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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의 파리쫓기] 3.전주 인후동 '원평시골피순대' 김윤기 사장

김 사장은 '승부사'다. 위기가 닥치면 승부수를 띄워 기회로 삼는다.총각 때부터 서점을 운영하던 그는 친구 권유로 옥외광고업을 시작했다. 가게 이름은 '유성광고'. 전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키웠다.1997년 12월 'IMF 사태'가 터졌다. 못 받은 어음이 태반이었다. 부도가 났다. 전 재산이라곤 승용차 1대와 1톤 트럭 1대, 2.5톤 트럭 1대, 간판 짜는 기계 1대가 전부였다.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그는 망한 '유성광고' 자리에 돼지고기 전문 음식점 '장승촌'을 개업했다. 결과는 '대박'.옥외광고업을 하며 음식점 간판을 많이 다뤘던 그는 음식점의 성패를 십중팔구 맞혔다. 시나브로 음식점에 대한 '눈'이 생긴 것이다.그는 승승장구했다. 전주에만 직영점이 10개가 넘었다. 대전과 청주, 울산까지 직영점이 늘어갔다. 전성기 때 점포당 한 달 평균 매출이 1억5000만 원. 연간 총 매출만 100억 원이 넘었다.자만은 화를 불렀다. 너무 먼 데까지 무리하게 확장하다 보니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 직원들은 태만해지고, 음식 맛도, 손님도 떨어졌다. 은행 빚까지 얻어 점포를 늘렸지만, 버는 족족 이자로 빠져나갔다. 내리막길이었다.김 사장은 2003년 9월 전주 삼천동에 '장승촌'(180평)과 '장승장어'(120평), '장승어시장'(300평) 등을 묶은 대형 음식점(총 600평)을 열었다. 실비(實費) 개념으로 회를 저렴하게 팔면 성공하겠다고 판단해 2년간 제주도 등 전국의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준비한 것이다. 당시 직원만 무려 100여 명. 김 사장을 비롯해 14명이 13억7000만 원을 투자한 '야심작'이었다.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개업 일주일 뒤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덮쳤다. 경남 통영과 전남 완도 등에서 ㎏당 5000원이던 활어 단가가 1만8000원으로 폭등했다. 폭삭 망했다.전주에서 '원평시골피순대'를 운영하며 재기를 노리는 김윤기 사장(47)의 이야기다.'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김 사장은 지난해 3월 전주 삼천동에 '원평시골피순대'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을 연 뒤 같은 해 6월 인후동점을 개업했다. 그 뒤 전주 팔복동과 금암동에 잇따라 직영점을 냈다.순대를 메뉴로 선택한 까닭은 서민적인 음식이라 불경기를 타지 않고, 활어나 삼겹살처럼 남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음식점 콘셉트(concept)를 정하고, 실내 장식을 꾸미는 것은 김 사장이 했지만, 실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내 최은진 씨(46) 몫이었다.최 씨는 개업을 앞두고 김제 금산면 원평리의 한 순대집에서 석 달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비법을 전수받았다. 암뽕순대와 막창순대, 돼지머리 삶은 것을 기본 메뉴로 정하고, 곱창 철판볶음을 추가했다.국물은 직접 끓이고, 순대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비싸더라도 '목우촌'에서 가져다 쓴다. 주방은 공개한다. 손님들에게 조리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최 씨는 "일반 피순대는 선지가 많이 들어가지만, 저희 순대는 우유와 콩, 감자 등 재료만 15가지가 들어가 맛이 더 부드럽고, 영양식이다"며 "일반 순대는 끓는 물에 데쳐서 내놓지만, 저희는 대나무로 일일이 쪄서 내장의 비릿한 냄새가 없다"고 소개했다.김 사장은 지난 5월 프랜차이즈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전북도와 전주소상공인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소상공인 맞춤형 코디네이팅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코디네이터(장영수 씨)는 프랜차이즈의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이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우선 프랜차이즈의 장점은 ▲사업 의욕이 있는 가맹주를 모음으로써 점포 투자액을 줄이고, 넓은 지역으로 단시간 내 판매망 확보 ▲안정된 공급망(판매망) 확보 ▲가맹주는 판매에만 전념 가능 ▲교육·매뉴얼 정비·각종 지도 등 체계적 시스템 구축 등이다.단점으로는 ▲가맹점 급증 시 본부 지도력이 뒤따라가기 힘들어 통제가 안 됨 ▲가맹주가 문제 해결 및 경영 개선 노력을 게을리 할 우려 ▲특정 가맹점의 경우 본부 시스템이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음 ▲본부와 가맹주가 서로 이익만을 고집할 경우 마찰 발생 ▲한 가맹점이 실패하면 이미지와 신용 등 동반 실추 등을 꼽았다.사업 실패 후 한동안 방향을 헤맸던 김 사장은 전문가의 1:1 맞춤형 상담을 받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 방향에 대해선 아내와 엇갈린다.김 사장은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를 갖는 게 꿈이다. 반면, 아내는 반대한다.프랜차이즈를 하기엔 '원평시골피순대'의 메뉴 가짓수가 적다는 것이다. 아내는 현재 있는 가게라도 알차게 운영하자는 쪽이다.김 사장은 '모범생'보다 '모험가'에 가까웠다."종류가 많다고 장사가 잘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콩나물국밥집에서 냉면을 판다고 잘 되나요? 부족한 게 있으면 나중에 개발하면 됩니다. 소비자를 속이지 않는 소신만 있으면 지금도 충분히 경쟁력은 있습니다."그러면서 '후발 주자'들에 대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음식점 노하우가 있는 저도 성공할 확률이 절반 정도다. 일반인은 20%도 안 된다"며 "음식점을 내기 전에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사업계획서를 꼭 써봐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준희
  • 2010.07.30 23:02

