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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예술작 무관심속 이 땅 떠나

온다라미술관(1987∼1992년).문을 닫은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온다라미술관은 당시 참여미술 진영을 보듬어 안아주는 민족민중미술관이었다.온다라미술관에 소장됐던 민족민중예술작품이 행정과 문화예술계의 무관심으로 이 땅을 떠났다. 온다라미술관을 운영하며 민족민중예술작품을 수집해 온 김인철씨(51)가 소장품 572점을 지난해 말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기증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5년 전 온다라문화정책연구소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민중미술 연구전시공간을 마련한 김씨 역시 전주에 민중미술 전용 미술관을 세우고자 했던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전주시에 무상 기증 의사를 밝히고 시립미술관 건립에 공을 들였지만 무산됐고, 이후 전북도와 정읍시에도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지만 좌절됐다. 결국 작품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측의 적극적인 유치 활동이 김씨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때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온다라미술관의 맥을 잇는 민족민중미술관 건립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 문화예술계의 상실감은 크다. 도내 문화예술인은 “당시 온다라미술관은 지역민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던 곳”이라며 “시대상을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반출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또다른 미술인은 “개인 소장품인 만큼 기증한 작품을 되돌려 받을 수는 없겠지만, 역사자료로서 의미있는 작품들이 어느 지역에서든 소중하게 보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기증한 작품들은 홍성담 임옥상 신학철씨 등 당시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으로 남북분단과 통일, 광주항쟁, 군사정권 등 80∼90년대 한국사회를 뼈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측은 1월 말 기증받은 작품 중 대표작 중심으로 전시를 열 예정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1.05 23:02

[창작의 길목에서] 김일구 명창

무대에서 더 큰 사람. 김일구(66)명창도 예외는 아니다. 소리청 대문을 열고 손님을 반기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지만 북채를 잡고 곧추 앉으면 위엄이 느껴진다. 발림이 몸에 배서일까. 목소리도 강단있지만 몸짓이 꽤 크다.그는 이달 중순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아들 김경호와 한 무대에 선다. 전통문화센터 기획프로그램 ‘최고의 명창들이 들려주는 판소리 다섯바탕-적벽가’가 그의 무대다. 늘 하는 소리지만 명창에게도 받아놓은 공연날짜는 부담이다. “소리인생만 60년인데, 무대에 설때마다 떨립니다. 또 지금까지 만족했던 공연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죽을때까지 다 못 배우고 못 풀어낼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게의치는 않습니다.”그래도 아들과 함께 서는 무대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요즘 밤마다 경호씨와 소리를 맞추며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거친 가르침을 묵묵히 버텨내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명창도 아버지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전문소리꾼은 아니었지만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분이다. 변성기를 맞아서는 외도도 했다. 고생하며 얻은 깨달음이 ‘가장 쉬운 일이 소리하는 것’이었단다. 경지에 오르면 힘이 덜 들겠더라는 생각에서 소릿길로 돌아왔다. 아쟁을 배우기 시작했다. 목이 꺽여 소리하기도 어려웠지만 여성국극단 전성기여서 악사 수요가 있었다. 장월중선에게 아쟁과 소리를 익혔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명인인 원옥화선생에게서 가야금도 배웠다. 중요무형문화재 준보유자로 지정된 판소리 적벽가는 박봉술선생에게서 수궁가와 함께 익혔다.“예술하는 이들을 하대했어요.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관도 많이 변했고, 예술인들을 예우하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죠. 저도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소리공부를 시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활환경이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고, 지금은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국립창극단과 국립국악원 등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남자명창도 드물었지만 빼어난 통성과 연기력, 게다가 아쟁과 가야금까지 연주하는 그는 인기인이었다. 2000년 5월 국립국악원을 정년하며 전주에 정착했다. 사실 그와 전주의 특별한 인연은 없다. 굳이 꼽으라면 1983년 전주대사습 장원, 그리고 해마다 국악인으로서 대사습을 찾았던 것. 그가 전주를 삶터로 택한 이유는 가끔씩 찾은 곳이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동호인과 국악인들의 온정때문이다. 또 하나, 소리 본고장의 소리판을 확대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동초제가 강세인 전주에 그가 맥을 잇는 소리, 송만갑제 동편제를 심어 소리판을 풍성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늘 그의 전수관인 한옥마을내 온고을소리청에 머물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들과 함께한다. 터를 마련해둔 구이에 전수관도 지을 계획이다. 청소년창극도 준비하고 있다. “요즘은 국악인도 멀티플레이어야 경쟁력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창극을 만듭니다. 창극은 소리뿐 아니라 무용 연기 등 다양한 기량을 익힐수 있거든요.”올해 작품은 ‘장화 홍련전’. 그의 아내 김영자명창과 대본준비와 작창 작업이 한창이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1.05 23:02

[2006 문화캘린더] ①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동반자, 도내 문화공간들도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고 있다. 예술인들에게는 창작지원군으로, 도민들에게는 문화향유의 장을 펼쳐주며 예술인과 대중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문화공간들. 올해도 전북문화계를 살찌울 풍성한 기획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시설들의 2006년 기획사업을 살펴본다.개관 5주년을 맞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이인권)은 올해 처음으로 시즌제 패키지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즌제 패키지 상품이란 일정 기간동안 다양한 장르의 공연물을 집중 배치해 패키지로 엮는 것. 소리전당 관객들에게 다양한 공연물을 저렴하게 선보이려는 취지에서 고안해낸 기획상품이다. 꽃소식이 들리는 3∼5월경 선보인다.한낮의 음악회도 기획중이다. 낮 시간이 여유로운 주부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음악감상뿐 아니라 연주자와 청중들간의 밀도있는 대화도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올해 시범적으로 운영해본 후 지속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중국 상하이대극장과 교류도 한다. 상하이대극장이 선정하는 예술단의 공연을 소리전당에 초청하는 방식인데, 아직 시기와 작품은 정해지지 않았다. 소리전당서도 전북지역 예술단을 선정해 상하이대극장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올해로 3회째를 맞는 독주회시리즈는 지속된다. 지역 유망 연주자를 선정 봄과 가을(4∼10월)에 발표무대를 열어준다.유스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도 계속된다. 5월부터 11월까지 도내 문화소외지역 및 시설을 찾아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줄 계획이다.지역 주민들에 열린문화공간으로 사랑받는 토요놀이마당은 6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놀이마당에서 펼친다.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교육프로그램인 문화아카데미도 지속사업이다. 올해는 ‘이야기로 배우는 재미있는 오페라’ ‘무지개 빛 건축세상’ ‘놀이로 체험하는 클래식’ 등 10여개 강좌가 준비된다. 기획전시도 풍성하다. 방학시기에 맞춰 두번의 어린이를 위한 체험전시가 열린다. 겨울방학 특별전-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이어 여름방학 특별전(8월경)이 준비된다. 지역 우수 미술인 및 단체에 전시기회를 제공하는 MVP초대전이 2월중순경 열린다. 3월에는 가수 조영남 초대전이 열릴 예정이고, 6월에는 전북현대미술 다시읽기 시리즈전이 지난해에 이어 마련된다. 또 올해는 전주세계소리축제 기간에 맞춰 소리관련전시도 기획하는 등 전북문화계를 풍성하게 일굴 다양한 사업들을 선보인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1.04 23:02

에버그린밴드 "마음껏 연주"

