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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가뭄을 이겨내는 시민단체 - 김천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말처럼 물은 모든 생명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며 안식처이자 서식처이다. 인류문명의 대표적인 발상지 역시 풍부한 수량이 확보되는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치수(治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는 등 물은 인류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산업발전, 인구 증가로 인한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가용수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수질은 악화되고 있는 반면 물 사용량은 점차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들은 물 쓰듯이 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연간 강수량이 세계 평균보다 많다 해도,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8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장마와 같이 계절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하고 하천경사가 급해 물의 유실정도가 큰 편으로 2011년에는 연간 3억 4000만㎥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지난 해 여름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남부지역의 경우 최근 7개월 동안의 강수량이 평년의 25~46%의 수준에 그치면서 현재 도내 저수량은 계획 저수량의 41% 수준인 6억 5천 6백만 톤에 불과하며, 평년 저수량에 크게 부족한 수치이다. 또한 당분간 해갈이 가능한 수준의 비가 내릴 가능성도 거의 없어 농업용수의 공급차질은 물론 생활용수도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전주시의 경우, 하루에 시민 1인당 385ℓ~400ℓ정도의 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국평균 346ℓ보다 높은 상황임을 고려해볼 때 저수량과 사용량의 극심한 차이로 향후 시민들의 불편과 갈등까지도 예견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시는 1,436억원을 들여 2013년까지 7개년에 걸쳐 유수율 제고를 위한 블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누수탐사 복구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대성수계 일부지역을 전주권광역상수도로 공급 전환하고 방수리 수원의 확보를 위한 노력 등 물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나 가뭄이 지속될 경우 일부 고지대의 제한급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즉, 물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책적인 방안 모색뿐 아니라 시민들 역시 물 자원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물 절약을 생활화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절수형 수도꼭지 설치하기, 샤워시간 줄이기, 양치질 시 물컵 사용하기, 빨랫감 한 번에 모아 빨기 등 생활 속에서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절약법으로 1일 평균 전주시 상수도 생산량의 10.6%에 달하는 약 2.5만 톤의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으며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경우 연간 40억 원 어치의 수돗물을 아낄 수 있다.후회해봤자 때가 늦어 소용없다는 말을 흔히들 쓰곤 한다. 그러나 물 부족은 때가 늦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 절약은 우리의 생존과 미래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 부족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시민들의 노력과 실천을 절실히 기대하는 이유이다./김천환(전주시 상하수도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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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26 23:02

[문화마주보기] 국악과 뮤지컬, 이제는 산업이다 - 이 찬

뮤지컬은 약 140년 전인 1860년대 미국 뉴욕에서 노래와 춤을 이용해 극을 이끌어가는 유럽의 오페레타(오페라 보다 서민적이고 가벼운 오락을 가미한 오페라 축소판)에서 출발했다.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흑인 영가에서 대중음악이 출발했고, 그 대중적 요소와 오페라의 형식이 결합하여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뮤지컬이란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오페레타의 작품으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과 브렛포드 로페스의 '42번가', 조지 거쉬인의 '포기와 베스',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손다임의 '스위니 토드'등 들 수 있다.국내 뮤지컬 시장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단일 공연으로는 최고액인 190억원 입장수입을 기록한 후부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힘입어 세계 4대 뮤지컬 등 빅 뮤지컬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흥행 또한 성공하여 공연계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초기의 국내 뮤지컬시장은 미국 브로드웨이의 작품이 대부분 이였으므로 그 식상한 을 틈타 현재는 유럽 중심의 작품, 체코의 '드라큘라', 프랑스의 '로미오와 쥴리엣' '노트르담 드 파리' '돈주앙'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시장을 지배하는 문화 산업으로 발전하였다.이렇게 뮤지컬 인기에 편승하여 국내 뮤지컬 제작도 활발하다. 국민 뮤지컬 '명성황후'을 비롯하여 경기도 문화전당의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 경상남도의 창작 뮤지컬 '이순신',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30억원을 투입해 제작하는 김훈의 '남한산성' 등 많은 작품이 대형화되고 그 지역의 문화 브랜드로 각인시키기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 뮤지컬 맘마미아의 영화개봉과 함께 '색즉시공', '미녀는 괴로워 등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뮤지컬로 변신중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에서 뮤지컬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 뮤지컬, 뮤지컬 발레, 국악 뮤지컬 등 모든 장르가 뮤지컬과 결합으로 대중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난타, 점프 등 넌버벌(대사가 없는) 공연도 변형된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뮤지컬은 왜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예술의 종합적인 요소에 작품성과 오락성,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의 정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중과 대중이 관심을 받지 못하면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요즘 서양음악의 편향에서 벗어나 오리엔탈리즘, 즉 동양의 멜로디와 소재에 새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80년대 영국 BBC 방송에서 제기 되어 반향성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작곡가들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동양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뭔헨 올림픽의 공식작품인 윤이상 오페라 '심청'에서 예전에 듣지 못한 신비한 국악적 멜로디에 전 세계 음악계가 주목한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국악은 우리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소리의 총칭으로 서양음악과 같이 고유의 음계,악기 등 모든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의 변화와 결합으로 많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지도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지켜야할 전통예술과 그 전통예술의 행위 즉 공연예술은 별개의 문제이며, 지켜야할 국악적 요소와 발전시켜야할 국악적 문화컨텐츠는 구별하여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예술은 앞으로 충분한 세계적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국악도 모든 예술장르처럼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하며 그 답은 뮤지컬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예술의 가치도 사회적 시장원리에 부합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또 다른 문화가 그 자리를 메운다. 현대는 빠르게 변모하는 다원화된 사회, 글로벌시대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고 신선한 문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갈망한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가장 가까이 있고 가능성 있는 것이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멀지 않는 미래에 메이드인 코리아 공연이 전 세계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를 것을 기대해 본다. 그 중심에 우리의 국악이 있다./이 찬(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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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24 23:02

[문화마주보기] '치욕의 역사'와 문화유산 보존 - 김성환

유네스코를 비롯해 세계 각국은 후대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윗세대의 문화적 소산을 대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부른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만 '문화재(Cultural Properties)'란 말을 선호한다. 문화재는 법적 제도적인 재산권 내지 소유권을 강조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또한 '재(財)'에는 문화를 단지 재화로 취급하는 물질주의와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이 담겨있다.이 단어에는 아시아 각지의 문화유산을 가져다가 국가재산으로 삼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욕망이 은폐돼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문화유산 관리 체계와 방식을 죄다 베껴왔고, '문화재'란 용어 역시 그대로 가져왔다. 그 와중에서 문화에 대한 물질주의와 관료주의를 답습했지만, 다양한 문화유산을 자기의 문화적 재산으로 삼고 이를 '활용'하는 재능은 거의 익히지 못한 듯하다.최근 도내 한 국회의원의 주도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법안의 제안 이유는 이렇다. "문화재는 역사적문화적으로 민족의 긍지와 정통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근대문화재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침탈국인 일제의 문물을 문화재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긍지와 자존심을 훼손"하므로 이를 "문화재로 지정 또는 등록할 수 없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조금만 깊이 따져보자. 문화재는 과연 반드시 "역사적문화적으로 민족의 긍지와 정통성을 표현"해야만 하는가? 어떤 개론서나 국제협약, 심지어 백과사전에서조차 '문화재'를 이렇게 정의하지는 않는다. 만약 '문화재'가 이렇게 정의된다면, 세계3대박물관(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대영박물관)의 엄청난 인류문화사 자료들이 문화재 물목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박물관의 문화재들은 이집트와 아시아의 찬란한 고대문명을 증명한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프랑스와 영국은 거의 야만상태에 있었고, 앵글로색슨의 미국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민족적 긍지와 정통성을 표현"하기는커녕, 도리어 자국 문화의 낙후성을 입증하는 문물들을 문화재로 끌어안고 있는 프랑스와 미국과 영국의 저 박물관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중략)중국 북경의 원명원(圓明園)은 청나라 최고의 황실정원이었다. 하지만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연합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됐다. 이후 중국은 한 세기 반이 다 되도록 그 폐허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왔다. 자국민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상기하는 교육현장으로, 서구인들에게는 제국주주의 시대의 '야만의 역사'를 일깨우는 야유의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치욕의 유산을 보존한다고 민족의 긍지와 정통성이 훼손되는 게 아니다. 아픈 기억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과거를 주체적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콤플렉스와 무능의 반증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렸다. 그리고 지금 군산에서도 일제시기의 유산을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려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마당에 그것을 지역의, 더 나아가 국가의 '문화적 재산' 물목에서 제외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마지막으로, 일제 강점기에 이 땅에 건립된 근대유산을 '일제의 문물'로만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비록 당시에 일인들이 도시와 건물을 설계하고 주인으로 행세했지만, 정작 그 도시를 일으키고 산업현장에서 피땀 흘린 이들은 이 땅의 민중이었다. 군산의 세관창고와 조선은행, 나가사키18은행이 어찌 일제 통치자와 친일파의 영화만을 기억하겠는가? 건물 벽돌 한 장 한 장마다 또한 수탈과 압박의 시대를 건너온 조선 민초들의 눈물과 애환,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의 사연들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이런 사연에 눈감고 일제시기의 유산들을 단지 '일제의 문물'로만 본다면, 이야말로 엘리트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읽는 편협한 해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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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17 23:02