[쉐비체어의 숨은 맛집 리포트] 5.전주시 반월동 채식뷔페 '함씨네 밥상'

두만강(豆滿江)에서 두자는 콩 두(豆)를 사용한다.그만큼 우리 민족과 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콩의 대산지(大産地)로 알려진 러시아 연해주도 1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발해의 영토였다.당나라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를 만큼 융성한 나라였던 발해의 최대 수출 품목이 바로 콩이었다.당시 발해의 콩 수입국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일본이 '낫토'와 '미소된장'으로 마치 콩의 종주국인 양 전 세계를 누비는 걸 보노라면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곳이 있다.바로 전주 수목원 부근 유기농 채식 뷔페 '함씨네 밥상'이다.전주 나들목 부근 큰길 옆에 있는 이곳은 전주비빔밥처럼 풍성한 마케팅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콩나물 해장국처럼 두꺼운 마니아층을 갖고 있지도 않다.더구나 유기농식품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가격의 압박(?)은 이런 채식 뷔페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힘들게 만든다. '함씨네 밥상'은 우리 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 두부 등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는 채식 뷔페로 자질구레한 부재료까지도 유기농을 고집한다.유기농 재료를 쓴다고 턱없이 비싸거나,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맛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밥맛은 물론이고, 비주얼까지도 환상적인 잡곡밥부터 부드럽고 고소한 콩 국물과 두부까지 유기농 음식을 무제한 즐길 수 있다.특히, 종지에 담아내는 알 청국장은 인공 배양한 일본산 '낫토'를 겨냥한 듯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단아한 맛과 멋을 뽐낸다.쌀겨와 치자로 물들인 단무지와 위생적인 환경에서 직접 숙성시킨 황석어 젓갈·멸치 액젓 등 채식 뷔페가 자칫 빠질 수 있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반드시 챙겨야 할 포인트다.그 중 젓갈과 액젓·간장·된장은 채소와 김을 싸먹는 용도로 쓰이는 '함씨네 밥상'의 가장 대표적인 직관적 곁 음식이다.'콩의 여왕'이라 불리는 함정희 씨(58)가 직접 손님을 맞이하며, 육류를 원하는 손님들에겐 한방 수육을 별도로 판매한다.▲ 영업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오후 5시 30분∼8시 30분▲ 뷔페 1인분 1만5000원, 수육 1만5000원▲ 위치: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849-42(전주수목원 입구에서 진입하면 편리함)▲ 전화: 063-212-2112김병대(블로그 '쉐비체어'(blog.naver.com/4kf) 운영자)

