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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의회, 소통으로 꽃 피운 민의의 전당

2022년 7월 작렬하는 여름 태양 빛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출범한 제9대 남원시의회 전반기는 전평기 의장과 이미선 부의장을 중심으로 오동환 운영위원장, 김정현 자치행정위원장, 김영태 경제산업위원장 등 상임위원단과 함께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시민과 소통하고 신뢰받는 의회'라는 슬로건 아래 코로나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 국립의전원법 통과를 위한 노력, 정책지원관 제도 도입 등 크고 작은 현안 이슈들 속에서 시민의 숨통을 터줄 획기적인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던 지난 2년을 되돌아본다. 견제와 감시의 고유 역할 충실 남원시의회는 꼼꼼한 정책·업무 분석과 함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회 본연의 기능인 행정에 대한 생산적인 견제와 감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 앞장섰다.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각종 사회단체 보조금 집행 및 정산 적극 지도, 각종 위원회 운영 시 조례 준수, 민간위탁 단체의 철저한 감사 등 총 1227건을 시정·처리 요구하거나 건의했다. 춘향 영정을 둘러싼 갈등과 해결방안, 남원시 인사발령에 관한 문제점, 남원 관광지 민간개발사업 문제 등 총 7차례 시정질문을 통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킬 방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남원 일반산업단지의 기업 유치 상황과 향후 방향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시민 행복 만드는 민의의 전당 남원시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입법과 정책 제안을 통해 시민의 삶을 적셔 줄 단비가 되고자 노력했다. 코로나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남원시 지역상권 상생 활성화 및 착한 임대인 지원 조례안, 남원시 영유아 다자녀 가정 난방비 지원 조례안, 남원시 농산물 가격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안 등의 입법 활동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에 관한 제안,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 요구, 지역 내 소상공인 지원정책 확대 제안 등 82건에 달하는 5분 발언을 통해 민생 회복을 위한 정책 제안에 몰두했다. 2년 동안 226일간 총 16회의 회기를 운영하며 조례 제·개정안 246건, 예산·결산안 14건, 동의안 53건, 기타 135건 등 총 448건의 안건을 처리했으며, 이중 의원발의 조례 제·개정안이 136건에 이르는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선보이며 자치 입법기관의 위상을 강화했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생생 의정 현장에서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의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청년메이커스 신축사업, 육아종합지원센터, 함파우 아트밸리 등 다양한 사업 현장을 직접 시찰하며 문제점 및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의정에 반영토록 했다. 이어 양돈 악취 민원현장과 봄철 냉해 피해 농가, 노암농공단지 식품 제조기업 화재 현장 등을 방문하여 재발 방지와 피해지원 대책을 논의하고 산불기동대, 도로 및 제설 관리부서, 보건소 방역 관계자 등 각종 재난 재해로 인해 고생한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발걸음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온·오프라인을 활용한 소통을 강화하여 각종 지역행사와 복지시설 방문, 40여 차례의 간담회 참석, 인터넷 민원 접수·처리 등을 통해 다양한 민의의 현장에서 시민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국립의전원 유치 활동 등 총력 남원시의회는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답을 찾는 역동적인 의정활동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 2022년 11월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유치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 남원시민의 오랜 염원이자 숙원사업인 남원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과 관련 법안 국회 통과를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에 힘썼다. 아울러 지리산권 지자체 의회 협조 방문, 국회 앞 피켓시위, 국회의원 면담, 시민단체와 함께 상경 집회 및 삭발식 진행, 전북도지사 면담, 그리고 5분 자유발언, 4차례의 결의안 채택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시의회는 앞으로도 남원 국립의전원 유치와 국립의전원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연구하고 학습하는 '정책의회' 남원시의회는 의정연수를 통해 조례 입법, 예산·결산 심의, 행정사무감사 기법 등 의원의 직무 전문성과 역량 향상을 꾀했고, 타 지자체의 다양한 정책 성공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벤치마킹에 나서기도 했다. 아울러, 남원형 치유농업 연구회, 조례분석 연구회, 탄소중립 그린도시 만들기 연구회, 전통시장 활성화 연구회 등의 의원 연구단체를 만들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연회 및 간담회를 개최하는 한편, 30년 만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시행으로 8명의 정책지원관을 채용하여 남원의 현황에 맞는 다양한 정책들을 함께 고민하고 발굴하며 의정활동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정책의회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전평기 남원시의장 "현장서 답 찾는 시간 통해 많은 보람·성취 느켜" 전평기 의장은 “제9대 남원시의회 전반기를 마무리하며 시의회에 애정 어린 관심과 조언으로 성원해주신 시민분들과 시정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감시와 견제를 통해 협조해주신 집행부, 그리고 지역 현안의 발굴과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동료 의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간혹 부족한 부분도 있었으나 지역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경청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시간을 통해 많은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9대 전반기 의회는 의원발의 조례안이 136건, 5분 자유발언을 통한 정책 제안이 82건, 행정사무감사 지적사항이 1227건에 달하는 등 수치상으로도 눈에 띄는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침으로써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며 “동료 의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시민의 삶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의정활동에 성심을 다해준 결과”라고 덧붙였다. 전 의장은 끝으로 “후반기 의장단은 준비한 역량을 바탕으로 의회 중심의 지방분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시민의 대변자로서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시민과 소통하고 민생을 챙겨 우리 시의 현안 사업들을 차질 없이 진행해 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 기획
  • 신기철
  • 2024.06.24 17:00

[팔도 건축기행]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유리의 강(Glass River)을 만들자.” 현장을 방문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여수 망마산과 장도를 직접 걷고, 행정선에 올라 바다에서 현장을 바라본 후 떠오른 콘셉트 디자인을 거침 없이 그려냈다. 망마산 정상에서 계곡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폭 21m와 길이 152m에 달하는 푸른 유리 지붕(Glass River)은 GS칼텍스 예울마루(이하 예울마루)의 상징이 됐다. 산과 바다와 섬이 만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건축물은 서로 순응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자연과 하나 된 친환경 건축 예울마루는 시민 삶의 질 향상과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도시에 걸맞는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해 GS칼텍스가 여수시와 함께 여수시 망마산과 장도 일원의 약 70만㎡(21만여 평) 부지 위에 조성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2007년 여수 시민 대표와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성 사업은 2021년 망마산 전망대 및 산책로 조성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10여년의 대장정이 마무리 돼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1단계인 망마산 기슭의 주공연장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개관했고,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 카페, 교육실 등으로 이루어진 2단계 예술의 섬 장도 사업은 2019년 완공됐다. 프랑스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 독일 베를린 올핌픽 수영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공연장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로 불린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지향하는 그는 특정 건축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환경과 조화를 고려한 독창적인 설계로 이름이 높다. 특히 주요 시설물을 땅속으로 집어 넣는 것이 특징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화여대 이화캠퍼스 센터(ECC)가 대표적이다. 페로는 예울마루를 설계하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하나의 큰 산책로’(Promenade)를 염두에 뒀다. 망마산 정상 전망대부터 공연장, 진섬다리, 바다 건너 장도 전시장까지 그가 구성한 산책길은 약 2㎞에 달한다. 흐르는 강물을 형상화한 유리 지붕(Glass River), 환경 친화(Eco friendly)적 건물은 그가 자연과 공존을 꾀한 또 하나의 콘셉트였다. 산의 경사면을 최대 40m 깊이로 파내고 지은 예울마루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망마산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물의 주요 공간을 지하에 배치, 바깥으로는 유리 지붕만 드러나는 형상이다. 유리 지붕은 대지의 경사에 맞게 6개의 경사면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자연스러운 경관을 연출했으며 능선에 맞춰 화강암 계단(Stone River)을 설치했다. 예울마루는 문화예술의 너울이 가득 넘치고 전통가옥의 마루처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더불어 ‘마루’에는 산 꼭대기, 하늘이라는 뜻도 담겨 있어 예울마루의 푸른 유리 지붕을 ‘하늘에서 흐르는 강’이라고도 부른다. 유리 지붕 아래 땅 속에는 가로 200m, 높이 7층 규모의 건물(연면적 2만5145㎥)이 감춰져 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극장(1021석), 무대 변형이 자유로운 소극장(302석), 광(光) 천장 시스템을 도입해 자연채광에 가까운 밝은 분위기에서 작품 감상이 가능한 3개의 전시실, 리허설룸, 카페 등이 주 공간이다. 예울마루 4층 매표소 앞 광장에서 바라보는 여수 바다와 장도의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더불어 지난 2022년 개통된 선소대교의 야경까지 어우러지면 저녁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온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예울마루는 친환경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전지 시스템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 건물에 필요한 일부 수요을 담당하고 있으며 경사지형을 활용한 열미로(熱迷路) 시스템을 운영하고 화장실 용수와 조경 용수로 우수(雨水)를 재활용하고 있다. 또 태양광 및 LED를 이용한 조명을 진입계단, 바닥분수, 외부 데크 등에 모두 50개를 설치, 에너지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예술의 섬’ 장도 예울마루에서 나와 바로 앞 장도로 향하는 여정은 색다른 경험이다.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리를 지나야 하는 터라 ‘물 때’를 확인하는 게 필수다.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의 창작 기지, 시민들의 힐링 쉼터인 장도의 관문 진섬다리는 총 길이 330m로 기존 석축교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루에 두 번 물에 잠기도록 설계됐다. 지난 2019년 5월 개관한 ‘예울마루 장도’는 입주 작가들의 장도 창작스튜디오, 장도전시관, 다도해 정원, 해안 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 공간은 산의 능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하에 파묻듯이 세워진 장도전시관으로 도미니크 페로가 콘셉트 디자인을 맡았다. 지하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얼핏 이화여대 ECC 건물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푸른 잔디밭을 지나 회색 담벼락의 지하로 내려가는 나직한 경사로에서 만나는 건 길다란 직육면체 형상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1,465㎡ 규모의 전시관은 바다가 보이는 전시실을 비롯해 바다 전망과 해송,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지는 아트카페, 교육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앙홀 천장에 설치돼 인테리어 효과를 극대화하는 아트리움을 통해 관람객들은 낮에는 로비를 통해 들어오는 채광을, 밤에는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조명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장도는 원래 다섯 가구 주민들이 거주하던 섬이었다. 섬 주민의 집터에는 역사성을 살려 작가 작업실, 안내센터 등 다섯 동의 건물을 조성했고 주기적으로 오픈 스튜디오도 진행한다. 다단계식으로 조성된 다도해 정원에는 남해안에 자생하는 나무와 야생화가 식재돼 있으며 장도 해안선을 따라 바다 경관을 조명하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에서는 최병수 작가 등이 제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공연, 교육이 어우러진 예술 요람 예울마루는 GS칼텍스가 지자체, 지역사회와 함께 일구어온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꼽힌다. GS칼텍스는 지금까지 예울마루 조성과 운영에 1500억원을 지원했다. 1987년 건립된 여수시민회관이 유일한 문화시설이었던 여수에서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울마루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였다. 뮤지컬 ‘맘마이아’, ‘시카고’와 조성진, 정경화, 임윤찬, 서울시향 등 클래식 연주자의 무대를 포함해 오페라, 발레,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공연됐고 라이프 사진전, 한국근현대 미술걸작전 등 화제의 전시도 열렸다. 그밖에 예술아카데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도 꾸준히 열고 있다. 지금까지 예울마루 공연, 전시, 교육 이용객은 총 129만 명에 달하며 최근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장도에는 156만 명이 다녀갔다. 예울마루는 2023년 한국관광공사 공모 ‘코리아 유니크 베뉴 52선’에 전남에서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2012년 대한민국 토목건축대상 레저개발 부문 최우수상(2012), 한국메세나 대상 대통령상(2013)도 수상했다. 광주일보=김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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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4 14:26

