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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흰 닭이 날아가는 곳

대낮인데도 하늘이 캄캄하다. 아파트 뒷산 너머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그쳤다 다시 내린다. 남우는 물길을 가르며 달려가는 오토바이 배달부를 본다. 헬멧을 비틀어 맨 별난 짜장 아저씨다. 쏘아보는 듯 퀭한 눈빛과 곧추 세운 허리로 네 거리를 지나간다. 오토바이 뒤를 따라 차들이 물살을 가르면서 배달의 기수를 따라 멀어진다. 남우는 건물 로비에 내려놓은 물건들을 점포 안으로 들이면서 거리를 바라본다. 남우의 오토바이가 건물 앞에 비를 맞은 채 서 있다. 황토색 건물이 아파트 숲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한의원과 치과, 내과, 소아과 병원과 약국이 몰려 있는 건물이다. 오늘 따라 홀 안은 닭을 튀겨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낮게 틀어놓은 음악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반복해 들려온다. 노래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노래의 반복은 노래의 고문이다. 비 오는 날이면 닭을 튀기는 냄새가 유독 건물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을 자극시킨다. 헬스클럽이 있는 건물이다. 남우는 통닭 재료를 주방으로 나른다. 흰 닭 박스에서 피가 흐른다. 이십 킬로가 넘는 통닭 박스 안에는 스무 마리의 닭이 비닐과 얼음으로 포장돼 있다. 남우는 테이블에서 젊은 연인이 남겨놓고 간 닭 뼈를 치운다. 닭다리 뼈와 날개 죽지뼈가 손님이 사라진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 통닭이 튀겨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방을 응시한다.여름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비가 내린다. 실내가 습하다. 차림표 옆 수납장에서 남우는 비옷을 꺼내든다. 두 벌의 비옷이다. 수납장엔 주문표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옆으로 남우가 써놓은 편지지 묶음이 보인다. 오래 전부터 남우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편지지에 글을 썼다. 딱히 누구에게 보낼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을 답답하게 옥죄어오는 무언가를 적어 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멍울 같은 것이 자신에게서 툭 터져 나가는 걸 느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닭을 튀기면서 닭의 기름덩이를 떼어낸다. 한 마리 닭은 여덟 조각이다. 닭 한 수는 가슴과 둔부, 날개와 다리로 나뉘어진다. 남우도 어머니 곁에서 가위를 들고 비닐에 들어 있던 닭을 꺼내, 노란 기름 부위를 가위로 베어낸다. 손끝에 와 닿는 미끄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닭살, 어머니는 그 닭살의 구석구석에 가위 끝으로 칼집을 넣는다. 가위 끝이 닭 부위의 곳곳을 찌를 때마다 불룩불룩 가위 끝이 닭의 표피를 뚫고 바깥으로 송곳처럼 비어져 나온다. 날개와 목 부위의 기름기도 가위로 싹둑 잘라낸다. 남우는 잘라낸 여덟 조각의 닭 부위를 빨간 플라스틱 채반에 부위별로 정리를 한 뒤 냉장고 속에 쌓는다. 어제 넣어놓은 닭 채반 밑으로 붉은 핏물이 고여 있다.남우는 다른 박스를 연다. 어머닌 박스 안의 닭 봉지 숫자를 습관처럼 센다. 가끔 숫자가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 남우는 어머니 곁에 서서 투명한 비닐봉지 안의 닭을 쏟아낸다. 퍼렇게 멍이 든 다리를 가진 닭의 다리를 남우가 엄지와 검지 끝으로 만져본다. 닭의 다리는 멍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릎이 골절되어 있다. 힘을 잃은 다리뼈가 멍든 피부 속에서 겉돈다. 닭도 다리가 부러진다. [회사에 전화해라. 요즘 멍든 닭이 너무 많아.]희끗희끗거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남우는 어머니 사진첩 속에 들어있던 젊을 적 어머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젊어 시집오기 전 사진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비단 저고리를 입고 찍은 어머니의 자태는 고왔다. 뽀얀 얼굴에 살포시 볼우물을 머금고 있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어머닌 남우에게 너무 차가웠다. 객지에 나와 철근 일을 하면서도 욕을 입에 담을 줄 모르던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신경이 예민했다. 남우에게 어머니의 지청구는 유리를 긁어대는 날카로운 소리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다리가 부러진 닭은 튀겨도 모양이 안나요.]남우가 어머니를 향해 말한다. 비틀린 채 짧게 튀겨진 닭은 그저 시식용으로 쓰일 뿐이다. 남우는 멍든 닭다리를 보면서 떠올린다.지난 해 치킨점을 하기 위해서 본사가 있는 공장에 견학을 갔었던 때였다. 양계장에서 실려온 닭은 줄줄이 벼랑처럼 가파른 곳으로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올라갔다. 육계용으로 쓰이는 이탈리아 원산의 레그혼은 컨베이어 벨트의 마루를 넘지 않으려고 날개를 펴고 바동거렸다. 철망에 부딪친 닭에서 닭털이 날아왔다. 닭은 철망에 발이 끼인 채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컨베이어벨트 사선을 넘어갔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사선을 넘어간 닭이 나중에 털이 뽑힌 채 되돌아왔다. 남우는 외줄에 묶여 허공에 떠 있던 닭을 보았다. 그 닭을 향해 수많은 주사바늘이 달려들었다.[염지작업이죠. 이전에는 닭을 소금 찍어 먹었지만 요즘은 닭에 양념과 소금기가 주사되어서 소금 없이 먹어도 간간하고 맛있는 통닭이 되는 겁니다.]흰 가운을 입은 공장직원이 설명했다. 온몸에 주사를 맞은 흰 닭은 이번에는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퇴화된 날개를 퍼덕이던 닭은 털이 뽑히고 주사를 맞은 채 조각조각 몸이 나뉘어졌다. 다음 공정에서 아주머니들은 그 닭 조각들을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넣어 포장했다.남우는 어릴 적 닭을 잡던 기억이 났다. 처음으로 닭을 잡았을 때였다. 외가 마당에서 닭을 잡았는데 아버지와 외숙이 삼거리 주막집에서 술을 드시는 바람에 남우가 대신 닭을 잡아야 했다. 남우는 처음 일이라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악스럽게 마음을 다잡아 닭 목을 비틀었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렇게 아홉 바퀴 닭 목을 돌린 채 닭털을 뜯어냈다. 닭털을 막 뜯어내려고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갑자기 목이 휘휘 풀어지더니 남우를 향해 털 빠진 닭이 달려드는 거였다. 남우는 기겁을 하고 닭에 쫓겨 달아났다. 어느 새 닭은 뒤란 감나무 위로 올라가 있었다.[사내새끼가 그리 겁이 많아서 어디 쓰나.]남우는 그 말에 다시 바지랑대를 들고 닭을 쫓아갔지만 털 빠진 닭은 남우를 피해 이리저리 날아 다녔다. 붉은 색과 초록색 비단 옷을 입고 꽁지깃을 세운 조선 닭이었다. 외숙은 말고기 자반 같은 얼굴로 돌아와 거친 손으로 주저 없이 닭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이내 털을 뽑고 배를 갈랐다. 뜨거운 닭의 내장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냇가 너른 돌 위에 쏟아져 내렸다. 흐르는 물에 닭 모래집을 소금에 버무려 씻어냈다. 삐이... 알람 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통닭을 건져 올린 남우는 프라이어기 끝에 건다. 망에서 흘러내리는 기름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 튀겨진 통닭을 향해 손님이 다가선다. 닭의 눈처럼 빛나는 눈빛이 또렷이 통닭을 향해 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통닭은 노란 옷을 입고 포장지 안으로 들어간다. 전화벨이 울린다. 비리리리. 그 동안의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남우의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료가 오는 시각은 일이 시작되는 시각이어서 더더욱 일이 몰린다. 남우는 깡통따개로 소스통을 따고, 파우더며 재료를 창고에 넣어둔 다. 튀겨진 통닭을 오토바이 배달통에 넣은 남우가 아파트 골목를 향해 달려간다. 오늘 따라 아르바이트생 출근 시간이 늦다. 남우는 시간에 쫓겨 몹시 초조하다.[오늘 외할아버지 제사라서요.]아르바이트생이다. 아무 말이 없던 아르바이트생의 일방적 통보 앞에 남우는 막막해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문이 폭주하는 걸 알고 아르바이트생은 번번이 비가 내리는 날마다 핑계를 대고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배달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남우는 바싹 침이 마른다. 다시 또 전화벨이 울린 다. [예. 나라 통닭입니다. 네, 네. 1204호요. 알겠습니다. 네, 네.]남우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 난 검은 점이 자꾸만 실룩이며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다. 통 유리 출입문 밖으로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통 유리 밖에서 물방울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거리엔 우산을 쓴 사람들의 걸음들이 뒤엉킨다. 자동차 와이퍼 움직임이 빨라진다. 남우는 오토바이 안장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안장 위에 다시 신문지를 얹어놓는다. 빗물이 신문지에 빨려 들어온다. 신문지를 걷어내고 다른 신문지를 덮는다. 남우는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조금 비가 그치긴 했지만 구름의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 바람이 조금씩 더 거세게 불어온다. 경비실 텔레비전에서는 남해안으로부터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 남우는 오토바이를 몰고 자동차 앞쪽으로 달려간다.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던 네거리 주변으로 보이는 곳은 온통 아파트뿐이다. 거대한 직육면체에 수많은 창들을 달고 있는 아파트가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치솟아 있다. 거대한 닭장 같은 집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도시, 사람 위에도 사람 있고 사람 아래도 사람이 사는 동네 모습이 갑자기 낯설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오토바이의 대열이 나란히 서 있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인 만두집 배달부가 불꽃처럼 일어선 머리칼을 날리며 오토바이의 대열 가장 앞쪽으로 나선다. 모두 배달의 기수다. 도로 곳곳으로 비바람이 몰려오고 있다. 거리를 휩쓴 잿빛 물줄기가 배수로를 찾아 급하게 흘러간다. 남우가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이전에 남우는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통닭 일을 선택한 후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다. 남우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길을 뒹굴며 오토바이 타는 걸 배웠다. 시간과의 전쟁이자 목숨을 건 곡예였다.오늘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옆집 영감님이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어 죽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과부틀이라고 불렀다. 곳곳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오토바이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생활이었다.갈대가 우거진 부엉산 고갯마루를 넘어갈 때였다. 과속방지턱에 걸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뛰어오른 오토바이를 세우고 배달통을 열어보았다. 배달통 안에 깨진 유리조각과 통닭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갈대가 우거진 들판에 서서 깨진 콜라병 조각을 골라냈다. 핸드폰이 울렸다. 지금 바쁜 데 왜 오지 않느냐는 전화였다. 남우는 콜라에 젖은 통닭을 입에 물고 흔들리는 갈대밭에 앉아 버리기 아까운 통닭을 입으로 몰아넣었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들판에서 남우는 소리를 질렀다. 우우. 남우는 자신이 지르는 소리가 마치 수탉의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넘어올 때 오토바이 앞 바구니에 달빛이 내렸다. 부엉산 고갯마루를 오를 때면 오토바이보다 먼저 달빛에 비친 철망 바구니가 언덕을 넘어갔다. 거대한 아파트 숲 사이로 남우가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간다. 그 빽빽한 아파트라고 해도 이름이 있고 호수를 찾아가는 지름길이 있다. 남우는 그동안 도시의 골목이란 골목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36호차. 호출. 끝없이 신호음이 전해져 오는 운전자 호출택시 사무실, 담배를 피워 물고 고스톱을 치고 있는 가요주점 아가씨 대기실, 수건을 걸치고 나오다 수건이 벗어지는 바람에 화들짝 다시 들어가던 사람의 여관방에까지 배달했다. 남우는 통닭뿐 아니라 심부름까지 해야 했다. 담배, 술, 화투짝부터 시작을 해서 생리대, 해열제 그리고 피임약까지. 남우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뜨거운 통닭을 들고 문을 두들겼다.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시간이 흐른다. 배달 시간이 이십 분이 넘으면서부터 사람들은 재촉을 하기 시작한다. 삼십 분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삼십 분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힘겨워한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거라고. 그들은 닭의 눈처럼 빨간 눈을 뜨고 왜 늦었냐고 따진다. 남우는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우리는 닭을 미리 튀기지 않아요.][아니 그럼 닭을 잡아서 튀겨오기라도 했단 말이요. 아이들이 다 잔단 말이야.]배달시간이 더 늦어지면 사람들은 막말을 한다. [우린 시킨 적 없어요. 다른 데 알아봐요.]남우는 철문을 열고 서 있는 사람을 향해 굽실거린다. 