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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민이라면 판소리 한대목쯤은 배워봅시다

이름난 명창이라도 전주에서 소리판을 펼치기란 쉽지 않다. 귀명창이 많기로 소문난 곳. 전주에 살면 판소리 한대목 쯤은 뽑을 줄 알아야 한다. 전주시평생학습센터(센터장 최용호)가 평생학습기관 파트너쉽을 통한 판소리 교육 프로그램 ‘전주시민 한 소리 하기’를 펼친다. 판소리 본고장으로서 전주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교육인적자원부 ‘1도시 1특성화 프로그램’에 선정됐다.‘전주시민 한 소리 하기’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교육. ‘1인 1소리 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확보하고 미디어를 활용한 공통교육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전주시민 한 소리 하기’에 참여한 평생학습기관 및 학교는 금암노인복지회관과 완산청소년문화의집, 인후문화의집, 전주청소년문화의집, 효자문화의집, 인봉초, 화산초, 효문여중 등 8곳. 이 중 금암노인복지회관과 인후문화의집은 이미 개강했으며, 나머지 기관들은 20명 내외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전주와 판소리’를 주제로 이론강의를 한 뒤 소리내기와 단가배우기, 장단 치며 ‘호남가’ 부르기 등을 교육하고 6월에는 성과 발표회도 열 계획이다. 판소리 교육용 DVD도 제작됐다. 최동현 군산대 교수가 총기획·감독한 DVD는 판소리에 대한 정보와 지역 소리꾼들의 다양한 영상자료들이 수록돼 있어 해설집과 함께 교육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최용호 센터장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전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소리 한대목쯤을 할 줄 안다는 자부심을 갖고 시민들 사이에서 판소리 배우기 열풍이 일어나길 바란다”며 “‘1시민 1소리 교육’이 지역 정체성 확립은 물론, 전통문화도시 이미지 구축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학습센터는 연차별로 교육기관을 확대해 2010년부터 전 시민을 대상으로 판소리 교육을 진행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7.02.07 23:02

[2007 문화캘린더]사단법인 마당 - '문화저널' 창간 20주년

「문화저널」이 전라도 삶의 체취를 옮겨온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북문화예술전문지로서 자존심을 지켜온 「문화저널」의 창간 20주년은 사단법인 마당(이사장 정웅기)에게 의미가 크다. 기획기사와 편집디자인 등에 변화를 줘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문화저널」은 올해 통권 223호∼234호를 발간한다. 시민들을 위한 편안한 음악회로 자리잡은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도 올해는 「문화저널」 창간 2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한다. 「문화저널」 독자와 필자, 후원인 등 관련된 이들을 모두 초청해 기념음악회와 「문화저널」 발자취 사진전을 열 예정.‘제6기 마당문화기획아카데미’는 특화된 분야에 대한 전문적 강의로 진행된다. 현장에서 인정받는 문화기획자 양성을 목표로 기초 입문자 뿐만 아니라 문화관련 종사자들의 심화, 재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올해로 열여섯번째를 맞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전라우도 상쇠춤(이명훈)과 전라좌도 상쇠춤(양진성), 소리꾼 임현빈 등 전라도의 춤과 가락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무대를 통해 새롭게 계승·발전되어 가는 전라도 정신의 뿌리와 힘을 확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문화와 역사를 알기 위한 답사 ‘백제기행’은 마을의 삶과 문화를 찾아간다. 오지마을, 포구마을, 전설과 역사가 있는 마을 등으로 국내기행을 꾸리며, 해외기행은 일본 규슈 일대 전통마을 탐방을 준비한다. 매달 셋째주 수요일에 열어온 ‘마당 수요 포럼’은 올해도 지역의 여러 이슈들을 함께 고민한다. 1991년부터 판소리, 한국미술사, 영화사, 역사강좌로 이어지고 있는 ‘시민문화강좌’는 올해 ‘도시와 공간’을 주제로 새롭게 시작된다. 임옥상 이일훈 등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도시와 공간에 대한 깊이있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사단법인 마당 주요기획사업△ 1월∼12월 「문화저널」 발간 / 마당 수요 포럼 △ 4월∼5월 시민문화강좌 ‘도시와 공간’△ 5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6월∼7월 제6기 마당문화기획아카데미△ 8월 백제기행 ‘해외기행’△ 10월 ‘가을날의 뜨락음악회’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7.02.07 23:02