에버그린밴드(단장 황병근)에 번듯한 연습장이 생겼다. KT&G전북지역본부내 100여평의 연습실을 마련, 5일 기념 음악회를 갖는다.지난 2003년 창립한 에버그린밴드는 2년여동안 구 전매청 생산공장 공간을 연습실로 사용해왔다. 잦은 연주활동으로 상시 이용할 수 있는 연습공간이 필요한데다 악기 특성상 소리도 커 전용연습실이 절실했었다. 당시에도 전매청의 협조를 받아 빈 공간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전주시 도시계획에 따라 건물이 헐릴 예정이어서 밴드 연습장도 잃게 됐다.이 소식을 접한 KT&G전북지역본부가 지역본부내 빈 공간을 내줬다. 100여평의 공간에 방음시설까지 하는 등 시설을 새단장해 제공했다. 새로 연습장을 마련한 에버그린밴드는 5일 오후 3시30분 지역본부내 연습장에서 현판식 겸 기념음악회를 연다. 공간을 마련해준 KT&G측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음악회다. 황병근단장은 “KT&G전북지역본부 덕분에 남부럽지않은 연습장을 갖게 됐다”며 “더욱 분발해 이웃들에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연주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에버그린밴드는 올해도 60여차례 이상의 연주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도내 14개 시·군을 순회하는 연주회와 전국의 사회복지시설과 소외이웃을 찾아가는 음악회를 갖는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1.04 23:02

판소리, 아는 만큼 들린다

판소리는 우리민족에게 가장 사랑받는 예술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그 흐름에 따라 문화도 변하면서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는 잊혀졌고, 전승의 중심에 있던 연행주체나 향유층 역시 감소했다. 판소리가 다시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이 됐다.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폭넓게 이야기하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책이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원장 곽영효)이 최근 ‘명창을 알면 판소리가 보인다’ 개정판을 냈다. 지난 2000년 출간했던 책에 대한 재발간 요청이 잇따른 데다 초판에 부족한 내용이 보완하고 손질해 다시 펴냈다.책은 역사속의 명창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1800년대 전후에 태어나 활동했던 전기 8명창으로부터 후기 8명창, 한말과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했던 근대 5명창까지를 관통하고 있다. 명창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소리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전승됐는지를 보여준다. 판소리 관련 상식도 풍성하다. 판소리의 유래, 고수의 역할, 판소리의 더늠 장단 창법 조 등 판소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기초지식을 소개했다. 관련 기록과 논문 등의 자료를 다시 검토해 정정하고 보완했다.명창 유적 답사기가 추가돼 명창들의 삶의 흔적을 쫓을 수 있다. 신재효의 고장 고창과 이동백 김창룡 심정순의 자취를 따라 가본 중고소리기행, 이날치 김채만 박동실 한애순으로 이어지는 서편소리, 박유전 정재근 정응민의 남도소리, 김창환 임방울의 서편소리, 박동진명창의 유적을 찾아봤다.또하나의 성과는 부록음반.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이선유 정정렬 등 판소리유파에 따른 5명창의 소리와 김창룡명창의 소리로 듣는 더늠,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 명창의 소리로 듣는 적벽가, 그리고 임방울과 이화중선의 소리가 복각됐다.2005년 한해동안 민속국악원이 발표한 논문과 민속악 관련 연구성과를 모은 ‘국립민속국악원 논문집 5집’도 발간했다. 논문집에는 지난해 9월 열린 ‘향제줄풍류의 전승현황과 음악적 특징’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 4편과 판소리의 시대적 변화, 풍물굿가락에 대한 조망, 충청제 판소리 조명, 경기지역민요 등을 주제로 한 논문 4편이 수록됐다.민속국악원은 각각의 자료를 1200부 제작해 전국의 주요기관과 관련 단체 등에 배포하고, 홈페이지(http://www.ntmc.go.kr)를 통해 원문과 음원을 제공한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1.04 23:02

신광섭 신임 국립전주박물관 관장 "살아있는 지역전통 색 지키기"

“온 가족이 5천원으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루 3만명 이상이 찾는 중앙박물관을 보면서 주민들이 지역 박물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국립전주박물관 제6대 관장으로 취임한 신광섭 관장(55). 전주박물관 행사에 몇 차례 전주를 방문한 게 전부지만, 백제 고고학을 전공한 그에게 전주는 친근하다. “부여와 공주, 광주 등 사실 백제문화권은 넓습니다. 역시 백제문화권인 전주에 온 만큼 무엇보다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민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문화장르로 다같이 공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신관장은 “지금껏 전주박물관이 지켜온 색을 유지하면서도 특성화작업으로 전공이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전주는 문예가 시작된 곳. 문화의 근간이 종이와 책이고, 한지와 완판본의 고장이 바로 전북 일원이기 때문이다. 신관장은 “전주는 시대에 관계없이 문예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라며 “지역의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박물관에서 30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지방 박물관 인력이 부족한 만큼 전시, 조사, 연구, 보존, 사회교육 등 박물관의 모든 기능이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올해는 도요지가 많았던 전북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북의 도자문화전’(가칭)과 각 시·군 역사를 보여주는 ‘정읍전’을 기획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민속실과 고고실 개편에 이어 올해 안으로 미술실도 개편할 예정이다. 지역민들의 문화향수권을 위해 중앙박물관 순회전도 유치할 계획이다.부여박물관장 재직 시절 백제금동대향로와 정림사지, 궁남지 등을 직접 발굴해 낸 신관장은 그동안 소장품 중심으로 분리됐던 박물관의 활동을 역사 중심으로 바꿔놓은 인물이다. 중앙박물관 유물관리 부장을 지내며 전시와 도록 발간 등으로 기증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초대 역사부장을 맡으며 자기 중심이었던 고려 이후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로 문화 흐름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미술관 ‘한국미술전-흙, 혼, 불’과 한국미술 유럽순회전, 한·일 월드컵 공동주최 기념 한·일 국보 교류전 등 성공한 국제교류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충남 부여 출생으로 중앙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1.04 23:02

동화속 주인공되어 미술세계 여행해요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책을 통해 대중 속에서 살아숨쉬는 미술을 이야기한 가수 조영남. 세계 최초로 ‘입체 화투패’를 만들어 낸 그가 전주에서는 어떤 상상을 풀어놓을까. 파란만장한 삶이 작품과 닮아있는 가수 조영남씨가 참여하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전이 5일부터 3월 1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에서 열린다. 소리전당이 겨울방학을 맞아 기획한 이번 특별전은 전시를 보는 관람객이 동화 속 주인공 앨리스가 되어 미술로의 모험을 떠나는 예술 체험 전시다.눈으로만 보는 미술이 아닌, 미술의 시각적·공간적·신체적 경험을 목적으로 한 이번 전시는 관객이 살아 움직이는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놀이와 게임을 하듯 온 몸의 감각을 움직여 전시에 참여하는 재미가 크다. 제1영역은 앨리스의 모험이 시작되는 공간. 크기에 따른 공간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제2영역은 영상작품과 함께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이며, 제3영역은 작가의 작업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특별한 공간이다. 제4영역은 작품에 직접 참여해 보는 자유로운 놀이의 영역, 제5영역에서는 관람객들의 새해 운세도 봐 준다. ‘옷장 속 백설공주’ ‘고릴라 인간’ ‘과자봉지로 만든 바퀴’ ‘선인장 정원을 보는 앨리스’ 등 작품 제목만으로도 귀가 솔깃해 진다. 참여작가는 강리나 강용면 고보연 권경환 김미인 서정국 김지영 남재현 박보영 설총식 성상원 송상민 송지인 안윤모 오수연 오혜선 이지은 윤석구 이미숙 이상우 이연실 이재광 이정배 이철현 이현주 이화진 임서하 이현주 장숭인 조민희 조영남 조우정 지민경 최석운 최지연 최혜광 최희경씨 등 총 39명. 원광대 환경조각가 졸업전시에서 젊은 감각이 도드라지는 일부 작품을 선정해 초대했다. 지역 작가와 외부 작가, 기성 작가와 신인들이 교류하며 그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전시 기간 마이머 최경식씨의 마임 체험 ‘앨리스의 환상여행’이 낮 12시와 오후 2시, 4시 전시장에서 공연된다. 개관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며, 입장료는 8천원이다. 월요일 휴관. 063) 270-7841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1.04 23:02