더 이상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붉은 눈동자와 날카로운 부리, 그리고 머리에 난 빨간 벼슬이 보일 뿐이다.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면 전쟁이 시작된다.어린 손님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기다릴 줄을 모른다. 시간도둑을 향해 어린 왕자의 저주가 쏟아진다. [망해 버려라!]초등학교 사 학년이나 될 법한 아이의 입에서 날카롭게 내뱉어진 말이 자꾸만 머리 속에 맴돈다. 망해 버려라. 망해 버려라. 그래. 망해 버려야지. 네 말대로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구나. 왕자님 미안합니다. 망해 버리지 못해서. 남우는 송곳니가 방석니가 되도록 이를 갈면서 분하게 여겼을 아이를 떠올린다. 어린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막말을 할까. 남우는 어린 왕자의 저주를 뒤통수에 달고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배달부에게는 따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요령이 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면 남우는 두 층계를 눌러놓는다. 아래층에 있을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달시간이 길어진다. 두 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려오는 동안 남우는 통닭을 건네고 돈을 받아야 한다. 잔돈까지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경계의 눈초리와 함께 삐죽 내미는 사람들의 얼굴, 직육면체 바깥으로 돈을 내민 사람들은 현관문을 급하게 걸어 잠근다. 홀 안에는 오늘 따라 대기하는 손님이 많다. 아르바이트생이 나오지 않아 여동생까지 나와서 일을 거들지만 밀려오는 주문을 소화해내기는 역부족이다. 어머니는 가까운 곳 아파트를 향해 뛰어다니듯 배달을 다닌다. 천둥이 치기 시작하는 바깥엔 이미 어둠이 내렸다.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보채는 아이처럼 울어댄다. 독촉 전화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통닭을 찾는 아우성 소리가 자꾸만 더 커진다.[너무 많이 밀려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코드를 뽑아야겠어.]남우는 코드를 뽑아낸다. 전화벨 소리가 사라진 후 조금 마음이 놓인다. 밀려 있는 주문과 홀 안에 대기하는 손님들을 생각하니 일이 까마득하다. [무슨 통닭을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오늘 따라 웬 난리야.]텔레비전에서는 남해안을 휩쓸고 올라오는 태풍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피해규모가 사상최대로 늘어나고 있다는 방송이 들려온다. 화면 안으로 강풍과 맞서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보인다. 바닷가에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몰려온다. 곳곳에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화면 속 부둣가의 배들은 심하게요동을 치고 양돈장과 양계장의 가축들이 출렁이는 강물과 함께 떠내려간다. 심하게 불어난 물 속에서 바동거리는 닭의 모습이 보인다. 스티로폼과 뿌리뽑힌 나무도 닭과 함께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먼 곳은 배달을 할 수가 없어. 앞으로 먼 곳은 받지 마.]남우는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나온 임산부 여동생을 향해 말한다. 홀 안에 들어서자 비옷에서 쌔한 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나라통닭이란 곳을 인수하게 된 건 순전히 주위의 권고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혼자가 된 아들을 향해 고생이 되더라도 힘든 일이 돈이 된다며 치킨점을 권했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난 후였다. 남우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는 일은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다행한 일이었다. 힘들게 일을 하고 들어서자마자 남우는 그대로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불면에 시달리던 날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늙으신 아버지는 집에서 아이를 봤다. 가끔 치킨점으로 네 살배기 현몽이를 데리고 왔다. 가까운 아파트 두 곳을 배달하고 나와 먼 곳을 향하는 도로를 탄다. 차들은 이미 모조리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거리는 휑하게 비어 있고 길 위로 비바람이 몰려간다. 강풍에 가로수가 활처럼 휘어진다.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헬멧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가 커진다. 빗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얼굴을 가리던 유리 덮개를 연다. 세상 가득 빗물이 쏟아져 내린다. 얼굴에 와 닿는 빗방울이 송곳처럼 얼굴에 와 박힌다. 초록이 짙은 숲길엔 나무들이 바람에 진저리를 친다. 너도밤나무, 참나무와 온갖 활엽수들이 비바람에 무당처럼 일어나 춤을 춘다. 대지를 쓸어 가는 비바람이 길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남우의 오토바이는 한 치도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급기야 바람에 뒤로 밀려난다. 비바람에 버드나무 가로수가 뽑힐 듯 흔들린다. 남우는 오토바이를 도로 갓길로 옮기려 하지만 오토바이를 움직일 수가 없다. 오토바이 옆으로 급하게 지나가는 차들이 남우에게 물벼락을 날린다. 남우는 겨우 가로수가 있던 산기슭 쪽으로 오토바이를 멈추어 둔 채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찢기어 나간다. 비바람 속에서 공원을 올려다본다. 공원은 원래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다. 남우는 공교롭게도 할머니의 묘가 있던 공동묘지 자리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서 있다. 남우는 또렷이 할머니를 이장하던 이태 전 겨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그 날 남우는 아침 일찍 곡괭이와 보리박스 두 개, 그리고 화선지와 알코올을 준비해 승합차로 아버지와 당숙 어른을 모시고 공동묘지로 왔다. 미명이 밝아오기 전의 새벽이었다. 다행이 땅은 심하게 얼지 않아 곡괭이로 몇 번 파 들어가자 삽 끝이 잘 물려 들어갔다. 십 팔 년만의 일이었다. 도시에서 가까운 공동묘지를 공원으로 바꾼다고 해서 이장을 하라는 통지와 함께 나무말뚝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365번, 이미 파간 묘지에는 네모난 널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어 있는 무덤 사이로 길이 보였다. 새벽 화장터가 있던 곳을 돌아 언덕을 올라갔다. 남우는 번번이 힘겨울 때면 찾아오곤 하던 할머니의 묘였다. 남우는 작은 아그배나무가 자라던 비탈을 확인했다. 남우는 묘를 파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공원묘지를 파갔다는 사진을 제출해야만 시에서 보상을 해 주기 때문이었다.살짝 언 땅 아래로 황토를 파내려 갈 때 남우는 어릴 적 닭을 잡았던 때의 기억이 났다. 생명, 쉽게 죽지 않던 생명이 땅 밑에서 오랜 세월 너머로 다시 빛을 보고 있었다. 죽은 이의 유골을 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몹시 떨렸다. 당숙 어른은 흙을 파내려 가면서 서서히 유골이 가까워오자 주위의 흙을 보면서 주의를 기울이며 땅을 파내려 갔다. 주위의 흙과는 다른 지층이 나오면서 머리카락이 보였고, 유골이 하나 둘씩 땅 밑으로 드러났다. 척추, 넓적다리 뼈, 어깨뼈, 그리고 두개골과 하악골이 보였다. 잔뼈는 흙으로 삭아지고 없었지만 큰 뼈들은 잘 남아 있었다. [네 할머니다.]당숙은 하나하나 뼈의 이름을 불러 주면서 뼈를 남우에게 건네주었다. 남우는 할머니의 유골을 받아 화선지에 이름을 적어 보리박스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유난히 남우를 사랑해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 유골과 함께 떠올랐다. [네가 어렸을 때 일거야. 네 할머니 불알을 떼 간다고 마을 할머니들이 놀려대던 적이 있었지. 넌 할머니 불알을 떼 가면 다 죽여 버린다면서 동네 할머니들을 향해 니갈내갈 욕을 하면서 달려들었지. 그 바람에 할머니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던 일 기억나?]당숙어른은 가끔 남우에게 집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우의 할아버지는 세 번 장가를 갔는데, 장가를 갈 때마다 아내가 죽어 네 번째 아내를 맞이해야 했다. 그 분이 지금 남우의 할머니 용담댁이었다. 무려 스물 세 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새댁은 이전 할머니가 쓰던 택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남우 아버지가 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그 후 할머니는 자식 둘을 배다른 큰딸에게 떼어놓은 채 다른 곳으로 개가를 했고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시집간 누나의 집에 얹혀 살아야 했다. 남우는 할머니의 두개골을 받아든다. 하악골을 들고 있던 남우는 옛날 할머니의 모습을 그 하악골 속에서 확인한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가 없이 살다 가셨다. 치아가 없는 걸 보니 정확히 할머니였다. 사과를 숟가락으로 긁어 드시던 할머니, 우물우물 잇몸으로 사과를 긁어 삼키시던 할머니의 입매가 남우에게 선하게 다가왔다. 남우는 파묘를 한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날 남우와 일행은 승합차에 유골을 싣고 고향으로 향했다. 음식과 함께 어머니는 흰 닭을 보자기에 싸서 차에 실었다. 차에는 단골과 그 일행으로 보이는 노년의 단골이 차에 올랐다. 어려서 떠나온 고향이었다. 섬진강 최 상류 마을이었다. 차안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길 내내 닭소리가 들렸다. 흰 닭의 울음소리였다.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 신암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남서쪽으로 흐르다 북으로 역류해 갔다. 충적 평야지대 위로 덕태산과 선각산 그리고 팔공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이산 두 귀가 물길 너머로 보이는 분지였다. 놀란 듯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의 두 귀가 바라다 보이는 마을이었다. 물줄기를 따라 한 쪽은 어머니의 고향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동창과 남계리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언덕에 오르자 구름뜸과 서당뜸 그리고 윗몰이 환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전 남우의 선조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집성촌이었다. 그 형제간이 서로 다른 마을에 터를 잡고 마을을 이뤄왔다. 덕현과 봉수천을 향해 역류하는 물줄기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할머니가 묻혔다. 선산은 아니었지만 선산이 가까운 곳이었다. 포크레인으로 정지작업을 하고 할머니의 유골을 묻었다. 화선지 하나하나에 쌌던 유골들을 순서대로 다시 짜 맞추었다. 남우는 할머니의 사라진 살처럼 사라진 세월을 보고 있었다. 유골을 보면서 남우는 자꾸만 사람들이 먹고 간 닭 뼈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세월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닭의 살처럼 세월은 사람의 살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뼈는 세월의 기념비였다. 사람들은 다시 흙을 붓고 봉분을 만들었다. 완전히 떼를 입혀 묘를 만드는데 꼬박 한 나절이 걸렸다. 이른 새벽 출발한 길이었다.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이 한쪽 모퉁이에 화톳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콩 대 옆으로 준비한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냈다. 하늘은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린 날씨였다.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눈발이 비쳤다. 집안 어른과 남자들이 유교식으로 제를 올렸다. 제수 위로 눈이 쏟아졌다.[너도 인사 올리거라.]남우는 할머니의 이장한 봉분을 향해 절을 했다. 떼를 심어놓은 황토 위에 엎드려 절을 하는데 황토 위로 굵직한 눈발이 떨어졌다. 의식이 이어질수록 눈발이 더 굵어졌다. 흩날리는 눈 속으로 푸른 산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흰 닭은 계속 봉분 주위를 부리로 콕콕 찍으면서 돌아다녔다.눈이 쌓이는 묘지 위로 닭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남우는 흰 닭에게 다가가 닭의 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른 발가락 위로 나 있는 며느리발톱이 보였다. 갈라진 발가락에서 유난히 멀리 떨어진 채 비어져 나와 있는 며느리발톱이었다.할머니는 살아서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다. 남우는 어릴 적 집 뒤란으로 할머니가 작대기를 들고 어머니를 쫓아가던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어머니가 할머니에겐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개가한 집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다시 염치없게도 자식을 찾아 돌아왔다고 했다. 살아서 할머니는 죽은 자식을 안고 뒷산으로 묻으러 떠나던 일을 떠올리면서 눈물바람을 하곤 했었다. 반면 남우의 외할머니 또한 어린 딸을 시집 보내놓고 무던히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어린것을 시집 보내놓고 가슴앓이를 했던 외할머니였다. 그 바람에 자주 외숙이 담장 밖을 기웃거리다 갔다.그렇게 다시 돌아온 집에서 만난 손자를 남우 할머니는 끔찍이 감싸고돌았다.시어머니 치마폭에 휩싸인 자식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을 남우는 또렷이 기억했다. 