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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꼰대가 아니야

세상엔 꼰대가 많다. 꼰대란 무엇일까? 사전적의미의 꼰대는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된 은어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꼰대들을 만나왔다.예를들면 중학교때 나의 꿈을 뒤로하고 목표없이 공부만을 강요했던 선생님들과 대학은 무조건 졸업해야된다고 조언하는 어른들이 모두 꼰대이지 싶다.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되는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서 더 많은 꼰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수많은 꼰대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앞서 언급했듯이 사전적 의미의 꼰대는 단순히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에 불과했는데 기성세대 어른들이 마치 자기가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처럼 나의 삶을 조언하기 시작했다. 이게 꼰대의 시작이다.이상적인 삶과 현실적인 삶에 대한 갈등에서 비롯되는 나의 고민들은 내가 고민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정답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타인의 조언과 강요에 의해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나는 중학교 2학년때 공연기획자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막연히 음악이 좋아서 갖게된 꿈이 지금 나의 삶의 방향의 척도가 되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내 꿈을 믿었고 나를 믿었다. 그리고 나의 실력을 갖추기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공부를 했다.꼰대들은 대부분 자기의 관점에서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우리는 아직 나의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고 나의 꿈을 꾸기에 충분하다.모두가 원하는 삶은 다를 것이다. 행복이 우선이 되는 삶 , 금전적 여유가 우선이 되는 삶, 관계가 우선이 되는 삶 등. 각자 다른 삶의 목표가있다.나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주위의 조언에 내 방향을 바꾸는게 아닌 내 방향을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과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내가 하는 이야기를 정답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정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주체적인 삶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굴하지 않고 나의 실력과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된다.이런 이야기속에서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건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다. 꼰대의 이야기를 듣지않고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라라는 말이 마음의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나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때로는 배워서 도움이 될 부분은 나의 이야기중 일부로 채우고 더 멋진 그림을 그릴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우리는 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 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하려고 할 때 세상을 바뀔것이고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오늘도 나와같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이정로 대표는 다부부컴퍼니 총괄프로듀서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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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4 23:02

미안함에 대하여

송구합니다 작년 국정농단 사태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계속 중얼거렸던 말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송구한 걸까.죄송합니다 최순실이 귀국 후 첫 검찰 출두 후 흐느끼며 중얼거리던 말인데 누구에게 죄송하다는 건지, 구속 된 이후 특검사무실 앞에서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라고 취재진을 향해 고성을 지른 걸로 보아 국민에게 죄송한 모양은 아닌 듯 하다.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탄핵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출석 때 언급한 단 두 마디의 말이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이재용부회장과 박근혜 전대통령이 사용한 송구스럽다 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죄송하다 미안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다고 한다.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삶을 지탱하던 시민들이 작년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며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분노했었던가.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가만히 있으라는 한마디에 우리는 2014년 4월을 어떻게 보내왔던가) 가을을 거쳐 겨울의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전국의 광장에 나가 마침내 피청구자 박근혜를 파면한다 라는 문장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파면된 전직 대통령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를 마지막으로 그 뒤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은 억울하고 재판을 끌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걸까?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같이 작업을 했던 스탭이 제작비를 횡령했던 일이 있었다. 정말 믿었던 사람이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몰려 나의 노동에도 지장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는 단 한 번도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했을 때 그때서야 카카오톡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물론 그 말은 송구하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괴로움은 내 몫이었다.사건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유독 애도의 언어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게 바로 미안하다 라는 단어다. 세월호가 그랬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그랬다. 나라는 개인이 가만히 있으라 라며 승객들을 놔두고 도망간 선장도 아니고 골든타임을 놓친 해경이 아님에도 그저 미안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아서 미안함과 분노로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애도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세상을 떠난 젊은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사죄해야하는 건 열악한 노동조건을 제공한 서울메트로 측이지만 우리는 sns를 통해, 혹은 직접 구의역에 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애도했다.이렇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어렵지 않은데 한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사람들 입에선 이 말 한마디 나오는 게 쉽지가 않은가 보다. 나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진짜 변화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잘못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저 위정자들 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사회야 말로 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폭염으로 노인분들이 힘드실까 걱정이고, 폭우로 농민분들이 밤잠을 설치시진 않을까 고민이 깊은 여름이다.△최진영 감독은 영화 〈반차〉 〈뼈〉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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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7 23:02

나는 쿨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사랑은 가르칠 필요도, 배울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는 모태 솔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한다. 쿨하게. 조금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으~아직 어리구나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런데 한 번쯤은 그 쿨함이 무엇이고 왜 쿨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올 어바웃 러브>의 저자 벨 훅스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낯 간지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잘 모르기 때문에 찾는 과정은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 듣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에게 영감을 받은 정신의학자 스캇 펙은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진짜 사랑은 시도하고 변화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자 교감인 것이다. 우선 사랑에 빠졌다라는 표현부터 바꿔야 한다. 빠졌다는 것은 주체적인 선택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벨 훅스는 빠진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어라거나 나 사랑할 거야라는 교정된 표현을 알려준다. 이렇게 변화는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된다. 사용하는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인식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말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행동으로 이행해야한다. 의지를 가지고 사랑을 선택했다면 더더욱. 하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솔직하게 표현하기란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여주기 싫은 모습까지 꺼내고 싶지 않다. 자존심이 강한 나의 경우 힘듦에 대해 쉽게 말하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나의 불안한 감정을 털어놓는 다는 것이 고통을 전가하는 것은 아닐지 혹은 선입견으로 바라보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문다. 결국 언젠가 헤어질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왜 그래야 해, 주말인데 즐거운 이야기만 하자, 세상 사람 다 힘든데 뭐로 생각 매듭이 지어진다. 쿨함을 지키는 대신, 깊이 있는 대화를 잃고 있었다. 솔직하기 말할 수 없다면 둘 상의 관계가 진전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 훅스가 대안으로 제시한 모든 것을 공유하려는 마음자세를 당장 따라 할 자신은 없다. 겁쟁이인 나에게 오히려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은 시도조차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하나씩 이야기해보기로. 아플 땐 아프다고 슬플 땐 슬프다고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은 쿨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쿨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는 온전히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이처럼 엉엉 울 수도 있고 충분히 화낼 수도 있다. 상황에 몰입함으로써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도 있다. 쿨함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알 듯 말듯한 자존심의 방패를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나의 특정한 면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사랑의 범위가 너와 나에서 나와 나로 넓혀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노유리 디텍터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월간샘터 대학생 기자, 헤럴드스포츠 인턴기자 등을 경험했다. /노유리 북스포즈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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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0 23:02