사진의 진실을 찾아서...박성민 '움직임, 그리고 보다' 展

우리가 보는 사물의 실체는 진실인가. 사진작가 박성민씨는 “똑같은 사진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설명한다. 개개인의 기억에 의해 불완전한 이미지가 완성된다는 것이다.14일까지 전주 사진갤러리 봄(www.gallerybom.net)에서 열리는 사진전 ‘움직임, 그리고 보다’는 사진의 진실을 찾기 위한 실험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인간의 눈에 해당하는 렌즈와 이미지센서를 통해 정보를 받아,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메인프로세서에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사진이 우리들의 눈과 기억을 토대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 중에 많은 왜곡들이 일어나게 된다. 왜곡이 있는 렌즈, 완벽하지 못한 이미지 센서, 메인프로세서의 불완전한 이미지 형성, 인간의 눈 그리고 개개인의 기억이다. 과연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사진은 진실한가?” 작가는 사물의 실체와 눈 사이의 거리감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또한 실체와 이미지의 파편들이 보는 이의 눈과 뇌의 기억을 토대로 하나의 사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진실을 찾고자 한다.움직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후 컴퓨터그래픽으로 다시 분할했다. 이미지 실체에 대한 작가의 궁금증을 실험해본 것이다. 사진을 파괴한 후 재조합하는 작업은 처음이란다. 프랑스 파리사진학교(SPEOS)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북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로 활동중이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2.07 23:02

9개월여 1500리 걸어서 문학 흔적 만나다

전북문학지도 2권은 이래저래 힘이 배로 들었다. 동부산악권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도보기행을 감행한 것도 그러했지만, 집필이 끝난 원고를 컴퓨터의 반란(?)때문에 다시 써야하는 고행까지 더해졌다. 그래서인지 더욱 묵직하다.전북작가회의(회장 이병천)가 펴내는 ‘전북문학지도 2-전북의 동부지역’,「길은 길을 묻는다」(두인).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장장 9개월여동안을 걷고 또 걸어 엮은 것이다. “처음부터 걸을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취재대상이 되었던 지역이 전북의 대표적인 산간지역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문학적 흔적을 좇을 수 있었던 지난해와는 지형적 조건이 전혀 달랐다. 백두대간중 가장 꼿꼿하고 웅장한 흐름인 덕유산에서 지리산까지가 포함됐다. 이 구간안에서 「산경표(山經表)」에서 이야기하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분기한다. 그리고 금강과 섬진강이 발원한다. ‘지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취재 지역이야말로 수십억년 지각활동의 증거가 고스란히 드러난 천연의 무늬, 우리의 ‘문학지도’는 그 무늬위를 걷는 일로써만 완성될 수 있었다.” 이번 기행이 걸어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보기행은 소설가 김병용씨가 향도(嚮導)로 나섰다. 3월부터 수시로 기행코스를 답사하고 도보길을 그렸다. 본격적인 답사는 6월23일 정양 임명진 이대규 유강희 박태건 최기우회원과 시작됐다. 곰티재에서 마이산-데미샘으로 이어진 이날 답사를 시작으로, 8월16일 갈재에서 회문산-진뫼마을로 돌아오기까지 경종호 곽병창 김종필 문신 박두규 박성우 복효근 서권 석재연 송태영 신귀백 안도현 윤석정 이병천 이봉명 이원규 추인환 한상준회원이 걸음을 보탰다. 이들의 걸음속에 1500리 길이 담겼다. 기행지는 진안에서 출발, 무주 장수 지리산 남원 임실 순창.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지?’라는 긴 물음표를 들고 떠난 기행이었다. 곰티재를 넘어 시조시인 구름재 박병순선생의 생가와 처음 마주한 문학지도 기행팀은 마이산에서는 김삼의당의 시와 마주했다. 진안 용담에서는 한승헌의 시 ‘인간귀향’을 곱씹었고, 죽도에서는 정여립과 마주했다. 무주 적상산을 자신의 문학적 자궁이라고 표현하는 박범신과 그의 제자 이봉명도 기행에서 만났다. 정인승과 박상륭 유용주, 그리고 안도현은 장수에서 추억한 문인이다. 지리산에서는 이병천 박두규 박남준 이원규를 만나 문학적 담론을 만들었다. 이번 기행지역에서도 남원은 문학적 향기가 가장 풍성한 곳. ‘변강쇠전’과 ‘용담유사’ ‘혼불’등의 작품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 재연스님과 복효근이 터를 잡고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 임실과 순창에서 이시연 신경준 장판개 김인후 김세종 추인환을 만났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에서 출발한 기행은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진뫼마을에서 집에서 끝을 내린다. 이번 기행에서 100여 작가와 작품을 만났다.원고 집필도 김병용씨가 맡았다. 그는 “문학지도 1권이 후배문인들이 선배문인을 찾아가는 종적인 개념이 강한것 같아 2권은 문인들간의 횡적인 면도 보강하기 위해 함께 걸었다”며 “후배 문학인들이 작고 또는 생존 문인을 만나고, 작품 탄생의 공간적 배경을 살피며, 작품을 곱씹는 과정을 글로 옮기는 등 공간적·시간적 체험을 균형감있게 전달하려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후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높은 산봉우리와 주름진 골짜기, 유장한 강줄기, 그곳마다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이 맺히고 풀렸으며 또한 우뚝하게 비장되어 있었다. 온 몸으로 자신의 문학을 밀고 나간 문학인들의 흔적이 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을뿐 더러 지금도 거기 살고 있었다.…우리가 걸었던 땅은 여전히 문학의 생산터전으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문학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삶이 그러하듯 모든 문학은 현재적이어야 한다.”‘전북문학지도 3-도회지편(전주·완주·익산·정읍)’도 올 상반기중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2.06 23:02

