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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항공 인프라와 지역발전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지방 출장을 자주 간다. 가까운 거리는 승용차를 이용하고 먼 거리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그런데 출장가게 되는 지방 대도시 중 대전과 전주가 가장 불편하다. 부산, 포항, 광주, 여수는 공항 가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고 편안하다. 안전 운전을 하게 되면 대전까지는 약 2시간, 전주까지는 보통 3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거의 일상적이 되어버린 고속도로 정체를 고려한다면 전주-서울은 4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몇 시간 동안을 좁은 공간에 가쳐 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더구나 단일 출장을 하게 되면 왕복 7-8시간을 차 안에서 지내야 한다. 어쩌다 시간 넉넉하게 다니는 경우이면 상관없다. 그러나 현대인들, 특히 기업인들의 경제 활동 에서는 시간이 돈이며 이동으로 발생하는 피로를 최소화 하고자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과 같은 사회 간접자본은 인적, 물적 접근성을 높여 주어 기업 활동과 사람의 왕래를 활발하게 해줌으로서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이러한 시설은 양적으로 충분해야 하지만 질적으로도 우수해야 되며 다양해야 된다. 보다 빠르고 편안하고 다양한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금 전북에서는 김제공항 필요성 여부를 놓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대 하는 모양이다. 내세우는 주된 이유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 대체교통 수단이 충분하고 항공 여행 수요도 부족하다는 이유 이다. 인구도 적고 대체교통 수단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북에는 철도로 호남선 복선 전철이 지나가고 전라선 단선 비전철이 있다. 왕복 4차선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군산에는 과거 민간이 일부 시설을 사용하던 공군 비행장이 있다. 양적으로 이만하면 현재의 전북 인구에 비하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타 지역에 비하여 외국인, 기업인, 관광객들의 접근성 면에서 비교 열위에 있다. 특히 철도가 그렇다. 앞으로 호남선 고속 전철이나 전라선 복선 전철이 건설된다고 하나 10년이나 지난 후 이야기이다. 그나마 수요부족과 경제성 논란이 있다.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고속전철이나 새만금 공항 타령하는 동안 전북인구는 더욱 줄어들고 경제는 더욱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고속철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아마 일반 저속 철도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북은 서울과의 교류 뿐 아니라 영남, 강원, 제주, 북한 등과의 교류에도 항공편이 중요하다. 나가서는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지역과의 교류확대도 고려해야 한다. 혁신도시도 5-6년이면 완성된다. 서울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청주는 공항이 있어서 행정복합도시 입지 결정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고 거기에다 KTX 정거장 까지 들어서 다양한 교통수단이 집중되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이 되어 가고 있다. 다양하고 효율적이며 안락한 교통의 요지가 되어야 기업과 사람이 모여들어 지역경제가 발전하지 않을까? 인프라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 김제공항은 지금 건설되어야 한다./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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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8 23:02

[타향에서] 등산 유감(有感)

지난달 설악(雪嶽)으로부터 시작된 단풍능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와 이제는 한반도의 남쪽지방에 머무르고 있다.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산아가씨가 어서 놀러오세요.라고 손짓하며 부른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이산저산에 올라가 일주일의 피로도 풀고, 새로운 원기를 얻어가지고 내려오는 선남선녀들로 산행길이 막힐 정도이다. 특히 주5일 근무를 하다보니 주말의 여가활용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필자는 원래 약간의 평발끼(?)가 있어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다보니 등산은 감히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1993. 3경 우연한 기회에 전주지검 군산지청 직원들과 함께 구례 화엄사에 출발하여 코재를 거쳐 노고단까지 올라가는 등산다운 등산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때 평소의 운동부족 탓인지 남들은 쉽게 올라가는 길도 필자는 너무나 힘들게 올라갔고, 코피를 흘리지 않고는 올라가지 못 한다 하여 ?코재?라고 이름이 붙여진 언덕길을 오를 때는 그야말로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코에서는 코피가 날 정도로 힘들게 올라갔다. 그랬더니 이까짓 산하나 제대로 오르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인생의 험한 산을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어느 것에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성격 탓에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산에 가는 산사람이 되었다.그리하여 어느 해 여름에는 휴가가 시작되자 자동차 트렁크에 텐트와 큰 배낭, 작은 배낭에 쌀과 된장, 고추장 등 부식류, 그리고 라면과 소주 몇병을 싣고 조계산(전남 승주), 가야산(경남 합천), 팔공산(대구), 지리산(피아골, 뱀사골) 등을 돌아다니다가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국의 산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지리산(천왕봉) 11회, 설악산(대청봉) 7회, 한라산(백록담) 5회 등정에 태백산, 치악산(각 강원), 소백산, 월악산, 계룡산, 속리산(각 충청), 청량산, 주왕산, 비슬산(각 영남), 무등산, 월출산, 두륜산(각 전남)에 울릉도 성인봉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유명한 산 중에서 안가본 산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산을 가보아도 우리 전북에 있는 산만한 산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포근함에 있어서는 전국의 어느 산도 우리 고향의 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우리 도내에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 많은데, 각 지역별로 보면 전주와 완주, 김제에는 모악산, 정읍에는 내장산(신선봉), 남원에는 지리산(천왕봉, 반야봉), 순창에는 강천산, 임실에는 성수산, 고창에는 선운산(국사봉), 진안에는 마이산과 운장산, 장수에는 장안산과 팔공산, 완주에는 대둔산, 부안에는 내변산(쌍선봉), 무주에는 덕유산과 적상산 등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산이 있고, 또 그 산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무릇 산악인들 중에는 전국의 3대 계곡(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다녀오지 아니하면 등산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디 그곳만이 산이고, 꼭 그곳을 다녀와야만 산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고장에 있는 산도 모두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금년에는 적당한 수량과 적당한 일교차로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고향사랑이 뭐 별것이겠습니까? 내 고장 산에 있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고향사랑이 아니겠는가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때로는 연인과 함께 우리 고장, 우리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 고향사랑 마음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함께 길러보심이 어떨지?! /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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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1 23:02

