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9 04:38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주말 chevron_right 책과 만나는 세상

[소설가 김상휘 씨 '풍수담론'] 풍수지리로 본 전주·김제 땅 생김새

전주의 도읍 터를 양기풍수(陽基風水) 입장에서 보면 기린봉을 현무, 즉 진산(鎭山)으로 삼으면 그 남쪽과 서쪽의 남고산, 완산칠봉, 서산이 청룡이 되고 그 북쪽으로 기린봉의 내맥과 천마산, 건지산 등이 백호의 맥세를 이루게 된다. 이 때 전주천이 내수(內水)인 명당수, 삼천천과 추천이 외수(外水)인 객수의 역할을 하여, 결국 내외 수유 합세인 풍수 논리상으로 잘 짜여진 국면을 이루게 된다.모악산의 원래 산명은 무악(毋岳)이다. 기운의 모든 것을 안아낸다는 의미로 험준함마저 안는다는 뜻이다. 형상으로 보면 거대한 황소 한 마리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와우혈(臥牛穴)이다. 목인 항가리쪽에서 몸통은 국사봉 정상에 두고 척추는 중인리까지 내려오고 엉덩이는 황소리에 두고 꼬리는 중인리 우미골까지 내려온다. 양택 명당은 소꼬리 동네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면서 꼬리를 흔드는 터이기 때문에 기운도 생동하는 터다.전주와 김제 땅의 생김새를 풍수지리학적으로 조명한 책이 나왔다.소설가 김상휘 씨(55)가 <풍수담론1>(도서출판 계간문예)를 펴냈다. 모악산 평설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그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풍수지리를 살피고, 역사와 종교 이야기를 곁들었다.이 책은 전체 3개 부분으로 나눠 먼저 건지산, 조경단, 왕가 풍수와 전주 주산을 풍수 담론으로 설명했다. 전주 신시가지의 경우 새로운 기운이 몰려 있는 터로 해석했다. 전주 서북쪽에 위치한 황방산 형상은 황방폐월형(黃尨吠月形)으로 누런 삽살개가 차오르는 달을 보며 짖는 형국으로 봤다.저자는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은 임신을 의미하며 뱃속에 음기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풍요를 상징한다며 앞발에 힘을 주고 짖어야 하는데 삽살개 앞다리 오른발이 전북도청과 전북지방경찰청에 해당한다고 기술했다.이어 2번째 장은 지난 2005년에 저자가 발행한 <풍수기행 모악산>을 바탕으로 첨삭과 보완을 거쳐 다시 담았다. 모악산이 낳은 정여립과 강증산에 대한 이야기도 푼다.마지막은 장은 <정감록>의 십승지지(十勝之地)를 현장 사진, 대동여지도와 함께 소개했다. 이 곳은 사람이 재난을 피해 숨을 수 있는 10개소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도내 고창 반암마을과 남원 운봉, 무주 무풍면 등을 비롯해 전국 십승지에 대한 형상도 실었다.그는 머리말에서 우연한 풍수 입문기도 들려주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할아버지 묘를 이장하는데 집도의 기회가 주어졌고 당시 땅을 헤아리는데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날 밤 내내 취표(取表)한 자리가 그저 좋은 자리이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이후 성묘 때마다 할아버지 산소를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그는 다행히 할아버지가 옥녀탄금(玉女彈琴)의 정혈에 모셔져 간절했던 기도가 통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회상했다.풍수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풍수는 도(道)와 각(覺)을 얻는 자연철학이다며 풍수입문은 마음공부가 우선이고, 좋은 풍수책과 자연 이치를 깨달은 선생과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말했다.소설가 김상휘 씨는 지난 1992년 월간 <문예사조> 소설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전북소설가협회 5~10대 회장을 지냈다. 풍수지리 관련 저서로는 <도시개발 풍수론>, <풍수기행 모악산> 등이 있다.

  • 주말
  • 이세명
  • 2015.01.30 23:02

[신정일 씨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부조리한 사회에 맞선 조선시대 혁명가 11인

역사는 반복된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간 차를 두고 평행이론처럼 비슷한 사건은 또다시 일어난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개혁을 외쳤던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불우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그렇다. 조선시대 매력적인 혁명가들을 다룬 신정일 씨의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루이앤휴잇)가 나왔다.저자는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장서서 몸을 던진 11명의 인물을 다뤘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풍부한 역사적 지식을 곁들여 이들의 삶과 사상을 펼쳐놓는다. 더불어 주요 사건에 대한 해설과 인물 연보로 이해를 돕는다.조선을 설계했지만 끝내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 정도전, 조선 전기 개혁의 아이콘으로 후대에 선비의 전형으로 남은 조광조, 남성 중심의 사회를 조롱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황진이, 기축옥사의 주인공으로 대동세상을 꿈꿨던 정여립, 차별 없는 이상향을 제시하며 죽임을 당한 허균, 당쟁의 상처를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서 발간으로 승화한 이중환 등이 그들이다.이어 조선 후기에는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실용주의자 박지원, 애민을 위해 개혁을 추구했던 정약용, 천부인권을 주장했던 최제우,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천지개벽을 실천했던 동학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갑신정변을 일으켜 개화 조선을 만들려 했던 김옥균을 다뤘다.저자는 역사는 진일보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 실패를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상과 삶을 통해 오늘날을 되돌아 보게 하기 위해서다. 현재도 변화에 대한 열망과 도전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저자는 조선은 권력자에 빌붙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부를 차지하려는 부패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망했다며 한 사회가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개혁과 변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는데 조선 역사에서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조선과 현시대가 크게 다르지 않고 세월이 흘렀지만 이 땅의 민초를 옥죄는 부조리하고 불의한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조선시대 개혁가들이 도리어 현재 우리에게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라고 묻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저자는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를 인용하며 실패를 그대로의 실패가 아니라고 강조한다.그는 유교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나아가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과 같았다며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믿는 신념이 옳다고 여겨 대의를 실천하다 불우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역적 혹은 패배자로 기록됐다고 전한다.이어 그는 실패를 온전히 실패로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상과 역사가들의 평가다며 그들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으며, 이는 역사가들이 세종이 아닌 정조를 조선 최고의 왕으로 더 높이 받드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보탰다.신정일 씨는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본보에 매주 1차례 길 위의 인문학을 연재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만들어 동학혁명을 재조명했으며, 1989년부터 문하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50여권의 저서가 있다.

  • 주말
  • 이세명
  • 2015.01.23 23:02

[최동현 씨 '판소리명창 김연수'] 동초제 명창 삶·소리 대중과의 공감대 찾다

동초제 판소리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가 나왔다.최동현 군산대 교수(국어국문학과, 60)가 연극적인 판소리를 시도했던 동초 김연수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 그가 길러낸 소리꾼을 정리한 <판소리명창 김연수>(신아출판사)를 펴냈다.최 교수는 정확한 사설이 돋보이는 동초제의 특징을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소리 공부의 과정을 통해 밝힌다. 더불어 그가 사설을 바로잡고 희곡처럼 바꾸려했다는 사례도 설명한다.김 명창이 정리한 <창본 춘향가>에서는 희곡처럼 장을 만들고 대사와 해설을 구분했다. 아니리의 확장과 사설의 변용 등 극적인 효과를 위해 창작의 영역을 넓혔다.하지만 이러한 시도로 동초는 소리광대가 아니라 아니리광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사설만큼 음악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것. 최 교수는 음악 중심의 전통 판소리가 아닌 서양 연극을 접목한 창극을 극 중심으로 만들려 했던 과정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최 교수는 그동안 김연수 명창은 과소평가돼 왔다며 김 명창은 자신의 소리를 이론과 실천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려 노력했다고 평했다.그는 이어 동초는 자신의 이론으로 판소리를 재창조하고 이 결과가 5바탕 사설집과 음반으로 남아 있다며 사설집에 장단까지 표시해 자신의 소리를 확정적으로 기록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고 기술했다.김연수 명창은 전남 고흥에서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29살에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 등에게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웠다. 2~3년 만에 5바탕의 학습을 마쳤다. 그는 이전에 판소리의 기교를 익혔기 때문에 주로 사설과 장단을 베끼는 식으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국악단, 김연수창극단 등의 판소리단체를 만들었고 조선성악연구회, 대한국악원. 국립창극단 등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더불어 일제강점기 5대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인 유성준 명창에게 적벽가를 배우던 과정에서는 자신보다 한학에 깊지 못한 스승의 발음을 지적하면서 갈등을 빚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최 교수는 김 명창의 임종을 기술하며 판소리가 점점 위축되던 시대, 김 명창은 말년에 셋방에서 쓸쓸하게 죽었다고 전했다. 임종 즈음 발표회를 앞둔 애제자 오정숙 명창이 찾아왔다 공연을 끝내고 초상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저자는 동초의 1세대 제자인 김동준, 박봉선, 오정숙 명창과 2세대 계승자인 이일주, 조소녀, 성준숙 명창에 이어 이들의 제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동초제 판소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이 책은 지난해 판소리학계의 중진 10명의 논문을 모아 펴낸 <김연수의 생애와 판소리>의 대중판이다.최 교수는 연구 결과를 확산하기 위해 전문적인 용어를 바꾸고 복잡한 주석을 뒤로 돌려 대중용으로 만들었다며 김연수와 판소리, 창극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판소리가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명맥을 잇고 있지만 한때는 많은 사람이 일생을 바쳐도 좋을 만한 대상이었다며 이런 공감을 통해 오늘을 사는 이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다행이다고 덧붙였다.저자는 전북작가회의 회장, 전북민예총 회장, 판소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남민시> 동인이다. 지난 1991년부터 판소리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 주말
  • 이세명
  • 2015.01.16 23:02