[문화마주보기] 녹색에 정부의 녹색정책을 묻다 - 한면희

요즈음 관가에서는 녹색이 유행어라고 한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온갖 정책에 녹색을 갖다붙일 만한 것이 없는지 찾느라 혈안인 것이다.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대통령이 국가 비전으로 녹색성장을 천명하였고, 그에 따라 정부는 새해 초에 녹색뉴딜 사업을 발표하였으며, 최근에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가히 녹색이 난무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런데 정작 이를 반겨야 할 환경단체들은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이니 왜일까?먼저 복개된 청계천이 녹색인지 물어보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그럴 수 있다고 답변한다. 현 청계천은 생태적이지는 않아도 환경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데, 녹색 이외에도 환경이나 생태를 사용하는 데 왜 이렇게 복잡하며 또 각각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일단 환경이란 어휘는 인간 중심주의 태도에서 나온 산물이다. 이런 우월적 분리주의 시각에서 인간(사회)은 주체이고 자연은 수단으로써 주변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환경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므로 도구인 환경을 신중하고 값비싸게 다루겠다는 것이 환경주의 접근이다. 따라서 대도시에서 콘크리트로 갇혀버린 청계천을 다시 열어 물이 흐르도록 한 조치이니 환경적이다. 그러나 생태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생태란 것은 인간과 자연, 동식물 종과 서식처 자연이 둘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소산인데, 청계천은 여전히 콘크리트로 단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동력펌프로 하류에서 물을 끌어다가 상류에서 다시 흘려보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청계천 복개가 대도시에서 벌어지면 녹색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한강 천체로 확장된다고 해도 여전히 녹색일까? 아니다. 반생태적일 뿐 아니라 환경적이지도 않다. 전기를 사용하여 물을 역류시켜야 하고, 멀쩡한 자연형 하천 곳곳을 콘크리트로 도배해야 하며, 또 곳곳에 설치한 보가 수중 생태계를 교란시켜 토착 어류와 수초가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집 안에 어항을 들여놓을 수는 있어도 서울을 어항으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쯤이면 녹색의 의미는 조금 감이 잡힐 듯하다. 녹색은 진화한 인간이 자신의 생존에 알맞도록 자연을 변형하여 문화를 구축하되, 그런 문화가 자연과 상생하는 패러다임의 개념이다.정부의 녹색성장기본법이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도'를 반영하고 있고 또 환경세를 조금 암시하고 있는 데 방향은 옳다. 그러나 기업에 주는 당근이 너무 지나치다. 정부의 녹색뉴딜 사업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 기술 확대를 장려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비중이 극히 적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지향하는 녹색뉴딜과 비교하면 색깔이 너무 엷다. 특히 4년 동안 50조원을 들여 96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인데, 4대강 정비와 철도 및 버스 교통망 구축에 예산의 3분의 2가 소요되며, 96%에 해당하는 91만 자리가 건설 및 단순 생산직이라는 점에서 주로 삽질형 예산이다. 이쯤이면 정부의 녹색정책은 청계천의 확장형으로서 녹색과 상관성이 적거나 반생태적이다. 정부 정책이 진정 녹색이 되도록 재편되기를 희망한다./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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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10 23:02

[문화마주보기] 말(言)의 위기 - 곽병창

사람은 말로 산다. 말로 세상을 깨닫고 사물을 분별하며 정서를 가다듬는다. 사람 사이의 일도 말에 의해서 유지되거나 망가지거나 한다. 말의 정직함, 일관성, 그 내용의 충실함이 전제되지 않으면 공동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말은 쉽고 명쾌해야 하는데, 요즘 들어 말 때문에 사람들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해괴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가장 분통 터질 일 가운데 하나가 곧 '건국 60주년' 논란이다. 정권이 바뀌면 나라의 나이도 바꾸는 것인가? 교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새 교장과 그 추종세력의 판단에 따라 개교기념일을 바꿨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헌법 전문에 버젓이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는 나라 이름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조차 부인하라니, 이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 한 생애를 다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란다. '테러'와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말을 분간할 줄 모르는, 아니 일부러 구별 안 하는 것은 조선총독부 시절의 일이다. 그 총독부의 말을, 식민해방 60년이 지난 나라의 선거에서 이긴 자들이, '그게 옳은 말이니 국민 된 자들은 의심 없이 따라 하라' 한다. 나라 나이는 60년으로 줄이고 싶은 이들이, 국립박물관의 역사는 100년이라며 식민지 박물관 시절까지를 나이에 넣어서 자랑하려 든다는 소문이 한 때 돌았다. 소문이길 빌지만, 그쯤 되면 정신착란 아닌가?그뿐인가? '법치'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정부에서 법이 정한 임기를 특별한 과오도 없이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고위직, 전문직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법에 정한 임기를 너무 강조하는 건, (법치를 내세우는) 새 정부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점잖게 둘러댄다. 이게 말인가? 이전 정권 때 말끝마다 '코드인사'를 성토했던 이들의 입에서 그 단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새로운 인사가 '코드인사'인지 아닌지는 왜 묻지 않는가?백 번을 양보해도 용산참사는 철거민과 용역직원과 경찰 모두의 과도한 행위가 직접적 원인이다. 물론 그 배경과 원인(遠因)에는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민들의 행위만을 대대적으로 성토하고 있는 법치국가의 법 집행자들과 막강 신문들을 보며, 저 주인 잃은 '법'과 '말' 앞에, 모국어 선생으로서 참담하고 부끄럽다. 아, 일찍이 '주어'가 없는 문장은 문장이 아니라며 모국어를 농락하던 그 화사한 대변(代辯)이, 누구보다 열심히 국어를 배우고 익힌 이의 혀끝에서 나왔으니, 이 '말'의 비극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촛불집회'덕에 뒷산에 올라 많이 '반성'했다던 이도, 그 덕에 추가협상이 유리하게 진행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던 이도, 이제 촛불집회는 '광풍'이었다며 마녀사냥에 여념이 없다.말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초시간적 동일성') 위에서만 말이다. 같은 말의 뜻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는 안 된다. 더구나 나라 일과 관련한 말이 그렇게 오락가락하면 정말 큰일 난다. 큰일 안 났으면 좋겠다./곽병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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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03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예술계에 긍정의 힘 필요하다 - 이 찬