[타향에서] 추위를 녹여주는 것들

이른 아침 들녘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날, 달력을 쳐다보니 바로 상강이었다. 그리고, 이내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김장용 배추를 볏짚으로 묶어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구나!어린시절, 추위가 다가오면 월동준비를 하던 생각이 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땔감이었다. 연탄을 사서 광에 쌓아두어 적당히 습기가 건조되어야 아궁이에서 가스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다음이 방문에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었다. 방문을 떼어내 문살에 엷은 풀을 칠한 다음 창호지에 물을 뿜어가면서 팽팽하게 붙이고, 그 한 귀퉁이에 봄, 여름에 말려놓은 예쁜 꽃잎들을 붙인 다음 창호지 한 겹을 더 붙여 한 겨울에도 꽃잎을 바라볼 수 있게 한 후 문 가장자리에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붙였다.그리고, 먹거리 준비가 되면 월동준비가 끝이었다. 추수한 벼를 사두기도 하고, 고구마 가마니를 창고에 사들이기도 하였다. 가장 클라이맥스가 김장이었을 것이다. 한 쪽에서는 큰 솥을 걸어놓고 불을 떼면서 언 손을 녹여가며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버무려 집안 여자 어른들이 모여 앉아 백포기가 넘는 김치를 담그고, 남자 어른들은 땅을 파 겨우내 김치를 보관하여 둘 독을 묻던 일이 어린 시절 기억에는 그야말로 잔칫날 풍경으로 남아있다.이제는 난방이야 아파트 관리비를 조금 더 내면 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방문이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이니 계절이 바뀐다고 따로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 있을 턱이 없다. 김장이라고 해 봤자 따뜻한 아파트에서 김치냉장고에 십여 포기의 김치를 담는 일이 고작이다. 그나마 상당수는 입맛에 맞는 김치를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금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김장을 직접 하겠다는 집이 많은 모양이다. 굳이 다로 월동준비를 하지 않아도 겨울을 지내기에 큰 불편이 없건만, 어쩐지 겨울은 더 길고, 더 추운 듯 하다.창호지를 바르고 김장을 하면서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서 나누던 담소,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야단을 맞기도 하고,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맛있게 양념한 김칫속을 한 입 받아먹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사이에서 흐르던 하얀 입김들이 추위를 녹였던 기억이 어슴프레 남아 있다.아마 추위를 녹이는 것은 난방기구나 철저히 바람을 차단하는 육중한 문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서로 부딪히면서 나누는 정감들이 긴 겨울을 더욱 짧게 하고, 매서운 추위에도 웃음으로 맞서게 하는 온기를 발생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겨울의 입구에서 추위를 녹이고, 겨울을 빨리 보내버릴 우리 이웃과의 따뜻한 만남을 생각해 본다. 머지않아 길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할 것이고, 산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이웃들이 겨우살이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성가신 간섭을 한 번쯤 시도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연히 여유 있게 준비된 월동용품을 미리미리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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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04 23:02

[타향에서] 농촌, 향우회를 자산화 하라

지난 여름 고향에 60년만의 폭우로 큰 수해가 발생하여 수재의연금을 모금할 때의 일이다. 내가 맨주먹만 쥐고 고향을 떠날 때 누가 쌀 한 톨 도와줬느냐며 모금에 냉정한 향우가 소수 있는가 하면 좋은 일에는 못가도 불행한 일에는 참여 해야지요하며 선뜻 응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중에 모금 통장을 찍어보니 그 냉정했던 향우 중 한 분은 의외로 상당한 금액을 보내온 것이다. 고향이란 그런가 보다. 청소년 시절의 추억으로 고향이 그립다가도 가난했던 고달픔이 떠오르면 잠시 가슴이 메어지며 애증(愛憎)의 마음이 교차되는 곳! 그것이 바로 고향인 듯싶다. 그러나 결국은 고향 산천의 아름답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마음은 온통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 상당한 금액을 보내준 의외의 향우도 그런 마음이 교차되었을 것이다.그렇게 좋은 우리들의 고향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농업개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만 간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또한 심각한 문제다. 재외 향우들이 고향을 좀 더 사랑하고 실제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흔히 말하는 애향론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고향의 얼을 계승하며 굳세게 사는 것, 고향의 인재 양성을 돕는 것, 좋은 고향 지도자를 뽑는 데 기여하는 것, 그리고 고향 농산물을 애용하는 것 등이다. 그중에 고향 농산물 애용은 농촌이 직면한 어려움을 볼 때 먼저 특별한 관심을 가져할 일이다. 바야흐로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오고 정부의 쌀 수매제도는 폐지되는 등 우리 농촌은 이제 스스로 판로 개척에 나서야 한다. 향우들이 고향 농산물을 적극 애용하고 홍보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임실군 주민 수는 3만여 명인데 재외 향우들의 수는 1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에만 우리 군 출신 향우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수만 명이 하루에 만 원 어치의 고향 농산물을 먹는다면 하루 수억 원이 고향에 내려가고 한 달이면 수십억 원이 내려갈 수 있다. 실로 막대한 금액이다. 고향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 절대 어렵지 않다. 고향에 전화나 인터넷 주문 한 번이면 택배로 집까지 배달된다. 기왕에 돈 주고 사먹는 것 고향 농산물을 사용하면 쉽게 고향 사랑 할 수 있다.도회지에 살고 있는 출향인들을 고향에 내려가 정착케 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 볼 가치가 있다. IMF 시대 이후 도시의 기업체에서는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하여 40대 중반부터 이미 명퇴가 시작되고 잘해야 50대 중반이면 은퇴하게 된다. 50대 안팎이면 농촌에서는 아직도 한창 일할 수 있는 청년이다.그들 중 상당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귀향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뜻 결행치 못하는 이유는 새로운 삶의 전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떻게 소일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그들에게 빈집을 알선해 주고 휴경지라도 빌려 주어 적절한 농촌 적응훈련을 병행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이다. 지자체에 보면 여러 가지 위원회가 많은데 정작 위원들의 성향을 보면 비전문가들이 많다. 재외 향우들 중에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그런 위원회에 자문으로 참여시켜 그들의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지자체 행정에 접목시켜 보는 것도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성공 여부는 결국 지자체가 향우인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향우들의 애향심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된다. 향우들을 하나의 시장 내지는 자산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필요하면 지자체 조례를 만들어 재외 향우회를 관내 시민단체 대우하듯 지원도 해주며 유기적으로 참여케 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그것이 곧 열린행정의 시작이기도 하다./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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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8 23:02

