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만난 작가] ②'제인오스틴' 기념관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을 엿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 사람의 자연스런 감성과 소소한 일상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으로 인해 빛이 날 수도 있고, 어둠으로 물들 수도 있다. 영국 햄프셔주 작은 마을 초튼(Chawton). 이곳은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서른 네 살 때부터 생의 마지막 여덟 해를 보낸 곳이며, 주요 작품을 완성한 공간이다. 작품을 쓰며 사용했던 물품들이 있고, 바라보고 거닐었던 풍경이 있다. 그의 연구자들과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풍경을 보고, 작가의 삶과 빛과 어둠의 한 자락을 만나기 위해 영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작은 책상에서 빛과 어둠이 시작된다영국 시골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지닌 초튼의 '제인오스틴하우스'(제인오스틴기념재단이 운영, 1947년)는 그녀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네트'와 '다시'의 밀고 당기는 사랑싸움처럼 요란하지 않으면서 경쾌했고 아름다웠다. 17세기 풍의 붉은 벽돌에 검붉은 지붕의 2층집. 정원은 오래된 나무와 색색의 꽃들이 있어 평화로웠으며, 뒷마당은 소박한 축제를 열어도 좋을 만큼 아늑했다. 잦은 비로 물기를 머금은 잔디는 촉촉했다. '시골에 서너 가정만 있으면 그것은 소설로 충분히 걸맞은 재료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는 오스틴은 이곳을 거닐며,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생활과 미묘한 감정들을 떠올리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가치와 도덕과 진리에 대한 믿음을 싹틔웠으리라. 그의 작품에서처럼 기념관은 옛 영국의 전통과 풍습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오스틴이 사용하던 피아노와 꼼꼼히 옮겨 적은 악보를 먼저 만난다. 벽에는 당시 신문에 실린 기사와 가족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곳에서도 오스틴의 이미지는 머리에 쓴 보닛과 표정 없는 얼굴, 밤색 눈동자로 시작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창조의 문'이다. '외부인이 오면 쓰던 원고를 감추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그 시대의 의상, 가족의 이력과 유품들이 있으며, 전시품 중에는 어머니·언니와 함께 만든 누비이불과 그녀가 직접 짠 레이스 옷깃, 머리카락으로 만든 목걸이가 눈에 들어온다. 제인오스틴하우스 톰 카펜터 관장은 "오스틴은 글을 쓰는 것 외에 나귀-수레를 모는 것과 바느질을 좋아했다”며 "옛 제빵소 건물에 오스틴이 몰던 수레가 있다”고 소개했다. 오스틴이 친언니에게 보낸 편지 사본에는 '다음 무도회에서 청혼을 받을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카펜터 관장은 "오스틴이 이 마을로 온 이유는 바로 옆 마을에 스무 살 무렵 사귀던 옛 연인이 살았기 때문”일거라며,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도 마을이 떠들썩하도록 진한 사랑을 했었다고 들려줬다. 침실에 있는 오스틴의 책상은 십이각형으로 짜여진 결이 고운 나무판이다. 이 작은 책상에서 그녀는 예전에 써 두었던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을 수정·출판했으며, 「맨스필드 파크」와 「엠마」 「설득」을 쓰고, 앞선 두 권을 세상에 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부인'이란 익명으로 소설을 출판했다. 여성의 사회적 발언이나 자아실현이 금기(禁忌)시 되던 시절, 여자가 혼자 살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흉흉한 소문이 오가던 때였다. 퍽 고단한 삶. 지금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그의 인생은 이 책상에서 빛과 어둠으로 물들어갔던 것이다. 2인치 상아에 세공 하는 기분으로오스틴이 태어나고 스물 여섯까지 산 곳은 이곳에서 약 25㎞ 떨어진 스티븐턴 마을이다. 이후 도회지인 바스와 사우스앰턴을 거쳐, 어머니·언니 가족과 고향 근처인 초튼에 자리잡았다. 한적한 시골마을인 스티븐턴과 초튼에서의 생활은 작가인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무대는 시골의 고요한 일상. 매우 협소하다. 개인 생활에 치중한 대화들이 중심인 전개 방식이나 등장인물의 관계가 주로 집안 식구나 친구로 한정되는 것은 작가의 생애가 소설에 그대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열두 살 무렵부터 습작을 시작한 그녀는 여러 유형의 살아있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창조했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이었으나 목사인 아버지와 손님맞이에 분주했을 어머니, 다섯 명의 오빠, 한 명의 언니, 남동생, 조카들과의 산책, 집의 '티 테이블'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세계가 그녀의 작품 세계였다. 경험의 폭도 좁고 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녀는, 그녀가 본 그대로의 조그만 세계를, 아무런 흥미도 없을 것 같은 소재를, 놀랄만한 수법으로 살려 놓았다. 인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예리한 관찰력,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인치 상아에 세공을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던 그의 실체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 고즈넉한 마을을 다녀간 후, 사진 속에서 텅 빈 듯 보였던 제인 오스틴의 눈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해부하는 보편성을 지닌 눈, '냉정'을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의 눈으로 바뀐다. /최기우(소설가·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