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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정리 연구서 '전라북도 농악·민요·만가'

농악의 놀이적인 기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주요 무형문화재 급의 농악들은 전승지역과 전승 집단들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다. 반면, 민요는 지방 및 중앙 무형문화재 지정 등을 통해 보존·전승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농악의 다양성 확보와 민요의 문화재 지정과 이를 통한 보존 대책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전라북도가 전통문화예술의 체계적 정리를 통해 전북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중장기 문화예술정책 수립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발간한 전통문화예술정리 연구서 ‘전라북도 농악·민요·만가’가 나왔다.사단법인 마당(이사장 정웅기)이 수행한 이번 연구의 조사기간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양진성 임실필봉문화학교 교장이 농악연구원을, 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민요·만가연구원을 맡았다.지역별·굿패별 전승 상황 및 공연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전북의 농악’은 기존 조사 자료와 내용을 바탕으로 전북 농악의 특징을 대표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지역과 농악에 대해 재조사하고 보존과 변화의 양상을 최대한 드러냈다. 토착적인 마을농악이 점점 사라지고 문화재로 지정된 농악들이 지역의 토착 마을농악을 대신하는 추세여서 지역전통의 농악을 발굴하고 보존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제보자 소개 중심으로 이뤄진 ‘전북의 민요·만가’는 농사관행 및 상례기관, 사설 및 악보 등을 자세히 실었다. 만가의 경우 전통장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있어 수요가 여전히 많고 그에 따라 지금도 새로운 가창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구에서 1백87여곡이 채보되고 음악 내용을 별도로 분석·기술한 것은 이후 심도있는 음악적 연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성과다. 연구책임자 김익두 전북대 교수는 “전승현장의 급격한 변모와 소멸 등 극도록 악화된 민요와 농악의 전승현장을 고려한다면 이번 연구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않다”며 “전북 농악과 민요의 오디오 자료 및 비디오 자료 정리작업, 이를 통한 문화상품 개발 작업이 하루 빨리 계획되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문화예술정리’는 전북도가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3년에 걸쳐 8개 분야를 정리하고 있는 프로젝트. 2003년 정가, 정악, 마을지킴이 발간을 시작으로 올해 기악과 마을굿 정리를 남겨두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01.03 23:02

'이건용 VS 고승욱' 서울 쌈지스페이스 전시

세대간의 소통과 생산적인 대화를 모색하는 쌈지스페이스 연례기획 타이틀 매치 세번째 전시에 군산대 이건용 교수(63)가 초대됐다. 7일부터 2월 17일까지 서울 쌈지스페이스 전시장에서 열리는 ‘이건용 VS 고승욱’. 원로작가의 현재 작업을 신진 청년작가와의 대결 구조 속에 위치시키는 이번 기획에 20세기 아방가르드 이교수의 상대작가로는 21세기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고승욱씨(37)가 선정됐다. 언어분석적인 유희로 특유의 풍자적·비판적 시각을 담아온 고씨는 우리 사회가 잃어가는 인본주의를 시사하는 작품으로 최근 아파트 재개발로 사용이 중단된 부지에서 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은 ‘노는 땅에서 놀기’를 발표했다. 한국미술사에서 이벤트, 설치, 개념미술의 도입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교수와 젊은 작가 고씨의 만남은 실험적 작품세계에 대한 비교와 시대정신의 변화를 보여준다.회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일궈내는 두 작가의 작업을 시대별로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서로의 작업을 패러디해 더욱 흥미롭다. 이교수는 고씨의 ‘노는 땅에서 놀기’를, 고씨는 이교수의 ‘신체드로잉’을 재해석해 개성있는 작가정신도 발견할 수 있다.한국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고발하는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선도 살아있다. 이교수는 우리 사회가 실업자들에게 가했던 폭언과 불황으로 부도가 지속되는 현 경제구조를 명제화하는 문장을 부착한 설치작업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고씨는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의 불균형한 관계를 비판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들은 개인의 경험을 들려주고 시각을 교류한다는 의미로 된장과 케첩을 서로에게 발라주는 스튜디오 퍼포먼스를 열었다. 당시 기록사진이 이번 전시에서 슬라이드쇼로 공개될 예정.31일 오후 5시 전시장에서는 토론회도 마련된다. 평론가 이영철, 정헌이씨가 참여, ‘이건용과 고승욱의 작업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제 이슈를 논한다’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01.03 23:02

겨울방학 문화의집 프로그램 풍성

겨울방학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 문화의집들이 풍성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손짓하고 있다. 수강료가 없거나 아주 저렴해 이용하는데 부담이 없다. 대부분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어 서두르는 게 좋다. 전주YWCA청소년문화의집은 3일부터 유치부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문화강좌를 잇따라 연다. 성장체조, 과학나라, 파워스피치, POP예쁜글씨, 독서논술지도, 한자자격증반, 재즈 댄스 등. 주 1∼5회 수업이며, 과정은 1주에서 12주까지 다양하다. 문의 063) 273-5501우아문화의집이 초등학생을 위한 겨울방학 특강을 마련했다. 비즈(구슬)공예, 작가교실, 주산교실이 3일 개강을 시작해 2월 말까지 진행된다. 7일부터는 동물 모양의 프레임을 골격으로 이끼를 그 안에 채워 겉모양을 가다듬는 ‘토피어리’ 프로그램이 문을 연다. 문의 245-8455 전주완산청소년문화의집에서는 ‘영어동요 배우기’가 4일 첫 개강을 시작으로 5일 어린이 난타, 6일 한지교실, 11일 컴퓨터 기초교실 등의 과목이 개설된다. 이중 한지교실(수강료 5천원)을 제외한 3개 과목은 무료. 선착순 모집한다. 문의 226-5193아중문화의집이 ‘전통소리체험’과 ‘새해 달력 만들기’로 을유년을 연다. 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아중문화의집 앞마당. 전통악기를 전시하고 직접 연주해 볼 수도 있는 ‘전통소리체험’에서는 문묘제례악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악기 ‘훈’을 찰흙을 구워 직접 만들어 본다. 판화 탁본을 이용한 2005년 ‘새해 달력 만들기’는 가족과 함께 달력을 만들면서 새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 참가비는 무료, 각각 선착순 50명을 모집한다. 아중문화의집에서는 3일부터 21일까지 전통악기전시와 전통악기체험마당이 마련된다. 문의 241-1123전주효자문화의집에서는 10일부터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특강들이 열린다. 종이접기, 키크는 요가, 영어로 읽는 동화, 유아 EQ재즈댄스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풍성하다. 이밖에 대금, 오카리나, 부부댄스스포츠, 유럽피안 꽃꽃이 등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강좌도 마련돼 있다. 문의 228-9076

  • 문화일반
  • 안태성
  • 2005.01.03 23:02

을유년 새해 달라지는 문화유산·예술계

새해가 되면 이것 저것 달라지는 것이 많다. 문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문화재 관련 부분.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이 발효되면서 익산 등 4개 도시에 대한 고도 보존사업이 본격화되고 문화재 보존과 관리 기준이 한층 강화된다. 지역문화진흥법도 상반기중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굵직한 현안들로 올 한해동안 문화예술계에는 크고 작은 부침이 예상된다.△고도 보존 본격 등 문화재관리 강화 3월5일부터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이 발효돼 익산, 경주, 부여, 공주 등 4개 고도(古都) 지역에 대한 기초조사가 실시된다. 이를 토대로 특별보존지구, 역사문화환경지구 등의 지구 지정과 함께 법률에 근거한 고도보존사업이 시행된다. 현재 문화재위원회 임기가 만료되는 4월에는 문화재위원회도 대폭 개편될 전망이다. 근대문화유산 관련 전담부서인 ‘근대문화재분과’가 신설돼 건축·미술·공예 등의 분야별 전문가를 선정, 근대문화유산의 등록 보존 및 활용방안을 심의하게 된다.또한 국회에 상정된 문화재보호법이 통과되면 관련 제도에 대한 후속 조치도 잇따를 전망이다.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시험제도가 개선되고, 등록문화재 등록대상도 확대된다. 또한 등록문화재의 제한적 현상변경 허가제도가 도입되고, 등록 제고를 위한 인센티브도 부여된다. 이밖에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보고서 제출이 의무화됨에 따라 관련 규정 위반시 행정제재를 받게 된다. 발굴 매장문화재 공고 절차가 개선되고, 보상원칙과 함께 포상금 지급근거도 명시된다.△공공 공연장 무대예술전문인 의무배치1월부터는 공공 공연장의 전문인력 보강이 한층 강화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객석 500석, 바닥면적 500㎡ 이상 공공 공연장은 무대기계, 무대조명, 무대음향 등 무대예술전문인을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1000석 이상은 1급, 800석 이상은 2급, 500석 이상은 3급 이상의 무대기계전문인, 무대조명전문인, 무대음향전문인을 각 1인씩 고용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취약한 재정 여건과 전문 인력 유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공공 공연장들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전망이어서 무대예술 전문인 확보를 위한 후속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추진지역 문화분권 달성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역문화진흥법’이 올 상반기 제정 추진 중에 있다.자율·분권의 기조 아래 특색있는 지역 문화 진흥과 문화를 통한 국가균형발전 지원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는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의 문화예술 심의기구와 지원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문화예술위원회 구성’을 주요 골자로 지역문화관련 권한의 지방 및 민간이양,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그동안 수도권 중심의 문화예술 발전이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보고, 지역 예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적·법적 근거로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문화관광부내에는 지역문화진흥법 연내 제정을 목표로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유료화지난해 10월 개관을 기념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무료 개방했던 전라북도도립미술관이 1월부터 관람료를 받는다. 입장료는 어른 7백원, 청소년·군인 5백원, 어린이 3백원. 7세미만 어린이와 65세이상 노인,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등은 무료다.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다. 올해부터 미술에 대한 이론 및 실기강좌, 어린이 미술관, 미술관 영화상영 등 미술관 문화학교와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안태성
  • 2005.01.03 23:02