오늘 하루도 현실이었어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이면 괜히 우울해졌다. 창 밖으로 막힌 도로를 내다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방금까지 있었던 술자리에서 찍은 셀카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서울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 간다. 전주에서 서울으로 올라갈 때면 한없이 기뻤던 기분은 전주로 돌아가며 바닥에 내리꽂혔다.서울에 올라가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방에 사는 나를 그리워하고 나의 존재를 반가워하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서울에 올라갈 때면 전주에 살고, 지방 대학교에 다니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권화담이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를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주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유리될 때 울적해졌다. 서울에서 미스핏츠 회의를 하거나, 택견 배틀 매니저로 활동하거나, 무형문화재를 취재하는 일은 모두 전주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전주에서의 나는 현실이지만 서울에서의 나는 꿈 속의 존재였다. 그 곳에 있을 때면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오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전주에서 날 찾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주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전주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주에서 활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같은 이들도 누군가는 시작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을 결국 스스로가 하게된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는 영원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은 느리다. 서울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고, 그 형태를 서울에서 빌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흔히 영남을 보수의 성지로 말하지만 어느 지방이든 변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지방은 고정되어있었던 것을 선호한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 나는 서툴었고 고정된 도시는 나에게 나는 하찮다고 말했다.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건가.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항상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그리워했다. 동시에 그 사람들과 있으면 즐겁지만 별천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하루는 여전히 이어지지만 기차나 버스를 통해 나의 하루는 거기에서 끊기기 때문이었다. 전주로 돌아가면 나는 서툰 단계에 머물러있었다.하루는 전주로 돌아가는 무궁화호 기차에서 지인과 카톡을 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카톡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인은 오늘 하루도 현실이었다고 답을 해주었다. 맞다. 오늘도 현실이었지. 내가 전주에 조심히 내려가길 인사하는 사람들도, 전주에서 나와 여러가지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는 현실이었지. 나는 이 곳에서 서툴기도 하고 저 곳에서는 신이 나서 어리광을 피우기도 한다. 내 생업이 존재하는 곳과 조금 멀어 가끔 다른 세상 일 같지만 그렇다고 정말 다른 세상은 아니었다. 두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 모두 나의 현실이었다. 전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는 덜컹거려 창문에 이마를 기대면 머리를 부딪히기 쉬웠다. 아팠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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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03 23:02

새 희망을 향한 청춘협주곡 '아리랑'

아리랑은 한민족의 역사와 같이 한 노래로써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고려 말 절개를 지킨 두문동의 충신들 중 일부가 정선에 가서 전해졌다고 하는 정선아리랑과 갑오혁명의 아리랑, 일제 강점기와 구한말(舊韓末) 항일독립운동 때의 아리랑 등 전국 곳곳에 수없이 많은 아리랑의 흔적들이 한민족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리랑 중에 하나인 정선아리랑은 625전쟁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육군의 위문공연에 우리의 민요 정선아리랑과 한오백년이 김옥심과 김란홍 등 인기 가수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김옥심이 정선 엮음 아라리를 자기 소리에 맞게 바꿔 부른 정선아리랑은 - 정선아리랑은 옛날부터 정선 지역에서 불리던 토속민요(土俗民謠)와 서울 지역에서 불리던 통속민요(通俗民謠)가 다르게 전해진다. 김옥심이 부른 정선아리랑은 정선 지역에서 전해지는 아라리(강원도 지역에서 불리는 향토민요)와는 다른 당시 시대에 맞게 편곡되어진 곡조이다.- 식민지시대의 암담한 삶과 광복 이후 전쟁에 시달린 우리 민족의 울분과 한이 이입되어 설움과 한을 쓸어내리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해 급속도로 대중 속으로 파고들며 전쟁 이후 가장 인기를 끈 민요가 되었다.후일담으로 신경림 시인은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 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필자는 작품 활동을 해오며 아리랑을 주제 혹은 소재로 쓴 악곡이 유독 많았다. 그것은 우리의 민족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전달 표현이기도 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아리랑이 가지고 있는 포괄적 의미는 아리랑은 이런 것이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아리랑 그리고 우리 안의 아리랑을 끄집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리랑을 생각하며 작품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나와 나의 민족이, 나와 우리의 역사가 하나가 되는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점이며,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가 음악으로 빚어내는 화합이 시간의 축적이라는 물리적 행위를 보이는 인내와 고통이기도 하다.이제 우리는 그 화합과 통합의 정의로운 아리랑 시대정신으로 새 희망을 향한 청춘협주곡을 연주해야 한다. 청춘협주곡 아리랑은 국민의 힘으로, 청춘의 힘으로 어둠을 뚫고,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장르여야만 한다. 그것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고, 이 땅의 청춘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삶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625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지 67주년을 맞았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역사적 참극이며 비극이었다.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수많은 희생이 따랐으며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국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배고픔에 떨며 전쟁에 대한 공포로 숨죽여 살았다.필자는 칼럼을 집필해오며 청춘의 삶을 전통과 역사에 빗대어 음악이야기를 했지만 분단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 아니던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사관과 나라를 지키려다 전쟁터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우리 청춘들은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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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6 23:02