[2024년 상반기 전주시의회 의정 결산] 다양한 변화 시도로 경쟁력 키워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지방자치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은 지방시대의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한 지방의회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졌다. 제12대 전주시의회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며 다양한 변화와 시도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를 통해 정책지원관 제도의 조기정착은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역량강화로 이어졌고, 이는 입법 활동의 질적 성장으로 연결됐다. 조례연구회, 도시공간연구회, 전주비전연구회, 관광거점도시실현 연구회, 로컬라이징 연구회 등 5개의 연구단체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계속되는 변화와 혁신으로 65만 전주시민과 공감하며 함께 같은 길을 걸었던 전주시의회의 2024년 상반기 의정활동을 의장단 및 각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기동 의장은 지난 2년간 시민의 눈높이로 시민과 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지역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에 역점을 두고 주민의 목소리가시정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소통과 협력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전주시의회’를 구현하는 데 노력해왔다.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방의회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한 이 의장은 의회 본연의 역할인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도 힘쓰고 있다. 이 의장은 “공무원 연금공단 전북지부 폐쇄 방침 철회촉구 결의안,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규제 폐지 철회 촉구 결의안, 이장·통장 활동 보상금 정부 지원 촉구 건의안 채택 등 사회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도 최선을 다해왔다”며 “앞으로도 의회를 향한 시민의 신뢰와 믿음은 소신 있는 의정활동에서 시작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병하 부의장은 65만 전주시민의 소중한 뜻을 대변하며 시민의 복지증진과 지역발전에 앞장서는 한편 뛰어난 친화력과 보이지 않는 리더십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해왔다. 전주시민의 대의기관인 전주시의회가 민의(民意)의 대변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의원 연구단체, 예산결산검사, 특별위원회 활동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시민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조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이 부의장은 “의원들의 높은 역량과 열정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의정활동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부의장의 가장 큰 소임으로 여기며 그동안 의원들의 원활한 의정활동 지원에 열정을 쏟았다”며 “앞으로도 지역주민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여 시민들의 희망찬 미래와 전주시의 도약을 위해 더욱 노력하며 시민에게 신뢰받고 존경받는 의회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운영위원회 운영위원회(김동헌 위원장, 온혜정, 김세혁, 김성규, 김윤철, 남관우, 천서영, 최서연, 한승우 의원)는 의회의 전반적 업무가 원활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운영위는 회기 일정을 확정하고 각종 조례의 발의와 안건 심의에 대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의원 역량강화 연찬회를 개최하는 등 효율적인 의정활동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왔다. 또, 의원연구단체의 입법활동과 정책개발 지원으로 내실 있고 효율적인 의회 운영을 도모했으며 ‘전주시의회 의원 연구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전주시의회 의원 윤리강령 및 행동강령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등을 통해 의원들의 전문성 및 윤리 의식을 한층 높였다. △행정위원회 행정위원회(정섬길 위원장, 최명권, 김세혁, 김정명, 남관우, 박형배, 이보순, 최주만 의원)는 시민의 편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행정이 추진될 수 있도록 주력했다. 행정위는 집행부 감시·견제에 앞장서면서 건전한 재정운영을 통해 지역 간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전주시 청렴도 향상 및 부패방지 조례안’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규정했으며 시청사 별관으로 인근 현대해상빌딩을 매입,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내용을 담은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켜 사업기간 단축과 예산 절감을 위해 일했다. △복지환경위원회 복지환경위원회(이남숙 위원장, 김학송, 이병하, 장재희, 채영병, 최서연, 최지은, 한승우 의원)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안정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환경보전에 중점을 둔 활동을 펼쳤다. 복지위는 ‘전주시 공동육아나눔터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지역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을 활용한 아동양육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공동육아나눔터 운영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전주시 공중화장실등 설치 및 관리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해 시민의 위생 편의와 공공 복지를 확충했으며 ‘전주시 은둔형 외톨에 지원 조례안’을 제정함으로써 현대사회속 고립된 이웃을 돕고 이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돕고자 했다. △문화경제위원회 문화경제위원회(송영진 위원장, 전윤미, 김동헌, 김윤철, 박혜숙, 신유정, 온혜정, 이성국, 장병익 의원)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예술 진흥과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문경위는 ‘전주시 중소기업 환경·사회·투명(ESG) 경영 활성화 지원 조례안’을 통해 중소기업의 ESG경영 도입·확산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전주시 및 지역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 전주시의 우수한 농특산물에 대한 지리적 표시 등록 및 사후 관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기틀을 마련하고자 ‘전주시 농특산물 지리적 표시 관리 및 운영 조례안’과 지역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전주시 무형유산 보전과 진흥 조례안’ 제정으로 전주의 문화·경제적 자원 보전에도 이바지했다. △도시건설위원회 도시건설위원회(박선전 위원장, 이국, 김성규, 김원주, 김현덕, 양영환, 천서영, 최명철, 최용철 의원)는 효과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개발로 쾌적하고 안전한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도건위는 ‘전주시 노선버스 안전 및 서비스 향상에 관한 조례안’을 통해 승객의 안정성 확보와 편리성을 증진하고, 노선버스 이용 환경을 높였다는 평이다. 그간 이원화로 시행 중이던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사항을 ‘전주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안’으로 제정, 일원화했으며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이 필요함에 따라 ‘전주시 중대재해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 전주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박형배 위원장, 최서연, 김원주, 김세혁, 김학송, 김현덕, 남관우, 박혜숙, 양영환, 온혜정, 전윤미, 최명권, 최명철, 한승우 의원)는 한정된 재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돼 예산이 낭비되지 않고 전주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심도 깊은 예산심사를 펼쳤다. 예결위는 주요사업과 역점사업의 재원투자, 복지정책 확대 등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의 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불필요한 예산 편성을 배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예산을 심사했다. 또한 결산검사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사후적 처방보다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예산 심의로 건전한 재정 운용 방향을 제시하고 재정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 기획
  • 김태경
  • 2024.06.23 11:06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⑥세기를 넘어선 미스터리, 사라진 사발통문(沙鉢通文)의 기록을 찾아서

세상에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다고 하면서 참 잘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조선말기 조선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였다. 민초들의 삶을 억누르는 지배자들의 수탈, 양반과 상놈을 갈랐던 신분차별, 하루하루 겨우 영위하는 삶의 끝자락, 사발통문이 희망의 불씨를 타오르게 했다. 2019년 봄 수개월에 걸쳐 방영된 모 방송국의 주말드라마 ‘녹두꽃’은 방영 초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거의 모든 TV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한 장면을 보다가 필자는 숨을 멈춰버렸다. 전봉준이 붓을 들고 4대 결의와 20명의 서명자를 쓴 이후, 자신의 이름 한자와 한글로 마감한 통문 작성 장면이다.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그동안 역사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나? 원래 ‘사발통문(沙鉢通文)’은 조선후기 농민들이 봉기할 때, 주모자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가담자들이 원둘레에 각자 이름을 적어 돌린 것이다. 통문 발견으로 1894년 고부농민군이 처음부터 계획적이고 주도적으로 농민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하는 원본의 진실성을 놓고 논란을 빚었다. 발견과정부터 미스터리하다. 이 자료는 1968년 12월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신중리에 거주하는 송준섭(宋俊燮) 집 마루 밑에 묻혀있던 족보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1972년 외솔회에서 본격 검증에 나서, 김의환 교수가 그동안 보관해 오던 송후섭(宋後燮) 씨를 만났다. 그는 “아버지(송대화: 서명자의 한사람, 1919년 사망)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물려받은 서류궤짝에 있었다”고 했다. 그가 26살이던 1936년에야 도장이 찍혀 있는 봉투안에 문서를 확인하고 '여산송씨가보' 뒷표지에 간직해 오다가 송기태가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1970년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신태인읍에 사는 송기태(당시 63세) 자택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송기태는 송두호의 증손으로 물려받아 가보로 간직해 왔던 것이라 전했다. 이렇게 전래 경위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처음에는 통문이 1894년 당시 작성된 원본이라고 알려졌다. 1974년 6월에야 학술적 검토가 이루어졌다(<나라사랑> 15집, '녹두장군 전봉준 특집호'). 김용덕은 이 문서가 진본이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판정을 보류했다. 결의사항 중 ‘경사로 직향할 사’를 용인할 수 없어서였다. 1980년대 중반 정창렬은 사발통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계사 11월 일’에서 ‘각리리집강 좌하’까지(㉮부분, 서명자 20명), 이후 민심의 동향(㉯), 도인들의 선후책 토의(㉰), 결의이후 영도자를 뽑는다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의 경우 서명자 집단 내부만의 기밀사항으로 ㉮의 통문이 고부지역 전역에 유포되지 않았던 점을 의문시했다. 다만 ㉰의 결의를 수행한 세력을 금구취당과 연결시켜 거사계획이 전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부민란의 연구(하)' <한국사연구> 49, 1985). 한편 신용하는 1차 동학농민전쟁의 단계로서 3월 무장기포를 중시하면서 통문 내용을 재검토하였다. 그는 통문 본 내용이 잘려 나갔다는 전제하에 계사년의 등장(等狀), 이듬해 갑오년 1·2월의 고부민란, 3월의 제1차 농민전쟁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통문 ㉰와 ㉱부분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장의 종이위에 기록한 것이라 하였다. 그는 당시 통문의 원본(原本)이 아니라 어떤 분이 작성한 회고록(回顧錄)의 일부라고 추정하였다(<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1993). 두 연구자는 통문 내용 중 ㉮의 앞부분과 ㉰의 결의사항이 처음부터 동일한 차원에서 결의되었다고 가정하였다. 앞으로 사발통문이 진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통문 내용과 4가지 결의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1900년과 1904년 2차례 일어났던 경기도 시흥 농민항쟁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때에도 사발통문이 유포되었다. 당시 정부는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누가 수모자이고 추종자인지를 구별하고자 했다. 1904년 음력 8월 5일 시흥 한천교에서 민회를 소집하자는 통문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민용훈은 통문으로 민란을 촉발하지 않았고 단지 군중을 모으는 것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최종 판결은 통문으로 시흥군 42개 동의 집강과 동임들이 모였고, 이를 계기로 민란이 일어났으므로 관련 인사들 모두에게 중형이 내렸다. 이 사례는 통문의 잘려진 앞부분 내용이 4대 결의와 상관 없을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원래 고부군 각리 집강에게 모임을 갖자는 통지이며, 다만 서명자들의 사인이 둥그렇게 된 것은 민회 소집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한 조치였을 뿐이었다. 실제 전봉준은 자신이 처음에는 주모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중민 수천명으로 추대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전봉준공초> 초초문록). 1893년 12월 전봉준은 60여명의 고부 농민과 함께 전주 감사 김문현에게 폐정을 시정해 달라고 등소(等訴)운동을 벌였다. 고부 농민들은 감사에게서 거절당해 쫓겨난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따라서 1893년 11월 말 민회 개최를 위한 통문을 낸 이후 등소운동이 실패하자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모여 4가지 방침을 새로 결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보아야 고부 봉기 과정을 순차적이고 단계적인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사발통문의 일부 내용이 조작됐다는 설도 있다. 주산마을 임두영 씨는 사발통문 내용이 같지만, 크기가 지금(42×30센티미터)보다 훨씬 컸으며(70×50센티미터), 서명자의 필체가 모두 달랐고, 재질도 기름에 젖은 창호지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1947년 초 동아일보 기자에게 넘겨진 뒤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덧붙였다(이이화, <발굴 동학농민전쟁-인물열전> 1994). 또 2001년에는 기존 통문이 아닌 새로운 이본(異本)이 발견되었다(김용섭, <한국근대농업사연구(Ⅲ)>). 사라진 통문의 앞 부분 내용이 첨부되어 있고, 서명자가 15명이며, 뒷부분 봉기 조직으로 전봉준 등을 선출한다는 것도 추가되어 있다(<동학농민혁명난과 전봉준장군실기> 1954). 새 자료의 저자는 송재섭(宋在燮, 1889~1955)으로 송두호(宋斗浩)의 손자이자 송주성(宋柱晟) 씨의 아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본에서는 당시 쓰지 않던 ‘만천하동포’, ‘동포형제’를 사용했고, 기존 통문 내용을 그대로 적으면서도 아래아(ᄋᆞ)를 생략하고 있다. 이로써 기존 사발통문을 일부 베끼고 앞뒤를 추가하여 새로 작성한 후대의 기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명은 어떠한 삶을 지냈을까. 대부분 1894년 말부터 수개월 동안 전장에서 그리고 재판에서 희생되었고, 나머지는 일제하에서 숨어 지내며 불행한 삶을 살았다(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994, 3판, 37~38쪽). 전주에서 사형(1894.12.~95.1.) – 황찬오, 황채오, 김응칠, 황홍모, 김도삼 나주에서 사형(1894.12~95.1.) – 손여옥, 송두호, 송주옥, 재판 후 서울서 사형(1895.3.) – 전봉준, 최경선(20명의 서명자 중 당시 사망자) 사발통문은 오늘날 한국의 거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한 장 사진으로 수록되어 동학농민혁명 초기 민중 의식과 봉기의 계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통문에 사용된 종이 지질이나 먹의 형태에 대한 자연과학의 재질 분석도 필요하고,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한글의 어미와 접속사 사용(예컨대 ‘ᄯᆞᄅᆞ서’)에 관한 근대국어학의 분석도 필요하다. 이제 지난 세기를 넘어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이했지만, 사발통문 문서는 아직도 여러 학문간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날 것’의 사료로 머물러 있다. 사발통문은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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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0 17:26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 익산 서동공원에서 왕실 생활유적 발굴되다

지난 2022년 익산에서 최초로 백제시대 실제로 사용된 대형 '저온 석축저장고'로 추정되는 생활유적이 발견돼 일반 학계 및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해당 유적은 '傳 서동 생가터'(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373-7번지)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중 우연히 발견된 유적으로 벼루편 뚜껑․토기․인장와 등 다양한 백제시대 유물과 더불어 2기의 저장고가 발굴된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제1호 저온고 바닥에서 재배곡물(복숭아․참외․들깨) 및 채집작물인 과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의 씨앗이 수습되었고 제2호 저온고에서도 재배곡물(밀․조․팥․참외)와 채집작물인 과일(포도․다래) 수습된 것이다. △1호 : 488.1(장축)×243(단축)×230.6(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벼루편‧대부완‧뚜껑‧전달린 토기(완),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복숭아‧참외‧들깨), 채집작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 씨앗 수습 △2호 : 527.6(장축)×251.2(단축)×240.9(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대부완, 호편,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밀‧조‧팥‧참외), 채집작물(포도‧다래) 씨앗 수습 더불어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 저장고는 왕도였던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유적 등 궁궐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이번에 발견된 저온저장고도 왕실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백제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졌고 특히 목곽이 아닌 석축저장고가 처음으로 익산에서 발견되어 유적의 희소성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특히 2기의 석축저장고는 동쪽 장벽 상부에 3조의 통기구가 있는데 이는 쪼갠 돌인 판석과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50㎝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밖에서 안으로 19도~ 23도 기울여 동쪽으로 돌출하게 조성함에 따라 저장고 안 위쪽의 더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저층 내부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 공법이 확인되는 등 타 지역의 저장고와 확연한 차이점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사료 됐다. 또 지난해 이 발굴유적에서 ‘직구단경호’와 뚜껑 덮인 토기가 이미 발굴된 굴립주 건물지 초입부 구덩이(길이 104cm, 너비 91cm, 깊이 34cm)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내부에서 발견된 ‘오행대포(五行大布)’ 5점이 ‘+’자 형태로 놓여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땅의 악한 기운을 누르고 선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묻은 지진구(地鎭具)로 추정된다.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는 곧은 입에 목이 짧은 항아리를 말하며,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은 땅 위나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 모두를 총칭한다. 또 지진구(地鎭具)는 국가의 중요한 건물 등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물건이나 제기(祭器)를 뜻한다. 아울러 오행대포(五行大布)는 574년 북주 무제가 발행한 화폐로 577년 백제 위덕왕에게 희사한 예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5 위덕왕 24년조에 기록이 있다. 결국 굴립주건물지는 북주의 위세품(지진구)을 기둥에 매납할 만큼 중요한 건물지였으며 무엇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건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 지진구안에서 출토된 '오행대포'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바가 없는 중국 동전으로 백제가 북주와 대외 교류를 했다는 문헌기록을 증거하는 자료이다. 실제 '【周書】 券6 武帝宇文邕 : "(建德6년, 577) 十一月庚午,百濟遣使獻方物"→ 십일월 경오일에 백제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는 내용이 있고 【周書】 券7 宣帝 : "(宣政元年, 578) 冬十月戊子,百濟遣使獻方物" → 겨울 10월 무자일에 백제 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발굴현장과 관련하여 삼국시대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으나, 야사인『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무왕 어머니의 기거를 위해 '마룡지에 축실(집을 짓다)' 유적이나, 무왕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오금사' 그리고 무왕의 생가터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용골'등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발굴성과와 설화의 내용이 너무 상이하여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발굴성과로 나타난 건물지와 부장유물 또 석축저온저장고의 유적을 반추해볼 때 ‘전 서동생가터’유적은 추가적 연구가 필요해 보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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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9 14:34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 ③고창 무장기포지 - 동학농민혁명의 烽화를 밝히다