[타향에서] 명실상부한 맛의 고장 만들기

전북을 맛의 고장이라고 한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다른 지역과 달리 전북은 우리나라 곡창답게 넓은 들에서 나는 비교적 풍부한 곡식과 채소 등을 이용해서 다양한 음식이 풍부하게 제조되고 조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음식 인심이 넉넉하고 후했다. 60년대나 70년대에 음식점에서 한식을 시킬 경우 서울지역에서는 반찬 가지 수가 많지 않고 맛도 별로였지만 북에서는 맛있고 다양한 반찬이 식탁위에 가득했다. 전북은 안주 값이 싸서 서울에서 전주에 내려와 술을 먹고 가면 차비를 포함하더라도 술값이 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가?전북이 맛의 고장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전북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이 맛있어야 하고 식당음식이 맛있어야 하고 전북에서 제조되는 가공식품이 맛있어야 한다. 이름 있는 조리사가 많아야 하고 식품제조 명인이 많아야 하고 이름 있는 한식 조리학교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먼저 농산물의 경우를 보자. 고창 대산 수박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곡창이라고 하지만 우수 쌀 반열에 드는 브랜드가 거의 없고 과일이나 채소, 축산물도 마찬가지다. 전주 배나 전주 복숭아, 장수 사과나 장수 한우 등을 말할 수 있겠으나 실제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다.다음으로 식당음식을 생각해 보자. 전북에서 내세울 수 있는 한식 메뉴를 물어보면 우선 백반, 비빔밥, 콩나물국밥을 말할 것이다. 이들 음식을 내세워서 맛의 고장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음식 맛은 전국이 평준화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여타 대도시 지역에 더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반찬 가지 수는 어디에서나 넘쳐흐른다. 더욱이 세련된 실내 공간 디자인, 식기, 조명, 식탁배치, 서빙 등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른 대도시지역이 보다 나은 즐거움과 안락함까지 제공하고 있다.가공식품을 살펴보자. 순창고추장, 선운산 복분자주 말고 어떤 것을 손꼽을 수 있을까? 이강주, 임실 치즈, 곰소 젓갈 등을 말할 수 있겠으나 전국적인 인지도는 매우 미약하다. 이름난 음식 명인이나 음식 조리학교도 없다. 그러면 전북이 진정 맛의 고장으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앞으로 혁신도시에 이전하게 되는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소들의 도움을 받아서 맛있는 농산물이 생산될 수 있도록 종자개량과 생산 및 수확 후 관리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음식점은 재래의 토속성 유지 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맛을 조정하고 식당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가공식품에서는 대기업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소량 다품목 중심의 중소형 홈 메이드 식품산업 육성을 병행해야 한다. 음식 명인이나 장인을 발굴 육성하고 불란서의 르꽁 드블루와 같은 세계적 명성을 갖는 조리학교를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맛의 고장이 되지 않을까?/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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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1 23:02

[타향에서] '부동산투기사범' 단속 유감

어느 때부터인지, 어느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재산증식 수단으로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고 또 그 소문을 믿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왔다. 특히나 금년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이 투기무대가 되었고, 아파트는 물론 대지나 임야 심지어는 공장부지까지 투기대상이 되는 등 전국에 투기 열풍이 아닌 투기 광풍이 불어 닥쳤다. 주지하시다시피 부동산 투기는 부가가치(附加價値) 없이 부동산의 가격만 치솟기에 국가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민들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고 빈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등 그 경제적?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많아 국가발전이나 사회통합의 커다란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그리하여 대검찰청에서는 지난 7월 7일에 경찰청, 국세청, 건설교통부 등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갖고 모든 수사력과 행정력을 투입하여 부동산투기사범을 발본색원하기로 하였다. 그 즉시 대검찰청에 ?부동산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를, 일선 지방검찰청(지청)에 ?합동수사부(반)?를 각 설치하여 부동산투기사범에 대한 일제단속에 나섰다. 대검찰청에 이와 같은 수사본부가 설치된 것은 지난 1990년 수도권일대에 신도시를 건설 할 때 부동산 투기열풍이 불어 중앙수사부를 중심으로 한 합수본부가 설치된 이래 실로 15년만의 일이다. 사실 일선 청 형사부 검사들은 사법경찰관서에 송치한 사건과 검찰청에 직접 제출된 고소사건 등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 단속의 주무부서가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가 아닌 형사부로, 일선 청의 담당부서도 형사부 검사들이 단속주체가 된 것은 부동산투기사범 단속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사건처리를 하면서 시민들과 부대끼는(?) 형사부가 주무부서가 되어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형사부를 중심으로 한 합수부(반)가 과연 얼마나 단속실적을 거둘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러한 생각은 기우(杞憂)이었다. 금년도 7.7.부터 9.30.까지 검찰과 경찰은 총 5,027명의 부동산투기 사범을 단속하여 그 중 195명을 구속하였다. 또한 국세청은 투기 의혹이 있는 1,700여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여(아직도 실시 중) 15개 회사를 검찰에 수사의뢰하였고, 불법 중개업자 9명은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였다. 건교부도 법규위반자 66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과히 전(全)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투기사범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 단속 결과 나타난 현상을 보면 속칭 큰손이 조종하는 기획부동산 업체에 의하여 전 국토가 투기장화 되었고, 또 그들은 지가(地價)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분묘(墳墓)까지 멋대로 이장(移葬)하는 등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도덕불감증이 만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투기에 나선 사람들도 부동산업체는 물론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전문직업인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농민,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대다수 국민들이 부동산투기라는 중병에 걸려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이제 갓 서른 살이 지난 자매(姉妹)가 친인척명의를 빌려 주택조합 아파트 11채를 불법 분양받아 언니는 9억 4천만원, 동생은 8억 3천만의 전매차익을 얻었다니 그 재주는 신출귀몰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언니는 이미 아파트 10채, 상가 32개, 오피스텔 24개나 갖고 있다고 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그런데 우리 고향 전북은 과연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지 모르겠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든지, 일부지역에 대한 기업도시 지정 등 투기의 유혹요소가 적지 아니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장전입 수법으로 전주 시내 유명 아파트를 불법 분양받아 수천만원의 전매차익을 올린 투기꾼 수십명이 전주지검 부동산투기사범 합동수사부에 적발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양반과 애향의 도시인 전북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겸 부동산투기사범 정부합동수사본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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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4 23:02

[타향에서] 생명윤리와 과학기술 사이에서

인간복제가 실현된다면 정말 나와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쌍둥이 같이 닮은 외모에 성격이나 취향도 같고, 배워온 지식이나 경험도 그대로 이어받은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 복제인간과 나의 관계는 부자지간인가, 형제인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신체부속품을 제공하기 위한 다른 계급의 존재라면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질문들은 최근에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한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상상력 풍부한 영화작가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도 최근 체세포복제 연구성과를 보면서 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유전적, 환경적 영향을 동시에 받는 인간의 성장과 발생과정을 생각하면 이러한 급진적인 시나리오의 완벽한 실현은 어려워 보인다. 1997년 최초의 복제양 돌리의 성공 이후 최근 복제개 스너피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체세포복제연구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우석 교수의 인간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 수립 성공에서 보듯이 관련 분야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줄기세포, 특히 체세포복제기술을 이용한 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할 경우 면역거부반응이 없어 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 가장 유망한 방법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논의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복제인간의 탄생을 이끌 가능성 외에도, 체세포복제배아를 생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난자의 조달 방법, 생성된 복제배아의 지위, 생명의 정의 등에 대하여 종교계를 중심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간복제를 다룬 영화가 흥행돌풍을 일으켰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생명윤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문제는 인간복제 등 심각한 생명윤리 침해의 가능성과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성공하였을 경우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새 삶을 열어줄 수 있다는 희망, 그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인간에게 치료목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특정 세포로의 분화 조절, 안전성 확보, 동물실험, 임상실험 등 많은 단계를 거쳐 그 효과를 확인하여야 하며 이러한 작업은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부에서는 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질병 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하여 이용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자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법령에는 인간복제에 대한 명확한 금지와 함께 각 기관의 의무준수사항 외에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와 전문위원회, 기관내 연구를 심의하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 등을 두도록 명시함으로써 연구를 견제할 수 있는 여러 겹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법적, 윤리적 틀안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지속적으로 윤리적 검토를 병행해 나가는 것이 현재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또한 생명윤리에 대한 담론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건전한 토론이 활성화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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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07 23:02

