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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풍수학 사전」펴낸 김두규 우석대 교수

비과학적이란 이유로 등한시되었던 풍수. 국내 처음으로 한국 풍수사에 등장하는 용어를 정리한 「풍수학 사전」(비봉출판사)이 나왔다. 저자는 풍수를 전통사상으로 정립하는 데 앞장서 온 김두규 우석대 교수(46). 행정수도건설 추진위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추진위 자문위원, 혁신도시 입지선정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국토개발과 관리에 풍수적 지혜가 활용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풍수는 같은 용어지만 다른 사물을 지칭하거나 같은 사물을 다양한 용어로 가르키는 경우가 많다. “현재 사용되는 풍수 용어에 혼란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 김교수는 “풍수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용어와 개념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의 풍수서인 「청오경」 「장서」 「명산론」 등과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언급되는 풍수 관련 내용들, 「고려사」 등이 사전의 1차 자료. 풍수의 기본 개념을 추출하고, 항목을 풍수 용어, 풍수 서적, 인물, 물형론 등 4가지로 나눠 가나다 순으로 구성했다. 용어를 정리한 사전이지만, 한반도 풍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풍수학 사전」. 단순한 사전이라기 보다는 풍수학 교재로서 가치가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12.27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마감 총1055편 '수준 높아져'

날씨가 차가워졌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향한 문학도들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 마감 결과, 시 744편, 수필 247편, 소설 64편 등 3개 부문에서 총 1055편이 접수됐다. 문학을 알까 싶은 열다섯 중학생부터 70세의 노인까지 문학 앞에서는 모두 여전한 청년이었다.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던 올해 응모자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25년 동안 재봉틀을 돌리며 사는 여자”라며 자기소개를 덧붙여 온 원고도 있었고 미국에서 보내온 동포의 원고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관대한 선처를 기다린다”거나 “용기내어 글을 보냈다”는 겸손한 목소리들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도전이 대부분인 소설 부문에서는 60대 고령의 응모자가 있어 눈길을 모았다. 올해 신춘문예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박태건 시인과 소설가 최기우씨, 중앙일보 신춘문예 출신 박성우 시인이 예심을 맡았다. 예심위원들은 “기본을 갖춘 실력자들이 많아져 전반적으로 수준은 높아졌으나 실험과 패기로 이어질만한 힘은 다소 약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기우씨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만큼 응모자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몇 년 사이 당선권에 들었던 이들의 작품이 예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해 응모자들의 높아진 수준을 뒷받침해 줬다. 그러나 작품 형식과 소재가 비슷한 틀 안에 머무르고 있다며 독창적인 시각과 문학정신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태건 시인은 “신춘문예 유형을 정확하게 파악한 작품이 많았다”며 “작품을 읽고 나서 후련한 기분을 들게 하는 작품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박성우 시인 역시 “적당한 엄살과 적당한 묘사, 적당한 희망 등 신춘문예 틀에 얽매여 있는 작품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예심위원들이 주목한 부문은 소설. 사회참여적인 소재가 적었던 다른 분야와 달리 소설은 부안 핵폐기장을 비롯 한 해동안 이슈가 됐던 사건 사고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짧고 가벼운 문장이 많아져 ‘글쓰기 꾼들’이 모였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중장년층이 많이 응모하는 수필 부문은 발랄함이 돋보이는 20대 응모자들이 많아졌다. 가족사와 기행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으며, 경제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아졌다.시 부문은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일상사와 사회문제, 개인 이야기 등으로 소재의 폭이 넓어졌다.올해도 서울·경기·부산·대구·광주 등 타 지역 참가자 비율이 70%선을 유지했으며, 도내에서는 특히 전주와 부안 지역 응모자들이 많았다.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 전북일보 신년호에 발표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12.27 23:02