[이완희 KBS PD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요새였다'] 일제가 전북에 구축한 군사 시설을 파헤치다

고인돌 공원과 수박, 복분자 등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진 고창. 평화롭고 한적하기만 한 농촌지대인 고창군에 남한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일본군 진지동굴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면, 해리상하무장공음성송면 지역에 있는 어떤 산에 올라가더라도 콘크리트로 만든 토치카와 땅굴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완희 KBS PD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의 군사요새였던 전국 각지의 흔적들을 3년여에 걸쳐 추적, 조사해 책으로 펴냈다. <한반도는 일제의 군사요새였다>(나남). 저자는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현재 전쟁기지의 흔적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개발과정 속에 훼손되고, 사람들 기억 속에 잊혀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추적에 나섰다. 2008년부터 50개가 넘는 현자을 수차례 답사하며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지역의 원로들과 향토사학자의 증언을 듣고, 일본 전쟁유적 전문가와 학자들의 자문을 거쳤다. 전북에서는 고창 외에도 부안군 일원과 군산시에도 일제의 본토결전과 최후 저항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일제가 군산지구를 전략적으로 중요시 했는데, 항구와 비행장의 소질이 양호하고, 목포순천 방면의 배후를 공격하거나 대전 방면으로 전진하여 대구 평지 방면의 작전에 유리한 점 등이 그 이유로 꼽혔다. 책은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시설을 구축한 구체적인 의도와 유적을 함께 살필 수 있도록 부산과 여수지역에 구축한 요새시설, 군산 육군집중비행장과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 군산분교소 등 수상항공특공기지들, 고창의 방어진지 등 본토결정과 최후의 저항진지 등 6부로 구성됐다. 저자는 지금까지 군사사 측면에서 일제의 통치시기를 접근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며, 일제가 한반도에 구축해놓은 군사시설에 대한 연구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의 성격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저자 이완희 PD는 전국은 지금 추적60분 뉴스투데이 세계는 지금 역사스페셜등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현재 프로그램 제작을 맡고 있다.

  • 주말
  • 김원용
  • 2015.01.09 23:02

[최명표 씨 '전북근대문학자료'] 조선말 개화기·일제 강점기 발표 작가 437명 작품 1178편 집대성

해방 전 도내 출신 문학인의 작품을 집대성한 총서가 발간됐다. 도내 문학사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최명표 씨의 손을 거쳐서다. 도내 대표 출판사인 신아출판사와 꾸준히 지역문학자료총서를 내는 그가 이번에는 <전북근대문학자료>를 선보인다.〈전북근대문학자료〉는 우선 그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6권 분량으로 각 권도 600쪽에 이르며, 전체는 200자 원고지로 1만4000장이 넘는다.이 책은 조선 말 개화기부터 해방 전까지 발표된 문학 작품을 모았다. 도내 출신 437명의 작가들이 발표한 개화가사 3편, 시시조 235편, 소설 12편, 동요동시 256편, 동화 32편, 동극 2편, 평론 92편, 수필 144, 전설 15편, 기타 387편 등 모두 117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수 년간 수집한 자료의 일부를 내보인 최 문학평론가는 이번 책에서 기존에 통용되던 문학의 범주를 확대했다. 을사늑약 이후 일어났던 애국계몽운동기에 민중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도내 문인을 다뤘다. 도내 인사가 주축을 이뤘던 잡지 〈호남학보〉에 실렸던 작품을 상당 부분 넣었다.특히 김제 출신 실학자 이기의 글쓰기에 주목했다. 이기는 〈호남학회〉의 편집 겸 발행인이었다. 최 문학평론가는 그의 글쓰기가 도내 고전문학사와 근대문학사를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했다고 풀이했다.이와 함께 이 책에는 전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주역이었던 부안 출신 신일용, 변호사로 알려졌던 전주의 정우상, 김제의 청년운동가 박두언의 작품도 있다.군산의 고무공장에 취직했던 시인 김광균의 시, 카프 비평가 장준석의 평문, 옥구 출신 소설가 이근영의 동요, 서정주의 고향 친구로 동인 활동을 한 부안 출신 조남철과 한국기원을 창설한 이성범의 시도 실려 있다. 전주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1930년대 여성해방문학을 주창했던 임순득, 교조적 비평가에서 친일기업가로 변신한 옥구 출신 문원태, 전남 고흥 출신으로 신흥학교에 유학했고 동요 자전거로 유명한 목일신 등의 작품은 도내 문학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점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더불어 이 자료집은 국어학자간 알력도 소개했다. 주시경 계열의 조선어학회와 박승빈 측의 조선어학연구회간 갈등 속에서 이에 가입한 도내 국어학자의 글도 게재했다. 한글파에 이병기정인승권승욱김선기, 정음파에 임규백남규양상은 등이다. 저자는 이들의 주장을 통해 학문 연구에 논쟁이 필요한 까닭을 밝히며, 현행 한글맞춤법통일안의 문제점도 파헤친다.또한 작가들이 창씨개명한 사례도 담았다. 도내가 다른 지역보다 창씨율이 낮아 도지사가 경질된 일화도 곁들였다.계간 〈문예연구〉 편집위원인 저자는 우리나라에 근대문학이 시작된 지 100년이 넘었어도 아직까지 제대로 쓴 문학사가 없다며 현재 유통되는 한국근대문학사들은 각 지역의 문학사적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서울에서 활동한 유명작가를 중심으로 서술돼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 사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그는 이어 전북은 정읍사나 상춘곡 등 문학적 유산이 풍부하고 그것을 자랑하면서도 자료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며 문학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보존하려는 움직임을 촉구하기 위해서 연구한다고 엮은 이의 변을 전했다.그는 이에 앞서 〈전북지역시문학연구〉, 〈전북지역아동문학연구〉 등의 저서에서 도내 출신 작가들을 조명하는 한편 〈문예연구〉에 도내 출신 작가의 작품을 발굴소개해 왔다.김창술의 전기와 사진자료, 천도교회월보에 발표된 김해강의 최초 발표작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전북대 총장을 지낸 철학자 고형곤이 일제시대에 응모한 소설 당선작과 수필 등을 세상에 알렸다.그는 개인적 연구와 함께 각 지의 문학 연구자들을 이어 한국지역문학회를 만들어 지역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그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역작가총서로 〈이익상문학전집〉, 〈유엽문학전집〉, 〈김창술시전집〉 등을 펴냈다. 앞으로도 소장한 문학자료를 연작으로 만들 계획이다.〈전북근대문학자료〉의 출판을 맡은 신아출판사 서정환 대표는 도내 문학자료의 정리에 참여한다는 출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출간을 단행하게 된됐다며 앞으로도 최 편집위원과 지역 문학 자료를 정립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 주말
  • 이세명
  • 2014.12.19 23:02

[조석중 씨 '독서를 명령하라'] 삶을 바꾸는 아름다운 명령 軍생활 의미·희망을 말하다

과연 군 생활이 무의미한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고민이 〈독서를 명령하라〉(더클코리아)를 쓰게 된 계기입니다.다사다난했던 2014년. 그 가운데 우리 군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뉴스에서도 군대에서 일어난 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가장 가슴을 졸이는 건 부모님이겠지요. 군에 자녀를 보낸 부모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정신적, 육체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여념이 없는 장병 당사자들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저는 책을 통해 대한민국 군대는 희망이 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군대의 시간은 자신을 다듬어 더 큰 세계를 품을 준비를 할 수 있는 위안과 희망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또한 인성 함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군대입니다. 인성은 강압적이거나 억압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경험을 통해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즉, 깨닫고 생각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깨닫고 생각하는데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바로 책입니다. 진정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장병들이 책을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우연히 기회가 되어 35사단 강감찬대대의 독서토론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점과 제가 군생활을 통해서 얻었던 경험과 군대 독서가 인생에 있어서 큰 힘이었다고 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실었습니다.군대에서의 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입니다. 미래의 자신을 직면해 건강하고 발전적인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 군대독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군대에서는 독서를 강조하며 자기 계발의 시간도 많이 주어져 있습니다.저는 과거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했었습니다.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면 더 이상 힘든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제대했더니 세상에는 정말 싸워야 할 것 들이 많았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독서를 명령하라〉는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독서를 명령했던 저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책을 통해서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름다운 명령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이 책은 신세대장병들의 독서문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군대에서 독서를 해야 하는지, 군대에서의 시간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추상적이지 않고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들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각 계급별로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독서하고 정리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법도 소개하였습니다.또한 군에 자녀를 보낸 부모님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부모들도 군에 자녀를 보낸 기간이 자녀와의 소통과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도 책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군에 있을 때 부모가 보낸 편지나 짧은 글귀가 담긴 한 권의 책은 자녀에게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군에 있는 기간이 최고의 훈육기간이라고 자녀에게 편지를 쓰거나 책을 선물한 부모들이 이야기합니다. 책에서는 자녀에게 편지를 쓰는 방법과 실제 편지내용 등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군생활을 통해서 자녀가 성장하는 길은 부모의 관심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책에서는 과자보다는 책을 선물하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책에는 군대 독서뿐 아니라 개인과 회사조직 내에서 독서를 명령한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큰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기업의 사례와 개인의 사례를 통해서 독서의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대한민국의 장병들이 책이라는 무기를 유용하게 다룰 수 있길 바랍니다. 책이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하는 전우들과 소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도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또한 독서를 명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책이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습니다.올 겨울 크리스마스에 자녀, 애인, 조카 등이 군대에 있다면 그 어떤 선물보다 책 한 권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데 책 한권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바꾸는 힘은 독서에 있다. 독서를 명령하라.△저자 조석중 씨는 배움아카데미 대표와 리더스클럽 부회장을 맡고 있다. HRD컨설턴트, 독서경영 기획자, 인문학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주말
  • 이세명
  • 2014.12.12 23:02

