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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포즈, 포즈합니다

김신철 마시즘 에디터 전북대학교 지하보도 앞 편의점을 기억한다. 그곳은 모임, 데이트 등 여러 만남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곳을 조금 더 벗어나면 하나 남은 음반사가 있다. 좋아하는 가수 앨범을 몇 번 사본 게 다였지만 뿌듯한 곳이었다. 물론 그곳은?분식집이 되었다. 용도가 아닌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그런 공간들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들리면 마음이 헛헛하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 바로 북스포즈가 문을 닫았다. 동네책방들의 삼성 같은 곳이 어쩌다가 나는 재미있게 듣지만, 말씀해주시는 분들은 걱정이 가득하다. 이게 다 인사를 제대로 못한 탓이다. 2000권 가까이 되는 책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포장해서 보내니 주변에 인사를 할 여유가 사라졌다. 한 권씩 봤을 때는 책이지만 상자에 포장하여 나르면, 내가 있는 곳이 책방인지 피라미드 공사현장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최 진지할 수 없는 것이 나의 단점이다.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함께한 공간을 정리했으니 허전한 마음이 생긴다. 전북일보의 청춘예찬에 연재했던 책방의 이야기들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침대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던 내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게 다 함께 북스포즈를 만들어준 북스포즈 디렉터님들과 손님들 덕분이다.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책이 있다. 누구나 책방이나 한 번 열어볼까?하는 시대. 책방을 열었고 여러 이유 때문에 문을 닫게 된 웃픈 내용이다. 송은정 작가의 책방 이름은일단멈춤이었다. 결국 책방 이름 따라간 것이 아닌지 쿡쿡 댔었는데. 우리 책방 이름은북스포즈(Pause의 뜻은?일시정지)였다. 여러분도 책방을 내시려면 이름을 크게 지어라. 진지하다. 동네책방 대기업이라던가, 동네책방 돈방석이라던가. 북스포즈는 왜 멈춤을 선택했는가? 여러분의 걱정과 달리 심플한 이유였다. 북스포즈를 만들 때 우리는 2년을 기한으로 일종의 실험을 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북스포즈를 되돌아봤다.우리는 더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가 잠시 문을 닫더라도 좋은 동네책방들이 전주에 정말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손님들 때문이다. 북스포즈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언제 문을 여냐고 찾아왔던 단골부터, 학교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어요라고 말하는 학생까지. 그들에게 조금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지면을 빌려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한다. 아쉬워하지 말자. 생각해보면 많은 책들을 이렇게 (강제로)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하게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음료수다. 평소에 마실 것을 참 좋아하지만, 이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북스포즈 사람들은 마시즘(마시다+ism)이라는 온라인 미디어를 만들고 1년 동안 운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책방을 정리한 것이다. 북스포즈의 문을 열리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여전히 전주에서 좋아하는 일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에 대한 애착, 그리고 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쉬워하지 마시라. 즐거운 일이 가득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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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1 17:40

MADE IN JEONJU, 음악을 심은 사람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장 지오노의 책 <나무를 심은 사람>에는 황무지를 울창한 숲으로 일궈낸 양치기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매일 묵묵히 도토리를 심었고, 한그루씩의 떡갈나무로 키워내 결국엔 아름다운 숲을 이뤘다. 그렇게 단 세 명의 사람밖에 살지 않던 척박한 땅은 만 명의 주민이 이주해올 만큼 살고 싶은 곳이 되었고, 우리에게 한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자연과 인간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가 실화임에도 우리 주변에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낯설게 느낀다.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한 이기주의와 경쟁 속에 살아가며, 남을 밟고 서지 않으면 내가 밟히고 만다는 냉정한 위기의식을 늘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결한 신념을 갖고 모두를 위해 묵묵히 도토리를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타인에게조차 쉬이 강요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양치기를 발견한 장 지오노의 마음으로 한 사람의 열정이 만들어낸 축제 메이드 인 전주(MADE IN JEONJU)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1년 기획자 정상현을 중심으로 시작된 메이드 인 전주는 제1회를 서울, 광주, 대구, 부산 그리고 전주를 순회하는 전국투어로 이뤄냈다. 그 후 전주 구도심에 위치한 클럽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팀들을 초대해, 최대 50여팀 이상이 참여하는 어엿한 페스티벌의 형태를 갖추었다. 유의미한 성과도 거두었다. 전주인디뮤지션들과 신진뮤지션들에게 등용문의 역할을 감당하고, 미약했던 지역인디음악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음은 물론이요. 과거 지역뮤지션에겐 허락되지 않던 공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지역인디밴드가 공연한 첫 사례를 만들어냈고,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연계하여 시너지를 내는 등 지역문화계에서 주목하는 축제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메이드 인 전주 페스티벌은 2015년 제8회를 마지막으로 멈춰 섰다. 페스티벌이 커질수록 기획자 한 사람에게 짊어진 짐은 너무 무거웠고, 척박한 지역에서 혼자 음악을 심어가기에 전주는 너무 광활한 황무지였다. 기획자와 지역뮤지션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고, 지역음악에 관심을 갖고 페스티벌을 관람하러온 관객들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규모는 커졌지만, 공연장의 공허함도 함께 커져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한 기획자와 지역뮤지션을 주축으로 순수하게 만들어낸 민간 지역페스티벌은 거대자본의 지원을 통해 만들어지는 여타의 페스티벌의 그것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메이드 인 전주 페스티벌과 지역음악은 이제 심겨지고 자라나는 숲이다. 지금은 그 가치를 다 알 수 없고, 다소 무모해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 지역이 더 많은 이들이 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줄 그런 숲이다. 단 한사람이 심은 나무가 많은 이들을 이롭게 했다. 우리는 개개인이 그런 나무를 심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지역에서 음악을 심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여전히 지역음악은 공연되고 있으며, 멈췄던 메이드 인 전주 페스티벌도 11월 16일~17일 양일간 다시 열리기 때문이다. 공연 관람을 통해 우리 지역에 직접 음악을 심어보자. 당신의 전주가 음악으로 아름다운 숲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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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4 18:36