[김준영 교수의 재미있는 '익은말'] 관운이 없으면 임금님도 못 구한다

이 것은 직접비유로 속담과 같으나 그에 설화가 따르는 일이 많으니 그로써 고사성어적인 익은말로 취급한다.이 익은말은 ‘달걀에도 뼈(鷄卵有骨)’와 같은 것이고, 또 속담의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또는 ‘복 없는 가시내는 봉놋방에가 누워도 고자 곁에 가 눕는다’ 와도 같이 운이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근원설화>이에 해당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 성수패설(醒睡稗說) 중의 한 제목인 ‘신수불길(身數不吉)’의 이야기를 요약한다.어떤 왕이 일반 사람들의 옷을 입고 민간의 형편을 살피려 다녔다.하루는 왕이 비장(裨將)의 옷차림으로 무감(武監) 두어 사람을 거느리고 남산동에 나갔는데 어느 초가에 등불이 켜졌고 책 읽는 소리가 들려 그 집에 들어가 말하기를 우리는 순라군으로 하도 추워 들어왔다며 주인과 인사했다.왕이 보니 책상에 책 한권이 있어 펼쳐 보니 글이 하도 좋아서 누가 쓴 것이냐고 물으니 자기가 쓴 것이라고 하였다.왕이 이런 훌륭한 문장력을 가지고 어찌 과거를 보지 않았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팔자가 기박하여 초시(初試)에 떨어지고 그 후 가세가 빈곤하여 허둥대다 이제는 쉰살이 넘었다고 하였다.왕이 참으로 아까운 일이라며 내가 아까 길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모레 나라에서 황감과(黃柑科) 시험이 있다고 하던데 한번 나가 보라고 했다.주인이 과거에 나갈 경비도 없어 그것도 어렵다고 했다.왕께서 무감에게 돈 두 냥만 주라 하고 그집에서 나왔다.왕은 돌아와 즉시 황감과의 시행 명령을 내렸다.그날 과제는 전날 그 주인집에서 본 주인이 쓴 글 첫 장에서 냈다.그러나 주인은 과거 전날 저녁에 먹은 음식으로 토사광란이 나서 정신을 잃고 눕게 되어 황감과에 나가지 못했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5.12.26 23:02

정년퇴임하는 유형식 국립전주박물관장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전주와의 인연이 특별해서 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느낌이네요.”유물은 나이가 들어 박물관에 오지만, 그는 나이가 들어 박물관을 떠나게 됐다. 1976년부터 2005년까지, 32년 6개월 동안 공직에 몸담아 온 유형식 국립전주박물관장(60)이 전주에서 정년퇴임을 맞게 됐다. 1990년 10월 26일 개관한 전주박물관에 학예연구실장으로 내려와 첫 인연을 맺고, 2000년 1월 다시 관장으로 찾게된 전주박물관. “전시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빌려온 유물들을 정리할 때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같다”는 유관장은 “그 때의 기분처럼 전주와 박물관을 떠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지역마다 국립박물관을 건립해 놓은 것은 크게는 우리 역사지만 작게는 지역민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땅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전북과 관련된 주제로 전시를 해온 것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의무와 같았지요.”남원과 부안, 군산 지역을 조명한 ‘전라북도 역사문물전’ 외에도 ‘미륵이 온다’ ‘전북인의 마음, 기증문화재’ ‘왕의 초상, 경기전과 태조 이성계’ 등 관장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전북과 관련된 특별전을 만들어 왔다. 모든 전시가 똑같지만 특히 ‘왕의 초상, 경기전과 태조 이성계’는 여러가지 의미가 맞물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됐다. “박물관도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유물 수집·관리는 물론, 학술조사를 통해 지역을 연구하고 전문가들에게는 자료로 전달하고 대중들에게는 전시로 알려야죠. 박물관이 배움터가 되어야 하는데, 좀더 쉽게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상설전시실 개편과 벽부진열장 재구성, 사랑방 설치, 영상시스템 구축 등의 사업을 진행한 것도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서기 위해서였다.2002년 국립박물관 중 전국 최초로 사회교육관을 개관한 것도 큰 성과였다. 박물관의 사회교육 기능이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절, 사회교육사를 채용하고 성인·청소년·소외계층 등 대상을 분류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다른 어느 곳보다 지역 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이 강해 자랑스러웠다”는 유관장. 그는 “앞으로도 전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잘 부각시켜 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정년퇴임식은 27일 오전 11시 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12.26 23:02