'포악한 백성이 나라를 어지럽힌 반란을 일으킨 것' 과거 동학농민혁명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동학 '민란(民亂)'으로 불렸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동학란'으로 지칭됐다. 1894년 갑오년 이래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으며 이 시기 교육과정을 이수한 세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대중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여기에 멈춰 서있다. 나아진 인식마저도 '농민들이 탐관오리에 저항해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패전하고 해산했다'는 정도다. "시골에 저택이나 짓고 오직 저 혼자서 살길만 도모하면서 벼슬자리만 도적질하니 어찌 올바른 도리이겠는가."-동학농민군 '무장 포고문' 中 1894년 3월 21일, 고창의 무장기포지에서 일어난 봉기는 조선 후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이었다. 억압받는 농민들이 일제히 봉기를 일으켜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이곳은 지금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지로 남아있다. 무장기포지는 넓은 논과 낮은 언덕으로 이뤄져 농민들이 모여 봉기를 논의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특히 전라도의 중심지에 있어 혁명의 영향력을 빠르게 확산하기에도 유리했다. 무장기포지는 단순히 고창 지역의 역사 유적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상징적인 장소다. 따라서 무장기포지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에 비해 혁명의 현장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무장기포지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장기포지는 현재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창 무장기포지 현장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판과 그 옆,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놓여 있었다. 과거 이곳이 혁명군의 기포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들이다. 그 외 혁명의 잔재는 안내 없이는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혁명의 가치가 안내판 안에 갇혀있던 셈이다. 최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기점으로 무장기포지의 역사적 가치를 두고 지역 주민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갖은 노력에도 무장기포지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윤식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전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민초들의 열망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아직 혁명군 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며 "혁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의 경우 외세에 저항한 만큼 정부와 지자체, 지역 주민, 민간 단체 등이 함께 무장기포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유적지의 가치 향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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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준혁
  • 2024.06.17 18:28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미스터리 보물 (1) 사르마티안 황금 왕관

한반도와 그리스는 직선거리로 약 8,150km 떨어져 있다. 두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은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인 초원로, 오아시스로, 해로를 통해 다양한 문물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초원로(Steppe Route)를 통해서는 유목민들의 문화가 전해졌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스키토-시베리아(Schytho-Siberia) 계통의 동물 문양, 신수(神樹) 숭배 신앙, 샤머니즘 의례나 축제에 사용된 북과 청동방울, 말 관련 유물들은 초원 유목민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준다. 오아시스로(Oasis Route)는 초원로의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교역로다. 이 길을 따라 페르시아와 그레코-로만형(Greco-Roman Style) 문화가 한반도에 전해졌다. 한국에서 발견된 사산 왕조(Sasanian Dynasty) 문양, 로만 글라스, 금속 장신구 등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문화 교류를 시사한다. 해로(Maritime Route)는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교역로다. 해로를 통해서는 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 등지의 문물이 전해졌다. 이번 연재부터는 필자가 직접 답사해 촬영한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의 수많은 보물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한반도 금관 특히 신라 수목형(樹木型) 금관과 유사한 사르마티안(Sarmatian) 황금 왕관에 대해 알아 본다. △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이란? 이 황금 왕관은 1864년 러시아 로스토프(Rostov)주 노보체르카스크(Novocherkassk) 변두리에서 수도관 건설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된 호흐라치(Khokhlach) 쿠르간의 출토품이다. 이 고분은 크게 도굴되었음에도 다행히 많은 유물이 남아 있었고, 이 왕관은 당시 고분 주변 은신처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회수하였다. 이 왕관은 왕관 정면에 새겨진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흉상이 유난히 독특했지만, 훨씬 세계적인 이목을 끈 것은 아프가니스탄 금관과 신라 금관의 동일 계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세 금관 모두 수목형 왕관으로 성수(聖樹), 새와 사슴 숭배 신앙 등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한편 특이하게도 왕관의 소유자가 앉았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의자 조각과 장식물도 출토되었다. 이 왕관의 제작 연대는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이며, 사르마티안 부족의 통치자로 여제사장을 겸했던 여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어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Diadem)’이라 불린다. △ 사르마티안족은 누구인가? 사르마티안족은 BC 5세기부터 AD 4세기까지 유라시아에서 활약했던 고대 이란계 민족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사르마티안인은 BC 6세기 서쪽으로 이주했고 스키타이인들과 대립했다. 사르마티안인은 불의 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스키타이인과 달랐고, 서기 1세기경 다뉴브(Danube)강과 볼가(Volga)강 지역 및 흑해와 카스피해(Caspian Sea) 연안에서 활약했다. AD 1세기 게르만족과 연합해 로마 제국을 잠식하기도 했으나 4세기 훈족(Huns)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알란인(Alans)은 사르마티안계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세 초기까지 북 코카서스(Caucasus)에서 살아 남았다. △ 왕관의 세부 장식과 그 의미 황금 왕관은 쭉 펼치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다. 금관의 파손된 부분을 복원하여 관찰하면, 관대(冠帶) 위 중앙의 성수를 중심으로 두 마리의 사슴이 마주 보는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염소와 사슴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동물이 성수(聖樹)를 향해 나아가는 제의적인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즉 가운데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의 신성한 동물 세 마리가 나란히 성수를 향해 행진하는 듯하다. 그리고 신성한 동물 뒤 좌우측 맨 가장자리에는 새 두 마리씩 총 네 마리가 성수를 향해 앉아 있다. 새 부리에는 보요용 고리가 있는데 성수에도 이러한 고리가 달려 있다. 한편 관대의 정면 중앙에는 자수정으로 조각한 여성의 흉상이 있어 이 왕관이 사르마티안 귀족 여성의 소유였음을 나타낸다. 흉상의 주인공은 사랑과 다산의 여신 아프로디테인데 고대 그리스나 로마 여성들이 입던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웃옷인 튜닉(tunic)을 입고 있고, 여신의 머리 위에는 횡타원형의 석류석을 감입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여인의 고전적인 머리 모양이다. 여인의 머리 카락은 황금 왕관 뒤에 숨겨져 있고, 두 개의 땋은 머리가 어깨 너머로 떨어져 있다. 이는 장인이 그리스 보석 세공에 능숙한 전문가였음을 나타낸다. 또 흉상 주위 좌우에도 석류석이 상감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독수리 형상의 맹금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테두리 전체는 훼손된 곳이 많지만 전체가 황금 구슬과 진주 그리고 작은 명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테두리 하단은 장미 꽃잎 무늬가 있는 펜던트가 여럿 매달려 있고, 왕관 소유자가 움직일 때마다 멜로디한 소리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 왕관 외 다른 고분 출토품 왕관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포도 나무 덩굴에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작은 큐피드 상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또 고분에서 왕관 외에 늑대를 연상시키는 상상의 동물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공격하는 황금 목걸이, 상상의 동물이 상하 2열을 이룬 황금 팔찌, 제의 때 사용되었을 향료와 독성 물질을 담는 황금 향통(香桶)과 동물 모양의 황금 컵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무기나 말 장비 같은 남성용 부장품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묘주는 여성임이 확실하다. △ 왕관의 미스터리: 월지인이 이주해 만들었을까? 이 왕관은 제례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다산 숭배와도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또 아프로디테 흉상의 정교한 제작 기법으로 보아 이 왕관을 제작한 장인은 분명히 헬레니즘 특히 그리스 보석 세공 기술과 사르마티안 유목민의 샤마니즘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독특한 작품은 아마도 그리스 보석 세공사가 지위가 매우 높은 사르마티안 귀족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고분 출토품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인 ‘다색 상감 스타일(polychrome-inlay style)’은 왕관과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으로 유사한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Tillya Tepe)의 황금 유물에서도 대거 발견되었다. 이는 사르마티안족과 알란인(Alans) 그리고 중앙아시아 월지인(月氏人)의 연관성(이주)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킨다. 황금 유물의 다색 상감 장식에 대한 고찰은 사르마티안-아프가니스탄-한반도 금관으로 이어지는 수목(樹木)형 금관의 전파 루트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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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7 15:13

[세계 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⑤오횡묵 <고성부총쇄록> + 이헌영 <금번집략>