다가올 이별, 막연한 두려움에 자신을 놓지 않길 바라며...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 조합원 추석 연휴를 십여일 앞두고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일단 폐에 물이 차 있었고, 검사를 진행 해보니, 심장 판막 이상과 심장이 크게 부어 있다는 진단이 나왔고, 인공 판막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76세의 고령이지만, 운동을 즐겨하고 여태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입원 수술 이런 것들이 매우 낯설게 다가 왔고, 평소에 입원비 수술비를 염려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가족에게 병원비는 크나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수술에 대한 아버지의 두려움과, 차후 생길지도 모른는 수술이후의 환자로서의 삶,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녀로써의 두려움은 수술을 바로 진행하는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수술동의를 3일이나 미루게 되었다. 사실상 8시간 정도가 걸리는 큰 수술이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일반적인 수술이고, 수술이 잘못될 확률이 5% 내외였고 수술 이외에는 다른 방도는 없었다. 수술 비용도 대부분을 의료보험에서 감당하고 있어서, 비용이 큰 부담이기는 하지만, 감당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 같다. 혹시 모를 큰 수술비용과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한 우려, 한번 수술을 하게 되면 병원신세를 계속 지게 된다는 생각, 이런 생각 때문인지 수술에 대한 제대로된 경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병원비에 얼마없는 돈을 탕진하지 말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과 가족끼리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수술을 하더라도 명절이 코앞이니 명절을 지내고 수술을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명절 전에 하게 되었고, 수술경과는 잘나왔다. 아버지는 다른 합병증 증상은 없었고,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어 수술 후 일주일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병원비용 문제도 천만원정도 생각했던 비용과 달리, 의료보험의 적용을 예상보다 많이 받아서, 3백만원 가량의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제는 무사히 넘겼지만,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지금 생을 마감하지 않는 한, 아버지와의 인연을 정리하지 않는 한, 나는 아버지의 노쇠를 지켜보고 의료비를 감당할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막연한 불안감과 할 수 있는 게 돈을 지불하는 것 밖에 없는 무력감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마음속으로 막연한 불안감에 감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의료기술은 상상이상으로 발달하여 마음만 먹는다면, 생명을 더욱 연장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통장의 잔고만큼의 일만 가능하고, 사람의 생은 결국 연장할 수는 있어도 영원할 수 없다. 나에게 최선은 가족 구성원 서로를 상처주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만을 바라고 주변의 모든 것을 쏟아 내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의료기술 혹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 하는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이번 일을 글로써 정리해서 기고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때 느꼈던 고민, 피어오르는 감정, 생각의 변화들을 공유하고, 부모를 떠나 보낼지도 모르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것은 삶의 지속을 위해서 당연하며, 당위적인 선택이란 없고 선택은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와 당신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죄인이 아님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져 개인에게 너무 무거운 선택을 강요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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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7 19:17

이상한 나라의 왼손차별금지법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참 이상한 말이다. 왼손잡이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구태여 법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왼손잡이가 삶에 있어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왼손잡이들을 위한 물품들이 제작되고 있고, 왼손잡이여서 살해위협을 받았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고,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실직을 하거나 왕따를 당했다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는다. 너 왜 왼손잡이야? 당연히 쓸모없는 질문이다. 날 때 왼손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왜 왼손잡이냐고 묻는 것만큼 소모적인 질문도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 학교나 가정에서 아이에게 왜 왼손을 쓰냐며 윽박지르거나 면박을 주고, 심하게는 물리적인 폭행까지 행사해가며 아이에게 오른손 쓰기를 강요한다면 아마 그 가정과 학교는 아동학대와 같은 이름으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니까, 때문에 왼손잡이차별금지법이라는 말은 아주 이상한 말이 되는 것이다. 참 이상한 말이라고, 필요없는 법안이라고 비웃을 수 있는 건 내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통념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는 요즘 세대를 사는 청년층은 어떨까. 그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자라왔을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주변에 여럿은 어릴 때 강제로 왼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았다. 습관적으로 왼손을 사용할 때 마다 혼이 나거나, 행동에 제약을 받는 등 불이익을 당했다. 만약 가정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 운 좋게 학교로 넘어갔더라도 여전히 자유롭게 왼손을 쓰기는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동생은 내내 왼손잡이로 사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무어라 나무라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아주 삐뚤빼뚤한 글씨를 써냈다. 물론 오른손으로 말이다. 공동체 안에서 소수이거나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사소하고 미묘한 시선과 압박들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구태여 누군가 굳이 나무라지 않더라도 어떤 이는 스스로에게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검열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부끄러움이다. 정상성, 대다수에서 벗어나버린 스스로에 대한 정의가 된다. 공동체 안에서 차별과 부끄러움이 함께 자라나는 것이다. 애초에 이렇게 태어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이상한 일이다. 지역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반대집회를 연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이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폭행 사건에 대해 알리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하는 SNS 글에 달린 댓글이 너무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왼손잡이차별금지법 있는 거 봤냐? 이제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통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타의로 오른손, 양손잡이가 된 왼손잡이들이 있다. 편안하게 저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그가 오른손잡이라서 일지도 모른다. 다시 축제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다수가 거리와 같이 개방된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공동체가 개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일이다.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면 단어를 몇 가지 바꿔보자. 성인차별금지법, 전기밥솥차별금지법, 갈색머리차별금지법처럼 단어를 바꿔보고 이만큼이나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이제 저런 질문은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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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30 19:26

풍요속의 빈곤, 지역음악

김은총 이상한계절, 싱어송라이터 전주는 무수히 많은 축제로 1년을 가득 채우는 축제의 도시다. 축제의 도시, 전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많은 축제들이 전주의 곳곳에서 펼쳐진다. 국제영화제, 세계소리축제, 비빔밥축제, 한지문화축제 등 전주하면 떠오르는 축제들부터 가게맥주문화를 소개하는 가맥축제와 책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독서대전에 이르기까지. 이제 전주는 도시를 상징하는 소재들을 발굴하고 축제화하는 것에는 가히 전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의 지역에서 음악하기의 여정도 전주의 축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상한계절의 활동은 작은 카페와 클럽에서 시작되었고, 직접 기획을 통해 정기공연과 미니콘서트의 형태로도 관객들을 만나왔지만 전체 커리어를 돌아보면 월등히 축제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엿한 무대와 공연료를 제공받는 축제 무대는 지역뮤지션이 소규모의 정기공연에서 얻을 수 없는 확실한 보상이 있어서, 음악을 영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적인 축제에 이름을 올리고, 일정한 출연료를 받는 일은 지역뮤지션으로서 나의 음악이 굳건히 지지받는 안정감을 주었고 음악적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축제를 통해 얻는 수익 역시 작업실을 꾸리고, 음향장비를 구매하고, 앨범을 내기까지 자립적 음악생산에 필요한 전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의 사례만 보더라도 지역축제는 한 지역뮤지션의 음악을 지탱하는데 음악적 자존감과 비용적 도움이라는 꽤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축제공연이 양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과는 달리 지역뮤지션으로서 갈수록 빈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기공연으로, 한 뮤지션이 긴 호흡을 갖고 음악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무대다. 전주에 지역음악 정기공연의 생태계가 어엿하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몇 안 되는 소수의 공간이라도 대관비용의 부담 없이 음향장비와 엔지니어를 갖추고 언제든 관객을 만날 수 있게 준비된 무대는 지속적이고 든든한 활동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점차 줄어드는 유료관객과 비어가는 관객석, 오랜 시간 버팀목이 되어주던 음악전문공연장이 사라지는 현실은 빙하가 녹는 과정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하는 북극곰이 된 기분이다. 물론 동물원에서도 북극곰은 살아 갈수 있겠지만 본디 살아온 북극의 빙하에 비할 수 없듯이, 이젠 더 이상 정기공연에서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자작곡을 풀어내거나, 가까이 나누는 교감을 통해 충성도 높은 팬들을 얻는 경험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불러온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탁월한 음악이나 마케팅을 통해 강력한 티켓파워를 갖지 못한 지역뮤지션의 책임도 있겠지만, 자기 음악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정기공연 무대와 연계 홍보 채널의 부족에서 근본적인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음악의 산파역할을 감당할 공간과 정기공연, 그리고 홍보채널이 없다면 지역에서 새로이 음악하려는 이들은 탄생하기 어렵고, 지역음악은 계속해서 정체되고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전주가 풍요로운 축제의 도시가 되어가는 동안 축제의 한편엔 늘 지역뮤지션이 있었다. 하지만 지역뮤지션이 어떻게 음악활동을 시작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고 빈곤했다. 이제라도 지역뮤지션의 등용문이자 요람 역할을 해주는 정기공연 무대를 위해 근본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다. 그랬을 때 경쟁력 있는 지역음악은 탄생할 수 있고, 질적으로도 더욱 풍성한 축제의 도시 전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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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택수
  • 2018.09.16 19:18