未堂 친일논란 생산적 해법찾기

고 미당 서정주 시인에 대한 친일 논란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미당에 대한 상반되는 시각을 보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산적인 해법 찾기에 나섰다.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지부장 진기동)는 24일 고창읍 그랜드호텔 연회장에서 ‘미당 문학의 재평가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엔 미당 문학세계에 우호적인 미당시문학관이사회 측과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해온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창지부가 참석, 장외에서 벌이던 대립적인 갈등을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이날 심포지엄에서 양측 모두는 미당이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썼으며 친일 행적을 남겼다는 점에선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미당의 문학세계에 대한 평가와 의미, 또 미당시문학관을 둘러싼 시각에선 여전히 날카로운 의견 대립을 보였다.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윤재웅씨(동국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서정주 시인은 찬사와 모멸을 동시에 받고 있는 예술가”라고 전제하고, “친일은 시인의 전부가 아니고 일부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윤 씨는 이어 “친일 논란은 중간지대가 없이 한 극단으로만 모는 논쟁의 소산”이라며 “서정주란 숲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많은데, 친일 부분만 부각시키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라고 주장했다.손일석씨(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창지부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태평양전쟁에서 희생 당한 원혼들을 생각하면 미당의 친일을 작게 볼 수 없다”며 윤씨의 주장에 반논을 제기했다. 손씨는 “친일 청산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애국자들의 충혼탑은 초라하고 친일 시인에겐 문학관을 지어주는게 말이 되느냐”고 문학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울분을 토했다.주제발표에 이은 주제토론에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다. 송영래·이명철씨(고창문인협회)는 “사람에겐 모두 공과가 있으나, 미당의 문학적 공헌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이에 대해 오세환·이행용씨(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미당은 눈부신 문학적 재능을 일제 미화에 사용한 범죄자”라며 “친일 인사를 숭배하는 미당시문학관은 폐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원환·서동진씨(미당시문학관이사회)는 “친일과 관련 반성할 건 반성한다”고 전제, “미당의 높은 문학세계를 침체된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는게 우리들의 임무”라고 말했다.이날 심포지엄 말미에서 부각된 미당시문학관 운영 방향과 관련, 정원환 이사장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제기한 ‘친일 시인을 찬양하는 미당시문학관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어선 안된다’는 발언에 “유족회가 미당에 대한 시시비비를 철회한다면 미당시문학관이사회가 향후 문학관 운영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공개 선언, 성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문화일반
  • 김경모
  • 2005.12.26 23:02

[창작의 길목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은희천씨

아쉬움 투성이란다. 징허게 연습해서 흡족하게 연주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자리를 좀 정리할 작정이다. 진정한 연주자로 우뚝 서고 싶기 때문이다.바이올리니스트 은희천(55·전주대 음악학과 교수). 바이올린을 잡은지 40년이 넘은 그에게서 의외의 고백이 나온다. “이제는 폭 빠져봐야 되겠다 생각합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해를 더할수록 깊어집니다.”중대결단을 했다. 25년여동안 함께해온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탈퇴(?)할 작정이다. 5년전 20주년이 됐을때 시행착오를 겪은 일이어서 내년에는 감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리더라는 직함이 제게 주어졌지만 단원 모두가 주인이고, 리덥니다. 또 오랫동안 운영된 단체라 시스템이 잘 돼 있습니다.” 연주단에 변화를 주어야 할 타이밍을 진즉에 놓친것 같기도 하다. 1981년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다. 전주대학에 자리를 잡기전 여러 학교에 출강하며 현악기 연주자들이 실내악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걸 알았다. 제자들 중심으로 실내악 공부를 하기 위해 글로리아를 만들었다. 창단때부터 현재까지, 공연이 있건 없건 글로리아는 매주 월요일마다 연습을 한다. 지금까지 섭렵한 실내악곡이 200여곡을 넘는다. 웬만한 현악곡은 모두 정복한 셈이다. 연습이 많아서인지, 글로리아는 연주자들에 인기있는 단체다. 23명의 단원중 창단멤버는 은교수와 김홍연씨만 남았지만 그밖의 단원들도 10여년이상 함께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단원뿐만이 아니다. 연주장을 찾는 청중도 연주단 연륜 못지 않다. 고정팬이 많다는 얘기다.전북에서 최초로 현악연주단을 만들고, 25년여동안 이끌어온 그에게 올해 목정문화상이 주어졌다. “팔을 다쳐 11월 공연때 처음으로 객석에 앉아봤습니다. 단원으로 무대에 섰을때보다 음악이 더 잘 들리고 무대도 잘 보이더군요. 정확히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년에는 무대에서 객석으로 자리를 옮길 계획입니다.” 25년동안 몸에 밴 생활을 단번에 그만둘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단원에서 후원회원으로 방향만 살짝 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연주자들의 기량향상, 풍성하고 수준높은 음악문화를 만드는 것이 그가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일구는 분야지만 그는 청중 훈련에도 관심이 많다. “연주자에겐 정확하게 비평해줄 수 있는 관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주자들이 긴장하고 더욱 자신을 채근하게 됩니다.” 글로리아 창단에 앞서 그는 음악감상모임부터 만들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로 꾸린 고전음악감상회. LP판과 악보를 놓고 음악을 공부한 이 모임도 20년 이상 지속됐었다. 아내 지은정 전북대교수도 이 모임에서 만났다. 일년에 글로리아가 갖는 연주회는 기본적으로 다섯번을 넘는다. 두번의 정기연주회와 협연음악회, 유망청소년협주, 문화소외지역을 찾는 찾아가는 음악회, 음악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교육적인 음악회 등. 학교에서의 수업과 글로리아 활동만으로도 빠듯할 것 같지만 그는 해마다 개인독주회를 준비한다. “작년에 독주회를 마친후 스스로 실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올핸 걸렀어요. 대신 차분히 준비해서 내년에 흡족하게 열고 싶어요.” 연주회장의 청중도 그렇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더욱 제대로 된 연주를 보여줘야 된다는 스트레스를 늘 갖게 된다. 그는 세월이 더하면서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이 주는 기쁨도 새록새록하다. 겨울방학동안에는 학부 교양음악 교재를 새로 쓸 계획으로, 한창 준비중이다.“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인지 이름 내세운 곳이 많아요. 새해에는 대폭 정리하고 개인 연주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랍니다.”정리전, 그는 5월 글로리아 정기연주회에 함께하고, 25주년 기념 미국 LA와 보스톤도 다녀올 계획이다. 내년 연주회 연습은 오래전 시작됐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5.12.24 23:02

