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 판소리기행] (1)남원 "소리香 끊이지않는 명창의 고향"
최동현교수의 판소리 길라잡이가 여름기획으로 기행을 떠납니다. 8월까지 매주 목요일에 연재되는 '여름에 떠나는 판소리기행'은 명창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판소리 땅을 찾아가는 기획입니다.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떠나는 판소리기행이라면 문화적 체험과 함께 교육적인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소리 한 대목 함께 실어가면 더위도 저만큼 비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송흥록, 송광록, 송우룡, 박초월: 남원 운봉 비전리2. 권삼득 : 완주 용진 구억리3. 신재효 : 고창읍4. 김세종 : 순창 복실리5. 장자백, 장득진, 이화중선, 박복남 : 순창 적성 운림리6. 장판개 : 순창 금과 삿갓테7. 전도성, 전계문 : 태인 8. 진채선, 김성수 : 고창 심원(1) 남원 "송흥록 박초월, 그리고 비전리"예나 지금이나 남원은 판소리의 고장이다. 남원은 ‘춘향가’와 ‘흥보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춘향이나 흥보, 놀보는 남원 사람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래의 왕으로 일컬어지던 송흥록, 그의 동생 송광록, 아편중독자였지만 일제강점기 대명창이었던 김정문, 근세 최고의 여창 박초월, 동편제 판소리의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강도근, 당대 최고의 인기 소리꾼인 안숙선에 이르기까지 판소리사에 길이 남을 명창들을 줄줄이 배출한 곳이다. 남원에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립국악원과 우리나라 민속음악의 총본산임을 자처하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서, 열년 열두 달 판소리와 전통음악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곳이기도 하다.남원은 지리산 발치에 놓여 있는 고을이다. 여름 피서철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넉넉한 지리산 골짜기에서 지친 몸들을 쉴 것이다. 이 시기에 남원을 찾는 사람들은 남원시립국악단의 국악공연을 덤으로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7월 20일부터 24일까지는 매일, 그 외에는 매주 화, 목, 금, 토요일 저녁에 공연이 펼쳐진다. 지리산 가는 길에 국악의 성지로 알려진 운봉을 들러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좋다. 운봉에서 함양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황산대첩비지를 알리는 큰 돌이 서 있다. 황산대첩은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 아기발도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를 가리키는데, 이를 기념하는 비각이 있는 곳이 운봉면 화수리이다. 본래 황산대첩비는 여러 조각으로 깨진 채 버려져 있고, 그 곁에 새로 비석을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조상들이 대패한 것을 기리는 비라는 이유로 넘어뜨려 깨버렸다고 한다. 비를 무너뜨린다고 패배한 역사가 사라질 리 있겠는가. 깨진 비석은 왜인들의 옹졸한 마음까지를 증언해 준다. 바로 이 비가 있는 마을이 가왕 송흥록이 살았다는 동네이다. 그러니까 송흥록의 동생 송광록도 당연히 이곳 출생이다. 송광록의 아들 송우룡은 구례 사람이라고 하지만, 출생지는 이곳일 것이다. 송우룡의 아들이 바로 일제시대 최고 명창 중의 한 사람인 송만갑이다.그뿐인가. 근세 최고의 여창 중의 한 사람인 박초월도 이 마을에서 자랐다. 지금은 비록 송흥록의 탄생지라는 조그마한 표석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판소리 최고의 성지이다. 실제 남원시에서는 이 부근에 국악의 성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박효관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한 안민영의 ‘금옥총부’라는 시조집에는, 그가 1842년 가을 순창에 내려갔다가 주덕기와 함께 남원 운봉의 송흥록 집에 들러, 그곳에서 신만엽, 김계철, 송계학 등 명창들을 만나 수십 일을 잘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큰길에서도 한참 들어가야하는 한적하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 한 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창들이 모여 소리를 주고받던 곳이었던 것이다.모름지기 우리 민족이라면 우리 민족 최고의 음악가가 살던 곳에 들러 잠시 전통의 향기를 떠올려 봄 직하지 않은가. 그곳이 마침 왜구를 대파한 전적지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을 입구의 시원한 솔숲과 정자도 잠시 땀을 식히기에는 그만이다. 올여름엔 피서 가는 길에 우리 문화 역사의 현장도 꼭 들러 보자./최동현(군산대 교수, 판소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