[타향에서] 혁신만이 살 길이다

우리 사회에 혁신이라는 단어가 매우 보편화 되었다. 중앙은 물론 시골 면 단위 까지 혁신협의회라는 조직이 생겼다. 혁신이 그렇게 당연한 과제로 떠오른 이유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든 그리고 도시든 농촌이든 이제 혁신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세상은 매우 빨라지고 세계는 극히 좁아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하고 오늘의 신기술이 내일이면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세계가 한 지붕! 오직 국경 없는 경제전쟁만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이념적 이데올로기 대립도 민주 대 반민주 갈등도 이미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다만 국가 안위와 사회 발전을 위한 합리적 실용주의만이 지배적이다.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망국적 지역감정에 이어 이제는 진보와 보수, 분배와 성장, 과거파와 미래파 등 좌우로 나뉘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국력의 통합이 아니라 허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혁신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하는 짓은 구호뿐이며 구태의연한 게 많다.한 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경쟁력이라는 자료를 보면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30개 회원국 중 한국의 부문별 경쟁력은 개인의 경우 11위, 기업은 15위로 중상위권이나 정부와 사회는 20위로서 하위권이다. 그리고 중국의 약진과 우리의 고령화 사회 및 통일비용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10년 이내에 모든 부문이 10위권 안에 들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IMF 위기 때 삼성그룹 총수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모두 바꾸라고 직원들을 독려하였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기업은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으뜸가는 초일류 기업이 되었다. 전북 출신 연극인이며 현재 서울국립극장장인 김명곤 씨는 공직자 중 연봉을 대통령 다음으로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국립극장을 잘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처음 그 자리에 갔을 때 개선해야할 점이 너무 많아 과거와 거꾸로만 하자고 결심하고 노력한 결과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그렇다. 기존의 진부한 사고와 행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 그리하여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 창조적 파괴! 그것이 바로 혁신인 것이다.요즈음 민간부문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혁신하려 애쓰고 있다. 공공부문은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아직 미진한 것 같다. 특히 지방과 농촌이야말로 부족해 보인다. 농촌도 이제 개방화시대를 맞아 자유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의 보호막은 예전 같지 않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촌도 스스로 변해야 된다. 아니 혁신해야 산다. 고품질 고부가가치 영농을 하고 판로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까지 넓혀야 한다. 농촌이라고 농사만 짓는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최대한 혜택을 주어 기업도 유치하고 전통 문화자산이든 천혜의 자연환경이든 관광 자원화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회의론을 얘기하는데 저는 그게 제일 듣기 싫고 절대 동감할 수 없습니다. 노력에 따라서는 농민도 잘 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는 이웃 전남에 사는 어느 신지식 농업인의 말이다. 그는 시설채소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 까지 팔며 매년 2억 원 이상의 소득에 외제 차까지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혁신이란 바로 그와 같은 사고의 전환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탐구정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정신이 혁신의 동력일 것이다. /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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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30 23:02

[타향에서] 공공기관 이전과 지역발전

지역발전의 본질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일 것이며 삶의 질 향상의 내용은 소득증대, 고용증대 및 안정, 정주환경의 향상이 핵심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이러한 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소득증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특히 고부가가치 산업이 늘어날수록 소득증대 효과는 더욱 크다. 그리고 지방 세수가 늘어나 지역 환경개선과 복지가 확충될 수 있는 재정기반이 확충된다. 고용증대는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있다. 저임금 단순작업 노동고용 보다는 가급적 고임금 고급 인력 고용이 많을수록 고용의 지역발전효과는 크다. 당장 배고픈데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할 수 있겠으나 앞을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북에는 토지공사와 농촌진흥청 산하 6개 연구소와 전문학교 1개소를 비롯하여 13개 공공기관이 새로 조성될 지역 혁신도시에 이전된다. 이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지역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쉽게 기대해 볼 것은 새 건물이 들어서고 근무 직원들의 일부가 이사를 오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건물 건설과정에서 물재 수요와 건설 인력 고용이 일어날 것이며 근무 직원들의 임금 지급과 생활비 지출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들이 이처럼 단순히 건물의 이전과 근무 직원의 이사에만 그친다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효과는 이 정도 수준에 머물고 말 것 이다. 기존 인력이 옮겨오기 때문에 신규 고용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직원들 가족들이 자녀 교육이나 직장 문제로 대부분 서울지역에 남게 된다면 임금소득의 지역 지출도 최소화 될 것이다. 신규고용 증가나 소득증대를 통한 지역발전 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오히려 이전에 따른 지역의 부담과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정주환경을 최소한 국내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어서 가족 모두가 이 지역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고 싶도록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연관 업무나 산업이 동반하여 확대 형성되어 정착하도록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혁신도시 입지 선정이 소지역주의나 정치적 고려의 개입이 배제되고 경제적 논리와 지역발전 파급효과의 극대화 논리에 철저히 근거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전기관들의 업무가 가급적 지역 부존자원과 연계가 최대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대책은 이전계획 초기설계 단계부터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이전기관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시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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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3 23:02