[조윤수 수필집 '나의 차마고도'] 중국 차밭서 우려낸 茶 역사·문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적벽대전의 결전을 앞둔 순간, 주유의 부인 소교는 홀로 조조의 막사를 찾는다. 무릎을 꿇으며 조조의 철수를 간청하던 소교는 출전 전 차 한 모금을 권한다. 막사 밖에서는 출전의 명을 재촉하지만 소교는 차를 달이며 시간을 끈다. 찻잔에 넘치는 물에 조조의 야망을 비유한 소교는 누군가 그 욕심을 비워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찻잔을 비운다. 조조는 소교가 준 차로 인해 두퉁을 호소하고 결국 진격 명령은 늦춰진다. 이 시간 바람의 방향은 동풍으로 바뀌고 유비와 주유의 화공(火攻)은 조조의 군사를 강남에서 물리쳤다.차(茶) 한 잔의 여유가 역사를 바꾸고, 이를 구하기 위해 일찍이 동서양을 잇는 길이 열렸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비단길보다 200여년 앞선 교역길로 차과 말을 매개로 중국 서남부에서 인도까지 인류가 교류하는 길이었다.참살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차에 대한 애정지수가 오르기도 전 차에 흠뻑 빠져 차와 차문화의 전도사를 하고 있는 조윤수 수필가(70)가 차 에세이집 <나의 차마고도>(수필과비평사)를 냈다.그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커피가 아닌 소박하지만 은근한 (녹)차의 매력을 그의 체험과 함께 전한다. 차에 대한 상식과 역사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얽힌 일화, 문학작품 등을 원전에 충실하게 소개한다. <논어>와 중국 명나라 허차서의 <다소(茶疏)> 등 동양의 고전을 인용해 차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며, 중국과 우리나라의 주요 차 산지와 이에 대한 지식과 체험을 전달한다.그는 중국 당(唐)나라의 문인 육우(陸羽)의 책인 <다경(茶經)>을 알고 6개월간 중국 산지를 두루 살피며 차에 대한 앎을 체득했다.그는 중국의 역대 문인, 문장가, 예술가 등이 모두 차 전문가여서 차를 알고 마시다 보니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수 천년 동안 인류가 음미한 차의 기원은 인도 아샘 지방을 꼽지만 중국 운남성이야말로 3200년 된 차나무로 종주국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운남성 푸얼은 차마고도의 출발지로 3200년 이상된 차나무 향죽청고차수왕를 소개했다. 둘레만 570㎝인 이 나무에 매년 사람들은 참배를 하며 영적인 존재로 기리고 있다. 운남성 린창시 영덕현에는 300만 년 전 차나무 화석이 발견돼 차나무의 원산지로 재조명됐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우리나라의 경우 하동 정금리 도심마을에 있는 천년 차나무가 있다. 사찰이 있던 곳으로 스님들이 강론하던 장소란다. 중국의 왕 차나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전통차의 역사성을 상징하고 있다.이 책의 부제는 내 마음의 차 오심지다(吾心之茶). 오심지다는 조선 선비로 차교과서인 <다부(茶賦)>를 지은 한재 이목(李穆, 1471~1498)의 글귀에서 따왔다. 이목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차가 있거늘 어찌 다른 곳에서 또 이를 구하려 하겠는가(是亦吾心之茶又何必求乎彼耶)라며 차와의 혼연일체를 나타냈다. 저자도 역시 이런 마음이다.차림(茶林)에서 차(茶)님과 동침하다는 에세이에서 저자는 차와의 혼연일체를 꿈꾼다.차나무 새순이 치밀어 오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성거리기 마련이다. 신들린 사람처럼 차밭으로 달려가게 된다며 찻잎과 종일 서로 비벼대며 놀고 햇빛이 여러져서야 발길을 돌릴 수 있다고 애정을 과시했다.이어 찻잎이 익어가는 향에 젖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자정이 다 되도록 서로 젖어들었다며 네댓 시간 단계마다 습이 빠지고 향이 모아져서 찻잎이 익어갔다고 인내와 함께 만나는 차를 예찬한다.차 향처럼 그렇게 맛있는 향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냥 차향이라도 몸에 배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다.그는 차를 마시는 과정을 삶에 빗대며 커피보다 칼로리가 적고 카페인의 흡수가 낮은 점 등을 강조하며 우리 차 문화의 전통과 계승을 강조한다.더불어 그는 공복에 차를 피하고, 60도 이상과 냉차의 음용은 좋지 않다는 실생활 속 조언으로 책을 마무리한다.조윤수 작가는 진주에서 태어나 전주여고와 경희대, 부산동아대를 졸업했다.이후 전주에서 다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수필괴 비평>으로 등단해 저서로 <바람의 커튼>, <나도 샤갈처럼 미친 글을 쓰고 싶다>, <명창정궤를 위하여>가 있다.올해 제6회 목포문학상 수필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 주말
  • 이세명
  • 2014.12.05 23:02

[최기호 씨 '태인·칠보의 혼불'] 애향심이 꽃 피워낸 정읍 향토사 집대성

현직 법률사무소 사무장이 정읍지역에 내려오는 향토사를 집대성해 눈길을 끈다.저자인 최기호 씨(70)는 옛 태인현권 역사의 한 모퉁이에 대한 연구보고서라 표현한 〈태인칠보의 혼불〉(하늬바람에 영글다)을 발간했다.그는 고향의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집필했다며 태산권인 태인 칠보 옹동 산내 산외 감곡 북면 일대의 향토사 연구에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고 발간의 변을 밝혔다.그는 이어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풍설이나 전설로 지워지는 만큼 정체성 정립을 위해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역사 서술은 선인을 위한 진혼이자 재생작업으로 정작 태인현권에 살고 있는 후인은 그 흔적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여서 이전에 펴낸 〈태산의 향기〉를 보완하고 증보 형식을 빌렸다고 설명했다.저자는 인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곁가지 이야기를 실어 이해를 도왔다. 조선왕조실록의 해석과 원문뿐 아니라 사진 자료를 함께 실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2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470쪽 분량의 원고를 탈고했다.단종의 비였던 칠보 태생의 정순왕후 송씨, 태인 출신으로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인생을 소개하며 파란만장한 조선왕실의 사건과 주변 인물을 담았다.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태인 출신 지도자들을 통해 조선 말기 패국의 과정과 동학농민군의 최후를 살폈다.또한 정읍지역과 인연을 맺은 의외의 인물도 알 수 있다. 소설가 홍명희의 경우 그의 아버지 홍범식이 태인 군수로 부임하면서, 일본 유학시절 방학 중에 부친의 임지에서 방각본(坊刻本) 고서를 읽었다는 것. 이에 앞서 300년 전에는 허균이 함열로 유배됐다 태인에서 은거한 기록도 보탰다. 일재 이항, 동초 김석곤, 모은 박잉걸 등 인물뿐 아니라 고현내 향약, 칠광십현 등 선비문화와 관련한 자료도 소개했다.또한 송시열의 사사장소로 태인과 정읍간 지경(地境)터를 꼽았다.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던 도중 정읍현과 태인현의 경계인 지경터에서 왕명으로 사약을 가지고 내려온 금부도사를 만나 그 자리에서 사사됐다는 설이다. 당시 양 관할의 관리들이 서로 시신 수습을 피하려 할 때 태인현 유림의 세력이 정읍현보다 강해 정읍현 서리가 시신을 대전으로 운구했다는 썰을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 추정했다.저자는 정자 주변의 연못에 핀 연꽃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해서 붙여진 피향정(披香亭)의 유구한 역사도 자랑했다. 신라시대 말 최치원이 태산현감으로 재임하던 시절 창건한 뒤 몇 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고 시인과 묵객의 시문도 실었다.더불어 국내 최초 방각본의 출판지로 태인을 꼽았다. 방각본은 조선시대 민간 출판업자가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다. 태인 출신 손기조의 간본(刊本), 전이채박치유의 간본으로 간행한 13종의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방각본으로 전해내려 온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추천사를 쓴 한승헌 변호사는 지역이나 명소마다 간직된 사연이 잘 정리됐고, 내용의 풍성함과 치밀함이 놀랍다며 저자의 남다른 애향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기술했다.최기호 씨는 김제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자랐다. 경희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하고, 변호사 이용훈 법률사무소와 변호사 한승헌 법률사무소를 거쳐 (주)유신에서 근무했다. 현재 석률합동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태산의 향기〉가 있다.