  • 문화일반
  • 김준희
  • 2010.07.30 23:02

[잊을 수 없는 밥상] 5.가수 송대관

트로트 가수는 노래 한 곡 히트하면 20~30년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다. 송대관은 '차표 한장'과 '네박자','정 때문에'만 부른 게 아니라 매년 신곡을 발표하고 '해피선데이','절친노트', '스타골든벨' 등 신세대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친다. 1967년 '해뜰날'로 무명의 설움을 딛고 인기를 얻었다면, 2010년 '분위기 좋고'로 또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한가수협회장까지 맡아 좀처럼 쉴 틈이 없다."가요계는 여름이 불황입니다. 가요계 행사가 7~8월엔 줄어들고, 해변을 끼고 있는 몇 곳에서만 반짝반짝하지요. 그런데 이곳 저곳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를 불러주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고향에 감사하게 돼요. 전라도 사투리는 구수하잖아. 거부감이 없어서 재밌어 하는 것 같아요."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일찌감치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KBS 전속가수가 됐고, 전주 노래경연대회에서도 전북 대표로 무대에 섰다. 전국 팔도강산을 돌았고, 그의 노래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덕분에 몸에 좋다는 음식도 수도 없이 먹어봤다. 그런데 요즘처럼 입맛이 떨어질 때는 손에 닿지 않는 음식만 생각이 난다."고등학교 졸업 즈음인데, 친구들이랑 전주천에 물놀이 가서 오모가리·피라미를 잡았다고. 망태기를 들고 있다가 물 속에 있는 돌을 두드려 패면 고기가 죽어 나와요. 그 놈을 갖다가 얼큰하게 끓이면 끝내주는 오모가리탕이 되지. 막걸리나 소주 한 잔 곁들이면 기가 막혀요. 2년 전에 내가 오모가리탕이 먹고 싶다고 하니까 사촌 형님이 나랑 마누라를 옥정호로 데려갔다고. 근데 그 맛이 안 나요. 한벽루의 오모가리탕은 꿈에 그리던 그 맛입니다. 딴 데 가서도 해결이 안되고, 마누라로도 어머니로도 안 돼요."전주의 한정식 음식점에서 먹던 짭조름한 젓국도 그를 황홀하게 만든 곰삭은 맛이었다. 상다리 부러지게 나오는 상차림에 된장·김치찌개, 계란탕, 젓국까지 입안이 호사를 누렸다."없는 서민들한테는 뜨거운 국물이 하나 있어야 밥이 넘어가거든요. 젓국 같은 거요. 젓국은 멸치젓으로 간을 하고, 무를 썰어 넣어요. 눈방울만하게 두부도 썰어 넣고요. 마른 민물 새우도 꼭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끓인 국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볼 때면 '너그들이 이 맛을 아냐'는 심정이 돼요."즐겨 먹던 전주 콩나물국밥도 그 맛이 예전같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임신한 아내를 위해 전주 삼백집에 데려 갔는데, 약간은 싱겁고 시원한 그 맛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삼백집 막내 아들이 제일 친한 친구였죠. 그 집에 가서 한 끼씩 때울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만든 것을 유심히 봤습니다. 뚝배기에 팔팔 끓인 국이 나오면, 반절은 자기가 요리했어요. 입맛에 맞게 고추도 넣고, 새우젓으로 간도 하고. 그래서 더 맛있었는 지도 모르겠어요."이렇듯 고향의 맛은 어머니의 젖은 손에서 풍기는 짭쪼름한 젓갈 냄새와 같다며 자신의 8할은 전주의 음식이 키웠다고도 했다.그는 지난해 자신의 고향인 정읍에 '제1회 송대관 가요제'를 열기도 했다. 고인의 이름을 건 가요제가 아닌 활동중인 가수의 이름을 붙인 가요제는 처음이었고, 가요제를 내장산과 연계해 정읍을 홍보한다는 취지에서도 관심을 모았다."지난해 10만 여 명 가까이 왔습니다. 그 때 활동을 잠시 중단한 '소녀시대'를 비롯해 '샤이니', 장윤정 등 많이들 왔죠. 전국이 들썩거렸어요. 더 놀란 것은 인터넷에 내장산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는 겁니다."올해도 '송대관 가요제'는 계속돼야 하지만, 그는 흥을 좀 잃었다고 했다. 행사를 치르기엔 정읍시 예산만으로는 부족한 데다 후배 가수 양성하고 싶다는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속상함이다. 그는 좋은 행사를 해놓고서도 사람들 마음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은 아쉽다며 애향심으로 여는 가요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주문했다."남들은 내가 너무 오래 해먹는다고 하는데, 선배가 없으면 후배도 없는 겁니다. 내가 있어서 더 못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씁쓸하죠. 그래도 내가 있어서 트로트가 버틴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지지해준다면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할 겁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0.07.30 23:02

[사람]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이사장에 김화숙 원광대 교수

김화숙&현대무용단 사포 예술감독 김화숙 원광대 교수(61·인문대학 예술학부)가 새롭게 출범한 재단법인 국립현대무용단의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전주 출생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장은 명예이사장으로 위촉됐다.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예술감독만 있고 정단원이 한 명도 없는 새로운 개념의 국립공연단체 재단법인 국립현대무용단을 신설하고, 이사진을 임명했다.예술감독 겸 상임이사에는 홍승엽 댄스시어터 온 대표가 선임됐으며, 김장실(예술의전당 사장) 남정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명숙(경희대 무용과 교수) 박순태(문화부 예술정책관) 박일규(서울예술대학 연기과 교수) 유인화(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이정희(이정희현대무용단 대표) 한선숙씨(상명대 무용과 교수)가 이사로 참여하게 됐다.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과 관계자는 "현대무용분야에서 대외경쟁력을 지닌 국가 대표 무용단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을 의욕적으로 출범하게 됐다"며 "한국 현대무용을 발전시키고 세계적인 경제력을 키우기 위한 창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국립현대무용단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상주하게 되며, 작품별로 오디션을 실시해 출연자들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현장 예술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무용분야 간접지원센터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한국 현대무용의 세계무대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국립현대무용단은 오는 8월부터 작품 개발 및 출연자 선발을 위한 오디션에 들어가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창작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다.김화숙 초대 이사장은 광주 출생으로 1981년 원광대에 부임하면서 전라북도와 인연을 맺어왔다. 1985년에는 전북 최초의 현대무용단인 김화숙&현대무용단 사포를 창단, 척박한 지역 환경에서 현대무용의 토대를 다지고 발전시켜 왔다.무용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무용교육발전추진위원회 공동대표,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부회장, 한국무용교육학회 명예회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도 등도 맡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10.07.29 23:02

日 250곳에 한국 유출 문화재 소장

한국에서 유출된 문화재 6만1천409점이 일본 국립박물관이나 대학, 사찰 등 250곳에 소장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아사히신문이 28일 한국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에서 유출된 문화재가 해외에 10만7천857점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은 지난 1월 발표됐지만 이중 일본으로 건너간 6만1천여점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 목록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유출된 문화재는 일본 궁내청이나 도쿄ㆍ교토의 국립박물관, 국립공문서관 내각 문고, 도쿄대, 와세다대 등 국공립 대규모 시설 57곳과 도쿄의 사찰 조조지(增上寺)나 교토의 지온인(知恩院)같은 사찰 등 145곳에 흩어져 있고 개인 48명도 한반도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소유 중이다. 대다수는 서적류와 도자기 등이지만 도쿄 오쿠라 호텔 뒤뜰에 있는 경기 이천의 오층석탑 같은 탑이나 불상 등도 포함돼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국과 문화재ㆍ문화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한국이 요구한 한반도 유출 문화재 4천479 품목 중 1천432품목을 돌려준 뒤 "법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됐고, 개인 소유 문화재는 돌려주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국ㆍ공유 문화재 중에서도 궁내청에 보관된 조선왕실의궤처럼 한일 협정 당시에는 어디에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 못해 반환이 성사되지 않은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여 이번 소재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반환 논의가 다시 한 번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목록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해외 소장 문화재에 대한 연구목적으로 작성한 목록"이라며 "목록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약탈' 문화재이거나 일제 침략 이후에 반출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환수 문제에 언급, "불법ㆍ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는 환수하고 적법 절차를 거친 문화재는 한국에 대한 홍보수단으로 삼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연합
  • 2010.07.29 23:02