[타향에서] 판소리, 북 그리고 진도아리랑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 아-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아- 났네--청천- 하늘엔 잔-별도오- 마안고-, 이네에- 가슴 소옥엔 희-망도오- 많다지난 여름휴가 때 일행 몇 명과 콘도에서 하루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약간의 반주를 곁들였기에 취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상태에서 미리 준비해간 북을 꺼냈다. 북을 식탁의자 위에 올려놓고 사철가와 호남가(판소리와 달리 단가라 함)를 소리높이 부르니 일행들의 박수소리가 콘도의 하늘아래 울려 퍼졌다. 기분이 우쭐해진 필자는 이어 진도아리랑을 더욱더 소리높이 울려 제꼈다(진도아리랑은 원래 장구로 장단을 맞추어야 하나 꿩 대신 닭이라고 장구가 없으니 북을 두드리는 수밖에). 그런데 단가를 부를 때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일행들은 아리랑을 부르니 흥이 절로 나는지 합창으로 발전하였고, 합창소리를 들은 필자는 더욱더 북을 세게 치면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방안의 인터폰에서 삑소리가 났다. 모두가 동작 그만!하고, 일행 한명이 인터폰을 받았다.- 상대방 :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해주세요.- 아직도 합창의 흥분이 가시지 아니한 일행 : 아- 조용한 곳을 찾으려면 절에나 가시지 머더러(?) 콘도에 오셨는감유(?)! - 이에 기분이 상한 상대방 : 애기가 아파서 그러니 조용히 좀 합시다.- 일행 왈 : 아- 애기가 아프면 병원에 가시지 머더러(?) 콘도에 오셨는감유(?)!하지만 아기가 아프다는데 별 수 있나! 즉시 합창을 멈추고 좌판(?)을 거뒀다.(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많이 불편하셨는지요.)예향의 도시 전주! 그리고 멋과 맛이 살아있는 우리 고향 전라북도! 우리 고향은 산세가 수려하고 농토가 넒고 비옥하여, 예로부터 인심이 넉넉하고 예술이 발달하여 온 곳이다. 그중에서도 서예나 서화, 그리고 판소리 등은 가히 전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년에 그러한 곳의 검찰청 수장(首長)으로 부임하여 오자마자 창(唱)이라도 한가락 배웠으면 하는 차에 도립국악원 교수 한분을 소개 받았다. 그 분과 시간을 맞추어보니 월, 수, 목요일의 저녁시간이 좋다고 하기에 얼른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중머리, 중중모리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자진모리, 휘모리로 발전하였고, 어느 정도 가락이 맞추어지자 이번에는 판소리, 단가, 아리랑으로 분야를 옮겨 배우다보니 각 분야마다 조금씩 귀동냥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전주에 좀더 근무하였더라면 더 많이 배웠을 터인데, 너무 일찍 전주를 떠나와 아쉬움이 많았다.서울에 올라와서는 마땅히 연습할 곳이 없어서 육성(肉聲)으로 하는 연습은 못하고 대신 출?퇴근길 승용차안에서 전주에서 배울 때 녹음해 놓았던 테이프를 틀어놓고 복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공부라고, 여러 번 듣다보니 과거에는 듣지 못하였던 가락이 한 두곳씩 새롭게 들릴 때는 그 기쁨 또한 남다르다. 또한 장거리 여행이나 출?퇴근길 정체 때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흥얼대면 짜증도 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으니 이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단지 북채 대신 합죽선으로, 북 대신 장단지에 가락을 맞추다보니 목적지에 와보면 장단지가 벌겋게 부어 있고 때로는 아프기까지 한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혀(?)!-다가오는 추석에는 온 가족이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사철가나 진도아리랑을 다함께 신명나게 불러보심이 어떨지..... 그러면서도 지난 폭우로 갑작스런 피해를 당한 우리 이웃들은 이번 추석을 잘 지내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는 마음의 여유도 갖아보심이 어떨지...../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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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09 23:02

[타향에서] 함께하는 명절

해마다 명절이면 텔레비전을 통하여 귀향과 귀경행렬로 몸살을 앓는 고속도로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부모님도 노년에는 상경하여 계셨고, 많은 형제들도 대부분 서울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어 명절이면 귀향행렬 대열에서 몸살을 앓는 일은 없었지만,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사실 수십년 전 어린 시절 맞이하던 명절은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으며,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 몇가지 더하는 것 뿐, 모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항상 보던 얼굴들이었다. 한 집 건너, 한 골목 지나 살던 친척들이 평시라고 서로 왕래가 없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명절에나 나타나는 낯선 친척이란 대개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향을 떠난 경위, 타향살이의 애환 등등...명절음식을 장만하는 많은 손길들은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도 함께 곁들여 음식을 만들곤 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고, 세상살이의 희귀한 이야기들도 귀동냥을 얻어듣곤 하였다.이제 명절도 많이 달라졌다. 가까운 친척들도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마주 하게 되고, 명절이나 되어야 집안에 새로 들어온 가족, 새로 태어난 후손들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명절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세상살이의 애환을 나누며, 어린아이들이 그 틈에서 오가는 모습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애써 음식을 만드는 모습도 많이 줄었고, 나누는 이야기들도 세상살이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자녀들은 낯선 어린들, 낯선 환경에 어색하게 끼어 기웃거리느니 방방곡곡에 보급되어 있는 인터넷 덕분에 환경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말하자면, 많이 모이기는 하지만, 나누는 것은 적어진 듯하다.금년에는 지난해보다 귀향인구가 줄 것이라는 예측발표가 있었다. 아마 연휴기간이 짧은 탓이리라. 이번 추석은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발걸음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 대신 보다 많은 사람들과 보다 많은 것을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멀리 있는 친척들에게 가족사진과 안부를 적은 카드를 보내거나 자녀들에게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 담긴 글이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족의 범위를 조금 넓혀서 어려운 이웃사촌들에게 명절음식을 나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어차피 인터넷에 친근한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친척들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도록 하여 세대 차이를 줄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어릴적 고향에서의 풍성하고 왁자지껄하던 명절의 모습이 그립지만, 다음세대가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명절을 즐기는 모습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지난 명절에는 가족들이 모여 부모님께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세요. 인사를 드렸다.웃으시면서 욕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다.부모님이 큰 기둥으로 든든하게 계시기에 가족 친척들이 다들 모여 함박웃음꽃을 피우게 된다.곧 다가오는 추석에 오랜만에 모이는 사람들과 어떤 이야깃거리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 기다려진다./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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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02 23:02

[타향에서] 전북 리모델링의 방향

지역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시장에 맞는 산업구조와 정주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산업구조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장에서 요구하는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해당지역의 자원조건과 지리적 접근성에 따라 크게 좌우 된다. 좁은 국토 안에서 자원 여건이 지역별로 유사한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인적자원, 서울에서 지리적 접근성과 함께 정주 여건이 지역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전북의 인적자원, 접근성, 정주여건은 이러한 발전요건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불리하다. 그렇다면 전북의 미래를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도민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전북의 경쟁력을 높혀 지역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실현하는 것이다.먼저 지역 자원을 총 동원하여 새로운 시장 여건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전북은 농업 자원과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농업자원은 전통적 쌀 중심의 농업에서 고부가치성 농업으로 전환하고 지역 관광자원은 수요자의 요구에 맞게 재구성하되 체재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맛과 멋과 소리의 고장이라는 이미지 자원을 이용하여 식품산업, 디자인 산업 그리고 음향기기 및 악기 산업의 육성을 적극 고려해 볼만하다. 이와함께 고부가가치 신산업 유치가 절실하며 이에 필요한 인적자원은 인구의 대량 유출로 부족한 실정이나 접근성과 정주여건 개선을 통해 기업과 함께 인구 유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산업유치를 위한 접근성은 기업의 입지 선정과 관광객의 방문에 핵심적 고려사항 가운데 하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희망 지역 결정 당시 90% 이상의 기관이 충청권을 선호한 이유는 접근성이었다. 접근성은 신속성, 편리성이 핵심이며 도로, 항만, 철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이 필수 요소이다. 고속도로와 간선도로의 확충, 서해안 항만 확충 개선, 고속전철의 조속한 건설, 김제공항의 조속 개항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간접자본은 운송 수요가 있어 건설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운송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본질적 기능이다. 특히 김제공항은 현 시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있으나 국내 중형항공 운항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남북한 교류나 인접 중국, 소련 동북부 등과의 무역거래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도 시급히 건설되어야 한다. 정주여건은 기업유치나 인구 유입에 절대적 고려사항 가운데 하나다. 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초시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양질의 교육, 문화, 주거환경, 여가활용 시설 등의 확보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최고를 지향하겠다는 도민의 의식과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쟁에서는 일등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인식하고 무엇이든지 일등제품, 일등서비스를 생산 공급하겠다는 주민 의식의 정착이 절실하다. 지역 발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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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19 23:02

