 소속의 베네수엘라 출신 투수이다. 오늘은 그 사람 얘기를 하고 싶다. 요즘 가끔 야구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S. J. 굴드의 「풀하우스」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고, 하나는 아는 분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가셨기 때문이다.굴드는 그의 저서 「풀하우스」에서 왜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 (아니, 이렇게 읽으면 재미가 없다)'꿈의' 4할 타자가 왜 사라졌는가 하는,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고, 야구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이유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어하는 사태에 대해 참으로 유려한 필치와 과학적인 검토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한국야구도 4할(또는 4할에 근접하는) 타자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야구위원회 자료를 뒤져 굴드의 방법에 따라 에세이를 써서 작년 전북일보 본지를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 4할 타자 또는 20승 투수가 점차 희귀해지는 것은 투수나 타자, 수비가 모두 수준이 높아지면서, 변이(變異) 발생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4할 타자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이를 갖는 시스템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설명이 된다는 요지였다.(http://www.jjan.kr/culture/others/default.asp?st=2&newsid=2009101519122101&dt=20091016)◆ 6월 2일 퍼펙트 게임 눈앞에 두고갈라라가 얘기는 현 KBO 총재(Commissioner)인 유영구 이사장님에게서 들었다. 10여 년 전 우리 사회의 기록관리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변함없는 버팀목이었고, 지금도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라는 사단법인의 이사장으로 계시면서 젊은 사람들을 밀어주고 있다. 그 분이 KBO 총재를 맡으셨다. 가끔 책이 나오든지 하면 인사를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나오곤 하는데, 매번 화두(話頭) 같은 고민거리를 주셔서 뵙기가 즐거웠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내가 굴드의 「풀하우스」의 얘길 했더니, 대략 굴드와 유사한 결론으로 답변을 하신다. 내공이 있다는 증거이다. 내심 잘난 척할 기회를 놓친 내 어색함을 덜어주시려는듯 내게 물었다. 일본이나 미국 프로야구 덕아웃에 노트북을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게임을 기계를 동원해서 확률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서 덕아웃에 노트북 반입을 금지했다는 것이다.지금부터 2500년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장자(莊子)」에 이미 '기계에 의존하는 마음(機心)'에 대한 경계가 나오는데, 덕아웃에서 노트북을 치운 것은 그 20세기 버전인 셈이다. 얼마 전에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덕아웃에 노트북 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심(機心)의 21세기 버전이다. 그리고 이어진 그날 대화의 본 게임. 유영구 총재께서는 약간 상기된, 그리고 간곡한 표정으로 최근의 한 사건을 들려주었다. 사건은 지난 6월 2일에 터졌다.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의 경기에서 디트로이트의 아만도 갈라라가 투수는 9회말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달리고 있었다. 퍼펙트게임은 9×3=27타자를 포볼/사사구나 안타 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는 게임이다. 한 사람도 1루를 밟게 해서는 안 된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MLB)에서도 20번 밖에 없었고, 아직 국내 프로야구에는 퍼펙트게임이 기록된 적이 없다. 그러니 한 타자만 잡으면 투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로운 기록을 얻게 되는 셈. 더구나 그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MLB에 온 젊은 투수였다. 박찬호나 김병현이 그런 기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상상이 쉽다.◆ 짐 조이스 심판의 오심으로 물거품그러나 야구는 투아웃부터라고 했나? 마지막 타자가 친 평범한 땅볼, 1루수가 공을 잡았고, 투수인 갈랄라가는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다. 누구나 아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1루심 짐 조이스의 손은 수평으로 그어졌다. 세이프! 당연히 경기장 안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야구팬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백악관의 로버트 대변인도 MLB가 심판의 오심을 뒤집고 퍼펙트게임을 선언하기 바란다고 논평을 냈다. 아무튼 밤새 MLB은 이 문제로 토론을 했다. 3일 오전이 되자 비디오 테이프 판독 결과에 따라서 MLB 커미셔너(KBO 총재에 해당)의 직권으로 판정이 번복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음은 셀릭 커미셔너의 성명서 일부."우선 나는 MLB를 대신하여 아만도 갈라라가의 눈부신 피칭을 축하합니다. 갈라라가와 디트로이트 짐 릴랜드 감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나는 또 불우한 처지에 놓여있던 짐 조이스 심판이 정직하게 직접 사과한 용기 있는 행동에도 박수를 보냅니다."