2013년까지 공유저작물 1천만건으로 확대

저작권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저작물을 크게 늘리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제23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전자책 산업과 디지털 교과서, 스토리 산업 등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유저작물 창조자원화 실행전략을 발표했다. 문화부는 음악, 미술, 어문 등 분야별 실태조사를 거쳐 저작권이 만료된 저작물을 발굴하고 저작권 기증, 자유이용허락(CCL) 등을 통해 저작권 나눔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또 최근 급증하는 공공저작물의 활용 수요를 반영해 공공기관이 보유 중인 공공저작물을 일반에 우선 개방할 방침이다. 확보된 공유저작물은 '공유저작물 가상은행 사이트'를 통해 소재 정보에서 원문 데이터베이스(DB) 연계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디지털화되지 않은 공유저작물은 시장성과 학술가치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DB화할 계획이다. 저작물의 무료 개방이 어려운 공공저작물은 관계 부처와 협의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저작자를 알 수 없는 고아저작물이나 출판권리가 소멸된 절판저작물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히 공유저작물을 교육현장이나 전자책 시장 등에서 새로운 창조자원으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용 방안을 마련하고 스토리텔링이나 1인 창조기업 지원사업과 연계해 공유저작물을 창작소재로 활용키로 했다. 문화부는 하반기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부터 이 전략을 본격 시행키로 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구글북스와 유로피아나를 통해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만료저작물을 각각 300만건과 700만건을 확보했지만 우리나라는 3만건에 불과하다"며 "미래사회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주목받고 있는 공유저작물을 2013년까지 1천만건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10.07.29 23:02

"근대성 보존사업 '전근대적'이다"…제2회 익산 어울림 문화포럼

근대성 보존을 위한 정책과 사업들이 대부분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근대건축물을 보존하고 복원·정비하는 개별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익산문화재단 주최로 28일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2회 익산 어울림 문화포럼'에 참석한 이경찬 원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근대도시경관 보존사업은 단순히 점으로서 근대건축물들이 모여있는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며 "근대도시경관 안에는 근대 이후에 끊임없이 변모해 온 삶의 흔적들이 적층돼 있는 만큼 근대건축물의 외형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 조직적·구조적 특성을 이해하고 사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역시 "근대성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보존이 당연하다"며 "이미 국제적으로는 점 단위에서 선 또는 면 단위 보존으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이번 포럼의 주제는 '익산의 근대문화를 이야기하다'. 식민지시대 산물인 근대건축물 보존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근대의 시간적 범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교수는 "현재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근대는 흔히 개항기로부터 일제강점기를 이르는데, 이 기간은 직·간접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식민적 근대기로 정의할 수 있다"며 "근대의 시기를 미군정기와 전재복구기, 압축성장초기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 혹은 60년대까지로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전문가들은 근대건축물과 근대도시경관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생활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고대나 중세의 유적·유물을 대상으로 한 역사성 보존과는 근본적으로 시각이 달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송교수는 "현재까지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련된 사업들이 상당 부분 관광자원의 개발이라는 시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대문화유산의 진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근대건축물과 근대도시경관의 보존이 현실적인 여건상 행정 주도의 사업 형태로 시작될 수밖에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 주민에 의해 만들어진 별도의 조직을 통해 자발적인 형태로 생활이 지속되는 형태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익산은 대부분의 도시가 동일한 공간적 영역 안에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흔적이 누적돼 있는 것과 달리 시대별로 전혀 다른 공간적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 현재의 익산시가지와 도심공간이 근대의 토대 위에서 발달된 것. 그러나 1977년 이리역 폭파사고로 이리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근대시가지가 전면 재정비되면서 호남의 근대 거점도시로서 익산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으며, 근대도시로서의 역사적 정체성도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익산의 근대건축물은 일제강점기 수탈거점이자 경제거점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농장 사무실과 수리조합, 농림학교, 상가건축물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10.07.29 23:02

"지역문화 정체성 찾기, 소통이 첫걸음이죠"