남우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낳은 자식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것을 보았다. 집을 나가버리려고 해도 걸리는 게 자식인 것처럼 어머니는 버릇없던 남우를 서늘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유교식의 제사가 끝난 후, 단골이 흰 닭을 봉분 주위에 묶어 놓은 채 이장 굿을 시작했다. 다른 일행 할머니는 산신을 향해 음식을 나누어 한쪽 끝에서는 산신이 도와주기를 빌었다. 봉분 앞에서는 단골 할머니가 무복을 입고 꽹과리와 징을 쳤다. 흰 눈송이가 하늘에서 구름재를 향해 펄펄 흩날렸다. 그 때 남우는 들었다. 어머니 울음소리였다. 어머닌 울면서 새로 만든 할머니의 봉분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대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다. 신장대였다. 푸른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채를 들고 어머니는 봉분 위에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눈이 펄펄 쏟아져 내리는 봉분 위에서 뛰고 있는 어머니를 남우는 바라보았다. 점차 어머니가 더 높이 뛰기 시작했다. 신장대를 하늘 높이 흔들었다. 아버지와 당숙 그리고 단골과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닌 울면서, 눈발 속으로, 넋이 빠진 사람처럼 뛰어올랐다. 흰 닭은 작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끈에 묶인 채 무덤 주위를 돌았다.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화병에 시달렸다. 또렷한 병명도 없이 아팠다. 병원에 가면 신경성이라고 말을 할 뿐 또렷한 병인이 없었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울화병를 치유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은 남우 어머니에게 굿을 권했다. 치방굿이었다. 그 날 남우는 조붓한 방안 문 위의 부적을 기억했다. 붉은 색 닭 부적이었다. 닭이 붉은 색 옷을 입고 두 다리로 일어나 춤을 추며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 동네 사람들이 방안을 들여다봤다. 방안에 징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덩더쿵 울렸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애옥살림이었다. 남우는 그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 날 이후 남우는 가끔 목이 졸리는 꿈을 꾸곤 했다. [이 육시헐... 년이...]남우는 보았다. 할머니의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눈에선 불꽃이 일었다. 그건 불꽃심처럼 차갑고 어두웠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닭띠였다. 남우 어머니는 신장대를 들고 밥상의 쌀 위에 손을 얹고 있던 어머니에게 갑자기 신기가 내려앉았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방안에서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방방 뛰어오르다 급기야는 그 신장대로 시어머니인 용담댁 얼굴을 후려치고 만 것이었다. 할머니가 도시로 이사를 온 후의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있은 후 남우 할머니는 인근의 고모집으로 가 살았는데 죽기 며칠 전 집으로 돌아왔다. 남우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돌아오시던 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주먹만한 돌덩이가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온다고 말하던 날 할머니는 가슴애피로 돌아가셨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이었다.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남우는 할머니의 무덤에 갔다. 도시의 공동묘지였다. 무덤에 가면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동네 김해댁에게 배웠다는 닭 타령이었다. 초록비단 접저고리, 자지옥자 짓을 달아 수 만년 대문밖에 수없이 흩은 곡석낱낱이나 주어먹고 그럭저럭 컸건마는손님 오면 대접하고 병이 나면 소복하고...[할매가 너를 위해 많이 빌어주마.]할머니가 적어놓은 처수심경의 화선지 뭉치 속 글씨는 빼틀빼틀 고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종이가 닳아질 정도로 불경을 외웠다. 한 자 한 자 적어간 그 정성스러움처럼 할머니는 밤새 중얼거리면서 경을 읽곤 했다. 남우는 할머니를 따라 초파일 전야에 암자에 들르기도 했고 할머니 손을 잡고 장에 가면서 천자문을 외우기도 했다. 어린 남우에게 할머니는 세상을 배우는 통로였다. 유난히 무명 흰옷을 즐겨 입던 할머니였다. 합죽이 할머니라고 놀림을 받던 할머니의 내려앉은 치아와 하악골을 남우는 잊지 못했다.뗄 레야 뗄 수 없는 고부간의 갈등은 화해를 이루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하지만 남우 할머니가 죽고 난 후에도 남우 어머니의 화병은 그치지 않았다. 남우는 그런 어머니의 신경병을 지켜봐야 했다. 할머니의 묘를 이장하던 날, 굿을 한 것도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는 어머니의 병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울화병은 어쩌면 할머니의 원혼이 어머니를 괴롭혀 그렇게 된 것이라고 어머니는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발이 굵어졌다. 어머니는 신장대를 들고 아버지, 당숙어른 그리고 동네 사람들 사이로 뛰어다닌 후 이번엔 남우에게 다가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우리 불쌍한 남우야... 나다. 나. 네 할매... 월매나 월매나 사느라 힘이 드냐. 앞으론 잘 될 거다. 잘 될 거야.]꽹과리 소리와 함께 흰 눈이 펄펄 팔공산, 덕태산, 선각산이 바라다 보이는 분지 위로 내렸다. 어머니는 기운이 다 소진되도록 뛰고 또 뛰었다. 남우는 그 순간 보았다. 어머니 안에 살아 있던 할머니를...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혼을 불러 비로소 오랜 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날 단골은 할머니의 원혼이 풀리길 수없이 소원한 후 남우 할머니의 무덤가에 묶어놓았던 하얀 닭을 풀어 하늘로 날려보냈다. 하늘 가득 눈송이 떨어져 내리는 하늘과 새하얀 대지를 향해 흰 닭이 날아올랐다. 닭은 퇴화된 날개를 푸덕이면서 산언덕 아래로 날아갔다. 순간 닭이 날아가면서 내는 울음소리가 어머니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 닭이 사라진 대지 위로도 흰 눈이 끝없이 쌓이고 있었다. 배달을 하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할머니의 묘가 있던 공원을 올려다본다. 아그배나무도, 억새풀 흔들리던 비탈도 사라진 언덕에는 모정 하나가 태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힘겨울 때마다 마음의 숨길을 터 주던 길이다. 할머니의 묘 오르던 길, 남우는 그곳에 자리한 공원을 바라보기만 해도 할머니의 품처럼 너른 따스한 온기를 그 뒷산에서 느낄 수 있다. 할머니는 가고 없고 뼈만 남아 이장을 한 일을 떠올리면서 남우는 오토바이를 타고 태풍 속을 뚫고 지나간다. 자꾸만 빗방울과 함께 흐르는 물이 뜨거워진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안경 속에서 자꾸만 따뜻한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도시는 태풍의 바람으로 정전이 돼 칠흑처럼 캄캄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네거리를 사이로 사 분의 삼이 불이 꺼져 있는데 유독 남우의 건물이 있는 동네에만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여동생은 비닐 포장에 배달 갈 아파트 호수를 적어놓은 봉지를 가져와 남우에게 건네준다. 남우는 건물 앞에서 통닭 봉지를 받아들고 다시 아파트 숲으로 달려간다. 불 꺼진 아파트 계단을 통해 남우가 올라간다. 전기가 나간 후에도 벨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닭을 먹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걸까. 어둠과 함께 천둥과 벼락이 떨어지는 도시 속에서 두려움을 달래줄 무언가를 사람들은 찾고 있다. 호랑이가 포효를 하면서 하늘을 걸어가는지 흰 빛줄기가 쩍쩍 어둠을 갈라놓는다. 잠시 후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온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남우의 다리가 휘청거린다. 발에서 비직비직 물이 흘러나온다. 몸에서 열이 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불 꺼진 캄캄한 아파트 사이로 오토바이 소리가 울려온다. 조금 지나자 경찰이 남우의 오토바이를 제지시킨다. 곳곳에 가로수가 뽑혀 있고 간판이 떨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물이 들어온 가게에서는 밤늦도록 물을 퍼내는 바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이 폭우와 태풍 속에서 지하 단칸방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지금 물 속에 잠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통닭을 찾는 사람들의 전화벨 소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월드컵 때보다 더 하다. 남우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어두워지는 칠흑 같은 밤이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더 악을 쓰면서 통닭에 집착을 하는 거라고. 남우는 아내를 떠올린다. 삼 년 전 아이를 낳다 아내가 죽었다. 그때까지도 남우는 몰랐다. 아내의 몸 속에 그처럼 큰 혹이 자라고 있었던지. 난산이었다. 아내의 불룩한 배, 아이가 나오지 않은 채 비지땀을 흘리면서 절규하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아내는 남우를 보면서 여보, 살려줘, 날 살려줘, 애원했다. 남우는 아파트 부근 공터를 돌아오다 물구덩이 속에 있는 돌을 보지 못해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남우는 중심을 잃고 공터로 떨어진다. 순간 오토바이는 물 속에 처박히고 남우는 땅바닥으로 나뒹군다. 떨어질 때 무언가에 눌렸는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손바닥에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흐른다. 바지 사이로 무릎이 드러나 있다. 남우는 일어날 수 없어 풀밭을 기어간다. 오토바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만 멀쩡하다. 오토바이는 시동이 꺼지지 않은 채 쓰러져 엔진소리를 낸다.순간 비바람과 함께 번개가 떨어진다. 남우는 번쩍이는 빛 속에서 죽은 아내를 떠올린다. 왠지 알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속에서 솟구쳐 오른다.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그리워하는 나무꾼처럼 남우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남우는 자신이 외치는 소리가 아파트의 벽을 맞고 메아리쳐 울려오는 걸 듣는다. 그 소리는 나무꾼 수탉의 울음소리 같다. 날개옷을 찾아 입은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수탉이 되어버린 나무꾼처럼 자신도 하늘을 향해 울고 있다. 그 날 눈이 내리던 고향의 언덕에서 듣던 어머니의 울음소리처럼 남우 자신도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남우는 이태 전 겨울의 굿을 생각한다. 그 날 굿에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부르던 닭타령처럼 비단 저고리 입던 닭들은 하나같이 다 자신의 몸을 바쳐, 죽어가고 있다. 남우는 흰 무명옷을 즐겨 입던 할머니가 남긴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닭은 사람이 죽을 한 목숨 대신해 죽는 거란다.] 오토바이를 일으키려다 남우는 풀밭을 본다. 닭의장풀꽃이다. 짙은 하늘색 꽃잎 사이로 노란 수술을 드러내놓고 있는 달개비라 불리는 닭의장풀꽃이다. 남우는 할머니가 키우던 닭장 앞에 피어나던 달개비꽃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들이 오면 잡아 주려고 했던 닭, 그 마당에 피어나던 달개비꽃이다. 남우는 도시의 아파트들 바깥에 피어 있는 닭의장풀꽃을 오래도록 바라본다.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숨쉴 곳 없고 마당도 공원도 사라진 도시 아파트의 숲 속에 피어난꽃이다. 개여뀌, 쇠비름, 명아주, 그리고 닭의장풀이라 불리는 달개비까지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들을 그리워하며 피어난다. 남우는 도시의 공터나 인가에서 자라나는 가장 흔한 풀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슬픈 도라지꽃 빛깔을 가진 달개비꽃을 보면서남우는 닭장 앞에 피어난다는 닭의장풀꽃을 생각한다. 그런 닭의장풀꽃이 피어나는 도심의 공터를 본다. 남우는 거대한 닭장으로 변해 가는 도시의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사람들은 꼭꼭 문을 걸어 잠그고 흰 닭처럼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다. 그들 앞으로 진한 하늘색 꽃잎이 비바람에 흔들린다. 꽃 잎 안엔 너무도 선명하게 두 팔을 뻗고 있는 노란 수술 두 개가 보인다. 도시 속 달개비꽃은 처연함 속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털이 뽑힌 채 온 몸이 조각조각 찢겨져 나가던 닭의 모습을 남우는 눈에 선하게 떠올린다. 갑자기 아파트 숲 곳곳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찢겨진 바지차림으로 일어나 아파트 앞 공터에 피어난 닭의장풀꽃 한 송이를 꺾어 입에 물고 남우는오토바이를 서서히 일으켜 세운다. 오토바이는 브레이크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탄력을 잃었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오토바이를 타고 남우는 정전이 된 아파트 모퉁이를 힘껏 달려간다. 비가 억수같이 남우를 향해 달려든다. 어두운 아파트 안에서자꾸만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우는 태풍을 뚫고 나라통닭을 향해 달려간다. 눈송이가 펄펄 쏟아지던 날, 고향 하늘로 날아오르던 흰 닭처럼 남우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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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1.01 23:02