살림, 일상에서 상대를 염두에 두는 것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 조합원 살림은 생활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공간을 만들면, 공간을 유지관리하기 위해서 살림을 해야만 한다. 살림에 며칠만 손을 놓게 되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공간이 혐오시설로 변모한다. 이미 쌓여버린 식기들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기대감보다는 설거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게 한다. 오랜 시간 방치한 쓰레기들은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나 혐오와 불쾌감을 준다. 막힌 배수구와 곰팡이가 핀 화장실은 들어가면서 무심코 욕까지 나온다. 요리하고 싶은 주방과 정돈된 살림살이 나의 청결을 책임지는 화장실은 살림이라는 책임을 완수해야만 받을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살림의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림을 기피한다.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살림을 해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주부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도시에서는 청소부가 해야 하는 일처럼 여기고, 공유하는 공간이 어질러지면 책임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불평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 공간을 사용하는 누구나가 마땅히 누리고 있지만, 책임은 일부에게 있는 일. 일상에서 살림은 기피되고 전가되어 누군가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 살림을 대신 해주는데 고마워하기 보다는, 상대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느낄 때 상대를 평가한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그에 걸맞은 대가와 감사함이 없다면 올바른 공동체라 할 수 있을까? 공유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에서 살림을 나누는 일은 가장 큰 미션이다. 일단 일을 나누기 이전에 공간의 살림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시작된다. 각자 살면서 살림의 이해 정도가 다양하고 지금 사는 공간에 대해 생소하다. 해야 할 살림이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토론한다. 각자 집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구성원들이라 그런지, 살림을 잘하기 위한 토론 보다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찾고 방식을 정한다. 그렇게 살림을 통해 상태가 유지된다. 적절한 상태의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 나는 일상에서 상대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설거지해서 건조대에 놓인 식기를 다음 식사 전에 마른행주를 사용해 닦아서 정리해 놓는 것은 다음 사용자가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과, 정리를 상대에게 미루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주요 공유공간인 거실과 부엌을 주로 쓸고 닦는 것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청결에서 오는 쾌적함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다. 공동체에서의 살림은 서로 간 대화도 중요하다. 서로의 생활 패턴과 욕구를 확인하고 적절한 협의를 통해 살림의 정도를 정한다. 늦은 밤 빨래를 널어 놓으려 2층에 올라가는 것은 2층 식구들을 놀라게 한다.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은 청결을 위해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 다른 이의 휴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화하고 협의하지 않는 살림은, 상대에 대한 배려고 했을지라도 상대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달팽이집 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조금씩 배워 나가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살림을 통해 일상에서 함께 사는 법을 익히고 있다. 앞으로도 공동체를 위해 살림이라는 미션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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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9 19:03

한 집에 사는 사람들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결혼 하고 싶어. 이 말을 하면서 친구 A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어떤 결혼? 사회적 결혼? 제도적 결혼? 참 아이러니 한 대답이다. B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이 눈치없는 사람아. 너랑 결혼 하고 싶다잖아. 친구들은 B에게 귀여운 면박을 줬다. 이 이상한 대화는 사실 B가 고민하고 있던 가장 큰 문제였다. A와 B는 퀴어 커플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이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대화를 듣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B에게 결혼과 가족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에게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리는 결혼과 가족은 B의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 결혼에 성별이 정해져있다는 뜻은 사실 자격과도 같다. 결혼한 남녀에게는 제도적으로 다양한 권한과 혜택이 주어진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지만 결혼제도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아마 어느 이성애자 커플도 파트너의 결혼하고 싶다는 말에 사회적 결혼인지, 제도적 결혼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결혼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 하는 결혼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나라라도 가서 진짜 법적으로 결혼을 하자는 거야? 나에게 가족은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 사람들이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적어도 같은 거주지 안에 묶여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1인 가구나 공동체 생활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에 가족에 대한 재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룸메이트라고 부르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산 시간보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친구와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지난동안 내가 본가에 다시 들어가 살았던 시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관계등록부라는 끈끈한 서류로 본가에 있는 가족들과 묶여있다.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에도 가족으로서, 보호자로서의 권한이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타지에서 함께 살고 있는 친구에게는 어떤 권한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나와 저녁을 같이 먹고, 출근을 함께 하고, 월세를 나눠 내는 것 말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가족이 아니고, 법이 규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이 아니라면 보호자로서의 권한 행사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상시에는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얼마나 오래 함께 세월을 보냈는가보다 서류상으로 가족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1인 가구와 동거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모두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동반자등록법, 시민결합제도, 생활동반자법 등등 각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대안가족 제도가 존재한다. 제도 주변부의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마땅히 제도 주변 혹은 밖의 사람들도 제도의 수혜를 누려야만 한다. 바뀐 생활 방식에는 역시 알맞은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가족을 자격 없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그 고민의 출발선은 같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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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2 19:29

동네책방 분투기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책방을 하는 사람이 왜 책방을 잘 몰라? 지인의 물음에 할 말이 없어졌다. 매일 같이 책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주말은 조금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도 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책을 파는데 왜 멀리까지 가서 사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명 같았다. 그렇게 4개월 동안 책방 직원이 직업이요, 책방 손님이 취미인 생활이 반복되었다. 요리로 치자면 셰프가 치킨을 시켜먹는 것과 같다랄까? 물론 신분은 속이고 책방들을 구경했다. 북스포즈를 열 때만 해도 전주에 동네책방이라는 곳이 많이 없었다. 가장 많이 받은 문의가 서점인데 참고서는 왜 안 팔아요?라는?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네마다 제법 멋진 동네책방이 생겨났고 동네책방이라는 문화공간이 사람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이런 소규모 책방들이 동네에 자리를 잡을수록 전주라는 도시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매체에서는 동네책방의 새로운 시도, 재기 발랄한 실험정신 등 타이틀을 붙여주고 있다. 책방 손님의 입장에서는 가슴 벅찬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책방 직원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픈 일이기도 하다. 동네책방들이 생존을 위해 정말 갖은 노력과 시간을 쥐어짜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동네책방은 책으로 수익이 나는 공간이 아니다. 유통상의 문제 때문에 책을 사더라도 책방에 돌아가는 수익은 적다. 또한 출판사와 직거래가 아니면 판매량이 아닌 보유하고 있는 책의 양으로 매달 금액이 나간다. 책을 팔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책들에 대한 보관료를 내야 하니까 문제고. 책을 팔더라도 빈자리에 책을 다시 채워야 하니까 똑같은 돈이 나간다. 계륵이다. 그래서 많은 동네책방들이 책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를 만든다. 강연회, 전시회, 독서모임, 심야책방 등 사람들과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책방지기는 본인의 취향과 공간, 그리고 모임을 제공하고, 책방 손님은 느슨한 소속감을 얻는다. 다행히도 출판사와 지자체 등에서 이런 활동을 지원해주고 있다. 다만 대부분 섭외비, 음료와 비품 값 정도라 책방지기 스스로의 임금은 다른 곳에서 벌어야 한다. 결국 책방지기들이 수익은 다른 곳에서 벌어야 한다. 투잡인 것이다. 동네책방이 많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많이 사라지는 것은 이런 요인이 크다. 겉으로 보이는 책방을 꾸며놓은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곳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크다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일 것이다. 물론 어떤 가게나 문화가 정착되는 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기 마련이다. 이제는 동네책방의 시대라며 열매를 보여주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 또한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든다. 동네책방의 수는 크게 늘었지만, 독서율이나 출판시장은 런닝머신 위를 걷고 있다. 결국 어느 정도 정해진 인구들이 새로운 동네책방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더욱 새롭고, 독특한 취향을 위해 책방을 꾸미는 사이 우리가 말하는 동네는 어디로 간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이런 숙제를 풀어나가는 동네책방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 때 지역에서 가장 독특해 보였던 동네책방들이 이제는 관광객보다 주민들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유행은 일시적이지만 생활은 영원하다. 동네책방의 갈 길은 아직도 멀었지만, 묵묵히 걸어나가는 책방지기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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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6 18:12