가람배치 확인 성과...발굴유물 1163점 소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1999-2005년 전북 남원 산내면 실상사 경내 30개 건물지를 발굴조사한 성과를 최종 정리해 발굴조사보고서 ‘실상사 Ⅱ’를 최근 발간했다.보고서에는 실상사 보광전(寶光殿) 하부의 4개 건물지와 북편 담장 외부의 강당지 4곳 등에서 발굴된 1163점의 유물에 대한 연구 성과가 실렸다.주요 유물로는 한 세트를 이룬 연화문수막새(기와 한쪽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와 포도당초문암막새가 확인됐으며 중국산 월주요계 청자와 형요계 백자를 비롯해 실상사 창건시기와 비슷한 9세기 줄무늬병 토기가 발굴됐다.부여문화재연구소는 “보광전 하부의 건물지와 중문지, 강당지, 익랑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창건 당시 가람배치를 확인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연구결과에 따르면 창건 당시 금당지는 중문지와 일직선상에 배치됐으며 강당지와 연결되는 동쪽 익랑지는 중심선상에서 동쪽으로 20m 치우쳐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서쪽 익랑지는 발굴되지 않았다.부여문화재연구소는 또 이미 보고됐던 목탑지에 대해서는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복원도를 작성하고 보존방안을 제시해 유적 정비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사찰이다. 한때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으나 조선 고종 19년(1882) 방화사건으로 사찰 건물이 상당수 소실됐다.1996년부터 경내 발굴조사가 시작돼 1999년 중간보고서가 발행된 바 있다.