"익산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치가 바로 소통입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만들어가는 소통을 하자는 거죠. 익산의 문화적 정체성이 다양한 시각에서 정립될 수 있도록 지역의 문화적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겠습니다."28일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2회 익산 어울림 문화포럼'을 기획한 익산문화재단 이태호 정책연구실장. 이실장은 "소통이 커져 어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익산의 문화정체성을 말할 때 고도로서 마한백제 문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근대문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를 익산의 근대문화로 정한 것 역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근대사를 재조명해 전북지역에 가장 많은 등록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익산의 근대문화를 알리고, 보다 다양한 역사문화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서입니다."익산문화재단의 사무실 역시 등록문화재 181호로 지정된 구 익옥수리조합을 리모델링한 것. 이실장은 "재단 건물에는 일제강점기 건축양식이 남아있거나 역사적 가치가 우수한 공간들이 산재하고 있다"며 "수탈의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현재 문화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듯이 근대문화유산의 활용방안과 보존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문화포럼은 앞으로 전문가포럼과 대중포럼으로 나눠 진행하려고 합니다. 전문가포럼이 익산의 문화코드를 찾고 나아가 익산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대중포럼은 시민들에게 익산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편한 자리로 만들려고 합니다."전문가포럼은 1년에 4회, 대중포럼은 2∼3회 정도 할 계획. 지난 5월 '재단의 역할과 미래 발전방향'을 주제로 첫번째 전문가포럼을 개최한 바 있으며, 오는 10월 익산 4대 축제를 대상으로 축제 발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중포럼은 전문가가 원고를 준비해서 답사를 떠나는 현장포럼으로, 올해는 익산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내년부터는 주제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실장은 "추진위원회를 통해 포럼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지난해 12월 출범한 익산문화재단은 이한수 익산시장을 이사장으로 사무국, 정책연구실, 사업교류팀, 운영관리지원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10.07.29 23:02

[노노 청춘] '미스터전북선발대회' 노장부 1위 김영광 어르신

"'몸짱'이 되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욕구를 절제해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합니다."지난 4일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25회 미스터전북선발대회' 노장부에 출전,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김영광씨(67·전주시 효자동).헬스를 시작한 지 37년 됐다는 김씨는 "건강도 지키고 몸도 만들고 싶어 헬스를 시작했다"면서 "본격적으로 몸을 가꾼지는 10년이 됐다"고 말했다.단순히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헬스를 시작했던 김씨지만 지금은 현역 보디빌더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아픈 아내를 간호하면서 틈틈이 남는 시간에 할 수 있었던 운동이 헬스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시간씩 운동기구를 붙잡고 살았지요."다음달에 열리는 '전국 미스터 YMCA 선발대회'에 전북도 대표로 출전하는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대회에 출전, 1위를 거머쥐면 좋겠지만 순위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자랑하기 위해 몸을 만든 것이 아닌 만큼,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느끼고 싶거든요."그가 벤치프레스(bench press)와 스쿼트(squat)를 할 때면 어느새 다른 회원들이 몰려 들어 탄성을 자아낸다. 6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벤치프레스 110kg, 스쿼트 140kg의 무게를 밀기 때문이다."젊은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냐'며 신기해하고 부러워해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일부 남성 회원들은 감당할 수 없는 바벨(역기)의 무게를 올리는 데,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최고의 근육남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그는 "하루 아침에 만든 몸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면서 "나이가 들어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 생활습관을 닮고 싶다"고 설명했다.멋진 몸매의 필수조건은 꾸준한 운동과 영양섭취,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젊은 사람들은 초콜릿 복근을 가지고 싶어하는 데, 정작 노력은 하지 않아요. 고단백 저지방인 닭가슴살과 생선·달걀 등의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술과 담배는 물론 금물입니다. 노력없이 이뤄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남성들의 로망 '역삼각형' 몸매를 가지고 있는 그는 헬스클럽에 갓 입문한 회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개인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맞는 운동법을 선택하고 신체 부위에 따라서도 운동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헬스 트레이너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운동을 시작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자기가 태어난 몸을 강철같이 단련시키는 일이 가장 훌륭한 일이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그는 "운동을 했던 사람만이 쾌감을 얻을 수 있다"면서 "자신의 몸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신동석
  • 2010.07.29 23:02

