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2주기] “내 힘으로 내 뼈를 세우리라”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이 그 육신을 벗고, ‘외롭고 높은 문학혼’의 한 상징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지, 오는 11일로 만 2년이 된다. 그 2년 동안, 경향 각지에서 ‘혼불’과 작가 최명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전주와 남원을 쉼 없이 찾았고, 이같은 추숭의 마음이 모이고 힘을 합쳐 남원엔 ‘혼불문학마을’이 생겼는가 하면, 전주에는 묘역을 중심으로 ‘혼불문학공원’이 조성되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뿐 아니다. 기리는 마음과 조형물 외에도, ‘혼불’의 문학적 가치를 본격 조명하는 평론과 논문이 줄이어 발표되고 있고, ‘청암부인이 효원에게 자신의 혼불을 점화해주고 가는 장면’을 연상케 할만큼, 혼불의 성망을 문학계 대내외에 확산시키기 위한 기념사업안들 또한 속속 가시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같은 작업이 꼭 긍정적인 효과만 생산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추모 열기가 드높은만큼, 내실 있는 가치 평가가 동반되어 할 터인데도, 애도 일색의 헌사나 ‘발 빠른 무임편승’의 혐의가 있는 가자(加資)의 의례를 치르는 이들이 적지 않고, 외형적인 기념사업은 ‘혼불 혹은 최명희 신비화’의 유혹 앞에서 늘 머뭇거린다. 사실, 이같은 일은 매우 고약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의전 서열에서 자신의 명망을 확인하려는 속물 근성이나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사고방식과 ‘혼불’ 혹은 생전의 최명희 선생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적인 소견으로 최명희라는 작가, 혼불이라는 작품에 접근하는 ‘키워드’는 작중 청암부인의 입을 빌려 진술된 “내 힘으로 내 뼈를 세우리라”는 선언적 에피그램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한 이후 창작과는 거리를 둔 세계에서 8년 남짓 방황하다가 어느날, 텔레비전에 나온 한 여성 출연자가 함박 웃는 얼굴로 “저도 한 때는 문학소녀였어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에 분노하다가, ‘사실 내 처지가 저이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나 역시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던가’, 생각하니 절로 ‘자련내하(自憐奈何)’하는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해 밤새워 홀로 통곡했다는 외로운 영혼, ‘혼불’을 집필하는 내내 ‘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해줄 평론가 하나만 있어도 원이 없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유약한 영혼... 최명희 선생은 평생 이런 외로움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과 맞서 싸웠던 작가였다. 하여, ‘바윗돌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한 자 한 자 새기듯’ 소설을 써나갔다는 작가의 말에선 피 냄새가 배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열 권으로 놓여진 ‘혼불’의 높이만으로 최명희는 처음부터 위대한 소설가였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남다른 구도자였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온당치 못하다. ‘혼불 1부’에 스스로 도근점(道根點)을 설정하고, 이후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느라 무진 애를 쓴 인물, 그게 보다 성립 가능한 인물평이 될 것이다. 획일적으로 혼불은 위대한 작품이다, 최명희는 걸출한 작가였다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이 작가와 작품의 진정한 위대성은 빛을 잃고 만다. 스스로 자신의 키를 높이려 발돋움하고 또 발돋움했던, 진땀어린 노력의 흔적이 ‘혼불’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최명희와 작품 ‘혼불’에 대한 추모와 기념사업은 이같은 인간적 의지와 노력의 가치에 대한 승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인간의 역사는 ‘흔들리기 쉬운 영혼’들이 벌인 고투의 집적물이 아니던가. 다행히 우리 도민들은 최명희 작가가 거닐었던 전주와 남원의 들과 산과 길을 공유하고 있고, 그녀가 문학의 꿈을 키웠던 기전학교와 전북대학교 교정을 ‘살아 있는’ 문화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최명희 본인이 말한 것처럼, ‘혼불은 인간 최명희 전생애 뿐 아니고, 최명희 이전에 누적된 한국적 문화 전통’의 산물이다. 혼불과 작가 최명희를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최명희 이후 우리 삶에 대한 자기 반성과 자기 승인을 전제로 하는, 자기 사랑에 다름 아니다. 혼불이 있어 우리가 행복한 것도 아니요, 그가 거닐던 거리를 우리가 다시 걷게 될 수 있어서 우리 삶이 문화적으로 충만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작가 최명희가 먼저 발견하고 언급한 우리의 삶과 문화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걸 새삼 깨닫고, 그 속에 서 있는 나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 작가 최명희가 우리에게 남겨준 ‘혼불’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김병용(백제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조교수?혼불기념사업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