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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요] 덜 알려진 피서지 - 무주 안성면 칠연계곡

무주군 안성면 통안리에 위치한 칠연계곡, 기암괴석과 소(沼)와 담(潭)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아름다움에 비해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곳. 올 휴가는 온 가족과 함께 칠연계곡으로 피서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칠연계곡은 전주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 관광레저형 기업도시가 들어설 안성면에 위치해 있다.안성면 소재지에서 통안리 방면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칠연계곡은 용추폭포를 시작으로 오래된 소나무들이 계곡에 분포돼 있어 웅장함을 자랑한다.또한 덕유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금옥(金玉)같은 물줄기는 너무 맑고 차가워 채 5분도 손발을 담글 수 없으며 잘 보존된 자연경관은 한 폭의 수채화를 수놓은 듯 아름답다. 칠연계곡에는 빼놓을 수 없는 자연의 조각품이 있다. 작고 아기자기한 일곱 개의 폭포가 이어져 흐르는 칠연폭포. 칠연폭포는 연인들의 사랑을 다짐하고 약속하는 자리로 알려지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칠연계곡은 덕유산 능선의 동엽령 서쪽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계곡을 완만하게 흐르는 맑은 물살이 주변의 경관을 더욱 살려주는 곳이다.칠연폭포 아래쪽 계곡 건너에는 조선말기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150여 명이 잠들어 있는 칠연의총을 비롯해 전라북도 자연환경 연수원도 자리하고 있어 관광과 견학을 함께 병행할 수 있다.(무주군 관광안내 320-2570)

  • 문화일반
  • 김정수
  • 2007.07.20 23:02

[함께 떠나요] 덜 알려진 피서지 - 남원 지리산 와운마을

장마가 마지막 뒷 모습을 보이면서 여름 피서도 본격화되고 있다.교통여건이 좋아져 전국의 피서지가 일일권으로 손 안에 들어오면서 도민들의 피서도 그만큼 다양하고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주엔 가까이 있으면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피서지를 소개한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모르지만 즐길만한 피서지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우리네 피서지이기는 하지만, 안성맞춤인 피서지로 다가올런지 궁금한 곳들이 많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지리산 뱀사골의 와운마을. 지리산 탐방안내소에서 뱀사골 계곡의 자연관찰로를 따라 꼬박 1시간 동안 산을 올라야 겨우 다다르는 와운마을은 그래서 말 그대로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다. 산속 깊숙히 자리 잡은 와운마을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지리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10여채 남짓한 아담한 집들이 숲 속에 묻혀있고 약초와 산나물을 캐며 살아온 심마니 같은 순수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마을집들은 모두 민박겸 음식점을 겸하고 손님을 맞고 있다. 산채비빔밥과 토종백숙은 우리음식의 풍미를 보여준다. 마을주변엔 온통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유혹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지리산 뱀사골의 비경과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마을 위로 올라가면 눈 앞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천년송이다. 천년송은 할아버지 소나무와 할머니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천년송 두 그루는 장정 세명이 껴안아야 안길 정도로 굵고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특히 천년의 세월을 주민들과 함께 하며 지리산과 와운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기도 하다.'정이품송'에 버금갈 정도로 빼어난 천년송은 2000년에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돼 그 빼어남과 우수성이 인정되기도 했다.

