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의 '빛과 그림자'] (상)왜 필요한가 - '소득 크레바스' 최대 5년
인생 100세, 정년 60세. 초고령사회 준비 안 된 노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를 떠나 오랫동안 '돈 걱정'에 짓눌리는 삶은 서글프다. 사람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나이, 일을 해야만 하는 나이는 몇 세까지일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를 '생산연령(Productive age)'이라 하는데, 보통 15~64세를 '생산연령인구'로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실질 은퇴 연령'(Effective age of labour market exit)은 남자 65.7세, 여자 64.9세다. 70세까지는 돈벌이를 해야 그나마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퇴직하도록 정해져 있는 나이인 법정 정년(Retirement age)은 60세다. 지난 2016년부터 의무화가 시행됐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 대법원이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정년 연장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대다수 근로자가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안정된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 소득 공백)'에 노출되면서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산 넘어 산이다. 임금체계 개편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노사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정년 연장'이 왜 필요하고 어려운지 또 대안은 무엇일지 등을 세 차례 짚어본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8월 "60세 정년 이후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까지 소득 공백으로 인한 노후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최소 2033년까지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과 연계해야 한다"며 국민청원을 냈다. 법정 정년을 연금받는 나이와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도 65세 정년 연장이 필요한 이유로 △소득 크레바스 △노인빈곤 문제와 노후 준비 부족 등을 들었다. 한걸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수명 증가 등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와 상관관계가 높아 보인다. 초저출산·초고령사회, 부족해지는 노동력지속적인 초저출산 현상으로 우리나라 인구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역피라미드형으로 급변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바뀌는 것인데,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에 따른 지역소멸 위기도 심각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인구상황판'을 살펴보면, 2024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175만 1065명이다. 1960년 2501만 2374명에서 두 배 넘게 늘었다. 2072년에는 3622만 2293명으로 올해보다 1552만 8772명이나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인구구조인데 1960년 중위연령 19.0세 '피라미드형'에서 2024년 중위연령 46.1세 '다이아몬드형'으로, 2072년에는 중위연령 63.4세 '역피라미드형'에 가깝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전북 인구구조도 역피라미드형으로 가파르게 노령화되고 있다. 2000년 인구 192만 7005명에서 2024년 175만 3608명, 2050년 149만 3464명으로 줄어드는데 중위연령은 각각 33.2세, 50.0세, 62.6세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자 인구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된다. 전북은 지난 2020년 20.6%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올해 전국 고령자 비율은 19.2%인 반면, 전북은 24.4%까지 치솟았다. 역피라미등형 초고령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고령인구가 늘고 생산연령인구는 줄어든다는 점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4년 전국 993만 8235명에서 2050년 1890만 7853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다. 전북 고령인구 상황도 비슷하다. 2024년 42만 8177명에서 2050년에는 69만 8377명으로 늘어난다. 반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국 생산연령인구는 2024년 3632만 7585명에서 2050년 2444만 7839명으로 1000만 명 이상 줄고, 전북 생산연령인구는 2024년 114만 8212명에서 2050년 67만 9752명으로 주저앉는다.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력 부족과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결국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고령자가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거나 재진입할 수 있는 고용 안전망 구축이 필요해졌다. 기대 수명은 느는데⋯44년째 '노인연령, 65세' 몇 세부터 노인일까. 우리나라에서 노인을 정의하는 나이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노인연령은 65세다.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등 24개 노인복지사업도 이 기준을 따른다. 