소녀의 상처

외국에서는 살인죄만큼 강하게 처벌되지만, 국내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가는 죄가 있다. 바로 성범죄이다. 나이가 어리다, 우발적이다, 심신미약이다, 잘못을 뉘우친다, 초범이다 등등.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에 비해 처벌수위가 약한데다 양형은 기본, 선처까지 해주곤 한다. 적어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삼촌이 초등학생 조카를 성폭행하고도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를 출근할 수 있는 세상이다.나는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면서 감히 털어놓지 못했던 기억들을 지면을 빌려 꺼내보려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오빠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살갑게 이야기를 건냈다. 놀이터의 모래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나는 구두를 신은 그 남자는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러니 한 번씩 안아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금세 오빠를 한 번 업어보고는 나를 안으려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치마를 걷고 팬티 속으로 손을 쑥 집어 넣는게 아닌가. 그렇게 들려진 나는 그 당혹감과 불쾌감을 그저 작은 외마디 비명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작은 아이였다. 오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다. 목표를 이룬 그 남자는 유유히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 후로 나는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긴 시간동안 불쾌한 마음의 통증을 안고 지내야만 했다. 처음 느껴보는 충격적인 기분이었다.그땐 몰랐다. 점점 더 이런 고통스러운 일들을 자주 겪게 될 것임을. 고등학교 때 노래방으로 불러내 성폭행 하려 했던 선배 자식.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보인 성추행적 발언과 행동들. 3년 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내 술잔에 약을 타던 모습. 그림을 가르쳐 준다며 본인 작업실로 불러들여 예술영화랍시고 포르노를 틀고 마사지를 알려주겠다며 내 다리사이로 손을 밀어 넣던 작자.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더 클 수밖에 없는 고통이고 상처였다.그 외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했던 성추행, 성희롱들을 나열하자면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더 가슴 아픈 것은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사건 전후로 너무나도 뻔뻔하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태연하다는 것이다. 사과는 커녕 되레 나에게로 화살을 돌릴 때도 있었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조차도 성범죄를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생각하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가벼운 마음일지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가해자 대부분의 성별인 남성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범죄에 노출되어있는 피해자 입장이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리 가볍게 여기지 못할 테니 말이다.나의 이러한 상처들은 그럴 수도 있지하며 지나가려는 사회 속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나는 인천의 작은 놀이터에서 초등학생이던 내 팬티에 손을 넣던 남자를 기억한다. 성범죄는 나 같이 인천에서 별 볼일 없던 여자애에게도 너무 쉽게 일어나는 것들이었다.지금의 대한민국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잘못된 성 평등 인식으로 145개국 중에 양성평등 수준 115위를 차지할 만큼 수준이 굉장히 낮다. 이젠 그럴 수도 있지 대신에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자.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정의가 흔들린다면, 놀이터에서 작은 칼을 마주해야 했던 아이들이 흘린 피는 무관심속에 계속 흘러야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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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19 23:02

비수기를 보내는 법

직업 중에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 직업들이 있다. 일반 직장인이나 공무원 같은 1년 내내 규칙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 특정 분야에서 사업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직업의 경우는 명확하게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운동선수에게는 시즌과 비시즌이 있고, 학교와 관련된 직업에는 학기와 방학이 있듯이 말이다. 이것도 모두 큰 의미로 보면 성수기와 비수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수기란 사전적 의미로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요가 많지 아니한 시기이다. 쉽게 말해 해야 할 일이 적고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말 할 수 있다.필자 또한 이벤트 MC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성수기와 비수기가 아주 명확한 직업 중에 하나다. 행사가 있어야 MC의 수요가 있으므로 행사가 많이 있는 날씨가 야외 활동하기 좋고 학교들이 학기 중인 봄과 가을이 성수기이고, 반대로 야외활동이 어렵고 학교가 방학 중인 여름과 겨울은 상대적으로 행사가 적은 비수기이다. 사실 바쁠 성수기에는 다른 생각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행사 문의를 받고, 행사 미팅을 하고, 행사 준비를 하고, 행사 진행을 하고, 행사 서류 처리를 하며 정신없이 보낸다. 하지만 비수기에는 홍보를 위한 블로그 작업, 장비 관리 말고는 고정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사실 비수기에는 굉장히 느슨해지고 나태해지기 좋은 환경이다.하지만 필자는 비수기를 다르게 보내고자 한다. 이 비수기가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간이고 남들과 차이를 낼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성수기에는 남들과 크게 다를 수 없다. 왜? 다른 업체,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일하느라 바쁘고, 나 또한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수기는 쉬고 멈춰있으면 0이지만 비수기의 나를 성장시키면 100만큼을 이룰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수기의 기간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하지만 이벤트MC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 혼자 운영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혼자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이상 그 어디서도 터치를 받지 않는다. 이 부분이 굉장히 애로사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일부러 비수기에는 다른 노력보다 가장 먼저 하는 노력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성수기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을 만나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내가 해야 될 일을 찾고, 또 요즘 사회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한다. 나에게는 멈춰있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만나서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그것에 대한 구상을 하고 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 움직이다 보면 크게 무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움직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 성장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또 한 마지막으로 필자가 하는 방법은 억지로라도 나를 어느 단체든 모임이든 소속을 시켜 놓는 것이다. 소속되면 억지로라도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참석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생각의 폭도 넓히고 인맥도 넓히는 방법으로 사용 중이다.학생도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수준이 확 달라진다. 운동선수도 비시즌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시즌 활약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성수기를 잘 보내기 위한 준비과정 그리고 나를 성장시키는 기간으로 비수기를 활용한다면 비수기가 지루하고 할 것 없는 기간이 아닌 더욱 기대되는 최고의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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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12 23:02