지역음악 자급자족(自給自足)

지역음악 자급자족. 최근 몇 년 동안 이상한계절의 활동기치로 내걸었던 말이다. 공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마지막 곡 전주에 가면을 앞두고 지역음악 자급자족을 말할 때면 관객석에서 몇몇 실소가 터지곤 한다. 고도의 분업화시대에 자급자족이라니 게다가 한창 달콤따듯한 사랑 노래를 부르다 웬 정치적인 느낌의 언사란 말인가? 그 낡고 오랜 느낌의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왜 그 말이 거기서 나와?라는 식의 반응을 자아내곤 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어떤 노래를 향해 위와 비슷하게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 가수 배일호가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신토불이를 부르던 그 순간, 어린 나에게도 꽤나 낯설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사랑 노래 일색의 무대 속에서 신토불이는 특별했다.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이며,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신토불이의 정신이 그 당시 농촌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그들의 농업현장에서 환영받았는지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이뤄져왔던 일이지만, 이제 자급자족은 구시대에나 가능한 구호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급격히 변화한 사회속에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공급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 신토불이가 쇠락해가는 농촌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지방소멸시대의 지역에 사는 우리에게도 지역살이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다매체다채널의 환경 속에 다양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같지만, 단적으로 음악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특정 거대음원차트의 영향력 아래 많이 재생되는 혹은 많은 이들이 듣는다고 여겨지는 음악을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소비한다. 능동적으로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소비하고 싶은지 알고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 저마다 개별적인 취향을 잃고 강요된 취향 속에 부유한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듣는가 하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확장되어, 각자 개개인의 필요에 의한 문화소비가 아니라 산업이 형성한 특정한 유행을 집착하듯 쫓게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특정한 문화와 정신만이 주류라고 취급하게 하고, 우리의 개성과 정체성 그리고 개별적 삶의 영역을 상대적으로 하등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청년세대의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찾는다. 개개인의 자아가 다양한 기준과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속에서는 그 누구도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만족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나다운 것, 더 내게 필요한 것을 찾고, 더 다양하게 욕망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다양한 욕구를 채우는 일 앞에서야 나는 비로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급자족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다. 지역음악 자급자족은 지역에서 직접 음악을 만들어 지역민과 더불어 나누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일깨우는 것. 그로써 지역을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하는 꿈이 담겨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게 다양한 나의 필요를 드러내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건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지역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치, 이제는 우리가 직접 공급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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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9 21:41

우리는 일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 김창하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원 최근 친한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쌍둥이 남매여서 또 친한 동네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문상을 또래가 많이 오게 되었다. 청년들과 활동을 자주 해서 그런지 나이를 잊고 지냈는데,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보니 내가 이정도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실감도 했다. 뭐 그런 마음보다는 활동 위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지냈던 나로서 거의 8~9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라 반가움이 무척 컸다. 둘째 날 오기로 약속한 친구들과 달리 첫째 날 혼자 와서 그런지,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런지 상을 당한 친구가 문상을 온 나를 챙기며,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잘 지냈는지 묻는다. 먼저 도착해서 상차림을 도와주는 친구들과는 틈틈이, 8~9년전 생일파티 때 같이 재밌게 지냈던 추억, 서울에서 오순도순 지냈던 이야기, 지금 사는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하며 문득, 지금보다 단단하지 못했던 20대 시절, 민주주의니, 사회활동이니 몰랐던 그 시절, 나를 지켜줬던 것들은 정치, 종교, 공동체, 복지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저 지금 만난 친구들이 주었던 위안, 격려, 대화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었다. 마치 식물의 생장에 걸 맞는 환경이 필요하듯이 그 시절 나에게 걸 맞는 환경을 친구들이 제공해 준 셈이다. 서른 여섯이란 나이에 비로소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기쁘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지금의 사회 활동을 고민하게도 되었다. 30대 후반으로 가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 말고, 지금 20대인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지금을 있게 해준 것이 어린 시절 또래가 준 소소것들 이듯이, 지금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도 소소한 것이 아닐까? 내가 그 시절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결핍된 것이 무엇일까? 정치, 사회, 경제는 바라봐야 하는 가치이지,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평소보다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제법 있다. 지금의 길은 가자니 너무 답답하고,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고민에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이런 것 해보는 것 어때?등 상대의 경험이 쌓이지 않음을 지적하거나, 조금 더 경험이 있다는 착각에 다른 권유를 하는 나를 바라 본다. 그 친구들한테 필요한 것은 그런 경험적 지식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불안과 결핍된 환경을 채워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식물이 환경만 갖추어지면 알아서 원하는 대로 잘 자라듯이 그 친구들을 불안하게 하는 환경만 개선되면 알아서 꿈을 찾고 키워 나가지 않을까?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 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나 싶다. 사회는 청년이 어떤 환경에 쳐했는지도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고, 저변에 깔린 환경을 바라보려면 이러한 일상의 내용들을 쌓여야만 한다. 일상에서 겪는 공통된 문제가 세대의 문제일 것이고, 그 세대를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아울러, 상대가 처한 환경을 주시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삶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 상대가 가진 가치는 삶의 지향점이지 삶이 아니다. 삶을 보려면 상대의 일상을 참조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을 참조해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서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린 지금 서로의 일상을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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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2 17:26