타지역 신춘문예 당선 전북출신들

문예지를 통해 수많은 신인들이 배출되고 인터넷을 통해 유명작가가 되는 시대. 그러나 오랫동안 앓아왔던 신춘문예 열병의 끝. 줄기차게 두드리던 문이 열린 신진 문학인들에게 을유년 닭울음 소리는 더 힘차고 반가웠을 것이다.전북일보를 비롯한 전국의 각 일간지들이 신춘문예 당선자를 발표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품이 크게 늘어난 올해, 전북출신이거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학지망생들의 진출이 돋보였다. 중앙지를 비롯해 다른 지역 일간지를 통해 등단한 신인들은 5개 부문 6명. 지난해 보다 좋은 성과다. 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장창영씨(38, 전주대 교양학부 객원교수)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장씨는 올해 서울신문 시조 부문에서 ‘동백, 몸이 열릴 때’로 당선됐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몸 안에 갇혀있던 무엇인가가 목청을 돋우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신춘문예에 대한 미련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줄곧 시와 시조, 평론을 함께 공부해 온 그에게 신춘문예는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고 자극이 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이번 당선으로 지금까지 글과의 인연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또다시 큰 빚을 지게 됐다”는 그는 문학을 공부 삼는 일에 다시한번 의지를 다졌다. 장수가 고향인 윤석정씨(33)는 경향신문 시 부문에 당선됐다. 당선작은 ‘오페라 미용실’. “재현의 세계와 표현, 언어의 세계가 잘 어울려 아주 맛있게 배합된 시의 맛을 그득하게 한 상(床) 잘 차려 놓았다”평을 받았다.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 현재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인 그에게 대학시절 부터 활동해 온 ‘원광문학회’는 생각만으로도 치열해지는 곳.“고교시절 유일한 친구가 시였다”는 윤씨는 시는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소중한 존재라고 전했다. “시가 내 곁에 그냥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부터 절망을 알게 됐다”는 그에게 당선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은 것. 그만큼 간절히 기다렸던 신춘문예의 꿈을 올해 이루었다. 전주 출신 조강석씨(36)는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서 ‘생의 저인망식 구인-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로 당선됐다. 이성복 시인의 최근 시집을 다룬 조씨는 기성 평단의 논의와 맞서고자 하는 패기로 주목받았다. 시적 모티브에 대한 치밀한 분석력과 변화있는 문장의 신선함,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방법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는 평.“나는 문학이 좋아”란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되풀이하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그는 “좀더 부지런해져야 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연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조씨는 모교에 출강 중이다. ‘멜순’으로 광주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강윤미씨(25)는 글 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여서 수상의 기쁨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 중고등학교 시절 원광대 출신 문인들의 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원광대 문예창작과 입학을 결심했다는 그는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오늘도 집어등을 켜고 딸을 응원해 주고 계실 부모님께 기쁨을 줄 수 있어 좋았다”는 그는 “누구나 상상을 통해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시를 쓰고싶다”고 말했다. 반대로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지만, 익산이 고향인 정찬일씨(41)는 문화일보에 당선됐다.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내면을 그린 단편소설 ‘유령’은 오랜 수련 과정이 느껴지는 단단한 문체와 내면의식의 진지한 서술이 돋보였다는 평. “당선 통보를 받았을 때 소설을 공부하며 쓰던 지난 3년 동안의 시간들이 한순간 단단한 기억으로 뭉쳐지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이미 1998년 현대문학 시 부문에 당선했으며, 2002년 평사리문학대상 소설부문 대상도 수상했다. “어깨 위에 소설이라는 무거운 짐이 하나 더 얹혀졌다”는 그는 열심히 좋은 소설 쓰는 것으로 견디어 나갈 작정이라고 했다.불교신문 동화부문에서 ‘얼굴 지우개’로 당선된 정재식씨(37)는 “당선소식을 듣고 펜 하나 달랑 들고 뛰어들었던 때부터 동화 한 줄 쓰겠다고 낑낑대던 시간들이 모두 찰나의 이미지로 지나갔다”고 말했다. 전북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전주대 평생교육원 동화창작반을 수강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3학기 째 수강중인 그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너무 이른 선물. “글쓰기 작업의 처음이자 끝이 되어준 아내가 첫번째 독자이고, 두번째 독자는 여섯살 난 딸”이라고 말하는 그는 “동화작가로 자리잡고 싶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5.01.03 23:02

[신춘문예] 당선소감·심사평

되돌아보는 일, 이전 시리지만은 않다..정원자씨 당선소감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2004년은 나에게도 유난히 힘들고 아픈 한해였다.졸업과 함께 부모님에게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상의 상처들이 삶의 멍울로 흔적을 남기며 쌓여질 때면 나는 수시로 지난날을,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살자 다짐하곤 했었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되돌아보는 일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나이를 한 살 두 살 보탠다는 것은 그저 숫자를 늘려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더해지는 나이만큼 힘든 기억들이 차곡차곡, 꼭 그만큼씩 쌓여진다는 것. 그래서 되돌아보면 볼수록 아프고 시리다는 것. 비겁한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나를 독려하고 그러기보단 잠시 외면해주거나 모르는 척 넘어가 주거나 하면서 버텨왔던 것 같다. 그러다 중독이 되고 습관이 되고......가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동안 내손에 쥐고 놓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많은 것들을 놓아버렸다. 10년을 버티던 TV가 느닷없이 고장이 났고,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해왔던 일을 놓아버린 나는, 나의 두 다리였던 자동차의 열쇠를 동생에게 넘겨주고 작정한 듯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마치 겨울잠에 들어가는 짐승처럼 나는 그렇게 방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대신, 그동안 내려놓았었던 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그저 짬짬이 꺼내보며 마음만 헤집던 오래된 꿈. 이제…. 돌아볼수록 설레고 행복한 기억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아프지만은 않다.감사할 분들이 많다는 것 또한 큰 행복이다. 한사람의 독자로서 존경하던 서정인 선생님과 이병천 선생님으로부터 점검을 받았다는 것은 내게 또 다른 기쁨이고 영광이다. 더불어 내 일처럼 기뻐해준 충애언니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은선이. 그리고 언제나 크고 영원한 나의 재산인 가족과 당선 소식을 전해 듣던 순간에 마침 함께 있어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한 사람에게도 고맙다 전하고 싶다. <정원자 약력>1972년 완주 출신백제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인테리어 기사로 활동 중심사평이 신성한 첫새벽에 굳게 빗장을 닫아 건 문학의 장원이 잠시 사잇문을 연 틈에 나발소리처럼 길게 들려오는 금계(金鷄)의 고고한 울음을 듣게 된 이가 누구인고? 그들에게만큼은 이 울음소리가 오래 인내하며 기다린 참다운 한 소식이 될 수 있기를!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에 응모된 작품들을 모두 읽고난 소회가 바로 그러했다. 당선자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서 분명 더 오래 깨어 있었고 더욱 인내했으며 자신의 세계에 더 명징하고자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에 비한다면 여기 본심에서 언급된 이들을 비롯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장인으로서의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무엇인가 한 두어 가지 흠결들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여 각자 드러내 보이려는 세계가 흐릿하였다.노혜옥씨의 ‘폭설’은 경제가 어려운 현실과 그 폭설 같은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걸어가고 있는 앞길의 암울함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과거의 인물들이나 사건 처리도 비교적 무난하였으며 평이한 가운데 문장 호흡도 고른 편이었다. 하지만 상황설정과는 달리 스토리 자체는 감동을 주지 못했으며 주인공의 마지막은 너무 구태의연한 영상 결말을 보는 듯했다.노원씨의 ‘오드 아이(Odd Eye)’는 문장이 아주 돋보였으며 기지촌이라는 독특한 작품 배경과 사진 작업이라는 화자의 행위가 신선해 보였다. 얘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입심도 높이 살만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진을 오려 붙이는 화자의 무의미한 행위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가 거슬렸으며 스토리는 오히려 그 행위들 속에 가려지는 바람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단편소설에서는 모든 게 구비되어야 하되 넘치는 부분 또한 없어야 할 것이다.조하나씨의 ‘나쁜 연인’이라는 응모 작품에도 똑같은 지적이 뒤따라야겠다. 섬세한 묘사라든가 구성,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 스토리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완결미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선뜻 이 작품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아무리 단편이라고는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줘야 한다는 우리 자신들의 약속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외래어 남발이 문제가 될 수 있었으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면서도 쿨(cool)하게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 작품은 그만큼 건조한 느낌을 주었고 이 때문에 무엇인가가 빠져버린 듯한 공허감이 흠이라면 하나의 흠이었다.당선작으로 뽑은 정원자씨의 ‘통행권을 받으십시오’는 화자 자신의 갈등 묘사가 적은 점이라든가 TV에 집착하는 심리에 대해 설득력이 약해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조금쯤은 산만한 구성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라는 독특한 공간을 활용한 측면이라든가 한쪽 다리가 짧은 여인에 대한 묘사가 생동감 있게 다가왔으며 끝 부분에 우연히 만난 사내와 동행하는 설정 등이 희망적으로 읽혔다.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그리고 재빨리 현실 속으로 방향을 트는 솜씨나, 그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은근슬쩍 내비치는 속내 묘사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당선자로부터 희망을 높이 샀다고 고백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의 희망이 유효한 건 아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작품 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외적인 가치일 수도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축하의 말에 앞서서 먼저 이 작가에게 희망을 주문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심사위원서정인(소설가), 이병천(소설가)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5.01.01 23:02