  • 문화일반
  • 신기철
  • 2007.07.20 23:02

[작가가 만난 작가] ③'찰스 디킨스' 박물관

런던의 거리를 걷다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때가 낀 낡은 담벼락, 밟고 밟아 모서리가 닳아버린 보도의 돌 귀퉁이, 세밀하게 조각된 건물의 외벽과 우아한 성당들, 100∼200년은 훌쩍 넘겼을 고풍스런 집과 정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대영박물관 근처인 도우티가(The doughty Street) 48번지도 그렇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건물로, 1923년 붕괴 위협을 받았던 이 집은 '디킨스 펠로우쉽'(1902년 설립)에 의해 유지되었고, 1925년부터 '찰스디킨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초상으로 남은 거대한 노장도우티가 48번지는 1837년 4월부터 1839년 12월까지 찰스 디킨스(1812~1870)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이다. 다른 집에서 살았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는 이 곳에서 「픽위크 페이퍼즈」를 완성했고, 「올리버 트위스트」와 「니콜라스 니클비」 등을 써냈다. 고즈넉한 주택가에 있는 찰스디킨스박물관은 대문 앞에서야 청녹색 기념명판을 확인하고, 박물관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리에 잠겨 있다. 그러나 문을 열면 치열했던 한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더모드가 그린 디킨스의 초상화와 그림스턴이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디킨스의 작은 초상화다. 쓰러지기 바로 전까지 줄곧 원고를 썼던 거대한 노장의 모습. 포츠머스에서 태어난 디킨스는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열두 살 소년 시절에 구두약 공장 등에서 하루 13시간씩 노동을 했다. 5파운드라는 적은 돈에 장의사 도제(徒弟)로 팔려 가는 올리버처럼, 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소 체험한 사회 밑바닥 생활과 애환이 있었기에 「올리버 트위스트」같이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육필원고는 2층 전시실에 놓여있다. 찰스디킨스박물관은 다른 박물관이나 문학관과 달리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없다. 다른 언어 사용자를 위한 배려도 부족하다. 화장실마저 한 칸, 남·녀 공용이다. 유리창을 막고 있는 쇠창살은 섬뜩했으며, 계단은 곧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번영과 동시에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이 난무했던 19세기 전반 런던의 생활을 체험케 하는 것이 이 박물관의 특징인가 싶을 정도로, 건물 내부의 분위기도 어둡고 암울했다. 영국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짙은 갈색 안개와 같은……. 들떠 있던 관람객들은 시나브로 불안해지다가 결국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19세기 전반 번영을 꾀하던 영국 대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빈곤과 노동착취의 그늘이 작가의 소년기와 그대로 겹쳐지기 때문이다. 런던의 뒷골목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희망을 닦았다'는 그에게 소설은 구원이었으리라. 문학관은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곳에는 그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유품이 꽤 많이 전시돼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디킨스가의 족보와 그의 일러스트, 그가 쓴 책들과 연재된 신문들, 각종 삽화들, 동화작가 안데르센에게 헌정한 책, 서간문, 서류, 집기도구, 그가 쓰던 티스푼, 심지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빚에 몰려 갇혔던 교도소의 목제창살까지 가져다 놓았다. 당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재현해 놓은 방도 있으며, 그가 쓰던 침실과 부엌, 서재도 그대로 보관돼 전시되고 있다. 빡빡할 정도로 많은 양의 서적과 자료가 쌓여있는 그의 서재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작가의 서재. 그가 무슨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 무슨 말을 써넣었는지, 누구와 교류하고 책과 편지를 나누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곳은 지극히 사적인 곳이지만, 개인의 창작력으로 대중화하기 위한 작품을 생산하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공간이기도 하다. 3층과 4층은 특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디킨즈의 처제이자 지적 동반자였던 메리 호가스가 사망한 것은 이 곳 3층 침실에서였다. 그 충격으로 이들은 도우티가를 더 서둘러 떠났을 것이다. 4층은 디킨즈의 삶과 관련된 그림, 희귀한 발행물과 원고, 원래의 가구와 많은 기타 물건들을 관람할 수 있으며, 그와 관련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작가의 흔적, 하나 하나가 모두 역사다. 한 사회의 문화를 살찌운 문학인들이 남긴 원고와 작업노트, 편지, 사진, 메모 등은 새로운 창조 작업의 토대가 된다. 이 자료들을 거름으로 새로운 책들이 쓰여지고 영화와 연극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부가가치들이 산출된다. 작가의 소중하고 귀한 문화사적(文化史的) 자료들을 모으고 보존해서 지속적인 부가가치 생산이 일어나게 하는 곳이 문학관(박물관)이다. 머무르거나 멈춰있는 공간이 아니라 또다른 의미의 창조적인 생산기지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씨(경희대 교수)는 문학관을 '작가가 바라본 사회의 문화사, 정신사, 사회사의 기록들과 예술적 성과들을 실물로 보존하는 기억의 사원'이며 창조와 활용의 에너지들이 뛰노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외국에서는 노먼 메일러 같은 생존 원로작가들의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서재 물건들과 육필 메모 등 실물 자료들을 수백만 달러씩에 사들이는 도서관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왜 이리도 척박한가?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7.07.20 23:02