  • 문화일반
  • 정대섭
  • 2007.02.06 23:02

길에서 만난 우리 詩 50편...신정일 선집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길을 걷는 순간, 시가 내게 와서 속삭였다.”문화사학자 신정일. ‘우리 땅 걷기 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이번엔 시 기행문을 엮었다. 산천을 걸으며 자연속에서 만난 우리 시 50편을 골라 선집「그곳에 자꾸만 가고싶다」(다산책방)를 출간했다.“나는 세상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배웠다.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다시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학에 대한 열정보다 땅에 대한 열정으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었고 그 사랑때문에 이 나라 산천을 지치지 않고 떠돌수 있었다. 하지만 나라 곳곳을 떠돌면서도 마음 한 귀퉁이엔 시에 대한 열망이 수그러들지 않고 사화산처럼 남아있어 가끔씩 정신을 들쑤시고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300∼400편의 시 중에서 한편을 골라 읊조리기도 했다.”저자는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정선해 기억속의 점철된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내 슬픔과 고통이 교차했고 그래서 적이 놀랐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책에 그동안 숨기고 싶었던 아름답고 슬픈 지난 세월을 아주 조금씩 풀어놓았다. 그것은 아직 내 삶과 글이 끝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징표일 것이며 내 영혼이 아직까지는 물음표로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선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눴다. ‘꽃이 피고 강이 풀리면 길을 떠나라’는 어깨제목을 단 봄에는 곽재구시인의 ‘나팔꽃이 피면’ 정호승시인의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김용택시인의 ‘섬진강1’ 등이 다가온다 ‘산은 가까워지고 바다는 하얗게 춤추는’ 여름에는 도종환의 ‘박달재’ 정호승의 ‘미시령’ 도종환의 ‘섬’ 허영자의 ‘깊은 바다와 같이’를 읊조리게 된다. ‘고즈녁한 산사와 한 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되는’ 가을에는 안도현의 ‘화암사, 깨끗한 개 두마리’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 김정주의 ‘선운사 동구에서’ 신경림의 ‘실상사의 돌장승’을 새겨볼만 하다. ‘첫눈이 내리면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는’ 겨울에는 김남주의 ‘첫눈’ 조병화의 ‘고개’ 김지하의 ‘눈 내릴 때면’ 최승호의 ‘대설주의보’ 황동규의 ‘눈 내리는 포구’가 생각난다. 선집은 자작시 ‘산길에 접어들면서’로 마무리됐다. 신경림시인은 이 선집에 대해 “신정일이 그 고장과 그 풍물을 가장 잘 드러낸 시를 뽑아서 우리 산하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어주는 앤솔로지를 엮었다. 여기 실린 시들은 한편의 시가 국토와 그 안에서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활기차게 만드는 지를 알게 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룰때 시가 가장 빛난다는 점도 알게 한다.”고 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2.06 23:02

선조들 편지글 304매 수록...전주박물관 '간찰' 제4집 발간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이원복)이 황병근 전북예총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 중 간찰(簡札)만을 정리, 「간찰」 제4집을 발간했다. 간찰은 옛 선조들의 편지글로, 공식적인 기록이나 문서에는 실려있지 않은 개인적인 대소사가 담겨있어 선조들의 실생활이 반영돼 있는 기초적인 자료다. 전주박물관 측은 “대부분의 간찰이 초서로 쓰여져 현대인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며 “간찰에 대한 해제와 출판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황회장은 1999년 서화, 문집, 간찰, 석전 황욱 선생 서예작품, 고고미술품, 민속품 등 5060점을 전주박물관에 기증했으며, 박물관 측은 이 중 간찰을 대상으로 학술자료집 발간을 추진해 왔다. 지난 2002년 간찰 405매를 정리, 제1집을 간행했으며 2005년 제2집(간찰 278매)과 제3집(간찰 302매)을 간행한 바 있다. 「간찰」 제4집에는 간찰첩 1첩과 낱장으로 이뤄진 304매의 간찰이 수록됐다. 이 중 간찰첩 ‘시독’(時牘)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을 살았던 인물 김태화(金太和)가 주고받은 시와 간찰을 모은 것으로 당시의 시대정서가 잘 반영돼 있으며, 낱장간찰 중에는 일반인들이 응용해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만든 모범적인 간찰서식이 포함돼 있어 주목을 모으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7.02.06 23:02

도내 첫 영화 1948년 군산서 제작...'전북영화사'

해방 4년만인 1948년, 전북최초의 영화가 군산에서 제작됐다. 이만흥감독의 ‘끊어진 항로’. 이 작품은 수공업적인 형태에서 만들어진 16㎜였다. 이후 35㎜ 극영화 ‘성벽을 뚫고’가 전북에서 제작됐다. 1951년 아일영화사가 전북경찰국의 후원을 얻어 제작한 ‘애정산맥’은 당시 사회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끊어진 항로’이후 1950년대 전북에서 제작된 영화는 무려 8편에 이른다. 1960년대 들어서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서울에서 제작됐다. 당시 전주, 전북출신 감독들이 영화계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후 한동안 영화산업은 서울에 집중됐다. 전북이 영상산업에 다시 관심을 가진 것은 1990년 중반부터다. 1994년 영상산업을 지역 특성화사업으로 육성하려던 계획을 세웠다가 무산됐다. 97년 다시 ‘전주영상종합랜드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영상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상산업 주도권을 부산에 넘겨줌으로써 영상산업 특화전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50년대 영화제작의 메카였던 전북은 현재 전국에서 손꼽히는 영화소비시장이 됐다. 촬영 로케이션이나 영화제작 측면에서 잠재적인 대규모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관계자들이 「전북영화사」(신아출판사)를 정리했다. 책은 해방이후와 한국전쟁이후의 전북영화산업의 역사를 정리했다. 이와함께 영화공간으로서의 전북극장사도 살폈다. 한국영화산업의 규모와 성장요인·흐름 등을 분석했으며, 이와함께 전북영화산업의 현황과 지역내 인프라도 점검했다.필자들은 전북영화산업의 취약성을 관련 사업기반의 미비와 영화산업 선점의 기회상실, 그리고 인프라부족에서 찾는다. 따라서 지역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몇가지 원칙이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먼저 투자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사전기획과 사후관리 강화와 강력한 사업추진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영화산업관련 지역인재 육성과 영화산업 중심으로 전통산업과 관광산업 등 지역산업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시돈(사)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김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이미경(전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김광희(전주국제영화제 근무)씨가 함께 집필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2.06 23:02