[신춘문예] 통행권을 받으십시오 ②

천 변 둑 옆으로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을 맞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아침, 엄마보다 이모가 나서서 외출 채비를 서둘렀다. 엄마는 방앗간 앞으로 흘러가는 천변의 누런 흙탕물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었고 이모는 뭐에 들뜬 사람처럼 내 머리를 빗기고 있었다. 나 어디가? 이모에게 물었다. 아빠한테 갈 거라고 했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아빠한테 가는 거라고…….아빠한테 가는 거라는 말보다는 기차 타고, 버스 타고라는 말이 더 반가웠던 나는 이모를 돌아보았다. 정말? 이모는 머리를 빗기던 손을 내려놓고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애비 보고 싶으냐? 조금 생각하다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한 번도 아빠얼굴을 본적이 없는 나인 줄 뻔히 아는 이모가 내게 아빠가 보고 싶냐고 묻다니……. 아빠가 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해 버리면 이모가 말했던 버스 타고라는 말도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릴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엄마와 함께 방앗간을 나와 천 변 둑 위를 걸어가면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정말 기차 타는 거냐고…….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려면 역으로 가야하고 역으로 가자면 천변 둑을 따라 걸을 것이 아니라 방앗간 뒤로 나있는 시장 골목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정말 아빠한테 가는 거 맞지? 나는 앞서 걷는 엄마를 따라잡으며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아침에 천변의 노란 흙탕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염없는 엄마의 시선이 이번엔 하늘 끝에 닿아있었다. 어디선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엄마의 하얀 치맛자락을 들추고 포플러 나무를 거칠게 흔들고 지나갔다. 포플러 잎들이 바람에 부딪쳐 쉐쉐…….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이윽고 누런 흙탕물 위에 마른 잎사귀를 비듬처럼 흩뿌렸다. 꽤나 빠르고 깊은 물살을 타고 잎사귀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벌써 몇 년이냐. 꼭 서방이 죽어야만 수절이더냐? 이모는 기계에서 받아낸 쌀가루를 옆 분쇄기에 쏟아 넣으면서 엄마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식새끼 찍허니 퍼질러 놓고 그날로 요양입네 허고는 시골로 들어가는 바람에 청상 아닌 청상으로 산 세월은 그렇다치자, 해애가 지금 몇 살이냐? 내년이믄 학교에 갈 나이란 말여. 이모는 나를 해애라고 불렀다. 이모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해애라고 불렀다. 살아 5년은 그렇다고 치고 죽고 2년은 뭐냔 말여 이것아! 도합 칠년이다. 칠년……. 이모는 분쇄기에서 하얗게 쏟아져 나오는 쌀가루를 고무다라에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니 나이 아직 한창이고 그나마 맡아줄 시가붙이가 있는 줄 아니께 이런 자리도 나는 것여. 엄마는 댓구없이 수돗가에서 떡쌀을 일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맡기고 간 떡살인지 양이 많았다. 이모의 그런 지청구가 어제 오늘일이 아닌 줄 아는 나는 오히려 무심히 방앗간 바닥에 공깃돌을 뿌렸는데 그날따라 조리질을 하는 엄마의 어깨는 유난히 흔들리고 있었다. 길게 할 거 읍다. 내일이라도 당장 다녀오니라. 이모가 다짐받듯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눈 한번 질끔 감았다 뜨믄 되는 것이여. 알었냐? 말하고서는 생각난 듯 이모는 공깃돌을 줍는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며 걷던 엄마가 키를 낮춰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눈에 빨간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엄마는 그때 이모가 말했던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엄마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또독,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천 변 둑을 내려왔다. 그리고 역으로 가는 시장골목으로 들어섰다. 잰걸음으로 엄마걸음에 맞춰 걸어갈 때마다 내 발 밑에서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났다. 난생처음 가는 기차 나들이 기념으로 이모가 새로 사준 분홍색 구두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날 분홍색 구두에서 들려오던 방울소리처럼 유리구슬이 바닥에 흩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TV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하고 TV화면을 보니 TV에선 여전히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드라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소리를 좇아 시선이 닿은 곳은 TV옆에 놓인 전화기였다. 현수가 가버린 이후로 좀처럼 그 전화기가 울리는 일이 없었다. 한동안 듣지 못했던 전화벨소리에 새삼스러워 하느라 전화 받는 걸 잠시 잊고 있다가 나는 서둘러 수화기를 들었다. 현수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였다. 누님? 저편에서는 송혜씨 댁이냐고 확인하고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누님 저 혁입니다. 나는 재빨리 그리 많지 않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를 누님이라고 부를만한 남자 중에서 혁이라는 이름이…….생각을 더듬는 사이 혁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다시 말한다. 저 어렸을 적에 누님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누님 사시는 동네에 갔었는데 물론 그때는 누님이 누님인줄 몰랐었지만요. 수화기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나는 느낀다. 기도원 앞에 굳은 듯 서 있던 엄마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꼬마가 생각난다. 내가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봄이었다.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신작로를 자전거를 달려 하교하던 길에 나는 기도원 앞에 서있는 한 여자를 보고 자전거에서 내려섰다. 해애야…….엄마가 나를 불렀다. 내 이름은 해애가 아니라 혜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내 이름이 해애가 아니라 은혜 혜. 송혜라는 걸. 혜라고 부르려면 발음상 상당히 귀찮아 진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자신들이 혜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혜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나를 낳아놓고도 나를 버려두는 것과 같은 거라고, 나는 여전히 나를 해애라고 부르고 있는 엄마에게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만 두었다. 이미 나를 져버린 사람에게 늘어놓는 투정이야말로 정말 구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해애야! 엄마가 다시 나를 불렀다. 나는 엄마를 향해 돌아서는 대신 흙장난을 하고 있던 꼬마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꼬마가 환하게 웃었다. 아래 눈두덩이 도톰하게 부풀어 올라가는 바람에 웃는 아이의 눈은 초승달이 되었다. 그런 웃음을 짓던 꼬마가 혁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인가? 나는 전화기를 든 체 일어서서 커튼을 젖힌다. 창밖엔 아직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봄볕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억센 햇볕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여러 번 기도원 앞을 서성이던 엄마를 보았었다. 항상 엄마 옆에는 그 꼬마임을 알아볼 만큼씩 커가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번번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어머니가 위독하십니다. 혁이라는 남자가 말해놓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전화기 속의 막막한 정적을 저 혼자 켜져 있는 TV소리가 채운다. 얼마나 잠이 들어 있었던 걸까? 건물 옆에 장승처럼 서 있는 포플러 나무의 키 큰 그림자가 건물마당에 드리어져 있다. 강물위로 튀어 오른 물고기의 반짝이는 비늘처럼, 햇빛을 등진 포플러 잎들이 시멘트마당에서 그림자로 튀어 오른다. 나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커튼자락을 부여잡았다. 버스를 탔을 때 올라오는 차멀미처럼 느닷없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파 왔다. 지독한 차멀미!멀미는 기차에 처음 앉았을 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됐다. 기차에서 내려 엄마는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옆의 약국에서 엄마는 멀미약을 사서 내게 먹였다. 하지만 멀미는 버스에서 더 심해졌다.시골버스는 터미널에서 사람을 태울 때에 이미 만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버스를 탄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나는 꾸역꾸역 버스를 올라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짐짝처럼 밀려다니고 있었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순간 엄마 손을 놓치고 말았다. 손을 놓치자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눈 한번 질끔 감았다 뜨면 되는 것이여……. 그렇게 엄마에게 말해놓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모의 눈빛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엄마를 불렀다. 그때 이미 내 목소리는 거의 울먹임이었다. 한순간에 숨구멍이 막힌 듯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버스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엄마를 부름과 동시에 쓰고 시큼한 것이 목을 넘어왔고 나는 그대로 앞의 아저씨 바지에 목엣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아저씨가 기겁을 하며 주의를 물렸고 조금씩 뒷걸음질하는 사람들 틈에 엄마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걸 느끼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스 안이 아니라 엄마의 등이었다. 엄마는 나를 업고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신작로를 걷고 있었다. 시골길엔 지나는 사람도 없었고 지나는 차도 없었다. 나를 업고 걷는 엄마가 힘에 부치는지 숨소리가 거칠었지만 나는 잠에서 깨지 않은 척 했다. 엄마 등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담쟁이가 빽빽이 얽혀있는 집 앞에 섰다. 엄마가 나를 내려놨다. 땅에 내려서자 빙글 다시 한 번 어질증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대문 옆에 세워져 있는 빛바랜 철제 안내판에 글씨가 써져 있었지만 그때까지 글을 몰랐던 나는 뭐라고 써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하고 엄마를 올려다보니. 엄마는 기도원 담을 억척스럽게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저거 뭐라고 읽어 엄마? 나는 다시 물었다. 생명샘 기도원. 꾹꾹 누르듯이 엄마는 안내판의 글씨를 읽어주었다. 나는 안심했다. 기도원이면 아버지가 있는 곳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 기도원에 아버지는 없었다. 엄마와 나를 맞은 사람이 아빠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아버지였다. 엄마는 그 기도원에 이미 아버지가 없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큰아버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 무릎에서 또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사라졌다.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나는 우두커니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그쯤에서 저녁을 챙겨먹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도 켜지 않고 TV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앉아있었다. 언니 나 떠날 거야. 먹먹한 정적을 헤집고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근무를 끝내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둠 속에서 현수가 말했다. 수술 같은 건 이제 생각 안 할래. 그때 나는 묻고 싶었다. 현수가 말하는 수술이 다리 길이를 늘이는 수술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현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인지 하지만 나는 현수에게 그걸 물을 수 없었다. 어째든 변함없는 사실은 현수가 내 집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방안을 가득 채운 어둠보다 더욱 막막한 무엇인가가 밀려드는 것 같아 숨을 몰아쉬었다. 낮에 걸려온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사실은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셨어요. 혁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어머니가 위독하십니다. 라고 말해놓고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변명처럼 말했었다. 정신이 흐려지고부터 건듯 하면 천호에 다녀와야 한다면서 무작정 집을 나가곤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기여 며칠 전에는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든 후에 어디를 가시던 길이냐고 물어보니까 천호엘 가던 길이었다고, 네 누님을 데리러 가던 길이었다고. 그때서야 저도 알았습니다. 어린 날에 어머니를 따라 여러 번 다녀온 곳이 천호였고 그곳에서 보았던 사람이 누님이었다는 것을......,그렇게 말해놓고 혁이라는 남자는 다짐을 받듯 다시 말했다. 서울 00병원입니다. 오실 거죠? 나는 그때 대답대신 리모컨을 들어 저 혼자 떠들고 있는 TV를 껐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전화기 저쪽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쯤에서 전화를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이번엔 전화기 저편에서 혼잣소리 같은 말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언젠가 어머님을 따라서 이모님 댁에 간 적이 있었어요. 이모님 방앗간 앞으로 꽤 넓은 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한번은 그러시더라고요. 너 낳기 전에 네 위에 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저 물살에 떠내려 보냈다고. 그때 나도 네 누이랑 같이 저 물 속으로 뛰어들었어야 하는 건데 누이만 보냈다고……. 나 살자고 네 누이만 보냈다고……. 살아있는 누님을 가슴에 묻고 사셨던 어머니세요. 용서를 하란 말은 아닙니다. 그냥 한번 손이라도 잡아주셨으면.....,독백처럼 들려오던 말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사라지고 뚜뚜 신호음이 들릴 때까지 나는 한참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교대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고 근무를 하기 위해서 나선 길도 아니었지만 나는 있는 힘껏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전날 TV에선 비가 올 예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날씨는 유리알처럼 맑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돌아서는데 빵빵 경음기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가 나는 갓길 쪽을 돌아보았다. 낮이 익은 차였지만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각양각색의 차를 대하는 내게 어디 낮이 익은 차가 한둘일까 싶어 나는 무심히 사무실을 향해 돌아섰다. 사무실 안에 근무를 바꿔줄 누군가가 있어야 할 텐데…….장미 울타리 넘어 사무실 안을 기웃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이번엔 경음기 소리대신 송 혜씨?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 나는 이미 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산타나의 마리아 마리아, 그 남자였다.남자는 어제저녁 교대시간에 맞춰 요금소에서 날 기다렸다고 했다. 왜죠? 나는 투명스럽게 물었다. 유니폼을 차려입지 않은 부스 밖에서까지 친절을 고집할 마음은 없었다. 그야 지갑 때문이죠. 남자는 입 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남자가 던져주고 간 지갑이 생각났다. 나는 남자의 옆자리, 조수석에 앉았다. 이 남자에 대해 아는 건 없다. 그저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 정해놓은 것처럼 내 부스로 들어와 물색없이 수작을 걸던 남자라는 사실과 그 남자가 내민 통행권을 요금 정산기에 넣으면 서울이라는 출발지가 뜬다는 것 밖에는. 하지만 나는 남자의 차에 탔다. 어쨌든 남자의 차는 서울을 향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통행권 발급기가 가까워지자 남자가 유리창을 내린다. 통행권을 뽑아 가십시오! 요금소에 근무했던 지난 시간동안 TV소리만큼 무수히 들었던 기계음이건만 처음 듣는 것처럼 울림이 길었다. 남자가 통행권을 뽑아들고 그것을 놓아 둘만한 곳을 찾아 머뭇거리다가 옆자리의 나에게 건넨다. 나는 통행권을 받아들고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엄마 등에 업혀 처음 발을 내딛은 천호였다. 생각해보면 무덤 속 같은 시간이었다. 집을 나설 때는 그랬다. 손이나 한번 잡아보자고, 대신 발작 같은 차멀미를 감당해야 하겠지만 그저 손이나 잡아보자고. 하지만 막상 통행권을 손에 쥐고 보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서서 내가 닿을 곳이 어디인지 안개 속처럼 모호하기만 하다. 치매를 앓고 나서야 나를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는 엄마를 만나러 갈 수도 있다. 아니면 여전히 한쪽 다리를 기우뚱거리며 살고 있지만 지금은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현수를 만나러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도 현수도 정작 그 앞에 서게 되면 어떨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전처럼 다시 발길을 돌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확실한 건 내가 지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세상과 통하는 표를 얻은 양 통행권을 손에 쥐고, 지난 내 오랜 칩거를 보상받기라도 하듯 고속도로를 말 그대로 고속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멀미는 처음 남자의 차에 올라타서 훅! 새 차 냄새를 맡았을 때 이미 기미를 보였다. 제가 학교를 이쪽에서 나왔습니다. 남자가 달리는 차의 속력을 높이며 말했다. 거 있죠. 톨게이트 옆에 있는 학교…….학교 후배들하고 뭘 좀 해본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발도장 찍은지가 한 달입니다. 학교를 오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지요. 남자가 작정한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TV토크쇼에 나와 시시콜콜한 주변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처럼……. TV가 아니니 듣기 싫다고 채널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나는 자동차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댄다.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 요금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어쩌면 이 남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쯤이면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그것 또한 확실해질까?.멀미는 아직 미미하게 목울대 안쪽에서만 바장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어쩌면 남자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내 지독한 차멀미를 잠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곤하게 나를 잠재우는 것처럼./정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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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1.01 23:02