광복후 2년간 13번 테러당한 몽양 재평가

백범 김구가 민족주의 계열에서 분단에 반대했다면 공산주의 계열에서 좌우합작을 주창한 대표적인 인물은 몽양 여운형(1886-1947)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고 공산주의 진영에 몸을 담았지만 민족화합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좌ㆍ우 양 진영은 모두 몽양의 복잡한 행보를 꼬투리 잡아 그를 기회주의자로 매도했다. 광복 직후 정치세력 간의 힘겨루기는 수많은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당시 한국 사회의 혼란은 오늘날 이라크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좌ㆍ우 양쪽 모두에게 미운 털이 박힌 몽양은 테러의 표적이 됐고 결국 1947년 7월19일 극우파 한지근에 의해 살해됐다.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수는 몽양 서거 60주기를 맞아 1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몽양 여운형과 평화통일' 학술대회에서 거듭되는 테러에 굴하지 않은 몽양의 삶을 정리하고 남북관계가 진전된 오늘의 관점에서 몽양의 삶을 재평가할 예정이다. 조 교수는 미리 공개된 발표문 '몽양과 6ㆍ15시대'에서 광복 후 2년 동안 몽양은 모두 13번의 테러를 당했다고 분석했다. 남한 내 공산주의 계열의 주도권을 두고 대립한 박헌영 측의 소행도 있었고 극우파가 자행한 테러도 있었다. 첫 번째 테러는 광복 후 3일만에 일어났다. 몽양은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머리를 난타당했다. 몽양이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다음날인 1945년 9월7일 두 번째 테러가 일어났다. 몽양은 20여 일 간 치료를 받았으며 그가 정치활동에 나서지 못한 동안 인민공화국의 기반은 박헌영에게로 넘어갔다. 1946년 5월8일에는 몽양을 노린 수류탄 투척 테러 미수 사건이 발생했으며 그해 7월에는 3인조 권총 테러범이 몽양을 납치, 정치 포기각서를 강요하고 살해하려고 했다. 이듬해(1947년) 3월에는 몽양의 자택이 폭파됐으며 5월에는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정계의 모든 인사가 몽양의 암살을 예상했다. 그러나 몽양은 좌우합작의 뜻을 접지 않았다. 조 교수는 몽양의 기개를 높이 칭송하며 "절규의 역사적 가설이지만 몽양의 역할이 연장될 수 있었다면 단선단정(單選單政)의 역사는 능히 반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또 "남북정상 간의 6ㆍ15공동선언으로 몽양은 확실히 부활했다"며 "험로를 헤쳐나간 몽양의 낙천과 신념은 오늘날 통일을 이루는데 더 없는 보약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9일 오후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축사에 이어 대선주자 6인이 연설자로 나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주제로 3분간 자신의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7.07.19 23:02

