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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개의 에세이전’·‘텐트속의문화전’ 전북예술회관서 전시

작가 내면의 세계로 한없이 천착하는 작업은 닮아있다. 그러나 한쪽은 작가 개개인의 생각을 각자의 에세이형식으로 풀었고, 다른 한편은 ‘텐트’라는 소재를 공동의 화두로 삼았다. 플러스의 ‘스물두개의 에세이전’과 프로젝트팀의 ‘텐트속의 문화전’. 전북예술회관 전시장에서 나란히 전시회를 열고 있는 두 모임은 전북현대미술의 오늘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전북대 서양화 전공자중에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이는 이들이 ‘엄선’됐다는 ‘플러스(PLUS, 대표 고보연)’. 끊임없이 새로움을 더하는 과정을 통해 전북화단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이들의 전시는 텍스트와 미술의 조화를 시도했다. 여느해처럼 주제를 잡지 않는 대신 작가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로움을 택했다. 에세이전이 태어난 배경이다. 최만식은 왕버들 나무를 통해 ‘그들의 환경’을 조망했다. 고보연은 그동안 견지해온 ‘긴장완화를 위한 부드러운 오브제’작업으로 ‘무애지(無碍池)’를 담아냈다. 최희경의 ‘연(緣)’과 김민자의 ‘인연(因緣)’은 세상의 관계를 논한다. 한숙은 오랫만에 테라코타작업으로 바닷가 버려진 ‘의자새’를 형상화했다. 정경숙 송상민 최유리 소정윤 임현채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청년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당초 텐트는 실외에 설치하는게 정석이다. 지난해 ‘텐트속의 문화전’을 기획했을때도 실외전시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올해도 텐트는 전시장안으로 들어왔다. 전시를 기획한 임택준씨는 “내년에는 계획대로 실외에 전시를 마련, 텐트를 매개로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텐트는 작가 개인의 물리적 정신적 안식의 공간이다. 그렇다고 전시장안에 텐트만 들어선 것은 아니다. 박은주는 텐트를 소통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심소영은 자신의 그림자를, 김광철은 기억을 늘이고 줄이는 도구 비디오테이프를 작업의 소품으로 활용했다. 임택준은 새집으로, 곽승호는 전시장 한켠에 방을 꾸몄다.‘텐트속의 문화전’에는 전주지역 작가외에도 대구와 광주지역 작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고보연 김선미 김대건 박진희 이준규 임승한 황나영과 광주의 김설아 김수옥 김재성, 대구의 전지예씨 등이 ‘텐트’를 매개로 소통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8.23 23:02

고 박동화 연극인생, 연극으로 만난다

“내 목숨이 부지하는 한 난 연극을 할거야. 다른 사람들은 공부에 미치고 정치에 미치고 돈에 미쳤는데, 나는 그만 연극에 미치고 말았어. 왜 하필 배고픈 연극에 미친 줄 아나?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인생의 멋을 봉사할 줄 아는 연극인! 얼마나 자랑스러운가.”전북 현대연극의 역사 故 박동화(1911∼1978). “열사람, 백사람 보다도 나는 이 무대가 소중하다”고 말했던 그가 연극무대에서 부활한다.전북연극협회(회장 류경호)가 ‘佳人 박동화’를 올린다. 9월 2일 오후 7시30분, 3일 오후 4시·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공연되는 1부는 1930·4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과 목포, 신의주와 군산 등을 거점으로 활동하다 전주에 정착한 50년대 후반까지를 담았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첫 희곡 ‘수해 후’를 비롯해 배우로 처음 출연했던 ‘수전노’, 생의 마지막 작품 ‘등잔불’, 국립극장 희곡공모에 당선된 대표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등 네 편을 ‘연극 속 연극’으로 공연하고, 그가 쓴 시나 평론 등을 대사에 집어넣어 작품 발굴 의미와 함께 그에 대한 연구가 한층 깊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0대부터 60대까지 ‘佳人 박동화’에 손을 내민 연극인들은 50여명 정도. 노년시절 ‘박동화’역은 류영규 전 전북연극협회 회장이, 젊은시절 ‘박동화’역은 조민철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이 연기한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8.23 23:02