[타향에서] 묵언(默言)

2004년 7월 초순 어느 날.전주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부임 후 관내 지청 중에서 처음으로 정읍지청을 지도방문하였다. 10여년전 정읍지청장으로 재임하였던 시절에도 열악한 청사(廳舍)사정으로 인한 어려움이 하나둘이 아니었는데,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청사에서 아무런 불평없이 지역주민들을 위한 검찰권 행사에 애를 쓰고 있는 검사와 직원들을 보니 대견스러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하여 주었다. 귀청하는 길에는 고향인 정읍 칠보에 들려 그곳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상대로 청소년의 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유달리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아니하고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한 결과, 대학에 특수장학생(입학금과 매학기 등록금 면제, 4년간 매월 생활보조금조로 일정액의 장학금 수령)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 절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는 겨울방학 3개월 동안 묵언까지 하면서 공부에 매진하여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게 되었다. 여러분들도 주변여건 중 좋지 않은 점만 탓하지 말고,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면 모두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강연이 있는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www.dongkisarang.com)에 묵언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여야 하냐?고 문의를 하여 온 학생이 여러 명 있었다. 여러 가지 강연내용 중에서 특히 묵언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학생이란 모름지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또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여야 되는데 공연이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묵언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적지 아니 당황하였다. 황급히 묵언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수업에 열중하라고 일일이 답장을 보내 주면서 학생들을 진정시켜 주었다.각설하고, 잠자코 말하지 않음이라고 사전에 그 뜻이 적혀져 있는 묵언(묵言)은 불가(佛家)에서 행하고 있는 스님들의 자기수행 방법의 하나이다. 묵언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부작위적;不作爲的) 의미가 있어 뭐 별게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왠만큼 굳게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실패하기 쉽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묵언을 행할 경우 본인의 답답함보다는 주위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어한다. 묵언하는 사람이야 자신의 결심 아래 그대로 실행만하면 되지만, 주위사람은 묵언하는 사람의 생각을 모르니까 더욱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누가 묵언을 할 경우 주위의 협조가 더 필요하다.독자 여러분들도 올 여름 휴가 기간이나 방학 중에 며칠간이나마 시간을 할애하여 묵언을 해보심이 어떨지요.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말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언어장애자들의 불편함을 가슴 가득히 느끼시어 나중에 그분들을 만나게 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실 것입니다), 스님들의 고행도 함께 체험하고, 본인의 수양도 깊게 할 겸해서.아참, 부부나 친구끼리 말싸움 끝에 한 묵언은 본래 의미의 묵언이 아니라는 것까지 말씀드려야 되나?! 말아야 하나?! 아무튼 그러한 묵언은 아니한 것만 못하겠죠?!/ 이동기 (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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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12 23:02

[타향에서] 남자라는 것-남 잘하는 것

얼마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중년 남녀가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누가 많이 받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던 중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한 여자 교수가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 남 잘하는 것 인정해주어야 해요!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점잖은 노교수님이 갑자기 감격해하면서 맞아요, 우리 나라 남자들 요즈음 너무 불쌍하고 힘들어요. 얼마나 고생하는데, 인정해주어야 하고 말고요.라고 말씀하셨다. 모인 사람들의 대화는 갑자기 대한민국 남자의 현주소에 관한 것으로 급선회했고, 아무도 어떤 대화가 진행중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말을 꺼낸 여자 교수조차 그게 아니고요.라고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진지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남 잘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남자라는 것으로 잘 못 들리면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다. 헤어질 무렵, 그 대화가 급선회된 내용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진상을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도대체 남자들이 왜 남자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에 그렇게 순간적으로 감격 했는지 서로 안쓰러워 하기도 하였다.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 여자보다 더 많이 참아야 하고, 더 많이 의젓해야 하고, 더 책임도 많아야 하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많고.......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여자를 남자가 참을 수 없게 하는 일을 하고, 근본적으로 가볍고, 무책임하고,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설정되어 있는 존재로 한정지어 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이렇게 많은 형용사들이 붙어 버렸다. 그러나, 사람도 엄청 많고, 해야할 일도 엄청 많은 이 다원화된 세상에서 개개인의 적성과 하여야 할 일의 특성을 제쳐두고,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라는 관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여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풀어야 할 과제의 특성에 맞고, 능력이 탁월하다면, 그 성(性)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남자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하여 중년 사망률 세계1위라는 건강상 위험까지 안고 있는 남자들을 그들이 부담하고 있는 많은 짐으로부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업무가 한정지워지는 우리 나라 여자들을 그들이 겪고 있는 박탈감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 될 것이며, 오히려 가사 노동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계기도 되리라 생각한다.따라서, 이제는 남자라는 것 또는 여자라는 것보다는 남 잘하는 일을 찾아 한 사람 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맡게 배치하여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여야 한다. 다만, 아직 남자가 하여야 할 일과 여자가 하여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신 어르신들에게는 다소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나 자신 아직 그러한 한계를 완전히 극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하여서도 남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남 잘하는 일을 찾아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하도록 하는 노력과 교육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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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05 23:02