하지만 의료기술 발전과 생활환경 개선 등 여러 이유로 65세를 넘어서도 청년 못지않은 건강하고 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0세의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인 '기대수명(Life expectancy, 0세의 기대여명)'은 늘고 있고,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도 상향 추세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1970년 남자 58.7세, 여자 65.8세였다. 2024년 남자 81.4세·여자 87.1세, 2050년은 남자 86.5세·여자 90.7세로 전망됐다. 이에 따른 고령자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 결과, 고령자들이 생각하는 노인연령 기준은 72.5세였다. 75세 이상이라 응답한 비율도 40.1%나 됐다. 지난해 일본 노화학회와 노인병학회가 공동조사한 '노인의 보행속도와 악력'에 따르면 개인이 늙었다고 인정하는 나이는 70세에서 75세로 올라갔다. 44년째 제자리인 노인연령 기준이 '기대수명의 증가 속도'와 '고령자의 노인연령에 대한 인식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당장 일할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면서 65세 이상 고령인구에 대한 부양비 등 사회적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2022년 연구보고서 '노인연령 상향 조정의 가능성과 기대효과'에 따르면 노인연령을 현재와 같이 65세로 유지할 경우, 2054년 이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부양 부담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할 인구인 총부양비는 2024년 42.5명, 2050년 92.7명이며, 2058년 101.2명으로 100명을 넘어선다. 2058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유소년·고령인구 1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서 "노인연령의 조정 속도가 기대여명의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해 연금 및 노인복지 수급기간이 빠르게 증가했다"며 "노인인구 부양 부담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부터 건강상태 개선속도를 감안해 10년에 1세 정도의 속도로 노인연령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면, 2100년에 노인연령은 73세가 되고 생산연령인구 대비 노인인구의 비율은 60%가 되어 현행 65세 기준 대비 36%p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다만 "노인연령 상향 조정의 폭과 시기는 고령 취약계층의 건강상태 개선속도를 감안해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민간의 기대 형성과 행태 변화 그리고 사회적 제도의 조정기간을 고려해 노인연령 상향 조정 계획을 충분한 기간 사전예고 하고, 노인연령 상향에 따른 정책적 보완사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연령 상향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인 빈곤율 최악⋯국민연금 수령까지 '소득 공백'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층이다. 특히 76세 이상으로 연령대를 좁히면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다. OECD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한국 66세 이상 노인인구 소득 빈곤율은 40.4%로 회원국 중 1위이며, 회원국 평균 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66세부터 75세까지 연령대의 빈곤율은 31.4%, 76세부터는 52.0%나 됐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2022년 시장소득 기준 57.1%, 처분가능소득 기준 38.1%에 이른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가난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도 점점 늦춰진다. 생산연령인구가 줄고 고령인구는 늘면서 국민연금 재정이 말라붙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지급개시연령은 1998년 연금개혁에 따라 2013년부터 2033년까지 60세에서 65세로 5년에 1세씩 상향 조정되고 있다. 2024년은 63세, 2028년부터는 64세, 2033년엔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다. 1969년 이후 출생자들은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현재 정년은 60세이기 때문에 퇴직 후 연금을 타기까지 3년∼5년의 '소득 공백(Income Crevasse'이 생긴다. 60세 정년을 못 채우고 퇴직하는 근로자들의 소득 공백은 더 심각하다. 연금은 불안하고, 은퇴 후 뭐 먹고 살지 막막하다 보니 일하는 60세 이상 생산연령인구도 늘고 있다. 통계청 '연령별 경제활동인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60세 이상 인구는 1389만 3000명이고, 이 중 632만 3000명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활동참가율은 45.5%에 달한다. 2022년 12월은 60세 이상 인구 1341만 1000명, 경제활동인구 599만 7000명, 경제활동참가율 44.7% 등으로 집계됐다. 특히 55~79세인 고령층 10명 중 7명은 앞으로 더 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55~79세 고령층 가운데 장래 근로희망자는 1060만 2000명으로, 2022년 같은 달보다 25만 4000명이 늘었다. 비율은 68.5%다. 연령별 평균 희망연령은 55∼59세는 70세까지, 60∼64세는 72세까지, 65∼69세는 75세까지, 70∼74세는 78세까지, 75∼79세는 82세까지였으며, 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 55.8%, '일하는 즐거움' 35.6% 순이다. 대다수 고령층은 좋든 싫든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처지고, 실제로 경제활동도 증가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