잘 할 수 있는 사람

휴학을 한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처음 휴학을 할 당시에는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분명 내가 세운 그 계획들에 맞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세운 계획들 중 대다수는 빛을 보지 못했다. 탈락했거나, 불합격했거나. 물론 휴학을 한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일이 안됐다는 것 자체도 내가 경험한 일이었고 내 계획과 다르게 진행된 일도 있었다. 하지만 휴학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 너는 휴학을 좀 하고 쉬어야 해, 넌 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거야 그리고 네가 앞으로도 그렇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사이에서 많은 것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어쨌든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에겐 새로운 상황이 다가왔다. 복학할 것이고, 새로운 거주공간을 마련했다. 프로젝트들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준비를 해두어야 하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전과 다르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전처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실패만 거듭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잘 해야 하는데., 내가 잘 해온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하는데. 복잡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예전이라면-휴학을 하기 전이라면- 이까짓 게! 라며 쉽게 털고 일어났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큰 이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사실 없다.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가수 유미의 노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뮤직비디오에서 유명해진 배우 정우성의 대사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은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의 탓이다.잘할 수 있다와 잘 해야한다는 분명 다르다. 나에게 와닿는 정도도 다르고 애초에 문법적인 뜻도 다르다. 휴학을 하고 내가 잘해왔던 일들이 서툰 일이 되자 상당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일들에 나는 잘 해야한다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가족들이 내 휴학을 반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다. 나는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잘 해야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잘 해야한다고 계속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내가 잘하는 일은 아니니까. 잘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해낸다는 것, 내가 노력을 쏟은 만큼 결과를 낸다는 것. 너무 매달렸던 탓일까 내 목을 매단 것 같았다. 쉬면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자 휴학을 한 내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던 것은 나의 탓이었다.이제 다시 복학을 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도 구할 것이다. 새로운 일들을 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걱정이 많이 들고 누군가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아 두렵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말해준 대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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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5 23:0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하므로 흘러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느니’ 1449년(세종 31년)에 간행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에 전하는 내용으로 뿌리가 깊은 나무와 샘물이라는 자연물이 아무리 센 바람과 가뭄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찬란히 꽃을 피우며 시내를 이루는 강한 생명력처럼 조선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진 전통이 깊은 나라라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무가 태어나고 성장하기까지 여러 선조들의 뿌리가 있었고 그 좋고 튼튼한 뿌리를 기반으로 나라가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과 열매가 성하다는 의미로써 조선 왕조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튼튼한 국가의 기반과 문화가 융성해 그 결실이 풍부함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청년 일자리·창업적 문화 지원 시급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현 사회는 어떠한가. 이제야 좋은 모종을 땅에 심어 뿌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듬는 상황으로 새 정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일 것이다. 그 중 가장 첫 번째가 청년의 일자리창출 및 창업적인 문화지원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새로운 직업 뿐 아니라 새로운 목적을 찾아 개혁을 해야 하는 세대이다. 과거에 존재하던 직장의 개념은 포화상태이며, 고여 있을 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각 분야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사업화하여 이를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타 분야와는 달리 특히 예술 계통의 학문으로 진학하는 전공자들은 나름의 목적의식을 갖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예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현 사회 구조가 이를 모두 수용할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 세대는 우리가 갈고 닦은 다양한 능력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개발·개혁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개인 및 단체의 노력을 정부는 충분히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원하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열쇠이자 사회를 진보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청년과 장년 및 노년이 분리되어 있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것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바로 문화다. 문화는 한쪽으로 편향된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갖춘 제대로 된 ‘진짜 문화’로 거듭나야만 한다. 예향의 고장 전라북도와 문화선진도시 전주시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개발해 우리 지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진짜 문화’ 도시로 우뚝 서야만 한다. 정부·지방자치단체, 청춘들 지원을뿌리 깊은 나무는 바로 청년 시절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함과 열정이 아닌가. 그 목적의식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발성으로 지켜만 줄 것이 아니라, 뜨거운 열정이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체계적인 정책을 통해 이 땅의 청춘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필자는 상반기 청춘예찬 칼럼을 집필하며 ‘개인’을 이루는 가장 극명한 시기인 ‘청춘’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쳐왔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곳에서 이뤄지며, 튼튼한 뿌리를 내려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땅 청춘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든든한 청춘 예찬론자로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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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9 23:02

쥐며느리의 노력

2015년 언제인지 모를 어느 날, 점점 몸이 약해지시는 엄마와 번듯한 직장도, 결혼생활도 않고 있는 자식들과 아직 어린 손녀까지 있는 집에서 오랜 시간 다니던 직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하러 나서시던 아빠의 가슴을 억누르는 책임과 압박의 무게는 과연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차가운 현실과 비슷한 모습 ‘예술가 신은미’라는 여섯 글자와 ‘돈’과는 놀랍도록 아무 상관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서른까지 나는 대학의 감투를 써오다 이제 막 예술가인척 하려던 당신의 백수 딸이었다. 나의 화려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한결 한결에는 당신의 깊은 주름들이 패여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전주까지 홀로 뛰쳐나온 이유다. 예술가라는 잡기 힘든 꿈도 꿈이지만, 이제는 당신에게 고생의 주름보다 웃음의 주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그렇게 뛰쳐나온 처음 만난 예술가의 현실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살 때 만 원 짜리 한 장도 쉽게 쓰는 일이 없었다. 월세는 무서웠고, 만만하게 시작했던 현실 예술가의 길은 통장 잔고가 계속 0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던 어느 날 밤에 나는 마감을 하려던 나의 가게에서 작은 쥐며느리가 뒤집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뭇 분위기가 심각하다. 어쩌다가 몸이 뒤집어진 건지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휴지로 감싸서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자세하게 보고 싶어졌다. 꼭 전주 한복판에서 아등바등 하는 나의 모습 같았다. 온몸에 돋아있는 수많은 다리들과 더듬이가 그대로 드러난 채 발버둥치는 움직임이 신박하기까지 했다.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피는 반동을 이용해보기도 하고 한쪽 다리들만 움직여서 몸의 중심을 옮겨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지쳤는지 이따금씩 미동이 없어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금방 다시 그 움직임들을 반복한다. 한낱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작은 생명체가 살기위해 꽤 현명하게 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수 분 동안 보고 있노라니 성공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는 내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고 어느 순간 진심으로 그 쥐며느리의 뒤집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져 결국 내 작은 힘을 보태기로 한다. 나에게는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정도의 손가락 움직임이었지만 그로인해 그 쥐며느리는 생명을 되찾았다. 자유를 얻은 쥐며느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열심히 기어 내 손 옆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마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불과 몇 분 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손이다. 나는 조심스레 종이로 그 녀석을 들어 올려 문밖의 편평한 땅위에 내려주었다. 징그러운 벌레에 불과했던 그 쥐며느리는 나에게 작은 응원가를 보내주고 있었다.할 수 있는데까지 혼자 힘으로 노력을누구든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럴 때 금방 포기하고 남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수 있는데 까지 혼자 힘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 중 누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로인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과연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왔나. 가장 하찮게 여기던 그 벌레 한마리가 준 감동을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행동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 유사시 부모의 방어막 속에 숨어버리는 자라족, 그리고 일할 의지조차 없는 니트족이 매년 늘어가고 있다. 정부제도의 문제를 당당히 외칠 수 있을만큼, 앞서 그대는 노력으로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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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2 23:02