[타향에서] 농촌이구 감소와 고령화문제

지난 봄 고향에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IMF 위기 때 유수한 생명보험회사의 중역자리를 명예퇴직하고 나이 50초반에 서울을 떠나 낙향한 사람이다. 그 이후 유산으로 받은 야산을 손수 과수원으로 일구고 표고버섯도 재배하며 지금은 마을 이장까지 맡아 농촌에 아주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그 마을은 첩첩산중 이지만 40년 전만해도 150여명이 살았단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26명이 살고 있으며 그 중에 반은 70세 이상 노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미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농촌은 어느 곳이나 애 울음소리 듣기가 어렵고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초 고령화 사회이다. 농촌 인구의 감소도 문제지만 고령화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이는 인력부족은 물론 노동력저하로 이어져 결국 농업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므로 농촌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림부에서는 젊은 영농인을 육성하여 농촌에 정착케 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어느 지자체는 인구전입을 유도하기 위해 전입장려금까지 지원하고 있다. 또한 소위 귀향마을특구라는 것을 만들어 출향인들을 고향으로 유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고장도 있다.지금 경제가 어려워 많은 젊은이들이 취직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때문에 외국에 수습사원으로라도 나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 있듯이 우리 젊은이들 또한 중국 같은 나라의 공장에 단순 노동직으로 나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들에게 우리 농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농촌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준다면 그리고 성공한 스타 농업인을 보여 준다면 많은 젊은 영농인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공장보다는 정든 모국의 농촌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또한 도회지에 살고 있는 출향인들로 하여금 고향에 내려가 정착케 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 볼 가치가 있다. 특히 나이 50세 안팎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 나이면 도회지에서는 은퇴자일지 몰라도 농촌에서는 아직 일할 수 있는 청년층이기 때문이다. IMF 시대 이후 기업체에서는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하여 40대 중반부터 이미 명퇴가 시작되고 잘해야 50대 중반이면 은퇴하게 된다. 실제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렇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어 한다. 자식들 공부도 어지간히 마쳤으니 집 한 채 팔아 자식들 기거할 작은 오피스텔이나 하나 장만해주고 나머지 돈 가지고 고향에 가면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들 얘기한다.그런데도 그들이 선뜻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새로운 삶의 전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떻게 소일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 같다. 지자체에서 그들에게 농촌의 빈집을 알선해 주고 수리비도 좀 보조해 주며 조그마한 '팬션하우스라도 지어 민박으로라도 소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면 상당한 호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휴경지라도 빌려 주어 적절한 영농교육과 농촌 적응훈련을 병행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앞서 얘기한 친구와 같은 진짜 영농인이나 이장도 여러 사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농촌에 접목시켜 활용한다면 농촌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앞서 말한 것들이 문제 해결의 전적인 대안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실제 지방 공무원들을 보면 대부분 전주 같은 인근 도시에 살며 시골 직장에 출퇴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교육문제인 것 같다. 고향을 떠나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일자리 문제도 있겠으나 그런 이유가 클 것이다. 따라서 각 지자체마다 관내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웃 경남의 함양고등학교나 거창고는 우수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아 오히려 외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며 우리가 꼭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다./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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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29 23:02

[타향에서] 김치 세계화의 과제

김치의 세계화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출을 통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식문화를 국제적으로 선양하는 것이다. 근년에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글로벌화 되어 국가 간 교류가 일상화되면서 김치가 세계에 많이 알려지고 있다. 특히 식생활이 비슷한 일본에 수출이 많아 졌고 중국으로 부터는 역으로 우리나라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서구에도 김치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양이 많지 않고 소비도 현지인보다 한국 관광객이나 현지 교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동양계가 구입하는 수준이다. 이와같이 서구에서 호기심 수준 이외의 김치 수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무엇보다 김치가 서구인의 식생활과 잘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치는 쌀밥과는 잘 어울려지나 빵, 우유, 치즈와는 맞지가 않는다. 서구인들 음식에 동반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냄새가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너무 강하다. 사실 마늘취, 발효취나 젓갈 냄새는 우리들도 별로 즐겁게 느끼지 않는 향이다. 매운 맛도 강한 편이다. 다음으로 맛과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김치라도 한 두달 전 제품과 지금의 제품의 맛이 다르다. 배추, 고춧가루, 마늘 등 원부재료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치를 서구인을 포함한 세계적 식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김치를 그대로 서구인들이 수용하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그러려면 먼저 서구인의 식생활이나 식단에 부합되는 동반식품을 찾아 그에 맞게 제품을 변형하거나 또는 식재료로 활용 될 수 있도록 김치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나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서구의 대표적인 음식인 프랑스나 이태리 음식의 요리 재료로 활용된다면 확산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동반 음식으로 쉽게 생각 할 수 있는 품목은 대중 식품인 스파게티나, 피자 등이 있다. 동양에서는 이미 세계화 되어 있는 중국이나 태국음식의 요리 재료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해 볼 만 하다. 인구가 10억 가까이 되는 인도 요리에도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 다음으로 좋아하지 않는 냄새제어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과제로서 산학연이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원부재료의 품질 일관성 확보는 원부재료의 재배 단계에서 해결이 이루어져야 하며 농촌진흥청 등에서 담당해 주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맛의 고장인 전북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식품 가운데 하나인 김치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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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22 23:02

[타향에서] 동서사랑, 고향사랑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최초로 검사임관을 받은 곳은 경상도의 어느 검찰청이었다.그곳은 어느 사찰로 사법시험 공부를 하러 가는 길에 잠시 스쳐 간 인연 밖에 없는 곳이었다. 지역마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듯이 사람들의 기질도 다르다는 말과 같이 그곳 사람들의 기질은 우리 고향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짜고 매운 음식에, 억센 말투, 그리고 무뚝뚝한 성격 그 자체이었다.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사람을 사귐에 일정한 원칙이 있어 보였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어떤 사람인가를 유심히 살피다가 그 사람에 대한 확신이 서면 서서히 마음을 열어 정을 주고, 대신 한번 준 정은 오래간다. 그런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그 지역 사람 한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식사 정도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는데, 어느 날 정색을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었다.이 검사님은 고향이 전라도라고 알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가서 그런지 그곳 말투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곳에서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굳이 전라도라고 하지 말고 그냥 서울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곳 사람들 중에는 법조계에 아는 사람이 많아, 이 검사님의 장래에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웬만큼 믿지 아니하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터인데도, 외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마음깊이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그러나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나온 한마디!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제일 큰 은인이시라면, 고향의 냇가와 앞뒤 동산, 그리고 개울가에서 빨가벗고 뛰어놀던 친구들은 저의 두 번째 은인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제가 있겠습니까. 고향을 숨기고 출세를 하면 얼마나 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하여 출세하더라도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저는 비록 단 하룻동안 검사생활을 하더라도 떳떳하게 고향을 밝히면서 검사생활을 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그 이후로 그 분과는 더욱 다정한 사이가 되어, 필자가 어느 곳에 발령 나더라도 연락이 되었다. 특히 정읍지청장 시절에는 그곳의 유력인사 수십명을 이끌고 와 고향사람들과 교분을 나누었고, 전주지검 차장시절에는 쌀 수십포대를 가지고 와 전주지역 소년소녀가장을 위문하는 등 동서화합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갔다. 아참, 동서(東西)사랑이 동서(同壻)사랑인줄로 아셨다고요?- 아니라예, 틀리삐다. 예.~ - 아니라구먼요, 틀려뿌렸서요. 잉.~/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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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15 23:02