  • 주말
  • 이세명
  • 2014.11.28 23:02

이목윤 시인 8년만의 새 시집 〈영혼의 반짇고리〉

이목윤 시인(78)이 시집 <영혼의 반짇고리>를 냈다(신아출판사). 6번째 시집이다.<차나 한 잔 더 드시게> 이후 8년만에 제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시인의 공백 기간은 소설로의외도때문이었다.유년 시절의 고향인 완주군 소양면의 아름다움과 전설, 설화 등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향수가 너무 깊고 넓어서 조곤조곤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장편소설 <소양천 아지랑이>가 됐습니다. 내친김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틈틈이 써두었던 단편소설들을 묶어 낸 것이 <비둘리 별> 등 9편의 작품집이었습니다.이 시인은 그 후 소설 쓰기를 그만뒀지만, 그 외도가 심했는지 시 쓰기가 더 어려워지고 안 써졌다고 토로했다. 방황하고 고뇌하면서 한 편, 두 편 썼던 시들을 이번에 묶어냈단다.어느 때부턴가 시인은 구도자적이어야 하고, 시는 고행 속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더 고행애햐 할 구도의 길, 그 길이 어디쯤인지, 산인지, 바다인지, 헤아리기도 전에 영혼의 문제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버립니다.이 시인은 구도자적인 삶, 사려깊고 폭 넓은 삶을 시인의 사명으로 지니면서도 영혼의 문제도 더욱 천착하여 좋은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유인실 시인은 이목윤 시인의 시 쓰기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고통 콤플렉스로 접근했다. 청년 시절, 전투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시달렸던 그가 공포와 실존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존재의 구원으로 보았다. 현실적인 삶에 대한 상상적 대안으로써 시가 삶에 참여해야 하는 근거를 찾는다고 이 시집 작품해설에 풀었다.영혼의 반짇고리 바람이 시인입니다 허수에 허수 곱하기 꽃잎은 금강으로 흐르고 전주비빔밥의 연분 등 5부에 걸쳐 80여편의 시가 수록됐다.문예가족과 전북문인협회표현동인으로 활동한 이 시인은 1990년 <한국시>로 등단했다. 전북불교문학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한국전쟁문학상작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주말
  • 김원용
  • 2014.11.21 23:02

김선희씨 - 박상윤 〈선한 영향력〉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미국 시인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가의 이 한 구절을 삶의 목표로 삶은 이가 있다. 요즘 중국 상하이 한인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선한 영향력(북셀프 펴냄)의 저자 박상윤 회장(51상해상윤무역 대표)이다.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은 기업인의 인생목표로는 좀 의외다. 2008년 상하이에서 2억원으로 창업하여 지금은 400억원 매출을 올리는 기업의 회장이며, 광대한 가능성의 땅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멘토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책 제목 선한 영향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인들과 뜨겁게 교감하여 사업에서 성공하고 그 영향력을 선량하게 확산시키고 있다.나는 대학에 막 입학한 1982년 전북대 교정에서 박상윤 선배를 만났다. 당시 무역학과 2학년이던 선배는 내가 가입한 써클의 멤버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상과대학보다는 인문대쪽에서 더 자주 만났다. 선배는 시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는 우리와 더 정서가 맞았던 것이다. 당시 대학은 민주화운동의 급류 속에 있었다. 전투경찰로 입대했던 선배가 휴가 나와 엉망으로 취해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위대를 막아야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젊은이들이 서로 대치해야하는 현실이 미치도록 싫다고 선배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시위진압을 거부했다가 모질게 맞기도 했던 그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마침내 모범적인 기업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이 책속에 소개되어있다.박상윤 회장은 90년대 초반 국내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중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현지인도 감탄할만한 수준 높은 중국어를 구사하고 진정을 담은 비즈니스로 회사에 큰 이익을 주었다. 책에 소개된 그의 노력과 중국어공부 일화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흔한 지방대 출신이라는 허물 한번 등장하지 않는다. 악조건도 내가 노력하면 좋은 조건으로 바뀐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가 인생의 기로에서 창업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 자신이 중국의 그 분야에서 전설이었음을 알게 된다.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비즈니스맨, 중국인들과 진심이 통하는 한국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이 기반이 그가 창업하여 성공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 상윤무역은 균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회사이다. 사장의 차를 운전하던 중졸 학력의 운전기사들은 차례로 영업간부,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새로운 일에 자신없어하는 운전기사에게 당신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나를 믿고 뛰어보라고 박 회장은 독려했다. 그는 기업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가장 먼저 직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유럽계 대기업 못지않은 대우를 하고 누구라도 열심히 하면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는 나는 회장이 되고 싶다, 당신들을 사장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덕분에 회사의 매출은 일반적인 경기에 관계없이 치솟고 사무실 규모는 나날이 커진다. 청소원과 택배원에게도 따뜻한 표정으로 먼저 인사하고 경어를 쓰는 박 회장은 중국인들에게 인격적으로 매력있는 인물로 비춰졌으며 곧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올해 여름 박 회장은 회사직원 전체를 고향 전주로 초청했다. 한옥에서 잠자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상윤무역 직원들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주라는 도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해마다 창업기념일에는 전직원 해외여행의 보너스를 약속받았다. 이번에 박상윤 회장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의 인생이 절반의 지점에 왔다고 생각해서다. 그의 꿈은 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것이며 10명의 사장을 두는 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이다.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실천하여 지금에 이르렀듯이. 그것은 단순히 2조원의 매출에 그치지 않는다. 2조원의 가치를 넘어서는 선한 영향력의 확산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그가 언젠가 20대에 마치지 못했던 시를 쓰고 한권의 단아한 시집을 낼 것으로 믿는다. 그가 진심경영을 하고 중국인들이 칭송하는 인격매력(人格魅力)의 소유자가 된 자양분의 일부는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문학적 성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희씨는 신문를 거쳐 현재 우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주말
  • 기고
  • 2013.12.27 23:02

이병초 시인 - 김영춘 시집〈나비의 사상〉

김영춘 시인은<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나비의 사상>(사십편시선, 2013. 9. 23)을 상재했다. 도종환은 첫시집 발문에서 그의 시는 아무래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되비쳐보게 하는 거울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 시집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가 최초로 시작되는 지점이 인간사든 자연사든 시인의 시선에 포획되어 형상화된 시적 발화는 동시대인들의 동의가 필요치 않은 당위성을 지녔고 그 귀결점은 단연코 거울을 내장한 배려이기 때문이다.김영춘의 시 속에서 돋을새김이 되는 배려는, 현실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임을 전제한, 개성의 표출에 주력하다 못해 불화와 불통의 방식으로 괴기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를 도색해내는 시들의 발화와 자리를 달리 한다. 김영춘의 시도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 부조리와 순정이 뒤섞인 지점에 뿌리가 닿아 있지만 차가운 교환가치의 현실을 거절하는 지점에서 소통의 자리를 확보한다. 거기엔 전체주의적 또는 관념적 불손함이 없다. 동시대를 앓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물질에서 못 벗어난 우리를 호출해내는 성찰이 있을지언정 텅 빈 기표에 불과한 휘발성 발언이 없다.갈 데까지 가버린/ 절정의 경계에 서지 않고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또 시를 읽느냐는 시도 안 쓰는 친구의 말을 듣다가그렇지 않느냐는/ 술 취한 다그침을 듣다가화들짝/ 나는 한 번도 오르지 못한절정에 올라/ 기쁨에 몸을 떤다모든 기쁨의 순간보다/ 모든 깨우침의 순간보다 먼저갈 데까지 가버린 숨막힘이늘 두려운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절정전문사회역사적 절망, 실존적 절망에 뿌리를 댄 자기한계의 막바지에서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오는 환희의 순간을 시인은 절정으로 읽는다. 갈 데까지 가보지 못하고 늘 두려운 얼굴로/내 옆에 서 있었던 숨막힘, 삶의 모순을 정면에서 고민하지 못하고 비껴가기만 했던 부끄러움이 기쁨의 순간보다 깨침의 순간보다 먼저 숨막힘으로 온다. 이 숨막힘의 순간을 시인은 절정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갈 데까지 가버린/ 절정의 경계 그것은 자기한계의 막바지이자 목숨의 경계를 환기한다. 마음과 몸이 따로따로일 수밖에 없는 슬픈 길항을 삶의 정면에 놔보지 않는 한 자기한계의 막바지나 목숨의 경계를 만날 수는 없다. 시를 쓰고 읽는다는 자가 그 길항의 통점에 이르지 못했거나,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거나, 시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기득권 세력이 구획화한 질서에 복무하는 시는, 엄밀히 시의 형식을 가장한 행갈이에 불과하다는 뜻을 이 구절은 강하게 물고 있다. 열 살 무렵 십리 길 심부름에서/ 얻어 감춘 숭어 한 마리 있다바닷물이 거품을 물고 수문을 빠져나가는저수지의 한 중심/ 염전 일꾼들의 좁혀오는 그물망을 뚫고허리를 휘어 허공으로 몸 날리던/ 숭어 한 마리아스라한 수직의 높이에서/ 순간의 호흡으로 빛나다가그물망 너머 물결 속으로 사라져갔다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숭어를 보며/ 나는 다리를 후들거렸다여시구렁 어두운 산길이 무서워/ 후들거리던 때와는 달랐다무섬증과는 전혀 다른 후들거림을/ 온 몸에 품게 한 숭어 한 마리내 가슴엔 아직도/ 뙤악볕 아래 물결 속으로 사라지던그 후들거림이 산다-숭어 한 마리 전문 시인의 열 살 때 기억을 떠올린 이 시엔 후들거림을 뜻하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온다. 여시구렁 어두운 산길이 무서워/ 후들거리던 때와는 달랐다는 이 후들거림은 어른이 된 시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이 계기는 숭어를 내장시킨 기억을 무작정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포에 인접된 무섬증이 아닌,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용솟음치는 순간에 열 살 때 보았던 숭어가 떠올랐을 터이다. 염전 일꾼들의 좁혀오는 그물망을 뚫고/ 허리를 휘어 허공으로 몸 날리던 숭어, 그물망 너머 물결 속으로 사라지던 숭어는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현재적 삶의 극점에서 시인 자신과 동일시된 상관물이다. 후들거림에 해당하는 단어를 4번이나 쓴 이유는 이것이다.삶의 어떤 계기가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후들거림으로 시인에게 다가왔는지는 시엔 그 언표조차 없다. 그러나 이 숭어는 물결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독자의 가슴 속에서 퍼덕이게 하고, 문명네트워크란 저인망 그물에 걸려 삶이 옥죄어지는 형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시의 품이 현실의 품보다 넓다는 것을 환기하는 셈이다. 기억 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투영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계기가 기억을 현재의 시각에서 새롭게 직조하게 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세계를 마련하도록 독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후들거림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시의 울림이다. 동시대인에 대한 김영춘 시의 관심과 베풂과 소통과 배려가 드러나는 대목인 것이다. 새 시집에 수록된 편편엔 시를 위한 언어수사가 없고 시어 선택의 준엄함과 형식의 깔끔함은 시가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우려를 말끔하게 가시게 한다. 시대의 질곡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산을 오르다」「너무나 인간적인」「옛집에 눕다」「마을에서 살고 싶었다」등의 시가 그것이다. 펑펑펑 내린 눈으로 길이 막힌 동네에서 밥 한 술 떠 넣는 사이, 타자화 된 줄 알았던 동네사람들이 길을 내어 어린것들을 길바닥에 내닫게 하는 것을 보고, 터무니없는 순간에 다시 사람을 믿는다(「길」)는 곡진함과 진정성이 한데 묻어나는 자리에 그의 시가 다시 빛나기를 희망한다. 한때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래파가 텅 빈 기표였을지언정 그 안팎의 지금 시들이 1930년대의 이상李箱과 그 이후 황지우 박남철 김영승을 못 벗어났을지언정 부박한 현실 논리에 훼손당하고 싶지 않은 언어의 영토도 새삼 짚어보면서, 그의 시는 자신과 불화하는 세계에 행동할 것이다. ※이병초 시인은 1998년 계간 〈시안〉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 주말
  • 기고
  • 2013.12.20 23:02