'佳人 박동화' 연출 맡은 류경호씨 극본 쓴 최기우씨

‘佳人 박동화’ 연습현장. 선배를 향한 존경으로 연습현장은 진지하다가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짐작할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극본을 쓴 최기우씨와 연출을 맡은 류경호 전북연극협회 회장은 전북 연극의 역사를 재현하는 일에 그 감회가 남다르다. 2003년 ‘상봉’으로 전국연극제 대통령상과 희곡상, 연극상을 일궈낸 둘의 탄탄한 만남이다. △ 연출가 류경호 전북연극협회장 ‘佳人 박동화’는 전북연극협회가 우리 지역 연극의 역사를 일깨우고 나아가 대를 잇는 정통성 확보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작품이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만큼 연출도 류경호 전북연극협회 회장이 직접 맡게됐다. 류회장은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무대공연을 통해 연극의 대중화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1부는 선생이 신문사에 다니고 문학활동을 하는 등 연극에 정착하기까지 젊은시절 겪은 갈등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대적인 것들이나 고유명사 등이 많이 나오다 보니 일반 관객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어요. 본질을 왜곡시키지 않는 선에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류회장은 “선생의 작품과 일기, 신문기사 등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쓴 대본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했다”며 40% 정도는 허구라고 말했다.그는 “연극인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극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며 “2008년 선생의 추모 30주기에 맞춰 제작할 2부는 선생이 전주와 전북을 기반으로 많은 희곡을 쓰고 연출했던 60·70년대가 중심이다”고 밝혔다. 이후 선생의 자료집 발간과 유품 정리 등 후속작업도 이어갈 계획이다. △ 작가 최기우씨박동화의 작업을 그는 ‘글쓰기 노동자의 도도한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박동화를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렸다”는 작가 최기우씨. 그러나 ‘글쓰기 노동자’로서 시인, 소설가, 기자, 극작가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의 행로는 닮았다.“연극인의 대부격으로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박동화의 삶을 이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됐습니다. 글 속에 살아있는 치열한 작가정신과 자존심을 느끼며 작가로서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됐죠.”그는 “대다수의 예술인들이 자존심을 팔던 시절, 선생은 가난하고 서글프지만 스스로 외로워지는 용기를 보여줬다”며 이번 작품이 박동화의 전 생애가 아닌, 1930∼50년대를 먼저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평소 집중해서 빠른 시간내 극을 완성하는 최씨지만, 이번 작업은 자료 수집부터 많은 시간이 걸렸다.사회적으로 ‘박동화’란 이름을 쓰고 있는 인물들이 많았으며, 선생이 예명으로 쓴 글을 밝혀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과거에는 박동화를 연극인으로 기억하는 자료들이 극히 적었다”며 “잊혀진 위인을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8.23 23:02