[타향에서] 벼는 때가 되면 고개를 숙인다

우리 사회에 혁신적인 변화, 주40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연휴를 맞게 되면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3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농담이 오고 간다. 돈이 없고,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다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건전한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리라 생각된다.그 동안 7월하면 무더위와 함께 장마, 습기로 근무조건이 원활하지 못한 계절이었다. 이런 7월을 맞아 연휴를 지내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농촌전경을 바라보면서 깨달은 일을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향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는 사시사철을 달력이 아니라 주변을 바라보면서 받아들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와 오랜 세월을 바쁘게 살다가 지방국립병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고향에서 그런 시절이 보냈었다는 것을 떠 올리게 되었다. 그후 은퇴하면 시골에 작은 과수원을 만들어 다니러 오는 손주들에게 과일이나 따 먹이자던 생각을 하던 중 어떤 인연으로 근교에 작은 토지를 마련하여 야채도 가꾸고 과일나무도 심게 되었다. 농사일이라고는 전혀 모르지만, 아무튼 손바닥만한 땅을 갖고 보니 오가는 일이 잦고, 오가며 지나는 논길을 눈여겨 보다보니 예정에 없던 농사공부도 하고,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어느 해인가 무척 비가 많이 내린 해였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로 햇살을 보기 어렵더니 낟알이 채워지지도 못한 채 벼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오다가다 만난 농민들은 쭉정이가 반이라고 한 숨을 내쉬는데도 쭉정이만 달린 벼는 누렇게 익어 처연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을 생각하면서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천만에 말씀, 때가 되면 벼는 저절로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걸!하고 깜짝 놀랐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쓴다고 시간을 일초라도 더 늘이거나 줄일 수 있겠는가! 일정한 때가 되면 벼는 모두 익어 고개를 숙인다. 충실하거나 말거나! 그러나, 그 때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 모두 충실한 알곡은 아닌 것이다. 농부의 눈에는 때가 되어 들판에 누렇게 익어 고개숙인 벼라고 하여 모두 알곡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이 충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때가 되었다고 한들 충실한 알곡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는 길이 다르겠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우리의 의지만으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버티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절대로 더 이상 숙성을 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도 똑 같은 무게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올 여름 새롭게 맞는 주40시간 근무제로 주어진 시간에 모두 땀 흘리면서 스스로의 무게를 더하여 우리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그 때에 충실한 알곡으로 판정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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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08 23:02

[타향에서] 우리 농촌, 수출로 돌파구를

내 고향 농촌이 깊은 시름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농번기에 한창 바쁠 텐데 쌀 협상 국회 비준을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과 아울러 외국산 농산물의 국내 유입이 확대되고 있고 이와 같은 추세는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바야흐로 우리 농촌도 이제 개방과 자유경쟁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고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업구조조정을 통하여 수입개방에 대응할 수 있는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개방화 시대는 우리뿐만 아니라 외국시장도 개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장개방 여건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여 능동적인 수출농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우리 농산물 수출을 보면 그동안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세 농가와 소규모 수출업체 위주로 이루어지는 소극적인 형태다. 따라서 경쟁력이 취약하고 생산에서부터 수확 후 관리기술 및 물류유통 그리고 해외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과제는 농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먼저 정부의 강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리고 농가를 포함한 수출업체 및 유관기관의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특히 일선 지자체의 선도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농업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위기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아니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60년대에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 때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던가.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무엇이 있었던가. 하지만 우리는 해 냈다. 한 해 수출액이 무려 2,500억불이 넘는 나라를 만들어 냈다. 그 것은 바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는 통합된 의지와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농업에는 기본적인 자원이 갖추어져 있다. 땅이 있고 알 맞는 기후조건, 농민의 근면함, 그리고 국가적 지원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범국민적 노력을 경주할 경우 농업은 회생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농가는 언제까지 시장개방을 막아 달라고 거리에 튀어 나와야 하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것인가. 아니다. 우리 농업에도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연간 200억불이 넘는 농산물을 수출한다. 우리나라의 작년도 농산물 수출액 20억불에 비교하면 믿기지 않는다.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국토가 크기 때문인가, 인구가 많아서인가, 그렇다고 인건비가 싼가. 모두가 아니다. 꽃을 비롯한 고품질 고부가가치의 전략상품을 육성하여 전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우리 농촌도 이제 수출을 해야 살수 있다 그리고 해 낼 수 있다는 의식전환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농업 회생을 위한 노력은 농촌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류학자들은 농업이 망하고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안정적 국가 영위도 불가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농업 발전은 중차대한 국가적 명제이며 특히 농도 중에 농도인 우리 고향 전북으로서는 절대 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출농업의 육성은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인 것이다./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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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01 23:02

[타향에서] 6월의 지리산

6월의 지리산은 푸르기만 했다. 철쭉이 만개했지만 멀리서 볼 때는 녹음에 가리워져 그것 또한 푸르름으로 덧칠해 버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내 키보다 더 커버린 나무에 엶은 분홍으로 만개하여 등산로에 철쭉꽃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6월 지리산의 철쭉. 감탄 그 자체였다. 우리를 이렇게 흥분시키기 위해 혹독한 겨울은 잘 버텨준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수줍은 듯 피어오른 야생화는 이름을 잘 모를수록 좋고, 작을수록 앙증스럽고, 홀로 있을수록 청초하다. 환장할 만큼 예쁜 지리산의 꽃은 서방각시 다 팽개치고 산에 묻혀 버리게 만든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아침햇살은 깨끗하고 순수함으로 찬란했다.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는 황홀했다. 처음 들어보는 산새들의 지저귐이니 그 이름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또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이런 6월의 지리산을 나같은 글솜씨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지리산을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와본 후 미치지 않는다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고단의 노고와 지리산의 지리에서 따와 만든 「노고지리」산악회도 그들 중의 하나다. 공교롭게도 회원 중 한두명을 빼고는 모두가 전북이 고향이다. 거시기부터 시작하는 총무의 말투가 고향사람이라는 것을 잘 증명해준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올해로 19번째 종주를 했으니 지리산을 미치게 좋아한다고 할만도 하지 않은가? 7번쯤 종주에 참가한 필자는 지리산을 종주한 사람은 산악인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등산객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새벽 5시 노고단을 출발해 세석산장에서 1박한 후 천왕봉에는 6월 2일 아침 8시에 도착했다. 출발 27시간만이다.1500여 미터의 봉우리 10여 개와 쓴내 나는 고비를 넘기고 만난 천왕봉(1915m). 정상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비석이 서있다.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며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민족의 깊은 상처와 숱한 정담까지를 안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지리산.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뜻을 가진 지리산(智異山)은 민족의 영산이다.6.25전쟁이후 지리산에서 펼쳐진 좌우익의 남북간 대결은 우리민족의 뼈아픈 시련과 격동의 현장이 되었다. 그래서 6월에 만나는 지리산은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빨치산이 활동하던 곳이 지리산이었기에 우리의 한많은 삶을 그리는 대하소설에도 지리산이 주무대가 된다.남북간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에서 다루면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한 빨치산의 특이한 성격을 조명한 이병주의 「지리산」.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사실적이어서 민족의 대하드라마이고 대서사시라는 평을 받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된 박태영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현상의 승리사단에 전속되지만, 사령관 이현상은 결국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이현상의 최후는 남한에서 빨치산의 최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법계사 빨치산 은둔지 안내판에 「괴뢰군」라는 단어가 짖뭉개져 있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지금 6월의 지리산은 우리민족의 눈물과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우리곁에 있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 모두를 포용한다. 그때 그 자리에 피어있던 야생화도 올해처럼 내년에도 피어있을 것이다. 산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지리산에 머문 우리만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면 된다. 지리산(智異山)의 뜻처럼.../은희현(전 제주문화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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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6.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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