[20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 소감

아침에 석치산 고개를 넘어 운동을 가는데 뿌연 안개 뿌려진 팽나무 위로 까치 한 마리가 물결처럼 하늘을 날아갔죠. 멀리 아파트 위로 황금색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를 버리고 석치산 아래 주택으로 이사를 온 이후 아이들은 훨씬 생기 있게 변했습니다. 역전의 명수 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는 공의 기운을 받고 삽니다. 삼 백 년 된 팽나무의 동네는 도시에 갇혔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철근 일을 하느라 새벽같이 공사장으로 향하시던 아버지, 매일 천 개 이 천 개의 장갑을 박아 다섯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의 그 고단한 노동처럼 더 혹독하게 글을 써야 했습니다. 자식을 키워보고야 바닷바람을 막고 서 있는 산처럼 세찬 파고와 한풍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자식을 키워낸 인고의 세월을 알았습니다. 늦게 출발한 문학의 길, 더 냉혹하게 맞서지 못해 배 돌았던 날들을 떠올리며 일터로 향합니다. 길을 찾지 못해 절망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먼저 기적을 울려 달라던 우진 후배의 말처럼 온몸에 힘줄이 돋도록 달려가야겠습니다.시멘트 독이 떠날 날 없이 굳은 손바닥의 아버지가 떨린 손으로 작은 수첩에 적어간 인부들의 이름 마냥, 사는 날들의 가슴앓이를 끝없이 작품으로 적어가야겠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젊을 적 미싱 일로 얻은 허리통증을 지우지 못하고 아버지의 노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못난 자식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한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를 빕니다. 부족한 작품에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가난의 짐을 함께 지고 살아준 아내와 예찬 제찬 두 아들, 그리고 소설을 알게 해준 소설문학동인 탁류식구들과 군산사랑 사람들, 영화 동아리 모임인 시네필 가족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최영두(소설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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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1.01 23:02

도법스님의 새 출가, 탁발순례

도법스님이 오는 3월 실상사 산문을 나선다. 종교와 종교의 벽을 허물고 마을과 마을을 찾아다니는 '탁발순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조화와 공생의 문화를 가꾸어내는 생명과 평화를 전파하는 운동이다. -무엇을 위한 탁발순례입니까.인드라망의 세계관과 철학이 우리 삶의 철학으로 자리잡게 하고, 그 철학에 근거해서 우리 삶의 문화가 이루어지도록 해보자는 뜻입니다. 탁발은 의미 자체가 출가 수행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예요. 탁발은 불교만의 개념이 아닙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진리구현을 위해 세속적 삶을 내려놓고 진리구현의 길을 찾아가는, 또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지요.-탁발의 의미는.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밥을 빌어 육신을 지탱해가고, 진리의 스승에게 진리를 빌어서 자기 완성과 삶의 완성을 실현해가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욕망과 집착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누구에겐가 나누어주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비우고 정화시키는 행위 그 자체지요. 누구에겐가 나누어주는 만큼 그 사람은 여유로워지고 그 삶의 내용은 성숙됩니다. -탁발은 일상에서도 필요한 의미가 아닐까요.물론입니다. 인드라망의 세계관과 철학, 모두가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이런 삶의 진실을 이해하게 하고 눈뜨게 하는 그런 만남이니까요. 누구에겐가 나누어주는 삶으로 인해 빼앗아가는 삶이 아니라 자기 것을 내놓고 자기것을 비우고 자기것을 나누어주는, 비로소 주체로서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일이 탁발이랄 수 있어요. 나누어줌은 넉넉한 것, 나누어주는 행위를 통해 넉넉한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탁발 행위는 올바른 삶의 과정이죠.도법스님의 탁발순례에는 환경운동의 중심에 서있는 수경스님이 동행한다. 언제 끝이 날지 예정이 없는 이 순례로 생명에 눈뜨는 이들은 더욱 많아지고, 그 향기는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되지 않겠는가./김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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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1.01 23:02