1894년 조선사회를 생생히 기록한 오횡묵의 <고성부총쇄록> △1900년대 말 사회상의 기록자 오횡묵 일기 때문에 최근 학계의 조명을 크게 받는 인물이 오횡묵(吳宖默 : 1834~1906)이다. 강원 경상 전라 충청 여러 도의 지방관으로 갖가지 일들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가 주목된 것이다. 고성부사로 재임할 때 쓴 <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은 갑오년 기록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들어갔다. 총쇄록은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의 기록”이란 뜻이지만 그것이 지금에는 이만저만한 보물이 아니다. 해당 시∙군에선 번역본을 내고, 그 기록을 활용해 문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 연구도 갈수록 성과가 대단하다. 강원도 <정선총쇄록>은 한 세기 전의 행로를 따라 아리랑길의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 경상도 <함안총쇄록>은 향내 세력 연구는 물론 지방관 업무와 작성 문서를 검토한 연구가 나왔다. 초대 여수군수로서 기록한 <여수총쇄록>은 오늘날 지역문화의 설계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도총쇄록>은 호적이나 전답 등 섬 생활뿐 아니라 배를 타고 한강과 강화를 거쳐 서해로 내려오는 노정이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번역본이 나온 <익산총쇄록>은 1900년대 초의 모습을 전해주는 1차 사료가 된다. 지금은 경기도로 편입된 <평택총쇄록>은 행정의 근대 전환을 보여주는 사료가 된다. △지방관으로 성실했던 오횡묵 오횡묵이 지방관으로서 성실했던 모습은 총쇄록에서 거듭 나온다. 강원감사는 포상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고, 경상감사는 향내 안정의 공을 들어 함안군수 연임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수와 지도군 등 신설한 군의 첫 군수 선정은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정선 자인 함안의 백성들은 스스로 만인산(萬人傘)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총쇄록에는 수많은 시가 수록되었다. 오횡묵은 시 짓기를 즐겼다. 그는 중인들의 한시 모임인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에 출입했다. 인왕산 아래 정자에 위항시인들이 모였고, 백운동에 집이 있는 그는 시사의 중심이었다. 친구 시인들은 임지로 찾아와 서울 소식을 전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총쇄록 기록에 그는 언제든 당당했다. 오횡묵의 배경은 국왕 고종과 민비였다. 무과 급제 후 궁궐 수문장을 지낸 그는 1884년 7월에 왕명을 직접 받고 공상소(工桑所)를 설치해서 감동(監董)이 되었다. 공상소는 궁궐에 필요한 각종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던 기관으로 경무대 즉 현 청와대에서 창의문 일대까지 넓은 면적을 보유했다. 고종과 민비가 휴식을 위해 왕림할 때마다 감동 오횡묵이 직접 모셨다. 그러니 지존과 이런 인연으로 인해 여느 관리와는 격이 달랐다. 더구나 지방관 재임 중에도 공상소 임무를 계속 관계하였다. 재임 중 상경할 때도 공상소를 찾아온 민비를 만나고 있었다. 그런 위상을 가진 그는 임지의 향리나 백성에게 당당했고, 감사나 전운사에게도 과하게 저자세일 필요가 없었다. △사천 민란의 조사관 임무 오횡묵은 1893년 2월부터 1894년 9월까지 고성부사로 재임했다. 당시 향촌 실정에 정통했던 그는 면리 행정의 단속과 조세 수취상 폐단의 금지, 정부 시책의 전달 등 지방관 업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1894년 초 경상도 남부도 사정은 전라도와 다름없이 심각하였다. 정월에는 사천 난민이 읍내 민가 10여 채를 불사르고 향리를 징치하는 등 소란이 일어났다. 오횡묵은 조사관으로 파견되어 이를 수습하였다. 4월에는 김해 백성 수천 명이 봉기하여 부사를 쫓아내고 향리에게 분풀이를 해서 창원부사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기록 갑오년 동학 관련 기사는 4월 7일자부터 나온다. 감영이 경계하는 공문을 전재하였다. 11일에는 전라 감영의 토벌군이 비류를 잡아들이면 도망 무리가 경상도에 올 거라는 말이 있었다. 27일자에는 전라도 여러 지역 봉기 상황과 황토현전투의 결과를 실은 경상 병영의 정보를 기록했다. 삼도 수군을 지휘하는 통영에서도 연이어 고부 염탐기와 홍계훈의 경군 패배 소식, 전라 감영의 상황을 알리는 정보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동학농민군의 영남 출몰을 우려하는 경상감영이 여러 조처가 시급해 보인다. 그 핵심 내용은 오가작통의 강화책이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사료 가치는 여러 전문을 실은 기록성에 있다. 서울 정부 소식, 경상감영 및 병영과 통영의 조치, 그리고 전라감영에서 보내온 공문이 상세하다. 청일 군대의 도성 안과 밖 대치, 일본군의 궁궐 침입와 청일전쟁의 개전도 순서대로 나오고, 교정청의 개혁방안이나 갑오개혁의 내용도 그대로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의 가치 전라도의 폐정개혁 주장은 경상도 남부에 영향을 미쳐왔다. “동학 소동이 한번 나오자 민란이 이어서 일어나니” “온 도내를 둘러봐도 한 구석도 평안하고 깨끗한 지역이 없었다.”고 하였다. 고성도 다름없었다. 농민들이 “폐단을 개혁해서 백성을 편케 한다는 명분으로 깃발을 세우고” 북삼면 배둔리에 집결하였다. 부사 오횡묵은 이들을 피하지 않고 만나서 설득하며 28개조 개선책을 마련하였다. 누적된 폐단이 집단행동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동학도가 찾아왔다. 하동 사는 최학봉인데 6월 그믐부터 남원 전봉준 접소의 통문을 가지고 각 군현을 살피고 있다고 하였다. 남원 접소가 믿기지 않지만 전라도 상황을 이용해서 경상도 군현에서 활동하는 동학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임 고성부사가 임명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와중인 9월에 임지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며 기록한 내용은 생생하다. 일본군의 병참부 전신소 설치와 대규모 군대가 북상하는 실상이 나온다. 그와 함께 경상도 남단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동학도들이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실상을 전하고 있다. 갑오년 9월은 전국이 동학농민군 세상이었다는 증언이었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이헌영(李永)의 <금번집략(錦藩集略)> <금번집략(錦藩集略)>은 1894년 동학농민군 봉기 당시 충청도 관찰사 이헌영이 작성한 것으로 '일록(日錄)'∙'별계(別啓)'∙'별보(別報)'∙'별감(別甘)'∙'시구(詩句)'의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헌영(李永 : 1837~1907)은 1870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수찬이 되면서부터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개항 이후 그는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가서 세관 관계 기관들을 시찰하였고 이후 통리기무아문의 통상사당상이 되었다. 1883년에는 부산항감리를, 1886년에는 참의내무부사이자 일본주차대신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1890년 이후에는 이조참판∙협판교섭통상사무∙성균관대사성∙공조참판∙병조참판∙경상도관찰사∙한성부좌윤∙형조참판∙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4월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1895년부터 1904년 사이 궁내부특진관∙내부대신∙평안남도 관찰사∙중추원1등의관∙의정부참정∙장례원경∙시종원경∙경상북도 관찰사∙경효전제조 등을 고위관료를 하였다. <금번집략> 중 '일록(日錄)'∙'별계(別啓)'∙'별감(別甘)'은 청일전쟁 초기 충청도 지역의 전투상황과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에 대한 정부와 지방관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이중 '일록(日錄)'은 1894년 4월 25일 이헌영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신임 감사 박제순(朴齊純)으로 교체되는 8월 29일까지 쓴 일기 기록이다.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아산 주둔 청국군의 동향과 인접한 여러 읍에서 허다한 접대비용 지출 등을 수록하였다. 6월의 기록은 청국 병사의 접대와 청국군 동향, 직산과 성환 전투에서 패한 청국군이 연기 지역으로 떠나는 상황을 적고 있다. 7월과 8월은 이인역을 시작으로 서천∙청양∙한산∙연기∙공주 지역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동향과 이에 대한 지역의 대응책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지역 농민군의 제2차 봉기와 관군∙유회군∙일본군의 진압에 대해서는 홍주 영장 홍건(洪健)의 <홍양기사(洪陽紀事)>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별계(別啓)'는 같은 해 6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의 기록으로 청국군∙일본군∙동학농민군의 상황이 섞여 있다.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내포 일대로 흩어진 청국 병사들이 들어와 마을을 약탈하고 놀란 주민들이 흩어지는 등 막심한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서산∙해미∙홍주∙덕산∙예산 등지의 약탈이 가장 심하였다고 한다. 본진이 있던 아산에서 청국군이 물러나고 일본군이 백석포를 거쳐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일본군은 객사와 산비탈 등에 주둔하는 한편 민가와 관청 건물에 들어가 남아있는 전곡과 집기 등을 빼앗고 사직단과 관청의 장부를 불태워지는 현감의 상황 보고를 수록하고 있다. 이후 매일 1,000~1,200명의 일본 병사들이 충주를 지나갔고 그들의 요구대로 수천 명의 인부를 마련해주었다 한다. 또한 임천과 공주∙청양∙보은∙서천∙한산∙연산 등지의 동학농민군 활동과 관련한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총칼을 들고 말을 탄 ‘동학배’가 작청에 난입하여 협박하고 수백의 무리를 이루어 금전과 재물을 약탈하거나 수성군의 무기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산에 도착한 무리 57명은 전라도 부안의 동학인으로 재물과 무기∙마필 등을 빼앗는 등 폐단이 컸다고 한다. '별감(別甘)'은 이헌영이 충청도 각 지역 지방관리와 유회소(儒會所), 민보군 개인 등에 보낸 전령과 효유문을 모은 것이다. 이인민회소(利仁民會所)에 보낸 전령에서는 경솔하게 무리를 모으면 나라는 더욱 위험하게 되므로 본업에 물러가 종사하고 조정과 방백의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공주∙홍산∙은진의 유회소 및 진천 민회소, 부여 유생 천기일(千基一), 영동 집강 손인택(孫仁澤) 등에게도 유사한 전령을 내렸다. 반면 관내에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시행을 지시하였다. 내용은 각각 해당 동내에서 위력이 있고 근실한 사람을 골라 동수(洞首)로 정하고, 사람마다 이름을 적어서 오가작통하여 1통마다 통수(統首)를 두고, 주민을 조사하고 타일러서 밤낮으로 살피고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상한 자는 적발하고 단속을 배가하여 방법을 마련하고 따로 법률을 만들어 실효를 거둘 것을 주문하였다. 이헌영은 평양으로 퇴각 시 천안에 맡겨둔 직예제독 예지차오(葉志超)의 군자금도 보관 후 돌려주게 했는데, 원래의 수량과 일일이 대조하여 살피고 착실하게 맡아두었다가 나중에 찾아갈 때를 기다리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공주∙전의∙목천∙온양의 지방관에게는 청국군 군수물자 운반을 위한 우마를 각각 나누어 정하도록 지시하면서 명령을 어길 시에는 군율로 처리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연기∙청주∙청안∙음성∙충주 등 각 지역에는 읍의 경계에서 기다리고 각별히 호행토록 하였다. 직산현감에게는 성환 전투에서 전사한 청국군과 일본군 모두를 예장(禮葬)하라고 당부하면서 각기 무덤 옆에 단을 설치하고 표를 세워 살필 수 있는 근거로 삼고 그 전말을 자세히 보고토록 지시했다. <금번집략>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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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3 15:11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귀엽기만 한 게 아니에요’ 동물매개치료가 보여준 ‘교감’의 힘

나른한 오후 시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동네 복지관으로 모여 7살짜리 포메라니안, 아뽀를 둘러싸 앉는다. 강아지 쓰다듬기, 함께 산책하기, 마사지해주기 등 그간 바쁜 삶을 사느라 평소 경험할 수 없던 동물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동물의 부드러운 촉감, 초롱초롱한 눈빛, 사랑스러운 움직임에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환한 꽃이 핀다. 함께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집단 내에서 자연스레 대화도 이어지고,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지기도 한다. 또, 감정이 있는 동물과 함께 해나가는 활동에 평소보다 많은 집중력을 쏟는다. 이곳은 치매 증상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되는 ‘동물매개치료’ 현장이다. 국내 최초의 대학원 과정인 원광대학교의 ‘동물매개심리치료학과’를 졸업해 동물을 매개로 한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윤석 씨(29). 벌써 7년차 동물매개심리치료사이다. 그의 반려견 ‘아뽀’는 가정에서는 애교도 많은 사랑스러운 여느 반려견과 다를 바 없지만, 윤석 씨와 함께 상담 현장에 나가면 여러 검증 절차를 거쳐 자격을 부여받은 의젓한 ‘치료견’이 된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여러 돌발 상황에서 침착함을 보여야 ‘치료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된 이들은 치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나 장애나 질병, 혹은 다양한 환경의 대상자들을 위한 동물 치유 프로그램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윤석 씨는 아뽀의 역할은 일당백이라고 확신한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매개로 내담자와 만나며 직접적인 감정 교류가 일어나다 보니 피드백과 반응 또한 즉각적입니다. 그래서 내담자들과 라포 형성이 정말 바르게 일어난다고 느낍니다.” 윤석 씨는 다양한 내담자와 함께 동물매개치료를 진행하며 동물의 존재가 사람에게 치유를 줄 수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치료견 아뽀와 함께 대상자들을 만나다 보면, 부정적이던 사고가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더욱 풍성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을 목격하는 등,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7년간 수많은 대상자를 만나며 동물 교감의 힘을 알려온 윤석 씨.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는 익산시 보건소에서 만난 한 남성 노인 한 분의 사연을 소개했다. ‘인생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며’ 높은 우울감을 호소하며 타인에 대한 경계가 높던 어르신은 치료견 ‘아뽀’와 교감할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적고, 누군가 말을 걸면 방어태세를 갖출 정도로 경계심이 심하던 어르신인데 아뽀와 친해진 후에는 다른 이에게 아뽀를 먼저 소개하는 등 삶에 대한 적극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매개치료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관찰돼 뿌듯했고, 프로그램이 끝나 이별을 맞았을 때, 진심이 담긴 표현을 전달받을 때 큰 감동”이라고 윤석 씨는 말한다. △동물매개치료 ‘긍정 효과’.. 과학적으로 입증돼 동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가 혹여 기분 탓은 아닐까? 인간과 동물의 유대 경험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인간의 생애주기별 효과를 살펴본 연구들에 의하면, 동물과의 교감은 발달이 이루어지는 단계의 아동과 청소년의 애착 형성에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자기존중감과 자신감 향상, 인지 능력과 학습력 향상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기에는 동물과의 상호작용이 스트레스와 혈압을 낮추는 등, 심혈관계 증상을 완화한다는 점이 발견되었고, 노인의 우울감,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이 줄어드는 것과 더불어 전반적인 신체 건강은 증진된다는 점이 보고된 바 있다. 특히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미국심장협회는 반려동물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고혈압, 고지혈증, 신체 활동, 비만 등에 개선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를 가진 PTSD 환자, 우울증, 불면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 등 여러 정신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정한 질병을 앓거나 특정한 환경에 놓인 대상자들은 동물과 상호작용하며 교감이 이루어졌을 때, 정신적 증상이 완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과거 이런 연구 결과 대다수가 대상자의 인터뷰나 설문으로 인해 입증되었다면, 최근에는 연구 대상자의 심장박동수를 모니터 하거나 뇌파, 체내 호르몬 변화를 객관적으로 데이터화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로도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일찌감치 연구해 온 서양에서는 동물매개치료를 우리나라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노인, 환자가 많은 대형 병원이나 심리치료센터에 치료견이 상주하고 있는 모습을 제법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동물매개치료, 앞으로의 전망은? 국내에 동물매개치료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인간과 동물의 유대에 따른 긍정 영향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물매개치료’가 미술이나 음악 등 세분화된 다른 분야의 심리치료에 비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인 것이 현실이다.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이 지자체 내 복지관과 보건소, 산하 센터에서 간헐적으로 마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연구자가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 제공되는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동물매개치료’ 개념에 국내에 유입된 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치료동물’에 대한 정의나 법규가 여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에, 동물매개치료를 진행할 장소 선정부터 ‘동물’이 투입돼 위험할 것이란 편견까지. 아직까지 소모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생명’을 매개로 치유를 받을 수 있고 동물을 매개로 상담사와 내담자가 빠른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와 관심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김옥진 원광대학교 동물보건학과 교수는 “인간과 동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서로 교감의 감정이 싹틀 수 있다” 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사람에게 위안과 위로를 전하며 심리적 이점을 제공해 동물과 보호자 간의 단순한 정을 떠나 사람의 심리적, 정신적 치유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라며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국내 동물매개치료는 특수학교의 특수아동과 복지관과 보건소 등 노인들의 스트레스나 우울감 감소 등이 목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향후 동물매개치료는 ‘보완대체요법’의 하나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의 적용이 기대된다. 최근 활성화 되고 있는 치유농업에서도 개 외의 동물과 곤충을 소재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동물매개치료 분야 확대가 전망된다. 이미 동물 교감의 긍정 효과는 별도의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을 거쳐야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일상에서 체감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컸던 윤석 씨는 막연히 ‘동물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왔다고 한다. 운명처럼 ‘동물매개치료학’을 만나 동물매개치료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치료견 ‘아뽀’를 통해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보람차다는 윤석 씨는 현재는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들에게 동물 교감을 통한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목서윤 전주 MBC 아나운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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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2 15:45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 ②정읍 고부관아터-"남은 건 학교 한 켠에 돌덩이 뿐"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趙秉甲)을 효수하라." 1894년 1월 10일,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1000여 명의 농민군이 전라 고부(현 정읍) 관아로 향했다. 그들의 목표는 탐관오리 고부 군수 조병갑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은 '만석보'를 이용해 수탈을 일삼는 조병갑의 폭정에 저항하다 곤장형에 처해 사망했고, 이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1893년 11월, 전봉준과 20여 명의 농민 지도자들이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의 집에 모였다.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탐욕스러운 아전을 징벌하기 위해 혁명을 모의하는 자리였다. 이때 작성된 것이 바로 '사발통문'이다. 사발통문은 사건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어 넣은 통문이다. 각지에서 모인 농민군 대오를 정비한 지도자들은 대나무로 만든 죽창을 앞세우고 고부관아로 향했다. 1894년 1월이었다. 이들은 아전들을 끌어내 처벌하고 억울하게 갇힌 죄수들을 풀어줬으며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양곡을 거둬 농민들에게 나눠줬다. 농민들은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도 허물어버렸다. 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발통문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3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지난달 23일 사발통문의 배경이 됐던 고부관아터를 찾았다. 혁명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이 지내던 고부관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부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초등학교(고부초등학교)가 세워졌다. 오늘날 이곳이 고부관아의 터임을 알려주는 것은 학교 입구 화단 위에 놓인 기념패와 고지도가 전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는 왜곡되고 지워졌다. 고부관아 역시 일제에 의해 모두 철거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의 혁명을 향한 첫 발자국이 외세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워진 셈이다. 이후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묻히고 말았다.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다. 고부관아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김철모)다. "고부관아는 동학농민혁명의 봉화를 올린 역사적인 장소"라고 강조한 김철모 위원장은 "혁명의 정신을 후세에 온전히 알리기 위해선 이 자리에 고부관아터를 복원하거나 혁명의 시작을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부관아터 복원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고부관아터 복원을 위해선 터 위에 자리 잡은 고부초등학교의 이전이 불가피하지만 고부초등학교 동문들과 일부 주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부관아터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문화유산임은 틀림없지만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부초등학교의 역사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혁명의 가치와 학교의 역사가 저울 위에 놓인 상황에서 역사 유적을 복원함과 동시에 학교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읍시 동학문화재과 담당자는 "과거 고부관아터 복원 사업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동문과 일부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통해 주민 간 합의가 원활히 이뤄졌다. 이번 복원사업은 전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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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준혁
  • 2024.06.10 17:39