[신춘문예] 통행권을 받으십시오 ①

산타나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남자의 차 테이프박스에 걸려 있는 테이프다. 마리아…….마리아……. 싱어의 간드러지듯 슬픈 음률은 변심해버린 연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간교하고 또 애처롭다. 나는 애써 남자의 시선을 비켜 비어있는 조수석을 본다. 통행권을 찾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 저 남자의 행동이 사실은 연극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안다. 한 번의 실수없이 내 개찰구로 들어오는 남자의 차도 그렇지만 그때마다 산타나의 마리아 마리아를 흘러나오게 맞추는 남자의 약삭빠름이라니. 창밖으로 날아가 버린 거야, 뭐야. 혼잣소리를 하며 안전벨트를 푼 남자는 이번엔 엉덩이를 반쪽씩 들어가며 시트를 확인한다. 나는 통행권을 받으려고 부스 창문턱에 걸쳐놓았던 손을 거둬들이고 텅 빈 모니터를 본다. 평일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톨게이트는 한산했다. 내가 맡고 있는 부스 외에도 3개의 부스에서 개찰을 하고 있었고, 다음 차가 들어오기 전에 착실히 앞의 차를 내보내고 있었으니, 부러 정차해 있는 남자의 뒤에 차를 세우는 운전자는 없었다. 나는 모니터 옆에 놓여 있는 동그란 손거울을 본다. 간밤의 고단함이 기미처럼 눈 밑에 퍼져 있다. 귀 옆으로 흘러나온 옆머리를 쓸어 넘긴다.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 마치 TV를 시청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요금소 근무 13년 동안 내가 상대한 건 사람이 아니라 차였다고 할 수 있다. 할인되는 경차, 면제 대상인 부대 차, 서울을 출발한 차, 부산에서 온 차......,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타고 있는 차에서 부과되는 요금만 틀리지 않게 정산하는 일,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특히 성질 급한 차, 매너 없는 차, 수작 부리는 차를 대할 때면 더욱 그렇다. 차가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감정을 다스려야 할 터였다. 그저 부스 유리창이 TV화면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사람이지만 기계속의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으면 딱히 기분 상할 일이랄 게 없었다. “통행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남자의 예기치 못한 질문에 목 뒤쪽으로 스멀스멀 짜증기가 올라온다. 물론 나는 그런 짜증을 얼굴에 드러내진 않는다. 내가 그런 감정을 표시한다면 그 걸 받아드리는 남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드디어 자신이 던진 낚싯밥에 걸려들었다는 듯이 서툰 수작을 밀어붙이는 축과 먹혀들지 않은 수작에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식으로 내 얼굴에 드러난 짜증을 트집 잡는 축, 그 두 가지 상황에 말려들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그런 식의 수작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모니터를 주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지금 저 남자처럼 수작을 걸어오던 남자들은 자신의 수작이 거절당했다는 수치심 때문에 나를 공격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요금소에서 가장 차를 잘 빼는 베테랑이다. 개찰을 대기하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명절연휴 같은 때에는 시간당 사백 대의 차량을 빼낸 기록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내가 차를 빨리 뺀다는 것은 단순히 손이 빠르거나 셈이 빠르다는 걸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운전자들의 저런 어쭙잖은 수작도 그만큼 잘 처리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송 혜씨?”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한 번도 수인사를 나누지 않은 남자의 입에서 불리는 내 이름자가 낯설었다.“통행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송 혜씨?”미소 같기도 하고 비아냥거림 같기도 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끝에 송 혜씨? 이라고 끝을 올려 발음할 때는 남자의 시선이 부스 바깥쪽의 명찰에 머문다. 내 이름이 송 혜라는 것을 안 것은 방금 부스에 걸려 있는 이름표 때문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명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지만 남자는 벌써 오래 전부터 내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남자를 처음 만난 건 계절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던 한 달 전이었다. 내린다고 말하기조차 어색한 안개 같은 봄비였다. 그 봄비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형차가 미끄러지듯 진입로의 커브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때마다 새로운 모델을 내놓고 그때마다 새로이 등장하는 TV속의 차량광고를 볼 때처럼 나는 잠깐 생각한다. 저런 차를 타게 되면 나도 차멀미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날렵하게 빠진 차체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남자의 차가 내 부스 앞에 멈춰 섰다. 아직 TV광고에서 본적이 없는 모델이어서 외제차인가 하는데 보닛 위에 익숙한 자동차 회사의 마크가 보였다. 사실 나는 그때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TV광고에 나오기 전에 신형차를 타는 사람이 있다니…….나는 남자가 내미는 통행권을 요금 정산기에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은 도대체 TV가 아닌 어디에서 저런 정보를 얻는 것일까? 출발지는 서울이었다. 남자가 요금을 준비하는 사이 나는 남자의 차에서 흘러나오는 마리아 마리아를 따라 흥얼거리고 말았다. 부스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TV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같이 흥얼거리듯이 그렇게 마리아 마리아를 흥얼거린 것이다. 그 후로부터 매주 금요일 아침, 나는 내 부스로 정확하게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차를 목격했다. “저희 톨게이트에서 가장 먼 곳의 요금소로부터 발생되는 요금을 내시면 됩니다.”나는 밀고 올라오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그제야 그의 눈을 마주본다. 쌍꺼풀이 알맞게 지고 눈꼬리가 약간 쳐진 눈이다. “그러면 이곳에서 가장 먼 곳의 요금소는 어디인가요. 송 혜씨?”“다시 한 번 잘 찾아보시지요. 손님.”그의 말끝마다 붙여지는 송 혜씨라는 발음이 마치 미숙한 연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짜증을 불러일으켜 나는 빠르게 말했다. 한 번 더 그 발음을 듣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서비스인으로써의 직업정신을 고수하지 못하고 얼굴에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낼 것만 같아 불안했다. “가장 먼 곳의 요금소가 어딘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송 혜씨?”“칠천 육백원입니다 손님.”실수였다. 나는 자꾸만 밀고 올라오는 짜증에 어쩌지 못하고 가장 먼 곳의 요금소가 아닌남자가 항상 지불하곤 하던 서울발 요금을 말해버리고 말았다.“풋”나와 남자의 입에서 동시에 새어나온 웃음이었다. 머릿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현 하나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끝을 올리며 송 혜씨라고 부르는 소리를 한 번 더 들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던 짜증이 실소와 함께 사라졌다. 갑자기 터져 나온 실소 덕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남자의 출발지를 알고 있다는 내색을 해버린 실수에 무안해하지 않는다.“통행권이 없으니 일단 지갑을 맡기고 가겠습니다. 계산해주시죠. 그리고 올라갈 때 여기서 송 혜씨를 찾겠습니다. 지갑은 그때 돌려주십시오.”남자가 여전히 미소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웃음을 머금고 작은 손지갑을 부스 안으로 던진다. 내가 무어라 더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남자의 차가 빠르게 부스를 빠져나갔다. 반으로 접힌 손지갑을 펼치자마자 노란색 통행권이 책상위로 떨어진다. 교대를 해줄 진이가 사무실 문을 나서는 게 보인다. 저만큼 달려오는 진이 뒤로 도로공사 사무실 울타리에 늘어선 넝쿨장미가 이제 막 그 붉은 봉오리를 열고 어지러이 엉켜 있다. 저렇게 넝쿨장미가 흐드러지는 봄이 오면 현수는 어쩌지 못하고 무릎을 훌쩍 올라서는 타이트스커트를 입곤 했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정확히 5센티미터 작은 현수는 그래서 왼쪽신발에 5센티미터의 굽을 덧댄 신발을 신어야 했다. 한쪽신발의 굽을 높여 다리 길이를 맞춘 보정용 신발을 신었으면서도 현수의 걸음걸이는 여전히 기우뚱했다. 그래서였는지 스커트 아래에서 먼저 시선을 잡는 건 굵기가 다른 현수의 다리가 아니라 굽 높이가 다른 현수의 신발이었다. 차고 맵던 바람이 봄볕에 녹아 한껏 부드러워지는 날이면 현수의 하얀 종아리는 그렇게 바람을 맞았다. 종아리 사이를 휘감고 스쳐가는 바람의 감촉이 야릇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던 현수. 그럴 때면 종아리의 잔털들이 오소소 일어서서 바람에 묻어오는 넝쿨장미 향을 맡는 것 같다던 현수. 단지 후각이 아니라 촉각으로도 향을 맡을 줄 아는 현수. 나는 현수가 보고 싶다. 처음 현수가 내 집에 신세를 지겠다고 했을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10년이 넘게 혼자 살아온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 같은 침대를 써야한다는 것보다 더 당혹스러운 건 다른 누군가와 TV리모컨을 같이 써야한다는 거였다. 나만의 리모컨을 가진다는 것은 내겐 대단히 중요한 의미였다. 내게 있어 TV는 취미나 습관을 넘어 친구이자 스승이며 가족이었고 나의 두 다리였다. 나는 TV를 통해서 웃었고 TV를 보면서 여행을 다녔으며 TV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TV를 통해서 세상을 익혔다. 10년 동안 퇴근하는 나를 반겨 준 것도 TV이었고 피곤에 지쳐 뒤척이는 나를 잠들게 했던 것도 TV이었고 작은 소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내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것도 TV이었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채널을 틀 수 없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TV를 다른 누군가와 같이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단순히 주거공간을 같이 쓰는 것을 넘어서 내 일상을 나눈다는 의미였다. 선뜻 허락할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수를 내 집에 들인 것은 섬에서 왔다는 현수의 말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그곳이 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섬에서 왔고 아는 사람이 없어서 요금소에 출근을 하자면 당장 근처에 방을 얻어야한다고, 현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요금소 가까이에 혼자 살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시선을 좆아 나를 바라보던 현수는 마땅한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부스 바깥쪽의 송혜라는 명찰을 이진이라는 명찰로 갈아 끼우는 진이를 뒤로하고 나는 사무실을 향해 걷는다. 지방의 중심도시를 지척에 둔 이 소읍은 십 몇 년 전 느닷없이 산중턱에 대학교가 들어서고 주변에 있던 논밭을 밀고 자동차 생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변화했다. 내가 이 소읍의 유일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로공사의 협력업체인 일성이라는 인력업체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기거하던 기도원과 톨게이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산자락 중턱에 대학교가 생긴 그때부터였다. 