「석정문학」2005 겨울호 출간

‘인간이 기구하고 의욕하는 것을 꿈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꿈의 저변에는 항상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증오가 깔려야 할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이것이 예술가의 소중한 양심으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예술가의 소중한 양심’을 지켜 온 신석정 시인(1907∼1974). 석정문학회가 「석정문학」 2005 겨울호를 펴냈다. 이번 호 기획특집은 ‘신석정 연구’와 ‘석정시인 회억’.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허소라 군산대 명예교수, 정양 우석대 교수, 오하근 원광대 교수, 임명진 전북대 교수, 김병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이 시대 상황 속에 자리한 석정 문학의 위치를 조명했다. ‘석정시인 회억’은 석정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지면. ‘시인으로서만 아니라 인품 또한 거인’이었다는 서재균씨의 회상과 ‘날씨가 좋을 때면 우리 남매들과 필자의 소꿉친구 등을 데불고 뒷동산에 산책을 다녔다’는 시인의 3남 신광연씨의 추억은 석정에 대한 그리움을 키운다. 특별대담에서는 원로시인 이기반씨를 찾았다. 사제지간인 수필가 하재준씨가 이씨를 만나고 ‘시를 종교로 시작을 신앙으로’란 글을 풀어놓았다. 기계 문명과 물질의 권력에 의해 파괴된 자연과 인간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병훈 시인과 고향 속에 현시대의 아픔과 의식을 그려넣는 제7회 백석문학상 수상자 정양 시인을 집중조명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1.03 23:02

[키워드-300자 책읽기] 장편소설

겨울에는 아무래도 긴 호흡이 좋다. 무료한 겨울밤을 재미나게, 또는 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중이라면 장편소설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평소 벼르고 있던 책이 있다면 이참에 골라보자. 쌓인 책이 줄어들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남다를 것이다. 토지(전21권) (박경리 지음, 나남) ‘25년 동안 여러 지면을 전전했다. 3년동안 출판정지, 절필한 일이 있었다. '土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지겨웠고 부담스런 짐을 부리고 싶었다.…’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역사 장편소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과 일본의 세력강화, 갑오개혁 등이 소설 전체의 구체적인 전사(前史)가 된다. 한과 생명 등 겨레의 정서를 하나의 대하소설 속에 압축하고 있는 토지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전5권) (조앤 K.롤링 지음, 최인자 번역, 문학수첩) 최근 영화 상영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국내에서도 초판 100만부 발행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15살이 된 해리가 펼치는 이야기. 덤블도어 간의 갈등 증폭,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분노 표출, 첫사랑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볼드모트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담은 고대 예언도 새롭게 등장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전32권)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솔)세계문학사상 처음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역사소설. 지난해 한 TV드라마에서 청소년 추천도서로 소개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은 책이다.임진왜란시 자신의 군대를 조선에 파병하지 않고, 전쟁 후 조선특사인 사명대사 유정과 만나 전후 평화를 위한 협상을 하고, 조선 통신사를 불러들이고 양국 평화의 시대를 연 일본국민의 영웅. 조선시대 독도 지킴이 안용복에게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한 인물. 천하통일과 태평성세의 초석을 다진 이에야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들려주는 대하소설이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1.03 23:02

타신문 신춘문예 당선 전북지역 문학도들

새해, 신춘문예의 바람이 또한번 지나갔다.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들이 강세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이미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올해 신춘문예에 전북 지역에서 당선된 이들은 조선일보 희곡 부문 최일걸씨(39)와 한국일보 동시 부문 박성우씨(35·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홍보팀장), 전남일보와 광주일보 시 부문에 동시당선된 정동철씨(39·우석대 교수), 경남신문 수필 부문의 이주리씨(44·노동부 전주종합고용안정센터)다. 199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던 최씨는 199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소식을 전하더니 올해는 조선일보 희곡 부문에 당선됐다. “12월 끊임없는 폭설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완강하게 돌아앉아 창작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최씨. 신문사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고 그는 “‘세상이 날 잊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선작 ‘팽이증후군’은 독특한 형태로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핵심문제를 통렬하게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공 위에 뜬 집’과 ‘아버지 소처럼 말씀하시네’로 전남일보에, ‘전주철물점과 행복부동산 사이’로 광주일보에 당선된 정씨. 정양 우석대 교수의 강권에 못 이겨 신춘문예에 응모했다는 그는 당선소감을 두 번 쓰는 행복을 누리게 됐다. 1991년부터 전북청년문학회가 문 닫을 때까지 전북 지역 문학청년들과 함께 한 그는 늦은 등단이라며 웃었다.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무기만 믿고 문학을 등한시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든다”는 그는 “문학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믿음 안에 문학성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미역’으로 한국일보 동시 부문에 당선된 박씨는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다. 이번엔 제대로 된 동시집 하나 내고 싶어 오랫동안 준비해 오다 골라 낸 것이 덜컥 당선됐단다. “사물을 유치하게 보는 것을 동시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는 그는 “아름답고 기발한 상상력이 있는 것이 동시”라고 힘주어 말했다.‘피아노와 플루트’로 경남신문 수필 부문에 당선된 이씨는 “다른 통로보다는 꼭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싶었다”고 했다. 19년 동안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아플 때 시 하나 나오고 깨달을 때 수필 하나가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바꾸고 싶어요. 시는 포착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깨달을 때 시 한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미당 서정주는 그의 외삼촌. 2003년 「한맥」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 그는 수필보다는 시쓰기에 평생 목숨을 걸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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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6.01.03 23:02

신춘문예 당선자 인터뷰 - 열병 앓은 만큼 새열정 얻었다

“12월과 1월 달력을 찢고 싶을 정도예요. 거의 절필하다시피 신춘문예 폭풍을 지내고 나면 이번에는 계간지가 작품을 공모하기 시작하죠.”‘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려운 신춘문예.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시 부문 ‘북어’ 외 1편으로 당선된 기명숙씨(39), 수필 부문 ‘장승’의 김재희씨(55·본명 김재규), 소설 부문 ‘K2블로그’의 김애현씨(41). “요즘 여풍이 센 것 같다”며 웃었지만 아이까지 둔 이들에게 글쓰기란 쉽지않았다. 늦은 당선 소식에 그들은 “‘전북일보’라는 말을 듣고 코 끝이 찡했다”고 말했다.사는 게 허무하게 느껴지는 나이, 20여년 만에 다시 시를 쓰게됐다는 기명숙씨는 지난해 우석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발상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스무살 젊은이들 앞에서 시를 쓰고 발표하는 것이 부끄러웠다.“작품을 내기 전 안도현 교수님께 보여드렸는데, 무릎을 탁 치면서 ‘이거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평소 따뜻한 분이지만 시에서만은 냉정하리만큼 칭찬이 없는 분이어서 용기를 내봤죠.”결혼과 함께 1996년부터 전주에서 살게된 기씨의 고향은 전남 목포. ‘생선시인’이란 별명 답게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도 ‘날아다니는 꽁치’ ‘생선시장에서’ ‘북어’ 세 편이었다. 수상작 ‘북어’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시대적 상처를 떠안아야 했던 친오빠의 이야기다. 그는 “아직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오빠 이야기로 시인이 됐다”며 “문학은 자기 열등감을 치유해 줄 만큼 달콤한 것 같다”고 말했다.“글 한 줄 쓰기 위해 일주일을 몸살을 앓을 때가 있어요. 쓰여진 글을 쉽게 읽는 사람들이 많지만 단어 하나 선택하기도 만만치 않아요.”2002년 「수필과비평」을 통해 등단한 김재희씨는 신춘문예에 미련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 당선도 삼수 끝에 얻어낸 것. 그는 “이러다가는 날기를 갈망하는 박제가 되어버릴까봐 조바심이 났다”고 말했다. 1996년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를 시작해 주로 인터넷 문학사이트를 통해 공부를 해왔다는 김씨. 사이버공간에서 남자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아 필명을 쓰고있다.당선작 ‘장승’은 남편을 만나게 된 순창 복흥 장승촌으로 다녀온 추억여행에서 본 것을 일기처럼 써놓은 것이었다. 그는 “방송통신대 등록 접수증과 교과서를 무작정 품에 안겨준 남편에게 제일 먼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소설 한 편 쓰고나면 진이 많이 빠져요. 글을 쓰다보면 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있나 고민될 때도 있고,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나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죠.”전북일보 신춘문예로 전주와의 첫 인연을 맺게된 김애현씨. 올해 한국일보와 강원일보 소설 부문에도 당선된 그는 보다 열정적인 문학도들 앞에서 동시당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해박한 듯 보여도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는 서투른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글쓰기가 소통의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당선작 ‘K2블로그’ 역시 소통의 또다른 방식을 주목한 작품. 그는 “정보에 의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에피소드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신춘문예가 주는 열병을 오래도록 앓아온 이들. 오래 견뎌온 만큼 새로운 힘을 얻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길. 문학을 통해 독자들과 마주설 이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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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6.01.03 23:02