대중가수들 찬양의 노래...양동근·김범수 등 CCM 인기

“양동근이 ‘예수쟁이’라고?”레게머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 양동근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어색한 듯한 조합이지만, 어쨌든 대중가수들의 창작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인기를 얻고있다. 비기독교인들도 거부감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가수들의 CCM이 선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양동근의 3집 앨범 ‘거울’은 하나님을 만난 이후 작업한 것. 1·2집과 달리 가사 대부분이 하나님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앨범 뒷면, 손바닥이 뚫려있는 사진도 예수님 손바닥에 못이 박혔던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쟁이’는 3집 삽입곡.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이 가사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나는 야 예수쟁이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 해도 상관없어 나는 신경안써 그것이 바로 내 정체성…’.‘보고싶다’로 유명한 김범수가 군입대 전 발표한 5집 ‘So Long…’은 아예 CCM앨범으로 출반됐다. 중의적인 표현이지만, 가사내용은 다분히 기독교적. 특히, ‘늘 어두운 숲속과 같이 늘 캄캄한 밤길과 같이’로 시작하는 ‘위로’란 곡은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로부터의 위로인지 단 번에 알 수 있는 곡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잘 알려진 이수영의 7집 ‘그레이스’. 전 직원이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리쿠드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기고 처음 발표한 이 앨범은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라 나의 전부’라는 그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음반 타이틀 ‘그레이스’도 ‘하나님의 은총’이란 뜻. 음반은 ‘주여, 이 노래들이 사람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싹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라는 그의 기도로 마무리된다. 그밖에도 신화의 에릭이 직접 만들고 부른 ‘나의 전부’, 나얼이 부른 가스펠송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경쾌한 가스펠 분위기가 나는 소찬휘의 ‘Prayer’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7.02.06 23:02