기도원은 소읍과 산자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천호라는 마을에 있었다. 하늘 천에 항아리 호, 사람들은 천호라는 지명이 무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옛날 카톨릭 선교사들이 끌려와 순교한 성지가 있는 천호는 사람수보다 무덤수가 더 많은 산골마을이기도 했다. 대학교를 가로막고 있던 산허리를 가르는 아스팔트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나는 직장을 얻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물론 길이 새로 나기 전에도 다른 길을 돌아 톨게이트를 경유하는 버스 노선이 있기는 했지만 그 거리는 자전거로는 두 시간은 족히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차멀미가 심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힘겹게 마쳤다.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큰아버지는 읍내에 방을 얻어줄 형편이 못된다고 했다. 형편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아니면 기도원의 허드렛일을 맡아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엄마가 일곱 살 먹은 나를 큰아버지 내외가 운영하는 산골의 기도원에 짐을 부리듯 놓고 사라진 후 나는 줄곧 기도원에서 기도원 원생들과 뒤엉켜 살았다. 기도원이라고는 했지만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치매를 앓는 노인들과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 혹은 정신지체를 앓는 아이들과 어쩌다가 몸이나 마음을 다쳐 요양해야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맡겨진 수용소 말이다. 폐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도 그 수용소 같은 기도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엄마가 나를 그 기도원에 데려다 놓고 사라지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기도원을 나와 지금 살고 있는 내방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대학교 덕분이었다. 대학교가 생기자 산중턱 아래에 하나둘 원룸이 들어섰다. 나만의 방과, 돈을 벌 수 있는 직장과, 직장을 오갈 수 있는 자전거와, 오직 나만을 위한 리모컨까지…….그것이면 완벽했다. 나는 그것들 외에 더 이상 세상에서 얻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따라 기도원 문을 들어선 날, 바보처럼 엄마 무릎에서 잠들어 버린 스스로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 날 그렇게 잠들지 않고 엄마 손을 놓지 않았더라도 결국 엄마는 나를 두고 사라졌을 것이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라고 현수는 말했다. 현수도 나도 근무가 없는 날이어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란히 침대에 기대어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TV에서는 건강프로가 재방송 되고 있었다. 성장 판이 없어지는 스무 살이 넘으면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했어. 현수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체 말했다. 물론 우리엄마야 수술해줄 돈도 없었지만 내가 수술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어. 엄마한테는 그렇게 말하게 되더라고. 소아마비인 다리쯤은,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길이가 다른 내 다리는 엄마한테도 큰 상처라는 걸 아니까. 현수는 유난히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엄마는 시집오자마자 연이어 딸 셋을 낳았는데 둘째 언니 때부터 이미 보건소 가는 것에도 할머니 눈치가 보였데. 넷째인 날 낳고는 산후조리는커녕 미역국도 한 그릇 맘 편히 못 넘기셨다고. 게다가 나는 한창 바쁜 유월에 태어났고 그래서 때맞춰 예방접종을 못 시킨 거야. 현수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 얼굴에 미소까지 머금고 나를 바라봤다. 언니 내가 왜 섬을 나왔는지 알아? 우리 섬에선 말이지, 섬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섬을 떠나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아. 마치 고등학교에서 섬을 떠나는 방법을 익힌 것처럼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거나 강요한 게 아닌데도 다들 약속된 것처럼 대처로들 나갔어.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을 더 섬에 있었지. 언니처럼 차멀미가 심한 것도 아닌데 도시로 나가면 멀미가 날 것 같더라고. 그러다 일리자로프를 알게 됐지. 일리자로프? 나는 현수에게 되물었다. 일리자로프라고 키를 크게 하는 수술이야. 뼈에 핀을 꽂아 고정시킨 후 조금씩 뼈를 늘리는 수술이지. TV뉴스에서 그걸 듣고 믿기지 않아 방송국에 전화해서 확인까지 했어. 그날로 나는 섬에서 나왔어. 그러고 보면 현수를 섬에서 나오게 한 건 현수의 짧은 한쪽 다리였다. 현수는 벌써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왼쪽다리를 5센티미터 더 키우기 위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현수의 마땅한 거처는 현수의 한쪽 다리가 5센티미터 커진 이후라야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현수를 보내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때 나는 현수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학교 진입로의 상점들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나는 자전거에서 내린다. 거기서부터는 심한 오르막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자전거의 페달을 밟을 수 없었다. 차멀미 따위는 하지 않는 현수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가끔 근무시간이 겹칠 때면 현수는 제 자전거를 원룸 출입구 계단에 세워두고 내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앉았다. 그런 날에 현수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그 즈음에서 상점에 들어가 항상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학생들처럼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자전거 손잡이를 하나씩 나누어 쥐고 오르막을 오르곤 했다. 현수의 자전거가 계단 옆 핸드레일에 묶여 먼지를 뒤집어쓰기 시작한 건 도로공사 소속의 김 주임과 카풀을 시작하고 부터였다. 물론 그 후론 나와 근무시간이 겹쳐도 현수가 내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앉은 일은 없어졌다. 현수가 김 주임과 카풀을 시작하고부터 내게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그건 집안 여기저기 시선이 머물만한 곳에 두서없이 붙어 있는 김 주임의 사진을 보는 일이었다. 화장대 거울에, 침대 맡에, TV위에, 심지어는 식탁 유리 밑에도 김 주임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근무시간이 엇갈려 곳곳에 김 주임의 사진이 놓여있는 집에 혼자 있게 되는 날엔 김 주임과 함께 기거하는 것만 같아 나는 맘이 불편했다.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라고 말했던 현수는 3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내 집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현수는 밥을 먹다 말고 식탁유리 밑에 있는 김 주임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이렇게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이제 곧 현수에게 마땅한 거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김 주임이라는 새로운 현수의 거처…….하지만 김 주임은 현수의 거처가 되어주지 않았다.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신발장 위에 현관 열쇠와 자전거 열쇠가 묶여 있는 열쇠 꾸러미를 내려놓고 대신 신발장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든다. 그리고 신발을 벗으면서 동시에 TV를 켠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는 일이고 집을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고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TV를 끄는 일인 줄 아는 현수는 한 번도 리모컨을 신발장에 두고 나가는 일을 잊지 않았었다. TV를 켜니 뉴스 채널이다. 어제 밤근무를 하기 위해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내가 보았던 채널이 뉴스 채널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뮤직채널로 채널을 바꾸고 음량을 조금 더 키운다. 이미 여러 번 보아서 노래가사 만큼이나 줄줄이 외고 있는 뮤직비디오가 시작되는데 TV화면이 안개 낀 것처럼 부옇다. 아침이면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때문이다. 나는 베란다 쪽으로 나있는 창문에 커튼을 닫는다.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을 때까지 채널은 뮤직 채널에 고정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현수가 오기전의 나는 거의 손에서 리모컨을 내려놓지 않았었다. 사냥감을 찾듯 새로운 채널을 찾아 끊임없이 리모컨의 채널버튼을 눌러대곤 했으니까. 하지만 현수가 오고, TV를 보는 것처럼 현수를 보게 되면서 간혹 하루 종일 한 채널에 고정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몇 번씩 같은 프로를 되풀이해 보곤 하면서도 나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곤 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기어 올라가면서 나는 드라마 채널로 채널을 바꾼다. 역시 이미 여러 번 보아서 내용을 다 아는 드라마지만 나는 채널을 바꾸지 않는다. 야간근무를 하느라 미뤄두었던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도란도란 TV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자장가보다 잠들기에 더 유용하다. TV를 켜놓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 때문에 현수는 한동안 힘들어했다. 대부분 근무시간이 달라 한 달이면 일주일정도 같이 잠드는 게 다였는데 그때마다 현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현수가 오고부터 리모컨에 대한 나의 병적인 집착은 없어졌지만 10년 넘게 길들여진 나의 오래된 습관, TV소리없인 잠들지 못하는 버릇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TV를 끄면 내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일 것이고 내가 자꾸 뒤척이면 현수가 잠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딱 한번 현수가 TV를 꺼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날은 현수가 자신한테는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근무지를 옮겨버린 김 주임에게 다녀온 날이었고 집안 곳곳에 두서없이 놓여있던 김 주임의 사진이 모조리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현수는 말했다. TV좀 꺼 줘…….함께 생활한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나만의 리모컨을 갖게 된 후 처음으로 TV소리 없이 잠이 들어야 했던 그날 밤, 물론 나는 잠들지 못했다. 지금생각하면 그 날 뜬눈으로 날을 새운 건 TV소리가 없어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TV소리가 없어진 대신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낮선 소리들, 맨살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느닷없고 낮선 소리들 때문이었다. 유난히 크게 들려오던 시계의 초침소리와 싱크대의 낙숫물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던 현수의 흐느낌, 그 흐느낌이 잦아들던 새벽녘엔 바람이 일었던지 원룸건물 옆에 장승처럼 서있는 포플러 나무에서는 쉐쉐, 뱀이 풀밭 위를 지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5.01.01 23:02