기억, 기록 그리고 창작에 대하여

▲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6월 27일 개봉한 영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가장 큰 이야기이며,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기도 한 이야기다. 혹자에게는 지겨워져버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버거워 좌시하지 못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화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의 이야기 방식이다. 흔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한다. 이전의 역사, 실화 영화들은 그런 이야기 전개 방식을 충실히 답습해왔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오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생생하게 과거를 기억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는 여타의 공통점을 제하더라도 당사자들의 현재를 담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학부생 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해 오늘을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역사다. 결국 우리는 과거로부터 와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뜻이다. 과거로부터 배워서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는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 쏟아졌던 다른 역사, 실화 영화를 되짚어보자. 최대한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당시의 상황과 실제를 섞는다. 그곳에 한 방울씩 그런 상황에 처했을 법한 당사자에게 감정을 섞고 약간의 관계를 섞어 넣는다.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상황을 만들어가는 곳에 역사적 사실은 남지만 오늘은 남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대체로 끔찍해하고, 힘들어한다.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한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짐하지만 대체로 분노에서 끝이 난다. 오늘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생각은 지속되기 어렵다. 영화 속의 장면이 되풀이되느라 괴로움의 연속일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쩌면 그 다음의 상상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창작자는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 더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비극적인 과거의 상황을 여러 번 다시 설명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하는 편이 나을 테다. 피해 당사자가 피해 사실에 대해서 본인이 증언하는 것과 제 3자가 그날의 모습을 세세하게 재연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나치게 정밀하게 반복되는 창작물은 다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창작자는 기억해야만 한다. 창작자는 기록자가 아니다. 창작자는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오늘을 보내고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못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같을 수 없다. 당시의 공통된 기억을 가졌더라도 각자 현재를 살고 있는 모습은 다르다. 오늘의 사람들을 두고 과거의 상황만을 반복하는 것은 창작이 될 수 없다. 실화를 다루는 창작자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 실화를 다루되, 2차 가해는 하지 않는다. 2차 가해나 지나치게 정밀한 재연 없이도 훌륭한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예시가 바로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다. 기억은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은 2차 창작이 된다. 다만 창작이 기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억을 선명히 되풀이하기 위한 창작은 창작과 예술로서의 기능을 잃게 될 것이다. 창작과 예술은 오늘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방식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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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5 19:43

독서를 죄책감으로 하는 이에게

▲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내가 동화책을 읽었을 무렵이다. 아버지는 삼국지 전권 세트를 사주며 말했다. 삼국지를 3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하지 마라. 덕분에 수년간 아버지와 대화 다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삼국지를 3번 읽게 되었다. 문제는 그 사이 아버지는 삼국지를 더 읽었다는 것이다. 삼국지를 5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을 섞지 말거라. 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한국에서 독서량이란 그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다. 하지만 이런 외침도 독서량 통계라는 팩트 앞에서는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명이 연간 평균 8.3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독서자만을 대상으로 하면 평균 13.8권이다. 그리고 항상 이 통계의 말미에는 지난해에 비해 독서량이 너무 떨어졌다,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설명이 붙곤 한다. 그런데 독서량이 적은 게 나쁜가? 아니 애초에 우리의 독서량은 적은 것인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세대다.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보면 1250년에는 잉글랜드의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도 책을 3권(성서, 기도서, 성인의 전기)을 가진 경우는 비교적 행운에 속했다며 말한다. 우리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나 단테보다 이미 더 많은 책을 읽었음을 간과하고 있다.라고 밝힌다. 우리는 이미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위인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 이 글을 읽을 정도의 독자라면 소크라테스! 넌 날 따라오려면 멀었다라고 당당히 외쳐도 된다(아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독서량 통계는 종이 책만을 포함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자책, 만화, 잡지, 학습지, 교과서 등이 빠져있다. 또한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많은 정보는 어떠한가? 분명 쓸모라고는 눈곱만큼?찾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가끔 책 보다 괜찮은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나는 책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왜 책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북스포즈의 심야책방에서는 종이책이 아닌 만화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나중 탁구부라는 엽기 만화였다. 이 책을 인생 만화로 꼽은 분은 탁구대를 훔쳐간 할아버지와 되찾으려는 아이들 사이에서 말다툼하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누가 탁구대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느냐로 나름의 논리대결을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만화를 소개해준 분은 그 장면에서 늙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웃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를 생각해지면 독서가 피로해진다. 적게 읽어도 좋으니 혹은 그것이 책이 아니어도 좋으니 재미있는 것을 찾고 곰곰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단순한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다른 어떤 이들은 껌종이에 쓰인 성분표를 읽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 물론 책을 많이 팔아야 행복한 서점 주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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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9 19:02

이제 서울로 올라가시나요

▲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전주에서 갓 음악을 시작했을 무렵, 만족스럽게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올 때면 어김없이 들었던 말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시나요? 그 생경한 인사 앞에 나는 늘 거짓말을 했다. 네 곧 올라갑니다. 곧 올라가야죠! 지역에서 음악 좀 오래 했다는 선배들에게 물어도 답은 한결 같았다. 지역에서 음악하는 것, 숨겨야 관객들이 더 좋아해, 지역의 ㅈ만 말해도 관객은 너의 노래를 들으려 하지 않을 거야., 지역 냄새나게 굳이 밝힐 필요가 있겠니? 타당한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지역 팀이라고 밝히는 순간 관객들의 긴장은 풀어지고 흥미를 잃은 듯한 태도를 보였으니까. 지역의 인디뮤지션. 그 자체만으로 지역에서 낯선 존재인 우리는 최대한 서울에서 온 인디뮤지션인 척 해야 했다. 그게 공연을 끝까지 집중도 있게 이어가는 데 유리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인디뮤지션, 그 중에서도 지역뮤지션에겐 어쩌면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자못 가슴 한편이 답답한 건 시간이 흘러도 해소되지 않았다. 지역과 거리두기는 합리적인 공연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풀어헤치려 할수록 더 깊게 조여 왔다. 내 안에는 왜 이렇게 숨겨야만 하지?, 나는 지역이 부끄러운가?, 내 음악이 부족해서인가? 등의 괴로운 질문들로 이어졌고, 결국 이곳에서 열심히 노력해 서울로 올라가야지, 이 곳은 나의 진짜 무대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내게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했다. 그때의 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않았고, 지역을 연습무대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다. 만족스러운 무대 뒤에 이어지는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묘하게 으쓱해했고, 지역에 있어선 안 될 것이 있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들을 즐겼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면서 지역 냄새를 숨기고 지역과 거리를 둘수록 나의 음악적 가치와 자신감이 높아지는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금방 공허해졌다. 나는 어디까지나 서울로 가지 못한 지역뮤지션이고, 지역에 남겨진 패배자일 뿐이었다. 지역뮤지션으로 지닌 낮은 자존감은 지역과 거리두기만으로는 결코 높아지지 않았다. 소위 홍대에서 잘나간다는 인디뮤지션의 무대와 그들이 누리는 인기를 볼 때면 한없이 작아졌다. 그럴 때마다 더 노력해야지, 더 좋은 음악 만들어야지 라는 원론적인 다짐을 반복하지만, 이미 나는 처음부터 실패한 채로 아등바등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지역에서의 삶은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이는 슬프게도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또래의 지역청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지역청년을 만나기 쉽지 않다. 인 서울하기 위해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는 입시생, 대기업 입사를 목적으로 취업뽀개기에 몰두하는 취준생, 고시원을 전전하는 공시생, 취업을 유보한 채 망명한 대학원생의 모습으로 지역에 산다. 그렇게 지역을 등지거나 나의 존재를 지역에서 철저하게 숨겨야만 한다. 이렇듯 잘나고 좋은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 반면에 지역에 남겨진 것들은 모두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의식은 우리 곁에 뿌리 깊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열등하고 부족한 것은 나와 내 지역에 대한 자존감, 지역에 사는 우리 스스로를 가치있게 바라보는 자의식이 아닐까? △김은총 싱어송라이터는 2014년 4월 첫 EP(봄)으로 데뷔해 지역음악 르네상스를 기치로 활동 중이며, 최근 싱글 <전주에 가면>, <키스하지 말걸>, 세번째 EP(겨울) 등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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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2 20:03