[템포-사람과 풍경] '위대한 사랑' 실천 라인숙씨

다섯 아이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3살배기 의진이부터 4학년 초등학생 의겸이까지 모두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손 씻었느냐’ ‘옷 잘 입었느냐’ ‘밥 많이 먹어야지’ … . 아이들은 금새 엄마를 잔소리꾼으로 만든다.오전 6시30분부터 시작된 ‘ 아침 전쟁’은 등굣길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보금자리 전주시 중동 원중리에서 전주만성초등학교까지는 걸어서 40여분 거리. 추위에 아이들을 걸려 보낼 수 없는 엄마는 매일 학교 인근까지 데려다준다. 이때 자가용인 '티코'가 ‘벤츠' 이상의 값을 한다. 학교에 다니는 4명의 아이에, 홀로 남게될 의진이와 동네 아이 2명까지 총 8명이 작은 차에 빼곡히 탄다. ‘엄마’ 라인숙씨(51)는 아이들끼리 손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뭉클함을 느낀다.라씨가 이들 다섯아이의 어머니가 된 사정도 감동적이다. 의겸(11)이와 소연(10)이 남매는 할아버지 밑에서 양육되다 보육원에 보내져야 할 형편에서 6년전 맡게 됐다. 젖도 채 떼지 않은 의진이 친권자는 자신의 큰 딸과 같은 나이의 장애 1급의 홀 아버지다. 재훈(8)이와 예림(7)이는 3달 전 비를 맞으며 둘이서만 학교에 남아있는 것을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려온 뒤 눌러앉았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있지만 직장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 힘든 형편이다.나씨에게는 성장한 친자녀 3명이 있고, 남편은 목사(이름 알리기를 싫어함)다. 5명의 아이들의 양육책임은 그가 맡고 있지만, 남편과 자녀들의 응원이 큰 힘이다. 4년전 현재의 집으로 이사오기 전 20평짜리 다세대주택에서 7명의 보육원 아이들을 보살핀 것도 그의 가족들이다. 12명의 식구가 거실과 주방서까지 잠을 자야하는 불편함도 참았던 가족이기에, 비록 전세이긴 해도 현재의 30평 남짓한 집은 이들에게 ‘궁궐’인 셈이다.나씨는 아이들 뿐아니라 나이든 할머니 3분을 모시기도 했다. 3년간 함께 살던 할머니는 지난 4월 돌아가셨고, 나머지 2분은 팔복동 형님집에서 모신다.나씨는 이들 할머니들과 정을 쌓으며 노인시설을 하고 싶었으나, 대신 5명의 ‘천사’들이 있어 호강한단다. 아이들 돌보는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노인들 수발에 비해 힘이 덜 드는 것을 두고서다.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리던 아이들이 한달 두달 지나면서 서로를 형·동생으로 챙겨주는 것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그는 아이들이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아 외려 고맙다고 했다.체험학습 차원에서 대형마트에 갔을 때 너나 없이 카트를 들고 나와 퍼레이드를 펼치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 모습과, 카트에 아이들을 모두 태워 밀고 다니는 사소한 것에서도 가족간 정을 쌓는다. 바로 옆 어린이집 ‘까꿍베베’의 봉고차를 빌려 지난 여름 물놀이를 다녀온 뒤 서로의 간극도 많이 좁혔다.교육적인 면을 고려해 나씨는 집에 TV를 두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책으로 갔다. 대학생이 된 친자녀들이 어려서 본 책들이 이제 다섯아이들의 책이다. 책을 많이 읽은 소연이는 학교에서 독서왕이 됐고, 영향을 받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책이 친구가 됐다.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소연이는 계속해서 책만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예림이는 신기한 듯 연신 취재수첩에 얼굴을 내밀었다. 가족이 된 지 3개월 밖에 안 됐지만, 재훈이와 아이들의 독서지도를 위해 나씨 스스로도 사립문고협회 가입을 노크하고 있단다. 회원이 되려면 1000권의 장서가 필요한 데 현재 400권 밖에 없어 헌책이라도 좀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그는 또 아이들이 학교를 편히 다닐 수 있게 장동리 저수지 옆 천변 다리가 놓이길 바랬다. 전주시에서새 다리를 놓아준다고 옛 다리를 헐어낸 뒤 지금껏 감감해 그렇지 않아도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불편함을 생각해서다.호강은 몰라도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최소한 가정의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아이들에 대한 나씨의 소박한 또하나의 소망이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05.12.23 23:02