관계속의 오해들

사회생활을 할수록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또 그 속에서 많은 오해들로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는 좋은 감정, 좋은 관계, 좋은 인연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관계를 맺고 같이 지내다 보면 사사로운 오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잘 못 이해해서 생기는 오해,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잘못 전달되어 생기는 오해, 각자의 시선에서 상대를 바라보면서 생기는 오해 등 다양한 이유로 생기는 오해들로 인해 결국 관계가 끊어지거나 최악에는 적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사회생활서 대화하고 관계 맺기 중요그러면 이러한 오해들로 생긴 서로의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사실 대부분 오해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은 대화이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가 오히려 오해가 더 커져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오해를 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대화를 시도하면 그런 경우가 다반사 인 것 같다. 오해를 풀러 가기 전에는 먼저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상대방의 배려, 상대방의 입장 등을 고려하며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잘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오히려 오해를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다 좋은 관계로만 지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오해를 잘 풀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잘 지속하는 능력이 있어야 사회생활에서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제는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사회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스펙이고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 사람들과의 트러블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관계속의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고 지친 삶을 살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을 찾아보면 인간관계가 빠지지 않는 항목으로 나온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것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어려움의 요인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성격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 등 하지만 필자는 그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능력 이라고 본다. 보통 서로의 부딪힘이 생기는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본다. 그러니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훨씬 더 원활한 관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 배려하고 입장 존중해줘야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관계를 맺을 때는 우리 모두 긍정적인 목적, 이상적인 관계를 위해서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는 입장차이, 시선의 차이로 인해 반드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입장을 존중해주며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푼다며 반드시 아무리 큰 오해도 다시 화합하며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오해를 푸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끈끈해질 것이라고 본다. 관계를 맺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오해가 너무 많은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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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15 23:02

우리는 언제나 나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전래동화에서부터 디즈니 명작 동화까지도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말을 한다.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을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숱한 어른들은 나쁜 사람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주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에서 나쁜 사람은 특정한 행위를 한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위협을 끼치거나 누군가의 일을 방해하는 등, 특정한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나쁜 일을 한다. 남매의 어머니를 잡아 먹고 둘을 나무 꼭대기까지 몰았던 호랑이, 백설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주었던 계모. 우리는 누군가에게 직접 위협을 가하는 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면서 나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알려주지 않았다.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나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쁜 사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는 내가 왜 나쁜 사람이냐고 되레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한 사람보다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평범한 사람에게 더 화가 나곤 했다. 나는 저런 사람과 달라라는 외침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닌, 당신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나 나쁜 행동을 당한 사람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의미 없는 행위이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지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배웠던 나쁜 행동들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구체적이었다. 때리지 말 것, 겁을 주지 말 것, 독이 든 사과를 주지 말 것. 우리는 일련의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백설공주의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주겠다고 마음 먹은 동안 말리지 않은 거울 같은 것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독사과를 앞에 둔 수많은 거울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혹은 당신이었다. 우리는 독사과를 먹을 일이 없으니 쉽게 말했다. 거울은 백설공주를 직접 해치지도 겁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과연 거울은 좋은 역할일까? 글쎄.억울함을 넘어서나는 억울하곤 했다.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욕에 가까운 말이다.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도 나쁜 행동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저 일은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한 후에 따라오는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어야했다. 내 일이 아닌 일에 눈 감을 수 있다는 것, 나쁜 행동에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울음에 창문을 닫고 다시 곤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밤을 누군가가 뼈저리게 부러워한다는 것. 나의 억울함조차 누군가가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우린 이제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나쁜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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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8 23:02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다시 5월이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역사적인 5월이 될 것이고, 모든 국민이 염원하듯 정의로운 시대, 진정한 통합의 시대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이 우리들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직이 난무하고, 고시원과 알바를 전전하는 청춘들에겐 더 이상의 꿈조차 꿀 수 없는 지금은 헬조선이라 일컫는 나라가 아니던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여섯 명의 대통령을 선출했고, 두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되짚어보면 혼란스러웠던 정부와 국회를 바라보며 겉으로는 정경유착을 뿌리 뽑겠다는 강한 슬로건을 내걸지만 속으로는 억약부강(抑弱扶强)의 모습으로 언제나 약자의 편이 아니라 기득권 편이었음을 우리 국민은 지난 세월을 통해 충분히 경험해왔다.청춘들에겐 꿈조차 꿀 수 없는 헬조선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가 주도하는 중앙 중심적 구조이다. 그에 대한 제도적인 구체적 실행방안도 없는 터라 문화예술의 재정은 타 분야에 비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하물며 블랙리스트라는 명목 하에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저해하며 법적 책임까지 지고 있는 정권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정도로 셀프 사면을 하고, 현 정권이 저지른 잘못과 관련한 블랙리스트 방지법 입법을 자신들이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급박한 현 시점에서 왜 이러는 것일까.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음 정권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반드시 차기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 방지법 입법과 문화예술 관련법을 더욱 세밀하게 정비하고 보완하여 지원사업의 공정성을 강화시키고,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또한 예술지원사업 및 예술인 육성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사후지원까지 확충될 수 있는 지속사업이 유연하면서도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평생 1회 밖에 지원이 되지 않는 신진예술인 대상의 예술지원금을 고려한다면 무조건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평가는 그 후의 몫이다. 전문 예술인 양성지원을 위한 예술대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전라북도처럼 문화예술에 대해 유구한 역사와 애착심이 강한 지역의 경우 지역대학의 선제적 구조 개혁에 전통분야를 단지 상업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전문 예술인 양성지원을 위한 예술대학에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졸업 후 예술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차기정부 또한 문화예술의 가치를 저해한다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공정한 사회로 청춘에게 희망 주어야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쓴 대한민국은 국민의 힘으로 어둠을 뚫고,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촛불역사가 다시금 보여주었고, 이것이야말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휴머니즘을 우리 스스로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니던가. 이제 5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다시 그려본다. 공정한 사회로 이 땅의 청춘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부, 정경유착과 불공정을 뿌리 뽑는 재벌개혁, 걱정 없는 복지사회, 국가의 역사를 상징하며 국가가 보장하는 전통과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사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통일의 문을 열어줄 정부가 들어서길 국민 모두가 가슴 깊이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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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1 23:02