선조들 생활의 기록 들여다보다

고문서는 역사연구에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과 사람사이에 주고받은 것으로 그 내용이 꾸밈없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일차적인 사료가 된다. 대부분의 고문서가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자료로, 체계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편찬자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솔직한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를 높이 산다. 전북지역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된 고문서는 2004년 현재 국보 1점과 보물 546점, 시·도 유형문화재 148점 등 총 695점. 각급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비지정 고문서는 3만2024점으로 파악됐지만 연구자들은 미발굴 고문서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문서는 과거·관직, 청원·소송, 호적류, 재산관련, 의례, 명령·보고, 면역, 향촌 문중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 전북지역은 과거나 관직관련 고문서가 많은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전북대박물관 고문서연구팀이 「전북지방 고문서의 연구현황과 과제」(전라문화총서 21, 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대학 박물관중 가장 많은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점이 책을 엮는데 보탬이 됐다. 하우봉 전북대박물관장은 “고문서는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야 할 선조들의 생활의 기록”이라며 “도내에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10만여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에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없이는 지역사 복원은 불가능하며, 지역 정체성을 찾는 일도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책은 최근 2년여동안 전북대 박물관 고문서팀이 진행한 박물관 소장 고문서 1만여점의 정리작업과 일반인들에 알리는 대중화작업 등을 하며 연구자로서 느끼고 파악했던 고문서연구에 관한 현황 보고서다. 고문서팀은 ‘고문서 연구현황과 과제’라는 심포지엄을 통해 고문서 내용 해제뿐 아니라 연구 실태도 분석했었다. 이 책은 심포지엄 결과물이다. 고문서 전문 연구인력의 현황과 인력양성의 필요성을 진단했으며, 고문서자료의 대중화 방안을 모색했다. 또 전북지방 고문서의 현황과 전북대박물관 소장 고문서의 데이터베이스 구축과정도 소개했다. 고문서를 통해 본 전북 순창 노동한씨(蘆洞韓氏)의 역사도 정리됐다. 부록으로 전라북도 고문서 관련 간행도서 해제도 수록됐다.이병규(원광대사학과강사) 최윤진(전북대사학과강사) 정성미(원광대사학과강사) 유호석(전북대사학과강사) 송만오(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가 저자로 참여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8.22 23:02

시민의 든든한 이웃 '대한민국 돈키호테'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풍자소설속 주인공 돈키호테는 현실감각이 없는 엉뚱한 인물의 대명사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시선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는 용기있는 인물로 재해석되고 있다.익산시민연합공동대표 박경철씨.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확정일자날인 권유제도를 법제화해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집을 찾아주는 것과 파산직전 백화점의 경영권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일도 주도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군사대국화와 핵무장지원을 막기 위해 미국와 유럽 중국 UN IAEA를 오가며 끈질긴 민간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발암물질이 검출된 수돗물의 음용중단과 용담댐물로의 교체에도 앞장섰다. 대한민국의 돈키호테를 자청하는 박씨. 그는 소시민의 든든한 이웃이 되어주고 나라밖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나라들에 강력한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민간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부르는 이유다. 박씨가 자신의 NGO활동을 논픽션으로 기록했다. 「대한민국 돈키호테」(선비정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팩션 형식을 빌려 20여년동안 활동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주변국의 역학관계에 의해 우리나라에 드러워지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국민들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신빈곤층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파리정치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98년 고위 정치전문학위를 취득했다. 유엔환경계획상임조직위원 CBS기획연구위원 민주평통자문위원 원광대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고, 현재 대일역사왜곡시정촉구범국민회의 의장 고속철국가발전포럼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8.22 23:02

[읽고 싶은 이 책] 다테노 아키라 '그때 그 일본인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그렇다고 ‘멀리하기엔 가까운 당신’이 바로 일본이다. 두 나라의 물리적 거리 뿐 아니라 역사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기억하고 있으니, 두 나라의 현대사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내 나라, 즉 지금은 한국이지요. 그곳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한국인의 뼈에 아프게 새겨진 이름, 이토 히로부미(1841∼1909). 1906년 미국 예일대학 래드 박사와의 회견에서 황제가 있고 정부가 존재하는 다른 민족의 국가를 ‘내 나라’라고 표현한 그를 이 책은 ‘한국을 억압하고, 그 권력에 취한 식민지 시대의 독재자’로 기억한다. 탐욕스러운 컬렉터도 있다. “닥치는 대로 유물을 수집하여 유물 수집가로 악명이 높았던 남선전기회사 사장”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 그는 ‘선의의 가면을 쓴 한국문화재 수집가’로 남겨졌다. 오구라컬렉션보존회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한국문화재 1030점들은 모두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면 국보로 지정돼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길이길이 전해질 것들이다. 한국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다테노 아키라가 기획하고 엮은 「그때 그 일본인들」(한길사)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들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조선에 영향을 끼친 36명의 일본인」(2002)과 「36명의 일본인, 한국·조선에 대한 눈길」을 합본한 이 책은 메이지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일 관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일본인 72명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을 직시하려는 시도다’ ‘좋든 싫든 이웃에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에 눈길을 돌리게 하는 데에 매우 적합하다’ 등 일본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다테노 아키라는 “한국어판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그는 “이 책을 통해 ‘악인’으로서의 일본인의 사상과 행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뿐 아니라 ‘선인’으로서의 업적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제국주의를 부정하고 한국 통치를 비판한’ 가시와기 기엔, ‘일그러진 한국관 타파에 힘을 기울인 한국사학자’ 하타다 다카시, ‘한국의 고아를 위해 평생을 바친’ 다우치 지즈코 등도 소개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전부 나쁜 사람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역사교육을 받고 자라온 우리 현실에 이 책의 등장이 흥미롭긴 하지만, 최근 급격한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을 보자면 ‘일본에 이렇게 좋은 사람도 있다’고 강조하는 것 같아 약간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역시 지배하는 쪽과 지배당하는 쪽의 고랑은 그렇게 간단히 메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8.22 23:02