[신년대담] 도법스님의 새해 메시지

절집을 찾아가는 날.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였다. 눈은 오지 않았다. 실상사는 산을 오르지 않고도 산문에 이를 수 있는 평평한 길에 닿아있다. 추위로부터 한참이나 비켜나있는 실상사의 겨울은 뜻밖에도 가을빛이다. 간혹 내비치는 햇빛과 매서운 바람이 얼핏 스치듯 만나는 풍경은 끊임없이 생명과 평화와 공존의 삶을 모색하는 실상사의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지점을 닮았다. 점심 공양이 막 시작됐다. 바리 안 비빔밥 한 그릇에 국 한사발. 그러나 남루하지 않다. '공양 마치고 뒷편으로 오시오' 스님이 먼저 나가셨다. 한해의 끄트머리, 새해 아침 독자들을 위해 남원 실상사 도법스님(54)을 만났다. 2001년 2월 시작한 천일기도를 지난 11월 12일 끝낸 스님은 새로운 형태의 평화운동체인 '지리산생명결사'를 다시 만들어 '생명과 평화를 가꾸고 얻는 일'을 시작했다.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스님은 단호했다. 자기성찰 있어야 인간다운 삶 회복1000일. 스님이 산문을 넘어서지 않고 하루 네차례, 다섯시간 이상 생명과 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에 매달리는 중에도 전쟁은 났고, 생명은 파괴되고 갈등과 반목은 깊어졌다. "스님이 기도에 들어가시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요.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기도는 무엇을 추구하던지 일차적으로는 자기 성찰 입니다. 성찰은 우리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밥 먹고 물 마시는 것 같이 해야지요. 우리 삶의 어떤 것도 성찰을 통해서만 진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진짜를 통해 진실에 눈뜨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면 기도의 의미는 그 과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기도를 통해 힘과 승리의 논리가 얼마나 못쓸 논리인지를 다시 확인했죠. 우리는 부자와 힘의 논리가 우리를 행복해지게 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병들게 하고, 결국 생명을 황폐화 시켜 위기상황으로 몰고 갑니다.“성찰의 시간을 박탈당한 시대. 범부들도 일상에서 꾸준히 성찰하면 진실이 보일까. 스님은 “성찰 하면 '너'가 보이고 공존과 협력과 삶의 태도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만금,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해법이다 스님의 화두는 줄곧 '생명'이다. 그러니 새만금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해법은 따로 있지 않아요. 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바로 해법이죠. 새만금의 생태 환경 문제는 범지구적인 것이고, 나아가서는 21세기라는 세기적 문제입니다. 그러니 새만금을 전북이라는 지역적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전북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소외감과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경제적으로 외면 받았다는 패배의식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만금과 전북의 입장을 운명적인 것으로 묶어두고 새만금에 전북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처럼 몰고 가는 태도와 관점은 온당치 않다는 입장이다."새만금은 전라북도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고, 국가 범지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관점을 바로 세운다면 새만금 문제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전북, 농업회생으로 길 찾아야 생명과 존재의 실상을 일깨우는 일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면 지역의 문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농업을 회생시켜야 합니다. 전라북도는 농도입니다. 모든 생명의 뿌리가 인간 생명의 근거지가 농업이고 농촌이지요. 생명의 안정성과 건강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치료될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생명의 안정성과 건강성이 뿌리내릴 수 있는 지점이 바로 농촌이고, 전북은 농업의 중요한 거점입니다. 단언컨대 농업을 살려야만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전북이 미래를 농업에서 찾고 그 주체로 서는 일은 매우 절박하고 중요합니다.”우주는 하나, 인드라망 공동체의 실현스님은 벌써 여러해 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활동을 주도해오고 있다. 인드라망 공동체 실현은 스님이 벌이는 생명평화운동이 닿을 궁극적인 지점이다. 인드라망은 불교 경전 속 교리지만 그 세계관은 범 우주적인 것. 어떤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가치이고 실현이다. "자연학교나 귀농학교 모두 생명과 평화 운동 그 모두가 인드라망공동체 정신의 실현이랄 수 있습니다. 힘의 논리, 싸움과 공격의 논리는 인드라망의 세계관에 어긋나는 길이지요. 혼란과 모순과 갈등을 재생산해내는 힘의 논리를 이기려면 그 잘못에 눈뜨고 우주적 세계관인 인드라망의 정신으로 우리 삶과 사회의 흐름을 맞추어 가야 해요. " 스님은 힘과 공격의 논리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의미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힘의 논리는 얼마나 견고한가.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은 없어요. 그러나 가는 길이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고, 그래서 꼭 가야할 길이라면 다시 일어 설 수 밖에 없지요. 좌절과 상처를 치유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새로운 힘이 됩니다.”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고 말하는 도법스님은 부안 방폐장 문제도 단순 논리를 넘어 다각적인 관점으로 보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과정은 치열했지만 부안 사태는 매우 중요한 성과를 남겼지요. 한국사회의 에너지 정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각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 지역 사회 공동의 이상과 가치를 지키고 가꾸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종교인들이 벽을 허물고 만나 힘을 모았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이입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갈등과 대립을 털어내는 포용력과 화해의 성숙한 의식과 태도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합니다.”스님은 1월로 실상사 주지 8년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수행에 나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실상에 눈떠 조화와 공생의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게 하는 나눔의 운동, ‘탁발순례’다. ‘나부터 시작하겠다.’ 도법 스님이 전하는 새해 화두, 그 길이 보인다. ● 도법스님은 제주 태생으로 김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열 여덟살에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1992년 실상사에 들어온 이후 젊은 스님들의 수행단체인 선우도량을 세워 개력불교의 선두에 섰으며 95년부터 실상사 주지를 맡아 귀농전문학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창립, 대안교육과 환경연대 운동 등을 펼쳐왔다. 지난 조계종 사태때에는 총무원장 권한 대행을 맡아 종단 분열 위기를 극복해 불교운동의 지도자로 평가 받기도 했지만 다시 실상사로 돌아와 귀농학교 운영과 선 수행에 전념해왔다. 2001년 2월부터 산문 밖 출입을 금하고 민족화해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천일기도를 시작, 지난 11월 천일기도를 마히는 회향식과 함께 '지리산생명평화결사'를 발족해 새로운 형태의 생명 평화운동에 나섰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는 논리 정연한 화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감화시킨다. 귀농운동과 생활협동조합운동 지역공동체운동 환경운동 등을 펼쳐오면서 제5회 교보환경문화상 대상을 받았으며 올해도 인성대상을 수상했다. 스님은 '글쓰는 일은 딱 질색'이라지만 '내가 본 부처' '화엄의 길, 생명의 길' '청안 청락 하십니까' 등의 저서를 통해서도 세상을 바로보게 하는 깨우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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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04.01.01 23:02

[20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지난 여름 나는 전주 근교의 조그마한 암자에 머물렀다. 암자에 며칠 머물면서 잠깐 세상일을 접어두고 나는 꼭 하나의 물음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당연하게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닫아걸었던 방문을 열어제치면 뱃심 좋은 매미들이 쓰라리다고 울어댔다. 매미는 무엇이 그렇게 쓰라렸던 것일까?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여름 한철을 살다갈 뿐인 매미에게 있어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무엇이길래 전 생애를 통해 저렇듯 쓰라리게 울어대는지 나로서는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산다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에게는 전혀 무감각한 것들이 때로는 매미에게 혹은 바람에게는 가장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매미나 바람은 그것들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만 나 혼자만 여전히 무지의 덫에 빠져있는지도. 그래서 시를 썼다. 처마 끝에 매달려 가거나 혹은 다가오는 무심한 세월을 타는 풍경(風磬)소리를 들으며 오래오래 시를 썼다.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처럼 의연해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꿈은 헛꿈이라도 온전히 내것이 아니던가! 가당치도 않게 나는 그 며칠 사이에 내 모든 생애를 살아버린 것처럼 가벼워졌다. 비록 여름 한낮에 꾼 헛꿈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좋은 꿈 하나를 얻은 것이었다.내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많다. 꿈이란 어떻게 꾸는 것인지, 또 왜 꾸어야 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격려해주신 이병천 김승종 이희중선생님께 감사드린다.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마음사랑병원 가족들과도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한없이 착한 부모님과 정민이에게도 꿈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미혹한 꿈 이야기를 솔찮이 재미있게 들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는 앞으로 시를 그리고 여문 꿈을 꾸는 것으로 두고두고 보답할 것을 약속드린다. 꿈자리를 넉넉하게 마련해주신 전북일보사에 아심찮이 감사 드린다./문신△1973년 전남 여수 출생 △1999년 전주대 국문학과 졸업 △현재 전라북도 마음사랑병원 근무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4.01.01 23:02

31일 전주 풍남문서 맞는 2003제야축제

‘가는 해를 의미 있게, 오는 해를 희망차게’ 제야의 종소리가 세상을 아늑하게 감싸는 31일. 지난 일을 떠올리며 내일의 소망을 품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특별한 이벤트를 고민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은 두터운 옷으로 무장하고 전주 풍남문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2004년 새해 첫날을 맞는 ‘2003 제야축제’가 쓸쓸한 행인들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전주시가 주최하고 ㈔전주풍남제전위원회(이사장 김수곤)에서 주관하는 이 축제는 31일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0시 45분까지 2시간 15분 동안 다사다난했던 계미년을 보내고 더 나은 갑신년 새해를 소망하는 시민들의 대동한마당. 송구영신을 주제로 ‘수야’(守夜) ‘송구’(送舊) ‘영신’(迎新) 3부로 구성, 전통 민속적인 색채가 짙은 무대를 연출한다. 1부는 온고을민속악회와 강령탈춤패의 풍물굿이 축제의 흥을 북돋으며, 2부 ‘보내는 아쉬움’은 강령탈춤전승회가 정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형상화한 터씻김 퍼포먼스 ‘나례’를 풀어내고, 희망의 깃발과 염원의 횃불을 손에 든 해오름무용단의 창작무용 ‘여명’이 한해의 아쉬움을 서정적 감성으로 승화시킨다. 도내 인사들과 시민들이 나누는 송년메시지도 제야축제의 한 단편. 새해 첫 날을 기다리는 금파무용단의 북춤 ‘영고’를 끝으로 갑신년의 카운트다운 외침이 2004년 새해 첫 장을 울린다. 서른 세 번의 타종과 함께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고, 거리는 들뜬 시민들의 여흥으로 물들 예정. 3부는 ‘천지에 울리는 희망’을 주제로 새 날에 대한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품어내는 시간이 이어진다. 또 전주예총 회장 진동규 시인이 쓴 축시낭송과 함께 전주시립국악단의 민요중창으로 듣는 희망의 노래가 신년의 환희를 대동의 굿판으로 열기를 달궈낸다. 이 날 완산구청 직원들과 전통찻집 설예원은 시민들에게 다과를 베풀며 정겨운 한 해의 뒤풀이 풍경을 보여준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위원장 민병록)도 지난해와 같이 제야의 현장에서 행운을 가득 담은 풍선을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풍선에는 ‘J’자 심볼과 로고, 내년 영화제 기간(4.23∼5.2)이 표시돼 영화제 홍보는 물론 시민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문의 063)281-2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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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우
  • 2003.12.31 23:02