[신춘문예] 네가 과메기로구나

너희들이 꽁치과메기였구나. 덕장에 주렁주렁 한 두름씩 걸려 짭조름한 바람 속을 유영하고 있구나. 청해를 누비며 군무를 추던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 하구나. 너희들은 본디 날렵한 몸매에 감청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깔끔한 신사가 아니더냐. 하지만 설한풍에 휘불리어 낡은 외투를 걸친 초라한 노숙자 같구나. 유리알 눈동자 납덩이가 되어 박혀 있구나. 살을 에는 추위에 악다물었던 입마저 벌어져 가늘고 긴 신음 토해내고 있구나.나는 사열하듯 너희들을 둘러보고 있다. 획일적인 표정, 허망한 눈동자 흙투성이 어설픈 훈련병 같구나. 가스실로 열 지어 들어가는 벌거벗은 유대인들 같구나. 대열사이로 넘실되는 너희들의 푸른 고향이 보이는데, 맑은 눈물이 보이는데.한때 너희들은 해풍 속을 훨훨나는 갈매기가 되는 것이 꿈이었을 게다. 가끔 갈매기의 흉내를 내며 물위로 튀어 올랐겠지. 하지만 지금 공중에 매달린 기분이 어떠니. 바람을 타는 기분이 어떠니.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리는구나. 이제 풍경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슬픈 운명이구나. 물결을 힘차게 거스르던 지느러미는 무용지물이 되었구나.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니. 노아가 방주를 띄울 때 내렸던 그 엄청난 비, 그 혁명의 비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냐. 물결이 내 몸에 조금만 닫기만 한다면 다시 한번 온몸을 비틀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삶을 살 것 같은데. 너희들은 잊지 않고 있겠지. 청해를 노닐던 그 때를, 그 자유를 그리고 느닷없이 검은 그물에 걸려 박제된 그 날을. 그 방심의 날을.나는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있다. 또 다시 하나, 둘 만나는 과메기 덕장. 점차 뻗두룩해지는 몸을 풀기위한 안간힘인가. 멀리서도 너희들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해안가 선술집에 들렸다. 누른 종이에 ‘과메기 있습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견장처럼 붙어 있다. 하얀 접시에 대가리와 내장과 뼈가 추려진 얼 말린 과메기 몇 마리가 올려져 나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검게 탄 눈과 내장이 함께 담겨져 왔다면 그 절망의 덩어리를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애착을 버리고 누운 진갈색 살점들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나는 꾸덕꾸덕한 과메기 한 점을 생미역에 싸서 초고추장에 꾹 찍어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과메기는 유연한 몸짓으로 목구멍을 타고 헤엄쳐 들어갔다. 전혀 걸림이 없다. 얼마나 깔끔한 보시인가. 내 배 속이 무덤이다. 방형도 장방형무덤도 아니다. 자궁 같은, 고향 같은 무덤이다. 잔에 바다처럼 맑은 소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그리고 염원한다. 이 길이 환생의 길이 되라고, 이 세상에서 과메기가 된 것을 서러워 말라고, 어차피 인간도 죽으면 어두운 땅 속에서 얼리고 풀리는 영원한 과메기가 된다고.인간 세상은 잡고 잡히는 살벌한 곳이다. 나는 졸지에 떼송장이 되어 걸려있는 너희들의 천편일률적인 표정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니 한결 같이 황금을 좇는 개성이 말살된 인간들의 박제된 군상을 보았다. 너희들이 느닷없이 그물에 걸려 과메기가 되었듯이 인간도 어느 순간에 땅 속 과메기가 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지금도 현실의 그물에 걸려 찬바람 부는 어느 지하도 구석진 곳에서 얄팍한 박스를 깔고 누워 꾸덕꾸덕한 과메기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너희들이 청해가 그립듯이 인간도 돌아가지 못할 어머니의 따뜻한 자궁을 꿈꾸고 있단다. 매운 업보를 치른 과메기들아. 주검이 되어서도 뜬눈으로 용맹정진 하였고, 육신을 버리고 정신을 구하는 수도승처럼 온몸을 보시하여 공덕을 쌓았으니 좋은 인연으로 다시 태여 나길 기원한다. 나는 젓가락으로 또 한 조각의 살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부디 내 속에 들어가서 절집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내가 방일하고 나태할 때 댕그랑댕그랑 맑은 소리로 나의 가슴을 깨워 주길 바란다. 덕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풍경들아. 과메기들아. 선술집 앞 붉은 가로등 위에 너희들의 꿈이었던 갈매기가 솟대처럼 서서 밤하늘의 먼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구나, 과메기야, 꽁치과메기야. 공덕과메기야./김인호*꽁치과메기: 동해지방에서 꽁치를 덕장에 널어 해풍에 얼 말린 것"난생 처음 경험하는 뜨거운 전율" 김인호씨 당선소감절집을 나왔다. 매운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추위에 내몰리어 산길을 종종걸음 치던 내 발길을 묶는 것이 있었다. 한겨울 냉기를 뚫고 가늘고 긴 가지 끝에 진달래 봉오리가 봉긋 솟아나 있었다. 그것은 흡사 성냥개비 끝에 붙어서 점화를 기다리는 빨간 화약처럼 보였다. 그 탱글탱글한 봉오리는 햇볕이 대지를 스치는 어느 날 성냥불이 일 듯 일순간에 붉은 꽃을 피울 것이다. 뿌리는 지금도 그 순간을 위해 부단히 어둡고 차가운 땅을 헤집고 있을 것이다. 느닷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언제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내 언제 저만큼 글에 혼신의 힘을 쏟아 보았는가. 대상에 끊임없이 매달려서 종국에는 아름다운 작품의 꽃을 피우고 마는 열정적인 정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정신이요, 수필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한 나는 공연히 꽃봉오리 보기가 민망했다. 그러고도 은근히 신춘문예에 당선을 기대하며 염치없이 부처님과 아버지 영정에 넙죽넙죽 절을 올렸다.절집에 모셔둔 영정은 재가 덮여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하얀 수건으로 그 얼룩을 말끔히 지웠다. 반질반질해진 유리액자에 아버지의 얼굴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얼마 전 꿈속에서 아버지는 저 얼굴로 나를 빤히 들여다보시더니 발을 돌려 총총히 현관문으로 사라지셨다. 무언가 한 마디쯤하고 싶으신 듯 보였다.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말씀이었을까. 삶을 열심히 살라는 말씀이었을까. 그렇게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당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식구들은 전화 받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고 했다. 사실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뜨거운 전율이었다. 나는 이 전율을 내 문학정신에 깊이 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아직 여물지 않은 글을 뽑아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늘 문학정신을 일깨워주시는 선생님과 동서문예 문우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나영, 나경 두 딸에게도 이 기쁨을 전한다. 당선패를 받으면 다시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 <김인호 약력>1958년 부산출생한국방송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수필과 비평’ 2003년 등단심사평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재미와 고르는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 했다. 대부분 중·장년들의 작품이어선지 다양한 제재 속에 만만찮은 사색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일상에 대한 겸허한 반성, 가족·이웃간의 사랑, 사물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의 내용을 산문 형식 속에 담는 방식도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었다.먼저 십여 편을 골랐다. ‘어머니에게 못한 이 편지를’(이한교), ‘눈으로’(정병율), ‘달팽이 소리 지르다’(김경순), ‘문’(김윤선), ‘꽁치’(이경임), ‘옹기가 있는 풍경’(모임득), ‘길 위의 사람들’(곽흥렬), ‘벽’(김정임), ‘숲으로 가는 길’(박선희), ‘두절이 소통이다’(김완수), ‘민들레족’(옥남), ‘네가 과메기로구나’(김인호) 등은 나름의 개성과 묘미를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소재를 주제로 구현해 가는 솜씨, 울림의 크기, 내용과 형식의 조화, 문장에 깃든 향취 등을 염두에 두고 다음 다섯 편을 다시 읽었다. ‘벽’은 자연스러운 문장과 무리 없는 짜임이라는 미덕을 지녔지만 울림이 적은 것이 아쉬웠고, ‘숲으로 가는 길’은 아버지에 대한 애잔한 연민은 담담하게 잘 녹아 있지만 약간의 군더더기들이 전체적으로 구성의 긴장도를 느슨하게 하였다. ‘두절이 소통이다’는 정확하고 예리한 논지 속에 작가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살아있는, 그래서 에세이 성격이 강했으나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 메마르고 딱딱하였다. ‘민들레족’은 우연한 일상 경험을 주제로 다듬어가는 짜임새가 돋보이고 무엇보다 잘 다듬어진 문장 속에 큰 울림을 담고 있어서 여운이 깊었다. ‘네가 과메기로구나’는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탁월하고 그 관찰의 결과를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는 솜씨도 남달랐으며, 그것을 담아내는 문장도 재치와 운치 사이를 넘나들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절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민들레족’과 ‘네가 과메기로구나’는 공히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한 편을 고르는 책무 때문에 결국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더 높다고 판단되는 후자를 뽑았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된 같은 작가의 다른 두 편의 수필이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면서도 모두 일정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리하면서도 여유로운 이 작가의 미덕이 한결 미더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사위원임명진(전북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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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1.01 23:02