청년 공유주택, 지역 청년문화의 시작

▲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원 3년전, 서울에서 받고 싶은 교육이 있어 2달 정도 고시원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1인 침대, 책상, 침대발치 위에 걸린 옷장이 빼곡이 들어가는 방 한칸. 오로지 자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공간이 빽빽이 나열되어 있었다. 옆집 사람과 인사조차 소음이 되고, 내 방에서 조금만 소리를 내도 옆방에 불편을 끼치는 그런 곳이었다. 고시원 입구에 다른 사람과 마추칠 때면 괜히 눈을 피하게 되고, 통화를 하는 도중 감정이 격해질 때 혹시 시끄러울까봐 감정조차 참으며 지내게 된다. 이런 고시원 생활 이외에도 현장직 일을 할때 공동합숙생활, 학교 다닐때의 기숙사 생활, 군대 생활 등을 겪으며, 내 한 몸 쉬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알아갔다. 주거란 공간은 소위 처신과 예의를 잘 차려야만 그마나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원룸 주거형태 조차 부실한 공사와 관리로 내 집이 되지 못한다. 부실한 집은 윗층의 문자오는 소리도 들릴 정도이고, 이웃과 소통이 되지 않는 주거는 언제나 이웃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여성의 경우는 내 집이지만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다. 누군가 침입하더라도 나를 보호 할 수 없는 그런 장소이다. 현재 달팽이집 생활에서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는데 있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뭐가 편하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일단 대화의 상대가 또래인 것과 기존 주거형태에서 감내해야하는 역할이 적다는 점은 주거의 심적 부담을 줄여준다. 역할에 대한 심적 부담이 줄면서, 비로소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동기가 마련된다. 이미 살림을 나 이외에 담당하는 집과 다르게, 서로의 선호를 맞춰가며 공용공간을 꾸려나가게 된다. 요즘 냉장고 안은 블록을 쌓는 느낌이 든다. 냉장고 안이란 네모난 공간에 각자의 물건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이 좁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음식취향, 물건을 두는 습관을 확인하고 조율한다. 청소를 언제 할지, 빨래는 언제 널어야 할지, 공용 물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정하며, 주거지 곳곳에 서로에 흔적이 쌓이고, 주거라는 공간이 나에게 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내 공간이 되고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보통 청년의 소비문화를 지적하지만, 정작에 지속적인 문화는 일정한 공간을 두고 쌓인다. 지역에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청년에게는 사용하자마자 증발되는 소비문화 이외에 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팽이집이라는 청년공간을 확보하고 지내면서 지금의 청년 문화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나조차도 이제야 느끼고 있다. 이번에 지역 청년후보의 공약으로 내새웠던 청년정처럼, 청년 공간을 두어야만 그 공간에 지금의 청년의 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가 지역사회에 반영 되어야 청년이 숨 쉴 수 있는 지역이 될 수 있다. 기성세대의 여러 시도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청년이 사회가 자신을 재단한다고 느끼는 점은 청년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이다. 지금의 달팽이집과 같은 공유주거는 주거 안정 이외에도, 청년의 문화 형성과 지역사회 진출을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앞으로도 지역에서 청년들이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청년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여 청년 문화 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역의 청년 문화는 이제 시작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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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5 18:12

투표가 민주주의의 일이라면

▲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여러모로 시끄러운 6월이 지나갔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던 월드컵도 한 몫 했지만, 조금 더 강렬하게 남은 것은 6월 지방선거다. 오늘날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대리자를 선출하고 그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대한민국은 이 개념을 잘 이행하고 있다. 겉보기에 멀쩡했던 양파가 속이 멀쩡하지 못한다면 그건 무슨 이야기일까. 양파의 속을 들여다보려면 양파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보는 수밖에 없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 동안 전주의 남부시장 청년몰에 청소년들이 모였다. 청소년들은 모여 스스로가 교육감 선거에 대한 공약을 내걸고 유세와 선거를 진행했다. 학생 인권 조례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당장 학교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에서는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의 모의투표가 진행됐다. 청소년들이 직접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교육감을 뽑았다. 청소년들은 각자 자신이 바라는 방향의 정책을 시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졌다. 공약을 꼼꼼히 읽고 나에게 맞는 공약을 내건 후보자에게 힘을 실었다. 위와 같은 행사를 진행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지방선거 청소년 모의투표 운동본부 등의 단체가 진보 성향이 두드러지지만 이러한 의견도 수용할 가치가 있다. 이들 모두 미래의 유권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이러한 정치 성향을 따르거나, 이 후보자가 유명해서 한 표를 행사하지는 않았다. 청소년들은 현재 지역구에 살고 있는 당사자이자, 정책 시행의 주체로서 의사를 표현했다. 하교 시 교통편 제공 및 교육 정책 진행에 있어서의 학생 의견 반영 등 실질적인 행정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교육 정책의 주체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청소년들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모의투표의 결과는 실제 선거 결과와 달랐다. 전국의 당선자 중 대구, 대전, 경북, 전남의 4명의 당선자가 청소년들의 모의투표 결과에서는 낙선했다. 유권자와 청소년의 견해가 갈린 것이다. 이와 같이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과 교육정책 안의 당사자의 이해관계에는 괴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당장 정책 시행의 대상자가 되고, 그 정책으로 하여금 입시 정책과 학교 안과 밖에서의 보호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청소년에게야 말로 참정권이 필요하다. 정책시행의 당사자가 자신의 대표자를 뽑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사회는 민주시민을 기를 수도 없고, 민주주의 사회로 성장할 수 없다.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정보 습득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있는 모든 곳에는 늘 정보가 있고 가장 먼저 시험이 되는 대상과 기민하게 반응하는 대상 모두 청소년이다. SNS에 정보가 범람하고 있고, 청소년과 비청소년 모두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학습한다. 청소년은 이전 세대에 비해 다양한 매체에 접근이 용이하며, 새로운 매체는 10대~20대를 타겟팅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전 세대보다 훨씬 기민하게 정보에 반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적어도 교육감과 최소수준의 지방선거의 참정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주체가 대리인마저 뽑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투표가 민주주의의 일이라면 유권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최아현 씨는 전주대에서 역사문화콘텐츠와 한국어문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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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8 19:00

