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꽃 이름, 팔레스타인
올해도, 고향엔 칡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계집 아이 몇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놉니다. 고무줄이 튕튕 울릴 때마다. 호박이며, 박이며, 수세미 꽃이 핍니다. 어느 새 검정 고무줄에도 꽃이 피어, 달맞이꽃으로 피어, 계집 아이 몇은 노래를 부르며 툭툭 튀어 오릅니다. 미사일 날리듯양지바른 골목길 벽돌 속에 아비와 오래비를 묻고 옵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마다 넘쳐나는데 칡넝쿨 얽힌 이국의 틈으로 어김없이 달은 떠오릅니다. 어김없이 총알은 밀알처럼 떨어집니다.폭격기가 지나간 바위 밑 두 눈만 깜박이다, 꿈벅거리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버린 못생긴 계집 아이는 어느 새 어미가 되고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 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군화에도 꽃이 피었습니다.바위를 덮고, 돌산 넘쳐나는 꽃이 피었습니다. 동방 외간 사내가 보내는 꽃, 생리를 하고, 배란이 지나 생산을 하는 동안에도 그 꽃이 신화(神話)보다 더 질긴 꽃이었음을, 옆구리에 낀 아이가 그 꽃을 닮았다는 것을 몰랐어도 그녀는 좋았습니다./경종호"부족한 삶 '우직한 소'로 보답" 경종호씨 당선소감당선이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 생각한, 그리고 묵묵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 '가족'. 아버지, 어머니. 한 삶을 흙에서 시작하고, 그 흙에서 아들, 딸을 키워오신, 그렇게 내 삶의 틀을 이미 다지고, 바탕을 마련하셨던 김제 평야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형님보다도 형수님, 누님과 아우. 어느 땐 단단한 울타리였다가, 어느 땐 어린 시절 마당 한 가운데 멍석 같은. 꼭 그렇게 지푸라기만큼 질겨 어느 순간, 순간이라도 내가 꼭 잡을 수 있는 끈 내밀어 주셨던 '가족'. 그리고 세 살, 우리 은솔이. 내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길을 꼭 그렇게 나도 보여주어야 하는. 그러나 가족이지 못하는 가족이라는 뿌연 안개 같은 이 순간에 또 하나의 가족이, 내 안에 꼭꼭 숨어 있던 문학이 부끄러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 스물 여덟에 처음 입학한 대학, 그리고 글바람 문학회. 내 삼십대의 빈틈마다 촘촘히 파고들었던 목소리. 종필 형, 찬홍 형, 장근, 명철, 정희, 병희, 청필, 석우, 진만, 상렬이. 그리고 아직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시를 담고 살았다는 것으로 이 부족한 삶을 변명처럼 대신해 드리고 싶은, 오수의 장작불이 그리운 이용숙 선생님. 지도 교수님이신 김용재 선생님. 그리고 항상 제 주위에서 저보다 저를 더 위해주는 선배님, 친구, 내가 근무하는 시골 작은 학교의 동료 선생님까지. 특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뻐끔히 바라보는 우리 반 아홉명의 아이들. 항상 곁에 있어도 그리움 사람들로 인해 행복한 오늘.'가족'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심장에서 가까운 허파 혹은 식도 부근에서 내 마음에서 흐르는 혈액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을, 새끼 꼬듯 꼬아도 보고, 멍석처럼 엮어도 보고픈 마음. 그래서 내 마음의 불 더 지피고 싶은.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를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신 송하선 · 복효근 선생님께 지금의 이 마음 묵묵히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 우직한 소가 되겠다는 것으로 대신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경종호 약력>1968년 전북 김제 출생전주교육대학교 졸업현 익산용북초등학교 교사심사평그 여느 해보다 응모작이 많고 또한 그만큼 우수한 작품도 많았다. 긴 시간 논의 끝에 경종호의 ‘꽃 이름, 팔레스타인’과 김윤경의 ‘마이너스통장으로 지은 집’, 문정희의 ‘길들여지는 슬픔에 대하여’중에서 당선작을 내기로 하였다.김윤경은 그늘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 또한 매끄러웠으나 오히려 그 점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평이하고 무난하지만 신인다운 독특한 개성이 아쉬웠다.문정희는, 밝음(문명)만을 추구하고 어둠과 밤을 타부시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삶에 있어서 ‘어둠’(밤, 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부에서 유사한 예를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고 결국 그것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지 못하여 구조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종호의 작품은 그 차분한 전개부터가 눈길을 끌었으며 독자의 생각을 오래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었다. 우선 기법면에서 참신하다. 전쟁상황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한 여자아이를 먼 이국의 아이로 타자화 시키지 않고, 한국전쟁후 한반도의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하는 한민족의 계집아이에 오버랩 시켜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님을 효과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시사성 있는 문제,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시대와 동시대인의 아픔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비단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이라크전과 같은 전쟁에 대한 시적 인식을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심사를 하여 신인을 발굴한다는 것은 ‘샘’을 파는 것과 유사하다. 샘은 그 수질이 우수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몇 바가지 퍼내면 곧 그 수원이 고갈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용솟음하며 냇물을 이루고 강에 이어지는 도도한 흐름을 이루어내야 한다. 따라서 당선작 외에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면밀히 살펴서 등단 이후에도 우리시단을 더욱 풍부하게 일궈낼 역량과 가능성이 있는가, 가늠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종호의 작품에서 갈고 닦아온 내공을 읽을 수 있어 당선작으로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큰 물줄기를 이루어내기를 기원한다.심사위원송하선(시인), 복효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