요코 엇갈리는 해명에 왜곡 의혹 증폭

'요코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의 저자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씨는 한 국내 언론사를 통해 자신의 책이 실화라고 거듭 주장하면서도 핵심적인 의문사항들에 대해서는 책 내용과 엇갈리는 해명을 내놓아 왜곡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요코씨는 중앙일보와의 해명성 인터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의 일부 내용들과 부친의 행적에 대해 오빠와 관련된 2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이 "보고 겪은걸" 썼으며 역사적 왜곡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으나 요코씨의 해명 중 상당 부분은 책 내용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 나남에 대나무 숲 있었나 요코씨는 추운 지방인 함경북도 나남(청진)에 대나무가 살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어머니가 대나무를 그리워해 일본 아오모리에서 옮겨심었으며 그것이 약 10년간 번졌지만 큰 '숲(grove)'은 아니었고, 가늘고 긴 대나무 '풀밭(grasses)'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요코이야기'는 원제가 '대나무 숲...'일 뿐 아니라 영문판 표지에는 커다란 대나무 숲 그림이 그려져 있고, 본문에도 대나무 '풀밭'이 아니라 '숲'이었음을 묘사하는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요코의 집은 "대나무 숲 안에(our home in its bamboo grove)" 있었으며, 요코는 하교길에 개울을 건넌 뒤 "곧바로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집까지 달려갔다(straight into the bamboo grove, and ran all the way home)". 요코 모녀는 "대나무 숲을 지나(beyond the bamboo grove)" 오빠를 배웅하기도 했다. 이는 대나무 숲이 요코 집을 싸고 있었을 뿐 아니라 꽤 멀리까지 퍼져 있었다는 기술이다. 또 요코는 미군기의 저공 공습 때 대나무들이 마구 휘어져 "삐걱이며 부러지는 소리(making cracking noises)"를 들었는데, 풀 같은 대나무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 1945년에 인민군 있었나요코씨는 당시 인민군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역사보다 나의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며 역사적으로 인민군이 없었다면 "우리가 마주쳤던 북한 민병대는 누구일까? 나는 모른다.(Whoever Mother, my sister and I encountered were North Korean Militia? I do not know)"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요코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민군은 군복에 '기관총(machine gun)'을 소지한건 물론 공공연히 훈련까지 했으니 단순한 민병대 정도로 보기 힘들다. 또 요코 모녀는 이들을 어쩌다 '마주친' 정도가 아니라,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추적을 당하고 붙잡혀 성추행을 당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요코는 1945년 7월 29일 한밤중에 나남에서 구령에 따라 훈련하는 인민군을 목격했으며, 원산역에선 기차안에까지 올라온 인민군의 검문을 받는다. 원산 이남에서부터는 인민군을 피해 아예 낮에는 자고, 밤에만 걷지만 결국 무장 인민군에게 적발돼 봉변을 당하기 직전, 이들이 공습을 맞아 죽는 바람에 위기를 넘겼다. 이들 세 모녀는 인민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아예 죽은 병사들의 군복을 벗겨 입고 위장을 한다. 인민군은 요코의 오빠가 일하던 나남의 공장에도 나타나 기관총을 난사했다. 1948년 2월에야 창설된 인민군이 어떻게 1945년에 북한을 완전 장악한 듯이 활보할 수 있었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 1945년 7월 미군기 나남 공습했나요코씨는 "나는 미군기가 나남을 '폭격했다(bombed)'고 쓰지 않았다. 경보사이렌이 울려 대피해있다 미군기 3대가 머리 위를 지나는걸 봤다고 썼다. 당시 나진에 살았던 일본 교통장관도 B-29를 봤다니 내가 본 것도 B-29 아닐까? 어쩌면 러시아기 일 수도 있다. 난 비행기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영문판 서문엔 1945년에 "미국은 이미 북한 공업지역들을 폭격했다(Americans were already bombing industrial sites in northern Korea)"라고 적혀 있다. 요코씨도 7월 29일 나남을 떠나기 전까지 "공습 때문에 2주 동안 하룻밤도 못 잤다(I had't had a night's sleep in two weeks because of the air raids)". "한 여름 무더위에도 당국으로부터 등화관제 지시가 내려져 불빛을 막기 위해 창문을 모두 천으로 가렸다". "날마다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집에 있을 때는 비상배낭을 움켜쥐고 대피소로 뛰어들었고, 야외에서 일하다가는 땅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미국 폭격기들은 언제나 대열을 지어 날았다. 에노모토 선생님은 도쿄 등 일본 본토를 공격한 것과 동일한 기종인 B-29 같다고 했다"고 책에는 나와 있다. "밤이면 밤마다 경보 사이렌이" 요코를 깨웠으며, 나남을 떠나던 날 밤도 "공습이 없기를 기도" 했던걸 보면 B-29로 보이는 미군기가 어쩌다 한 번 씩 나남 상공을 지난 건 아닌 게 분명하다. 미국이 아직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훨씬 전인 1945년 7월 북한지역에 이처럼 맹렬한 미군의 공습이 있었다는 게 사실일까? 이건 미군 기록을 보면 밝혀질 일이다. ◇ 요코 아버지는 누구인가요코씨는 첫번째 책에서 아버지가 만주에서 일한 '고위 정부 관리'라고 했고, 두번째 책인 '오빠, 언니, 그리고 나(My Brother, My sister, and I)'에서는 "일본 외교관이었다(my father was a Japanese diplomat)'"고 못박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친이 남만주 철도회사 행정부문에서 일했으며 '별명'이 외교관이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외교관이란 직업이 흔치 않았을 1940년대에 '사내 사람들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했다는 이유로' 외교관이란 별명이 붙었다는 건 선뜻 믿기 어렵다.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버지는 일본 외교관"이라고 명백히 썼다가 '철도회사 행정간부'라고 말을 바꾸는 이유는 무얼까. 요코는 한국인인 나남역장의 거부로 하마터면 기차를 못 탈 뻔 했다. 아버지가 만주철도회사 간부인데 만주 인근 철도역에서 가족들이 기차 탑승을 거부당했다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요코씨의 책에 따르면 요코의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물이었다. 일본 총독 주최 만찬에도 초청받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언니에게 요코는 말한다. "러시아인들이 만일 아버지를 죽였다면 분명히 일본 정부에 통보했을거야", "그 분의 직위 때문에 말이야 (Because of his position)". 그만큼 높은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나남을 떠날 때 요코 가족을 도와준 마쓰무라 하사는 이렇게 경고했다. "당신 남편이 만주에서 일본을 위해 한 일 때문에 그들(러시아인)은 특별히 당신과 가족을 찾을 것이다. 당신들을 죽일 것이다(They will be looking especially for you and your family. They will kill you. Because of your husband's work for Japanese interest in Manchuria)" 원산역에서 기차에 오른 인민군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남에서 탄 중년의 여성과 세 아이들을 찾는다. 이름은 가와시마다" 이런 대목도 있다. "인민군이 아버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걸 오빠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아들의 목이라도 흔쾌히 베려 할 것이다. 누군가 현상금을 탐내어 밀고라도 하면 큰 일이었다"요코 모녀가 원산 이남에서 기차를 버리고 서울을 향해 걷기로 한 것도 "누군가 당신들을 밀고할 수도 있으니 여기 머무는 것보다 걷는 게 안전할 것"이란 군의관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씨는 이렇게 해명했다. "우리가 쫓긴 건 아버지가 만주철도회사에서 한 일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한국인들이 모든 일본인들에게 분노해 있다고 생각했다" 책 내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다. 요코씨는 아버지가 1933-1945년 남만주 철도회사에서 일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오래 일했다면 공식 기록이 없을 리 없다. 의혹을 풀려면 확실한 기록을 제시하면 된다. 요코씨는 아버지가 옥스퍼드대에 유학했고, 1942년 가을 총독 초청 만찬에서 한국인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다가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고도 책에 썼다. 요코씨의 아버지가 그토록 한국인들을 사랑했다는 기록을 본다면 한국인들은 감동할 것이다. 그런 증거들만 제시한다면 '아버지는 한자 이름이 731부대 간부 K와는 다르다'는 해명은 구태여 할 필요도 없다. 요코씨가 왜 의혹을 쉽게 풀 수 있을 증거들을 이제껏 제시하지 않는지 말로 정말 의문이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7.02.05 23:02

