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정상가족의 높은 문턱
박지원 변호사 지난 연재를 통해 저출산 관련 입장을 밝혔다. 저출산을 암울한 미래의 원인이 아니라 누적된 과거의 결과로 볼 것, 저출산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 행사의 일환이라면 긍정하되, 사회 문제에 대한 불만의 징후라면 해결책을 찾는 대화의 실마리로 쓰자는 것과 더불어 정책방향도 경제성장을 위한 인구 통제가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 무게를 두자는 정도였다.
정부 역시 2018년부터는 출산율에서 삶의 질로 정책 초점을 전환할 계획임을 밝히면서 일자리, 주거, 보육, 교육 등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가고 있기에 고무적이다.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소득과 고용안정성, 부동산과 사교육 등 밤새 토론해도 끝나지 않을 논의에 말을 더 보태지는 않겠다. 다만, 혹시 간과한 점은 없는지 짚어보려 한다.
그간의 정책 공급은 혼인한 부부의 출산을 독려하는 데 집중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 늦어지는 만혼과 결혼을 꺼리는 비혼이 보편화되면서 정책 효과가 줄어들자, 이제 정부는 어떻게 젊은이들을 빨리 결혼하게 만들지 궁리하는 모양이다. 고민의 관점을 달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혼 없는 출산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결혼을 꺼리는 정책수요자의 말을 들어보면 집을 마련하기 힘들다거나(대체로 남성), 시댁/처가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대체로 여성) 현실적인 이유에서부터, 구속받기 싫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도 없다는(남녀 공통) 철학적 이유까지 다양하지만, 결국 결혼과 가족제도를 너무 무겁게 느낀다는 것이 핵심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짊어져야 하는 부양의무, 두 배로 확대된 직계와 방계가족에 수반하여 요구되는 각종 의례와 노동을 고려할 때, 헌신과 희생만 요구될 뿐 별달리 효용이 와닿지 않는 가족제도에 편입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꺼린다는 것이 개인화 성향이 강한 청년 세대의 속내다.
반대로 동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식을 보인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 규범에 들어가지 않으면 명절, 제사, 경조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여차하면 헤어질 수 있으니 단칸방 월세에 살아도 마음이 한결 가볍고, 같이 살다 좋으면 아이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한다.
이처럼 개인간 결합은 원하지만 가문간 결합이라는 규범을 거부하는 정책수요층이 존재하는 이상, 결혼보다는 느슨한 시민 결합을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수 년 전 추진되다 발의되지 못한 공동생활계약이나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안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요지는 단순하다. 같이 사는 동반자를 등록하면 부부에게 주어지는 각종 권리나 제도 지원(상속권, 수술동의 등 중대 사무 결정권, 주거지원, 육아 관련 사회보장과 세제혜택 등)을 인정하되, 계약 해지는 이혼처럼 까다롭지 않다. 집안의 영속적 결합 대신 개인간 신뢰에 기반한 잠정적 결합을 존중하면서, 그 동안 사실혼의 이름으로 음지에서 어설픈 보호만 받던 관계를 양지로 드러내는 것이다.
몇 년 전 통계지만 한국의 혼외출산비율은 1.9%로 OECD 평균인 약 40%에 비해 현저히 낮다. 동거와 동성혼을 합법화하여 성적 문란을 조장한다는 둥 반대 의견이 벌써 들려오는 듯 하지만, 출산율을 고민하는 위정자라면 가족다양성을 포용하자는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볼 일이다. 결혼 없이 아이를 키워보겠다거나, 정상가족의 높은 문턱에 결혼을 단념하려던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혼외출산이나 미혼모에 대한 지원과 인식 변화도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박지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