이태환 씨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는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하여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라는 20세기 한국현대사 3부작으로 1300만 부라는 한국 출판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이 후 경제민주화의 화두를 담은 <허수아비춤>( 2010)을 썼고, 이어 시선을 중국으로 돌려 <정글만리>(2013)를 썼다. <정글만리>는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중국에 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중국에 근무하는 종합상사 부장인 전대광의 눈을 통해 중국경제에 엉켜있는 관시(關係), 급속한 경제개발 속에서 파생되는 환경오염과 부패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과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세계대국이 되었음을 또한 자세히 그려내 주고 있다.며칠 전 이젠 거의 30년 지기들이 되는 친구들의 송년회가 있었다. 친구 한 명은 사업상, 한 명은 공무수행 상 중국에 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중국과의 사업은 아주 가까운 사업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선후배들과 가진 가벼운 식사자리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아마 그 자리에서 중국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느 선배가 중국에 다녀온 근황을 얘기해서였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좌중에서 중국에 대한 자신의 소감이 뒤를 이었는데, 나는 10년이 더 지난 일이 되는 중국에 다녀왔던 때 일을 소개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여러 일화가 있었지만 그 때 내가 얘기했던 것은, 열차에 늦은 승객을 탈 수 있게 해주는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 대략 3-4인이 조가 되어 허겁지겁 역으로 들어오는 승객이 있으면 옆에서 뛰면서 흥정을 한다. 지각이 분명한데도 돈을 주면 어떻게든 탈 수 있게 해주겠다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한두 명은 짐을 들어 재빨리 달려가고, 한 명은 날쌔게 열차 앞으로 달려가 열차를 몸으로 가로 막더라고. 뒤를 이어 다른 이는 어떻게 가짜 달걀을 만들어 팔수가 있느냐고, 먹는 걸 가지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 자리에서 중국에 많이 다녀온 분은 중국이 부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정글만리〉는 중국에 대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책을 펴내며 작가는 지금 중국의 인구는 14억에 이르렀고, 중국은 G2가 되었다. 이 느닷없는 사실에 세계인들이 놀라고, 중국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예상을 40년이나 앞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흔히 말하는 기적이 아니다. 이제 머지않아 중국이 G1이 되리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다 라고 했다.내가 중국의 모습은 본 것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시대상과 맥이 닿아 있었던 듯하다. 이 말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였고, 〈정글만리〉에서도 중국인들이 부를 늘리기 위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는 지 잘 나와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주로 덩샤오핑의 대외정책을 일컬었던 말이었다. 뒤를 이은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起) 즉,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의미로, 기존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대신하여 중국의 외교노선으로 취했다. 현재 시진핑의 행보를 보면, 주동작위(主動作爲) 즉, 대외정책에서 해야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 라는 말이 빈 수사가 아닌 듯하다. 〈정글만리〉는 이런 사자성어 같기도 하고 슬로건 같기도 한 단어들이 중국 현대사에서 어떻게 맥락 지워지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고,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중국에 대해 알아갈 수 있게 해준다.※이태환씨는 전북대병원 내과 전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송천연합내과 원장으로 있다.

  • 주말
  • 기고
  • 2013.12.13 23:02

김자연 아동문학가 - 도다가즈요 〈여우의 전화박스〉

겨울엔 마음이 움츠러들기 쉽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힘들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난 아름답고 훈훈한 동화집을 꺼내 읽는다. 그러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어떤 일을 바라보면 실마리가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동화가 나에게 주는 힘이다. 도다가즈요의 〈여우의 전화박스〉도 그 중 하나이다.〈여우의 전화박스〉를 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2003년 한국간행물위원회 서평위원으로 매달 한 권의 동화집을 골라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을 때였으니까.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온기가 그리울 때면 난 이 책을 꺼내 보곤 한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따뜻한 휴식처요, 아늑한 엄마의 품이다. 이 책은 제 8회 히로스케 동화상(일본의 안데르센상)을 받은 작품으로, 전화박스와 여우라는 표제에 끌려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책 내용은 아기여우를 잃은 엄마여우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인간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동일시하는 이야기이다. 사랑스런 아기여우를 병으로 잃고 난 엄마여우는 살아갈 힘을 잃고 길을 걷는다. 그런데 엄마여우는 길가에 서 있는 전화박스에 한 아이가 달려와 전화를 거는 것을 목격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그 아이를 엄마여우는 마치 자기 아이처럼 느낀다. 엄마여우는 그 아이 말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여우의 존재조차 모른다. 엄마여우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전화박스 가까이에서 아이의 대화를 듣고 답하며 아기여우를 잃은 슬픔을 달랜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박스의 불빛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걱정이 된 엄마여우는 그 아이가 전화를 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엄마여우가 요술을 부려 전화박스가 된 것이다. 전화박스가 된 엄마여우는 아이와 통화를 하게 되지만 그 통화는 엄마여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만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엄마가 사는 도시로 가게 되어서 더 이상 전화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엄마여우는 아이가 곧 엄마를 만날 것을 생각하며 마치 자기가 아기여우를 만나는 것처럼 축하해 준다. 그 때 엄마여우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기여우의 외침을 듣는다. 엄마여우의 마음속에서 아기여우는 언제까지나 살아있다고.이 책은 아기여우에 대한 엄마여우의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책을 접하는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위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사실 여우와 인간 아이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소통이 이 책에서는 이루어진다. 그 힘은 사랑이다. 엄마여우의 아기여우에 대한 사랑, 아이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인간과 동물의 벽을 허물어 서로 소통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낸다. 엄마여우의 사랑은 마법 같은 요술로 아이를 기쁘게 했고, 전화박스는 마지막 생명을 다해 엄마여우를 위해 빛을 밝혔으니까. 이 책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기적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따뜻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전화박스가 되어줄 수 있는 마음.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동화는 가슴을 따뜻하게 해서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한다. 아이를 위해 전화박스가 되어 준 엄마여우의 마음이 이 겨울 우리 마음속에서도 따뜻한 햇살로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아동문학가 김자연씨는 김제 출생으로 1985년 아동문학평론신인문학상에 동화가, 2000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화집〈항아리의 노래〉 〈새가되고 싶은 할머니〉, 동시집 〈감기 걸린 하늘〉, 그림책〈우리 집에 놀러와〉 〈개똥할멈과 고루고루밥〉 등이 있다. 2013년 동화집 〈항아리의 노래〉가 미국에서〈A Song of Pots〉로 번역 출간되었다.