문화현장에서 들어본 2003년 "그 어느해 보다 힘차고…"

지방분권의 화두가 뜨거웠던 2003년. 전북의 문화계는 그 어느 해보다 힘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창극 ‘심청’으로 도립국악원의 건장함을 내보인 연출가 김정수씨, 연극 ‘상봉’으로 제21회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전북이 연극의 아성임을 알린 연출가 류경호씨, 전국무용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전북 현대무용의 새 장을 펼친 전북대 김원 교수, 칸타타 ‘24절기의 노래’를 비롯해 작곡가로 명성을 높인 작곡가 김삼곤씨, 첫 시집을 펴낸 송희 시인, 일곱 번째 전시회를 열었던 서양화가 차유림씨, 전주공예품전시관 민간위탁자로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낸 백옥선 관장, 문화원의 개혁에 당당히 합류해 무주문화원 사무국장으로 활동중인 김병직씨, 전북민예총 태동과 함께 사무처장을 맡은 김선태씨. 올 한해동안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문화현장의 한 중심에 이들이 있었다. 변화의 현장을 온 몸으로 담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올해의 성과와 아쉬움을 들어봤다. “주민들의 문화욕구에 부응하는 문화원 사업 위해 노력” 지난 유월 하순, 무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무주문화원 김병직 사무국장(37). 무주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주소지와 일터를 옮긴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연과 더불어 대안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삶을 가꾸고 싶었던 오랜 소망의 현실적 토대를 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문화원 생활 6개월. 새 환경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 손발을 맞추는 사이 공문서 작성, 회계처리, 무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배우는 일로 반년은 금세 지나갔다. 지방문화원은 해당지역 향토사와 문화예술의 구심체. “인구가 적고 문화시설이나 문화프로그램이 부족한 군 단위 지방문화원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중요합니다.”갈수록 커지는 주민들의 문화욕구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역할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김국장은 올해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했단다.그의 새해 꿈은 향기로운 문화공동체 만들기. 인구 3만 남짓의 무주가 달라질 판이다. /무주문화원 김병직 사무국장“한국의4계 ‘24절기의 노래’로 함께 한 한 해”합창곡·가곡·협주곡·국악곡 등 꾸준히 창작음악을 태동시키고 있는 작곡가 김삼곤씨(45·서해대학 겸임교수). 그는 올해도 여전히 창작활동에 가속을 달았지만 2003년은 칸타타 ‘한국의4계, 24절기의 노래’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대 이 지역에서 즐겁게 향유하는 음악들을 접목시켜 새 형태의 음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꼬박 1년여의 작업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사계절을 다룬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2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음악 구성도 우리 음악언어를 사용해 한국적인 정서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11월과 12월 전주와 익산에서 각각 연주회를 열었던 ‘24절기의 노래’는 5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80여명의 합창단 그리고 판소리·대중가수·소리꾼·테너·바리톤으로 이뤄진 5명의 솔리스트 등 대규모 연주자들이 함께 한 무대로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좋아했던 작품이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적 여건이 아쉽지요” /김삼곤(작곡가·서해대학 겸임교수)“민족예술을 통한 통일일꾼으로 한 걸음”“마음도 몸도 바쁜 한해였습니다. 놀이패 우리마당의 진로가 불투명했던데다 입주한 건물이 경매 처분된다는 6월 통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다행히 우리마당 단원들이 의지를 다지면서 안정을 찾았고, 하반기에는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민예총전북지회 창립으로 커다란 짐을 안게되었습니다.”전북민예총 초대 사무처장을 맡아 동분서주했던 김선태씨(36·놀이패‘우리마당’대표). 그의 한해는 고통과 희망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고통은 잠시, 우리마당은 회원들과 단원들이 마음을 모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기쁨을 안았다.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기쁨은 전북민예총의 창립. 지역문화계의 오랜 바람이었던 만큼 민예총에 대한 큰 기대로 그의 어깨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소중한 만큼 천천히 다져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인 추진력이 우선될때도 있습니다.”창립 1백일 기념 장승굿을 펼친 그는 민족예술을 위한 통일일꾼으로, 지역문화예술의 창작 펼침이로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참이다. /전북민예총 김선태 사무국장“실험적인 창작작업에 주력하고 싶다”“성숙한 창작작업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한 한 해”였다는 전북대 무용학과 김원 교수(40).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안무를 보여온 그는 “독일·일본·프랑스 공연에서 창작작업의 결실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교수는 하모닉 스튜디오와 라반로테이션의 이론 연구를 위해 프랑스에서 3년을 보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춤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가지게 됐다는 김교수는 “학생들에게 춤에 관한 넓은 시야와 풍요로운 작업 스타일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김교수의 제자들로 구성된 C.D.P(Coll.Dance Project) 현대무용단은 올해 전북 무용협회 신인안무가전에서 연기상을, 춤과 사람들 주최 젊은 작가전에서 우수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김교수는 “힘든 작업이지만 그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즐길 줄 아는 제자들이 기특하다”며 “예술감독으로서 어느해보다 흡족하며 뜻깊은 한해였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실험적인 작업에 주력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영상과 무용의 만남을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 제자들의 무용단이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발전하길 고대한다./전북대 무용학과 김원 교수“도립국악원 단원들의 역량과 의지가 희망이었다”2003년 한해. 전북도립국악원 김정수기획실장(43)은 “온통 게으름으로 살아, 후회 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만큼 바쁘게 살았던 예술인도 드물다. 그는 올해 소리축제 공연작인 오페라 ‘춘향’과 ‘진채선’의 작가로, 도립국악단의 창극 ‘심청’의 연출가로 관객들을 만났다. “작품은 적지 않았으나 실상 올해 쓰여진 작품들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온전한 작품 한편 쓰지 못한 셈이 되었어요.” 도립국악원 예술단의 일원으로 금요상설공연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공연활동을 가능하게 하는데 일조한 일이 보람으로 남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큰 것은 그 때문이란다. 창극 ‘심청’연출은 그에게 가장 큰 보람. 무엇보다 도립국악원 예술단원들이 모처럼 역량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어서 기쁨 또한 크단다. 그가 올해 쌓은 또하나의 굵직한 경력은 전국체전 문화행사 추진기획단장으로 활동한 것. 그 스스로는 지역의 문화적 토양과 자부심을 가질만한 예술적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했다./김정수(도립국악원 상임연출·극작가)"작가-배우들과의 만남 좋은 인연"“야무지게 한 해를 꾸려야겠다고 계획했던 것도 아닌데,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많았다”고 말문을 연 극단 창작극회 류경호 대표(41)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한 해를 평했다. 연극이란 게 매양 시간에 메여 서댄다고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그에게 연극 ‘상봉’은 특별했다.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과 배우 기근이 더 심했던 것이 올해 초 전북연극이나 극단 창작극회의 현실. 류대표는 워낙 고통스럽게 진행했던 무대여서 더 뜻깊은 무대가 됐다고 한다. “공연이 잘되려면 해결답안도 쉽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작가나 배우들과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좋은 인연이 됐고, 또하나의 근사한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덕택에 전국을 순회 공연하느라 동분서주 누비며 행복한 추억도 만들었습니다”그는 올해 대형 작품으로 국악·연극·뮤지컬 장르의 접목을 시도한 극단 명태의 ‘이화우 흩날릴 제’가 민간극단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 준 것 같다고 꼽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해 아쉬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극단 창작극회 류경호 대표"온라인 공예품전시관 아쉬워"전주한옥마을 문화시설의 민간위탁 2년째. 전주공예품전시관·전주명품관은 올 한해 관람객이 13만명을 넘었고, 매출도 지난해에 비해 15% 신장했다. 어수선한 정세를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백옥선 관장(38)은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힘겨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시설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돌이켜 본 한 해라고 할까요. 공예가의 창조적 활동이나 관람객의 정서 회생이 신명나게 펼쳐져야 한다는 데 따른 고민도 컸고, 자부담이 증가해서 재정적인 중압감도 컸습니다” 물론 보람된 성과도 적지 않다. “관람객들은 서울 인사동보다 상품의 질과 다양성 면에서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업체 위주 거래보다 작가를 앞세워 공예품 개발에 전력을 쏟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공예품전시관의 두드러진 성과는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 홈페이지와 쇼핑몰이 웹사이트 전문평가사이트에서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백관장은 “컨텐츠를 좀더 개발한다면 온라인 매출시장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이를 추진하고 있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자체 브랜드상품 개발을 통한 매출증진 역시 서운한 점이 있다며 새해를 기약했다. /전주 한옥마을 백옥선 관장"첫시집' 글쓰는데 힘이 될 큰 소득"어느 해나 단 하나의 고유한 해이지만 송희 시인(46)의 올해는 각별했다. 십여 년의 습작기를 묶은 첫 시집 ‘탱자나무 가시로 묻다’(시와 시학사 펴냄)를 낸 때문이다. “수북한 책들 중 낱알에 불과하지만 어찌 보면 저에게는 유년부터 지금까지를 산, 한 덩어리 실체의 사진첩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지요”운전을 시작하면서야 길을 잘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게 되듯이 시집을 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정말 좋은 글만 쓰면 기다리는 곳도 두드릴 문도 많다는 확신이 세워졌단다. 앞으로 글 쓰는데 힘이 될 큰 습득이다. “각자의 우주적인 자아를 스스로 작게 줄이지만 않는다면 우린 얼마나 무한한 성장을 할 수 있는지 꼭 말해주고 싶어요. 문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 어우러져 올 한 해 참으로 잘 살았음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올해는 유달리 첫 시집을 낸 문인들이 많았지만 시인은 ‘첫’ 번째가 담고 있는 풋풋함과 설레임이 가득 담긴 그 시인들의 고뇌에 찬 시집들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시인 송희씨“외롭더라도 나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싶다”가을의 한 복판에서 서양화가 차유림씨(37)는 ‘표현적 침묵’을 주제로 일곱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 이면에 자리잡은 추함과 더러움, 비정상적인 것들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당차게 제시했던 그의 작품들은 고정관념의 덩어리 ‘아름다움’의 실체에 대한 경쾌한 대응이었다. 그는 “생태계의 미래와 인간 존재에 위기감이 느껴지는 요즘 시대에서 여성의 경험과 시선으로 곪고 아픈 오늘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외된 것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것들의 이면, 황폐화된 모습들을 끄집어내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정상과 비정상은 결국은 모두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전시를 마치면 나를 비워낸 듯한 아쉬움과 허탈함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차씨는 “올해 계획했었던 환경문제에 관한 설치작업을 실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새해에도 조금은 외롭더라도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충실히 구축하고 싶다고 덧붙였다./서양화가 차유림씨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3.12.31 23:02