송화섭 전주대교수 '백제의 민속' 편찬...백제인의 생활속으로~

고대민속 연구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사료의 절대 부족이다. 더욱이 백제의 민속자료는 더욱 열악해 현전하는 백제적인 관련자료를 놓고도 백제시대의 것인지 논란에 붙여진다. 한국문화원류와 계통찾기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송화섭 전주대 문화관광학부교수. 그는 “역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남겼지만 민속은 생활과 관습의 행위로 전승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왔다”며 “민속의 속성이 집단전승이기에 영속성을 가진 민속문화는 역사기록보다 더 소중한 역사민속자료”로 받아들인다. 그의 연구가 ‘민속은 역사’라는 관점을 견지하는 까닭이다.송교수가 백제문화개발원 역사문고로 「백제의 민속」(도서출판 주류성)을 엮었다. 그는 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풍속·관습·생활방식이라는 광의적 차원에서의 민속학적 접근으로 백제인의 생활문화에 접근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생활관습과 풍속을 자료의 대상으로 삼았다. 책을 엮기 위해 일본 중국의 백제자료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국내사료에서 백제민속 관련자료를 추출해 현전의 민속문화와 연계시켜 해석했다. 송교수는 이번 집필에 대해 “현전하는 생활문화속에서 사료에 등장하는 소재를 중심으로 백제인의 생활문화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며 한계를 고백했다. 그러나 ‘민속은 역사’라는 전제아래 백제의 생활문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봤다고 덧붙였다. 「백제의 민속」은 신앙적인 부분, 민속놀이, 의례, 세시풍속 등을 조명했다. 민족사상의 본질이냐 민간신앙의 대상이냐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 마한의 소도와 백제의 소도’를 학자들의 주장을 통해 살펴봤다. 백제의 농경문화를 ‘벽골제 수리시설과 농경민속’을 통해 조망했으며, ‘점복신앙’ ‘해양민속’ ‘성인식’ ‘상장례’를 통해 당시 생활문화도 짚어본다. 매사냥문화와 수탉숭배 원숭이석상 등을 통해 ‘동물민속’도 조명하며, ‘세시풍속’과 ‘놀이와 연희’문화도 되짚어봤다. 송교수는 “이번 글쓰기를 통해 한반도라는 자연환경과 생업여건에 따라 살아가는 주기적인 생활방식과 환경의 적응방식이 고대사회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8.22 23:02