인생을 바꿔주는 책을 믿지 마세요

▲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고백하겠다. 학생 때 가장 싫어하는 공간은 서점이었다. 당시 서점에는 온통 명령하는 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잘팔리는 책의 제목은 꼭 미쳐라로 끝이났다. 공부에 미쳐라. 여행에 미쳐라. 재테크에 미쳐라. 1년만 미쳐라. 100일만 미쳐라. 하루만 미쳐라. 이런책을 보다 보니 조용한 서점에서 환청이 들렸다. 아무래도 뇌가 미쳤나 보다. 아시다시피 청년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대다. 반대로 잘 나가는 책의 성량은 더욱 커지고 다양해졌다. A처럼 일해라, B처럼 공부해라, C처럼 놀아라식으로 롤모델을 붙여주더니 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멘토나 셀럽이 직접 등장해서 외친다. 하고 싶은 대로해라,하고싶은 대로 말하라. 요즘에는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니 괜찮다라는 위로가 되었고 이제는 정말 끝물인 것인지 퇴사해라, 퇴사하고, 퇴사해라란다. 제발 그만해라.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자기계발서를 신봉하는세대다. 당장 저런 책이 싫다고 밝힌 나조차 다른 이들의 시험후기, 합격후기, 취업후기를 읽으며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렇다. 나는 자기계발은 싫지만 동기부여, 자아성형, 멘탈방어를 말하는 텍스트를 쫓고 있었다. 하는 말이야 똑같았다. 미쳐라. 누구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실패해도 괜찮다. 퇴사해라. 송민수 작가의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라는 책도 이런 물음에서 나왔다. 저자는 자기계발서만 100여 권을 읽었을 정도로 충성도 높은 독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허탈함을 느꼈고, 시중의 자기계발서를 유형별로 구분하고 좋은 점과 위험한 점을 구분한다. 한 가지 흠이라면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책인데, 자기계발서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마도 진성 자기계발서 덕후였기에 이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독자에게 미쳐라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자기계발서는 제법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읽힌다는 것이 문제다. 마치 젊은이들이 취업문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의 역량을 깨우지 못했기 때문으로 굳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너무 높아진 문턱을 일단 고치는 것이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외국어부터 각종 자격증까지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다음에 문턱을 넘어와 엑셀에 숫자를 채우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나는 책이 읽히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독자의 인생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책이 있다면 책장을 덮기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세대는 이런 책들 사이에 자신의 자존심과 자아를 책갈피처럼 꽂는 일이 많다. 그럴 바에는 정신승리를 하는 게 낫다. 적어도 내가 지드래곤보다 나은 점은 있겠지. 내가 글씨는 더 잘 쓰지 않을까? 밥은 내가 더 복스럽게 먹겠지? 적어도 나무젓가락은 내가 더 잘 쪼개겠지.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싶으면 그냥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비교를 그만두면 된다. 내 위치를 인정하고 마음 편하게 내가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월드컵을 지켜보는 관중이 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관중석에 있는 것은 책이고 경기를 뛰는 것은 당신이다. 책은 그냥 이것저것 당신이 잘 뛰라고 응원과 훈수를 외치는것이다. 그 와중에 훌륭한 책은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패스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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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1 18:03

우리는 이렇게 달팽이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원 처음 3명으로 시작되었던 우리의 주거살이가 이제 6명이 함께 하고 있다. 이제는 집이 비어있는 시간보다 누군가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고, 늦은 밤 귀가 길에도 누군가의 방의 불빛이 나를 반긴다. 내방은 출입문 옆, 자주 입구에서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는 친구가 나를 보고 빼꼼이 라 부르기도 한다. 이제서야 달팽이집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이 늘어나니, 이전에 집안 청소만 하고 엄두를 못 내었던 일들이 진행이 된다. 새로 이사 온 부지런한 친구는 이사 온 날 집 곳곳을 청소하고, 너저분했던 책장을 다 정리했다. 한 친구는 오자마자 부엌에 필요한 걸 채워 나가고, 옥상에 빨래대를 설치한다. 먼지뿐인 빈방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춘 물건들로 채워지고, 집의 이곳저곳이 여럿의 삶의 흔적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식구가 많으니 저녁식사 때 북적댄다. 넓은 부엌에서 둘이서 요리를 하면, 일부는 테이블 세팅을 한다. 식사 후 다른 이가 설거지를 한다. 자취를 오래했던 친구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했던 적이 오랜만이라 하고, 설거지와 뒤처리를 자신이 하지 않는다는 것에 연신 고마워했다. 식구들이 대신 설거지를 척척 해준다며 남에게 자랑까지 한다고 한다. 한 친구가 고기를 사오는 날 저녁은 회식자리가 마련된 것 마냥 더욱 화기애애하다 집안 정리가 잘 되니 집 밖의 것들에도 눈이 간다. 마당의 포도나무는 벌써 포도송이 열러 곧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시들시들 타들어 가는 명자나무는 물을 더 열심히 줘야 하는지 벌써 분갈이를 해줘야 할지 고민이다. 마당 블록 틈새의 잡초가 무성히 자라서 주말에는 식구들과 잡초 뽑는 일정을 잡아 두었다. 옥상은 벌써 한 친구가 간단히 술한잔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 놨다. 빨랫줄에 큰 이불을 널 때는 왠지 뿌듯함 마음 든다. 집 바로 앞 정자에 쉬는 동네 주민과 인사를 며칠째 나누니, 인사도 정감이 있다. 이전에 집을 보고 간 목수님(목사님이기도 하다)이 원목 테이블을 만들어 주기로 하여, 공방에서 식구들과 함께 테이블을 만들고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서툰 초보자의 솜씨로 마감이 삐뚤기도 하지만,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벌써 애정이 생긴다. 넓은 테이블에서 여러 사람들과 놀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한다. 반상회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할 때, 각자가 생각하는 주거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러 의견들 속에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조율들을 해 나간다. 물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부터, 청소를 어떻게 할지, 생활용품을 어떻게 나눠 쓸지, 새로운 식구를 어떻게 받아 들 일 것인지를 이야기 했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정해야만 같이 살아 갈 수 있고, 각자가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이 집의 주인으로 지낼 수 있다. 집의 삶이 익숙해지고 사는 사람이 더 담아낼 수 있는 품이 생기면, 자연스레 주변도 기웃거리고, 결국에는 지역에서, 청년인 나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조율해 나갈 것이다. 달팽이집에 사는 모습 자체가 지역에 청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함께 살아가려 하는 것이 공동체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렇게 달팽이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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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4 16:39

'하나 그리고 둘'과 이유, 쓸모, 가치를 찾는다는 것

▲ 최진영 독립영화감독 남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쓰인 편지를 양양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낭독한다. 양양은 우연히 얻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그의 삼촌이 왜 뒷모습을 찍냐고 물으면 양양은 삼촌이 뒷모습을 못 보는 것 같아서요 라고 답한다. 아이다운 대답 같지만 사실 꽤나 철학적인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등장 하면괜히 롤랑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가를 죽음의 대리인이라고 표현한 말까지 떠오른다. 양양의 행동은 세계의 절반을 타자의 시각으로 인식해 도출한 현상을 다시 재인식하며 삶을 완성하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대만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작품이다. 2000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18년 만에 한국에서 재개봉을 한다. 에드워드 양은 영화가 시대를 말하는 방법에 있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았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감독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양 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깨끗하게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이미 수십 번 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기 위해 경주 출장을 가기 전 부산영화제에 들려 영화를 본 후 부산에서 택시를 타고 경주까지 갔던 적도 있다. 아쉽게도 에드워드 양은 십 여년 전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 내게 왜 영화를 하고 싶어 하냐고 묻는 다면 아마 양양과 같은 대답을 내놓진 못할 것 같다. 온갖 미사여구와 수식을 동원하여 탄복할 만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 시간을 더 달라고나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 그리고 둘>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나는 왜 돈도 못 벌고 시간만 어영부영 보내고 있으면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할까 조용히 생각해봤다. 십대 때는 오로지 영화가 좋았을 뿐이고, 이십대에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삼십대인 지금은. 이렇게 돈도 못 벌고 시간만 어영부영 보냈던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너무 시시하지만 솔직한 심정이라 반박을 못하겠다. 할머니의 죽음 직전까지 아무 말도 못했던 양양은 장례식장에서 편지로 구구절절하게 말을 한다. 차마 하지 못했으나 결국은 뱉고야 마는, 그리고 그 과정까지 카메라라는 도구로 타자의 세계를 인식하는 양양이라는 주체의 성장을 화면 너머 바라보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는 타자를 위해서인가. 아직 답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아가기 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 일을 해 나갈 듯 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 할 때쯤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양양과 같이 순수하게 대답했으면 한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나의 쓸모, 누군가와 함께 노동하며 살아갈 가치, 이 모든 것들을 한큐에 설명할 수 있는 답이면 참 좋겠다. 1년 동안 1650자라는 글자에 나의 사고와 어떤 지침을 담기엔 턱없이 모자랐지만 매번 쓰면서 어떤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만다. 그 가치를 찾아가는 것 또한 위에서 말한 영화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과 함께 해야 할 듯 하다. 모든 쓸모와 가치를 위하여 글을 읽으신 독자분들도 각자의 이유를 찾으셨으면 한다. 좋은 지면을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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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7 19:39