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앞서 경기 직후 짐 조이스 심판은 "나의 잘못된 판정이 젊은 투수의 퍼펙트게임을 망쳤다. 내 생애 최악의 판정이었다"고 후회했다. 백악관의 성명도 소용이 없었다느니, 투수가 글러브를 팽개치지도 않았다느니, 디트로이트 관중들이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느니, 하는 상투적인 말은 치워놓자. 다만, 갈라라가의 코멘트를 기억해두자. 먼저 짐 조이스 심판의 후회에 대해 갈라라가는,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고 사과를 받아들인다. 또 덧붙인 한마디. "논란은 그만 했으면 한다. 지금 누구보다도 힘든 사람은 바로 짐 조이스 심판이다." 이 대목에 오면 이 젊은 투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갈라라가는 오히려 조이스 심판 위로이튿날인 3일.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는 다시 낮 경기를 갖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MLB의 결정에 따라 조이스 심판의 판정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던 바로 그 날이다. 그 경기의 구심이 바로 조이스 심판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구심은 포수 뒤에서 스트라이크·볼을 판정하는 사람이다. 흔히 주심이라고 부른다.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주변에서는 조이스 심판에게 하루 쉬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 심판 로테이션은 변경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로테이션을 변경시키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 물론 구장으로 통하는 터널을 지날 때 조이스 심판은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상황은 이때부터 바뀌었다. 보통 MLB는 경기 3시간 전에 오더를 발표한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구장에서 직접 감독이나 코치가 심판진 앞에서 라인업을 교환하는 의례를 갖는다. 디트로이트 릴랜드 감독은 오더 교환을 갈라라가에게 맡겼다. 물론 이례적인 일이었다. 구장을 메운 3만 여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갈라라가를 맞았다. 이때 조이스 심판은 홈플레이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회도 되고 속도 편치 않았으리라. 라인업 교환을 위해 홈플레이트에 도착한 갈라라가는 조이스 심판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조이스 심판도 곧 덕아웃으로 향하는 갈라라가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를 본 3만 여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날 투수에게 공을 토스한 뒤 퍼펙트게임을 확신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가 심판 판정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던 1루수 미겔, 갈라라가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퍼펙트게임을 놓친 갈라라가를 안고 위로했던 포수 제럴드, 둘은 경기 뒤 조이스 심판에게 가장 격렬히 항의했던 선수들이었는데, 이날 수비 위치로 가면서 조이스 심판과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다른 심판진들도 어깨가 처진 조이스 심판을 하이파이브로 격려했다. 언론은 이 일을 두고, '불완전한(Imperfect) 판정이 완벽하게(Perfect) 마무리 되었다'고 썼다.◆ 잘못된 상황을 감동으로 바꾸는 지혜유영구 총재께서는 어떻게 얘기를 끝맺으셨을까? '역시 미국은 대단한 나라야!'도 아니었고, '선진국 야구수준은 달라!'도 아니었으며, '스포츠맨십은 이런 거 아닐까!'도 아니었다. 이렇게 당부하셨다."에세이 연재하는 전북일보에다가 좀 써요. 잘못된 상황을 어떻게 모두가 감동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꾸어 가는지, 그 힘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이런 걸 좀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어. 전북이나 전주에서만이라도, 아니면 전주대에서만이라도 이런 고민들이 쌓여갔으면 좋겠어. 내가 저작권 따지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껄껄껄)"하나 더. 전주에 야구장이 없단다. 그래서 KBO총재를 맡고서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데, 정작 전주에는 올 일이 없으시단다. 갈라라가의 감동 정도가 있는 스포츠면 경기장 하나 있어도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꼭 직업의식의 소산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참에 시장님께 건의해본다. 전주에도 야구장 하나 만들자고. 거기서 갈라라가의 감동을 기대하자고.사족(蛇足). 우리들은 종종 이런 사례를 들 때마다, 그 사건을 그 나라의 일로 비약하여 해석하길 좋아한다. 이번 MLB 갈라라가 사건이, '미국이란 나라'의 선진성이나 합리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해석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때 그 '나라'가 거기 있는 '땅덩어리'라면 옮지만, 제도로서의 '국가'라면 명백히 비약이다. 오히려 국가인 백악관은 감동보다 시비(是非)를 선택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베네수엘라 출신 청년을 비롯한 미국에서 야구하는 청년들, 그 야구를 끌어가는 리더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 오항녕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