[최승범시인의 향수어린 책] 청태집(靑苔集)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1901-1981)의 「청태집」(영창서관, 1943. 재판)을 구입한 것은 ‘1952년 8월29일 전주에서’였다. 46판 294면의 양장본이다. 제자는 저자 자신이 썼고, 표지장정은 행인(杏仁, 李承萬)이 맡아 한 것이다.시인·소설가로만 알아온 월탄에게 이러한 수필집도 있었던가, 신천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 책에는 자서(自序)외에 52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내가 뜻을 문필에 둔지 20여년, 마음 내킬때마다 끼적거려 흩으려뜨렸던 초라한 만문집(漫文集)이다.’ 자서 첫 줄의 겸사다. 그러나 ‘초라한 만문집’이 아니다. 매란국죽 사군자와도 같은 품(品) 높은 수필집이다. 편편을 다시 읽자면 처음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문지(文氣)·문덕(文德)·문풍(文風)·문치(文致)란 이런 글들을 두고의 말들이 아닌가도 싶다.나의 스승 가람(李秉岐)과 시조에 대한 말씀도 볼 수 있다. ‘매화옥서재를 춘하추동 두드리면 마치 난초의 전람회다. 대소·원각(圓角) 무수한 화분에선 황자(黃紫)의 난화가 청초한 향기를 배앝아 그야말로 만실청향이다. 가람은 올연히 난초 속에 앉아 호방한 웃음을 웃으며 손을 맞는 것이다.’(‘조수루산고’에서)‘신시(新詩)는 마치 서양화 같고 시조는 흡사 동양화 같다./시조는 정금미옥(精金美玉) 같은 시형이다/시조에 대한 훼예포폄(毁譽褒貶)은 돌아보지 말고 한결같이 신예술의 길로 진전해 나아가라.’(‘시조는 어디로 가나’에서)나는 졸저 「수필ABC」(형설출판사, 1965)에서 월탄의 ‘수근찬(水芹讚)’을 1930년대의 좋은 수필로 인용한 바 있다. 지금 읽어도 봄미나리의 향미(香味)가 어려든다.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06.08.22 23:02

푸진 굿판 한곳서 즐겨보세~

일생을 바쳐 필봉굿을 지켜온 故 양순용 선생(1945∼1995). 허튼가락과 부들상모의 명인으로 필봉굿의 체계를 잡아 단절됐던 마을굿 형태를 복원한 그를 기리는 추모제가 축제로 불타오른다. ‘제11회 필봉풍물굿 축제’가 26일 오전 10시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필봉농악전수관에서 열린다. ‘天·地·人 하나되는 신명의 소리’를 주제로 한 올해 축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임실 필봉풍물굿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어울림의 공간이었던 전통마을굿 성격을 되살리고 이를 지역 축제로 이어내기 위한 자리다. 예술성으로 연구자들과 일반인들로부터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행사는 중요무형문화재 공연 ‘강산의 신명이 한자리에’.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와 평택농악보존회, 강릉농악보존회, 고성오광대 등 무형문화재의 수준높은 초청공연과 필봉농악보존회의 푸진 굿판이 한 곳에서 벌어진다.진주삼천포농악이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등 개인놀이가 발달돼 있다면, 강릉농악은 무동 이외의 잡색이 없고 개인놀이로 장구를 돌리거나 상쇠가 잽이의 어깨 위로 올라가 상모를 돌리는 것이 특징이다. 웃다리농악의 정통을 이어받은 평택농악은 가락의 종류가 많진 않지만 빠르고 힘이 있으며,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가면극인 고성오광대는 극보다는 춤이 월등히 앞선다. 평소 조화를 중시하는 필봉굿은 단원들이 개인기를 발휘할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 그러나 이번 축제에서 만큼은 ‘필봉 양순용배 재능기 겨루기 한마당’을 열어 전수자들이 설장고와 채상, 열두발, 잡색 등 화려한 개인기를 펼칠 수 있도록 했다.그밖에도 필봉농악의 발자취를 더듬는 명인 유품전과 공연 사진전이 마련되며, 필봉농악 이해 시간으로 ‘풍물굿 진법’과 ‘풍물굿 잡색놀음’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양진성 보존회장은 “필봉풍물굿 축제를 통해 마을굿의 본산인 필봉리에서 전통문화를 담고있는 마을굿과 다양한 체험행사 등을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8.21 23:02