전화하는 날

전주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KTX로 약 1시간 30분. 집인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또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학 진학 후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거의 매일같이 인천에서 서울, 왕복 3시간씩을 오갔던 나다. 그런 나였기에 전주에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인천 그까짓 거 하며 자주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수준이라니. 며칠 전 역시나 두 달 만에 집에 올라갔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올라와놓고 엄마 얼굴 보자마자 맛있는 거 해달라는 철없는 딸내미의 주문에 엄마는 분주하게 장을 봐 오신다. 고작 2박 3일 머무는데 장을 두 번 보신다. 두 번째 장바구니는 고스란히 딸내미 챙겨 보낼 찬거리가 된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엄마의 마음무겁다고, 과일은 가서 사먹어도 된다며 챙기지 마시라는 말에도 이게 달고 맛있다며 한보따리 가득 우겨넣으신다. 이따 전주에 내려가면 비가 올 거라며 우산까지 내미시는데 그놈의 우산 챙기기는 어쩜 이리도 항상 귀찮은 건지. 마다하는 걸 엘레베이터 앞까지 나오셔서 챙겨가라는 통에 하릴없이 받아오며 투덜거린다. 그렇게 전주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싫은 소리 들어도 내 새끼 비 맞게 하기 싫은 어미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툭 가라앉는다. 유리창에 새겨지는 빗자국과 함께 내 볼에 눈물길이 생기고 있었다. 난 여느 딸내미들처럼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매번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 하던지 간에 끝은 항상 비슷한 엄마의 잔소리로 마무리 되는 것이 싫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층 한층 벽을 쌓아갔고 그 벽으로 인해 끝없는 대립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일정부분이 결핍된 채로 성장했고 그 결핍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자주 연락드리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나를 만들었다. 마냥 듣기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당신만의 대화 방식이란 걸 이제는 안다. 엄마 또한 나의 그것과 닮은 결핍으로 인해 굳어진 연약한 사람이었으리라.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어미의 몸짓으로 이미 나에게 따뜻한 대화를 건네고 계셨다.항상 한결같이 나를 보듬어주시는 아빠. 말없이 내려오고 나면 저녁쯤 치킨 사왔는데 벌써 갔냐며 전화해서 아쉬워하시는, 언제나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존재. 전주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면 그냥 정리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제 일하며 잘 버티고 있는 딸이 대견해 허허 웃어 보이시는 당신. 무심한 딸보다 항상 먼저 전화하시어 자주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애틋해 고운 손수건에 고이 담아 심장 가까운 곳에 보관해놓고 당신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부모님을 보며 더 잘 되겠다고 다짐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면 내 새끼 때문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게 된다지만 나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더 잘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와 방송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던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처음으로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그 모습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아마 지방에 홀로 떨어져 생활 해보지 않았다면 쉽게 알지 못했을 감정이었으리라. 아직도 녹록치 않은 전주생활이지만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 맛있어서 힘이 나서 그런지 오늘 일도 잘 풀릴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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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4 23:02

청년 둘이 만든 벚꽃축제

필자는 MC로 활동하면서 청년들과 문화 예술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축제라는 것을 많이 보고 경험했다. 사람이 모이고 그곳에 다양한 콘텐츠 가 결합하면서 하나의 축제가 완성이 된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축제가 존재한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콘텐츠로 한 축제들, 공간을 콘텐츠로 한 축제들, 학교나 단체가 주최가 되어서 하는 축제 등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장소시스템 섭외 등 모든 것 처리하나의 축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대부분 기관이나 단체들에 의해서 축제가 기획되고 진행이 된다. 사실 개인이 축제를 연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가장 크게 부딪히는 부분은 비용부분일 것이다. 축제를 열기 위해서는 시스템, 인력, 홍보 등 다양한 부분에서 비용이 발생되고 그 비용도 축제의 규모에 따라 매우 상이하겠지만 적은 비용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야만 축제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축제도 사람이 하나 없어 흥행하지 못하는 축제도 볼 수 있다. 실패 요인에는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있기에 이것들을 다 맞춰야 성공을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 축제의 흥행이 아닌가 싶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축제라면 날씨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장소, 접근성, 인지도, 일자, 시간, 콘텐츠, 홍보채널 등 신경 쓸 것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필자는 이러한 어려움이 많은 축제를 청년문화기획자 겸 MC 한 분과 함께 봄의 벚꽃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처음 시작은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벚꽃야간개장 행사에 맞춰서 간단한 이벤트나 버스킹 공연을 생각하던 중에 동물원이 AI확산으로 인해 휴장을 하게 되면서 봄에 가장 좋은 콘텐츠 중에 하나인 벚꽃을 보러 갈 곳이 없다는 안타까움에 아! 우리가 한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벚꽃축제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급하게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게 되었다.장소 섭외, 시스템 섭외, 푸드 트럭 섭외, 주류업체섭외, 프리마켓 팀 섭외, 자리배치, 무대행사 팀 섭외, 스태프 섭외, 홍보물 제작, 홍보, 사전예약관리 등등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청년문화기획자 2명이서 준비해나갔다. 사실 사비로 준비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받으며 준비해나갔다.경험에서 온 깨우침 매우 커그렇게 축제 당일이 오고 주차문제로 조금 난항을 겪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다. 이제 축제를 시작하려고 하니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열심히 준비한 축제가 철수 위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정말 머리가 하얘지고, 답답했다. 하지만 상황 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기존 준비한 축제의 시간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축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수많은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준비한 축제였지만 장소 협의 문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니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많은 걸 깨우치게 한 축제였다. 정말 어렵게 준비하면서 귀한 사람을 얻었고, 축제 준비하고 기획하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몸소 배우니 아쉬움도 남았지만 너무 귀하고 값진 시간 이였다. 경험에서 오는 깨우침은 너무나 큰 것 같다. 청춘이니깐 가능한 배움의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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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7 23:02