해남 공룡화석지 세계유산 등재 '청신호'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황리 공룡화석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해남군은 "호주 폴 딩월 교수 등 외국인 교수 4명과 강원대 우경식 교수 비롯한 국내학자 5명 등 모두 9명의 국내외 학자들이 17일 남해안 일대 공룡 화석지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따른 현지 답사를 위해 우황리 공룡화석지를 방문, 유적지를 면밀히 살펴봤다"고 18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딩월 교수 등 세계 석학들은 세계 최초로 공룡과 익룡, 새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되고 최대 익룡 발자국의 보행렬 등이 잘 보존된 우황리 화석지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면밀하게 조사해 자연유산 등재 전망을 밝게 했다"고 말했다. 남해안 일대 공룡 화석지는 해남을 비롯해 여수, 화순, 보성, 경남 고성 등에 걸쳐 있으며 내년 자연유산 등재 신청, 평가를 거쳐 2009년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1998년 10월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된 우황리 공룡화석지에는 공룡과 익룡 발자국 화석 1천여 점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9천500만 년 전 물갈퀴 새 발자국 등이 있다. 또 이 화석지에는 공룡의 세계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7천만-8천만 년 전의 지층을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어 자연학습장과 공룡박물관이 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7.07.19 23:02

남북한 잇는 십자가대행진 추진

십자가를 메고 국내외 15개 도시를 순회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부산-판문점-평양(PPP) 십자가대행진'이 내달 6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다. PPP십자가대행진조직위원회(위원장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는 18일 "한국과 일본의 화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모든 종단과 정파를 초월해 이 행사를 열기로 했다"면서 "평양 행사는 9월1-3일 조국평화통일협의회(대표 진요한 목사)와 공동으로 열기로 하고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일기독의원연맹(대표 김영진.도이 류이치), 한국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전용태), 한국기독교성령100주년대회(대표 김성길), 일본복음선교회(대표 백종윤)가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8월6-16일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청주, 춘천, 인천, 수원, 서울, 판문점을 거치면서 매일 집회와 문화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어 9월1-3일 평양 행사를 치를 예정이며, 9월15-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와 오렌지카운티에서도 행사를 갖기로 했다. 조직위는 "이 대회를 일반 시민과 시민단체, 종교계가 모두 참여하는 범국민적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면서 "행사기간에 매일 밤 복음성가가수들의 공연, 기독연예인 간증,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인 선교사의 사죄와 화해 메시지 전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진행되는 시가지 십자가 퍼레이드에 대선 주자를 비롯해 교계 지도자, 연예인, 시민 등 연인원 20여만 명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7.07.19 23:02

남부시장서 '쇼'를 하라

방학때마다 활기를 찾는 전주 남부시장.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복작복작’대는 시장 풍경은 이제 생소한 광경이 아니다. 올해로 3년째. 쇠락해가는 시장을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끌어들인 전주청소년문화예술교육단과 공공작업소 심심(대표 김병수)이 올 여름방학에도 청소년들과 함께 시장으로 간다.올해 캠프는 좀 더 과감해졌다. 주로 옥상에서 진행됐던 프로그램이 시장 골목골목으로 들어간다. 프로그램도 다채로워졌다. 그동안 미술프로그램이 중심이 됐던데 반해 이번에는 퍼포먼스가 대표 프로그램이다. 캠프는 23일부터 25일까지 남부시장 2동 하늘정원과 시장 일대에서 진행된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가 프로그램 진행시간. 첫째날에는 시장을 둘러보고 시장을 표현하는 깃발을 만들어 하늘정원에 세운다. 둘째날에는 가면극, 훌라춤, 폐품악기연주, 추억의 스타 코스프레쇼 등 시장 상인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시장 곳곳에서 ‘쇼’를 하는 것이다. 셋째날에는 그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을 통합해 객사에서 시장까지 퍼레이드에 나선다. 서전주중 효문중 신일중 성심여중 우전중 아중중 곤지중 등 전주지역 중학교 재학생 200여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소영권 김미라 주지오 이은영 김송희 전수진 강화목 김아름 권주희씨가 강사진으로 함께 한다. 김병수 심심 대표는 “그동안 청소년들과 남부시장 안면트기를 진행한 만큼 올해는 보다 역동적인 프로그램들을 구성했다”며 “시장 곳곳에서 상인들과의 소통의 시간도 마련하는 등 시장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알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작년 자료사진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7.19 23:02

"소리로 소통하기" 이창선 대금 콘서트 '소나기'