"전주 지역밀착형 생활문화공간으로"

공간문화를 통해 도시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특정계층이 특정공간을 소비하는 ‘문화공간’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 개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9일 오후 2시30분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열린 ‘마을만들기를 통한 도시재생과 공간문화전략 연수회’. 오민근 문화관광부 공간문화과 전문위원은 “특정공간을 지칭하는 ‘문화공간’과 도시 안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의미하는 ‘문화적 공간’은 분명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역사와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 재생에 성공한 일본 가나자와 사례를 분석한 오위원은 “전통문화를 지속가능한 생활문화 개념으로 확대하고 시민참가형 문화공간을 확충해 지역밀착형 생활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한옥마을을 통해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전주 역시 ‘지역밀착형 생활문화공간 조성’이 주요 과제로 안겨졌다. 이날 도시 디자인에 있어 시민 합의의 중요성도 다시한번 확인됐다. 황기연 홍익대 교수는 “과거 관 주도의 도시 개발에서 탈피해 계획 과정부터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공동대안을 창출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김남규 전주시의원 역시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없이 주민들 참여가 왜곡된다면 나중에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더욱 크다”며 주민합의적 측면을 강조했다.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는 “전주는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높은 만큼 이를 잘 엮어낸다면 문화를 통한 도시 재생에 성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6.08.21 23:02

고고학 서적·논문 등 5000여권 기증

한서고대학연구소 전영래(80)소장이 자신이 평생 모아온 고고학관련서적과 연구논문 등 5000여권의 자료를 최근 전북문화재연구원에 기증했다. 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최완규)에 따르면 전소장이 기증한 각종 도서와 자료는 고고학 및 미술사관련 자료가 주종으로, 연구의 근간이 되는 보고서류로부터 학회지 단행본까지 다양하다고 밝혔다. 기증도서와 자료는 각종 보고서(1433권)와 학회지·논문류(192권) 단행본(1174권) 박물관 전시도록(430권) 지역사·향토사류(71권) 기관연보·시보(211권) 문화유적분포지도(10권) 발굴계보(43권) 잡지 기타(308권) 연표(3권) 등. 국내도서 및 자료뿐 아니라 북한자료,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러시아 등을 포함한 서양의 것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기증한 도서 및 자료중에는 전소장이 1960년대부터 연구했던 전북지역 고대산성 관련 자료와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등에 대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유학시절 모았던 자료들도 국내에서는 귀한 것들로 꼽힌다. 연구원 김종문학예실장은 “전박사님이 기증한 책들은 우리나라 고고학연구 초반 자료들이 많아 연구활동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전영래소장은 “후배들의 연구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전북문화재연구원을 자료를 기증했다”며 “지역사 연구에 활기를 띠기 바란다”고 말했다. 1950년대 전북일보 기자를 지낸 전소장은 63년 전북도립박물관 설립을 제안, 25년동안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78년부터 지방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정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81년 원광대 사학과에서 강의를 시작, 88년부터는 고고미술사학과교수로 재직하며 고고학 후진을 양성했다.전소장은 전북지역 고대산성과 청동기 고인돌 발굴 등에 남다른 연구성과를 남겼다. 도내 고대산성 126개소를 답사, ‘전북고대산성조사보고서’를 간행해 산성연구의 기틀을 닦았으며, 부안 소산리에서 볍씨자국토기를 발견해 벼농사를 입증해내기도 했다. 금강유역 청동기문화권을 최초로 주장한 이도 전소장이며, 고장과 장수지역에서 북방식지석묘를 발굴, 고창 고인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정신청 기초도 제공했다. 동고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후백제 견훤왕 왕궁터를 입증해냈으며, 익산 오금산성 발굴로 일본의 ‘고고이시’라는 축성법의 원류가 백제에 있음을 고증해내는 연구성과도 갖고있다.

  • 문화일반
  • 은수정
  • 2006.08.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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