작년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우리들의 가정 경제까지 영향을 미쳐 불안하고 위축된 마음으로 2009년을 맞이하였다. 올 한해 공연예술분야도 대형공연의 실종과 중소 공연기획사들의 도산으로 어두운 한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면 이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동안 한국의 공연예술은 모든 장르에서 양적, 질적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공연 시장은 뮤지컬과 크로스 오버 등 순수 장르에서 벗어난 공연들이 약진이 두드려 졌다. 7~80년대 외국의 공연들은 거의 일본을 거쳐 한국에 선보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 유명공연들은 직접 국내 기획사 또는 공연장과의 계약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 빅 시장으로 거듭났다.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다.전국 공연장은 115개로 늘어났다. 불황,불황 해도 지난해 우리나라 유료 공연시장은 2007년 보다 26.5%늘어난 6004편이고 티켓 판매금액도 36%증가한 약 2천억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국내 대형 티켓예매사 티켓 판매분(전체 시장의 70%)을 분석한 자료다. 물론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전 세계 경기 불황이 실물 경기로 발전하기 전이긴 하지만 전 장르의 고른 발전을 보였고, 영화 시장의 위축 속에서 나온 결과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물 경기로 직접 접어드는 올 해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단 기간 내 팽창한 공연시장은 이제는 거품을 걷어내는 기회가 온 것 같다. 특히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내용이 부실한 뮤지컬이나, 장르의 벽을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공연장르 등은 관객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또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실한 공연들은 이번 기회에 사라져야 한다. 또 하나는 공공성의 공연예술이 확대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지난 IMF 후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 중 전국 공연장 건립, 국악 대중화 사업 등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공공성 사업의 지속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문화예술의 발전을 가져왔듯이 지금 새롭게 공공성의 공연예술정책의 필요한 시기이다. 지난 공공성 사업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 즉 공연 등 예술 사업의 확대에 역점이 주어져야 한다. 전국의 115개의 공연장은 공공성을 가진 공간이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 다양한 형태로 관객의 문화 충족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연초에 가족들과 함께 짐 케리 주연의 '예스맨'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예스맨은 통상 우리가 일컫는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주장 없이 무조건 윗사람의 말에 동조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예스맨이라는 의미는 긍정적인 일에 도전하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칼 애렌(짐 캐리)는 자타가공인하는 노맨(No Man)이다. 그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 인생 역전 자립프로그램에 가입한 후 긍정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처음엔 억지로 예스(Yes)라고 얘기하던 것이 점차 그 예스로 인하여 기회가 생기고, 주위 사람을 도와주게 되고, 결국 승진과 멋진 로맨스가 이뤄지는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경제 불황으로 모두가 어렵다. 그렇지만 포기 할 수는 없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문화예술계의 거품을 걷어내고, 공공적 예술을 확대하여 보다 많은 관객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고,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그 힘을 필요로 한다. 지난 IMF도 슬기롭게 극복했듯이 이번 경제 위기도 또한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예술계 관계자, 아티스트, 관객 모두 예스맨처럼 긍정적인 힘이 필요할 때이다./이 찬(소리문화의전당 예술사업부장) ◆이찬부장은 세종문화회관 기획위원, 김해문화의전당 공연기획팀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예술사업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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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29 23:02

[문화마주보기] 국가권력과 '미네르바' - 김성환

한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지만, 정보사회의 문화와 사회변동에 대한 성찰은 크게 부족하다. 사람들은 단지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정보경제가 발달하면 정보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과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가 근대사회와 구분되는 새로운 사회, 혹은 문명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인터넷은 근대적인 '통제'와 '감시' 그리고 '지배'를 해체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투명사회'로 유명한 지엔니 바티모(Gianni Vattimo)는 십여 년 전에 "근대성의 해체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이 커뮤니케이션 사회의 도래에 있다"고 지적했다.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어느 특정인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참여하는 집단들이 '자동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조정하는" 네트워크의 특성에서 문명의 새로운 물결이 출현한다고 보았다.이런 문명사적 전망에서 볼 때, '촛불'에서 '미네르바'에 이르는 최근의 인터넷 관련 사태를 비교적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국민국가권력의 제한이나 결정권의 분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비효율의 대명사가 된 의회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같은 정치적 변동이 나타날 것을 예견해왔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촛불'은 이런 정치적 변화가 현실화되는 조짐으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정보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목이 최근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한편 특정 분야의 정보와 지식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던 근대적 지식이 몰락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개방적인 지식이 번성하는 것도 정보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손꼽혀왔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는 이런 정보사회가 낳은 새로운 지식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보사회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방적 매스미디어가 쇠퇴하는 대신 커뮤니케이션의 상호적이고 역동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해지는데, 인터넷 토론장 '아고라'의 성황이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이런 인터넷 문화의 성장에 대한 국가의 대응방식 역시 연구자들의 흥미로운 관찰거리이다. 독점적인 국민국가권력, 그리고 근대적인 지식환경에 익숙한 분과 학문의 전문가나 언론이 인터넷의 정보와 지식환경 변화를 심각한 '위험'(내지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매체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기존 지식권력과 새로운 지식환경 사이에 종종 모순이 발생한다. 한 예로 인쇄술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지금과 비슷한 혼돈이 있었다.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15세기 말부터 그리스로마의 고전이 출판되고 새로운 종교개혁사상을 담은 출판물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전제왕조와 가톨릭교회가 패닉에 빠졌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제도와 방법을 동원해 새로운 매체를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매체통제는 끝내 산업혁명과 종교개혁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동력인쇄의 발달로 근대 계몽주의 이념이 신문서적잡지 등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이런 매체혁명의 결과로 프랑스혁명을 필두로 하는 문명사적인 사회변혁이 일어났다.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국가권력이 인터넷에 대응하는 방식이 중세유럽 말기와 흡사하다. 중세의 권력자들이 인쇄업자들을 압박했던 것처럼 국가권력이 인터넷포털을 압박하고, 교회의 사제들이 마녀사냥을 하듯 보수언론과 일부 지식인이 인터넷논객을 사냥한다. 이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한 때 인쇄술과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가 중세권력과 교회의 억압으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쇠락하고, 대신 자유로운 매체의 확산으로 문명사적인 변혁을 이룬 서유럽이 번영했던 역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나 판에 박힌 사고틀에서 벗어나 최근 우리 사회의 인터넷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문화에 대한 성찰의 깊이에 따라 촛불과 미네르바는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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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20 23:02