  • 주말
  • 기고
  • 2013.12.06 23:02

최기우 극작가 - 서권 〈시골무사 이성계〉

그는 바른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세상은 언제나 칼끝 위의 맨발이었다. 다행히 그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창끝에서 춤을 추는 방법을 알았다. 웃음은 부드러웠고 여유가 있었으며, 삶의 진실을 투명하게 응시하는 맑은 눈을 가졌다. 소설가 서권(1961-2009).글에 대한 그의 집념은 무서운 것이었다. 집필실이 없었던 그는 자동차에서도 글을 썼다. 때론 김제 금평저수지 곁에 차를 세우고 1,000자 원고지나 학생들이 쓰고 남은 OMR답안지 빈 공간을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나갔다. 엉덩이가 짓무르면 화장실 변기를 방석처럼 깔고 앉았다. 그 독한 의지는 그의 마지막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려 말, 마흔 여섯 살 백전노장 이성계의 건곤일척(乾坤一擲). 남원 인월의 황산에서 이성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벌인 황산대첩을 그린 〈시골무사 이성계〉(2012다산책방)다.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구성하면서 그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장대한 결전의 시간을 단 하루의 전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패기는 차고 넘친다. 고려군과 왜군의 진영, 무사들의 세밀한 전법과 전투와 무기 사용 등에 대한 묘사는 작가가 14권 분량으로 써 둔 소설 「마적」에서 쌓은 내공으로 고금무쌍(古今無雙) 전개된다. 전투가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 수백 개의 풍등이 달처럼 떠오르는 장면과 화살을 쥐는 들숨과 당겼던 살을 푸는 날숨의 찰나는 책을 내려놓지 못할 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그는 강원도에서 군복무 중이던 1984년 〈실천문학〉에 서소로란 필명으로 시 「황사바람」을 발표하며 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 시에서 그는 이 나라 어느 강가를 돌아도 흐린 황토물 거기 미꾸라지 몇 마리 흐르는 물 휘저으며 살찌우고 있나니, 함께 걷혀다오.라며, 지배계층만을 위한 신화를 깨고 민중의 허기진 배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고, 의식의 자유를 소망했다. 호흡이 좋은 시를 쓰고 맥이 탄탄한 소설을 써도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던 살벌한 시대. 그는 더 살벌한 군대에 있던 그때에도 글을 통한 외로운 투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시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꾼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2007년 〈실천문학〉에서 단편소설 검은 선창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뒤늦게 소설가의 신고를 치렀다. 그때 그는 인간이 사회의 큰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문학도 이 범주에서 움직인다. 사회 현상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문학은 사회 변혁에 희망을 주어야 한다. 삶의 터전에 근시적 애정을 가지고 문학의 몫을 다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저항정신의 원형과 본질의 환기. 그에게 등단은 목적이 아니라, 외연을 넓히기 위한 작은 걸음이었던 것이다. 〈시골무사 이성계〉에도 그 의미는 살아 있다. 이성계에게 황산의 전투는 지면 죽음으로 답해야 하고,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싸움이었다. 슬프지만 당찬 이성계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작가 서권은 소설을 빌어 윽박을 지르지도, 부추기지도 않고 나직이 말한다.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모두가 망상이라고 해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길 수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변혁을 꿈꿀 수 있다고. 아픈 시대의 상처는 걷어내야 한다고. 이 책에는 묵묵히 세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어느 시골 무사와 소설가가 있다. 변방의 거친 시골무사에서 혁명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이성계와 참담한 역사에 분개하며 한민족의 쓸쓸한 역사를 주시하고 있는 시골작가 서권이다. 내가 한 일에 후회가 없도록. 어두워 깊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네. 나는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네.(2007년 서권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난세의 시대, 그의 고고한 향기가 더 그립다. ※극작가 최기우씨는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한 이후 연극창극마당극뮤지컬창작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고 있다. 희곡집 〈상봉〉과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기행서 〈전주, 느리게 걷기〉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과 전주대 국문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주말
  • 기고
  • 2013.11.29 23:02

양정복씨 - 복효근 시인 〈따뜻한 외면〉

△슬픔 그리고 울음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 누리 햇살에 둘리어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중에서)처음 복효근 시인을 만난 것은 1993년 〈시와 시학〉에서 나온 첫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를 통해서였다. 시집의 제목이 된 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의 부제는 용담꽃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뿌리를 씹으면 용의 쓸개만큼이나 쓰기 때문에 붙여진 꽃말이 바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이다.이제 막 삼십이 된 나는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렸다. 4월, 세상에 첫손을 내미는 나뭇잎, 초록보다 노랑물이 더 많아 여리디 여린 새잎처럼 나의 이십대는 쉽게 상처 입는 시기였다. 아마도 시인 또한 눈두덩 찍어내며 주저앉는 이십대를 보냈나보다. 누구보다도 슬픔을 알기에 그대의 슬픔까지도 사랑하는구나 생각했다. 나의 상처로 나 또한 누군가의 슬픔을 더 깊이 사랑하리라 결심하며 내 이십대는 위로받았다. △더욱 흥건해진 슬픔 그리고 울음7번째 시집을 낸 시인은 이제 오십에 닿았어도 여전히 상처 많아 아프다. 시집 곳곳에 흐르는 울음은 수직으로 가파르기도 하고(매미) 흥건히 세상을 적시기도 한다.(소쩍새 시 창작 강의) 이렇게 울음이 세상을 적시도록 상처가 아픈 이유는 천지사방의 길이 모두 막혔거나, 세상이 우리가 지켜야할 꿈과는 반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길이 막혔을 때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한사코 길을 내는 기도의 자세를 지킨다. 오직, 이 길 끝에 한 줌 재도 연기도 남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무거운 오호츠크 기단을 맞서는 흰빛의 연대를 보여주거나(자작나무 숲의 연대), 또는 기어이 가야할 곳이 있기에 제 살을 깎으며 거슬러 올라가느라 상처투성이가 되고야 만다.기어이 가야 할 그 어딘가가 있어여울목을 차고 오르는 눈부신 행렬 좀 보아잠시만 멈추어도 물살에 밀려 흘러가버릴 것이므로아픈 지느러미를 파닥여야 하네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조차 눈 감지 못하네오롯이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어〈중략〉거친 물살에 제 살을 깎으며강을 거슬러 오르네(성(聖) 물고기)△내성적이고 두려움 많은 영혼시인은 어쩌면 겁 많고 소심한 내성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위기에 닥치면 그 동안 길러온 대응방법도 모두 소용없이 천적에게서 몸을 감추는 대신/ 천적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지는 대신/ 동그랗게 제 몸을 말아서 슬픔의 팔다리와 주둥이와 항문과 성기를/ 제 몸 안으로 욱여넣고 검은 콩알로 변신(공벌레)하고 싶다. 그런 시인에게 무거운 오호츠크 기단에 맞서거나 제 살을 깎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여도 가지 않을 수 없다. 흰빛, 얼음, 은빛 비늘, 눈빛 등 백색 이미지로 나타나듯이 그 길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라면 외면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리는 심청이처럼 뛰어내린다. 순수한 영혼이 시키는 대로 올바른 길을 향해 한 몸을 던진다. 두려움에 떨며/ 떨다가 질끈 눈 감고 뛰어내리는/ 저 작은 물줄기들의 투신에/ 폭포는 비로소 장엄폭포가 된다(폭포) 매달렸던 그 끝에서/ 아쉬운 듯 두려운 듯 망설이다/ 손을 놓고 뛰어내리는 물방울(소리 그림자)△더욱 따뜻해진 위로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나비 쪽을 외면하는늦은 오후(따뜻한 외면)맘 없는 말로 표현하고 애정 없는 눈길로 위로하는 것은 손을 베는 풀잎처럼 사람을 아프게 한다. 모르는 척 외면해 주는 것이 더 큰 배려가 될 때도 많다. 누구나 자신이 모자라는 것을 잘 안다. 유난히 쉽게 아픈 생살을 안다. 모자라는 곳을 채우려는 노력을, 아픈 생살이 아물며 단단해지는 과정을, 모르는 척 지켜보는 것은 깊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순도가 높기에 쉽게 상처 입는 영혼의 시인, 타인의 아픔까지도 내 아픔으로 공감하는 시인의 눈길이기에 그 위로 또한 더욱 따뜻해졌다. 퍼붓는 비를 피하겠다고 나비 한 마리가 숨어든 작은 나뭇잎, 힘없는 이가 이겨내기엔 녹록치 않은 현실의 공격을 피하겠다고 찾아든 곳 또한 부실하기만 하다. 힘겹게 견디는 그 시간을 외면으로 지켜보는 여유, 그 외면 속에서 이 겨울이 더욱 따뜻하다. ※ 양정복씨는 전주여고와 전북사대부고 국어교사를 지냈으며, 전북교원연수원을 거쳐 현재 완주교육지원청 장학사로 재직하고 있다.