'공후'·'배소' 복원과정 한눈에

‘천년을 참아 만년 동안 운다(千忍萬鳴)’. 지난해 10월 고악기 ‘공후’와 ‘배소’를 복원, 사라진 소리를 찾아낸 (사)고악기연구회(대표 조석연)가 복원연주회 실황을 담은 CD와 악기의 역사와 복원과정을 정리한 학술지를 함께 펴냈다. 민족 최고(最古)의 시가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반주악기로, 고려시대까지 사용됐다는 일부 기록만 전할 뿐 흔적없이 사라졌던 고악기 공후. 역시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리고 악학궤범 등에 제작방법과 용례 등은 있지만 역시 사라져버린 악기 배소. 그 옛소리를 찾아낸 과정과 재현된 소리를 들려준다. CD에는 악기를 복원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악기의 아름다운 소리와 조화로움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작곡한 곡들을 담았다. 공후 독주곡과 공후와 생황합주곡, 배소삼중주, 실내악곡 등 6곡이 수록됐다. 최상화 중앙대 국악과교수와 이준호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백성기우석대교수, 한광희 한국작곡가회 부회장, 이기경씨 등이 곡을 쓰고, 조보연 이지은 홍영주 이민주 이창선 정지웅씨등이 연주자로 참여했다.공후는 그동안 들어왔던 국악기들과는 다른 맑고 청아한 음역이, 관악기인 배소는 깊은 울림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이들 악기는 전통 국악기들과의 빼어나게 조화로운 화음을 이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술지 ‘민족악기연구’ 창간호도 펴냈다. 전통악기연구 작업과정과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관심있는 이들과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원광대 남상숙교수의 ‘중국에서의 고구려악 변천 고찰’논문과 고악기연구회 조석연대표와 김혜진회원이 정리한 공후 역사와 복원과정, 배소 복원과정 등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됐으며, 공후와 배소 연주법, 악보 등도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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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수정
  • 2006.01.02 23:02

전통문화센터 신년 무대 젊은 소리꾼들이 문연다

깊은 세월의 울림은 없지만 패기와 열정이 느껴지는 소리. 득음을 향해 나가는 젊은 소리꾼들의 무대는 희망적이며, 때로는 더 큰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전주전통문화센터 대표 기획프로그램 해설이 있는 판소리. 젊은 소리꾼들의 무대로 병술년 첫 소리판을 연다. 명창소리중 장점만을 골라 창시했다는 동초제. 장단이 빠르고 발림이 적은 동편제의 우람함과 장단이 느리며 발림이 많은 서편제의 아련함을 적절하게 어우르고 있는데다 사설이 정확하고 너름새가 정교하며, 가사전달이 또렷한 동초제는 현재 오정숙명창을 중심으로 한 동초제판소리보존회에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3일부터 10, 24, 31일 등 월말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30분 전통문화센터 경업당에서 열리는 해설이 있는 젊은 판소리에는 동초제 소리를 익히고 있는 청년들이 무대에 선다. 전국 중고생 국악경연대회 1등 수상경력의 남궁남조(한국전통문화고)가 춘향가중 ‘도련님이 증서 써서 춘향모 주는데∼이별가 초앞부분’까지, 나주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최우수상 수상의 김영은(우석대 국악과)이 심청가중 ‘그때여 심봉사는∼방아타령’, 대구국악제 고등부 판소리 금상 송길화(한국전통문화고)가 춘향가 중 ‘오리정이별대목’과 흥보가중 ‘제비노정기’를, 전주대사습 학생대회 판소리 장원 출신의 조준희(중앙대 국악대학)가 춘향가중 ‘신관사또 임하는 대목, 춘향과 이도령 상봉부분’을 들려준다.류장영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장이 해설을 하고, 권혁대고수가 북채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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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수정
  • 2006.01.02 23:02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겨울방학 '청출어람' 수강생 모집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가 겨울방학 특별 프로그램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획, 수강생을 모집한다. ‘영화의 재구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16일∼18일, 정원 12명)는 중·고생과 대학생을 위한 디지털 영상편집교육 과정. 영화 장면을 재편집하면서 영상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의 최신버전을 익힐 수 있다. ‘디카로 뮤직비디오 만들다’(10일∼25일, 정원 12명)는 중·고생을 위한 과정으로 매주 화·수·목요일에 진행된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이용,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배울 수 있다.영화인을 지망하는 영화동아리와 중·고생, 대학생을 위한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 ‘웰컴 투 영시미 영화마을’(12일∼2월17일, 정원 15명)은 12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기획, 시나리오, 촬영, 편집과정 등을 배운다.종이에 그리는 만화와 컴퓨터를 활용한 만화창작 과정을 배워보는 ‘어린이 디지털 만화교실’(9일∼2월1일, 정원 12명)과 미디어로 표현하는 우리동네 이야기 ‘어린이 겨울방학 영상아카데미’(8일∼10일, 정원 25명) 등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다섯 강좌 모두 선착순으로 접수를 마감하며, 수강료는 3만원부터 8만원까지다. 단, 일부 프로그램은 90% 이상 출석하면 수강료의 일부를 되돌려준다. 문의 063) 282-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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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6.01.02 23:02

전북 서예의 맥과 멋...父子 함께 중국에 전한다

전북 서예의 맥이 중국 서단에 펼쳐진다. 강암 송성용 선생(1913∼1999)과 그의 아들 우산 송하경 성균관대 교수(64)가 중국 호북미술대학 초청을 받았다. 3일부터 16일까지 중국 호북미술대학 미술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한국서예가 송성용 송하경 부자 서화전’.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호북대 미술관 관계자들이 송교수의 서집을 보고 초청한 이번 전시는 부자가 함께하는 첫 전시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송교수는 “대륙에서 전시를 하고싶어 하시던 생전 아버지의 뜻을 살려 이번 전시를 부자전으로 꾸미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부자 서화전에는 강기가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살아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강암의 난과 죽 그림 18점과 송교수의 서예작품 30점이 전시된다. 이중 강암 선생의 작품 17점은 송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미공개 작품이다. 서용민 호북미술대학장은 “강암 선생의 작품은 굳세고 질박하면서도 전통철학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통해 새로운 예술창작으로 해석해 내고 있으며, 송교수의 작품에서는 유가의 인문기질이 넘쳐난다”며 “부자 서화전이 중국 예술가들이 한국 서예술의 전모를 이해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송교수가 보는 중국의 문인화는 사실적인 편. 현지에서 호북미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서예미학과 관련된 특강을 할 예정인 그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성 때문인지 중국의 문인화는 생활 모습이나 자연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 같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 문인화와 중국 문인화는 뚜렷히 다른 성향을 보이면서 발전해 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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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06.01.02 23:02