입술부터 보게됐다. 두툼한 입술 사이로 느릿한 말이 기어나왔다. 신중함이 묻어나는 말투. 한 음, 한 음…. 그는 대금 연주도 그렇게 뱉어낼 것이다. 이창선 대금 콘서트 ‘소나기 THE CLASSIC’이 21일 오후 7시30분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에서 열린다. 서른두살. 독주회만 벌써 다섯번째니, 나이에 비해 부지런한 편이다. “자신없이 올라가는 게 제일 싫죠. 대중들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연주자 본인은 알거든요. 연주자에게 진정성이 없으면 관객도 반응이 없습니다.”창작곡으로만 준비한 콘서트. 다섯곡 중 세곡은 초연이다. 작곡자들이 곡을 늦게 내놓는 바람에 그는 애가 타고 있었다. 지난 9월 독주회가 흡족치 않아 서둘러 마련한 자리기 때문이다. “똑같은 곡이라도 어떤 연주자가 하느냐에 따라 곡이 달라집니다. 작곡자가 스케치를 해놓으면 연주자는 그 그림을 완성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죠.”악보에 써있는 것을 또한번 해석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연주자의 몫이라 했다. 같은 곡이라도 그의 대금 소리가 연주때마다 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악보와 절대 같지 않은 그의 연주를 두고 아내인 소리꾼 조경하씨는 “살아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대금 연주자라면 사람들에게 대금 연주를 더 많이 들려주고 교감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책무죠.”그는 “발전에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며 창작물만이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지원석의 ‘대금독주를 위한 ‘천향’’, 황호준의 ‘바람은 언제나’, 윤효상의 ‘숨바꼭질’을 처음 선보인다. 그 밖에도 ‘한양가’와 ‘대금독주를 위한 ‘다향’’을 연주하는 그는 “1시간 정도를 대금만 듣기란 쉽지 않다”며 “재밌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이씨는 열일곱살에 대금을 시작, 전주시립국악단(수석단원)에서 10년째 대금을 불고 있다. 전북대와 목원대를 졸업했으며, 대금배움터 ‘풍류’ 대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7.07.19 23:02

