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돌봄의 만남 ‘치유농업’
김두호 농촌진흥청 차장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치매는 이미 사회문제가 됐다. 우리나라 65세 노인인구 중 치매환자는 약 84만 명(2020년), 치매 유병률은 10%를 웃돈다. 치매에 걸리면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개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치매를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어도 문제 행동을 개선하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일까. 농촌진흥청이 보건복지부, 전라북도 광역치매센터와 함께 정읍, 진안지역 치매안심센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적용해 봤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치매 노인들의 인지기능과 기억력이 적용 전보다 20% 가까이 증가했다. 기억장애 문제와 우울감은 정상범위를 회복할 정도로 확 줄었다. 식물을 가꾸는 신체활동이 감각기관을 자극해 심리적 위로와 활력을 되찾게 했다.
치유농업이란 농업 소재와 자원을 활용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진행하는 모든 농업 활동을 말한다. 올해 3월 25일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이 본격 시행됐다. 농촌진흥청이 추진한 연구결과를 활용해 치유농업을 하루빨리 정착시키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1994년부터 원예작물의 치유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해 농업의 치유자원을 발굴하고, 과학적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원예, 곤충, 자연경관, 동물매개 등 농업자원을 활용해 치유농업이 국민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만성질환자, 치매, 소방공무원 등 총 20종에 이르는 대상자별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했다.
내년부터는 치유농업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기반 마련에 나선다. 지방농촌진흥기관에 치유농업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치유농업 시설 인증제 도입, 치유농장주 역량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복지제도와 연계한 치유농업 사업 모델을 만들고, 농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도 꾸준히 추진한다. 더욱이 메타버스 등 제한된 공간에서 치유농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미래 신기술 개발까지 치유농업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모든 일의 성공을 가르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므로, 치유농업 관련 지식과 기술, 소양을 두루 갖춘 전문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농촌진흥청은 지방농촌진흥기관과 대학, 대학 부설기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해 지난 7월, 전국 11곳의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을 선정했고, 전북지역에서는 전주기전대학이 지정됐다. 올해 첫 도입된 2급 치유농업사 국가자격시험은 다음달, 11월에 치러지며, 자격을 취득한 치유농업사는 치유관련기관이나 치유농장 등에서 전문적인 치유농업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농정의 틀이 생산성장에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으로 전환되면서 사람건강환경생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농업과 정서적 돌봄의 완벽한 조화, 치유농업은 미래형 농업의 또 다른 시도다. 치유농업을 통해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분명한 명제를 되새긴다. /김두호 농촌진흥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