[전북문화 함께 일군다 맞수] ① 전북예총과 전북민예총

최근 몇 년 사이 도내 문화예술계가 양적 질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생활향상에 따라 문화적 욕구가 커진 이유가 크지만, 다른 한편에서 문화예술 전문인들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면서다.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오늘의 전북문화예술을 일구기까지 외부를 향해 함께 목소리를 합치기도 하고, 예술인간 선의의 경쟁도 펼쳤다. 특히 예술인, 예술단체간 선의의 경쟁은 지역문화예술을 질적으로 살찌우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때로 동반자로, 때로 경쟁자로 도내 문화예술계를 이끌어온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선정, 그 활약상을 대비시키는 기획을 마련했다.예술인들이 연대할 때 그 힘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연합회(회장 황병근)과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회(지회장 송만규). 두 단체의 등장은 과거 개인에 불과했던 문화예술인들의 역량을 한 데 모아 극대화시켰다. 열악한 여건에서 지역 문화예술계를 성장시켜온 전북예총과 최근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전북민예총. 전북 문화예술계 두 축을 맡고 있는 두 단체는 시대의 흐름과 태생적 기능에서 달라 라이벌 의식 또한 아주 강하다.△ 역사와 조직전북예총은 1962년 4월 김해강 시인을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하며 출범했다.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지부에서 전북연합회로 개칭한 현재는 황병근 제20대 지회장을 수장으로 국악, 연극, 음악, 무용, 문인, 건축, 미술, 사진, 연예, 영화 등 10개 단체와 각 시·군 9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통계적 수준에서 6580여명에 이르는 회원 수와 협회별 구조를 보면 전북예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민족·민주 진영의 문예운동에 있어 뛰어난 성과물을 낸 개인과 단체가 많은’ 전북 지역에서 전북민예총의 출발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북민예총은 최동현 군산대 교수를 초대회장으로 2003년 9월 창립됐으며, 2기가 출범한 현재는 송만규 회장이 이끌고 있다. 편집위원회와 정책위원회가 있으며,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사진, 영상, 풍물, 서예, 문화기획 등 10개 분과가 활동하고 있다. △ 성격과 활동예총이 문화예술인들의 이익과 관련된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민예총은 사회참여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시절 부터 소속 회원들의 창작활동과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해 온 전북예총은 43년을 거치면서 ‘민간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일반대중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단체로서 폭을 넓혀가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전라예술제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성과를 발표하고 시민들에게는 지역축제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전북민예총은 창립선언문에서 밝혔듯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민족사의 전진에 기여하는 것을 보다 큰 뜻으로 하고 있다. 민족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예술지상주의의 허상이며, 예술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유될 때 참다운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북민예총의 생각. 민족예술제와 5·18, 8·15, 동학농민운동 기념행사 등 역사의 현장과 사회적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예술계의 이슈마다 문제제기와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보수적이다는 인상이 짙은 전북예총 역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발전연구위원회를 설립하고 전북예총의 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여는 등 변화하기 위한 노력이 내부적으로 이어졌다. △ 두 단체의 올 사업전북예총과 전북민예총이 세워놓은 새해 사업을 보면 현재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두 단체 모두 사회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의 사회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개발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사회문화예술교육을 두 단체는 소외계층을 찾아가거나 교육현장에서 문화예술을 직접 가르치는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있다. 개인 창작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자신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것이다. 전북민예총은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 올해 ‘사회문화예술교육위원회’를 신설하고 사회복지시설이나 농촌, 여성, 근로자 등 소외계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전북예총은 장수와 정읍 등 문화소외지역에서 청소년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회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1.02 23:02