[문화마주보기] 역사로 조망하는 상인정부의 행보 - 한면희

역사로 조망하는 상인정부의 행보한면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중국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3세기에 편찬된 역사서 ??여씨춘추??는 ?상농편?에서 평민을 두 부류, 즉 농민과 상인으로 나누어서 양자를 비교하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농민은 어린이처럼 맑고 순박하며 명령에 복종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상인은 교활하고 이기적이어서 순수성이 매우 약하며 복종심도 없다. 이웃 나라와 전쟁이 벌어질 경우 농민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동참하는 반면, 상인은 필요한 재물을 챙겨서 도망가기 일쑤다.농민과 상인이 행태를 달리 하는 연유는 천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삶의 양식과 사회제도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농민은 타인과 협동을 통해 열심히 일한 만큼 수확을 올린다. 물론 필요할 때 태양이 내려쬐고 비가 내려야 한다. 따라서 농민은 하늘을 우러러 숙연한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에 반해 상인은 시장에서 술수를 부리기에 따라 들인 노고에 비해 많은 재물을 거두어들일 수 있으니 이웃을 배려하는 경향은 덜 갖게 된다. 농업문화에서는 상인의 영향력이 작았던 탓에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의식이 인간다운 풍모를 적지 않게 남겼다.역사적으로 농업문화 시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봉건제로 인한 신분제 계급사회의 고착과 짙게 드리워진 빈곤이 문제였다. 자유주의 혁명으로 불합리한 제도가 혁파되면서 누구나 자유를 누리고 시장서 영리활동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절차를 통해 국민이 주인임을 추인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보이지 않는 시장제도가 구축되었다. 한국은 과거 중국의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해 있었고 근대 들어서는 서구의 제도를 빠른 시일에 받아들이는 진전을 이루어내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근대 후진국의 특성인 독재에 대해서도 민중의 결집된 항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일각에서는 이제 선진 한국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희망적 소리도 나왔다.그러나 최근 이명박정부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 몰아친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촉발되었고, 그것은 시장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인은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든 제 이익 창출에만 골몰함으로써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이에 선진국 정부는 계획을 세워 경제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연말연초에 국회파행을 초래한 쟁점 입법안 가운데 방송법과 금융산업법, 이른바 마스크법 등 다수 입법안은 심각한 문제를 띠고 있다. 국민의 귀를 열어주는 방송 뉴스가 편향적으로 재벌과 그들의 편에 서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춰 사전에 요리되어 나온다면 그런 블랙박스로 점철된 나라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 미네르바로 지칭된 한 인터넷 논객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했다고 해서 그를 구속하는 나라에는 독재의 그림자가 배회할 뿐이다. 농민의 정직함을 배우는 상인과 기업인, 비판에 스스로를 열어 놓으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정부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한면희(전북대 쌀삶 문명연구원 HK교수)◁ 한면희 교수는 녹색대학 교수(대표)와 환경정의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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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13 23:02

[문화마주보기] 회개하라, 이긴 자들이여 - 곽병창

자기의 땅에서 쫓겨나 수천 년을 유랑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유랑하던 그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로부터 물려받은 멸시와 차별, 그리고 질기고 잔인한 폭력의 기억이 그들을 강인한 민족으로 단련시켰다. 돌아온 고향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척박한 땅과 바람, 그리고 가난한 이민족들의 마을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이민족들의 마을을 부수고 그들의 잠자리를 빼앗아 마침내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 때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 펄럭이는 난민들의 천막과 나뒹구는 밥그릇을 딛고 그들은 악착같이 번성했다. 세상이 그들의 편이었고 부자들이, 강대한 나라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니 그들의 동족이 구석구석 세상을 두루 다스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어려울 것 없이 승승장구했다.해가 갈수록 이교도들의 땅은 좁아졌고 그들의 구차한 살림살이는 거대한 장벽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땅과 자유와 먹을 것을 잃은 이교도들은 세상을 향해 자비와 동정을 구걸하다가, 눈물로 애원하다가, 마침내 어린 자식들의 몸에 폭탄을 둘렀다. 폭탄은 더 큰 폭탄을 부르고 작은 죽음은 큰 죽음을 불렀다. 이긴 자들과 그들의 친구들은 어린 이교도들의 몸에 두른 폭탄을 손가락질하며 끔찍한 야만인들이라고 저주하고 외면하였다. 한 해가 가고 새해의 붉은 태양이 뜨는 그 축복의 시간 동안, 쫓겨난 이교도들의 마을은 무너진 집들과 울음소리와 찢긴 시신들이 즐비한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이긴 자들의 마을에서는 신의 은총을 찬양하며 승리의 축배를 높이 들어 올린다. 저 축복 받은 선민의 해사한 처녀들은 무너져 불타는 담 넘어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이것은 연극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나간 오래 전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2009년 새해 벽두에 비행기로 채 하루도 안 걸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첨단 미디어들이 생생하게 친절하게 담아서 전 세계에 전해주고 있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이다. 어린 소녀의 가냘픈 몸에 두른 폭탄을 제거한답시고 그녀의 가족과 이웃과 마을과 친구들과 학교와 병원과 구호소까지를 수백 대의 비행기와 수천 톤의 폭탄으로 불구덩이를 만드는 나라-, 그 위대한 신의 나라 이야기이다.국제사회에 이 야만의 살육을 제어할 힘이 있는가? 유엔의 특별조사관마저 공항에 억류했다가 강제 출국시켜 버리는 이 안하무인의 살인자들을 응징할 장치는 과연 있는가? 돈과 권력과 그를 바탕으로 한 로비력, 거기에 거짓 신의 권위까지를 총동원해서 벌이는 이 만행을 말릴 이는 과연 누구인가?"어머니의 빵이 그립습니다 / 어머니의 커피도 / 어머니의 손길도 / 아이의 마음이 내 속에서 자라납니다 / 하루 또 하루 / 저는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제가 죽으면, / 어머니의 눈물이 부끄러우니까요!"예수가 거닐던 갈릴리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재작년 전주에도 다녀간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이다.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는, 전주를 다녀간 지 몇 달 뒤에 고인이 되었다.그가 떠난 자리에 다시 벙커버스터의 불바다가 재연되고 있다. 희망은 시인의 몫이지만 회개는 이긴 자들의 몫이다.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세상의 모든 이긴 자들이여, 힘 없고 가난한 이들, 가자의 콘크리트더미에 깔려 죽은 아이들의 영혼에 눈물로 회개하라./곽병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곽병창 교수는 전주전통문화센터 관장,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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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1.06 23:02

[문화마주보기] Bye, Bye-전북 - 정성환

▲ 우리 떡도 작지 않다.또 새해가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조금 지나고 나면 입시가 끝난 후 어김없이 각 입시학원마다 그해 자기학원의 성적표를 건물의 절반을 덮을 정도로 커다란 프랭카드로 만들어 걸어 놓을 것이다. 특히 입시 미술학원 앞의 프랭카드를 볼 때면 나는 몹시 못마땅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면서 의문이 생기는 일이 있다. 무슨 대학, 무슨 과에 어느 고등학교 누가 합격했고 또 어떤 대학의 어떤 과에는 어느 고등학교 누가 합격했다며 큰 글씨로 장황하게 써 내려 가다가 지역의 대학들 합격자는 이름도 없고 출신 고등학교도 없이 그저 몇 명이라고만 써 놓은 것이 마치 지역의 대학과 타 지역의 대학을 순위를 매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기 충분하도록 해 놓은 것을 보면 그렇다.무슨 객관적 평가기준이 있어서였을까.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옛 교육부나 모 일간지에서 전국의 디자인 대학, 대학원을 평가하고 순위를 발표한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제대로 된 조사는 없었다. 그저 왠지 남의 떡이 커보여서 아닐까. 그래서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올해도 '빠이, 빠이 전북'을 시도할 것이다.최소한 각 대학의 작품전, 과제전, 졸업생 취업실적, 수업의 강도, 교수들의 연구실적도 보고 대학원, 박사과정의 연구내용, 학회발표 내용 정도는 비교해 보고 대학을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그게 힘들고 귀찮으면 최소한 학기 중 대학에서 학생들이 밤새도록 어떻게 공부하는지 정도는 눈여겨 보고나서 '빠이, 빠이'해야 하지 않을까. 남의 떡이 큰 것과 커 보이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작다고 능력도 작은 것은 아니다.올해도 많은 디자인관련 프로젝트들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자되었다. 예전에 비해 규모도 건수도 그리고 분야도 다양해지고 많이 증가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몇몇 지역에 디자인 전담 부서가 생기고,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고, 디자인 센터를 세우고, 디자인 비엔날레, 디자인 페스티벌 등 행사도 다양하게 치뤄지고 있다. 처음에 기업에서 시작된 것이 이제는 정부는 물론 지방정부까지. 이거 다들 왜 그러지. 그런데 그 이유가 이제 디자인은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올해 우리 지역의 크고 작은 디자인관련 프로젝트들 중 상당수는 타 지역 특히 서울 업체가 수주했다. 서울의 디자인관련 업체들은 전국을 무대로 아마 엄청난 규모의 디자인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고용도 창출하고 재정에도 기여하는 산업으로서 성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러다보니 지역의 업체들은 지역의 프로젝트에서 조차 규모면에서 실적 면에서 예산 면에서 도저히 경쟁이 되지 못할뿐더러 전국적인 프로젝트는 꿈도 못 꾸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 디자인발전에 활용되어야할 많은 예산이 '빠이, 빠이 전북'이 되고 따라서 지역의 인재들 또한 '빠이, 빠이 전북' -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물론 업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타 지역과 같은 대규모의 투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역의 디자인을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역 업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안배와 배려가 필요치 않을까. /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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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30 23:02