[팔도 건축기행]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

충남 아산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성당은 도 지정문화재 144호로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아홉 번째, 대전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됐다. 사계절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성당은 신도뿐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은 명소로 주변에는 350년이 넘는 국가보호수 4그루와 그에 버금가는 고목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미남이시네요', '태극기 휘날리며', '아이리스2' 등 지금까지 약 70여 편이 촬영됐다. △공세리 성당의 시작 공세리 성당은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공세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한 에밀 피에르 드비즈 신부(Emile Pierre Devise, 1871-1933)가 1897년 다시 공세지로 부임해왔을 때 성당 건립을 위해 대지를 매입한 사실을 '구한국외교문서'의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드비즈 신부와 프랑스 공사관의 노력을 통해 성당 부지의 소유권을 조선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성당 건립을 시작, 1899년 성당과 사제관, 사랑채를 완공해 합덕 본당의 퀴트리에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개최했다. 준공된 성당은 '한옥 성당'으로 성당으로서의 집회 기능을 충족하면서 우리나라 토착 문화를 그대로 전승했다. 사제관과 연결된 'ㅁ'자 평면형으로 흙벽과 기와지붕, 마룻바닥 외관 등 한옥 목조건물 모습으로 알려졌다. 드비즈 신부는 이후 기존 본당이 증가한 신자를 수용하기에 협소해지자 새롭게 서양식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해 1922년 10월 8일 충청도 내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완공했다. △에밀 드비즈 신부 드비즈 신부의 세례명은 에밀리오, 한국 이름은 성일론이다. 1871년 프랑스 남부 출신으로 1890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 1894년 신품을 받아 사제가 돼 조선 선교의 사명을 받아 일본을 거쳐 같은 해 10월 인천항구를 통해 입국했다. 그는 공세리 초대, 3대 주임신부로서 1930년까지 총 35년간 재직하다 1932년 병이 깊어져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1933년 고향에서 사망했다. 건축, 예술, 의술에 관심을 가졌던 신부는 '이명래 고약'으로 발전한 '성일론 고약'을 만들어 종기로 고생하는 주민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드비즈 신부가 지은 공세리 성당은 이후 합덕성당(1929), 예산성당(1934), 공주 중동성당(1936) 등 다른 성당의 건축 모델이 됐다. 신부를 추모하기 위해 공세리성당박물관에는 프랑스에 있는 그의 묘지석을 재현해 놓았다. 또 신부의 손자가 기증한 금장(金裝) '드비즈 서간집'과 묘에서 직접 가져온 흙을 전시해 추모하고 있다. △천주교 순교 성지 한국 천주교회는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등 4대 박해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공세리 성당은 이 중 32위의 순교자 현양비와 현양탑이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이자 솔뫼성지까지 잇는 천주교 순례길의 시작 구간으로 의미가 크다. 32위 순교자에는 신유박해 때 아산 최초로 순교한 하 발바라가 있으며 병인박해 때 걸매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세례명 미상)를 비롯해 부부 순교자인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삼 부자(父子)인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 등이 포함됐다. 하 발바라를 제외한 순교자 대부분은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 참형으로 순교한다. 하 발바라는 1825년 전교하다 체포돼 해미 감영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심문과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1835년 고문 후유증으로 아산에서 숨을 거둬 첫 순교자라 한다. △공세리 성당의 모습과 변천사 공세리 성당은 1922년 준공 당시 고딕 형식으로 트란셉트(세로로 길쭉한 구조인 성당에서 예배를 진행하기 위해 제단 앞을 가로로 길게 만든 공간)가 없는 긴 凸자형의 평면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3랑식 장방형 성당은 종탑부, 신자석, 제단부, 제의실로 구성됐다. 1971년 증축 과정에서 트란셉트 부분을 추가해 T자형 평면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제단은 배면부로 밀려나 트란셉트를 둔 대규모 평면으로 확장되고 회중석(성당 내부에서 성당 정면과 제단 사이에 있는 공간)은 총 6칸으로 확장, 내부 기둥까지 철거해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첨두 아치와 외벽을 지탱하는 반 아치형 석조구조물(플라잉 버트레스) 등 고딕 양식의 주요 장식적 요소를 배제해 비교적 간략하게 표현한 한국식 조적식(벽돌) 고딕성당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다. 특히 다양한 장식 벽돌을 사용해 시각적 미감을 일으켜 서울 명동성당과 비슷한 모습이다. 성당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파사드)은 비교적 1922년 건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색 벽돌과 회색 벽돌을 사용한 면은 고딕형식 성당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주 출입구 내부 천장은 반원형 아치 형태로 된 천장구조로 각 공간마다 회색 벽돌처럼 표현한 목재 갈빗대 모양의 뼈대(리브)가 있으며 측랑 부분은 평천장으로 마감해 목재판을 그대로 노출 시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제관은 지붕 경사면에 돌출한 작은 지붕이 있는 창문(도머창)을 둔 당시 서양식 사제관 건축의 전형이다. 2층 규모의 벽돌 건물로 정면이 팔(八)자 계단으로 2층을 오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으며 계단 아래에 1층 입구를 뒀다. 대전일보=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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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0 14:22

[세계 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④ 이용규 <약사> +<김약제일기>

어느 공주 유생이 남긴 동학농민군 기록과 한 해의 세평 – 이용규의 <약사>를 읽는다 어느 공주 유생은 갑오년 3월 15일“이날 대교(大橋)에서 향약(鄕約)을 행하였다”고 하였다. 모임은 3월 10일부터 준비되었는데, 아마 공주지역 유생들이 동학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14일 동학당 수백 명이 대교에서 취회를 했지만, 바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15일 비가 오는 가운데 유회를 치뤘다. 다음날 동도 700여 명은 이를 파괴하고 스스로 해산하였다. 이렇게 기록한 이는 충청도 공주 장전리에 살고 있던 이용규(李容珪)였다. 그는 지방에만 은거한 유생은 아니다. 그가 39살 때인 1888년 6월 광무국 주사로 활동하였고, 한때 서울 안동(安洞)에서도 살았다. 그는 1892년까지 광무국 주사, 기기국 위원을 지냈으므로 서울과 지방의 소식을 함께 접할 수 있었다. 갑오 2월 15일 일기에서 의정부 초기를 인용하여 고부봉기의 사실을 전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이전부터 동학당의 취회에 주목하고 있었다. 계사년 말미 세평(歲評)에서는“이 해에는 나라가 평안하였더니 계춘(季春)에 동학도 취당이 보은 땅에서 있었다. 7만여 인이 소요를 일으켰다. (……) 동학당은 본래 여항의 훈련되지 않는 병사였으므로 이내 해산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민요(民擾)가 지방관의 가혹한 수탈에서 일어났다고 보았지만, 민중들의 봉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동비(東匪)’라고 지칭했다. 다만 그는 농민봉기에 대처하는 정부 대응을 중시하고 있었다. 4월 28일 신임 전라감사 김학진의 부임을 기록한 데 이어, 5월 8일 “전주감영을 점거한 비적들이 귀화를 칭하고 나가서 태인 땅으로 향해 갔다고”하여 동도가 쉽사리 해산했다는 점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가 동도와 마주하기 시작한 것은 7월 6일 이후였다. 그는 8일 엽전 400냥을 강제로 빼앗겼으며, 24일 동비의 대교 주둔한 것, 25일 쌀 5섬을 요구해서 1섬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일, 8월 6일·7일에는 김영국(金榮國) 포의 돈 강탈 등 피해를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7월 29일 공주 정안면 궁원(弓院)에 대규모 농민군이 모인 기록에서는 임기준(任基準) 휘하의 동학농민군과 공주 감영과의 대치 상황을 알 수 있다. 9월 중순 이후에는 가족들을 금산 땅으로 피신시켰다. 대전 등지에서 동비가 소·짐·돈·양식을 빼앗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10월 23일 경리청 부대와 동학군의 대치국면에 대해,“오공동 서쪽봉우리에 올라 효포 등지를 멀리서 보니 관군과 전주의 동비들이 진을 치고 대치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하였듯이 당시 상황을 실감있게 전하였다. 저자는 동학농민군 활동에 동조하던 감사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전라도의 경우, “전봉준이 홍계훈에게 귀화한다고 속이고 있었고, 홍계훈 역시 동학도의 수가 많음을 보고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당시 순변사 이원회가 내려오자 홍계훈도 자신이 공로를 차지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갑자기 전봉준이 귀화하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였다. 또“전라감영의 관문(關文)과 감결(甘結)에 반드시 전봉준의 도장을 찍은 연후에야 여러 읍으로하여금 거행하게 하였다”고 전라감사 김학진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호서 동학군이 감사 조병호와 은밀히 부합하여 ‘감사는 우리 편의 사람이니, 누가 감히 우리를 엿보겠는가’라고 행동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역으로 전라 충청 일대에서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들이 주도하는 집강소 개혁정치의 실상을 전해주고 있다. 그는 갑오년 세평에서 농사가 흉년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가을 추수 때 동학당 봉기를 마련하는 비용으로 민생의 곤궁함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고 하였다. 이러한 언급에서 조선국가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동학농민군의 노력에는 동조하지 않으면서 민생 곤궁만 걱정하는 유교지식인의 엇갈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자료는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왕현종 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 <김약제일기> <김약제일기(金若濟日記)>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성균관(成均館) 사성(司成)으로 재직하였던 청우(淸愚) 김약제(金若濟, 1856~1910)가 기록한 일기체의 글이다. 1885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이듬해인 1886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1892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김약제일기>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한다. <김약제 일기>는 모두 4권이다. 1권에서는 고금도에서의 유배생활을 기록하였다. 2권에서는 관직 복귀 이후의 일들을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는 1894년 2월까지 수록되어 있다. 3권은 1894년 2월부터 1895년 10월까지의 일기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견문 등이 담겨 있다. 4권은 대한제국 초기까지의 인식을 알 수 있는 자료다. 동학농민군에 대한 기록은 1894년 4월 6일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학이류(東學異類)가 3월 봄부터 다시 일어나서 지난번보다 심해졌다. 봄에 금산읍(錦山邑)에서 접전을 하여 서로 간에 죽은 자가 제법 많았다. 전라도 고부(古阜)에서는 민란이 크게 일어나서 그 읍 수령인 조병갑(趙秉甲)이 한 없는 곤경을 겪고 달아나 살았다. 여기서 동학이류(東學異類)란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북접 동학교단과 다른 가르침을 추종하는 변혁지향적인 남접 세력을 일컫는다. 일본 지바대학의 조경달 교수는 이에 착안하여 '이단의 민중반란'이라는 연구서를 낸 바 있다. 다들 알다시피 고부민란이 일어나 군수 조병갑이 쫓겨난 사실을 수록하였다. 더욱 특기할 것은 1894년 1월의 고부민란 이후에 일어났지만 3월 20일 무장기포에 앞선 3월 8일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금산기포를 수록한 것이다. 금산은 남접 세력의 중심인물인 전봉준 등을 지도한 서장옥의 근거지였다. 이 정도 기술만으로도 동학농민혁명 초기 국면 서술에서 많은 논쟁점을 던져주고 있다. 김약제는 성균관 사성을 지내고 있던 관인(官人)이었던 만큼 동학농민군에 대해서는 지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1차 봉기 이후인 7월 25일의 일기를 보자. 동학의 소요가 극심해져 내포(內浦) 전체에서 동학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거의 드물었다. 인심이 흉흉해져 가장 먼저 봉변과 봉욕을 당한 자는 양반의 명색을 지닌 사람이었다. …… 동학교도는 떼를 짓고 무리를 이루어서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남의 무덤을 파고 남의 집을 허물었으며 결박하여 구타하였는데, 입도하지 않은 양반으로 당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이런 때에 조정의 명령이 갑자기 내려와서 피색장(皮色匠)이 갓을 쓰고 칠반천인(七般賤人)이 모두 면천(免賤)을 하여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게 되었다. 양반 관인이었던 김약제의 입장에서 동학농민군의 위와 같은 활동은 흉악하게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양반을 정점으로 한 신분제 철폐 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침 갑오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던 개화파 정부도 이에 호응하여 칠반천인을 면천하여 신분제 철폐를 법제적으로 마련하고 있었다. 근대 초기에 일어나는 신분제 붕괴 및 국민의 창출 과정이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을 통하여 동시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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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06 15:33

신상훈 신임 여자농구연맹 총재 "침체된 여자농구, 중흥시키라는 사명 완수할 것"