[신년특집]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K2블로그 (김애현)오래된 빌라 계단을 내려간다. 현관문 앞에 메모지가 붙어 있다. 잠시 다녀오마. 궁서체의 문장은 20포인트가 넘는 크기다. 용지에 출력한 문장의 양 옆을 넉넉히 잡아 자른 뒤 하트모양의 포스트잇 위에 덧붙여 놓았다. 포스트잇을 떼어내 힘껏 구긴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노란 실내등이 켜진다. 어둠이 조금 물러선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열심히 살자’라는 문구가 나를 맞는다. 다섯 자로 이뤄진 문구는 집 안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 궁서체의 글씨 중 가장 큰 것이다.갈래머리 시절 붓글씨를 잘 쓰는, 가난한 집의 맏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벼루에 이마를 찢기고 나서부터 붓을 놓았다던가. 아버지는, 그때 엄마가 붓을 놓지만 않았더라면 꽤나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엄마의 필체는 언제 붓을 쥐었는가 싶게 형편없다. 때문에 작은 달력이나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이 달의 좋은 글귀’의 전문(全文), 하다못해 금방 구겨버릴 메모까지 엄마는 컴퓨터의 글꼴인 궁서체에 의지한다. 엄마는 부모님 전상서 혹은 그때가 그리워요, 라는 문장과 어울리는 컴퓨터 글꼴 중 궁서체만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하곤 한다. 말투는 단호했으나 늘 엄마의 표정은 한껏 느슨해진다. 그 이완의 와중에서 엄마의 기억은 열네 살 적 아버지의 옆 얼굴을 훔쳐보는 동갑내기 계집애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붓으로 획을 마무리 지을 때 버릇처럼 좁혀지는 미간과 매끄러운 콧날 그리고 조금은 다부져 보이기 시작한 입매 따위. 엄마는 이제 막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그때의 계집애가 되어 잠시 동안 머문다. 고왔어, 정말 고왔어.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내 얼굴에 드리운 열네 살 적 아버지를 찾느라 아득해지곤 한다. 내 두 볼을 감싸 쥔 엄마의 손이 축축해질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열 네 살 적 얼굴을 불러온 궁서체가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나는 거실 벽으로 다가가 다섯 자의 먹빛 글씨를 노려본다. 엄마는 글씨의 크기를 백 포인트로 정하고 모두 열 장을 출력했다. 그리고 글씨를 오려내기 시작했다. 날렵한 가위 날이 궁서체의 둥근 모서리를 조금이라도 파먹으면 다른 용지를 주워들었다. 엄마는 자음과 모음을 정교하게 잘라낸 뒤 백색 하드보드지 위에 붙였다. 열심히 살자. 엄마는 그 문장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내게 말했다. 아버지가 죽기 훨씬 전부터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고 내게는 차라리 개나 물어가라지, 싶은 것이었다. 이제 그 문장은 궁서체의 그 어떤 글귀보다 강한, 삶의 정언이 되어 거실 벽에 붙어 있다. 그 앞에 서면 나는 궁서체의 다섯 자를 오려내던 가위처럼 마음 한구석에 날이 선다.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어. ‘산전수전’이라는 애칭을 달았을 때만해도 웹써핑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엄마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블로그를 꾸려가는 운영자다. 엄마의 써치(search)블로그는 서로 다른 12개의 블로그의 운영자들과 이웃을 맺고 있다. 대부분이 엄마처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중 몇은 전문산악인이라고 했다. 엄마와 그 이웃들은 두 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지식과 정보의 상호 교류를 통해 원활하고 안전한 산행을 위한 모임이었다. 최신형 산악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공동구매하는 방법이나 온라인으로 연결된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산행을 주도하는 따위의 일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실행되기도 했다. 엄마는 산악전문서적을 뒤적였고 고가의 산악장비들을 한 푼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애썼다. 그런 엄마의 써치블로그에서 단연 이웃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산행일지다. 아버지가 죽은 뒤 몇 달간 엄마는 산에 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집 안의 묵은 때를 찾아 부엌과 비좁은 베란다 그리고 두 개의 방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엄마가 손을 댄 가구나 물건들에는 내 방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도 포함되었다. 엄마는 써치블로그를 만들었고 그 즈음 다시 산에 올랐다. 이번엔 혼자였다는 산행 소감문을 써치블로그의 메인 보드 위에 올렸다. 그렇게 산행일지가 시작되었다. 산행일지를 위해 엄마는 조금씩 높고 더 가파른 산을 택했다. 새로운 산행일지가 올려질 때마다 이웃들이 덧글을 달아 그 수고로움을 칭찬해 마지않는다고 엄마는 흡족해했다. 몇 개의 산행일지는 무려 422회나 스크랩 되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엄마는 써치블로그를 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듯 정성을 쏟았다. 주기적으로 블로그의 메인바탕을 바꾸고 글씨체를 사들였다. -굴림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산지기는 은화 네 닢을 주고 개나리체를 사서 쓰는데 내가 보기엔 별루야. 제대로 된 궁서체라면 금화 열 닢을 주고라도 당장 사 버릴 텐데. 엄마는 써치블로그에 빠져들었고 궁서체에 매달렸다. 나는, 그렇게라도 엄마가 내게 드리워진 열네 살 적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길 바랐다. 갈아입은 웃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방을 나온다. 엄마의 목소리는 가볍고 경쾌하다. 부엌으로 와 냉장고 옆 달력을 바라본다. 오늘 날짜 밑에 정기검진결과일이라고 쓰인 붉은 궁서체의 메모를 읽는다. 엄마는 내가 정상이라고,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한다. 육 개월 뒤, 예약 날짜를 잡는 중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고 말한다. 너도 좋지? 엄마가 내게 물었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우리, 열심히 살자. 엄마의 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수화기의 통화마침버튼을 눌러버린다. 거실 벽에 기대 물구나무를 선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골목을 지나는 몇 개의 발소리를 듣는다. 발소리가 내 몸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넌정상이래.엄마는참기분좋다.너두좋지?무서워할것없어,피는뽑은만큼다시생겨.알아,나도잘알아.가벼운기침에도혹은미열에도너를병원으로끌고갔었다는걸.네몸구석구석을살펴본후에라야집으로돌아오곤했지.정기검진일만되면숨어버리는,어린너를찾느라꽤나부산스러웠어.그런데참묘하지?나나,느이아버지나몸속어딘가에,너를찾는데는도통한,그런장치가있는것같아.혹여기에숨어있지않을까,혹저기에가있는것은아닐까,거길가보면넌반드시그곳에있었다니까.너에대해서라면그악스러울정도로열심인우리를치떨리도록싫어한단걸잘알아.하지만생각해봐.니가누군데.너는우리에게자식이상의의미야.우리,열심히,아주열심히살자……사촌지간인 부모는 열심이라는 말을 생의 공통분모처럼 끌어안고 살았다. 아이가 생겼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갓난아기의 열손가락을 꼼꼼히 세어보았다. 백일이 지나도록 아이에 대해 안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아이를 원치 않았다. 두 번째 아이가 정상아일 것이란 확신이 서질 않아서였다. 딱 하나만, 열심히 잘 키우자. 열 손가락도 모자랄 정도로 이사를 다녔다. 가난했던 그들에게 산에 오르는 일은 유일한 사치였다. 그러니만큼 산을 오를 때 무엇이든 열심히 만끽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고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은 산에 둘러 싸여 있었다. 아이가 그들에게 물었다. 또 산에 가? 1997년 7월17일, 동성동본금혼조항인 민법 제809조 제1항의 폐지 기사가 각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간 사실혼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남녀가 법적 부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외되었다. 여느 때처럼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그들은 맞은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호-.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멀리 내던진 소리가 되돌아올 쯤 그들은 마주보고 웃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가 물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아버지는 열심히 사느라 당신 몸에 암이 생긴 것도 몰랐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아버지가 내린 결론은 단 한 가지였다. 열심히 살자, 남은 만큼.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무겁다. 순간, 두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두 무릎을 구부려 턱 가까이에 끌어당긴다. 나는 웅크린 내 몸을 버리고 어디론가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목이 따갑다. 꾸역꾸역 마른침을 삼켜보지만 기어코 눈물이 나고야 만다. 눈물 많은 건 느이 아버질 닮아서 그래. 기름진 것보다 뒷맛이 개운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엄마를 닮아서라고 아버지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왼손에 가위를 쥘 때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아버지를 닮아서라고 말한다. 재채기를 하거나 걸레를 쥐어짜는 손동작, 때론 수화기를 목과 어깨 사이에 끼고 통화하는 모습조차 엄마를 닮아서였거나 아버지를 빼다 박은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부분 부분을 뚝뚝 떼어내 빚은 사람처럼, 그래서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다. 너, 생리하지, 맞지?전선생이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다. 짐작컨대 전선생은 오늘 일을 나의 지독한 생리증후군이 빚은 순간의 실수라고 회원들에게 둘러댄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던 몇몇 회원들의 얼굴표정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 수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늘 일에 대한 목격담을 게시판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오전반 수영강사들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처지이고 보면 관장에게 문책을 받는 일에 전선생은 느긋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임신 중인 그녀는 출산 후 다시 라인 배정을 받는 일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소한 입소문에도 회원들이 술렁여. 내가 부른 배로 물속에 있는 게 편해서 그런 줄 아냐? 다 회원관리 차원에서라고. 제발 회원들한테 나긋나긋하게 좀 굴어. 내가 보기에 그 여자 꽤나 열심이던데. 누가 너더러 그 여자 수영선수 만들라던?