[윤덕향 교수의 재밌는 문화재] 남원 척문리 출토 은화관식

얼마전에 끝난 백제 무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TV 드라마에서 관리들이 입은 옷과 관은 비교적 충실하게 고증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띠는 것으로 꽃모양의 모자 장식이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같은 형태의 꽃모양 관식은 나주 흥덕리, 복암리, 논산 육곡리, 부여 하황리, 능산리, 남원 척문리 등 백제 무덤에서 은으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는데 남원 척문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은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이 은화관식은 기본적으로 비교적 넓은 줄기의 윗부분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꽃이 있고 그 줄기 끝은 보주형태로 마감하고 있는데 그 형태에 따라서 비교적 단순한 형태인 것과 보다 장식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단순한 형태의 관식은 척문리· 육곡리· 능산리 36호분의 여자용· 복암리 3호분의 16호 석실에서 출토되었으며 하황리·능산리 36호분의 남자용·복암리 3호분의 5호 석실에서 출토된 것이 상대적으로 화려한 형태이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는 고이왕대에 관등을 정하고 그 계급에 따라서 복식을 정하였다고 하며 이에 따르면 왕은 금으로 만든 장식을 모자에 사용하였으며 6품이상의 관리들은 은으로 만든 장식이 있는 관과 자색 옷을 입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 있는 장식이 척문리 등지에서 출토된 은화관식이라는 것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따라서 은화관식이 출토된 무덤은 백제 6품, 즉 나솔이상 관리의 무덤으로 추정할 수가 있는데 이 관리가 누구인가가 논의의 중심이다. 이 장식이 주로 부여가 아닌 백제때 지방이던 곳에서 출토되어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지방관으로 추정하였는데, 최근 부부 합장무덤인 부여 능산리 36호분에서 형태가 다른 2점의 은화관식이 출토되어 은화관식을 착용한 주인공이 곧 지방관이라고 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고대에는 세상을 떠난 다음 그 주검을 고향으로 모시고 가서 장례를 모시는 귀장(歸葬)이 일반적이었고 은화 관식이 신분을 상징하는 위신재라는 점 등에서 지방에 근거를 가진 사람이 그 주인공이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즉 은화관식은 토착적 기반을 가진 자가 백제 중앙정부의 관등을 수여받고 지방관의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는 견해가 있다. 또 은화관식이 출토된 지역이 백제의 지방제도인 5방의 중심지역, 즉 5방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척문리 고분에서 출토된 이 관식은 출토된 유구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이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7.07.19 23:02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協 현판식 가져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회장 이강백 선교장 관장) 현판식이 17일 강릉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에서 열렸다.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에 따르면 국가문화재 및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택 소유자들은 지난 3월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사단법인으로 발족을 추진,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법인설립허가를 받았으며 이날 강릉선교장에서 이사회 및 현판식을 가졌다. 이 협의회에는 강릉 선교장, 해남 녹우당, 논산 명재고택 등 전국 700여 채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건축문화재 소유자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한옥문화를 되살리고 고택에 담겨 있는 조상의 지혜와 삶을 보존하기 위해 발족된 협의회는 앞으로 고택 문화재 소유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고택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문화재보호법 개정 등 다양한 사업을 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국 문화재지정가옥 실태조사를 벌이고 회원들의 문화재 가옥을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보존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초대회장을 맡게 된 이강백 선교장 관장은 "전국 명문 종가가 모두 참여하는 모임으로 앞으로 문화재 보호에 힘쓰는 한편 문화재 보호법의 굴레 속에서 삶의 제한을 받아 온 회원들이 힘을 합쳐 고택 문화재 소유자들의 권리도 찾아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7.07.18 23:02

권정생이 들려주는 6.25 이야기

"우리는 못나게시리 오누이끼리 싸운거야. 호랑이한테 서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누나는 동생을 호랑이한테 떼다밀고 동생은 누나를 떼다밀고…."지난 5월 별세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단편 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선생이 독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에 민족의 비극 6.25를 소재로 쓴 작품. 부모, 형제와 피란길에 올랐다가 폭격을 맞아 죽은 아홉 살 곰이와 국군이 쏜 총탄에 목숨을 잃은 인민군 오푼돌이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쟁의 실상에 대해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화가 이담이 왁스 페인팅 기법으로 그린 장중한 그림은 이야기에 실감을 불어넣는다. 고요한 달밤, 치악산 골짜기에서 귀밑 뒷머리에 핏덩어리가 엉겨 있는 곰이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오푼돌이 아저씨가 부스스 일어난다. 둘은 하얀 둥근 달을 바라보며 30년 전에 떠나온 고향과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등을 소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곰이는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라고 절규한다. 오푼돌이 아저씨는 왜 국군과 싸웠냐는 곰이의 질문에 "인민들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었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들의 대화는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속이고 살아남은 오누이로 옮겨간다. 곰이가 할머니에게 예전에 들은 이 옛날 이야기를 꺼내자 오푼돌이 아저씨는 우리는 오누이끼리 싸우다 모두 죽었다고 말하며 가슴을 친다. 호랑이와 오누이 이야기는 권정생 선생이 바라보는 6.25에 대한 본질이기도 하다. 권정생 선생은 타계 열흘 전 출판사 편집부로 보낸 육필 편지에서 "의미 없는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아무도 위로하지 않을 때 그 희생자들을 따뜻하게 덮어 주었던 '흰 눈'을 생각하면서 동화를 썼다"고 밝혔다. '오푼돌이'라는 이름 속에는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 결국은 양쪽 모두 반쪽이 신세에 불과하다는 선생의 따끔한 일침이 담겨있고, '곰이'라는 이름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약삭빠른 여우처럼 잇속을 차리는 게 아니라 곰처럼 우직하고, 순박한 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보리출판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평화발자국' 시리즈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48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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