[문화마주보기] 이야기 속 걷기 - 정명희

바야흐로 걷기의 시대다. 어떤 이는 살을 빼기 위해서, 어떤 이는 건강관리를 위해서 그리고 또 어떤 이는 걷기를 통한 자기수양을 위해서나 걷는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걷는다. 요즘은 영화 속 장소들을 걷거나 소설 속의 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걷기의 열풍은 그 장소가 일상 속 도시일 수도 있고 풍경이 아름다운 들판이나 산길이기도 하다.여행에서도 걷기의 열풍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걷기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한 책들이 서점가에 즐비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이나 민간의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환경부, 산림청 등 중앙부처는 경쟁적으로 "길"을 찾는데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산림청은 지리산 숲길을 찾는데 100억 이상의 예산을 지원하였고, 환경부는 전국토의 생태탐방로 구축 사업을 통하여 이른바 걷기의 열풍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을 찾는 것은 민간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올레라는 길을 찾아 홍보하고 있는 서명숙씨는 "걸어서 다녀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걷는 걷기여행의 철학을 가지고 제주도의 걷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런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 천리길" 프로젝트를 국정과제로 제시하였다. 도보관광(walking tourism)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특성있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길(path)을 따라 관광자원 및 관광시설을 이용한 탐방로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맞춰 강원도에서는 길 브랜딩 전략을 연구하고 있고, 다른 자치단체에서 에코 트레일 조성 등 길을 중심으로 한 사업개발이 쏟아지고 있다.이야기 속을 걷는다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최치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유도를, 개양할미 이야기를 들으면 변산반도의 길을 걷는다. 고인돌 사이를 걸으며 구석기 시대의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길을 통해 심청이, 흥부, 춘향이, 변강쇠, 홍길동도 만난다. 너무 신나지 않은가?걱정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은 완전히 걷는 자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길을 찾아내고 만들 경우 길을 통해 사람들이 얻고자 했던 것이 오히려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떤 이는 그 길에서 옛 애인을 만나고 어떤 이는 먼저 떠나간 친구를 생각할 수도 있다. 길에 이야기로 색깔을 입히되 상상력을 강요하지 않게... 참 어려운 일이다.전라북도에도 바다, 산, 하천 등 자연자원을 중심으로 많은 길들이 연결되어 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2009년에는 이 많은 길들이 이야기 옷을 입을 것이다. 이도령이 장가가는 길을 따라서, 판소리의 자취를 따라서 그리고 최치원과 새만금의 이야기를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걷기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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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23 23:02

[문화마주보기] 아름다운 마무리에 힘쓰자 - 이원복

'아름다운 마무리'를 꾀해야 할 세밑이다. 이젠 금년도 두 주 밖에 남지 않았다. 미룬 일이며 끝내지 못한 숙제들로 이 무렵이면 너 나 없이 모두가 바빠진다. "게으른 자 석양夕陽에 바쁘다."는 속담이 절감된다. 어제와 그리고 내일과 다름없는 같은 측정치의 시간들이나 12월은 더욱 짧게 느껴짐은 우리들의 공통된 사항이 아닌가. 그래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는 공간에 신을 믿건 믿지 않건 우리는 들뜨게 하는 성탄절이 있고, 새해에 대한 저마다의 기대로 조금은 설렐 때이다. 겨울답게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 동장군冬將軍을 만나기도 했고 이따금씩 눈이 내려 설화雪花가 무채색 공간을 아름다운 눈부심으로 다가와 세한 시절 푸근함으로 다가온다.한파가 강토 전역을 잠시 덮친 마지막 달 주말에 이어 지난주엔 광주, 제주, 김해, 진주, 전주, 부안 등 여섯 지역을 다녀왔다. 지역에 소재한 국립박물관 등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 손으로 처음 건립한 국립광주박물관이 금년으로 개관 30년을 맞이했고, 국립진주박물관은 가야문화 임진왜란 중심을 거쳐 이와 더불어 경남의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주제와 전시 기법으로 재 개관했다. 부안에선 전라북도박물관협의회 주관 전북지역 박물관과 미술관의 상호 교류 활성화와를 위한 워크숍이 있었다. 제주에선 이틀에 걸친 제2회 한-중앙아시아 협력포럼 네 회의 중 세 번째가 교육, 문화 분야에서선 국가 대표 박물관간 문화교류 협력방안 등이 논의되었다.금년도 국립박물관 특별전시 중 돋보이는 것으론 서울에 이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는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와 여름에 연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과 국립경주박물관 가을에 열린 기획전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이다. 전자는 세밑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후자는 16일부터 국립제주박물관에 이전 전시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갈대밭 속의 나라 다호리茶戶里(2008.11.29-2009.2.1)' 그리고 '고려 왕실의 도자기(2008.12.2-2009.2.15)'와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이 수집한 '일본 근대 서양화(2008.11.18-2009.10.11)' 또한 놓치기 아까운 전시들이다.국립중앙박물관에선 18년 전에 개최된 '삼국시대 조각(1990.10.16-1991.1.8)'을 이은 전시가 16일부터 열린다.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의 울림 통일신라 조각(2008.12.16-2009.31)'은 우리 고대 문화유산의 정수精髓로 지칭되는 통일신라 조각을 망라한 기획전이다. 민족통일후 넘치는 기상 및 자신감과 더불어 개방된 국제적인 감각을 세련된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실성과 초월성, 불심과의 이상적 조화로 독창성을 이룩해 고전미古典美의 정형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동시대 불상도 함께 비교해 국제적인 양식의 보편성과 우리 조각의 특성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유례가 드문 대규모 전시이다. 세모의 허전함이 아닌 민족의 예술 혼이 깃든 영원한 생명의 울림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뿌듯함을 솟게 한다. 올해도 전북예술회관에선 19일부터 어김없이 김두해 ? 이흥재 ? 선기현의 삼인전三人展이 열린다. 우정友情을 과시하듯 21회 째를 맞이하니 세한歲寒이나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눈꽃처럼 빛나는 전시가 아닐 수 없다.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침이 있다. 금년도 2월은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마火魔를 입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에 있어 가장 큰 허물은 인생을 허비한 것이며, 용서 받기 어려운 중죄가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며, 신神도 구원할 수 없는 것이 절망이라 한다.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 가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멈춤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다짐이자 일보후퇴一步後退에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한 숨고르기 아닌가. 예술은 우리에게 생명과 강한 힘을 준다./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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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6 23:02