처음, 나는 여자를 전선생의 라인으로 올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전선생이 맡고 있는 마스터즈반은 모두 고정멤버들이었다. 아무나 올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결속되어 있어 텃세가 심한 편이었다. 두 달에 한 번씩 회원들의 라인 이동이 있었지만 전선생의 묵인 아래 마스터즈반은 늘 제외되었다. 내가 맡고 있는 중급반 두 개의 라인은 이미 인원제한 수를 넘겼다. 초급반이라고 사정이 나을 것도 없지만 애초 상급반으로 가야할 여자를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선생이 내 라인으로 여자를 들이라는 사인을 보냈다. 물을 차는 여자의 발동작은 힘찼다. 여자가 반대편 라인 끝을 향해 헤엄쳐 가는 동안 끊임없이 물이 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십 분의 수업 동안 여자는 지칠 줄 몰랐다. 몇 몇 회원들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며 수경을 벗어 올리고 여자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두 달이 되었을 즈음 여자는 라인의 속도를 조절하는 맨 앞 주자가 되었다. 회원들은 여자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강한 발힘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회원들이 기꺼이 여자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다이빙실력 때문이었다. 두 다리 쭉 펴고 하나. 머리 숙이며 둘. 두 팔은 귀 뒤에. 넷, 점프! 다이빙대 위에 올라선 여자는 두 다리를 바들거릴 뿐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여자는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순서를 다른 회원들에게 내주었다. 여자를 뒤에 남겨두고 거침없이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회원들은 그 날만큼 그녀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여자는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게 커피가 든 종이컵이나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음료수 캔을 내밀곤 했다. 나는 자판기가 있는 복도 한쪽에 서서 때론 간이의자에 앉아 여자가 준 음료수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 여자는 제가 건넨 음료의 양만큼, 꼭 그만큼 만의 말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내 곁에서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종이컵의 윗부분부터 조금씩 접어 구기거나 빈 캔의 중간 부분을 손톱으로 퉁기면 무슨 신호라도 받은 듯 말을 서둘러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에 대해서 나는, 쿨해서 나쁠 거야 없지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나를 기다리는 여자가 싫지도 좋지도 않은, 관계로 치자면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지만 그 또한 상관없었다. 알 수 없어요, 왜 그런지 몰라요, 혹은 그거 아세요, 선생님? 하는 따위의 말들이 여자가 건넨 음료를 마시는 동안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이었다. 여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란 대략 십분 정도였다. 그 시간에 알맞게 음료를 나눠 마시는 일이 다소 불편하기는 했으나 나는 여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것으로 그 불편함을 상쇄시키곤 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주어진 시간에 맞춰 음료를 나눠 마시는 일 같은, 다소 불편함과는 달랐다. 빼버리면 그만일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사소하고 미미했으나 진원지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코카투. -어머, 걜 기억하시는구나.그 날 여자는,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느라 정작 코카투에 대해 이렇다 할 얘기도 없이 자리를 떴다. 얼마 뒤 나는 여자의 코카투가 유황앵무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요, 나한테.웃고 있는 여자에게 나는 말하는 새였냐고 물었다. -남편하고 아들은 가끔 걜 보고 새대가리라고 놀려요. 그런데 선생님, 그거 아세요? 꼭 그게 나한테 하는 말 같아요. 왜 그런지 몰라요. 그냥 기분이 나빠져요.코카투는 그녀만을 사랑하는 새였다. 나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거나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코카투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행복할까, 궁금할 뿐이었다. 사랑이라니. 그 감정에 대해서라면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했고 나를 낳았으니까.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잔뜩 구겨진 종이컵에 혹은 우그러진 빈 캔의 어딘가에 뾰족한 새의 부리가 숨어 있는 듯 그것을 움켜쥔 내 손이 자꾸만 아팠다. 여자는 물속으로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면서도 끈질기게 다이빙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려요. 안 쳐다보면 좀 나을까 싶은 생각이 있나 봐요, 나한테.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물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나는 시무룩해진 여자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래. 왜 다이빙대 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냐구. 다른 애들처럼만 하란 말야. 네 건강을 위해서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되니. 느이 아버지나 나나 바라는 건 그것뿐야. 수영이 그렇게 싫으면 그만 둬. 다른 운동을 찾아보면 될 거야. 그게 아니라면 뛰어들어. 안 그러면 선생님한테 너를 밀어 넣으라고 말할 거야. 알았니? 알았으면 대답 좀 해봐! 나는 질끈 묶은 머리다발 끝에서 물방울이 목덜미로 떨어지는 것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열심히 할게요, 엄마.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품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했다. 두 다리 쭉 펴고 하나. 머리 숙이며 둘. 두 팔은 귀 뒤에. 넷, 점프! 여자는 다이빙대 위에서 떨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힘껏 밀어버렸다.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여자는 그 말이 내 미간을 저절로 찌푸리게 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K2블로그로 향한다. 스테파노가 다녀간 모양이다. 메인보드에 올려놓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 밑의 덧글을 클릭한다. 아버지가 잘생기셨다. 어머니가 반할 만하시다. 언제 어머니 사진도 올려봐라. 그땐 아버지의 사진처럼 거꾸로 올리지 말길. 거꾸로 된 사진을 보느라 꽤나 목이 아팠다. 10:02 스테파노.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찍은 것이다. 사진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엄마는 아버지에게 화장을 해주었다. 숱이 드문 이마 쪽으로 가지런히 머리칼을 내려주고 거무튀튀한 아버지의 얼굴 위에 분첩을 토닥였다. 두 눈썹에 검은색 아이펜슬로 숱을 채워 넣었다. 입술에 붉은색 루주를 아주 약하게 펴 바르자 완연한 병색이 조금은 가시는 듯 보였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며 곱다, 곱다, 연신 중얼거렸다. 스테파노, 그때 엄마는 정말 아버지의 얼굴이 고왔던 것일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안부게시판을 클릭한다. K2라기에 산악동호회인 줄 알았답니다. 둘러봐도 산은 없는데 산속처럼 춥네요. 처음 방문 기념으로 사진 하나 퍼드리고 가요. K2봉이 있는 카람코람 산맥의 사진이랍니다. 마음에 쏘옥, 드시길. 14:08 쁘띠.우연한, 랜덤방문자치곤 꽤나 수다스럽다. 아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제 블로그 홍보에 열을 올리는 블로거일 것이다. 그러나 쁘띠의 초대는 뜻밖이다. 이제껏 내게 너그러웠던 블로거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K2블로그에 다녀간 사람들은 대부분 산과 무관하지 않다. K2라는 이름 때문이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K2블로그는 여행과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며 그로 인해 방문자 대부분이 산과 관련된 블로거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보아하니 사연 많은 사람? 나, 산에 간다. 안 좋은 감정이 있으면 내 배낭에 쑤셔 넣어라. 대신 버려 줄 테니. 10:20 산사의 풍경소리. 대체 무슨 블로그가 이 모양이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블로그에 부모 욕이나 하고. 너 같은 자식 낳을까봐 결혼 안 할란다. 22: 38 국밥.단지 몇 줄의 글을 읽는 수고로움만으로도 K2블로그가 어떤 곳인지를 단박에 깨닫게 된 블로거들이 남기고 간 덧글 또한 내겐 새삼스러울 것 없다. 일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스테파노의 왜 K2인가, 하는 물음은 쁘띠의 초대처럼 뜻밖이었다. 그제야 아무도 내게 그렇게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스테파노의 질문에 K2는 같은 성씨의 내 부모를 일컫는다는 덧글을 달았다. 그렇다면 당신도 K이다. 적어도 K3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K2인 까닭은 무엇인가. 19:08 스테파노.당신은 누구냐고 스테파노는 내게 묻고 있었다. -너는 우리에게 자식 이상의 의미야. 그걸 모르겠니? 내가 먹은 온갖 종류의 약들은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잠복해 있을지 모를 어떤 병적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때론 위벽이 헐었고 장이 탈을 일으켰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건넨 약사발을 받아들 때마다 혹은 알약이 든 불투명한 약봉지의 윗부분을 찢어내면서 나는 차라리 병들고 싶었다. 기형의 얼굴로 피가 멈추지 않는 몸의 어딘가를 보란 듯이 내밀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들의 불안이 끊임없는 집착으로 환원되는 매 순간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주기적인 종합검진 결과는 늘 정상이었다. 그 날 하루만큼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들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목덜미가 써늘해졌다. 나는 나일 수 없었다. 그들의 사랑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로서 존재해야 했다. 나는, 내가 오로지 나여야 하는 이유와 내가 나만일 수 없는 이유 사이에서 부대꼈다. 끝내 찾을 수 없는 병든 유전자에 대한 그들의 집착처럼 나 또한, 나를 나이게 만드는 단 하나의 유전자에 대해 집착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K2블로그를 만들었다고 스테파노에게 덧글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K2블로그에 스테파노가 다녀갔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었을 때 산은 늘 내 발바닥에 있었다. 내 발바닥은 이제껏 올랐던 산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K2블로그에는 산이 없다. 