[창조시대, 전북을 말하다] (4)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유영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지난 2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마침 '정오의 음악회'가 열렸다. 지난 2009년 5월 이 공연이 처음 열렸을 때 음악회의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년째를 맞은 지금, '정오의 음악회'는 국립극장의 공세적인 관객 개발에 성공한, 간판 프로그램이 됐다.주말도 아닌 평일, 그것도 예외없이 오전 11시에 시작된 7월의 음악회에도 해오름 극장 1500여석 객석은 가득찼다. 연주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사이 사이에 해설자 황병기 예술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설명으로 연주곡 감상을 도왔다. 무대와 관객이 소통하는 현장은 감동과 신명이 넘쳐났다.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어온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74)과 유영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54)을 만났다.황감독과 유감독은 전북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황 감독은 "부모님 고향이 군산(옥구)이어서 전북에 대한 생각이 특별하다"고 했고, '남원 사람' 유 감독은 1985년부터 10년동안 우석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했던 시절까지 "모두가 소중한 삶의 기억"이라고 했다.같은 시기에 국립단체 예술감독으로 임용돼, 연임(임기 3년) 전통이 없는 곳에서 5년 반째 같은 일을 맡고 있는 황 감독과 유 감독과 나눈 인터뷰는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만큼 새겨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연주로만 뵈었던 선생님을 해설로 만나는 무대가 새로웠습니다. 그런데 해설 시간이 생각보다도 짧더군요.(황병기 감독-이하 '황')"오늘은 특히 음악이 길었거든. 그래서 보통 때보다 더 간단히 했어요. 해설은 항상 상황봐서 해요. 해설 하는 일요? 그런대로 또 재미있어요."(유영대 감독-이하 '유')"선생님은 음악활동 뿐만 아니라 사실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설가세요. 작곡의 계기, 배경 등을 말씀해 주실 때에도 아주 구체적인데 상당히 보편적인 내용이지요. 말씀이 재미있고, 끌어들이는 힘이 있으세요."-두 분 모두 전라북도에 뿌리를 두고 계신데, 전북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지요.(황)"제가 삼대독자예요. 그래서 버릇 없이 자랄까봐 어머니께서 엄하게 하셨지요. '사람은 흙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교육이념이 확고한 분이셨죠. 방학이면 옥구 임피에 있는 외가로 쫓아 보내셨어요. 거기서 외사촌들과 함께 초가집에서 지내면서 시골의 정서를 이해하고 자연에 파묻혀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만 살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시골 냄새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데, 칠십 평생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린시절 외가에서 들은 것들입니다. 이런 경험과 기억들이 후에 나의 음악에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유)"저도 그렇지만 우리 창극단에 전북 출신들이 특히 많아요. 그런데도 전주 공연을 가면 명창 뿐만 아니라 귀명창이 많아 단원들이 긴장을 하지요.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고 싶어하는 무대가 전북입니다."(황)"이런 기억도 있어요. 50년대에는 1년에 가야금이 여남은 대 팔릴 때였지요. 그 때 가야금을 만드는 사람이 전주에 한 명 있었어요. 김광주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악기장, 첫번째 인간문화재였죠. 그 아버지가 김명칠씨였는데."-국립극장의 홍보 마케팅 전략이 돋보입니다. 소속 단체들도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을 것 같은데요.(황)"2006년 예술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첫 임무가 상임지휘자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진즉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는데, 노조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었어요. 결국 상임지휘자를 뽑지 않고 대신 객원지휘자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체제가 안정된 후에는 어떻게 관현악단을 이끌고 나갈까 고민했습니다. 국악관현악단이 무조건 전통을 계승하는 단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나는 우리 단체가 '오늘날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나라의 음악을 대표하는 '국가 브랜드' 공연을 기획했고, 우리 정신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네가지, 기독교·불교·도교·무속신앙을 주제로 네 곡의 작품을 위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내가 너무 예술성만 생각하고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지만 나는 정체성이라는 게 반드시 옛것을 답습해야만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신념으로 새로운 국가 브랜드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유)"아무래도 고전을 바탕에 두지만 고전과 현대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것을 고민하지요. 관현악단이나 우리 창극단이나 전통을 훼손시키면 문제가 있지만 오늘의 관객을 소외시키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두 분은 국악에 있어 새로운 실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작업을 주도해오셨습니다. 황감독님에게는 국악 창작을 통해 국제무대 진출을 이어내셨고, 덕분에 우리 음악에 활기와 발전을 가져왔지요. 특히 가야금에서 양손주법을 시도한 것은 파격적이었는데요.(황)"작곡을 할때면 늘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적인 틀을 부수어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런 작품은 허무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전통에만 머무르기는 더 싫었어요.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이를테면 조선 후기 음악을 넘어 신라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1974년에 발표한 '침향무'는 그렇게 나온 작품입니다. 이국적인 새로운 가야금 주법도 여럿 나오고, 장구 반주도 양쪽 가죽 말고도 나무통도 치고, 채를 내려놓은 손가락으로 연주하기도 하지요. 창작이나 창조는 어려운 길이에요. 그런데 사실 어려워야 재미있거든. 어렵지 않으면 식상해요."(유)"선생님에게 창작은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움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은 그 자체가 먼저 충격으로 다가오지요. 고도의 음악성이나 익숙함 보다는 뭔가 충격적인 느낌,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중성을 확보해 나가죠.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게 전통과 일정한 맥이 닿아있어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사적인 정신세계와도 연결돼 있지요. 선생님의 작업을 보면 후기로 올수록 전통에 훨씬 더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을 더 명확하고 확실히 알아야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거죠."-요즈음 음악은 어떻게 보십니까.(황)"요즈음 사람들은 흥겹고 신나는 음악만을 찾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속악을 하는 사람들도 짜임새를 중요시 여겼죠. 격조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판소리 하는 사람은 판소리와 단가만 하지 민요는 물론 잡가도 안했습니다. 판소리 하는 사람은 광대, 잡가하는 사람은 잡가꾼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특히 산조는 격조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어요. 격조가 높으려면 짜임새가 좋아야 해요. 요샛말로 하면 구성감이죠. 구성감이 있으려면 이것 때문에 이것이 있는 것, 즉 논리가 있어야 해요. 한 부분을 놓고 보면 판단이 안되니 넓게 봐야 해요."-가야금도 전통 12현에서 나아가 17현, 18현, 25현까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데요.(황)"내 경우, 17현까지는 작곡 했지만, 25현 가야금은 하지 않았어요. 가야금은 20현이 넘어가면 너무 서양화 됩니다. 서양악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양방언씨 전공이 피아노인데, 20현 넘는 가야금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냥 칩니다. 그런데 12현은 못치거든요. 실제로 20현 넘는 악기는 서양악기 하는 사람들이 잘해요. 가야금은 18현까지는 전통음계인 5음계로, 20현 넘으면 서양음계인 7음계로 해요."-유감독님은 '청'에 이어 '춘향', 최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새로운 창극을 연이어 내놓으셨는데요. 기대 이상으로 대중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있으셨죠.(유)"처음에 와서 보니 '배우들과 관객들이 근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500석 극장에 200∼300명 모아놓고 '얼씨구 좋다'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창극은 보편적·세계적 음악극이라고 선언부터 했습니다. 북장단이나 수성반주에 익숙한 소리꾼들에게 악보나 지휘자의 지휘봉을 보며 소리를 하도록 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고 화성을 넣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어요. 대신 판소리 부분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가 그 첫 작품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반발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관객들이 우리 창극이 이렇게 좋았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워 하자 단원들도 바뀌더군요."-창극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뮤지컬 대중화가 확연한 지금, 창극으로도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유)"물론입니다. '청'은 2006년 전주에서 초연을 했죠. 지금까지 72회 공연해 8만3000명이 관람했습니다. 지난해 만든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특히 연극하는 사람들이 많이 봤습니다. 8월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와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도 초대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창극은 가능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단, 동시대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며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우리시대 창극이어야 합니다. 전통창극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과 지역성에 현대적 보편성을 더해야 해요. 이 작업을 전라북도가 해야 합니다."-전통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황)"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창작을 하든지 전통에서 출발하는데, 한편으로는 그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하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과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 이 두가지가 긴장관계인데 그 긴장 속에서 창작품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전통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고루해지고, 전통에서 너무 벗어나려고 하면 허무해집니다. 새로운 걸 내놓았지만, 뭐가 뭔지 몰라 허공에 둥 떠버리고 말죠. 그래서 전통과 새로운 것, 그 사이에서의 갈등, 딜레마에서 창작이 나오는 겁니다. 그것을 해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예술성이지요."-결국 창작이란 전통과 새로운 것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씀이시군요.(황)"좋은 것은 완전히 상반된 것에서부터 나옵니다. 동양의 '음양'만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미인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하지요. 기가 막히게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매력있는 남자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있어야 하고 아름다운 여성은 건강미가 있어야 합니다. 묘하게도 항상 반대를 끌어안는 게 있어야 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눈 앞에 풍경이 떠오르고, 아름다운 풍경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황)"아직 창작 작업 계획은 없어요. 연주는 많이 합니다. 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올림푸스홀에서 '琴 et 이마쥬, 가야금 황병기'라는 제목으로 연주 합니다. 흔히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데,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마음을 비우고 청산과 녹수처럼 절로절로 살아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가야금을 매일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겠습니다."(유)"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의뢰를 받아 상설공연될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전남 구례에서 열리는 '동편제소리축제'를 맡게 됐는데, 절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경쟁 관계는 아닙니다.(웃음) 장기적으로는 브레이트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패왕별희'를 창극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지는 우리 고전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호흡하는 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얼마전 전주 한옥마을을 갔는데, 많이 좋아졌더군요. 작은 창극을 기획해 일년 내내 공연이 가능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하루도 가야금을 쉬지 않는 황 감독은 "나에게 가야금은 우리 민족으로부터 받은 은혜"라고 했다. 1500년간 전해온 그 가야금 소리를 좀더 바르고 새롭게 내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그 은혜예 보답하는 일이라고도 덧붙였다.유 감독은 한국에 창극이란 장르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길은 멀고 날은 썩 밝은 것 같진 않지만, 여기가 출발점이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대담 = 김은정 편집국장