[템포-사람과 풍경] 가정위탁제도 도입 6년

친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은 우리 사회의 안타까움이다. 소년소녀가장은 물론, 부모가 있더라도 부모 품에서 자랄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 적지않다.친부모 밑에서 정상적으로 양육될 수 없을 때 다른 가정에서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제도가 가정위탁제도다. 이제도는 가족기능이 정상화 될 것을 전제로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등 여러 우수성을 갖고 있어 UN 등 국제사회에서도 권고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의 경우 가정위탁제도는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행정적 관리가 편한 시설보호쪽이 선호되고, 제도자체에 대한 인식이 덜 된 탓이다. 전국적으로 가정위탁으로 양육되는 아동은 1만2000명 정도며, 전북의 경우 51세대에 71명의 아동들이 양육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제도가 도입된 후 전국적으로는 매년 2000명 정도 늘고 있으나 전북에서는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위탁 가정이 되려면 거주지(주소지) 소재 시·군·구청 아동복지담당 부서에 가서 아동보호신청서를 작성제출하여야 한다. 담당부서에서는 신청가정과 대상아동을 조사한 뒤 가정위탁 요건에 맞는 경우에 한해 지정한다. 읍면동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협의를 통해 대상아동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선정기준에 적합하면 생계·의료·교육 등의 해당 급여를 실시하게 된다.위탁가정에 아동 1인당 월 7만원이 지원되며, 아동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분유 등 물품이 지원된다.가정위탁에 대한 지원을 위해 지역별로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설치돼 있으며, 도내에도 지난 2003년 4월 전북가정위탁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에서는 부모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양육에 필요한 조언이나 도움을 준다.위탁가정간 정보교류 등도 점차 활기를 띤다. 위탁가정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전북희망의둥지’가 만들어져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매년 여름 캠프도 하고 있다.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 박태영 상담팀장은 “새 가정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새로운 문화는 충격일 수 밖에 없으며, 길게는 6개월까지 적응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제도 자체가 아직 일반에 생소해 널리 활성화 되지 않고 있지만,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 대한 가정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05.12.23 23:02