  • 주말
  • 기고
  • 2013.11.22 23:02

한승헌 변호사 선집 4권 발간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된다." 한승헌(79) 변호사는 폰 바이체커 옛 서독 대통령이 1985년 나치 패망 40주년 기념식에서 한 연설 일부를 인용했다.산촌 어린 시절부터 검사로, 변호사로, 감사원장으로, 교수로 살아온 삶을 돌아본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범우 펴냄)를 가리키면서다.한 변호사는 "우리는 지난 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체험자로서 기록을 남기고 아픈 추억을 들쑤셔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도록 충동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진안 출신인 한 변호사는 국내 시국 사건 전문 변호사 1호로 꼽힌다.전북대 정치학과 졸업 직전 지금의 사법고시인 고등고시 사법과를 통과한 그는 4·19혁명의 폭풍으로 숙청과 사퇴가 잇따르던 1960년 11월 부산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의 검사로 부임, 5년 후인 1965년 변호사로 전업했다.그는 '정의의 수호자'나 '약자의 편에 서는 법관'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교사·아나운서·언론인의 꿈을 접으면서 취업을 위해 본 시험에서 운 좋게 합격해 이 길을 걷게 됐다고 했다."지금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을 해야해서 본 시험입니다. 그런데 법조인이 되고 난 후 세상에 접어들고 보니 상황을 방관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를 외면한다면 훗날 스스로 가책에 사로잡힐 것 같았고, 그걸 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후발적인 역할 자각'을 한 셈입니다." 실제 그는 소설 '분지' 사건을 시작으로 동백림 간첩단 연루 문인사건, 담시 '오적' 사건, 정부 '보도 지침' 폭로 사건 등 필화 사건을 도맡았다. 무죄를 확신했지만 재판부의 유죄 판결도 자명했던 사건들이다. 지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걸어간 그 길에서 그는 많은 선생을 만났다고 했다.첫 담당 필화 사건의 발단이 된 소설 '분지'의 남정현 작가를 비롯해 '천상(天上) 시인' 천상병(1930-1993), 리영희(1929-2010) 교수 등은 그의 법조 인생 길목의한 페이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공소장이나 판결문만 있었다면 결국 평생 죄인으로 남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변론서, 진정서, 자전적인 글들이 함께 기록됐기에 훗날 이들의 죄 없음이 규명될 수 있었던 겁니다. 당시 제 변론으로 모든 것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써 남긴 글들이 결국 변화를 만들었습니다."법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법정을 몸소 경험한 그는 법치(法治)의 정의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법을 빙자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고 했다."근대 입헌주의 아래에서 법치주의는 견제 수단으로서 법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소수 지배 엘리트의 이익에 복무하는 법이 아니라 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와 테두리로서의 법이라는 말입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된 한 변호사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미군정과 독재정권, 이후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후 찾아온 반목과 혼란을 겪은 그는 정반합의 사이클을 거기서 찾았다."1960년 4·19혁명 후 찾아온 5·16 군사정변, 10·26 사태와 5·17 쿠데타, 이후 6월 항쟁까지….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나선 저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냉혹하고 암담한 상황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계속 가보자고 한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역사의 중요한 어느 한 단락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단락을 앞당기느냐 늦추느냐의 문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을 겁니다." 그는 최근 '피고인이 된 변호사'를 포함해 총 4권의 선집을 발간했다. 그가 변호한 필화 사건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를 다룬 '권력과 필화'(문학동네),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범우, 다음 달 출간 예정), 일본에서 나온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일본평론) 등이다."제게 있는 밑천이라면 많은 경험을 했고, 다양한 곡절 속에서 살아왔다는 겁니다. 그런 삶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이 정의를 외면하는 시대를 산 변호사로서 법정 밖 동시대인에게 제가 목격하고 체험한 일을 남겨 역사가 망각되지 않도록 하려 합니다."·연합뉴스

  • 주말
  • 연합
  • 2013.11.15 23:02

윤수하 시인 - 알베르 까뮈 〈무어의 집〉

서른 살 무렵 나는 늘 허무에 시달렸다. 지긋지긋한 허무와 우울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는데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에 등짝을 후려치듯 강렬하게 영혼을 뒤덮었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무기력하다. 눈을 감는 순식간에 우주가 사라져 버리는 불가사의한 미래는 앞으로 나가는 생에 의미를 잃게 한다. 죽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빠르게 흘러가는 생, 까뮈는 그것을 정지시키는 힘은 예술만이 갖고 있다고 〈무어의 집〉을 통해 명시한다. '삶의 이성적인 틀 위에 예술이 있고 일치된 공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의 한계를 넘는 예술의 세계를 통해 위안 받는다. 그래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것을 대할 때 '예술적'이라는 말을 쓴다.어릴 때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고통을 관조하는 도도한 태도에 감탄했었다. 인간은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고 고통 앞에서 무릎 꿇는다. 살이 타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제 동료를 발설하지 않는 투사들은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는데 이방인의 'K'같은 인간들은 제게 불어 닥치는 불행과 고통을 까마귀처럼 관조한다. 고통의 소용돌이 안에서 담담하다. 자신의 고통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 상태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까뮈의 산문집들을 읽었다. 〈무어의 집〉과〈안과 겉〉 등.'알베르 까뮈', 이름이 주는 어감이 부드럽고 정교하다. 고급스러운 이름과 달리 그의 생은 혹독했다. 아버지는 알제리로 이주한 알사스 출신 노무자였는데 1차 세계대전 때 받은 부상으로 사망했으며 어머니는 빈민지역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두 아들을 양육했는데 문맹이었다. 까뮈는 알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철학을 공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동차부품판매, 선박 중개사, 도청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까뮈가 생의 고통을 관조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렇게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는지 모른다. 나 또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홀로 되신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꾸리셨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했고 삼년 후 대학에 입학해 다니면서도 온갖 일을 했다. 접시 닦기, 학원 강사, 시청 직원 등. 홀로 견뎌야했던 힘든 시간 속에서 나를 담담하게 들여다보게 해준 것은 까뮈의 관조적 아포리즘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림도 그리고 판화도 하고 악기도 배웠다.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생활에 육체도 그렇지만 정신이 더 피로했다. 밤을 새워 판화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신적인 피로를 잊곤 했다. 당시 유행하던 예술영화도 봤고 틈틈이 음악회도 다녔다. '예술에는 시간과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까뮈의 말에 매료되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다. 피죽을 먹고 살더라도 예술적 인간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그렇게 되진 못했다. 생활 속에서 예술적 인간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목표를 잃으면 사람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시간, 무의미하고 부질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自身)도 그렇고 자신(自信)도 마찬가지다.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엎어져 코를 박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무릎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고는 다시 걷도록 만드는 힘은 자신(自信)이다. 오랫동안 묶어두었던 원고의 먼지를 털고 새로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내가 만나는 이미지가 내안에 오롯이 박힐 수 있도록.성공하는 삶 뿐 아니라 비참하게 일그러지는 삶조차도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나의 세상이기에 값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간을 뜯어먹고 사는 나 또한 값지다. 울고 있는 내가 불쌍해 연민을 갖기보다 그 상황 속에 녹아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까뮈가 말했던 예술을 하기 위해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버리라는 것의 의미는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마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예술'을 하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진정으로 원했던 내가 바라는 생을 살도록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똑바로 걸을 수 있도록 온갖 잡다한 욕구에 시달리고 있는 나의 마음을 맑게 비워둬야 한다.파랑, 초록, 갈색 선들이 그어져 있는 〈무어의 집〉, 책장을 덮으며 허무하고 우울했던 서른 살의 나를 쓰다듬는다. 바람 속 먼지 같이 아무것도 아닌 나는 나를 깨닫는 순간 우주가 된다. 그래서 진정한 나의 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윤수하 시인은 계간 〈시에〉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전북대 국문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주말
  • 기고
  • 2013.11.08 23:02

김관식 교수가 들려주는 '볼츠만의 원자'