그냥 내 피를 흘릴테니 그러려니 해주세요

집을 나온 지 약 한 달, 여러가지를 스스로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계부를 쓰는 일이다. 여러가지 항목을 나누고 항목에 맞게 금액을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쉽게 넘길 수 없는 항목이 있다. 바로 월경 비용이다.비싼데다 발암물질 검출된 생리대월경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 몸은 건강할 때 한 달에 한 번, 6일 정도 피를 흘린다. 내가 생리를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흔히 생리대하면 떠올리는 부착형 패드를 사용했고, 대학생이 되고 지금까지는 탐폰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탐폰이 더할 나위 없이 패드보다 편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썩 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패드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몸에 맞지 않는 걸 사용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요새는 월경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생리대 크기는 엉덩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냐, 월경이 불편하면 묶으면 되지 않냐 같은 소리들을 듣지만 이 글에서 틀린 부분을 하나 하나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과 관계 없이 생리대 가격은 내 지갑사정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그런 와중,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월경컵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패드와 탐폰처럼 쓰레기통에서 썩어가며 피냄새를 풍기지도 않고, 최장 10년은 사용할 수 있으며 독성 쇼크사의 위험성도 적고, 생리가 끝나면 소독하여 재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닌 월경 용품. 다만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아서 해외에서 구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공동 구매를 하는 곳을 알게되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월경컵이 안전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신청서를 작성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월경컵을 받아보기도 전에 환불할 수밖에 없었다. 월경컵은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수입품목인데, 식약처에서는 월경컵에 대한 품목 허가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 구매 수량이 약 700개가 넘은 상황에서 대량 수입은 판매용으로 간주되어 관세사와 일반 수입신고 당사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공동 구매가 취소되었다. 나는 더 기다릴 만한 지갑 사정이 아니어서 환불을 요청했다.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수입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단될 수 있다는 것 정도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월경컵 공동 구매 취소와 함께 생리대 11종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함께 들려왔다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었다. 월경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리대란 양말 만큼이나 일상적인 물건이다. 이런 일상적인 물건에게 건강상의 위협이 쉽게 노출되어 있는데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없는 점은 많은 월경인구에게 분노를 샀다.대안 없는 대한민국에 월경인구 분노내가 앞으로 30년은 더 해야할 것이 월경인데, 왜 안전하게 고를 수 조차 없느냐는 것이다. 양말도 내가 스포츠 브랜드의 양말을 신을 지, 아니면 속옷 브랜드의 양말을 신을 지 고를 수 있고 내 발에 편해 즐겨 신는 양말을 정할 수 있는데, 비싼데다가 발암물질까지 검출된 생리대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했다.게다가 저소득층 월경인구는 생리대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깔창이나 양말을 사용한다는 뉴스가 TV와 신문, 각종 SNS로 퍼진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장기가 닿는 것인데 어떤 보호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 이젠 그냥 피를 흘릴테니 그러려니 했으면 좋겠다. 굶는 것보다 월경혈을 흘리며 밖을 나가는 것이 더 끔찍해야하는 사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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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0 23:02

국악이 걸어온 길, 나아가야 할 길

오늘 필자는 국악을 전공한 음악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의문에 관하여 펜을 들어 본다. 세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그들이 영토를 갖고 있음을 인지하고, 고유의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이웃 국가나 역사적 사유에 의해 영토분쟁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많고, 열강의 언어에 밀려 자국의 언어를 잃어가는 사람들 역시 많다.안일함무관심이 무시퇴보 낳아멀리 볼 것 없이 독도라는 작은 땅을 두고 이웃 국가인 일본과 분쟁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당연히 우리의 영토라고 믿으며, 긴 시간을 흘러 보내온 지금의 상황은 불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선조들의 자취가 남겨져 있고, 그 사실을 뒷받침 해 주는 역사적 자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대한민국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외교적 대립을 겪으며 지난하고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가져온 시간을 통해 축적된 역사적 증거들에 맞설 근거가 타당하지 않아서였을까? 관심의 결핍, 이것은 변화를 꾀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고 더 이상 발전을 원하지 않는 우리의 사회 속에 당연하게 주워지고, 항상 갖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무사안일 풍조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하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살기엔 편하지 않았고, 삶의 이익이라는 효율성이 떨어진 먼 동쪽의 외톨이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관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독도가 영토로써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지키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불편한 외교문제의 화두가 되어있는 현실이다.국악이라는 음악의 존재성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우리의 역사를 음률로 기록한, 문자와도 같은 정신이 깃든 국악이 현실 속에선 정작 설 자리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대중적이고, 선호되어지는 서양음악에 밀려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국악이 다가가기 어렵고 지루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본질을 잃은 의미 없는 겉핥기식의 논쟁일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교육을 시작하는 순간 국어라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의무적인 교육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종대왕이 나라의 존속과 백성을 위해 우리의 언어를 만들었으며 널리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 역사를 지나오며 의무적인 제도 하에 한글을 지켜 왔기에 열강국인 중국과 일본의 언어에 밀리지 않고 유지가 되어 온 것이다. 국악 또한 그러하다. 여러 다른 나라의 음악들과 함께 저울질 하는 것이 아닌, 한 나라의 음악으로서 자리를 마련해 유지, 보수, 발전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의 음악교과가 서양음악이 주가 아닌 국악이 주가 되어 서양음악을 접하는 제도적인 바로잡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우리 전통음악 보존 제도화해야필자는 앞으로 본 칼럼을 통하여 국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 나아가고자 한다. 관객의 외면을 받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음악이라는 편견은 개개인이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국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제도적으로 탄탄히 뒷받침이 되어 준다면, 우리의 정서가 담긴 한국의 전통음악은 결코 무시와 퇴보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국가의 음악은 의무적인 보존이 뒷받침 되어질 때에 역사에 남겨질 것이며, 열강국의 종속적인 음악이 아닌 독립된 우리의 정신으로 이어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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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3 23:02