전북출신 신상훈(75·군산·사진) 전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가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 선출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제10대 총재에 선출됐다. 임기는 오는 7월 1일부터 3년간이다. 신 신임 총재에게는 침체기를 맞고 있는 여자 농구 중흥의 임무가 부여됐다. 이에 그는 총재 선출 직후 △ 여자프로농구 활성화(흥행) △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 선수 저변 확대 등을 활성화를 위한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아시아쿼터제 확대와 연고지 강화, 프로암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 개최 등을 세부 추진 계획으로 밝혔다. 총재 취임을 앞두고 있는 신 신임 총재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북일보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만나 향후 연맹 운영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먼저 한국농구연맹총재에 선출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여자농구계가 침체돼 있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어떻게 하면 흥행을 시켜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구단주의 협조도 끌어내야 하고, 선수들의 기량도 높히고, 선수층도 넓혀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습니다. 이번 총재 선출은 침체된 농구계를 다시 중흥시켜달라는 사명을 받은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임기간 동안 반드시 뭔가를 해 놓고 나올 생각입니다." - 평생을 금융분야에 종사해왔는데, 농구와 어떻게 연을 맺게 됐는지. "과거 신한은행장 시절, 구단주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 해체 위기에 처한 현대 여자농구팀을 인수해 신한은행팀을 창단(2004년)하면서 4년간(2006~2009년) 구단주를 맡았죠. 신한은행은 이후 6년 연속 통합우승(2007∼2012년)을 달성했죠." - 이번 총재 선거에 출마한 배경. "과거의 성과 때문인지 ’한 번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총재라는 자리가 명예직과 같은 것인 만큼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 6년 연속 우승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성적인데, 비결은.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선수단 합숙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든 팀이 합숙소가 있는 게 아니었는데, 연고지인 안산에 있던 4층 규모 신한은행 지점 건물을 합숙소로 변경했습니다. 1층과 2층의 천장을 뚫어 골대를 설치해 선수들이 밤에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죠. 3·4층은 합숙소로 활용했고요. 또 경기에서 자유투는 박빙의 승부를 가르는 핵심 포인트였는데, 출장 기회가 적은 2군 선수 등을 대상으로 자유투 테스트를 해 성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밤새도록 연습을 했고, 나중에 보니 자유투 성공률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 농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구단주 시절, 주말 경기는 빠지지 않고 참관했습니다. 그것도 농구장 1층 코트 바로 옆에 의자를 놓고 봤습니다. 그래야 선수들 숨소리도 들리고, 선수들의 체력 상황 등을 알 수 있죠. 이처럼 구단주 신분의 은행장이 뜨니까 다른 임원들도 따라서 모두 나와 응원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한은행이 계속 좋은 성적을 올리다 보니까 다른 은행에서도 안 나올 수가 없었죠. 동반 상승한 것이죠. (당시 여자프로농구는 신한은행의 돌풍 등의 영향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며 전성기를 누린 것으로 평가됐다.)" - 총재 취임 후에도 이 같은 열정을 보여주실지.  "경기가 열리는 곳은 어디든 열심히 나가볼 생각입니다. 제가 나가야 구단주들이 나오고, 단장들도 나오게 되니까요. 더불어 각 구단주에게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여자농구 흥행 성공의 1차 요소는 구단주가 얼마나 팀에 열과 정성을 쏟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구단주들에게 무작정 투자하라고는 못 하지만 스스로 투자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 현재 여자 농구가 많이 침체돼 있는데, 구상하고 계신 비전은. "선수들의 평균 기량 하락과 만성적인 선수 부족 등이 문제인데, 이걸 좀 살리려 합니다. 우선은 여자농구 활성화(흥행)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선수 저변 확대 등 3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중 제일 시급한 건 선수층 확대입니다. 우리는 선수층이 너무 얇아요. 일본은 고등학교 여자 농구부가 3000개가 넘는데, 우리는 19개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유소년 농구 강화를 위해 농구부가 있는 학교에 지원하고,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학 농구부 창단 등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전북의 경우, 기전여고 농구부 선수들의 진학 연계를 위해 전북에 있는 대학들에 농구부 창단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 경기력 향상을 위한 선수층 확보 방안은. "아시아쿼터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상국가를 일본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중국 등으로 넓혀야 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용병까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쿼터제는 외국인 선수 제한과 별도로 아시아지역의 국적을 보유한 선수를 추가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연맹은 2024~2025시즌부터 일본 국적 선수를 대상으로 한 아시아쿼터제를 도입키로 했다.)   - 총재 선출 직후, 일성으로 여자농구 활성화를 언급했는데. "농구도 이제 흥행, 즉 국민(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호응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게 우선적으로 중요할 것 같은데, 요즘 축구 스타와 예능들인이 함께 하는 예능프로그램처럼 프로암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3대3 길거리 농구를 여름 리그로 만든다거나, 매 경기 시작 전 3점 슛 대회 개최 등 흥행을 돋구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 여타 종목에 비해 농구는 연고지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단 연고지가 수도권입니다. 또 대부분이 연고지 밖에서 클럽하우스 생활을 하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연고지는 전국으로 확대할 필요는 있습니다. 선수가 부족해 구단을 새롭게 늘릴 수 없지만, 현재의 연고지를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지역 사람들도 경기장을 방문해 응원도 하는 등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죠."  신상훈은. 1948년 전북 군산 출생. 군산상고-성균관대,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산업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신한은행에서 이사대우-상무이사를 거쳐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은행장을 역임했다. 이후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와 금융산업공익재단 대표 이사장을 거쳐 금융윤리인증위원회 고문과 성균관대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60년 가까이 금융분야에서만 종사해 온 금융맨으로, 저녁 거래처 약속을 2군데 이상 잡고 1년에 몇 차례씩 거리 캠페인에 직접 나서는 등 현장을 중시하는 영업통 최고경영자(CEO)로 불린다. 특히, 신한은행장 재직시절 이끌었던 조흥은행과의 합병은 당시 한국 금융산업의 커다란 변화와 혁신의 상징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아직도 집안에 걸어놓은 ’처음처럼’이란 글씨를 보면서 스스로를 독려하고 있으며, 사자성어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를 생활준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재경 전북출신 기업인을 중심으로 한 JB미래포럼 공동 창립은 물론 ‘새로운 전북 자문단’ 위원, 전북 금융중심지 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 등 고향 전북과의 연을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올 1월 재경전북도민회 신년인사회에서는 ‘자랑스러운 전북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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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24.06.03 17:09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①프롤로그-혁명 깎아내리는 '역사 왜곡' 만연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立卽白山 座卽竹山). 서면 흰옷이 산을 이뤘고, 앉으면 죽창이 산을 이뤘다. 1894년 봄, 약 60만 명에 달하는 백성이 참여한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의 민주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조선 말기 농민들의 억압된 삶과 봉건적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은 뜨거운 불꽃처럼 타올랐고,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시 지속되던 '삼정의 문란'은 조선 후기 사회의 뿌리를 흔들었고 결국 동학농민혁명의 계기가 됐다. 사적인 원한으로 일어난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이 과거 반역으로 취급당했던 만큼 동학군의 후손들은 '역적의 자손'이라 불리며 손가락질받았다. 오늘날 혁명의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됐지만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과도한 폄훼가 판을 치는 상황이다. 이에 본보는 동학농민혁명의 올바른 국민적 인식 확산과 지식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기획은 동학농민혁명이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거사임을 되새기며 올바른 인식을 함양하고, 각 지역 주요 유적지의 실태와 이를 둘러싼 현황을 살펴볼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정읍(고부관아터)·고창(무장기포지)·부안(백산성)·정읍(황토현 전적지)·전남 장성(황룡 전적지)·전주(전주성)·김제(원평집강소)·완주(삼례2차봉기터)·충남 공주(우금치)·경북 예천(서정자들 전투지)·충남 태안(태안 교장바위)·경남 하동(하동 고성산)·강원 홍천(풍암리 전적지 자작고개)·전남 장흥(장흥 석대들)·충북 보은(보은 북실)과 황해 해주(해주성)를 차례대로 다룰 예정이다. 지난 달 22일 완산구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 이곳을 지나던 김 모 씨(40대·남)는 동학혁명기념관을 가리키며 "저걸 왜 '혁명'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며 "사실 저건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반란', '반역'이라는 것을 알고있나"고 기자에게 질문했다. 그는 "지금처럼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문화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도 동학농민혁명에 관해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본군이 국토를 유린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농민혁명 탓이다", "동학 폭동", "조선을 뒤엎은 반란군들이 어떻게 유공자로 모셔지냐" 등의 글이 게시되고 있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을 둘러싼 역사왜곡과 부정적 인식이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잔존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당시 지주계급이 그들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농민들을 부추겨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됐다는 '가짜뉴스'도 제기됐다. 이런 역사왜곡은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갖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혁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넘어 '전라도' 지역을 향한 자극적인 혐오 표현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민적 인식 변화가 '동학농민혁명 세계화'의 첫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국민들 사이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이 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정치적 이념에 매몰돼 혁명의 의미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선 국민 대다수가 올바른 인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국에 널리 퍼져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유적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태도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 기획
  • 서준혁
  • 2024.06.03 16:31

[창간 74주년 특집] '한지' 전주·완주 통합에도 시너지 효과 기대

상생협력을 통해 광역행정권으로의 발전을 꿈꾸는 전주와 완주는 여러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지'다. 전주시가 추진 중인 K-한지마을과 천년 한지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완주군의 대승한지마을에서 두 지역간 상호 발전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때문에 전주·완주 통합 추진 과정에서 '한지'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한지의 고장'인 전주시에게 타 지자체와의 교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울러 전주한지가 나아갈 방향에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시티투어 등 한지마을 자원 연계 가능성 전주시는 K-한지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한지문화산업의 인적·물적 자원을 집적화하기 위해 서서학동 흑석골 일원의 자원 활용도를 모색하면서 역사기록관과 닥나무 경관림, 한지문화예술촌, 연수원 등을 조성한다는 내용으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중이다. K-한지마을은 전통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재배·공급을 위한 경관림과 시민공원으로 마을의 기반을 닦고, 국가 한지기록물 수집·전시·연구를 통해 한지문화산업의 고도화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또, 한지 전문가와 공예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레지던시를 만들어 문화예술거리로서 한지문화가 삶이자 예술이 되는 마을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구상도 있다. K-한지마을 만의 체류형 연수·교육공간도 사업 계획에 담았다. 이를 두고 전주와 완주에 '한지'를 매개로 한 마을끼리의 연대와 문화·관광 차원의 교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K-한지마을이 조성되면 주변 지역과의 연대도 자연스레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완주군의 문화시설인 대승한지마을에서는 한지와 함께 하는 한옥스테이를 운영 중이고, K-한지마을에서도 연수원 등 숙박시설을 조성할 예정이어서 체류형 관광 코스로서의 개발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목소리다. 향후 전주·완주간 한지마을 시티투어 등 연계사업을 고려해볼 수 있고, 체험과 숙박 교류를 통한 상생사업으로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시는 현재 K-한지마을이 구상 중인 만큼 향후 용역사와 구체적인 사업 추진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마을 조성이 완료된 이후 완주군을 비롯한 주변 네트워크 강화를 추진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이 과정에서 완주와의 상생교류협력 차원의 '한지' 자원 연계점도 함께 살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지 사랑 모이는 전주국제한지산업대전 시가 한국전통문화전당에 위탁해 진행하는 '전주국제한지산업대전'은 오는 10월 전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한지의 날 기념식'과 '한지인의 밤'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비롯해 산업·전시 기획,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시연회·한지문화체험·국제한지패션쇼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풀어낼 예정이다. 특히 올해 산업관에서는 한지역사와 한지산업, 한지비지니스, 한지상품 판매 등이 이뤄질 예정인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연계해 해마다 대중에게 친숙한 한지 문화 확산에 기여해온 만큼 한지의 발전 가능성을 전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와 연계해 올해로 30회째 열린 '전국한지공예대전'에서는 전통부문의 지호·지승·색지·지장·지화·부채·수록지, 현대부문의 한지조형·의상·닥종이인형·한지그림·한지부조·한지등·낙화, 문화상품부문의 민화를 응용한 한지공예·창작한지·응용한지 등 다양한 한지작품이 한 데 모였다. △세계속 전주 한지 로드, 나아가야 할 길 시는 한지의 세계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난 2020년 문체부가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전주시는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와 소통해왔다. 2021년 한지 유네스코 등재추진단에 참여한 시는 경기도, 강원도, 충북, 경북, 경남, 가평, 원주, 괴산, 완주, 임실, 안동, 청송, 문경, 의령, 함양, 종로와 한지 자원을 매개로 협력했다. 이후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학술포럼이 안동을 시작으로 문경, 전주, 종로, 완주, 진관사, 안동에서 순차적으로 열렸고 '한지의 날' 제정과 함께 전통한지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시는 중심을 지켰다. 국내 세 번째로 열린 학술포럼에서 시는 ‘전주한지 세계화 및 한지산업 보급화’라는 주제로 한지 세계화를 위한 장을 키우기도 했다. 한지의 유용성은 고문서와 예술작품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도 가치를 증명했다. 지난 2015년부터 전주시는 다양한 주제의 심포지엄과 전시를 마련해 전주한지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세계에 알렸다. 재외공관 한스타일 연출사업, 외규장각 의궤 반차도 재현 닥종이인형 프랑스 국제유산박람회 전시, 루브르박물관 막시밀리앙 2세 책상 복원에 전주한지 사용, 전주한지 복본 고종황제 서한 프란치스코 교황 전달, 이탈리아 밀라노 장인 상품박람회 참가 등 전주한지 세계화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같은 노력으로 전주한지는 지난 2020년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로부터 문화재 복원 용지로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마르챠나 국립도서관에서 기록유산 보존 복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가졌고, 주독일문화원 전주한지 팝업전시와 기록물 보존 워크숍을 성황리에 마쳤다. 전주시는 명실상부한 한지의 고장으로서 전통한지 제조, 한지 문화 확산, 한지의 세계화를 목표로 꾸준히 교류하고 완주를 비롯한 국내외 지역과 끊임 없이 소통할 계획이다.