  • 문화일반
  • 김은정·도휘정
  • 2010.07.28 23:02

[창조시대, 전북을 말하다]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1년 부산 피난 중에 가야금을 시작했으며 김철옥 선생을 거쳐 국립국악원 김영윤 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공부했다. 김윤덕 심상건 김영제 등 당대 최고 명인들에게 궁중음악 정악과 민속음악 산조를 두루 사사했다.경기고와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영화사 대표, 출판사 대표 등을 지내기도 했으나 1974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그의 삶은 온전히 가야금에 놓였다.1974년 창작곡 '침향무'로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음악가가 됐으며, 1975년 발표한 '미궁'은 이 곡을 들으면 죽는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이슈가 됐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다른 음악에서 익숙하게 듣던 소리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소리들이 많이 나오니까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초기 연주집을 제외한 5개의 창작 앨범을 발표했으며, 동시에 현재 연주되는 유명한 가야금 산조 10여 곡 중 최대 규모인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완성했다.이화여대 명예교수와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아시아 문화의 보존과 창조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제21회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가 한말숙씨가 아내이며, 황준묵 고등수학원 교수가 아들이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10.07.28 23:02

"'光化門' 현판 복원 막바지…31일쯤 설치"

광복절에 맞춰 다음달 15일 제막식과 함께 일반 공개가 예정된 광화문 현판의 복원 작업이 조만간 완료돼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장(刻字匠.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오옥진(74) 선생 측은 최근 현판에 '광화문(光化門)' 석 자를 복원해 새기는 과정을 마쳤다고 27일 밝혔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판에)단청을 입히고 나면 7월31일께 현판을 광화문에 매달 예정"이라며 "설치하더라도 제막식은 광복절에 맞춰 열게 되므로 현판을 천 등으로 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판 복원작업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복원한 20세기 초의 유리원판 사진을 바탕으로 4단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유리 원판에 있던 고종 당시 중건책임자 겸 훈련대장 임태영(任泰瑛)의 글씨 복원본을 서예 전문가 5~6명에게 의뢰해 세부 보정하는 것이 첫 단계였고 그 다음 이 보정본을 실물 크기로 인쇄해 현판을 만들 목재에 붙이고 난 뒤 세 번째로 각자장이 이를 새기는 순서가 이어졌다. 이 작업에 지금까지 약 20일 정도가 소요됐는데, 현재는 문화재위원들과 문화재청의 협의를 거쳐 마지막 단계인 현판에 단청을 입히는 일만 남겨두고 있다. 복원 중인 현판은 재질이나 크기 등까지 원래의 현판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제작되고 있다. 재질은 줄기가 곧고 튼튼해 조선시대 때부터 궁궐 건축에 사용해온 한국 전통 소나무 금강송(金剛松)으로, 전문가들은 고종 중건 당시에도 금강송을 사용해 현판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현판 크기는 가로 428.5㎝, 세로 173㎝이며 아래쪽에 54㎝, 좌우에 각각 110㎝의 날개가 덧붙는 형태다. 이 현판의 크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과 같은 크기이며 임태영의 원본 현판과도 거의 차이가 없다. 한편, 한글학회 등 일부 단체는 집회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원기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장은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도 이와 같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연합
  • 2010.07.28 23:02