[신춘문예] 꽃 이름, 팔레스타인

올해도, 고향엔 칡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계집 아이 몇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놉니다. 고무줄이 튕튕 울릴 때마다. 호박이며, 박이며, 수세미 꽃이 핍니다. 어느 새 검정 고무줄에도 꽃이 피어, 달맞이꽃으로 피어, 계집 아이 몇은 노래를 부르며 툭툭 튀어 오릅니다. 미사일 날리듯양지바른 골목길 벽돌 속에 아비와 오래비를 묻고 옵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마다 넘쳐나는데 칡넝쿨 얽힌 이국의 틈으로 어김없이 달은 떠오릅니다. 어김없이 총알은 밀알처럼 떨어집니다.폭격기가 지나간 바위 밑 두 눈만 깜박이다, 꿈벅거리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버린 못생긴 계집 아이는 어느 새 어미가 되고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 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군화에도 꽃이 피었습니다.바위를 덮고, 돌산 넘쳐나는 꽃이 피었습니다. 동방 외간 사내가 보내는 꽃, 생리를 하고, 배란이 지나 생산을 하는 동안에도 그 꽃이 신화(神話)보다 더 질긴 꽃이었음을, 옆구리에 낀 아이가 그 꽃을 닮았다는 것을 몰랐어도 그녀는 좋았습니다./경종호"부족한 삶 '우직한 소'로 보답" 경종호씨 당선소감당선이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 생각한, 그리고 묵묵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 '가족'. 아버지, 어머니. 한 삶을 흙에서 시작하고, 그 흙에서 아들, 딸을 키워오신, 그렇게 내 삶의 틀을 이미 다지고, 바탕을 마련하셨던 김제 평야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형님보다도 형수님, 누님과 아우. 어느 땐 단단한 울타리였다가, 어느 땐 어린 시절 마당 한 가운데 멍석 같은. 꼭 그렇게 지푸라기만큼 질겨 어느 순간, 순간이라도 내가 꼭 잡을 수 있는 끈 내밀어 주셨던 '가족'. 그리고 세 살, 우리 은솔이. 내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주셨던 길을 꼭 그렇게 나도 보여주어야 하는. 그러나 가족이지 못하는 가족이라는 뿌연 안개 같은 이 순간에 또 하나의 가족이, 내 안에 꼭꼭 숨어 있던 문학이 부끄러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 스물 여덟에 처음 입학한 대학, 그리고 글바람 문학회. 내 삼십대의 빈틈마다 촘촘히 파고들었던 목소리. 종필 형, 찬홍 형, 장근, 명철, 정희, 병희, 청필, 석우, 진만, 상렬이. 그리고 아직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시를 담고 살았다는 것으로 이 부족한 삶을 변명처럼 대신해 드리고 싶은, 오수의 장작불이 그리운 이용숙 선생님. 지도 교수님이신 김용재 선생님. 그리고 항상 제 주위에서 저보다 저를 더 위해주는 선배님, 친구, 내가 근무하는 시골 작은 학교의 동료 선생님까지. 특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뻐끔히 바라보는 우리 반 아홉명의 아이들. 항상 곁에 있어도 그리움 사람들로 인해 행복한 오늘.'가족'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심장에서 가까운 허파 혹은 식도 부근에서 내 마음에서 흐르는 혈액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을, 새끼 꼬듯 꼬아도 보고, 멍석처럼 엮어도 보고픈 마음. 그래서 내 마음의 불 더 지피고 싶은.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를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신 송하선 · 복효근 선생님께 지금의 이 마음 묵묵히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 우직한 소가 되겠다는 것으로 대신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경종호 약력>1968년 전북 김제 출생전주교육대학교 졸업현 익산용북초등학교 교사심사평그 여느 해보다 응모작이 많고 또한 그만큼 우수한 작품도 많았다. 긴 시간 논의 끝에 경종호의 ‘꽃 이름, 팔레스타인’과 김윤경의 ‘마이너스통장으로 지은 집’, 문정희의 ‘길들여지는 슬픔에 대하여’중에서 당선작을 내기로 하였다.김윤경은 그늘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 또한 매끄러웠으나 오히려 그 점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평이하고 무난하지만 신인다운 독특한 개성이 아쉬웠다.문정희는, 밝음(문명)만을 추구하고 어둠과 밤을 타부시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삶에 있어서 ‘어둠’(밤, 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부에서 유사한 예를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고 결국 그것을 유기적으로 엮어내지 못하여 구조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경종호의 작품은 그 차분한 전개부터가 눈길을 끌었으며 독자의 생각을 오래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었다. 우선 기법면에서 참신하다. 전쟁상황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한 여자아이를 먼 이국의 아이로 타자화 시키지 않고, 한국전쟁후 한반도의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하는 한민족의 계집아이에 오버랩 시켜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님을 효과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시사성 있는 문제,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시대와 동시대인의 아픔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비단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이라크전과 같은 전쟁에 대한 시적 인식을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심사를 하여 신인을 발굴한다는 것은 ‘샘’을 파는 것과 유사하다. 샘은 그 수질이 우수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몇 바가지 퍼내면 곧 그 수원이 고갈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용솟음하며 냇물을 이루고 강에 이어지는 도도한 흐름을 이루어내야 한다. 따라서 당선작 외에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면밀히 살펴서 등단 이후에도 우리시단을 더욱 풍부하게 일궈낼 역량과 가능성이 있는가, 가늠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종호의 작품에서 갈고 닦아온 내공을 읽을 수 있어 당선작으로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큰 물줄기를 이루어내기를 기원한다.심사위원송하선(시인), 복효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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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1.01 23:02

[신년기획] 문화분권

지방분권시대, 그러나 분권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오늘의 상황으로 보자면 행정 구역상의 ‘지리적 분권’ 외에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친 실질적인 분권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참여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역 균형 발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분권은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깊게 뿌리 내린 중앙집권화와 이에 따른 지역 불균등에서 비롯한 고질적 병폐는 여전히 지방분권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때문에 지역 균형 발전 가시화에도 아직 파란불은 켜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국가가 아닌 지역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추세에서 지역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으로 끌어올리려는 참여정부의 전략은 의미있는 전략임에 틀림없다. ‘지방화를 통한 선진화’를 국가발전 핵심전략으로 선택한 참여정부는 이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지역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혁신’을 도입, 주목을 모은다.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표방하는 ‘글로컬리즘’(glocalism) 시대. 지역 혁신은 ‘지역 발전의 소통’이자 ‘국가발전의 키워드’로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특성화 발전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역 특성과 주민 의견을 고려해 단계별 발전 전략을 세우고 기반시설 확충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지역 특성을 토대로 한 문화산업을 발전 대안으로 인식한 각기 자치단체들도 지방의 특성화 발전 전략을 담은 청사진을 제시하며 문화적 우위성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중앙집중화에 밀려 낙후돼 있거나 재정 자립기반이 취약한 자치단체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문화산업을 근거로 한 지역 혁신을 통해 활로를 모색 중이다. 자치단체들의 행보는 눈길을 끈다.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전북도에 문화산업과가 신설된 것이나 기초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지역 혁신 협의회’를 창립한 전주시의 선택은 대표적인 예다. 특히 문화자원이 풍부한 전북으로서는 지역 발전의 통로로 주목할 대상이 적지 않다.열악한 산업 기반때문에 지역 비교우위를 통한 차별화와 경쟁력 확보가 절실했던 전북으로서는 이제 기회가 온 셈이다. 전북은 잠재된 문화적 자원이 많다. 문제는 이 자원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도시 발전의 전략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지역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앞세운 전주의 선택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전통문화도시의 역량을 집중해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나아가는 이 전략은 좁게는 전주의 미래를, 넓게는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의 미래를 여는 작업이다. 중앙과 관 주도형 체제 아래서 분권이 이뤄지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실정에서 그나마 분권에 있어 문화 영역은 자유롭다. 이미 문화는 산업화된 지 오래고,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려는 자치단체들의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역의 특화된 문화적 자원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지역 발전의 정책 방향이 지역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자치단체들의 선택 또한 특별하다. ‘장류(醬類)와 장수(長壽)’를 지역특화전략사업으로 내세운 순창. 전통 고추장 생산지로 유명한 순창은 ‘고추장의 세계화’ 역시 전망이 밝다. 최근 정부로부터 장류산업특구로 지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역특구란 정부가 재정, 조세 등의 지원을 해주지 않지만 토지, 교육, 농업 등 각종 규제를 풀어 자치단체들이 지역특성을 살려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순창은 이번 지역특구 지정으로 장류연구소 건립 등 인프라 구축과 함께 장류 브랜드 강화를 통해 고추장, 된장, 간장, 청국장 등을 산업화한다는 구상이어서 지역 투자 활성화와 고용 증대 등의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순창과 나란히 지역특구로 지정된 고창은 ‘복분자’를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100만㎡가 넘는 복분자생산단지를 조성해 매년 복분자 축제를 열고 복분자 생산 재배기술을 개발해 고품질의 복분자주 브랜드를 세계화할 계획이다. 고창은 복분자 외에도 선사문화특구 지정을 추진 중에 있고, 익산과 완주가 각각 한방의학특구, 한방특구로 활로를 찾고 있다.자치단체들의 특화 전략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각기 다른 분야로 그 대상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의 물류 기지화 등 서해안 시대를 맞은 항구 도시 군산. 지금 군산은 번성했던 근대 항구의 이미지를 과감히 입히는 작업을 통한 ‘혁신’이 과제로 떠올랐다. 문화 예술의 전통에서도 지역의 특성을 살린 핵심 전략은 발견된다.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판소리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문화자원들은 그 가치가 높다. ‘전주 한지’, ‘남원 도자기’, ‘진안 인삼’ 등 지역의 특화된 문화적 자원을 활용한 문화산업의 통로도 넓게 열려있다. 실질적인 산업 전략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아이템을 발굴, 전북의 문화산업 전략의 핵심을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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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1.01 23:02

연말연시 송년·신년무대 풍성

연말연시 송년, 신년무대가 풍성하다. 세밑 끝무렵, 객석에서 새해를 맞는 2004제야음악회가 31일 오후 10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시립교향악단이 마련한 제야음악회는 1부 ‘눈으로 보는 발레음악’, 2부 ‘로맨틱 클래식’, 3부 ‘봄의 소리’ 등 전주시립교향악단, 온고을어린이무용단, 소프라노 박정원, 테너 최승원 등이 꾸민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2005년 새해 첫날을 맞는 '2004 제야축제'가 (사)전주풍남제전위원회 주최로 이날 오후 11시30분부터 전주 풍남문 일대에서 열린다. 온고을민속악회와 강령탈춤 전승회의 풍물굿 등 민속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 거침없는 두드림,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가 31일 오후 4시, 7시, 10시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세차례 공연된다.1997년 초연 이래 세계 18개국 1백42개 도시에서 130여만명의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작품. 냄비, 바가지, 프라이팬 등 주방용기를 활용해 강렬한 사물놀이 리듬을 완벽하게 재해석한 난타는 PMC프로덕션 송승환 대표가 총제작을 맡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준다.전주전통문화센터가 1월1일과 2일 오후 2시 야외놀이마당에서 신년맞이 ‘판굿’ 특별공연을 준비했다. 1일 호남우도농악 ‘정읍농악’ 편에서는 도무형문화재 7-2호 정읍농악 예능보유자인 유지화씨(61·상쇠)가, 2일 호남좌도농악 ‘남원농악’ 편에서는 도무형문화재 7-4호 남원농악 예능보유자인 류명철씨(62·상쇠)가 무대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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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태성
  • 2004.12.30 23:02

전주영화제 디지털삼인삼색 초대감독 확정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2005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삼인삼색이 초대 감독을 확정했다.‘소풍’ ‘꽃섬’ ‘거미숲’ 등으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송일곤 감독(33·한국)과 ‘열대병’으로 2004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34·태국), 그리고 ‘스타일리쉬한 젊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츠카모토 신야 감독(44·일본).올해로 여섯번째를 맞는 디지털삼인삼색은 초기 디지털이란 매체의 탐색단계를 넘어 디지털 영화의 미학적 표현력과 대안영화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프로젝트로 자리잡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서울예전 영화과와 폴란드 우쯔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송일곤 감독은 자신만의 언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를 제작해 왔다. 1999년 제작한 ‘소풍’으로 칸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첫 장편영화 ‘꽃섬’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최근 제작한 미스테리 스릴러 ‘거미숲’ 역시 산 세바스찬·토론토·동경필름엑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왕가위 감독의 공동작업 제안을 거부하고 영화 제작비 마련을 위해 광고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건축학을 공부하고 시카고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영화를 전공한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실험영화와 독립영화를 제작해 온 그는 태국의 엄격한 스튜디오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영화감독 중 한 명. 첫 장편데뷔작 다큐멘터리 ‘정오의 낯선 물체’는 2001전주국제영화제 우석상을 차지했으며, 그 후 연출한 ‘친애하는 당신’은 2002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 수상 등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었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츠카모토 신야 감독은 스타일리쉬한 화면으로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이다. 데뷔작 ‘철남’이 로마판타스틱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독창적이고 독특한 스타일의 감독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감독, 각본, 제작, 촬영, 편집, 미술, 연기 등 1인 7역을 담당하고 있다.‘킬빌’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공동제작 제의에 ‘3억불의 예산과 미국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설정을 허락해 준다면 고려하겠다’고 대답한 괴짜감독이다.디지털삼인삼색 제작발표회는 내년 1월 10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린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12.30 23:02