  • 기획
  • 김태경
  • 2024.06.03 00:00

[창간 74주년 특집] 혁신적 광역 인프라 구축해 미래도시로 도약

도시의 성장은 인체의 성장과 비슷하다. 건강한 성장을 위해 튼튼한 심장과 혈관이 필요한 것처럼, 충분한 기반 시설과 원활한 교통 시스템이 바탕이 되어야 도시가 커질 수 있다. 민선8기 전주시는 광역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전주의 해묵은 숙제였던 대한방직 부지개발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역세권 경제기반을 조성하고 있고 황방산에 터널을 개통하고 주요 간선도로에 BRT를 설치해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완화할 예정이다. 동시에 2050 탄소중립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방침인데, 시가 달리고 있는 ‘안전하고 누구나 살고 싶은 미래광역도시’를 정책들을 살펴본다. / 편집자 주 △ 대한방직 부지 개발에 행정적 지원 전주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자 광역도시로 성장하는 데 핵심 공간이 될 대한방직 부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민간제안자인 ㈜자광은 타워, 호텔, 백화점, 쇼핑몰 등 상업시설과 오피스텔, 공동주택 등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은 협상대상지 선정 신청서를 시에 제출했다. 이에 시는 약 6개월에 걸친 관련부서 협의·검토와 도시계획위원회,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자문 끝에 지난 2월 ‘전주시 도시계획변경 사전협상 운영지침’에 따른 협상대상지로 옛 대한방직 부지를 최종 선정했다. ㈜자광이 제시한 새로운 개발계획은 △470미터 높이의 타워 △200실 규모의 호텔 △백화점 및 쇼핑몰 등 상업시설 △558실 규모의 오피스텔 △3399세대의 공동주택 등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타워빌딩은 관광용 전망타워로 만들어 꼭대기에 자이로드롭 등 놀이시설과 함께 전망대 시설을 갖춰 전주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계획이다. 지난 3월 ㈜자광이 협상제안서를 제출했고 시는 사전협상 운영지침에 따라 협상조정협의회 구성, 감정평가시행 등 협상절차를 진행 중이다. 협상이 완료되면 관련법에 따라 도시기본계획 변경, 도시관리계획 결정, 건축허가, 사업계획승인 등 행정절차를 거쳐 공사가 추진될 예정이다. 시는 관광·산업 복합개발 및 적절한 기반시설이 조성돼 체류형 관광을 이끌 새로운 랜드마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개발계획안을 면밀히 검토할 방침이다. 도시계획 변경 후 토지를 되파는 ‘먹튀’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토지를 매각하려면 시의 승인을 받도록 부지를 토지거래계약 허가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도에 요청하기도 했다. △ 역세권 중심으로 구도심에 활력 시는 전주역을 중심으로 역세권 경제기반을 조성해 동부권을 비롯한 구도심 활력 회복의 기폭제를 마련하고 미래광역도시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기반도 닦고 있다. 지난해 한옥마을에 1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 전주의 관광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데 비해, 전주역은 지어진 지 40년이 넘어 늘어나는 이용객 수요를 소화하기에 낡고 협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에 시는 전주의 관문이자 상징인 전주역의 규모를 키우고 역사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로 하고 △역사 증축 △주차공간 확대 △광장 교통체계 개선 등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광장 부지 정리와 역사 증축을 위한 철로 제거 공사가 완료된 데 이어, 올해에는 새로운 역사 증축과 광장 부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전주역세권 도시정비의 핵심 거점시설이 될 혁신관광 소셜플랫폼 조성도 지난달 8일 착공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선8기 주요 공약사업 중 하나인 전주역세권 혁신관광 소셜플랫폼 조성사업은 전주역 인근에 대중교통 복합환승장과 주차장, 관광안내소를 집적화해 전주 동부권을 이끌 새로운 교통‧관광 거점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총 257억 원이 투입돼 연면적 5472㎡, 지하 1층~지상 6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으로, 오는 2025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하엔 공영주차장이 만들어져 전주역 일대 주차난 해소에 일조하고 지상 1층에 들어설 복합환승장은 광역교통과 연계돼 방문객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를 높일 예정이다. 또 지상 2층~6층엔 투어리스트 라운지와 관광안내소, 관광유관기관 사무실 등을 포함한 통합관광센터가 조성돼 전주역을 이용하는 시민과 여행객에게 다양한 관광 정보와 편의시설을 제공하게 된다. △ 교통 문제 해결 위한 도로 혁신 시는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광역도시로 향한 길을 열기 위해 시민의 삶과 직결된 도로와 교통 인프라도 확충 중이다. 시는 우선 혁신도시·만성지구와 구도심을 연결하는 콩쥐팥쥐로 및 온고을로에 집중되는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황방산에 터널을 뚫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4월부터 ‘황방산 터널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 중으로, 용역을 통해 교통량 분산 및 경제성‧환경성을 고려한 노선(안)을 마련하고 타당성 조사 및 투자심사 등 황방산 터널 개통을 위한 행정절차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또 종합경기장 부지에 대형컨벤션센터를 비롯한 마이스 복합단지 조성이 완료되면 일대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는 종합경기장 인근 백제대로 구간에 지하차도를 조성해 혼잡에 대비하기로 했다. 한편 시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시내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간선급행버스체계(BRT)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기린대로, 백제대로, 송천중앙로~홍산로 구간 등 시내 주요 간선노선에 도입될 계획으로, 첫 단계로서 총 412억 원이 투입돼 기린대로 호남제일문~한벽교 구간 10.6㎞에 도내 최초 BRT 도입이 추진 중이다. 시는 기린대로 구간에 중앙버스전용차로와 정류장을 설치하고 교차로 및 가로 교통체계를 개선할 계획으로, 현재 진행 중인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이 마무리되면 올해 내 착공해 2025년까지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는 BRT 도입으로 버스 통행 속도 증가, 증차 효과, 교통사고 위험 감소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BRT 구축으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한 홍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간담회와 설명회를 병행해 시민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 탄소중립 실현한 ‘건강한 도시’ 향해 시는 광역도시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미래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2050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전주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과 ‘제3차 기후위기 적응대책 세부시행계획’을 마련해 탄소중립 실현의 길을 열 방침이다. 시는 올 연말까지 계획수립 용역을 추진해 향후 10년에 걸친 △지역 특성을 고려한 탄소중립을 위한 비전 및 전략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및 온실가스 감축 대책 등을 담은 전주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해 기후변화와 기후재난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전주시 탄소중립 정책 실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전주시 탄소중립지원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센터는 2022년 환경부 탄소중립 지원센터 운영 부문 공모사업에 선정돼 설립된 기관으로, 전주시 탄소중립 계획 수립·시행과 에너지 전환 촉진 등 2050 탄소중립 시행을 앞당기는 역할을 맡게 된다. 센터는 오는 2026년까지 3년 동안 △탄소중립 정책 및 기후변화 적응 등 업무 △에너지, 산업, 수송 등 분야별 탄소중립 구축모델 개발 △탄소중립 관련 조사·연구 및 교육·홍보 △온실가스 통계 산정·분석 등 전주시의 탄소중립 시책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강한 경제의 심장이 될 기반 시설을 조성하고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해 도시의 막힌 혈관을 뚫겠다”면서 “동시에 탄소중립을 실현해 안전하고 누구나 살고 싶은 건강한 미래광역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범기 시장 미니 인터뷰 “전주는 그동안 성장이 지나치게 정체돼 있었습니다. 강한 경제기반과 함께 시민의 삶을 위한 각종 인프라를 마련해 100만 광역도시로 성장할 전주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겠습니다.” 우범기 시장은 최근 전북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주가 광역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기반 조성 방향에 대해 “우선 전주의 오랜 숙제였던 대한방직 부지와 전주역세권을 개발해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할 것”이라며 “교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황방산에 터널을 개통하고 지하차도와 BRT를 설치하는 등 도로와 대중교통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들이 너무 개발에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 시장은 “전주가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환경을 고려한 공법을 사용한 친환경적 개발을 할 수 있다”면서 “녹색성장을 위한 탄소중립 기반을 구축해 다른 도시보다 더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우 시장은 “전주를 밑바탕부터 크게 바꾸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는 중”이라며 “위대한 시민 여러분과 함께 전라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미래광역도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4.06.03 00:00

[창간 74주년 특집] 전주 한지 세계화·산업화 어디까지 왔나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이와 발맞춰 전주는 전통 한지를 제작하는 한지장을 중심으로 전통한지의 정체성을 다졌다. 전통한지의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해 닥나무 재배 면적을 확충하는 한편, 원료의 국산화와 고품질화를 통한 전주한지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한지의 가치를 지키고 명맥을 잇기 위한 노력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데, 민족 문화의 정신이 담긴 문화유산으로서 전주 한지의 세계화와 산업화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한지 생산 명맥 잇는 전주지역 제조업체 전주에서는 현재 9곳의 한지업체에서 한지를 만들면서 한지산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제조 방식의 고궁·천일·대성·용인·성일·전주전통, 전통과 기계 방식의 천양P&B㈜, 기계 방식의 고감한지엔페이퍼·㈜전주특수한지 등이다. 전북지역의 한지 제조업체가 총 16곳이라는 점을 볼 때 전주가 가진 한지 제조·생산 인프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업체에서 생산해내는 한지의 양은 연간 460만장으로, 생산품의 무게로 환산하면 380톤에 달한다. 한지의 주재료인 닥펄프를 111톤 이상 소요하고, 연간 80억 8000만원의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또 다른 자산, 한지장·무형유산 보유자 전주에는 30년 이상 전통한지의 명맥을 이어온 한지장이 있다. 최성일(성일한지)·김인수(용인한지)·김천종(천일한지)·강갑석(전주전통한지) 한지장은 현재 전주에서 한지업체를 운영하면서 후계자를 두고 기술자원을 보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대성한지·천일한지·용인한지·성일한지·천양 P&B(주) 등 5곳이 전주한지협동조합을 결성해 운영 중이며 순지·화선지·색지·민화지·서화용지·기계한지·벽지·장판지·인쇄용 한지 등 다양한 종류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전주한지 관련 국가·도 무형유산 보유자 또한 선지장·낙죽장·지승장·색지장·지화장·사경장·배첩장·우산장 등 11명이 있어 한지 자원의 활용과 영역 확장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전통한지 원료 '닥나무' 공급 안정화 전통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식·재배와 수매사업은 농가의 소득 보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재 전주 12개 농가와 완주 5개 농가에서 닥나무를 심어 한지의 원료를 공급하고 있는데 식재 규모는 4만 6071㎡ 면적에 2만 8155주에 달한다. 닥나무 수매사업은 2017년부터 전주시 우아동·중인동 6개 농가에 닥나무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2020년 전주한지장 4명에 전주산 닥피를 공급하고 지난해부터 전통한지 6개 업체에 닥피를 공급했다. 같은해 5월에는 완주군에 5곳의 시범 재배 농가를 늘리고 같은해 12월 전주시에는 재배 농가가 3곳 확충됐다. 전주시 우아동, 완주군 소양읍 농가와 계약을 맺고 닥나무를 재배해 전량 수매·가공하는 방식인데, 이는 전주한지업체에 닥섬유 70~90%를 판매하도록 연결하면서 한지 생산의 안정화는 물론, 농가 소득 보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전통한지 생산·제도적 기반 강화 전주시는 올해 시비 5000만원을 들여 한지 제조업체 장비 수선·보수를 지원한다. 2021년에는 국비 2000만원을 지원받아 전통한지 제조업체 6곳의 시설장비를 개보수했다. 지난해는 시비 2000만원으로 전주한지장 4명의 시설장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줬다. 전통한지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준비와 관련해 전통한지 관련 법령이 제정됐으며 전주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에서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설립을 계기로 협력, 인적·물적 자원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흑석골에 위치한 전주천년한지관에서 '한지의 날 제정 1주년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올해 3월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본부에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 주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신청서를 제출한 만큼 오는 2026년 12월 제21차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 등재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전주한지산업 지원 인프라, 시민과 가까이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팀과 전통한지팀이 각각 관리하는 한지산업지원센터와 전주천년한지관은 전주 한지문화와 한지산업 진흥을 주도하는 허브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지의 문화와 산업을 종합적으로 연구·개발·교육하는 한지 관련 전문기관으로서 위상을 키우고 있으며 다양한 체험과 교육으로 시민들이 한지문화를 더욱 친숙하게 인식하고 인력 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개를 마련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는 도내 257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주한지를 활용한 사회교과서를 제작하고 공공기관 등에 한지 현수막, 한지 태극기 등을 소개하는 등 전통한지 활용 보급화사업도 이뤄졌다.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한지 체험 프로그램도 연중 운영하고 있어 연간 1만 여명이 찾고 있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예로부터 풍부하고 좋은 물로 명품 한지공장이 모여 있었던 흑석골에 위치, 전주의 한지마을 대상지로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곳에는 한지 제조공간이 조성돼있어 전통한지 복원, 한지원료 보급, 닥무지작업 체험, 전통한지 포럼이 가능하다. 게다가 한지 관련 종사자·기관을 연계한 제조교육, 한지를 주제로 한 인문·과학·역사·탐방 프로그램, 방문객 대상 전통한지 제조과정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기획
  • 김태경
  • 2024.06.02 17:47