[템포-사람과 풍경] 혈연에 집착 공개입양 금기시

며칠전 탤런트 차인표·신애라씨 부부의 아름다운 ‘공개 입양’이 화제가 됐다. 세밑, 사회를 돌아볼 겨를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안겨준 때문이다. ‘공개입양’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낯선 영역이다. 전통적으로 ‘혈연’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데다가 ‘입양’의 비밀이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근래들어 ‘공개입양’ 문화가 서서히 싹트고 있다. ‘공개입양’이 공개적인 운동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 99년. 한국입양홍보회가 문을 열고 홍보에 나서면서부터다. 어렵게 입양을 결정했지만 이후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통로가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공개입양’ 모임은 서로에게 힘이 됐다. 전북에도 지난해 3월 한국입양홍보회전북지부가 결성됐다. 당시 회원은 9명. 지금은 22명으로 늘었으니 2년이 채 안된동안 공개입양 가정은 2배를 넘어선 셈이다. “입양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잘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올바른 방법을 찾기에는 공개입양이 가장 좋은 길이지요.”전북지부를 결성하는데 앞장섰던 김의남지부장(35, 사회복지사)은 입양아를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게 하는 일은 입양가정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일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은 혈연 중심입니다. 보수성이 강한 전북의 경우는 특히 문화적 편견과 선입관이 큰 걸림돌이지요.”현재 공개입양은 30% 수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입양’은 철저하게 묻혀져야 할 비밀이다.공개입양 부모들이 이런 금기사항을 깨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것.영원히 출생의 비밀이 지켜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알게될 개인사를 무조건 감추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외국의 경우는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입양아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 친자와 입양아에 대한 차별도 없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 역사 50년. 그러나 해마다 해외에 입양되는 아이는 아직도 2000명선을 넘는다. 지난해 국내입양이 1600여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해외입양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5.12.23 23:02

[템포-사람과 풍경] 행복한 가족 하영이네

“오빠 오빠! 오빠 왔네.”큰오빠 작은 오빠를 보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하영이는 한참 신이 났다. 오빠들 뒤를 좆아 방으로 들어갔던 하영이는 다시 나오더니 낯선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웃음이 절로 났다. 하영이는 진안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이성래(45)·이봉심(37)씨 부부의 막내딸이다. 올해 네살. 그러나 이씨가 하영이를 얻은 것은 2년 전이다. 말하자면 하영이는 입양으로 이씨의 가족이 된 ‘업둥이’다. “16개월되었을때 영아원에서 하영이를 처음 보았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더군요. 내 딸이다 싶었죠.”남편 이씨의 얼굴은 연신 웃음이다. 이씨는 공개 입양으로 하영이를 맞았다. 2003년 봄이었다. 결혼한 이후 줄곧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해왔던 부부는 내심 ‘입양’을 계획하고 있던 터였다. 연년생인 용문(중3)· 진(중2)이도 아빠 엄마 못지 않게 반가워했다. 이씨 부부는 공개입양을 결정했다. 혈연의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공개입양’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문화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이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숨긴다고해서 영원히 비밀이 될 수 있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알게될 자신의 출생에 대해 가능한 빨리 알게하는 것이 충격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감정이 특별했다. 아내 이씨는 그것을 ‘버려진 아이에 대한 애잔함과 사랑이 결합된, 산고로 낳은 아이와는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낳아서 키운 아이들과 별 다르지 않은 ‘절절한 사랑’이 싹텄다. 아이는 낯선 가족들을 만난 몇개월동안 늘 불편해하고 불안해했다. 무엇인가를 안고 있지 않으면 늘 칭얼거렸고, 무작정 나가기 일쑤였다. ‘애정결핍’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데다 매일 울고 짜증을 내니 마음을 함께 했던 부부사이까지도 멀어지더라구요. 지금생각하면 그때가 고비였어요.”그러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하영이의 ‘애정결핍증후군’은 말끔히 가셨다. 워낙 밝고 부침성이 있어서 엄마는 오히려 너무 활발한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다. 남편 이씨는 하영이가 온 뒤 삶의 기쁨과 재미가 달라졌다. 이를테면 ‘딸을 키우는 재미’다. 아들 키울때는 영 ‘남의 일’이었던 기저귀 갈아주는 일이나 우유 먹이는 일은 기본. 드러내놓고 자식 사랑 표현도 하지 못했지만 하영이에 대한 사랑 표현은 넘친다. 오래전부터 주말이면 영아원이나 시설들을 찾아 봉사해온 부부는 하영이를 딸로 맞은 후 한달에 2-3회는 하영이가 지냈던 영아원을 찾는다. 아이의 잠재의식속에 놓여있을 ‘어릴 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다. 이씨 부부는 영아원을 찾는 일이 하영이에게도 좋은 과정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남편 이씨는 며칠전 동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가서 하영이의 입학원서를 갖고 왔다. 집에서 기다려도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하영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설레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였다. “사실 우리가 하영이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예요. 하영이는 가족을 갖게됐지만 우리는 하영이 덕분에 삶의 진정한 행복을 얻었지요. 그 크기로 보자면 하영이가 우리들에게 준 선물이 훨씬 커요.”이씨 부부는 하영이가 불행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껴안을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여전히 편견이 심한 환경속에서도 ‘공개입양’을 선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영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그 바람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 같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05.12.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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