2004 문화계 이슈

2004년 전북 문화계는 바빴다.예술인들이 쏟아낸 창작 결실 만큼, 많은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에 자극이 됐다. 2004 문화계가 남긴 명암을 엮었다. △영화의 고향, 명성을 찾다수려한 경관과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전북이 영화 촬영지로 급부상했다. 민간 사무국 체제를 갖춘 전주영상위원회가 ‘주홍글씨’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31편의 영상물을 전북으로 유치하고, 부안영상테마파크 완공과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으로 영상도시를 향한 전북의 꿈은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관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도내 상영관들의 멀티플렉스화가 급속도로 이뤄졌으며,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민영화제, 전주인권영화제, 전북여성영화제 등 다양한 성격의 영화제가 이어진 올해 전북은 영화의 고향으로서 그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문화공간 지역 문화예술인의 창작 지원을 위한 문화공간들의 개관이 뒤를 이었다. 우진문화재단은 전주시 진북동에 전시장과 공연장, 세미나실, 공연예술 전용연습실, 개인연습실 등을 갖춘 우진문화공간을 개관했으며 옥성종합건설은 전주 경원동에 옥성문화센터를 마련해 지역예술활성화 지원사업의 걸음을 뗐다. 특히 옥성문화센터안에 문을 연 소극장 ‘판’은 한 곳의 소극장만으로 공연활동을 이어왔던 연극인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남원에서도 전시 전문 화랑인 예닮갤러리가 개관했으며, 전주롯데백화점 안에도 작은 갤러리가 문을 여는 등 전시공간이 확대됐다.△예술인 조명 사업작고 예술인 조명 사업도 활기를 띄었다.석정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전북작가회의 등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신석정 시인 30주기 추모문학제’를 열었고, 소설가 최명희의 고향 남원시 사매면 노봉 일원에는 주제전시관, 유물전시관, 기념탑, 혼불길 등 작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혼불문학관이 건립됐다.강암 송성용의 비문과 현판서를 모아 집대성한 ‘강암묵적(비문·현판)’과 ‘석정 이정직 작품집’ 등은 예술인들의 맥을 잇는 소중한 결실이었다. 지역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예술인들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 기념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예술인 조명 사업을 통해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큰 소득이었다. △문화계의 뜨거운 공방올해 전북문화계는 수면위로 떠오른 쟁점이 적지 않았다. 전라북도청과 도의회 신청사 조형물(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정 과정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올 하반기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전북도는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였다’고 일관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반면, 공모에 참여해 탈락한 미술인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심사불공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등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민간위탁 기간이 만료되는 전주시문화시설에 대한 수탁자 선정 결과도 잡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주시는 전통문화센터와 한옥생활체험관은 현 수탁자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사)전통문화사랑모임을, 공예품전시관은 전주대를 새수탁자로 선정했다. 평균득점 70점에 미달한 역사박물관은 수탁기관 선정이 보류됐다. 그러나 문화시설운영 평가에서 2년간 1위를 차지했던 한지문화진흥원이 공예품전시관 수탁에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나면서 탈락 단체들은 심사의 불공정성을 제기하고 나섰으며, 역시 뜨거운 공방이 진행중이다. 올 연말로 위탁 계약기간이 끝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현 수탁기관인 학교법인 예원예술대 재위탁으로 일단락됐지만, 위탁 선정과정에서 공모절차와 여론수렴을 무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수면으로 떠오른 전주시의 문화재단 설립을 둘러싸고도 공방의 수위가 높았다. 전주시는 문화재단 출연기금 1억5천만원을 확보해 내년 초 문화재단 설립을 서두르고 있지만, 문화계는 정당한 절차와 철저한 준비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주시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 전주시가 전통문화도시의 수도(首都)로 발돋움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단지와 한방산업단지 조성, 이를 전라감영과 4대문 복원 등과 연계시켜 광주의 문화수도와는 차별화된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성장시켜나가는 복안이다. 문광부의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와 맞물린 전주의 선택은 전통문화중심도시 지정 가시화 성과로 이어지면서 문광부의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테스크포스팀이 구성되었으며, 전주시에서도 지난 7월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을 결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서 전통문화중심도시 사업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올해 하반기 동안 각계인사들을 초청, 전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전통문화중심도시 지정의 당위성을 이끌어낸 추진단의 사업은 성과 못지 않게 새로운 기획으로 주목을 모았다. △문화재 복원과 해체일제시대 훼손됐던 우리 문화재의 민족혼 회복을 위한 복원과 해체 작업이 활발했다.일제의 한국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1919년 철거됐던 경기전 부속건물들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돼 전주 경기전이 제 모습을 찾게 됐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조사작업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하고 있는 이 작업은 현재 2층까지 해체조사가 완료된 상태. 일제강점기에 쏟아부은 콘크리트 185톤을 제거했으며, 2층까지의 탑재를 수습해 정밀실측도를 작성하는등 원형보존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석탑은 몇 차례 변형을 겪어 백제시대의 원형이 아니라는 사실도 발표됐다.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발판도 마련됐다.문화재관리국의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이뤄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주변 유적 발굴조사는 올해를 기점으로 역사를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궤도에 접어 들었다.고대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공간구획에 대한 자료 확보,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축조양상 등을 통해 궁성 구조 확인을 비롯해 익산 왕궁리 유적은 기존에 발굴됐던 터의 구체적 확인 외에도 건물지와 유물들이 새롭게 드러나 익산 지역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조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전주의 출판문화 뿌리를 증명하는 조선시대의 책판 목판 ‘완판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정리작업도 시작됐다. 지난 9월 전주시 목판정리사업 단체 공모에서 선정된 전북대 박물관은 완판본 5천19개 청소와 정리 및 조사연구 등을 전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완료시기는 내년 2월 4일 예정. 그러나 조사 이후 별도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공간이 협소하고 방습·방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전주 향교 장판각에 다시 보관되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완판본 보존·전시 공간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주어졌다.△도립미술관 개관현대 미술의 전 장르를 수용하는 종합 현대 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개관은 올해 지역 문화예술계의 반가운 선물이었다.도립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전시실 5개(4백50평)와 대형수장고 2개(120평), 강당(195석), 자료열람실, 아트숍, 카페테리아, 강의실, 야외공연장, 어린이 놀이시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대 미술의 정체성과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전은 물론, 미술에 대한 이론 및 실기강좌, 어린이 미술관 등 미술관 문화학교와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본격 운영할 예정이다. 평일 1천여명, 주말 3천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개관 전부터 지적됐던 지리적 접근성에 대한 우려를 씻어냈다. △전북예총과 전북민예총 새 집행부 출범문화예술계의 양대 산맥 전북예총과 전북민예총의 새 집행부 출범은 지역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했다. 8년만에 치러진 전북예총 제20대 회장 선거는 올해 초 지역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궜다. 네 명의 후보와 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황병근 현 지회장이 당선됐다. 전북예총은 자문위원회를 보강하고 발전연구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등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고 나섰다.지난해 출범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회는 송만규 지회장을 비롯한 제2대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전북민예총과 지역 예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전국 민속예술제 유치와 국제교류사업(러시아 우스리스크 공연) 등을 특별사업으로 선정하고 정책위원회를 설립, 도민들을 위한 문화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축제의 궤도찾기 민선이후 난립 양상을 띠고 있는 지역 축제에 대한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제평선축제가 문광부의 2005년 문화관광축제 최우수축제로, 무주 반딧불축제와 남원 춘향제가 지역육성축제로 선정되는 기쁨을 안겼다.그러나 춘향문화선양회의 파행운영이 불거진 남원춘향제는 행사지원비 전액 삭감 등 축제 운영에 치명적인 결과가 이어지면서 74년 축제 전통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올해 세계 33개국 2백84편의 작품으로 다섯번째 영화제를 치른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부천과의 차별성을 확보해내면서 전주만의 색을 분명하게 살리는 데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다. 주민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았지만 전주를 주목하는 마니아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일단 안정기에 접어드는 연대기적 의미를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조직위가 내세웠던 ‘지역민의 신뢰와 애정의 회복, 정서적 뿌리내리기를 통한 소리축제 위상강화’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뚜렷한 자취 남긴 작고 예술인전통가옥의 맥을 이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 고택영옹이 향년 91세로 세상을 떴다. 남대문과 금산사 대적광전 등 주로 국보·보물급 사찰 및 문화재 보수와 고건축물 신축에 참여해온 고인의 60여년 목수 외길은 아쉽게도 자취로만 남았다. 전북현대회화사의 1세대인 서양화가 이복수씨의 작고 소식은 문화가를 안타깝게 했다. 향년 82세.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53년 ‘신상미술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한 이래 전북서양화단을 올곧게 지켜왔다. 전북의 화랑 역사와 서단을 지켜온 월담 권영도 선생도 향년 88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8살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평생 서예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고미술수집가로 활동하면서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화랑을 열어 70-80년대 전북 미술 활동을 주도했다. 문학계에서도 창작으로 젊은 인생을 살아온 이흥규 시인(향년 67세)과 아동문학가 전이곤씨(향년 56세)가 비슷한 시기에 차례로 세상을 등졌다.

  • 문화일반
  • 안태성·도휘정
  • 2004.12.30 23:02

조각가 김오성씨 도록 '돌 사람들' 펴내

‘호랑가시나무’와 ‘돌 사람들’.조각가 김오성씨(59)가 도록 ‘호랑가시나무 숲으로 초대된 돌 사람들’을 펴내고 신비한 이야기가 있는 금구원 조각 전시관으로 초대했다.김씨가 운영하고 있는 금구원 조각전시관(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861-20번지)은 이미 ‘개인 천문대 1호’ ‘한국 최초 조각공원’ 등으로 잘 알려진 곳. 독학으로 조각을 익혀 온 김씨의 40년 세월이 상설전시돼 있다. “근래에는 조각의 폭이 넓어져서 사실적인 작품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생소한 느낌을 받지요. 그러나 조각의 정통성은 사실적인 인체조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인체에서 고유의 선을 발견해 내는 김씨는 “집착이라고 할 만큼 인체조각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봄하늘의 별자리’를 닮은 여성과 ‘보릿고개’라 이름 붙여진 남성 등 그는 벌거벗은 사람들의 몸 구석구석에서 세상의 이치를 읽어낸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약간의 생략을 거쳐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한 작품들이다.“차가운 돌에 따뜻한 이야기를 새기는 거죠.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전시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어가세요.”조각전시관 마당에는 한창 작업 중인 6m55cm 규모의 여인상이 서있고, 곧 부안 계화면에 세워질 4m7cm 작품도 자리잡고 있다. 경제적 여건은 물론, 체력이 뒤받침 되어야 하는 대형작업에 김씨는 서둘러 열정을 쏟고 있다.호랑가시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조각들과 호숫가에 자리잡은 작가의 작업실,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는 소품 전시장 ‘둥근집’ 등을 둘러보는 동안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4.12.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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