그러나 당신이 이곳에 쏟아놓은 비명소리와 저주와 욕설은 산의 거친 살갗처럼 내겐 익숙하다. 그래서 이곳에 다녀가면 산에 올랐던 것처럼 마음 어딘가에 물집이 잡히고 상처가 남는다. 16:42 스테파노.스테파노는 덧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부려 두었다. 사진파일을 클릭하자 산이 열렸다. 멀게 보이는 산은 보기 좋은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저기 어디에 험준한 산등성이가 있을까, 싶었다. 산사나이들은 동료들이 크레바스(crevasse)에 빠져 숨질 경우 주검을 건지지 않고 그냥 둔다. 하지만 그 주검은 등반 루트 가까이에 있었다. 휴먼원정대는 8000미터 고산에서 주검을 회수하는 등반사 최초의 프로젝트였다. 자칫 살아있는 생명과 맞바꿀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두 구의 주검을 산에 남겨둔 채 말이다. 그들은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살갗 혹은 동상이 걸린 몇 개의 발가락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흐느낌이 길다. 11:23 스테파노. 스테파노의 덧글을 읽으며 나는 문득, 엄마가 신문의 낱장을 가벼이 들추며 간간히 혀를 차던 모습을 떠올렸다. -쯧쯧, 그토록 애썼건만. 기어코 산이 품어버린 모양이야. 죽은 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얼어 죽은 시체가 아니야. 산인 거야. 산이 품어버린 것은 모두 산인 거거든. 그런데 말야, 너. 이 달 초아흐레가 아버지 기일인 거 잊지 않았지?새 모이는 꼭 챙겨야 한다고 말한 뒤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새로운 산행일지를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며칠 전부터 엄마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기일은 잊고 있었던 나는 기일과 겹친 엄마의 산행이 난데없고 당황스럽다. 내가 아버지의 기일마다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엄마는 잊고 있었던 것일까. 먼지로 뿌연 사무실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둔덕이 멀고 희미하게 느껴진다. 재색비둘기 몇 마리가 그 위에 내려앉는다. -허리 아파 죽겠다. 뭐에 삐쳤는지 며칠째 느이 아버지가 부리로 내 허리를 콕콕 쪼아댄다, 글쎄.엄마는 죽은 아버지가 새가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버지의 제사상에는 나물로 가득 채워지고 한쪽에는 새 모이를 담은 조그만 종지가 곁들여진다.전선생이 가볍게 내 어깨를 친다. 나는 전선생의 불룩한 배를 내려다본다. 새가 된 아버지라면 봉분은 꼭 저만큼일 것 같다. 나는 전선생에게 오늘이 아버지의 기일이라고 말한다. 조금 일찍 퇴근해도 되냐고 덧붙여 묻는다. 전선생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수련관을 나오자 걸음을 늦춘다. 오늘 하룻밤을 지낼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괜한 바람만 잔뜩 분다. 검은 부츠 위로 먼지가 앉는다. 뒤에서 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담 옆으로 바짝 붙어 걷는다. 베이지색 중형차가 내 옆에 멈춰 선다. 짙은 색으로 썬텐이 된 차창이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의 얼굴이 물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것 같다. “밥 먹으러 가요, 우리.”차 안에 은근한 향내가 감돈다. 흘끗,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본다. 내게 음료수를 내밀던 때와는 다른, 어딘가 모르게 다부진 모습이다. 여자가 차를 세운 곳은 수련관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이다. 차에서 내려 잠시 난감해진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낼 요령이었지 여자의 집에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걷는다. 여자를 부를까 망설이다가 내킨 기분으로 따라 걷는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여자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거실에 놓인 몇 개의 가구들과 거실 창 양옆으로 밀쳐둔 색다른 두 겹의 실크커튼, 바닥에 깔린 연한 핑크색 카펫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검은색 교자상 하나. 여자의 집에서 오래된 것이라고는 베란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과 그녀뿐인 것 같다. 낯선 눈길이 불안한 듯 코카투는 새장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방에서 나온 여자가 상 아래에 방석을 내려놓으며 편히 앉으라고 말한다. “남편은 출장 중이고 때맞춘 것처럼 애는 여행을 떠났어요. 하긴 셋이 모여 있어도 우리 집처럼 조용할까. 이 주 전인가, 바로 아래층에 새 사람들이 이사를 왔는데 고만고만한 어린 남자 애들이 둘이더라구요. 열 한 시가 넘어도 애들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선생님, 그거 알아요? 나는 그게 싫지 않아요.”부엌으로 간 여자의 뒷모습이 부산스러워 보인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는 박제처럼 조용하다. 여자가 여러 번 음식을 나른다. 둘이 먹기엔 양과 종류가 많은 상차림이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속이 더부룩해진다. 여자가 내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고는 마지막 쟁반, 외치며 마주 앉는다. 밥은 쌀알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잡곡이 섞여 있다. 여자가 젓가락을 쥔 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주춤거리며 젓가락을 들었지만 정작 팔을 뻗지 못한다.“잡곡밥 싫으세요? 이를 어째. 잠깐 기다리실래요, 쌀밥 할게요. 금방이면 돼요.”일어서려던 여자에게 서둘러 손사래를 친다. 여자가 다시 앉으며 어색하게 웃는다. “불편하신가 보다. 그러실 것 없는데. 그냥 밥 한 끼 대접하려고 그런 거예요. 이왕 그럴 거면 내 집에서 하자, 그런 건데. 혹시 그때 일 때문에 그런 거면 그냥 잊으세요. 나도 가끔 남편을 밀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다 큰 애지만 등짝을 후려치고 싶을 때도 많고요. 그 심정……, 말로 표현하기는 뭣한데 그럴 때 있어요.”문득 생각난 듯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용도실에서 나온 여자의 손에 천주머니가 들려 있다. 여자가 새장 문을 연다. 코카투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여자는 주머니 안에서 꺼낸 것을 새장 안의 먹이통 안에 부려 놓는다. “사랑해, 사랑해.”여자의 목소리로 코카투가 말한다. 새장 문을 닫아걸고 여자는 창살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친다. 그리고 어서 먹으라고 말한다. 주머니를 든 채 여자가 내게로 걸어온다. 상 위에 주머니를 내려놓고 여자가 수저를 든다. 그때 인터폰이 울린다. 통화를 마친 여자는 내게 잠깐만요, 말하고는 현관문을 나선다. 상 위에 놓인 주머니를 내 앞으로 가져와 그 안을 들여다본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 새 전용 인공사료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주머니를 들고 일어선다. 내가 다가가자 코카투는 다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새장 문을 조심스레 열고 움켜쥔 작은 알갱이들을 통 안에 넣는다. “사랑해? 사랑해?”흠칫 놀라 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요.언젠가 여자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돌아온 여자가 편지봉투를 상 위에 내려놓고 밥을 먹는다. “저 새는, 그러니까……저 새가 하는 말…….” “사랑한다는 말?”여자는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본다. “놀라셨어요? 언젠가 내가 말했는데. 그런데 선생님. 쟤, 참 예쁘죠?”나는 입을 다문다. 여자는 허기진 듯 밥을 먹는다. 한쪽 볼이 불룩하다. 밥을 먹는 여자의 얼굴 위로 자꾸만 새장 앞에 선 그녀가 어룽댄다. 코카투에게 먹이를 주며 여자는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 사랑해? 날……사랑해? 코카투가 자신의 목소리로 되묻는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는 먹이통에서 조금 떨어진 채 가만히 있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코카투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밥을 먹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을 우물거리며 여자가 나를 쳐다본다. 여자는 쥐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접시 몇 개를 내 앞으로 옮겨놓는다. 많이 드시라고 여자가 내게 말하며 웃는다. 울컥, 목이 멘다. 물을 마셔보지만 부질없다. 뾰족한 것이 자꾸만 두 눈가를 콕콕, 쪼아댄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눈물이 많다고 여자에게 말한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자에게 인공사료 말고 새 모이를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다.“새 기르세요?” 계단을 내딛으며 현관문을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현관문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잠시 다녀오마. 궁서체로 쓰인 문구가 덧붙여 있었던 분홍색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을 떠올린다. 열쇠를 꽂고 손잡이를 비튼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등이 켜지고 늘 그렇듯 열심히 살자, 라는 문구가 보인다. 쇼핑백을 내려놓고 거실 벽을 향해 걷는다. 실내등이 꺼진다. 더딘 걸음으로 걸어가 거실 벽을 더듬는다. 하드보드지의 귀퉁이를 찾는다. 각진 모서리에 손톱 끝을 드민다. 조금씩 틈을 벌린다.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 두 개를 넣자 벽에 붙은 하드보드지 한 쪽이 들뜬다. 나는 힘껏 하드보드지를 떼어낸다. 보지 않고도 거뜬히 그렇게 살아낼 일이라고 중얼거리며 거실 불을 켠다. 쇼핑백 안에서 세 개의 베주머니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주머니를 연다. 새 모이를 조금씩 덜어내 종지에 담는다. 나는 베주머니를 옆으로 밀쳐두고 카메라를 든다. 세 개의 종지가 액정화면에 가득 차도록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K2블로그로 향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들여다본다. 화면 속에 세 개의 종지가 또렷하다. K2블로그로 사진을 옮긴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 밑에 새 모이가 담긴 세 개의 종지가 놓인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가 된 아버지가 뾰족한 부리로 내 눈가를 콕콕 쪼아댄다. 안부게시판의 N(new)표시가 깜박인다. 스테파노가 다녀갔다. 아버지의 기일이라는 짤막한 문구 아래 사진이 있다. 사진을 클릭한다. 음식이 즐비한 제사상이다. 나는 스테파노가 두고 간 사진 밑에 덧글을 단다.스테파노. 코카투가 내게 묻는다. 사랑해? 사랑해?라고 아버지가 내 목소리로 묻는다. 새 모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만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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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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