[문화마주보기]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 박영주

겨울이다. 춥다. 겨울이니 추운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고들 한다. 몸이 추우면 덩달아 마음도 춥다. 목도리를 두르면서 몸의 추위를 녹이면 마음의 추위도 같이 풀릴까? 인간의 심리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거, 요즘은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다 안다. 마음의 추위, 상처는 정말이지 오래가고 흔적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하면 안 다치게 예방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에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경제난 소식에 여기저기 문을 닫고 있는 상가들, 공장들, 못살겠다며 눈물짓는 시장 사람들, 애써 가꾼 농작물과 과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사람들, 12월 들어 연구실로 걸려오는 복지단체의 전화까지, 정말이지 너무 춥다.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난이 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는 뜬금없이 "분노의 포도" 라는 영화의 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추위까지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를 더욱 더 춥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경상수지의 흑자를 이야기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어려울 때 일수록 국민 모두 합심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요구한다. 도처에 모순이 난무한다. 국가와 국민 간에 상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를 위해 애국심을 발휘한다." 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각자 따로 놀고 있는 모순 속에서 신뢰는 상실되고 공동체 의식은 깨져버려 새벽시장의 불쌍한 할머니를 보고 눈물 난다, 앞으로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장면을 보고도 많은 네티즌들은 악어의 눈물 운운하며 메주는 콩으로 만든다 해도 믿지 않는 판국이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에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합심하자고 하지만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걱정만 눈덩이처럼 커진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어느 개그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람에게 투표했을 뿐이고", "난 이 추운 겨울에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일 길이 없어 눈물지을 뿐이고~" 식이다. 국가와 국민 간에 상호적 공정성이 깨져버린 곳에서는 최선을 다해 합심하는 자발적 시민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인간심리의 원초적인 이기(利己)다. 국가와 국민 간에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지지 않아야 서로 더불어 잘 살아보고자 하는 구심점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에 현실검증 능력이란 것이 있다. 이는 현실에 대한 판단력으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실재와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이 곧 현실이라고 믿고 우기면 어찌 될 것인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생각이 실재와 다를 때 이를 수용하고 경청할 수 있는 판단력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기본이요 위험한 집단극화나 집단사고(Group Thinking)를 범하지 않는 능력이다.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잠깐 보여주는 눈물이나 춥다고 건네주는 목도리도 중요하겠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믿음이 가는 사고와 실천하는 행동일 것이다. 사랑하는 국민이 추위에 홀로 눈물짓고 있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의 제시가 모두에게 진정한 방한복이 될 것이다. /박영주(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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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09 23:02

[문화마주보기] 수호천사냐 돌팔이냐 - 정성환

◆오빠, 정말 한번 믿어 봐도 되는거야 ?요즘 들어 갑자기 조달청, 도청, 시청 등에서 주로 디자인과 관계되는 제안서 심사에 참여할 기회가 부쩍 많았었다. 매번 이런 자리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제안 설명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과 반짝이는 가벼운 재치만 난무한다는 것이며 또한 매번 똑 같은 방법이 즐겨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 중 한 가지 사례.어느 도시의 경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제안을 심사하는 자리. 제안의 첫 번 째 단계, 제안을 듣는 사람들이 무안할 정도로 충격을 가한다. 마치 족집게같이 그 도시의 충격적인 특이한 현상 몇 가지를 보여준다. 두 번 째 단계, 외국에서도 매우 특이한 사례와 비교해서 보여주면 어느 도시는 어느덧 영락없는 흉물이 된다. 세 번 째 단계, 드디어 요즘 유행하는 '오빠 한번 믿어 봐!' 단계이다. '이젠 걱정마라. 내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거든.'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 자신도 자주 주장하던 똑같은 것들을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들을 때는 영 기분이 찝찝해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런 방법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한번 이렇게 바꾸어 보자. 급소를 몇 군데 팍팍 찌르고는 '아프지 그러니까 너는 병이 깊은 거야. 이런 병은 수술이 상책이거든. 수술비는 걱정마. 내가 제일 싸게 해줄게.' 또 다른 버전으로 하면 '어거 봐. 딴 얘들 하고 너하고 비교해봐라 얘들 얼마나 죽이냐?(예쁘냐). 얘네들 다 돈들인 거야. 너도 돈 좀 들이면 이렇게 예뻐질 수 있어.' 그러면서 일단 뭔가 자꾸 없애야 한단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이듯이 그렇게 마구 걷어내는 곧 이 시대의 새로운 21세기 버전의 새마을 운동식이어야 하다는 것이다. 없애는 것, 지워버리는 것- 개발논리 가장 쉬운 방법만 공허하게 주장한다. 그런 것들은 우리도 다 알고 있고 다 보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해결책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엉뚱하게 못 생긴 놈한테 자꾸 못 생겼다고 해서 열 받게 하냐.그런데 이런 제안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도시를 '선풍기 아줌마'로 보는 여러 사람들의 제안을 합쳐 놓으면 어느 도시는 정말 '선풍기 아줌마'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공포감이 드는 것이 기우였으면 정말 좋겠다.◆또 다른 오빠들.우리 지역에도 위와 같은 수많은 제안들이 또 하나 요즘 들어 부쩍 우리 지역에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높은 식견과 경륜으로 우리 지역의 발전과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꼭 그런 분들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와 충고를 받아드리는 자세는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강한 소신과 주장으로 나는 그런 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작아짐을 느낄 때가 많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리고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팍팍 찍어내면 더더욱, 그리고 나는 전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분들도 많이 경험했고 그런 때는 속된 말로 꼬랑지를 내릴 수밖에.그런데 매번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령 회의내용과는 무관하게 본인의 주장만을 굉장한 아이디어인냥 장황하게 주장한다든가 무슨 계몽운동이나 하듯이 타이르는 투의 주장을 가는 자리마다 되풀이하는 등.이런 오빠부대들,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전국에서 유능한 많은 인재를 불러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인가. 혹시 함량 미달의 오빠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 눈 부릅뜨고 잘 살펴보자.마지막으로, 우리 지역에도 오빠들은 많다. 잘 찾아보자./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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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02 23:02

[문화마주보기] 나이 먹어서 뭐하고 놀지? - 정명희

97년 IMF보다 더한 경제적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아침 저녁으로 떠들어대는 뉴스를 보면 이런 고민은 정말 사치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인생의 이모작, 삼모작 열풍은 샐러던트(Salary man +Student)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개발의 많은 목표들은 노후 대비를 위한 재테크에 맞추어져 있으며, 정작 노후에 무얼 하고 놀지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008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 국내 60세 이상의 약 63%가 여가활동의 걸림돌로 경제적인 이유를 꼽은걸 보면, 경제적인 대비가 노후준비의 최선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노년생활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사회가 심화되면서 노인여가는 사회적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으며,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노인층 스스로의 노력들도 가시화되고 있다.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가 노년층의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황혼로멘스와 노인 동아리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성 특강후 무료로 나눠준 500개의 콘돔이 바닥날 정도로 성에 대해서도 매우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실버페스티발' 이란 이름의 다양한 노년층들의 놀이 문화도 시도되고 있다. 지난 10월 전주에서는 전국의 노인들이 참석한 실버페스티발이 열렸다. 다양한 장르의 행사들로 무대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정작 객석의 반응은 썰렁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여가를 즐기는 노년층을 아직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60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 모르나)의 약52%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집에서 그냥 쉬는 것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실제로 노년층이 가장 원하는 여가활동은 여행 등 적극적인 여가활동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관광시장은 지난 20년간 관광산업에서 가장 빠른 신장을 보이는 세분시장으로 급성장하면서 산업적으로도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다.나이 먹어서 잘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젊었을때부터 "잘 노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노인여가의 핵심 중 하나가 "경제력"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잘 노는 법"을 알지 못하면 단순한 소비활동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년층의 여가는 노인복지나 공공복지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왔으나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활동이나 레포츠 활동을 개발함과 동시에 노인 놀이문화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면 디지털콘텐츠를 이용한 게임도 노인 놀이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노년에 어떻게 편안하게 쉬어야 할 것인가 만큼이나 노년에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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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25 23:02