[창간 74주년 특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태권도’ 종주국 위상 확보

국기(國技)인 태권도는 세계 곳곳에 우리나라를 알려온 스포츠다. 세계 213개국에서 2억 명이 넘는 지구촌 사람들이 태권도를 익히고 있다.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은 태권도의 보급이 그 밑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권도는 단순한 무예가 아니라 이제는 한국인의 혼과 정신이 깃든 스포츠이면서 우리가 보존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제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은 태권도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일이 급선무로 여겨지고 있다. ▲ ‘태권도’가 지닌 인류무형유산 가치 지난 2016년 10월 14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겨루기 태권도’가 지정됐다. ‘겨루기’는 예로부터 군산을 중심으로 행해져왔다고 전해진다. 전북은 태권도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인류무형유산 등재 기준을 보면 공동체와 집단이 환경,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조해 온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등을 의미한다고 정의내리고 있다.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그 정의에 합당해야 하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반영하며 창조성 또한 입증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당사국의 무형유산 지정과 적절한 보호조치 등이 수반돼야 한다. 태권도의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시도와 노력도 있어 왔다. 지난 2016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지시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10월 ‘겨루기 태권도’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이 중단되는 고초를 겪었다. 태권도는 삼국시대 맨손무예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근거가 부족하고 일본 가라테와 유사하다는 역사성 논란에 휩싸였다. 국기원은 2018년 11월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 등과 함께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 등재 협약을 맺었다. 2022년 4월에는 국기원과 무주군이 유네스코 등재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2022년 9월 이후부터 유네스코 추진단이 구성돼 활동에 돌입했다. 최근 유네스코 사무국(남북대표부)를 통해 남북한 공동 등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인류무형유산 가운데 남북이 공동으로 등재한 사례는 2018년 11월 26일 ‘씨름’이 있다. ▲ ‘태권도’ 종주국 위상 강화 태권도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시키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남북한이 합의해서 태권도를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시키면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이 보다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 면에서 태권도가 후대로 이어지고 세계인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려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태권도로 하여금 남북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재춘 코리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이 태권도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을 맡아 지난 4월 2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국내 태권도인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을 공식 출범시켜 그 보폭은 빨라지고 있다. 전북에서도 최근 전북도의회와 무주군의회 등이 태권도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이러한 발걸음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따라서 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면 전북이 태권도의 본향이자 유네스코 고장으로 발돋움할 뿐만 아니라 태권도원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태권도원이 명실상부한 태권도의 성지로 성장해 나가면 전 세계 태권도인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되고 전북이 무예를 연마하고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태권도원’ 태권도 종주도 입지 공고화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공간인 무주 태권도원이 2014년 4월 1일 문을 연 이후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0년 동안 25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며 태권도 성지이자 국제적 관광지로 성장했다. 특히 외국인 수련자만 해마다 3만 명 선을 넘어서고 있다. 태권도원의 설립 취지는 태권도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전 세계 태권도인들이 꿈꿔왔던 공간인 태권도원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태권도원은 태권도의 정신과 가치를 세계인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세계 태권도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태권도 내에서는 김용운컵 국제오픈 태권도대회 등 해마다 국제 태권도 대회를 열면서 전북을 태권도 종주도로서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태권도를 대표 문화 브랜드로 국제적 경쟁력 강화와 문화적 우수성을 전파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 전북지역 공약사업인 ‘국제 태권도 사관학교’(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1482, 국비 480억원)의 조속한 설립이 필요하다. 현재 타당성 조사용역이 진행(문체부) 중으로 전북자치도는 기본계획 수립 및 실시설계 용역을 위한 국비 30억원이 반영되도록 건의하고 있다. ▲ 인터뷰 - 최재춘 코리아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 “전북이 앞장서서 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도민 모두가 중지를 모아 염원한다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최재춘(65) 코리아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장은 “태권도는 우리나라 대표 전통무예이자 탁월한 역사성을 갖추고 있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반드시 등재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 단장은 과거 태권도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뼛속부터 태권도인이다. 특별히 올해는 ‘태권도의 날’이 지정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태권도의 날’은 1994년 9월 4일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태권도는 8회 연속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대한민국 국위선양에도 기여하고 있다. 익산시 금마면 출신인 그는 “고향 전북이 태권도의 발상지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아직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며 “전북은 최초로 태권도 겨루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지금의 태권도가 자리를 잡는데 유서 깊은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태권도가 역사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전북 도민을 비롯해 온 국민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움직임에 끊임 없는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 기획
  • 김영호
  • 2024.06.02 17:47

[창간 74주년 특집] 연중 축제로 가득한 장수군!

장수군의 4계절은 다채로운 축제로 가득하다. 봄이 오며 장수의 산과 들이 기지개를 펴고, 여름철 시원한 계곡을 타고 약수가 힘차게 흐른다. 또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올 빨간 맛, 레드푸드(RED FOOD) 페스티벌까지… 상반기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축제는 되돌아보고, 하반기 더 화려하게 돌아올 대표 축제들을 미리 둘러보자. 푸른 청정 자연 속에서 열리는 음악회! 제6회 시무골예술제 청년단체 ‘예농인들’이 만들어 내는 산골과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 지난 4월 13일 번암면 대성방 마을에서는 활짝 핀 벚꽃과 함께 제6회 시무골예술제가 열렸다. 탁 트인 산 중턱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과 청명한 하늘은 청중들에게 황홀감을 느끼게 했다. K-Pop부터, 클래식, 영화 OST, 국악까지 다양한 선곡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딱딱한 공연장 대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돗자리에 앉아 말간 햇빛을 받으며 즐길 수 있는 시무골예술제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예술제로 따듯하고 로맨틱한 연말을 선사한 만큼 아름다운 계절에 다시 찾아올 시무골예술제를 기다려본다! ‘한국의 샤모니’ 장수에서 열린 제3회 장수트레일레이스 지난 4월 6일에는 ‘장수러닝크루’가 주관·주최하는 ‘제3회 장수트레일레이스’가 축제처럼 치러졌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13개국 선수들을 비롯한 1200여 명이 참여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명실상부한 국제 대회로 거듭났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70K 코스는 장수군의 주요 명소를 전부 만끽하며 달릴 수 있는 최장 코스로 선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아쉽게도 지난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다음 트레일 대회 예고를 주목하자. ○장수트레일투어 일정 △쿨밸리트레일 : 2024년 8월 10일(토) △한우랑사과랑트레일 : 2024년 9월 7일(토) △2024년 제4회 장수트레일레이스 : 2024년 9월 27일(금)~29일(일)-종목 100K, 70K, 38K-J, 20K △제1회 장수 반려견 트레일레이스 : 2024년 10월 중 청정 장수만의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산길을 달리며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 장수트레일레이스에 참가하면 만나볼 수 있다. 고랭지에서 열대야 없이 시원하게…제2회 쿨밸리 페스티벌 점점 더워지는 날씨, 뼛속까지 시원한 축제를 찾는다면! 오는 8월 2일부터 11일까지 이어지는 제2회 장수 쿨밸리 페스티벌은 어떨까?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쿨밸리 페스티벌’은 여름철 휴양지로 유명한 번암면 방화동 계곡에서 시원한 물놀이와 체험, 공연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일석삼조 축제다. 한낮에는 계곡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살랑살랑 산바람 부는 저녁에는 편안하게 공연을 관람하며 휴식할 수 있다. 특히 △낙화놀이 △한여름밤의 버스킹 △쿨밸리 시네마 △쿨밸리 밸리밤과 같은 색다른 이벤트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니 열대야 없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청정 자연 속, 제2회 쿨밸리 페스티벌이 열리는 방화동 계곡으로 목적지를 정해보자.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 ‘레드푸드(RED FOOD) 페스티벌’로 명칭 변경 18회째를 맞는 장수군 대표 농산물 축제인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가 올해부터 ‘레드푸드(RED FOOD) 페스티벌’로 명칭을 변경하고 글로벌 축제로 도약을 꿈꾼다. 레드푸드(RED FOOD) 페스티벌은 9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의암공원과 누리파크 일원에서 개최된다. 그동안 한우와 사과에 집중됐던 내용을 장수의 모든 특산물을 아우를 수 있도록 확대하고 향후 축제의 판도를 바꿀 다양한 ‘킬러 컨텐츠(killer contents)’를 개발해 행사장을 찾는 글로벌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비 축제 선정 쾌거 ‘장수 한우랑사과랑’ 축제가 지난 1월 ‘2024~2025년 문화관광부 예비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동안 한우와 사과를 주제로 장수군의 농특산물을 이용한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여온 저력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와의 성공적인 접목, 관광객 확보에 따른 지역 경제 활력 측면에서 그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예비 축제로 선정된 ‘장수 한우랑사과랑 축제’는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정평가 △빅데이터 분석 △축제아카데미 △컨설팅 등을 지원받게 되며 이를 도약판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현행 축제’ 진입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기획
  • 이재진
  • 2024.06.02 16:47

[창간 74주년 특집] 신선이 놀던 고군산군도, 서해안 명품 해양관광지로 새도약

‘신선이 노닐던 섬’, ‘천혜의 비경’ 섬의 군락으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르는 표현이다. 고군산군도는 지난해 주요관광지점 입장객 통계 기준 선유도 248만 명을 포함해 300만 명이 방문했다. 사실상 전북특별자치도의 대표 관광명소로 우뚝하며 지역 관광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고군산군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K-관광섬 육성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군산군도는 군산을 넘어 미래의 전북 관광과 여행 사업에 큰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해안 최고 휴양지 ‘우뚝’ 군산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고군산군도는 선유도를 포함해 신시도‧무녀도‧ 방축도 등 63개 섬이 펼쳐져 있다. 이 중 16개 섬이 유인도로 인구는 약 2000명이다. 특히 선유도를 중심으로 신시도·무녀도·장자도·대장도는 새만금 방조제와 이어진 고군산연결도로 개통으로 요즘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다 고군산군도 대표적인 곳이 선유도 해수욕장이다. 이곳 주변에는 명사십리‧망주봉 그리고 해안선의 소나무와 해당화로 유명하다. 해발 152m의 바위산인 망주봉에는 수직 계곡이 있어 큰비가 내리면 7~8개의 계곡에서 큰 물줄기가 떨어져 장관을 이룬다. 선유1구에는 옥돌해변과 해안데크 산책로가 있다. 모래 대신 부드럽게 깍인 옥돌이 해변을 채우고 있어 옥돌해변이라 불리는 곳으로 선유도해수욕장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편이다. 이 해변에서 시작해 섬 절벽을 끼고 조성된 해안데크 산책로는 선유도 여행에서 꼭 걸어볼 만한 길이다. 이와 함께 장자도의 대장봉은 142m의 바위산이지만 나무로 만든 계단이 설치돼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오르는 중간 할매바위를 볼 수 있는데 마치 여자가 아기를 업고 밥상을 들고 나오는 형상이다. 군산판 모세의 기적인 쥐똥섬은 무녀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간조 때 길이 나타나는 신비의 바닷길은 관광객들이 직접 섬까지 걸어서 가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 ‘고군산 광역해양레저 체험단지가 들어선다. 주요 시설로는 오션에비뉴(서핑연습장·잠수풀장·해양테마공간),오션테라스(인피니티풀·수변카페·푸드코트·야외전망데크), 인공 파도풀, 레저레이크, 숲속쉼터 및 락가든, 모험놀이시설 등이 있다. 옛 정수장을 활용한 카약·카누 체험장(폭 70m‧길이 140m)도 조성된다. 이곳 단지는 오는 2025년 상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그 해 6월 정식 오픈할 계획이다. 이곳이 개장되면 사계절 체류형 관광 활성화를 도모할 뿐 아니라 기존 선유도와 장자도 위주의 개발에서 벗어나 다양한 섬 관광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인정한 아름다운 명소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바다 위 징검다리 섬을 이룬 고군산군도 일대가 세계에서 저평가된 관광명소로 소개됐다. CNN은 지난 2022년 48개 국가로 구성된 아시아 대륙 곳곳의 관광명소를 설명하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숨은 관광명소 18곳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한 곳이 대한민국 고군산군도 일대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CNN은 한국의 고군산군도에 대해 “도심을 벗어나 휴양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고 소개했다. 또한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잔잔한 물속에 흩어져 있는 초록빛 언덕들이 주는 전망이 그림같다”고 표현했다. 이와 함께 고군산군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한국관광 100선’은 내국인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가볼만한 대표관광지 100개소를 2년 단위로 선정해 홍보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3년 시작됐다. 고군산군도 대부분의 섬들은 높이 15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기반암은 편암과 편마암으로 이뤄져 있다. 기후는 대체로 겨울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눈이 많이 오며, 여름에는 온난하고 습하다. 식생은 온대낙엽수림과 상록활엽수림의 혼합림이 대부분이다. 연안에서는 조기·갈치·민어·삼치 등이 잡히고, 김·굴 등이 양식된다. 이들 섬은 해안의 기암절벽과 낙조 등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K-관광섬 육성사업 본격 2017년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연결도로가 개통된 뒤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가 육지화되면서 고군산군도는 전북의 대표 해양관광지로 지속 성장해왔다. 그동안 고군산관광이 선유도 등 연륙섬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말도·명도·방축도 등 해도 중심의 섬관광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해상영역의 섬관광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1박 이상의 체류형 관광의 증가로 새로운 지역경제 활력 제고 또한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올해부터 추진하는 ‘K-관광섬 육성사업’이 있다. 시는 지난해 고군산군도 말도·명도·방축도를 트레킹 관광섬으로 육성하기 위해 ‘고군산군도 트레킹 하이’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가고 싶은 K-관광섬 육성사업)에 도전했고 결국 최종 선정됐다. 이에 시는 이 사업 실행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을 완료했다. 종합계획은 말도·명도·방축도 해상인도교 및 명품트레킹코스 조성공사 추진과 발맞춰 관광객 방문 증가에 대비한 편의시설 및 서비스를 강화하고, 관광 콘텐츠를 확충해 서해안을 대표하는 트레킹 관광섬으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시는 오는 2026년까지 총사업비 115억 원(국비 50억 원‧도비 15억 원‧ 시비 50억 원)으로 △섬자원을 활용한 트레킹 코스 조성 △트레킹 편의시설 및 서비스 기반 강화 △트레킹섬의 이미지 구축이라는 전략과 함께 연도별 세부사업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트레킹 코스 중 쉬어갈 수 있도록 무인락커 등을 포함한 트레킹 쉼터공간 조성과 공중화장실 설치 등 섬 트레킹을 위한 기본 편의시설 구축을 우선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트레킹 코스 내 야간조명 및 간이의자 설치 등 기본 경관 조성 후 캠핑장, 등대 쉼터, 숲 체험시설 등을 연차적으로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1909년 조성되어 100년 이상 고군산 서쪽바다를 밝히고 있는 말도 등대를 트레킹코스의 거점이자 해양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등대 쉼터를 조성, 향후 각종 행사 이벤트 등과 연계해 명소화하기로 했다. 말도 등대는 말도를 상징하는 대표 명물이자 고군산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로, K-관광섬 육성사업을 통해 본래의 등대 기능 이외에도 해양관광 콘텐츠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편의시설들을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관광섬으로의 도약을 도모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역량강화 사업도 병행된다. 또한 고군산군도, 특히 말도·명도·방축도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홍보마케팅 계획도 세부사업에 포함,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시는 트레킹 및 섬관광을 주제로 하는 관광객 참여 행사 및 SNS, 매체 홍보 등을 통해 섬 인지도를 확대하고, 트레킹 코스 및 편의시설 조성이 완료되면 트레킹 축제, 섬 세미나 등 대외 행사를 개최해 섬 알리기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사업 초반에는 소규모 프로그램 시범운영 위주로 운영하며, 트레킹 코스 개통 및 각종 편의시설 조성 등 기반시설 추진 일정에 따라 홍보마케팅 규모도 확대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K-관광섬 육성사업을 통해 향후 고군산 관광이 신시·무녀·선유·장자도 등 연육섬과 말도·명도·방축도의 해도까지 연결하는 코스로 확장될 것”이라며 “명실상부 서해안의 대표 해양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사업 추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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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환규
  • 2024.06.0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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