가슴 따뜻한 시어들…'설천-설인의 발소리 들릴듯'

풍물시동인회(회장 정군수·전북사대부고 교사)가 열 두 번째 작품집 ‘설천-설인의 발소리 들릴 듯’을 펴냈다. 전북문인협회·전북작가회의·전주문인협회·카톨릭문우회 등 여러 문학단체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대표 시인들이 대거 참가한 동인회인 만큼 수록된 시편들이 주는 감동은 이 계절을 감쌀 만큼 따뜻하다. 간혹 다른 문예지에서 본 적이 있는 작품들이 발견돼 아쉬움도 있지만 은근히 운치를 주는 소재호 시인의 ‘방배동 기러기’나 현직 유치원 교사인 김미림 시인의 연작‘해바라기’, 지리산을 오르며 느낀 감흥을 담은 박석구 시인의 ‘지리산을 오르며’ 등 넉넉하게 세상을 감싸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특히 ‘뎅겅//모가지 잘린 단추가 두리번거린다/효수당한 흔적은 멍처럼 번지는데’로 시작하는 문금옥 시인의 ‘단추’와 ‘빈속에 소주만 부어도/친구는 다시 살아나 팔팔하다’로 시작되는 장교철 시인의 ‘봄꿈’에 담긴 단상은 곱씹어봐도 새롭다. 화가 김치현씨의 표지화로 깔끔하게 단장된 이번 호는 김미림·김영·김혜선·문금옥·박석구·박은주·박철영·소재호·신해식·심옥남·안평옥·우미자·유대준·이동희·임춘자·장교철·장욱·정군수·정희수·조기호·조미애·조정희·진동규·최만산·최영 등 25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12.30 23:02

전주 문화산업육성 계획만 번지르르

전주시가 21세기 문화·영상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문화산업육성 계획을 밝혔지만 9백억원대에 달하는 구체적 재원대책이 미흡,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다.시는 지난 26일 문화산업을 차세대 지역특화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주 문화산업단지 조성 및 개발을 위한 기본 계획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개최했다.시는 이날 문화산업단지 기본 개념으로 '디지털 영상'과 '전통문화'의 산업화로 집약하고 내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총 8백90억원을 투입, 여의동 하나로마트 옆에 문화산업단지 조성계획을 밝혔다.디지털영상산업 분야로는 오픈세트와 촬영스튜디오 구축, 국제영화제 마스터즈 프로그램 운영, 디지털영상 아카이브센터 및 상영관 운영, 영상관련 인력육성, 영상펀드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전통문화산업 분야로는 서예 산업화단지와 천년한지 세계화센터 설립, 문화콘텐츠 디지털데이터베이스 구축, 국제 CCT(culture, contents, technology)엑스포 개최, 전통 장인학교와 문화교육원 건립 등을 추진한다.하지만 재원대책을 보면 국비 2백40억원 이외에 나머지 사업비 6백50억원을 도비 및 시비 부담과 민자유치를 통해 충당하기로 함에 따라 재원마련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더욱이 투자효율성과 사업성이 의문시 되는 문화사업분야에 대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민자유치가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 문화일반
  • 권순택
  • 2003.12.29 23:02

내년 1월1일 전북대 근처 '젠가' 이웃돕기 일일호프

“소사모와 함께 사랑을 나누세요”새해 첫날 소사모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사랑의 소리가 요란하다. 1회부터 지난 3회 축제까지 전주세계소리축제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던 ‘소리축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소사모가 새해 1월 1일 전북대 근처 genga(젠가)에서 불우이웃돕기 일일호프를 연다. 축제는 끝이 났지만, 소리축제에 뜨거운 열정을 쏟아냈던 소사모 회원들은 그동안 한달에 한번씩 꾸준히 정기모임을 가져왔다. 소리축제에 관한 행사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나올 정도로 회원들 모두 소리축제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지난 1월 창립된 소사모는 인터넷 카페 가입 회원만 해도 3백여명에 이른다. 소리축제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었던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소리축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사모 회원이 될 수 있다.회원들 대부분이 대학교 3·4학년이거나 직장인이라서 바쁘지만 지난 3회 소리축제 자봉매니져 김동연씨의 제안으로 불우이웃돕기 일일호프에 뜻을 같이 했다. 수익금 전액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할 예정. 김씨는 “새해 첫날이라 사람들이 많이 올지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은 찾아오는 손님들로 혹시나 장소가 좁을까봐 걱정이란다. 오후 1시부터 문을 여는 일일호프는 소리축제 추억과 함께하는 ‘소리가 있는 티타임’으로 출발한다. 소리축제를 담은 영상과 함께 이네사 갈란테·오케스트라 아시아·소리길 실크로드 등 소리축제에서 만났던 음악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운다. 한국음악·서양음악·퓨전음악 등에 관한 것들을 한 데 모아 정리한 자료는 일일호프를 찾는 손님들에게 주는 소사모의 보너스 선물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3.12.29 23:02

소박한 이미지 한지의 '화려한 변신'

단아하고 소박한 이미지를 쌓아온 한지가 화려한 변신으로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다음해 3월 7일까지 팬아시아종이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한지의상전 ‘신비의 한지, 일상에서의 만남’. 팬아시아종이박물관 개관 6주년 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한지의 새로운 활용을 모색, 멈춰버린 한지산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합성섬유로 만든 기성복을 입어온 현대인들에게 몇 겹의 한지를 누벼 만든 한지의상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한지의상에는 한지의 뛰어난 보온성과 습도조절능력, 강도 등을 활용해 갑옷·비옷 등을 만들어 입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다.이번 전시는 그동안 한지연구에 몰두해온 원광보건대 조진애·오선숙 교수와 임영주·전양배· 김대희씨가 참여했다. 전통 한옥의 이미지와 문양을 재구성한 ‘한옥 이미지’, 핸드니팅 기법 사용한 ‘봄에 피어나는 꽃’, 먹으로 염색해 회색빛 도시를 나타낸 ‘블루존’등 현대적 세련미를 살린 파티복과 한지 본연의 멋을 한껏 살린 웨딩드레스가 전시되고 있다.이번 전시를 준비한 팬아시아 페이퍼 유상옥 과장은 “종이를 다루는 기업의 이미지와 한지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지역 분위기에 맞춰 한지의상전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지로 만든 일상복은 관람객들이 직접 입어볼 수도 있고, 한지패션쇼 영상과 한지의상의 역사·소재·특징·가능성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3.12.29 23:02

제42회 전라예술제, 기획력 미흡 연례행사화 아쉬워

대형 축제들의 파워에 밀려 12월로 옮겨 치러진 올해 전라예술제는 일부 협회의 돋보인 무대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의 형식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일부 협회들의 기획력 부재로 아쉬움을 남겼다. ‘의지는 돋보였지만 관행을 극복하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 올해로 42회를 맞은 전라예술제는 전북예총(회장 김남곤)이 주최하고 10개 협회가 주관해 지난 10일부터 28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공연(10일∼15일)과 전시(22일∼28일) 분야가 각각 시기를 달리해 진행된 이번 예술제는 회원위주의 행사에서 탈피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로 기획되면서 내실을 다지려는 일부 협회들의 행사가 돋보였다. 예년과 같은 행사였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문인협회의 시낭송대회와 이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로 활약하고 있는 트롯가수들을 초청한 연예인협회의 전라예술가요제, 장애우를 관객으로 초청한 영화인협회의 우수영화상영 등의 호응은 올해 특별했다. 특히 음악협회는 다양한 출연진과 성의 있는 무대매너로 주목을 끌었으며 공연이 끝난뒤 교통이 불편한 소리전당의 여건을 감안해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인들의 예술적 고뇌와 치열함이 묻어나기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행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의무방어식 무대 만들기에 급급했던 협회들의 관행은 여전히 노출됐다. 대부분의 공연장 객석은 비교적 성황을 이룬편이었지만 회원과 출연진의 가족 참여에 그친 일부협회의 소극적 홍보는 아쉬웠다. 모든 행사가 단 1회에 한정된 것도 전라예술제의 한계. 때문에 전라예술제가 치열한 창작 과정을 담아낸 완성된 무대로보다는 연례행사쯤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더해졌다.객석의 호응이 더해지지 않은 무대도 적지 않았다.연극협회의 ‘오이디푸스와의 여행’은 일반관객이 채 30여명도 안 돼 집행부를 허탈하게 했고 영화인협회의 ‘전북디지털영화 작품공모’ 참가자도 20여명에 그쳤다. 게다가 참가자에 대한 예우가 지나쳐 모두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무용협회가 선보인 ‘전통무용의 대향연’은 전주지부를 비롯해 군산·익산·정읍지부 회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고른 참여의 의지가 돋보였지만 정작 전주지부 대표로 출연한 금파무용단이 팜플렛를 별도로 제작하면서 전라예술제 공연이 아닌, 금파무용단의 정기공연으로 기획, 다른협회의 불만을 샀다. 당초 화합과 친목을 내세웠던 무대였지만 오히려 갈등과 비난을 심화시킨 결과여서 신뢰를 회복하는 집행부의 특별한 노력이 요구됐다.미술·사진·건축·문인협회 등 네 개 협회가 참여한 전시도 예년과 비교해 질적 수준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홍보부족과 전시안내자 교육 부족 등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계획보다 축소된 행사나 각 협회가 정한 테마에 맞지 않는 작품들도 전시돼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 전시와 함께 올해 처음 개최한 건축협회의 ‘전북건축문화 포럼’은 전북건축의 현황과 지향점을 찾으려는 의미있는 시도였다.올해도 예술제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창작의욕과 예술제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집행부의 불만은 계속됐다. 그러나 각 협회에게 일정금액을 배분해 행사를 치르는 관례와 그로 인한 효율적이지 못한 운영방식에 대한 자성도 일었다. 문화계에서는 전라예술제에 대한 지원 확대도 중요하지만 예술제의 전통과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각 협회의 내실을 다지고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평가다.