[문화마주보기]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앞두고 - 이원복

나라별 박물관의 숫자는 문화의 척도이다.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한국박물관협회 등록된 우리나라 박물관 수는 국립(27), 공립(232), 사립(182), 대학(78) 등 모두 519처에 이른다. 사립(68)과 대학(30) 등 미등록 박물관이 98처이니 총계는 617처이며 1천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다. 지난 11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 박물관 100주년 선포식'이 있었다. 1908년 창경궁 내 제실박물관이 설립되어 그 이듬해인 1909년 11월 1일 비로소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내년은 근대적 의미의 한국박물관 건립 100주년이 된다. 기념사업으로 기념식, 국제 포럼, 국제학술대회, 특별전, 축전, 백년사 발간, 기증?기부 운동 등 각종 행사가 기획중이다. 중국 또한 2012년 그들 박물관 1백주년을 맞아 우리 것을 벤치마킹 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을 능가하는 대규모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국립중앙박물관에선 우리나라 박물관의 100년 역사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할 뿐 아니라 각 박물관, 미술관 단체 및 지역박물관 협회별 전시도 기획중이다. 아울러 금년도 대성황을 이룬 페르샤에 이어 내년 봄엔 이집트, 겨울엔 페루 잉카 문명전 등 대규모 국제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내년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한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중국과 구별되는 한국화(韓國畵), 우리 그림의 독자성과 특징 어엿함을 이룩한 '한국의 그림 성인[畵聖]' 정선(鄭敾,1776-1759)의 탄생 333주년에 타계 2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정선을 비롯해 그가 이룩한 진경산수(眞景山水)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망라한 기획전이 추진 중에 있다. 국립전주박물관도 내년엔 이 지역 박물관연합전이 열릴 것이다. 특히 한국도자사를 전공한 관장이 지난 10월 31일로 새로 취임해 조선 종실미술과 더불어 부안 유천리 청자 등 미술실 특화사업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단풍이 절정(絶頂)을 지나 바야흐로 끝자락에 이른 저무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지난 금요일은 서울 전시에 이어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리고(11.12-11.19) 있는 '섬진강, 아침 고요'전을 찾았다. 화력 30년을 넘긴 송만규 화백의 눈으로 섬진강을 산책하면서 섬진강은 그를 읊은 시인 김용택에 이어 비로소 화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이면 소설(小雪)이니 겨울로 접어든다. 곱게 물든 채 바람에 무더기로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마음은 짠하기만 하다. 그래도 낙엽으로 최후를 마감하는 그들은 새 잎이 눈뜰 무렵 시샘 추위와 한여름 소나기와 뙤약볕을 묵묵히 잘 견디며 최선을 다한, 존재의 매 순간을 헛되데 보내지 않은 것 아닌가. 우리 민족의 각별한 미적 정서와 풍부한 감수성은 다름 아닌 이들 사계(四季)를 소유한 데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국립전주박물관 뜰의 설송(雪松)과 설죽(雪竹), 금산사 가는 긴 벚꽃 터널, 덕진 공원의 연꽃, 지평선 보이는 김제의 황금벌판과 살살이 꽃 등이 주마등처럼 눈에 아른거린다.빛고을 4년 7개월, 온고을 근 1년 10개월 여 등 6년 반 남도 생활을 접고 시월의 마지막 날 새벽 전주와 작별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울로 향했다. 본 지면을 빌려 공직, 학계, 예술계, 언론계 등 국립전주박물관에 애정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그간 분에 넘친 애정과 보살핌, 격려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따사로운 남도의 자연과 사람들, 풍광과 인심은 그야말로 쉽게 지울 수 없는 축복이었다. 전라북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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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8 23:02

[문화마주보기] 목소리가 작아도 이길 수 있는데 - 박영주

부끄럽게도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지 이미 오래이다. 매년 국회에서 행해지는 국정감사, 올해도 예외 없이 삿대질에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들이 되풀이 되었다. 촛불시위에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는 어느 아기엄마에게 고함을 치는 의원도 보이고, 사진 찍지 말라고 두 눈을 부릅뜬 어느 장관의 흥분되고 상기된 모습도 보았다. 마치 누가 먼저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이른 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자신의 지역구 국민들에게 보이는 방법은 많을 터인데 매년 연출되는 언어적 폭력과 고함은 토론에 관한 한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해 생길 수 있는 장면이려니 하며 십분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해 볼 수도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치졸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큰 소리로,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이긴다는 면에서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예의 없고 무식하기 그지없음이지 결코 "장땡"이 아니다. 일그러진 표정을 들이대며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내지르는 큰소리는 인간의 심리 저변에 공포감, 무서움을 조성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면서 서로에게 내지르던 큰소리, 고함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역시 당시 어린 마음에 공포감이 생생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압함은 물론 상대의 의견이 어떠한지 전혀 듣지 않고 무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는 큰 소리는 상대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기 때문에 폭력이나 진배없다. 흥분을 잘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 그들의 토론문화를 접해 본 경험에 의하면 두 명의 토론자는 누가 봐도 싸우기 일보 직전인 듯 거의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속사포로 쏟아낸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설마 목소리가 크면 이기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방식의 토론을 하면서도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듣는 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반대든 찬성이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것인가. 요지는 공감과 경청의 방법,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 신뢰의 차이가 아닐까. 목소리가 크다고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상대의 생각보다 옳다고, 더 나은 생각이라고 주장하려면 목소리만 키우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는 적절하고 합당한 방법으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합리와 이성보다는 힘을 앞세워 내 몫을 찾으려는 사회 분위기는 이제 그만 거두어야 할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침묵하는 동안 현명하게 경청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박영주(우석대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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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1 23:02

[문화마주보기] 스토리를 쌓아서 히스토리 만들자 - 정성환

▲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천년'이라는 말이 우리지역만큼 흔히 쓰이는 지역도 많지 않을 것이다. 모임의 이름에도 흔히 쓰일 정도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그 천년이라는 실체가 가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 천년은 개념상으로 역사 속에 그리고 문화 속에 고고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 그렇게 오랜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지역에 산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타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것을 평가한 말 '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그런 의미에서 곰곰이 새겨 볼만한 것이다. 천여 년 전 요새로 치자면 지식인이자 역사학자였던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백제 문화의 컨셉트를 표현한 말이다. 그냥 천년의 역사가 어떻고 전통이 어떻고 하는 말보다 너무나 정확하게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러면 그 다음은 또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 네오 재패니스크(Neo-Japanesque) - 품질'에서 '품격'으로우리의 천년, 즉 문화를 일본인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어떻게든 활용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역시 일본사람들은 영악하다. 자포니즘(Japonism)'으로 불리던 일본풍(風)은 프랑스영국을 중심으로 30여 년간 이어지면서 인상파 등 유럽의 미술계작가들에 큰 영향을 미치며 유럽을 움직였듯이, 문화적 매력으로 21세기 경쟁력의 우위에 서겠다는 일본 정부의 거대한 야심이 담긴 신일본양식'- 네오 재패니스크(Neo-Ja panesque), 혹은 재패니스크 모던(Japanesque modern)을 2005년 7월 발표했다. 주식회사 일본'을 이끄는 경제산업성이 작전본부이다.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신일본양식(新日本樣式)의 확립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는 "부가가치의 평가 기준이 '가격에서 질(質)로의 시대'를 거쳐 '질에서 품위(品位)로의 시대'로 이행했다. (중략) 경제는 물론, 일본의 문화감성마음 등 일본 고유의 자산을 토대로 종합적인 일본의 우수함, 즉 일본 브랜드의 가치를 향상시켜 세계에 발신하는 일이 긴요해졌다."며 품위품격'이라는 문화적 패러다임을 주창한 점으로 글로벌 경제전쟁의 핵심 경쟁력이 '품격(품위)'으로 바뀌었다고 선언하고 제품의 격(格)으로 경쟁하자는 새로운 산업 전략을 제시했다. 일본 경제가 가격품질 경쟁을 지나 문화적 가치 경쟁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린 시발점이었다.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특기는 고품질 전략이 중국한국 등에 대해 품질과 기능의 우위만으로는 차별화하기가 곤란해졌고 일본 경제로서는 중국한국이 따라오지 못할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源泉)이 필요해졌으며 그것이 바로 품격이다. 품격이란 기존 경제학의 영역에선 존재하지 않던 개념으로 문화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품격의 패러다임을 산업 현장으로 끌어오자고 경제산업성이 화두를 던진 것으로 일본은 '21세기판(版) 자포니즘'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중앙일보 참조)- "혹시 양이 넘치면 이 부분을 삭제해 주세요."▲ 우리의 스토리를 만들자.우리의 천년은 어떠한 가치로 되살려야 할까.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어떠한 가치로 되살려야 할까. 그것이 비록 모방이라 하더라도 방도는 찾아야 할 때일 것 같다. 너무 오랜 동안 흔들어 깨우지 않았던 것들을. 그의 한 대안으로 나는 점잖은 천년보다는 살아있는 발랄한 문회로, 디자인으로 재해석되고 활용되어야 함과 어떤 형식으로든 가시화되고 선언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이 영화 서편제의 대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꼭 밥이 나오고 술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문화는 밥이 되고 술이 될 수도 있고 재미있고 변화무쌍함을 그리고 그것은 스토리라는 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우리시대에 재해석된, 많은 스토리가 덧대어져서 새로운 히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천년의 비상은 가능해지지 않을까./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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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04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스러움'에 대해 - 정명희