[행사·축제] 서울세계무용축제 9월30일~10월20일 개최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회장 이종호)는 '제13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0'를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0일까지 21일간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해 쿠바, 이탈리아, 이스라엘, 일본,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등 전 세계 18개국 60여개 무용단이 참가해 예술의전당, 호암아트홀, 세종M시어터 및 카페, 공원, 공장지대 등 도시 곳곳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 행사의 티켓예매는 오는 8월 16일께부터 시작되며 조기예매 혜택으로 40%의 할인율이 적용된다. 또 국내외 무용비평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용문화와 비평에 대해 논의하는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Seoul Performing Arts Critics Forum 2010)'이 함께 열린다. 한편, 1998년 제13차 국제무용협회 세계총회 및 제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개최를 시작으로 그간 무용계의 국제교류에 힘써온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는 이번 행사를 함께 이끌어 갈 자원활동가 '시끌이'를 오는 8월 8일까지 모집한다. 모집분야는 의전통역, 축제운영, 기자, 춤추는 도시, 홍보 등 총 5개 분야로, 해외공연팀 수행통역, 축제운영 및 부대행사 진행, 취재 및 공연팀 인터뷰, 운영업무 보조 등 다양한 업무를 맡게 된다. 무용과 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며 선발된 자원활동가에게는 공식티셔츠와 개인별 ID카드, 자원활동인증서가 제공된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www.sidance.org) 내 온라인 신청서를 작성해 지원하면 된다. 문의 ☎02-3216-1185

  • 문화일반
  • 연합
  • 2010.07.28 23:02

전북무용협회 하계 강습회 '승무' 강사로 나선 임이조 서울시립무용단장

"춤은 순서만 따라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경험을 쌓아 터득을 하는 것이며,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느껴야 하는 겁니다. 외형적인 기교가 아니라 연륜과 공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특히 승무는 절제미가 있어야 해요."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인 임이조 서울시립무용단장(60)이 전주에 왔다.전북무용협회와 금파춤보존회 금파무용단이 26일부터 29일까지 우석대학교에서 열고 있는 '제6회 하계강습회'에 승무 강사로 초대를 받았다. 강습을 위해 전주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생각보다 강습받으러 온 남학생들이 많았지만, 정작 무용 인구는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전북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최선 선생과 고 금파 김조균 선생을 중심으로 무용 식구들이 많았다"며 아쉬워 했다."1981년 전주대사습 장원을 하고 전북에서 공연도 많이 했었어요.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남원시립국악단에 있으면서 춘향이 가지고 북한 공연도 다녀왔죠. 전라도의 멋과 음식, 정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제 본적이 옥구예요. (웃음)"그는 "예향으로서 전북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전통춤 분야의 문화재 지정에는 인색한 것 같다"고 말했다."저도 승무 전수조교가 된 지 20년입니다. 지금도 무릎이 아픈데, 언제 문화재가 될 지 몰라요. 나중에 활동력을 다 잃고 난 뒤에 문화재가 되면 나이 때문에라도 무리가 있지 않겠어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우리 전통문화를 키우고 가꿔놓을 필요가 있지요."그의 승무는 스승인 이매방류. 큰 움직임 없이,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으며 세찬 장삼 놀음과 빼어난 발디딤새만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스승의 춤은 그를 겸손하게 만든다."우리 선생님이 기복이 심하세요.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혼도 많이 내세요. 사람들 많은 데서 크게 혼난 적도 많지만 섭섭한 마음도 그 분 춤을 보면 금세 잊어버려요. 선생님에 대해서는 언제나 위압감, 부담감이 있는데 아마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겸손함을 배우지 못하고 건방졌을 거예요."그는 "세상에 저렇게 무거운 춤이 있다는 걸 스승의 춤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다.'백조의 호수'가 본래 목적은 아니었지만, 최근 그는 '백조의 호수'를 한국춤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서울시립무용단이 내 손님, 내 팬을 억지로 앉혀놓는 식상한 공연을 한다고 생각했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 필요가 있었다. 임단장은 "몇 백년 동안 다듬어진 명작을 몇 개월 준비해 올린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지만, 욕도 관심이 아니겠냐는 각오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전주를 대표하는 한옥마을에 오픈된 마당극장을 만들거나 시내에 작은 소극장을 마련해 젊은 무용식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어떨까요. 전주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전주춤을 보여주고, 전주 시민들에게는 우리춤을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그는 "전라도의 춤은 다른 지역 보다 깊이가 있다"며 "전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춤을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10.07.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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