  • 문화일반
  • 최기우·도휘정
  • 2003.12.29 23:02

전통춤 강세 현대무용은 '글쎄'

2003년 새해 도내 무용계는 신명난 춤판처럼 전라북도 2003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사업에서 1억3천만원의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배정받는 기분 좋은 소식으로 출발했다. 자연히 무대공연이 활발했으나 장르별로는 전통춤이 강세를 보인 반면 현대무용과 발레는 예년 수준에 그쳤다. 도내 각 대학 교수들의 활동 활발올해 가장 돋보인 단체는 2003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사업에서 잊혀져가는 마을춤 연구로 우수작품에 선발, 5천만원의 집중지원을 받은 우석대 김경주 교수와 자미수현현무용단. 이 단체는 지역에서 뿐 아니라 서울 등 해외로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2월에는 홍콩의 대표적인 민속축제 홍콩국제구정축제에 초청받았고, 벽사 한영숙 14주기 추모공연과 제8회 충청무용제전에도 참가했다. 도내 대학 교수들과 그들이 이끄는 무용단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전북대 김원 교수가 이끄는 김원무용단은 전북대표로 제12회 전국무용제에 참가해 은상을 차지했으며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현대춤의 독창성으로 호평을 받았다.전북대 이경호 교수는 창작한국무용 ‘바그다드 샤콘느’를, 원광대 오문자 교수는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무용으로 조명했다. 우석대 손정자 교수 무용단은 창작무용극 ‘박타는 놀부’ 공연을 펼쳤고, 발레의 불모지라 불릴 만큼 발레를 전공한 지역 춤꾼이 부족한 현실에서 원광대 백의선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모처럼 익산에서 공연무대를 올려 관심을 모았다. 전북대 무용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4년만에 다시 연 정기발표회 ‘표현 2003’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특별한 무대였다.관객층 넓히기 기획무대 각 무용단의 정기공연 외에도 좀처럼 접하기 힘든 독무나 무용이 생활 속으로 가까이 들어오려는 재밌는 기획무대가 마련된 것도 특징이었다. 관객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주는 기획무대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기획한 춤 무대. 상반기에는 현대무용단 사포가, 하반기에는 춤사랑 해오름이 초대돼 각각 어린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춤으로 읽는 동화’와 전통놀이와 풍습을 춤으로 풀어낸 ‘춤으로 만나는 옛날’을 선보였다. 활기 띤 전통춤 기획공연전주 전통문화센터는 올 한해 모두 열한번의 ‘우리춤의 숨결’을 기획했다. 최선씨를 비롯해 김희숙·심운회·고명구씨 등 명무들과 젊은 무용수들의 자리를 골고루 마련해 전통춤 대중화에 앞장섰다. 원광대 이길주 교수가 춤 인생 40년을 돌아보는 ‘전통춤 향기’를 올렸고, 조향숙씨는 연꽃 향이 가득한 산사 김제 청운사에서 문학과 춤이 어우러진 ‘문학과 백련향이 어우러진 춤’으로 주목을 모았다.열한살때 김일성 주석 앞에서 춤을 추고 무용가 최승희를 계승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는 조총련계 무용가 백향주씨 전주공연은 도내 무용계에 신선한 충격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소리축제에서 마련한 ‘소리와 춤의 명상’은 홍신자·이애주씨를 비롯해 지역 춤꾼 이경호·신용숙씨가 출연해 독특한 춤세계로 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했다. 전북무용협 새집행부 꾸려, 수상도 이어져지난 8월 금파춤보존회 김숙 이사장은 ㈔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 지회장에 당선돼 임기 4년동안 전북무용협회 살림을 맡게됐으며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졌다. 지역 무용가들의 반가운 수상 소식도 이어졌다. 우석대 김경주 교수는 (사)한국미래춤학회에서 제정한 예술대상을, 전북대 이혜희 교수는 여성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8회 조정순 체육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무용협회 최태열씨는 한국예총전북연합회 2003전북예술공로상(한국예총회장상)을 받았다. 춤 공연문화의 건강성 회복 과제로 여느해보다도 공연무대가 활발했던 올해 지역 춤판은 도약의 기반을 다졌으나 부문별 편식이나 무용관객의 부족함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특히 경우에 따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동원되는 공연도 적지 않았는데, 사전 교육 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과제물용 감상이 가져오는 교육의 효과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3.12.29 23:02

"협회예술인 적극 참여 더 많은 관객 찾아"

제42회 전라예술제 평가회와 제7회 전북예술상 및 전북예술공로상 시상식이 28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회장에서 열렸다.전북예총 전·현직 각 협회 회장들과 회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전라예술제 평가회는 13일동안 열린 전라예술제를 자체 평가하고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평가회에서 전북예총 김남곤 회장은 "해마다 9월초 열렸던 전라예술제가 동절기로 연기되면서 관객 동원과 회원들의 참여가 걱정됐다”며 "각 협회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행사 참여로 예년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전라예술제를 찾았다”고 밝혔다. 또 "예산 1억으로 10개 협회가 행사를 치르다보니 초라하다는 등의 이런 저런 지적들도 있었다”며 "1억 5천만원의 도비가 확정된 내년에는 전라예술제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회장은 "민예총 출범과 함께 앞으로 전북예총과 민예총 활동은 도민들의 눈을 통해 평가될 것”이라며 전북예총 회원들의 분발을 당부하기도 했다.한편 이날 전북예총과 (주)하림이 제정한 제7회 전북예술상 및 전북예술공로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올해 전북예술상은 유응교(건축) 이동근·이승우(미술) 이종식(연예)씨가 수상했고, 전북예술공로상은 익산무용협회 최태열씨가 한국예총 회장상을, 연극협회 류경호·연예협회 정민호씨가 전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이길환(건축)·모보경(국악)·김성겸(군산사진작가)·표순복(고창문인)·김기찬(부안문인)·남궁웅(문인)·고옥금(정읍문인)씨가 전북예술공로상을 수상했다. 전북예총은 이날 예총의 활동을 지원해온 문화예술도문화예술과 한재만씨에게 전북예술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날 유기상 문화관광국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여준 전북 예술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전북 예술 발전에 앞장서는 기수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강현욱 도지사의 격려사를 전했다. 이어진 전북 예술인 송년 리셉션에서는 축하공연과 함께 참석 예술인들이 송년 신년 덕담을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졌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3.12.29 23:02

소리축제 1월 중 총감독 공모등 조직 개편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내년 1월 중 공모 방식을 통해 총감독을 위촉하는 등 조직을 효율적으로 재편할 것으로 보인다. 또 조직위 정관 등 제규정도 개정될 전망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위원장 천이두)는 26일 오전 11시 조직위원장실에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지난 19일 전북도가 이같은 내용을 담아 권고한 소리축제 개선방향과 내년 소리축제 일정·방향 등을 논의, 도의 권고를 수용하기로 했다. 조직위는 내년 1월 개편 작업을 추진할 계획. 조직위가 정비되면 자체수입 1억2천여만원을 포함해 현재 확정된 도의 지원 예산 등 11억2천여만원에 대한 세입세출예산을 편성한다는 방침이다. 전북도는 소리축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함께 소리축제조직위의 재편을 권고한바 있으며 도의회 예산심의에서도 내년 예산을 올해 절반 수준인 10억원(국비 3억 포함)으로 하향 조정했었다. 소리축제 천위원장과 임진택 총감독, 최복렬 사무국장, 전북도 유기상 문화관광국장, 전북예총 김남곤 회장, 군산대 최동현 교수 등 6명의 위원이 참여한 이 날 회의의 주요논제는 '2004년 예산 10억원'. 위원들은 전체 예산의 70%를 공연비로 책정할 것과 조직위 상근인력을 10명 안팎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축제의 관광화는 전북도가 중심이 돼 공동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대사습대회와의 연계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 문화일반
  • 최기우
  • 2003.12.27 23:02

5백여년 김제 서예의 전통과 현대전

전북서예가 한국 서단의 큰 맥을 형성하고 있다면 전북서예의 지류는 김제서예에서 비롯됐다. 한국서예의 본향 김제서예의 전통을 재확인하고 오늘로 이어내는 전시가 있다. 30일까지 김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제서예의 전통과 현대’. 지난 9월 창립, 사단법인 한국서예문화연구회(이사장 이은혁)가 여는 첫 사업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조선중기 1519년 작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5백여년의 김제 서예사를 되살려냈다. 유명한 몇몇 서예가에 치중됐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김제서예의 맥을 이룬 향토 유고작가들을 중심으로 회원 40여명도 함께 출품했다. 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은 17세기 송재 송일중(1632∼1717) 19세기 석정 이정직(1841∼1910) 20세기 강암 송성용(1913∼1999)을 기본 줄기로, 석정의 문인들이었던 조주승 오기두 박규환 조기석 송기면 나갑순 강동희 최규상 유영완 최승현과 유재 송기면(1882∼1956) 문하의 김정기 송하영 이상록 등 경지에 오른 다양한 필적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 위주로 선별하고 위작과 모작 위험을 없애기 위해 친족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하다보니 자료수집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만큼 성과도 적지 않다. 학문과 서예에 고루 능했던 석정의 작품들은 동학농민전쟁 때 집이 불에 타 대부분 손실됐지만, 유족 서울여대 이종석 교수의 도움으로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철마가 하늘을 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중국까지 명성을 떨쳤던 송재. 산속에 파묻혀있던 송재의 1600년대 작품 입석산석각을 발견, 탁본한 것은 큰 성과다. 전시 기간 전시실을 찾았던 한 관객은 송재의 친필 병풍을 자료로 제공하기도 했다.금석학의 대가 오세창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최규상의 유작전시도 뜻깊다.유영완과 아들 유근상, 조주승과 아들 조기석, 송일중-송기면-송성용-송하경 등 가족으로 대물림되어 온 서예정신도 느낄 수 있다. 한국서예문화연구회는 석정 이정직을 집중조명한 특별전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작고작가 개인 기획전을 진행, 한국서예에 대한 지속적 연구를 해나갈 계획이다. “옆집 옆집이 다 서예가를 배출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제서맥은 풍부하다”고 소개한 이은혁씨(전주대 겸임교수)는 “한국서예문화연구회가 학문적 연구와 함께 김제의 유학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국서단을 활성화시키는 실질적 토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이번 전시는 김제의 탄탄한 서맥을 정립하는 시작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3.12.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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