자연스러운 삶

자연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산과 강 주위로 문화가 피어오른다.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산과 강의 그 깊은 맛을 잊었지만, 나는 일부로 서울에서 떨어져서 산과 강 주위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영감들의 흔적들을 만나기 시작한다.산과 강을 찾아 예술 영감을 얻어매화 향기를 따라 봄날의 섬진강을 찾아가 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아버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이 익숙한 노래 덕분에 나는 섬진강의 존재가 나에게 항상 친근하면서도 미지의 그 무엇이었다. 진안에 발원지를 두고 있는 이 소박한 강으로 인해 누군가는 시인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화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저 개발해야 될 미 개척지의 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 강에서 사회를 보았고 인생을 보았다. 강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고 평생을 지금과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전통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깊은 영감의 흔적들을 찾기를 바라며 무턱대고 내려온 이곳, 그렇다면 그 자연속 삶은 어떤 것일까?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법이라는 이야기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는 부쟁(不爭)의 철학이다. 언뜻 보면 소극적인 삶의 방식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은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다.’ 물은 내가 길러주었다고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둘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겸손의 철학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하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 뻔한 이치가 이다지도 어려워 내 공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존재를 부각하려고 난리고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을 하인 부리듯 주무른다. ‘자연(自然)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자연은 그냥 자연스럽게 두면 된다. 순리에 맞게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애써 힘들이지 않고 가만 두면 되는 것이다. 무상히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조상들은 이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그 섬진강을 몇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서른세 살에 여전히 붓을 잡고 있는 나에게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다. 자기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예술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만이 작품을 가득 메우게 된다. 내가 서울 한 복판에서 전주행 티켓을 끊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주류에서 멀어진다고 많은 걱정을 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나를 비워내는 과정들이 필요했다.수천 년 간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는 위대한 자연 경관들을 홀로 여행하면서 나는 상선약수와 같은 삶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자연과 더불어 더 단단한 예술가로이제 나는 다시 나를 비우려 한다. 종이를 다시 펼쳐 본다. 나의 눈에 비친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그리면서 나는 순리에 맞고 당연한 그 자연의 긴 호흡에 맞춰 간다. 자연과 더불어 나는 더 단단한 예술가가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를 물처럼 채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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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7 23:02

일상 차 한 잔의 여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기분 좋은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부터의 전화였다. 내용은 이랬다.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다양하고 좋은 차(茶)를 지역에 열심히 사는 청년들과 함께 나누며,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 이였다. 사실 필자도 차(茶)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을 통해서 차(茶)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차(茶)가 주는 편안함, 여유, 따뜻함 등이 좋았다. 조금은 지쳐있던 필자는 너무 반갑고 또 주변에 열심히 사는 친구들과 1~2주에 한번은 차(茶)를 통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필자의 고민도 털어 놓고 싶었다.차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임통화가 끝나고 바로 장소를 정하고 SNS를 통해서 같이 차를 마실 인원을 모았다. 사실 걱정도 됐다. 과연 축제도 아니고 뭔가를 배우는 모임도 아닌데, 그냥 특별한 것 없이 차(茶)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임인데 인원들이 모집이 잘 될까? 고민은 짧은 시간 내 해결이 됐다. 주변에 알던 친구들 뿐 아니라 SNS 통해서만 알고 지내던 인원에게도 연락이 왔다. 아, 생각보다 차(茶)에 관심 있는 사람도 많고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한 하는 사람도 많구나.그렇게 모여진 7명이 첫 번째 차(茶)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이도 있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따뜻한 차로 마음을 녹이고 선생님이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또 차(茶)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평소에 차(茶)에 대해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는 몰랐던 차(茶)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의 화제가 정치, 세월호, 한옥마을, 청년 등 다양한 곳으로 옮겨가며 다양한 의견과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색한 기류는 차(茶)덕분인지 이야기꽃으로 따뜻한 기류로 바뀌었다.사실 요즘은 사람을 만날 때 대부분 커피숍에서 만나니 커피나 음료는 굉장히 많이 접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茶)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차(茶)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차(茶)의 의미는 소통이라고 정의해주시는 것에 우리는 모두 공감을 했다. 어떠한 음식처럼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닌 소통의 매개체로 차(茶)를 활용했던 것이다.주변사람들과 소통을 통한 여유를우리가 마시는 따뜻한 차(茶)를 소통의미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 바로 소통을 통한 여유다. 일상에 수많은 소통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따뜻한 차(茶) 한잔을 마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하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살아야하는 치열한 사회에 사는 우리. 하지만 앞만 보고 뛰다가 지쳐 쓰러질 수 있으니, 따뜻한 차(茶)한잔하며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고 여유를 얻으면 좋겠다. 앞으로 여력이 가능한 차(茶)모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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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0 23:02

정말 변해야만 한다면

탄핵이 되었다. 선고요지를 침착하게 읽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그러나’를 말할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내려 앉았는지 모른다. ‘탄핵을 인용한다’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소리 지르며 붕붕 뛰었다. 결과적으로 탄핵은 되었고, 그 사람은 내려왔다. 이번 탄핵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우병우를 구속시키지 못했고, 그 사람은 세월호의 책임자로서 탄핵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탄핵과 특검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고생하셨다는 박수를 치고 싶다.탄핵됐다고 모든게 변하는 건 아냐 ‘12345678’이라는 기가 막힌 숫자(퇴장 1명,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표, 8명의 헌법 재판관 인용)를 이야기하면 웃을 수 있지만, 그 웃음은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많은 없는 웃음이었다. ‘과연 탄핵으로 우리의 삶이 변할 수 있을까?’, ‘정말 이제는 바뀔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드는 한편 분명 ‘이제는 분명 바뀌어야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이 나다가도 멎고, 나다가도 멎고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문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나의 삶이, 모든 사람의 삶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최저임금 6470원에 허덕이고,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는 설립되지 못하고, 성소수자는 지정성별 이성애자라고 말해야하고, 출산휴가를 낸 선배는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직할 수 있을 지 걱정한다. 우리의 삶이 바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이제 대선이 다가온다. 많은 정당에서 후보를 내세우고 있고 이미 여러 정치인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가 말했다.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이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우리는 최선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후보가 나와야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악은 차’악’이지, 선이 아니다. 대선후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제를 민주적이고 윤리적으로 풀어나아가야한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최악’이었다. 최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차악이 아니라 ‘선’이다. 같은 악이라면 우리는 변하지 못한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삶이 더욱 확실히 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한다. 대통령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의 감수성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수성이 우리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각 개인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가. 어떤 삶을 만들어야하는가.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려왔다는 것에 안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우리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한창 백남기 농민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평화시위와 관련해 한창 논쟁이 뜨겁던 와중 인터넷에서 한 시를 보게 되었다. 송경동 시인의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이라는 시로,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며 마친다. ‘위만 나쁘다고/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나도 바꿔야할 게 많아요/그렇게 내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때/내가 나로부터 변할 때/그 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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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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