"회원 유대강화...창작활동 뒷심" 이병천 회장

전북작가회의 제5대 회장으로 추대된 이병천(51) 소설가. 작가회의 전신인 ‘민족문학인협회’, 그리고 그 전신인 ‘남민시’활동부터 이어온 그에게 작가회의는 문학활동의 친정이다. “올해가 전북작가회의 창립 20주년입니다. 전신인 민족문학인협의회가 1987년 11월 창립했거든요. 저에게는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단쳅니다. 문학활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거든요.” 이 회장은 전북작가회의 창립 2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단체 발자취를 돌아보는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들려줬다. 그동안의 활동도 정리하고, 현재의 작가회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이 110여명에 달합니다. 30여명으로 태동했으니 큰 성장을 이룬 셈이지요. 그런데 단체가 커지다보니 회원수용력이 떨어졌어요. 회원들간 유대도 강화하면서 무엇보다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작가회의가 독려하겠습니다.”신임 회장은 회원 동인지인 「작가의 눈」을 연 2회로 늘려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좋은 작품을 수록, 많은 이들이 찾아보는 책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총회에서 회원들에게 ‘문자하고 너그럽게 친한 회장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저 부터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그리고 회원들이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물을 부어 줄 겁니다.” 이 회장은 지속사업외에도 새로운 사업도 꾸준히 발굴하겠다고 했다. 전북문학을 되돌아보는 작업, 전북의 문화콘텐츠를 축적해가는 작업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사업이 늘어나면 사무처의 부담이 커진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무처에만 맡기지 않고 분과에 나눌 계획입니다. 많은 회원들의 참여가 이뤄질때 주인의식도 커지고 단체도 활성화되니까요.”이 회장은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의 숲에 놓인 몇 개의 덫에 대한 확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더듬이의 혼’이 당선되기도 했다. ‘모래내 모래톱’ ‘저기 저 까마귀떼’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 ‘신시의 꿈’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전주권문화정보114 센터장이며, 현재 전주MBC 프로듀서로 재직중이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7.02.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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