전주에 내려온지 꼭 1년이 되었다. 출퇴근길에 천변의 갈대를 보면서 벌써 1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들을 해본다. 전주의 첫 인상은 전주천변의 갈대였다. 청계천의 인공스러움과 달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은 나에게 전주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상암동 하늘공원의 갈대밭을 보면서 "전주 같아" 했더니 친구가 "너 벌써 전주애가 다 된거 같다?" 하면서 놀래댔었다. 같이 웃었지만 나름 전주에 내려와 있으면서도 서울스러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어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친구에게 물어본다 "나 이제 전주사람 다 된거 같지..?" "그래 너 좀 전주스러워졌어" 전주스럽다... 전주스러움은 뭘까?4-5천원에 한상 가득히 나오는 한정식집의 밥상, 비빔밥으로 유명하다지만 정작 비빕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신 콩나물국밥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들, 바쁘면 반찬그릇을 던지듯 내려놔도 특별한 불쾌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식당 서비스, 공식적인 자리에 빨간색 원피스는 부담스러워 하는 전주의 색감, 감정표현이 무덤덤하고 불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많이 서툰 사람들..전주스럽다는 어감에는 좋은 의미도 많이 들어있지만, 사실 낮은 수준의 서비스를 접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을 접할 때면 가끔씩 전주스럽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곤 했었다.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서울의 한 교수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전주스러움이라면 어떤게 있을까요?" 지역 이미지에 관심이 많으셨던 그 교수님은 1년이 채 안 된 서울토박이가 느끼는 전주스러움이 꽤 궁금하셨던 것 같다. 나에게 전주스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 하신다. 참 어려운 질문이네.. 곰곰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전통"의 이미지가 강하다고만 알고 있었던 전주는 내려와 보니 사실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있기는 하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한문 간판이 그렇고, 무엇보다 한옥마을 구석구석의 한옥들과 문화공간들이 그렇다. 단지 좀 아쉬움이라면 상품화에 아직은 서툰 전통문화라고 할까.. 아무튼 그 교수님의 질문은 정말 전주스러움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과제를 남겨주었다. 내가 느끼는 전주스러움은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부터 그 전주스럽다는 걸 잘 포장하면 최고의 지역 이미지 마케팅을 할 수 있겠다는 야심찬 생각까지.."~스럽다"는 명사의 뒤에 붙어서 그러한 성질이 있음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전주..스럽다는 것이 어법상 틀릴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각자 느끼고 있는 전주의 이미지가 더 정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주스러움이 어떤 표현보다 가장 전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오늘도 전주천변을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궁금해진다."전주스러움은 어떤 것일까?"/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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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28 23:02

[문화마주보기] 10월이 저물기 전에 전시회 가자 - 이원복

주위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감나무는 해거리를 한 탓에 올해는 가지가 찢어들 듯 많은 결실을 뽐낸다. 바람 불자 단풍 든 것과 아직 녹색을 유지한 잎들이 함께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준 훈장勳章처럼 감을 매달고 축 처진 가지를 보면 노인이 여러 명 아이를 업은 양 안쓰럽기도 하다. 해서 바람은 우선 나무 짐을 덜어주려 잎을 지움인가.'문화의 달' 10월은 각종 전시와 학술대회 문화행사로 전국이 들썩인다. 유사한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니 선택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 지역에선 5년 여 걸려 차근히 준비한 거석문화 전문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지난 9월 25일 드디어 문을 연 쾌거快擧가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인력 증원이다. 이를 '훌륭한 시설의 병원에 유능한 의사'에 비유해 연구직硏究職 중요성을 거듭 힘주어 강조한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지건길 박사의 건배사는 정말 가슴 깊이 새겨 귀담아야 할 충언이 아닐 수 없다.새 정부 들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12개 국립박물관이 연말까지 관람료를 무료로 해오고 있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역박물관 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박물관은 수개월에 걸쳐 지난 봄 1층 고대문화실을 새롭게 바꿨다. 이어 지금 문 닫고 개편에 들어간 2층 미술실도 연말이면 새롭게 탈바꿈 할 것이다.국립전주박물관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조명하고자 1999년 고창을 시작으로 도내 14처 군과 시를 대상으로 기획한 특별전이 어느새 중반을 넘겼다. 올해는 그 여덟 번째로 '전북의 역사문물전 Ⅷ 김제金堤'(10.21~11.30)이 열리고 있다. 금만평야의 풍요를 바탕으로 화사하게 전개된 지난날 김제 모습을 '김제의 여명黎明과 발전', '풍요豊饒의 땅 벽골제', '묵향墨香이 깃들고' 등 역사에 펼친 이 지역 문화의 본질과 독자성獨自性과 특징을 일곱 주제로 구성해 조명한다.1938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서울 성북동에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우리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지칭되는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1971년 가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2주씩 특별전을 열어 비장의 문화재를 공개하니 이번이 75회이다. '보화각건립 70주년기념 서화대전'(10.12~10.26)으로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를 비롯해 조선시대 서화 명품 108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전시를 놓치면 후회와 아쉬움이 클 것이다.가을은 한 해를 평생에 견줄 때 바야흐로 노년기 시점, 하루로는 저물 무렵 황혼이다. "단풍 든 잎이 봄꽃보다 곱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젊음의 생기만이 아닌 잘 숙성된 젓갈과 김치 그리고 술맛의 진가를 생각하게 한다. 순간에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살았건 그렇지 않건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시간에 이른 것이다. 이젠 조금은 숨을 돌리고 지난 시간들을 볼 때이기도 하다.무엇 때문에 그리 바쁜지를 되묻게 된다. 최근 삶의 질과 더불어 크게 화두가 된 '느리게 살기'의 첫 번째가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시월이 저물 무렵, 우리 마음을 따듯하게 할 좋은 전시를 찾아 미술美術의 숲을 거님은 또 한 장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아닐까./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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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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