지난해 7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의 증거인 힉스입자의 존재를 49년만에 확인하였으며 힉스입자를 예측했던 피터 힉스,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올해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 우주론의 표준모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쿼크 6개, 렙톤 6개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4개의 매개입자로 구성되며 마지막 빈자리였던 힉스입자가 채워진 것이다. 원자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그리고 원자 또는 분자의 존재를 논쟁하던 시대를 거쳐 원자를 우주의 최하위 구성요소로 이해했던 우리 세대까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 왔다. 우리세대가 중등 및 고등교육을 받던 때까지도 원자가 우주의 최하위 구성요소였다. 어원적으로 '원자(atom)'라는 단어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나 이미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원자는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져 있다. 17-18세기 뉴턴 이후 근 두 세기를 거쳐 성취된 고전 물리학의 핵심이론들의 바탕 하에 20세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많은 과학자들이 이뤄낸 현대물리학의 괄목할만한 발전은 여전히 인류에 의한 진행형의 지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볼츠만의 원자'는 원자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19세기 유럽에서, 원자론과 에너지론의 전개과정에서 벌어지는 과학, 철학, 종교, 수학적 이야기들을 볼츠만이 평생을 추구해온 기체운동론을 축으로 살펴본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린들리는 원자론의 철학적 연원과 물리학이론으로서 기체운동론의 확립과정에 있어, 마치 남극에서 얼음기둥을 채취하여 지구의 기상상태를 연구하는 기상학자처럼, 기체운동론의 출발점이 되는 원자론을 둘러싼 기상도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대의 옵서버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루트비히 볼츠만의 전기가 아니라 과학이론의 발전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저자는 오스트리아 태생 볼츠만의 생애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였음이 분명하여, 채굴된 시간의 기둥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부터 시시콜콜한 사실에 이르기까지, 볼츠만이 고집하고 추구했던 원자론에 근거한 기체운동론의 전개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가족과 스승 그리고 동료와 제자, 후학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겹겹이 들춰지고 있다. 이야기 속의 갈등은 에너지론과 원자론의 대립 속에 전개된다. 이 책의 서문은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1897년 1월 왕립과학원 학술대회에서 열을 그저 에너지로만 이해하고자 했던 에른스트 마흐가 제기 했던 말이다. 그는 당시대에 유명했던 물리학자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음속의 배수에 해당하는 속도단위인 마하를 고안한 사람이다. 오늘날 원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의 말은 우리의 과학적 진보가 얼마나 연륜이 얕은 것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반면 볼츠만은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즉 뜨거운 물체가 반드시 식게 되는 이유를 원자(분자)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문제에 집착했다. 그는 원자론을 바탕으로 열의 변화를 기체 내 원자(분자) 움직임에 의한 것으로 보고 통계학과 확률을 이용하여 열역학 제2법칙 설명하고자 하였다. 반면 빛이나 소리 열 등처럼 감각의 범위에 있지 않은 즉 인지의 세계를 벗어나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이론은 추측에 불과하며 반과학적이라고 믿었던 마흐로서는 볼츠만의 기체 내에 원자 또는 분자의 운동은 허구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대립은 현재의 시간으로 보면 진실에 대한 비난과 무지에 대한 환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간으로 보면 마흐의 승리처럼 보였으며 그 대척점에서 너무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비하며 신경쇄약의 말기를 보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해버린 볼츠만의 생애와 업적은 잊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볼츠만이 제시한 방법을 이용하여 원자의 존재를 증명하였고 볼츠만의 평생에 걸친 원자에 대한 확신이 옳은 것임을 증명해주었다. 따라서 볼츠만은 마흐와의 힘든 싸움 끝에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과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기념비에 승리의 식 S=klogW을 새기게 되었다.이 책을 읽을 당시 주변에 소개하고픈 책으로 꼽고 있었으나 서투른 말을 풀어놓기에 쉽지 않은 주제였으므로 오랫동안 보관하던 터였다. 이 책은 밀도가 높기는 하나 이론서적이 아닌 이야기책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이나 통계학 등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을 굳이 이해하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살다간 과학자가 주인공이 된 실화 소설로 여기고 읽는다면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19세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의를 보여 역자가 책 말미에 첨부해놓은 평형열역학에 대한 소고를 먼저 읽고 책머리로 들어간다면 더욱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인문학 편식독서 추세를 감안하면 인문계열 또는 자연계열을 떠나 특히 젊은 세대에게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김관식씨는 전북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자인산부인과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시인 겸 전북작가회의 회원이다.

  • 주말
  • 기고
  • 2013.11.01 23:02

김정태씨 '판소리 득음연구'

'쑥대머리'라는 판소리 대목의 악곡을 분석하면 그리 대단한 음악구조를 지닌 것도 아닌데도 임방울 명창이 쑥대머리 한 대목을 부르면 청중이 그렇게 열광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 대목을 부르게 되면 시원치 않게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이보형 학국고음반연구회장은 "그것은 임방울 명창의 특이한 '목 성음'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 역시 판소리 명창이 구사하는 특이한 성음으로 보는 게 옳다"고 보았다. 그만큼 판소리에서 '목 성음'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판소리 특유의 '목 성음'을 터득하는'득음'에 대한 전문 연구서가 발간됐다. 김정태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가 펴낸 '판소리 득음 연구'가 그것이다(민속원).판소리 공연 현장에서의 체험과 명창들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판소리 실기를 체계화하고 이론화시킨 연구서다.저자는 대학 졸업 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갑자기 '성대결절'이 왔으며, 그 고비를 헤쳐 나가기 위해 발성법과 성대 관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판소리 공부는 무조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학습과 험난한 수련의 준비과정 동안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학습방법과 수련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학습방법과 수련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신체전략에 대한 오해는 오히려 예술역량 강화의 시행착오가 될 뿐아니라 후두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체험과 연구결과다.그럼에도 그동안 전통적인 판소리 학습방법은 구전심수의 행위전승만 고수하였을 뿐 득음의 구성요소인 호흡법, 발성법, 발음법, 독공에 관한 체계적 연구와 이론화가 미흡했다.저자 또한 득음에 관한 이론서를 내기까지 녹록치 않았음을 내비쳤다. 소리꾼들이 소리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러한 경험을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설명하는 데 힘들어하는 점, 명창들의 견해가 다분히 주관적이기 쉽다는 점, 발성법을 제외하고 선행연구가 거의 전무할 정도로 기초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의 문제 때문이다. 저자는 2009년부터 4년간 전국 각지의 판소리 예능보유자들과 소리꾼들의 면담 조사를 바탕으로 판소리 학습과정에 관한 새 이론을 도출했다. 면담 조사자만 58명이며, 그중 예능보유자가 20명, 중견 명창 20명이라고 밝혔다.1장에서 소리꾼의 학습과 수련과정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고 민족음악학의 새로운 연구 방법의 필요성을 제시했으며, 2장에서 득음의 기본요소로서 호흡법, 발성법, 발음법, 독공 등의 개념을 정리했다. 3장부터 7장까지 구체적인 학습 방법을 다뤘다.이보형 회장은 "지금까지 판소리 득음 연구에 이와 같은 독특하고 거대한 총체적인 방법을 동원한 예가 없기 때문에 이 점에서 이 책은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 주말
  • 기고
  • 2013.10.18 23:02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토종의 꿈

"토종닭 백숙 요리를 유난히 즐기는 친구 덕분에 나는 '산에 놓아기른 토종닭'으로 변신한 그 속성 토종닭을 먹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질기기만 하고 이빨만 아픈 그 재수 없는 폐계를 뜯을 때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차지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입안에 착착 앙기는 토종닭,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투가리에 묻은 냄새까지 혓바닥으로싹싹 핥아먹던 어린 시절의 그 토종닭 맛이 새록새록 그리워지곤 했다."정량 우석대 명예교수(시인)가 정군수 시인을 두고 꺼낸 '토종닭론'이다. 정군수 시인이 최근 낸 시집 〈늙은 느티나무에게〉(신아출판사) 발문을 통해서다. 정 교수는 "시인의 초고를 읽는 동안 내내 아는 입만 아는 토종만의 그 정겨운 뒷맛이 새삼스러웠다"고 평했다.정 교수는 또 정 시인의 시가 전체적으로 매우 편하게 읽힌다고 했다. 나아가 그의 시를 읽는 일이 옹골지고 정겹단다. 그것은 향수를 환기시키는 인간적 따뜻함과 시적 진실에 대한 열정, 세상사에 관한 통찰, 토종적 미학의 숙련도 때문으로 보았다.2009년 〈봄날은 간다〉 이후 4년만에 낸 정 시인의 4번째 시집 〈늙은 느티나무에게〉는 '새의 빈 뼈를 만유인력이 무서워한다''새들이 물어가지 못한 깨꽃노래''화석에 무의 새기고 살아온 은행꽃''칼 부스러기만 모아다 꽃을 피웠다''눈물이 붉어 꽃이 되었다''제 몸뚱이를 감고 절벽을 오르다' 등 다소 긴 부제를 달고 6부에 걸쳐 100여편의 시로 엮어졌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과 인간, 사회문제 등 다양한 소재들을 폭넓게 풀어놓았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육친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육친은 우리 삶의 직접적 뿌리이기에 육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정서에 닿아 있고 그런 소재일수록 자칫하면 상투적 감상이나 그 주변에 머뭇거리기 십상인데 정군수의 육친에 관한 시편들은 적절한 상관물이 동원되어 그런 상투성을 벗어나 우리의 보편적 정성에 자연스럽게 맞닿는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병석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깻묵 썩는 냄새가 아버지의 무덤 언저리에 있는 깨밭의 향그러운 깨꽃냄새로 흩날린다는'깨꽃냄새'와, 고단한 삶을 견디며 산 어머니를 떠올린'복숭아뼈''섬'시를 그 예로 들었다.중앙동 재래시장 빈지문짝 기둥에'얼음연탄'이라고 허물어지는 글씨로 쓴문패만 한 간판이 붙어 있다꼬부랑 주인한테 물었더니여름에는 얼음 팔고겨울에는 연탄 파는 집이란다작은 간판에 많은 글씨를 다 넣으려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그걸 모르고 괜히 겁먹었구나시를 저렇게도 써야겠수나한 수 배우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얼음연탄'전문)정량 교수는 정 시인이 전북문인협회장을 맡으면서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을 염려했지만, 이 '얼음연탄'작품을 포함 '비움을 만나고서야' 등의 시를 읽고 다소 맘이 놓였다고 했다. '얼음연탄'을 통해 꼭 필요한 말만 써야 한다는 시창작의 기초적인 불문율을 이야기 하면서 끊임없이 詩道에 정진하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다.정 시인은 "쓰지 않으면 어둡고 답답하여 쥐 소금 먹듯 조금씩 썼다"며, "나이 들어 생긴 벗이 새벽이라 제 집 찾아가는 별을 보며 썼다"고 시집 서문에 밝혔다.계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교 국어교사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전북문힌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새천년문학상이철균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봄날은 간다〉 등의 시집을 냈다.

  • 주말
  • 기고
  • 2013.10.1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