우리가 만드는 서점

▲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날씨가 1도 화상이다. 전북대학교 앞 동네책방 북스포즈는 지난해보다 이르게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덕분에 이곳은 집과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의 오아시스가 된 모양이다. 더위가 책방의 호객행위를 하다니. 한동안 꼬리를 내렸던 책방지기의 입에는 웃음꽃이 폈다. 그날도 책방의 문을 열기 무섭게 학생들이 서점을 가득 채웠다. 하나, 둘 여덟 명이 오픈하기도 전에 문 앞에 모여있었다. 줄을 서시오! 허준에 나오는 임현식의 기분이 이랬을까? 북스포즈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구경하는 이들을 두고 나는 공상에 빠졌다. 좋아 이대로라면 곧 2호점을 내겠어 나는 서점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그러더니 단체석에 함께 앉아서 나를 부르는 것이다. 사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성공에 부푼 꿈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 설마 이거 초여름에 옥장판이라도 팔러 온 거 아니야? 현실은 언제나 나의 기대와 불안 중간에 붕 떠 있는 법이다. 다행히 이들의 정체는 전북대학교 학생이었다. 창의적 문제 해결이라는 수업을 함께 듣는데 지역기업이나 가게의 고민을 듣고 창의적인 멘토링을 하는 것이 수업 내용이라고 한다. 이들의 모습이 제법 진지해서 한 가지 고민을 던졌다. 사람들이 책과 서점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대학생들과 만남이 이어졌다. 나는 나대로 북스포즈가 왜 생겼는지 어떤 방법으로 운영이 되는지 알려주었고, 학생들은 손님 입장에서 느끼는 책과 책방에 대한 프리뷰를 해주었다. 더 나아가 가끔 북스포즈에 첩자(?)를 보내서 어떤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할지를 조사를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매주 들고 오는 여러 아이디어를 가지고 책장을 새로 구성하기도 했다. 진짜 대학생들이 자기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서점을 꾸몄다. 서점의 매대에 책을 배치하는 것은 집에서 서재를 꾸미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결국 우리가 찾은 답은 북스포즈 구석구석에 손님들의 손때를 묻히는 것이었다. 이름도 붙였다 우리가 만드는 서점. 많은 동네책방이 사장님의 취향과 기획능력으로 운영이 되는 것과는 다른 길이다. 하지만 북스포즈가 처음 만들어지며 세웠던 목표는 언제나 서점이 아닌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물론 우리 기획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사행시 대회를 열었는데 참가율이 저조했다. 제시어가 북스포즈였기 때문이다.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이 기획은 심야책방에서 다시 사용했다. 밤새 책을 읽는 모임 중에 글을 써달라 한 것이다. 다행히 모두 자신의 생각을 짧은 글로 표현했다. 여러 솔직한 글귀가 나왔고 이것을 책갈피로 만들었다. 심야책방을 찾았던 손님 중 한 분이 말했다. 북스포즈란 공간이 주는 느슨한 연결이 좋았다.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만으로도 손님들과 서점 사이에 연대감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이런 소감을 들은 것만으로도 나름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학기가 끝나가며 대학생들과의 만남도 끝났다. 다시 서점과 손님의 입장으로 돌아가려니 시원섭섭하다. 전문가 입장의 조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들의 천진난만한 열정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에너지는 북스포즈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의 많은 상점과 기업들에 젊은 대학생들의 활동이 이어지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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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0 18:15

"농촌문화를 이어가는 청년농부입니다"

▲ 신성원 또바기농장 대표순창 더불어농부 회장 하루일과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하는게 음악 틀기다. 요즘 여름을 맞이해서 아이돌의 신나는 노래들이 줄기차게 나온다. 자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좋다 역시 노래는 신나는 아이돌 노래지. 한동안 한참을 듣다가 갑자기 지난주 공연에서 들었던 대금 연주가 생각이 난다. 그 연주곡 참 좋았는데 다시 듣고 싶다. 그런 비슷한 음악이라도 찾아서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에 우리 국악공연 연주곡을 찾아 틀어 놓고 일을 시작했다. 뭔지 모를 평온함이 든다. 일의 속도도 달라졌다 가요를 틀어 놓고 농삿일을 하면 몸이 빨리 움직이긴 하지만 꼼꼼함은 없다. 하지만 우리 전통악기 연주곡을 들으면서 일을 하면 차분해지면서 내가 안 보던 곳까지 보는 꼼꼼함이 생긴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우리 전통음악을 좋아하나? 지금은 전자기기로 음악을 듣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밭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를 바로 옆에서 듣곤 했는데. 그 노동요라는게 정말 우리 농촌음악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누가 부르지도 않고 이어가는 사람이 없어 찾아보기도 힘들다 노동요만 그럴까?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품앗이, 두레, 기우제, 기청제, 쥐불놀이, 샛거리, 당산제 등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왜 이렇게 돼버린 것일까? 왜 농촌에서 농촌문화를 보기가 힘들까? 아마 시작은 아주 예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농부라면 대단하고 정말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못 사는 못 배운 사람이 하는게 농사고 농사지어서는 돈 못 번다고 도시로 가야한다고 하시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본 자식들은 당연해 도시로 떠나고 시골보단 재미있는 도시에서 살려고 했다.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도 없고 돌아오는 후손도 없고 농사로 얻는 소득이 많지가 않다보니 자연스레 농사를 포기하면서 문화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 이제 사라져가는 농촌문화는 누가 지킬것인가라는 주제와 과제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야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농사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서 농사란 우리 문화이자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농사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면서 많은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을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과 지역을 보며 자신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크게 본다면 청년과 지역주민들과의 상생 찾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순창 청년들이 모여 시작한 품앗이와 샛거리 문화. 이게 즐겁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일도 하고 샛거리도 먹으면서 일을 하니 왜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살아 왔는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이런 우리 농촌문화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우리 농산물을 알리는 일도 같이 하고 있는데, 우리 농산물을 사람들이 알아줄 때 제일 기분이 좋고 농부로서 자부심이 생긴다. 이는 우리가 농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농촌문화활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난 우리 농산물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바로 농촌문화지킴이입니다. 한평생 농촌을 지켜오신 부모님 뒤를 이어 나도 농촌에서 살면서 농촌문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부끄럽지 않다. 난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누군가 나에게 뭐하는 분이세요 물어보면 난 항상 이렇게 말한다. 농촌문화를 이어가는 청년농부 신성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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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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